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 三 十 三 章. 북망산 하산 길 1 (67/90)

                                  第 三 十 三 章. 북망산 하산 길 1

사공환은 진양의 안색을 유심히 살피며 다시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당신의 안색이… 별로 안 좋은 것 같소." 

"내 안색이 어때서?" 

사공환이 어설픈 미소를 짓는다. 

"그냥… 뭐라고 해야할까. 아무튼 안색이 좀 피로해 보이는 게……." 

"쓸데없는 수작 부리지 말아라. 그나저나 좀 전에 내 너희들 대화를 전부 들었다." 

진양은 아까 나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표정을 풀지 않았다. 딱딱하게  얼굴을 굳히고 근엄하게 사공환 등

을 노려보고 있었다. 사공환이 이에 지레 겁을 먹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 그렇소? 아… 사실은 그게……." 

"너희 대화를 안 들어도 난 알고 있었어. 그 당시 나와 만났던 사람들은 너희들뿐이거든. 그런데 당무가 나타났으니 

필시 너희들 소행이라 여겼지." 

사공환의 얼굴이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방홍미녀는 이런 분위기를 심상치 않다고 여기고 은근슬쩍 사공환을 중심으

로 둥그렇게 쌌다. 잠시 눈치를 보던 북아가 입을 연다. 

"진 대협. 저번의 일은 매우 고맙게 여기고 있어요." 

"흥. 그럼 너희는 은혜를 잊고 나를 곤란에 처하게 했으니 배은망덕한 놈들이겠군!" 

"아니에요. 오해하지 마세요." 

진양은 그녀가 말하는 지번의 일이란 게  무엇인지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방홍미녀가 문인능에게  모욕을 받을 적 

진양이 나타나 일을 원만히 해결했던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진양은 북아의 표정을 천천히 살펴보며 말하기를, 

"나도 너희에겐 잘못이 없다는 걸 알아. 당연히 너흰 화주대도로 변장했던 나에게 도움을 받은 것이고, 당무에게 그

걸 말해준다고 하여 뭐 나쁜 일이 생길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겠지. 일단 그 화주대도가 사실은 진양이라는 걸 몰랐

을 테니까!" 

"그래요, 바로 그거예요. 저희는 정말 몰랐어요. 그 일로 진 대협이 큰 곤경을 겪었다던데 그건 정말로 미안하게 생

각하고 있어요." 

"흥. 미안해할 거 없다. 어차피 끝난 일이니 들먹거리기도 싫어. 내가 알고싶은 건 다른 거야." 

북아는 그의 말에 안색이 살짝 변했다. 

"어떤 거요?" 

"방금 너희들이 대화한 거." 

"당무에게 돈 받는 얘기요?" 

"그래. 너희가 고의로 내 행방을  불지 않았다면 결국엔 모르고  떠들다가 당무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는 것인

데… 어떻게 돈까지 받기로 약조가 되었지?" 

그의 말은 무척이나 예리했다. 단숨에 그들 대화의 허점을  찾아내어 콕콕 쑤시고 있었다. 북아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그게… 사실은 당무가 이런 말을 해서 그래요. '만일 화주대도가 정말로 진양이라면, 그를 처치하고 돌아와서 은 4

백 냥을 선물하겠다.'" 

진양이 웃는다. 

"그럼 겨우 그 한마디에 현혹되어 여기까지 왔다는 거냐?" 

"따지고 보면 그렇지요. 하지만 진 대협은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사공 가문은 반드시 한번 더 일으켜야해요." 

"은 4백 냥이면 참 큰돈이지! 가문을 세우고 어쩌고 하면 거의 없어지겠지만… 그런 만큼 당무에게 받기는 틀렸어." 

