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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 十 一 章. 여인의 마음 2 (65/90)

                                   第 三 十 一 章. 여인의 마음 2

융왕은 재차 덤벼드는 그의 장법을 모조리 피하고 있었다. 마치 상대할 능력이 되지 못해서 피한다는 듯 계속 보법

만 밟아 공격을 피하기만 했다. 얼굴을 노리면 몸을 숙이고 가슴을 노리면 뒤로 물러서는 식으로 도망만 치는 것이

다. 그러니 무굉은 도무지 잡을 수가 없었다. 평소 같으면 단숨에 공력을 운용하여 몰아세우겠지만 지금은 불가능하

니 그냥 달려가서 잡는 수밖에 없었다. 허나 내공을 일으킬 수 없는 상황에서 어찌 융왕 같은 고수를 잡을 수 있겠

는가. 당연 무굉은 분통이 터져 얼굴만 시뻘게질 뿐이었다. 

"이 겁쟁이야! 네가 명실공히 북망채주라면 나와 맞서야지 도망만 칠 수 있느냐?  내가 무서우면 차라리 무릎을 꿇

고 애원해라. 그러면 내가 자비심을 베풀어 살려줄 수도 있다." 

융왕은 황당하여, 

"건방진 놈. 내가 정말 무서워서 도망친 줄 아느냐?" 

"뭐야, 그럼 아니라는 건가?" 

융왕은 기가 막혀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아까부터 말로써 희롱하고  행동으로써 농락하는데 그는 사실을 전

혀 깨닫지 못하고 있지 않는가. 지금도 그는 융왕이 정말  무서워서 도망치기만 하는 줄 착각하는 듯 했다. 안색을 

보니 도발하는 것 같지도 않고 도리어 얼굴빛이 환하며 자신만만한 게 자신에 대해 매우 만족하는 것만 같았다. 융

왕은 갑자기 심사가 뒤틀렸다. 

"좋아. 그럼 지금부터 내가 공격을 퍼부을 테니 후회하지나 말아라. 자존자대 무굉이 나 융왕에게 어떻게 작살이 나

는지 네 자신부터가 똑똑히 새길 수 있도록 해주마." 

"하하. 지금껏 도망을 친 것만 봐도 너는 나를 이길 수 없음이  분명한데 나를 작살내주겠다니… 정말 어이가 없어

서 웃음도 안 나온다. 너 같은 녀석은 10년을 연마해야 나를 누를 수 있어." 

참으로 할말을 잃게 만드는 대사였다. 융왕은 그야말로 기가 막히기도 하고 울화통이 터져 미칠 것만 같았다. 정말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안 나오는 사람이 누군데, 그가 대신 그런 말을 하니 속이 부글부글 끓는 듯 했다. 융왕의 눈

에선 난데없이 불길이 치솟았다. 

"좋아. 10년이라고 했겠다. 내가 반 각… 아니, 반에 반 각 안에 너를 눕혀버리겠다. 철저히 후회하게 만들어주고 나

의 옷자락을 잡으며 호소하게 만들어주마. 감히 북망채주 융왕을 깔본 대가다!" 

"이놈아. 하려면 얼른 해야지. 왜 자꾸 해주마, 할거다, 하겠다, 어쩌겠다……." 

"너……!" 

융왕은 결국 더 참지 못하고 무시무시하게 출수를 감행했다. 일단 그가 쌍장을  벌려 출수하자 참으로 맹호와도 같

았다. 어찌나 움직임이 빠른지 지켜보는 진양이 그 출수를 깨달은 건 그가 이미 무굉의 코앞까지 도달했을 때였다. 

그는 곧바로 좌장을 아래로 돌리고 우장을 위로 돌려서 각자 반원을 그리게  만들더니, 한순간 머리와 허리를 노리

고 맹렬하게 덤벼들었다. 좌우 양손이 바깥방향으로  움직여 자연 교차를 이루었고 저 초식에  당하면 크게 부상을 

입을 것 같았다. 

무굉은 머리로 날아드는 우장은 간신히 피했지만 좌장은 피할 수가 없었다. 미처  이 공격의 묘를 꿰뚫어보지 못하

고 무의식중에 고개를 뒤로 젖혔는데, 이렇게 되자 허리는 자연  앞으로 나가게 되어 금방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본래의 무굉이라면 쌍장이 덤벼드는 동안 경험으로 말미암아 좋게 대처할 수 있었을  거다. 허나 지금의 무굉은 진

양과 붙어도 쉽게 승부를 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닐 정도라 무굉이 알아차렸을 땐 무의식중에 이미 고개를 젖힌 상황

이었다. 그는 아차, 싶어 서둘러 몸을 뒤로 날렸다. 