북아도 이 부분에 대해선 동의하는 듯 했다. 그녀가 진작부터 사공환을 말렸던 것은, 당가가 망한 이상 당무에겐 그

럴 돈이 없다는 데 있었다. 당가는 본래 재물이 많은 가문이다. 전대부터 웅웅객으로 명성을 떨친 조상이 있어서 그

때부터 재물이 많아졌다. 이후로 이어져 내려오고 많은 돈벌이 장사를 벌였기 때문에 사실 그들에게 있어서 은 4백 

냥은 쉽게 구할 수 있는 적은 돈이었던 것이다. 이런 사정을 안다면 당무가 그리 쉽게 은 4백 냥이란 말을 한 것도 

이해가 갈 법하다. 

하지만 지금은 얘기가 다르다. 당광이 죽고 왕처일을 죽인 사실이 천하에 드러나 당무  등은 이제 갈 데가 없는 처

지였다. 아니, 갈 데 없는 건 고사하고 아예 북망채에 잡혀있지 않는가.  지금 그에게 간다해도 돈을 받기는커녕 북

망채와 괜한 시비만 붙을 우려가 있었다. 북아는 방홍미녀 중 어리지만 총명하기도하여 이런 사실을 단숨에 예견했

다. 때문에 열심히 사공환을 설득하고 있었지만 그는 듣지 않고 결국 여기까지 오게된 것이다. 

북아가 진양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또 쓴웃음만  짓자 조금 어색한 공기가 그 주변을 감쌌다.  뒤에 있던 사공환은 

잠시 눈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진 공자. 그건 잘못된 생각이오. 당신은 당가의 재력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거요." 

"이 멍청한 작자야. 북아라는 네 시녀가 좋은 말을 해줬을 텐데 너는 귓구멍에 똥이라도 박혔냐? 당가가 설령 천하

제일의 부자라고 해도 지금은 천하제일의 역적이라는 걸 알아야지!" 

사공환은 그제야 번쩍 깨달아지는 게 있는지 입을 쩍 벌렸다. 진양은 냉소하며, 

"게다가 당광은 죽어버렸고 전진교를 장악하는 그들의 작전은 실패했어. 또  갈 곳이 없을뿐더러 아예 북망채에 잡

혀있지. 그런 상황에서 당무가 네게 은 4백 냥이라는  돈을 줄 수 있을 것 같으냐? 그런 망상은  일찍 접고 차라리 

장사를 해서 돈을 버는 게 낫겠다." 

"그, 그럴 수가……." 

"너처럼 영악한 놈이 어쩌다 이 같은 멍청한 생각을 가졌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가문을 세우고 장주님 소리 듣는다

는 꿈을 꿔도 그렇지, 어떻게 이런 기본적인 판단도 흐려질 수 있냐?" 

"흥! 웃기는 소리 하지 마시오! 당무가 잡히긴 했지만 내가 가서 북망채에 부탁하면  풀려날 것이오. 설사 풀려나지 

않는다고 해도 언젠가는 풀려날 것이 아니오? 그럼 그때 받을 수 있잖소. 지금  그들이 가진 재물은 어딘가에 숨겨

져 있을 거요. 이번에 오르면 혹 그가 알려줄 지도 모르고." 

진양은 기가 막힌다는 듯 짧게 숨을 토해냈다. 

"완전 미쳤군. 완전히 미쳤어!" 

"뭐라고? 내가 왜 미쳤다는 거냐? 괜히 할말 없으니 그런 말로 얼렁뚱땅 넘어갈 생각하지 마라." 

"하하! 넌 미친 데다가 지능도 한참은 낮다. 내가 너처럼 그렇게 비굴하게 사는 줄 아냐?" 

"너……!" 

"너… 가 뭐 어떻다는 거냐? 헛소리는 그만하고 꼬리를 말아 집으로나 가라.  난 네가 하는 짓이 하도 무지해 보여 

몇 마디 해준 것인데 네놈이 전혀 듣지 않으니 다 소용없지!" 