그보다 먼저 융왕의 좌장이 무굉의 허리에 도달하고 말았다. 융왕은 먼저 그의 허리를 한 대 때리고는 곧바로 옷자

락을 움켜쥐었다. 그리곤 세게 옆으로 내치자 그는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며 잠시나마 몸을 가누지 못했다. 싸움에 

있어서 중심을 잃는 건 곧 패배를 의미한다. 그런 만큼 융왕은 단숨에 그를  죽일 의도로 매섭게 일 장을 내갈기고 

있었다. 이 동작들은 하나로 묶어 초고성장법의 초식 중 하나인 진퇴양난이었다. 일단 쌍장이 교차되어 날아들면 다

가설 수도 물러설 수도 없어서 곤경에 빠지기에 진퇴양난이라 한다. 경공이 매우  대단하거나 미리 눈치를 채면 빠

져나갈지 몰라도 그러는 건 쉽지가 않아 자연 초고성장법의 절초 중 하나가 되었다. 

그때였다. 

"에라, 개 벌레의 아비새끼야. 명문혈이 위험하다." 

갑작스레 들리는 음습한 말에 융왕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동시에 그는 뒤에서 달려드는 웬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짧은 순간 그 목소리가 진양이라는 것도 파악했다. 그렇다면 지금 명문혈을 노리는 자는 진양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융왕은 무굉 때문에 크게 분노했지만 모험은 할 필요가 없어 일 장을 거두어들였다. 그리고는 도리어 뒤를 향해 좌

장을 날렸다. 

과연 뒤엔 진양이 바싹 붙어있었다. 헌데 융왕이 돌아서서 일 장을 날리자 그는 황급히 몸을 숙여 그 일 장을 피해

냈다. 재차 쌍장을 이용하여 더 공격을 퍼부으려 했지만 그는 어느새 발을 놀려 한참 밖으로 물러선 뒤였다. 융왕은 

분노하며, 

"과연 네 경공법은 내공을 조금밖에 쓰지 않는 수법이라 큰 변함이 없구나. 뒤에서 기습을 가하는 척 해서 날 방해

하다니. 광명정대한 척 하더니 사실은 네놈도 비열한 놈이었군." 

"흥. 너희는 신선폐와 같은 더러운 수단으로 승리를 쟁취하려는데 나라고 못할  게 있느냐? 너희가 야비한 만큼 나

도 야비해져야지. 더구나 나는 광명정대한 척 한 적이 없다. 난 본래부터 이에는 이로 갚는 성격이라 그런 건 따지

지도 않고 따질 생각도 없다." 

역시나 진양다운 대답이었다. 그에 융왕은 눈에 핏발을 세운다. 

"망할 놈… 주둥이는 살아 가지고 말 하나는 잘하는군. 좋아! 네놈 둘이 덤비려면 덤벼라. 방금은 네놈의 농간에 무

굉을 못 죽였지만 어쨌든 그도 죽고 너도 죽는다. 겨우 숨 몇 번 더 쉬며 사는 정돈데 내가 분노할 이유가 없지." 

"하하. 그래도 네가 분노한 건 사실이지. 게다가 넌 그를 못 죽여서 분노한 게 아니라 나한테 속아서  분노한 게 아

니냐?" 

진양이 정곡을 찌르자 융왕은 흉악한 눈을 번뜩였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죽여주마. 처절히 울부짖게 만들겠어." 

"하하. 나와 무 형님, 그리고 형란은 이미 죽기를 각오해서  너에게 수모를 당하지 않는다. 처절하게 울부짖을 일도 

없고 우리 중 한 명이 죽는다면 다같이 싸우다 죽을 것이다. 너희를 정 이기지 못할 때는 자결하는 수도 있지." 

"그래… 하지만 너에게도 약점은 있지. 꽤나 대장부인 척 하는데 어디 두고봐라. 진짜 고통이란 게  어떤 건지 깨달

아라." 

갑자기 그가 뭔 생각을 했는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약점이라니, 진양은 어리둥절해하다 퍼뜩 생각난 게  있어 안

색이 싹 변하고 말았다. 

"너……! 설마……." 

"깨달았으면 어서 무릎을 꿇고 애걸해라. 그러면 그녀의 목숨만은 살려줄 수 있다. 하지만 너는 물론이고 무가도 죽

어야해. 하하!" 

진양은 분노하기도 하고 걱정도 되어 손을 부르르 떨었다. 허나 쉽게 대답하지도  않고 무릎을 꿇지도 않자 융왕은 

피식 웃으며 제 아들에게 말했다. 

"뭐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허나 보면 마음이 변할지도 모르니까 너의 왕 매하고 당 동생 등을 데려와라." 

"왕 매는 조심스레 데려와야겠죠?" 

"당연한 걸 묻느냐. 그들은 이미 우리에게 귀속했으니 굳이 괴롭힐 필요가 없지. 더욱이 너의 왕  매는 당주고를 향

한 마음이 뜨거워서 매우 존경할 만 해. 하지만 안타까운 건 진가 놈이 마음을 바꾸지 않을 땐 그녀를 죽일 수밖에 

없다는 게야." 

진양은 그들의 대화에 치를 떨었다. 동시에 이상한 점도 느꼈다. 당씨 가문은 본래 북망채를 수하로 두고 있다가 배

반해서 서로 원수지간이고 당광 또한 그에게 죽었으니 불공대천의 원수인데 '당 동생', '왕 매' 라니. 또 이미 귀속

했다니.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설마 당무, 당주고 그놈들이 융왕에게 허리를  굽힌 건 아니겠지. 아무렴 불공대천지원수인데  설마 그럴 리야. 제 

놈들도 인간이면 당광의 비참한 말로를 알고 있겠지. 확실히 분에 넘치는 걸  바라여 전진교를 장악하고 못된 짓을 

많이 했지만, 융왕이 배반하고 그를 죽였으니까.) 

진양은 어릴 적 부모를 여의어 효(孝)라는 개념을 잘 모르지만 조덕의 손에 길러지면서 배울 건 배우고 지킬 건 지

키는 도의를 배웠기 때문에, 당무 등이 인간이라면 절대로  융왕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였다. 왕령 

역시 금녀를 부모로 만나 이렇듯 힘든 인생을 살았으나 제 어미를 죽게 만든 원인을 제공한 청성파와는 안면을  트

지 않고 산다. 소위 악행을 일삼았다고 말하는 금녀를 없앤 것이라 개과천선한  그녀는 차마 청성파를 공격할 수가 

없었다. 그럴 능력도 되지 않았고 당주고 또한 그녀를 말렸다. 

그녀조차 그러한데 설마 당무, 당주고, 당유민이 부모의 정을 잊으랴. 그들도 인면수심이 아닌 이상 당광의 죽음 중 

반은 융왕의 책임이라는 걸 알고 또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걸 알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융왕이 자신들에게 귀속

했다고 말하고 '당 동생', '왕 매' 라는 식으로 불러서 친한 척을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두 가지 경우가 있겠군. 하나는 융왕이 무슨 수작을 꾸미느라 일부로 그렇게 말한 것이고,  또 하나는 당

무 등이 일부로 투항한 것이겠지. 허나… 에이. 지금 생각해서 뭐 하나. 어차피 곧  만나게 될 텐데 그럼 사정을 알 

수 있겠지……. 그나저나 령아는 무사할까?) 

그가 막 그런 생각을 하던 순간, 

"야… 양아……!" 

그는 갑자기 들려온 더듬거리는 외침에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자신 때문에 위기를 맞게 되어 이렇게 갇혀있는 그 

사람, 진양 역시 그 사람을 구하려 이 힘든 고생을 하고 있다. 한시도 잊은 적이 없는 그 청량한 음성, 바로 왕령의 

음성이 아닌가. 예전과 비교하면 조금은 쉰  듯한 음성이었지만 본래의 목소리가 워낙에 청량하여  보통 듣기 좋은 

게 아닐 수 없었다. 

"령아!" 

그는 멍한 자세로 고개를 돌려보고는 부르짖듯 소리쳤다. 정말 저번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모습이었다. 얼굴에 약간 

수심이 깔린 것 외에는 큰 고생을 한 것 같지가 않았다. 역시나 그  아름다운 모습은 여전하고 애간장을 저미는 눈

동자까지 모두 여전했다. 그러나 지금 진양이 느끼는 기쁨은 예전과는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었다. 

"령아! 괜찮아?" 

그의 걱정 어린 말에 왕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를 데리고 나온 융정은 음흉한 표정으로 말을 건넨다. 

"왕 매. 나는 매우 안타깝기 그지없어. 너는 남편인 당 동생을 따라서 이제 우리에게 귀순했잖아? 내 말은  분명 틀

림없는 것이겠지?" 

융정의 시선이나 말투는 왕령에게 향해 있었지만 이유는 진양에게 있었다. 진양은 그  수작에 대해 감을 잡아 숨이 

막혔다. 더욱이 그를 숨막히게 하는 건 다름 아닌 왕령의 대답이었다. 

"네……." 