사공환은 굉장히 분노한 듯 했다. 숨을 거칠 게 몰아쉬며 시퍼렇게 변한 얼굴로 진양에 맞서고 있었다. 진양은 그런 

그의 생각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북아의 말마따나 가문을 일으키겠다는 그들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걸 수

도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진양도 알 수 있었다. 바로 지금의 분위기가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는 것을. 

"뭘 노려보고 있어? 썩 꺼지지 못해?" 

그는 이대로 사공환 일행과 붙으면 이길  자신이 없었다. 사공환쯤이야 사실 별 거  아니지만 방홍미녀가 합세하면 

신선폐를 당한 몸으론 이길 수가 없었다. 형란이 있다해도 별로 도움은 안 될 것이다. 그렇다고 사실을 드러내자니 

사공환이 눈에 불을 켜고 덤벼들 테고, 도망가자니 형란 때문에 힘들 테고. 차라리 이처럼 대담한  작전으로 사공환

을 보내야겠다 생각했다. 

"이놈이 안 가고 노려보기만 하네. 죽고 싶으냐?" 

"너… 이 진가 놈! 두고 보자……!" 

"이 자식이 정말 죽으려고." 

진양은 마치 당장이라도 출수를 할 듯 위협했다. 그러자 사공환은 몸을 움찔 떨며 뒤로 물러선다. 놀란 건 방홍미녀

도 마찬가지라 급히 사이를 막으며 경계의 눈초리를 보냈다. 

"진 대협. 이러지 마세요. 서로 오해가 생긴 것뿐인데  싸워서야 되겠어요? 오늘 진 대협의 말씀은 잘 새겨둘  테니 

그만하세요." 

그나마 북아가 진양과 말을 터서 말릴 수 있었다. 물론 진양이 정말 출수할 생각은 아니다. 아무리 숨겨도 방홍미녀

의 무공은 제법이라 필시 알아볼 게 뻔했다. 

"썩 꺼져!" 

그가 대갈하자 북아만 살짝 고개인사를 했을 뿐 다른 사람들은 눈인사도 안 하고 몸을 돌려버렸다. 그들은 일단 산 

위로 오르진 않고 산 아래로 내려갔다. 

진양은 그들이 시야에서 벗어나자마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아무래도 몸이 성치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몸을 움

직이고 떠들어댔기 때문이다. 진작부터 느끼고 있었는데 억지로 참다가 그들이 사라지자 이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진 대협! 왜 그래요?" 

"아무렇지도 않아. 조금… 숨이 벅차서 그래." 

역시나 형란은 황급히 붙어서 걱정을 했다. 진양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오늘 네 덕분에 목숨을 건져서 고맙기 그지없구나. 아까는 형님이 걱정돼서 화를 낸 거니 잊어버려라." 

"괜찮아요, 저도 다 알고 있어요. 진 대협은 우애심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죠." 

"그래……. 그나저나 그 대협 자는 뺄 수 없니?" 

진양은 언제부터인가 그 대협 자가 굉장히 부담스럽다는 걸 느꼈다. 자신이 정말 대협도 아니고 그저 그녀를 좀 도

왔을 뿐인데, 그녀는 그걸 가지고 진양이 정말 대협인 줄  아는지 언제나 대협 자를 붙이는 것이다. 그녀는 진양의 

말에 활짝 웃었다. 

"대협을 대협이라 해야지요. 진 대협은 잘 모르는 저를 도와주고 또 나서서 형부도 구해주었잖아요." 

"그래도 그 칭호는 부담스럽다. 내가 실상 대협이 아닌 걸 넌 알았을 게 아니냐. 난 대협의 성품이  못 되고 그렇게 

되고 싶지도 않다." 

"옛날에 아버지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악인이 나를 구해주면 그는 은인이요, 선인이  나를 구해줘도 

그는 은인이다.' 좋은 말이죠? 아버지께선 이런 좋은 말을 많이 해줘서 전부 기억하고 있어요." 

"좋은 말이긴 하지… 맞기도 하고. 하지만 내가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하면 하지 않겠지?" 

요즘 들어 형란의 화술이 제법 괜찮아진 편이었다. 아무래도 천하제일의 구두술을 가진 진양과 함께 다녀서인지 부

지중에 제법 말의 조리가 맞아 떨어지고 있었다. 그런 점은 무굉과도 같다. 허나 진양의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그

의 말 한마디에 형란은 할말을 잃고 고개를 떨구었다. 

"설마 내가 그렇게 부르지 말라는데도 대협이라 부르진 않겠지? 어서 대답해봐." 

"진 대협……." 

"또 그렇게 부르네. 나를 대협이라 불러선 안 돼. 첫째로  난 아직 젊어서 대협이란 칭호를 받을 만한 나이가  아니

야. 둘째로 난 대협도 아니고 그렇다고 소협도 아니고 그저 내 맘대로 사는 놈일 뿐이지. 셋째로 정작 내 자신 또한 

대협의 길을 원하지 않아." 

그의 말은 뭔가 강한 설득력이 있으면서도 어지러워서 형란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진양은 그

녀에게 있어서 대협이었기에 정말 그리 부르고 싶었다. 

"하, 하지만……." 

"그리고 무엇보다도 말야. 그렇게 꼬박꼬박 대협을 붙이면… 정나미가 떨어지잖아. 넌 나를 돕고 나도  너를 도왔으

니 우린 매우 친밀한 관계인데, 자꾸 대협, 대협 하면 얼마나 거리감 느껴져? 차라리 나를 대형이라 불러라!" 

형란은 그의 말이 맞기도 하다고 여겼다. 꼭 대협이라 부르지 않아도 그렇게 알고만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물

론 '매우 친밀한 관계인데' 라는 말에서 심한 생각의 변화를 일으켰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녀는 잠시 입만 오물

거리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대… 형……." 

"좋아, 좋아! 그렇게 부르니 얼마나 친해 보여? 이제 나를 그렇게 불러!" 

"네. 진 대협… 아니, 진 대형." 

"하하! 이거 꼭 갓난아기 말 배우는 것 같네." 

진양은 생각하면 할수록 재밌어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웃던  그가 가슴을 움켜쥐며 인상을 찌푸

렸다. 

"대형! 또 아파요?" 

"하… 이 빌어먹을 독이 웃지도 못하게 하는군! 아무래도 좀 쉬어야할 거 같은데." 

"그럼 쉬어요. 여기는 위험하니까 아까 거기로 가서 쉬죠." 

형란은 나름대로 조심했으나 진양의 생각은 달랐다. 

"아니야. 여기서 쉬고 있을 만큼의 여유는 없어. 북망채 놈들이 우리를 쫓아오지 않을 리가 없거든." 

"그건 왜죠?" 

"우리를 놔두면 후환이 되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빨리 몸을 피해야해." 

그러나 지금 그의 몸으론 도망치기는 불가능했다. 당장이라도 기절할 듯  힘들어하는 주제에 도망은 무슨 도망이란 

말인가. 하지만 다행히도 형란이란 존재가 있었다. 

"아무래도… 네가 나를 또 한번 업어야겠다." 

"알았어요. 그럼 그 수밖엔 없겠군요." 

"아니야, 아니야. 또 다른 수가 있소." 

진양과 형란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북망채의 추격 무리인 줄 알아서 그랬던 것이다. 허나 나타난 자는 북망채

가 아니었다. 갸름하고 아주 잘생긴 절정의 미남이 얼굴엔 온통 희색을 담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4명의 

미녀가 역시 서있었는데, 그녀들의 안색은 그 미남과는 정반대였다. 

"사공환!" 

진양이 이를 갈며 되뇐 말이었다. 정말 아차, 하는 경우다. 너무 사공환을  무시했던 게 화근이 되었던 걸지도 모른

다. 사공한이 지금 막 떠나려던 순간 나타났다는 것은  바로 숨어서 지켜보았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진양에 의해 쫓겨난 후 제 분에 못 이겨 숨어서 지켜보다가 많은 사실을  알았을 것이 분명했다. 진양은 이런 사실

을 한순간 알아챌 수 있어서 그의 목적까지도 눈치챌 수 있었다. 