네……, 라니. 진양은 반쯤은 어이가 없고 반쯤은 화가 나서 입만 쩍  벌릴 뿐이었다. 융정은 그의 모습이 재밌다는 

듯 싱글거리며 다시 말문을 열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어. 나는 왕 매가  선하고 당 동생을 잘 따라서 이제 아무  문제도 없을 줄 알았는데 

말야. 참으로 안타깝지. 그 문제를 일으키는 자가 누군지 알아? 바로 저 진가 놈이야. 저놈과 관련이 있지." 

"무… 무슨 말씀이죠?" 

왕령은 금방 얼굴색이 변하며 되물었다. 

"무슨 말이냐고 물은 거야? 네가 그걸 모르다니 어이가 없는 걸." 

"대체… 무슨 일이기에……." 

"에이. 좋아 내가 직접 다 말해주지. 너는 이제 우리 사람이니까 직접 말해줘도 문제될 게 없겠어. 사실 저 진가 놈

이 여기 온 이유는 너 때문이야. 난주에 있을 때 데려간 너를 풀어주라고 하는 것이지." 

그녀는 깜짝 놀라며 진양을 흘낏 보았다. 정말이냐는 듯한 표정이다. 융정은 그걸 눈치채고 능수능란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날 못 믿는 건가? 저놈은 분명 너를 데려가려고 왔어. 혼자 온 건 아니고 두 사람을 데려왔는데 다 아는 얼굴이겠

지. 저쪽은 무가 놈이고 저쪽은 형가 년이고. 저 진가  놈은 무가가 아버지와 결투한다는 것을 빌미로 이 북망산에 

오른 것이야. 감히 이 북망산에 저따위 놈이 오르다니 참으로 통탄할 일이지." 

그는 이쪽저쪽을 가리키며 계속 말을 이었다. 

"아버지는 말씀하셨어. 무굉의 일행을 만나면 길을 안내하라고. 그래서 나는 그 뜻을 받들어 좋은 뜻으로 그들을 맞

이했지. 헌데… 뜻밖에도 저 진가 놈이 너를 놔주지 않으면 북망채를 몰살하겠다는 망언을 하는 거야. 나는 어이가 

없고 화도 나서 그들은 안내해주지 않았지. 그렇게 하니까  저들은 급기야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어. 얼마나 수단이 

악독한지 정말 치가 떨리더군. 특히 저 진가 놈의 수법은  너무 악랄해서 말로는 형용할 수가 없을 정도야. 저들은 

나에게 신선폐까지도 억지로 복용시켰어. 그 때문에 어제 하루 동안은 온몸에 힘이 빠져 축 늘어질 정도였지. 나는 

그때 결심하고 저들도 신선폐에 중독되도록 했어. 매우 힘들었지만 계략을 써서 그들을 중독 시켰지. 헌데도 저 진

가 놈은 끝까지 나를 죽이겠다는 거야. 내가 계속 날 죽이려 하면 너를 은밀히 살해하겠다고 했는데도 저놈은 상관

없다면서 나를 죽이려고 했지. 저놈은 그야말로 마귀야. 살아있는 마귀고 이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놈이지." 

"이 개 같은 놈아! 어디서 그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여?" 

"흥! 이 진가 놈아. 왕 매를 구해가려고 왔지만 안타깝게도 넌 이제 그녀의 친구일 뿐 아무것도 아니야. 만일 왕 매

가 너를 따라가지 않는다면 너도 더 명분이 없겠지. 맞느냐?" 

진양은 물론이고 형란, 무굉, 왕령까지도 좀 전  융정의 말이 그야말로 말 같지도 않은 소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사실 융정도 속이려고 한 말이 아니니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허나 방금 전에 한 말은 이치에 맞았다. 아무리 친구

라지만 단지 조언을 해줄 수 있을 뿐, 선택은 그녀가 하는 게 맞다. 진양은 왠지 모를 불안감이 들면서도 그녀가 설

마 북망채에 남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보아하니 무언가 협박을 한 듯 해도 왕령은 총명하니 상황에 잘 대처

할 거라 짐작했다. 

"맞다. 그녀는 내 친구일 뿐이니 난 조언을 해주려는 거다. 더구나 지금 그녀는 억지로 이곳에 끌려온 거니 난 친구

로서 구해주어야 한다." 

"흥. 끌려온 게 사실이라 해도 구해주는 것조차 그녀가 원하지 않는다면?"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진양의 단호한 말에 융정은 대소를 터트렸다. 그는 곧 왕령을 보며, 

"왕 매. 진가 놈에게 확실히 말해둬. 너는 선택을 잘 해야해. 어떤 게 모두를 구할 수 있는 거고 어떤 게 모두를 잃

을 수 있는 건지 잘 생각해서 답하라고.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 

"알아요……. 지금 바로 대답할 게요." 