"그 또 다른 수란 바로 죽음이라오." 

"죽음이라니요?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저리 가요." 

형란은 기분 나쁘다는 듯 인상을 썼다. 그러자 사공환이 크게 웃는다. 

"하하! 신선폐에 당한 주제에 무슨 큰소리야? 너 같은 년은 좀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지." 

"시, 신선폐라니요?" 

"흥. 시치미 떨지 마라. 진작부터 너희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이미 너희는 신선폐에 중독됐고 무굉은 북망채에 

남아있으며, 너희는 또 쫓기는 중이고 무굉은 그곳에서 싸우는 중이지! 이제 도망은 가야겠는데 진가의 몸이 성치는 

않고… 참 곤란한 상황 아니었나?" 

형란은 낯빛이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창백해진 채로 멍하니 있었다. 진양은 가만히 정좌하고 입을 열었다. 

"농락할 생각은 집어쳐라." 

"흥! 넌 더 농락을 당해야해. 감히 날 속여? 망할 놈!" 

"그건 네가 멍청해서 당한 거지, 나를 탓할 수는 없지 않나? 나도 안이하게 생각하여 이런 위기를 맞이했지만 너를 

탓하지는 않고 있어." 

"이 개 같은 놈이 끝까지……." 

사공환은 대노하여 검을 뽑아들었다. 한순간에 진양을 내려칠 기세다. 형란은 소스라치게 놀라 앞을 가로막는다. 

"무슨 짓이에요? 그만둬요!" 

"뭘 그만둬? 네 년도 알아서 다독거려줄 테니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 

"뭐, 뭐라고요?" 

그는 음흉하게 웃으며 방홍미녀에게 지시했다. 

"일단 저 년부터 제압해. 진가는 내가 직접 처리해야지." 

그의 말에 방홍미녀는 바로 움직이지 않고 꾸물거렸다. 다시 사공환이 호통친 후에야  겨우 몸을 움직여 형란을 에

워쌌다. 형란은 급한 대로 검을 뽑는다. 

"당신들마저 이럴 수 있어요?" 

"어쩔 수 없어요. 우린 소주님께 충성을 맹세한 몸이에요. 형 아가씨도 이 점은 잘 알잖아요……." 

그녀들은 내키지 않으면서도 할 수 없이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녀들은 4개의 동서남북 방위를 지키며 각자 서

로에 구속되지 않고 공격을 펼쳤다. 별다른  진법은 아니지만 개개별의 검법이 뛰어나 형란은  금방 검을 놓아버릴 

듯한 것이다. 

형란은 그 검법을 알고 있었다. 지난날 형가장이 사공환과 자주 부딪쳐 그녀들의  검법도 자연히 잘 알게된 것이었

다. 그녀들의 검법은 정녀검법(貞女劍法)이라 하였다. 이 검법은 순음(純陰)의 지체로만 시전이 가능한 검법으로 그

런 만큼 무엇보다도 내공의 순음을 중시하였다. 내공이  순음이 되려면 동정을 잃어선 안 된다.  즉, 정녀검법은 그 

위력이 뛰어나지만 평생 혼인을 못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혼인을 하면 이 검법은 완연히  효력을 잃어 그저 3류 검

법에 지나지 않게 되는 별로 좋지 않은 무공이었다. 

그녀들은 이 검법을 사공환의 어머니에게 전수 받았다. 그녀는 사공환이 미남이지만 그릇된 성품을 갖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 시녀들까지 겁탈하지 못하도록 미리 이런 검법을 전수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사공환에게 알

려줘 차마 관계를 맺는 일이 없도록 하였다. 관계를 맺으면 자신의 시녀가 무공을 잃게 되니 그만큼 자신의 목숨도 

위험해질 거라는 걸 알 거라 여긴 것이었다. 그래서 흔히 강호에선 방홍미녀가 사공환과 긴밀한 관계라고 수군대지

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걸 적어도 형란은 알고 있었다. 

어찌되었건 순음검법인 만큼 정녀검법은 매우 유유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예리하기까지  한 뛰어난 검법이었다. 방홍

미녀의 자질이 조금만 뛰어났다면 크게 이름을 떨칠 만한 무공이다. 비록 그녀들의 자질이 그렇지는 못하지만 역시 

형란쯤은 쉽게 제압할 수 있었다. 형란은 몇 수를  쾌묘검법으로 빠르게 막아내어도 결국 오래가지는 못한 것이다. 

다행히 방홍미녀의 심성은 악랄하지가 않아 그녀를 제압만 했을 뿐 몸에 상처를 내지는 않았다. 

한편 진양은 그녀가 당하는 광경을 보고 분노하여 진작에 몸을 날리려 했다. 헌데 그때 사공환이 막아섰다. 또 막기

만 한 것이 아니라 바로 공격까지 퍼부었다. 아예 이 자리에서 그를 죽이려는 듯 했다. 그의 검법은 지난날 양만풍

에게 들은 대로 마보진검이란 검법이다. 이런 이름이 붙은 데는 그 검법의 자세에서 유래되었다. 마보란 흔히 사람

이 말을 탈 때의 자세로 기마 자세를  말한다. 약간 주저앉은 자세로 다리와 허리가 튼튼하면  매우 굳건해 보이는 

자세였다. 기초 무공 중에 마보참장공이라고 하는 것도 있지 않는가. 

하지만 이런 사실을 전부 아는 진양이라도 사공환을 이길 수는 없었다. 실제로 사공환의 마보진검은 형편없었다. 그

가 왜 방홍미녀의 호위를 받으며 사는지 실로 알게 해줄 정도로 아주 개판이다. 허나 진양은 산공독을 당하여 마보

진검과 같은 웅장한 무공을 상대로 싸울 수가 없었다. 상대가 동작의 빠름으로 승부를 내려한다면 좀  낫지만, 이처

럼 힘과 내공의 웅후함으로 승부하려는 무공은 상대하기 까다로울 수밖에 없었다. 

"하하. 정말로 신선폐에 당했군. 이처럼 봉에 힘이 없으니……." 

"이 개똥에 말아먹을 놈아! 당장 비키지 못해?" 

"비키지 못하겠다!" 

순간 사공환은 검을 들어 세웠다가 빠르게 내려찍었다. 이 동작은 굉장히 빠르고  자세도 굳건해 보여 맞서기 여의

치 않을 듯 했다. 진양은 무엇보다도 형란의 안위가 걱정이 되었기 때문에 계속  그랬던 대로 발을 놀려 피할 수밖

에 없었다. 허나 안으로 돌파할 수는 없었다. 일단 마보진검은 웬만해선 이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옆으로 빙 돌

아서 가면 좋으련만 길도 없었다. 

"비켜!" 

"저 형 씨 계집이 그리도 소중한가? 그렇다면 내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진양은 일순 끔찍한 상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곧 광기를 부리듯 괴성을 지르며 그에게 달려든다. 소원범활로 

몸을 돌리며 공격하다가도 갑자기 자도종모를 펼쳐 불규칙한 공격을 퍼부었다.  실상 이만한 공격이면 사공환은 죽

어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역시 산공독의 저주는 보통이 아니라 진양의 봉에서  힘을 모두 앗아갔다. 검과 부딪치면 

당장이라도 반으로 잘릴 듯하고 몸을 때려도 전혀 효과를 내지 못한 채  퉁겨질 뿐이니, 아무리 유루봉법의 절묘한 

전(轉) 요결로 연타를 때린다 할지언정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받아보시지!" 