그녀는 결심이 이미 굳은 듯 했다. 진작부터 생각하고 있었다는 듯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단, 시선은 

진양에게 향하지 않은 채 오로지 땅만을 향한다. 

"양아… 미안해. 날 구해줄 필요는 없어.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겠지만… 아무튼 미안해……." 

너무 허무한 대답이었다. 진양은 이건 그야말로 있을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생각했다. 여기까지 어떻게 들어

왔고 지금 신선폐에 당하여 목숨까지 위태로워졌는지 정작 당사자가 가지 않겠다니. 갑자기 가슴속에 천지를 다 태

우고 얼음물조차 순식간에 녹여버릴 만큼의 거센 불길이 치솟았다. 그것은 필시 분노다. 자신의 고생은 조금도 알아

주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 대한 분노일 것이다. 허나 단지 분노만 느낀 것도 아니었다.  또 느낀 것은 바로 의문. 본

래 눈치가 빠른 진양이라 왕령과 융정의 대화를  미루어보며 뭔가 일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물론 그게 무슨 

일인지는 모른다. 

"자! 이제 대답은 끝났군. 너는 이제 이 산에 올라온 명분이 없군." 

"웃기는 소리는 집어쳐! 융정, 무슨 수작을 부린 거냐? 너나 그녀의 표정만 봐도 난 알  수 있어! 대체 무슨 수작을 

부렸기에 령아가 저럴 수 있단 말이냐?" 

"하하. 너야말로 웃기는 소리 집어쳐라. 난 네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통 알아들을 수 없구나. 그녀는 그녀 스스로 

선택한 거고 나는 그저 바른 판단을 위해서 도움만 주었을 뿐이야. 네가 정녕 믿지 못하겠다면 그녀에게 직접 물어

봐라. 얼마든지 물어도 대답은 똑같을 테니까." 

진양은 떨리는 눈으로 왕령을 바라보았다. 진실로 묻고 싶었다. 허나 물을 수가 없다. 다시금 보는 그녀의 눈동자는 

마치 그것을 '묻지 말아달라' 라고 하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곧 시선을 피했지만 진양은 그 짧은 순간 많을 걸  느

낄 수 있었다. 

"융정. 네놈은 필시 그녀의 약점을 잡았겠지. 그 약점이란 당주고에 관한 것이나 또는 그녀 자신에 관한 것일 테고. 

어서 불어! 무슨 수작을 부린 거냐?" 

"하하. 나는 통 못 알아듣겠으니 혼자 열심히 지껄여라." 

"융정!" 

"시끄럽다. 정 알고 싶으면 직접 물으라니까." 

융정은 진양을 약올리는 듯 하기도 하고 또  귀찮다는 듯 하기도 해서 그의 분노를 사기에  매우 충분했다. 진양은 

화가 치밀어 당장이라도 피를 토하고 죽을 것만 같았지만 아직 알아야 할 것이  있었기 때문에 죽을 수 없었다. 즉

시 왕령을 향해 고함친다. 

"령아! 이리로 와봐. 무슨 일인지 직접 말해 줘.  융정 저 개 같은 놈이 무슨 수작을 부려서  그랬는지 어서 상세히 

설명해 줘!" 

"야… 양아……." 

그녀는 어느새 눈물을 떨구고 있었다. 울먹거리는 음성이 진양의 가슴을 더욱 짓이기고 있었다. 말할 수가 없는 건

지 말하고 싶지 않은 건지 도저히 입을 열지도 가까이 오지도 않는다. 한참동안이나 그런 태세로 있자 융정이 참지 

못한 듯 왕령에게 말하였다. 

"왕 매. 웬만하면 그냥 말해 줘. 그래야 너도 속이 편할 거고 저 진가 놈도 더 이곳에 올라 우리를  귀찮게 하지 않

을 거야." 

"하지만……." 

"꼭 해야해. 말 안 해주면 저놈은 끝까지 저러고 있을 테니까. 까짓 거 죽여버리면 그만이지만  어쨌든 너의 친구니

까 죽일 수도 없잖아. 스스로 물러가게 만들어야지.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어?" 

왕령은 그래도 엉거주춤하게 서 있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녀가 막 진양에게  가려고 걸음을 떼려는 

순간 갑자기 융정이 또 부른다. 

"아아! 맞다 맞아. 그게 더 좋겠군. 잠깐 이리로 와봐. 중요한 일인데 진가 놈에 관한 거야." 