사공환은 진양을 이긴다는 게 기쁜 듯 오만한 말을 하며 검을 내질렀다. 세 방향으로 검이 찔러 들어오더니 갑작스

레 변초하여 가슴을 뚫으려 했다. 진양은 하는 수 없이 봉을 들어 막으며 몸을 뒤로 내뺄 수밖에 없었다. 

"이 빌어먹을 놈! 비키란 말이야." 

"내가 왜 비켜? 네가 분노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꼴을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내가 왜 너 좋아하라고  길을 비키겠냐? 

어디 능력이 있으면 직접 뚫어봐라." 

진양은 치를 떨며 다시 봉을 내들었다. 이제 별다른 수가 없다. 사생결단을 내는  수밖에. 만일 그를 당해내지 못하

고 위기에 처하게 되면, 그땐 필사의 신념으로 함께 죽겠다는 각오까지 하고 있었다. 자신을 위해  여지까지 따라와 

도움을 준 형란이 사공환에 의해 몸이 더렵혀질지도 모르거늘 어떻게 모른 척 할 수 있을까. 

"이놈… 사생결단을 내자."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가슴이 뜨끔거리며 다시금 고통이 찾아들었다. 역시나 독에 당한 상황에서 무리를 하니 독기

가 발작하여 심맥을 위협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공력을 끌어올려 막을 수도 없고 억지로 싸우고 싶지만 그것 역

시 해보지도 못할 듯 했다. 벌써 다리에 힘이 쭉 빠져 거의 봉에 몸을 지탱하는 중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사공환은 

대소했다. 

"하하! 사생결단을 내자하더니 왜 그 모양이니? 어서 와서 사생결단을 내봐라." 

"너……." 

"사생결단 낼 생각이 없으면 관두자. 나는 저 년하고 좀 놀아야지!" 

"개자식아! 거기 안 서?" 

진양은 호통치다가 다시 가슴을 움켜쥐며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바닥에 엎어져 전혀  힘을 못 쓰고 몸만 움찔거리

고 있었다. 아까 전부터 무리했던 게 억지로 참아서 모여져 있다가 이제야 폭발한 셈이었다. 형란은 그런 진양의 모

습을 보며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진 대형… 전 괜찮아요. 대형만 무사하면 되니 그러지 마세요……!" 

"아… 안 돼……." 

한번 더 억지로 힘을 내어 소리를 내보지만 너무나도 음량이 작았다. 그러는  사이 사공환은 형란에게로 점차 가까

이 다가갔다. 곧 음흉하게 웃더니 방홍미녀를 돌아보며 지시를 내린다. 

"난 이 년과 할 얘기가 있으니 너희는 비켜서거라." 

방홍미녀가 사공환을 주인으로 모시긴 해도 무작정 따르는 바보들은 아니었다.  지금 그녀들은 사공환이 무슨 생각

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참 뻔할 정도로 형란을 겁탈하겠다는 의도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사공환이 또 호통을 

치자 그녀들은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저리 가서 진가나 잘 지키고 있어!" 

"소주님……." 

북아는 이 일만은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뻔한 대낮에 강간이 뭔가. 그것도 사공가문을 일으키

겠다는 사람이 해도 너무한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도 없다. 일단 말려보겠다고 슬쩍 말

을 걸어봤는데 사공환은 대답이 없고 아예 무시를 하고 있었다. 그는 곧 형란에게 손을 뻗어 그녀를 안아들었다. 

"이, 이거 놔요!" 

"놓긴 뭘 놔? 내 신분으로 너 같은 년을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황송하게 여겨야지." 

"놓으란 말이에요!" 

그는 더 대답하지 않고 발을 옮겼다. 형란은 계속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안 놓으면 혀를 깨물고 죽겠어요!" 

"흥! 어디 할 수 있으면 해봐라." 