그녀는 순순히 응하여 융정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그는 귀엣말로 뭔가를 소곤거렸다. 짧은 말인 듯 그는 금새 

입을 떼었고 뭔가 중요한 말인 듯 했다. 아니면 그녀의 안색이 저렇게 변할 수 없었다. 

"그… 그건……." 

"왜? 그건 모두를 위한 거야. 그렇게 되면 굳이 시간 버릴 필요도 없잖아." 

"허나… 양이는……." 

"걱정 마. 최소한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그를 해치지 않겠어. 아무렴 왕 매의 말인데 오죽하겠어." 

무슨 말인지 몰라도 왕령은 크게 고민하는 것 같았다. 좌불안석인양 자꾸 종종 걸음으로 진양에게 가다가도 멈춰서

고 주춤거렸다. 진양은 답답하여 그녀를 부른다. 

"령아! 빨리 와. 무슨 일인지 어서 말해 줘." 

그의 마음이 전해졌던 것일까. 오직 걱정으로 가득 찬 진양의  눈빛은 본 왕령은 더 꾸물대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천천히, 천천히 그 걸음은 매우 느릿느릿했다. 그저 느릿한 걸음일 뿐, 별다른 건 없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진

양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진양은 모른다. 그건  왕령에게 있어서 가시밭을 걷는 것보다 더한  고통을 주고, 매 

걸음마다 수십 일의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는 것을. 

그렇게 누구에게는 짧은, 누구에게는 매우 긴 시간이  지나며 왕령은 진양 앞으로 다가왔다. 이  얼마 만인가. 사실 

현실적으론 자주 봐서 그다지 오래된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단둘이 가까이 붙어본  건 참 오랜만이었다. 진양은 이

제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녀는 스스로 선택하여 당주고에게 시집을  갔고 진양은 뒷공론하듯 그녀를 탓하기도 

싫었다. 다만 친구로서는 여전히 남고 싶었다. 한때나마  6년을 함께 한 마음이 통하는 친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허나 왕령에겐 그런 마음조차 없었던 것일까. 

"양아……." 

"무슨 일인지 말해 줘. 나 진양, 진정으로 친구를 위하여 모든지 할 수 있어! 네가 나를 몰아세운 적도 많았고 나를 

적으로 여긴 적도 많았지만 너와 나는 언제까지나 6년을 함께 한 친구잖아. 어서 무슨 사연이 있는지 말해봐.  내가 

힘 닿는 데까지 도와주겠어." 

"그… 그건……. 사실… 남들이 들을 만한 게 못 돼." 

진양은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즉시 귀를 내밀었다. 옛날부터 그녀가 뭔가를 말하지 못할 때 이렇게 귀를 내밀

면 곧잘 귀엣말로 말을 했었기 때문에 진양은 버릇대로 그런 행동을 보인 것이다.  지금 그녀가 남이 들을 만한 게 

못 된다고 한 것도 귀엣말을 하겠다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건 심호흡을 3 번이나 할 때까지도 그녀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왠지 허공에 대고 혼자 귀를 

내민 것만 같았다. 앞에서 들리는 숨소리는 여전하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조금 거칠고 아까 하고는 뭔가 다른 

소리였다. 진양은 그게 매우 귀에 익었다. 그녀가  흐느끼기 직전 항상 거칠어지던 그 숨소리.  자신을 주체 못하고 

슬픔도 주체 못할 때 혼자 몸을 부르르 떨며 내쉬는 그 숨소리였다. 진양은 깜짝 놀라서 막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연액혈이 뜨끔해지면서 온몸에 힘이 다 빠져나갔다. 연액혈은 겨드랑이 아래에 있었고  뜨끔

한 부위는 왕령을 향해있던 오른쪽 겨드랑이 아래,  연액혈이었다. 이 혈은 방어하지 않는 한,  일단 맞으면 온몸에 

힘이 빠지고 세게 맞으면 순식간에 움직일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르는 요혈이다. 진양은  지금 내공을 쓸 수 없고 있

다고 해도 알지 못하여 못 막을 것이며 설령 내공을 쓰지 않고 팔로 막아내려 했다고 해도 너무 불시라 결국  어떤 

경우에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바로 진양은 점혈을 당한 것이다. 실로  어이없게, 그것도 친구 왕령의 왼손 검지 

끝에 의하여. 

"이… 이럴 수가……. 갑자기 왜……." 

공력을 운용할 수 있어도 한 대 맞으면  정신을 못 차리는데 지금 진양의 경우면 어떠하겠는가.  그는 도저히 몸을 

지탱할 수가 없어 바닥으로 아무렇게나 자빠지고 말았다. 사지에 힘이 안 들어가고 축 늘어져서 그냥 한숨 푹 자고 

싶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선 죽어도 잘 수 없다. 아니, 잠이 문제가 아니라  정말 죽는다 해도 알 건 알아야

겠다. 진양은 그렇게 생각했다. 

"대체… 왜……! 왜… 어째서……." 

하지만 묻고 싶어도 힘이 나질 않는다. 보아하니 그녀는 일부로 살짝 눌러서 잠이 들게 하려는 듯 했다. 공력을 운

용해서 수혈까지 건드리게 하였으므로 진양은 저절로 눈이 감겨 어떻게 물어볼 수가 없었다. 묻고 싶은 건 태산 같

고 알아야 할 것은 대해와 같은데, 감기는 눈을 이겨낼 수는 없고 친구의 갑작스런 행동에 어리둥절해 할 뿐. 

"하하! 잘했다 잘했어! 바로 그거야." 

진양은 스스로 입술을 깨물었다. 힘이 안 났지만 이것으로 약간의 아픔을 느껴 잠이 빠지지만 않으면 된다. 억지로 

눈을 부릅뜨려 했고 어느새 피는 입가를 타며 흘렀다. 왕령은 그 모습에 깜짝  놀란 듯 했으나 융정은 곧장 나서며 

좋아할 뿐이었다. 

"아주 잘 됐어. 이렇게 됐으니 이제 이놈도 잘 살고 네 남편 또한 살 것이다. 아주 잘 선택했어! 그야말로 일거양득

이야." 

"그럼… 이제 다시는 제 남편을 괴롭히지 마세요. 그리고… 해독단도 주세요." 

"하하하. 암, 주어야지. 내가 어떻게 왕 매를 속이겠어? 이게 해독단이니 복용하면 이틀 내로 나을  거야. 너에게 있

어서 이건 목숨보다 귀한 거겠지." 

융정은 그녀에게 웬 단약을 하나 넘겨주며 말했다. 이렇게 되면 모든 전말이 드러나는 셈이다. 융정은 과연 당주고

를 붙잡고 괴롭히며 독까지 먹여 왕령을 묶어두었던 것이다. 진양은 입술을 깨물며  그걸 듣고 있었던 터라 노도처

럼 밀려오는 허탈감, 그리고 불길처럼 치솟는 분노를 느꼈다. 

"너… 너희들……! 어떻게……." 

참으로 말도 안 나온다. 진양은 자꾸 더듬더듬하며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사실 이건 연액혈을 맞아서 힘이 빠진 

이유도 있었지만, 심리적인 이유까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사람은 본래 외적인 문제일 때보다 내적인  문제가 있을 

때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지 않는가. 

"뭐가 어떻게야? 왕 매는 너를 죽이지도 않고 당 동생도 죽이지 않는  방법을 택한 거야. 넌 이제 잠에 빠지겠지만 

일단 좀 전의 대화를 듣고 대충 상황을 알았을 테니 좀 더 자세히 알려주지. 당무 등은 이곳에 갇혔다가 금새 탈출

을 시도했어. 물론 잡혔고 그때 당주고는 고문을 받았지. 얼마  전 네놈 일행이 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는 최후의 

계략을 꾸민 거야. 너 같은 놈들은 아버지 말씀대로 자신의  고통은 작게 여기지만 호인의 고통은 크게 여기지. 난 

그걸 이용했다. 너를 고통스럽게 하려면 왕 매를 고통스럽게 해야하고, 왕 매를 고통스럽게 하려면 당  동생을 고통

스럽게 해야지. 그래서 일부로 독단까지 먹이고 구타를 가했다. 다 너 하나 때문에 이런 일들이 벌어졌던 거야." 

"그… 그럼… 역시 네놈이 령아의 약점을 잡아서……!" 

"그렇지. 하지만 이제 우린 화해했어. 그녀는 나를 도와 네놈을 고통스럽게 해주었고 무엇보다도 너나  당 동생이나 

모두 사는 방법을 택했지. 참으로 현명한 선택이야. 이런 걸  모두 말해주면 네가 다 깨달아서 고통을 덜 받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이거 하나만은 생각해. 왕 매의 행동에 대해서." 

"그게 현명한 선택……? 하… 하…… 령아… 아니, 왕 낭자는! 당주고 때문에 생각이 흐려져서… 너의 생각대로 휘

둘린 거야. 그녀가… 평소대로 침착했더라면  오히려 네가 당했을 걸……. 하지만  진정으로 나의 안전을 생각했다

면… 어떻게 나에게 이런 짓을……! 결국 왕 낭자는… 당주고 때문에……!" 

융정은 피식 웃었다. 

"그거야 어렵지 않지. 너를 진정시키지 못하면 죽이는 수밖에 없다고 했거든. 왕 매는 하는 수 없이 선택한 거고 동

시에 그 방법이야말로 모두를 살리는 길이었어." 

"모두를 살려? 웃기는 소리 하지마……! 융정… 네놈에게 묻겠다. 내가 잠들면… 나를 어찌할 거냐?" 

"그야 물론 죽여야지." 

왕령이 소스라치게 놀라,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제가 그를 제압해서 난동부리지 못하게 막으면 살려준다고 했잖아요?" 

"당연히 그렇게 말하긴 했지. 하지만 난 이놈을 살려둘 순 없어. 사실 조금 살려줄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옛날 당

했던 걸 생각하면 아직도 화가 나. 이놈을 갈기갈기 찢어서 개한테 줘버려야 속이 풀리겠어. 지금 하는 것도 봐. 이 

말하는 싹수며 태도며… 난 이런 것들이 싫어." 

"남아일언 중천금이라 했어요! 약속을 지켜요." 

"어허. 이거 왜 이러시나. 왕 매. 자꾸 그러면 당 동생마저 살릴 수 없게 돼. 잘 생각하라고." 

융정은 이미 철저하게 진양과 왕령을 농락해버린 상황이었다. 왕령은 기가 막혀 몸만 부르르 떨었다. 

"이 악랄한… 당신의 음흉한 생각까지 알았지만 설마 이렇게 짐승 같을 줄이야!" 

"하하. 그래 나는 본래 이래. 깨닫지 못한 네가 멍청한 거지. 너는 당주고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휘둘려 이런 결

과를 초래한 거야. 하지만 아직 방도는 있지. 최후의 선택과도 같아. 자!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정 진가 놈을 살

리겠다면 나도 할말이 없어. 그냥 보내주도록 하지. 대신 당 동생을 죽이는 수밖에. 나의 분은 풀어야할 거 아냐. 당 

동생을 살리겠다면 진가 놈에 대해선 잊고." 

"그… 그럴 수가……! 그럼 차라리 나를 죽여요!" 

"왕 매는 아직 죽어선 안 되지. 꽃다운 나이에 죽어서 쓰나." 

융정의 눈매가 문득 음흉해졌다. 왕령은 크게 겁을 먹고 뒤로 물러서며, 

"당신은 악마야…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인면수심이 아니라면 어서 약속을 지켜!" 

"사실 한 가지 방도가 더 있긴 한데……. 들어볼래?" 

"그… 그건 무엇인데요?" 

왕령은 이미 융정에 대해 심한 혐오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자신을 위해 고생한  진양과 자신이 사랑하는 당주고 중 

한 명을 선택하지 못하던 차이다. 그의 말은 금방 솔깃해질 만 했다. 허나 그 진상은 그렇지 않았다. 

"뭐 별 거 아니야. 아름다운 달빛 아래서 내 잔에 술을 따르고 내 앞에서 춤을 추고 또……." 

"뭐라고요? 그럼 수청을 들라고요?" 

"그런 셈이지. 그게 싫으면 뭐 관두고." 

왕령은 이 엄청난 결과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녀는 본래 총명하다. 실상 진양이 이리 어이없어 하는 이유 중 하

나도 그녀가 너무 쉽게 융정의 계략에 말려들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가 어찌 알겠는가. 여인의 마음이란 감히 남

자로서는 짐작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아니, 그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6년을 함께 한 진양도 이해

하지 못하는 그녀의 마음. 그것은 비단 그녀, 왕령에게만 국한되어 있는 게 아닐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되었든 간에 이미 일은 벌어지고 위기는 다가왔다. 파멸의 구름은 왕령은 물론이요, 당주고와 진양까

지도 가렸고 북망채 안에는 폭풍전야와 같은 고요함으로 가득했다. 남은 것은 선택. 그녀가 진양을 살리고 당주고를 

죽이던가, 당주고를 살리고 진양을 죽이던가, 혹은 융정에게 수청을 들던가. 뻔하지만  그 어떤 것도 그녀에겐 적합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진정 고통을 받는 자는 진양이 아니라 왕령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결정을 내리라면 아무래도 

당주고를 살리는 쪽 가망성이 많다. 허나 그녀는 은원을 모르는 여자가 아니었다. 예전 봉을 넘겨주며 모든 걸 청산

하려 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져 뜻하지 않는 결과가 생기고, 결국 그녀는 선택의 기로에서 외롭게 갈등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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