순간 그가 손가락을 들어 그녀의 아문혈을 찍어버렸다. 일단 이 혈이 찍히자 형란은  소리도 지를 수 없고 혀를 깨

물어 자결할 수도 없었다. 참으로 비참한 신세가 되고만 것이다. 그녀는 눈만 부릅뜨고 그를 노려보더니 나중엔 눈

물까지 주르륵 흘리고야 말았다. 진양은 울화통이 치밀었다. 

"사… 사공환……!" 

"진가야. 넌 거기서 한숨 푹 자두거라. 내가 돌아와서 죽여줄 테니까! 하하." 

"너… 당장 손을 놓지 못해?" 

"흥. 그놈 참 시끄럽군! 저놈의 아혈을 찍어버려." 

사공환은 턱으로 진양을 가리키며 지시를 내렸다. 그에 방홍미녀는 이번에도 주춤하였다. 역시 사공환이 한번 더 호

통친 후에야 동아가 겨우 손을 놀린다. 진양은 이제 아혈까지 짚여 뭐라고 소리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방홍미녀

를 노려보며 또 숲 속으로 사라져 가는 사공환을 노려보며 분노에 이를 갈았다. 가슴을 부수는 비분이 치밀어 정말 

살기가 싫어질 정도였다. 

(나는 왜 이리 비참한가? 형란은 나를 많이 위해준 여잔데 저런 꼴이 되도록 난 지켜볼 수밖에 없단  말인가? 만일 

이번에 그녀를 구해주지 못하여 그녀가 정조를 잃으면 난  어찌해야 할까? 형님과 함께 빠져나오지도 못하고 이런 

신세로 도움만 받았는데… 차라리 죽자! 그녀도 정조를 잃으면 살  생각이 없을 거고, 나 역시 이런 모욕을 받으며 

나를 위한 사람도 구하지 못하니 죽어 마땅해. 그래, 죽자! 죽어!) 

그쯤 사공환은 나무들 틈새로 사라져버렸다. 이젠 진양이 있는  곳에선 보이지도 않는다. 진양은 아혈을 짚여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찍힌 곳은 견정인데 이곳은 온몸에 힘을 빠지게 하여 그 강도가 심하면 힘이 없어 말도 못하게 하

는 요혈이었다. 그러니 죽을 수조차 없다. 바닥에 엎어진 채로 봉을 들어 제 머리를 찍으려 했지만 힘이 없어 봉을 

들 수가 없었다. 

"언니! 이건 아무래도 말려야겠어요." 

"북아. 나도… 이게 매우 나쁜 일이란 걸 알긴 하지만 소주님의 선택이니 우리는 지켜봐야만 해." 

"안돼요! 진 대협은 저번에 도움도 주었지만 우리는 그걸 결국 원수로 갚은  셈이었어요. 아직 빚이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도 만일 그를 죽게 하고 형 아가씨의 정조를 잃게 한다면……." 

북아는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듯 몸을 떨었다. 허나 그녀의 생각만 그러할 뿐 남은 세 명은 다른  듯 했다. 

전부 그녀를 외면하고 안타까운 표정만 지었다. 북아는 정말 어쩔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언니들! 그럼 이대로 그들의 인생이 종치는 걸 보고 있으란 얘기예요?" 

"우리도 어쩔 수 없어… 소주님께서 정한 거니까……." 

북아는 진양을 내려다보았다. 완전 기진맥진한 사람처럼 도무지 일어날  줄을 몰라했다. 그녀는 등을 돌린 세 명의 

언니들에게 한번 더 소리를 쳤다. 그러나 그녀들은 여전히 고개만 가로 저을 뿐이었다. 북아는 급기야 중대한 결심

을 하기에 이르렀다.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겠지요. 언니들에게 미안하고 소주님께도 죄송스러워요. 저를 용서하세요." 

순간 그녀의 좌우 쌍수가 재빠르게 세 언니의 등뒤로 날아들었다. 북아의 무공은  방홍미녀 중에서 가장 낮은 수준

이다. 그러나 동아, 서아, 남아는 이런 일은 꿈에도 상상치 못한 경우라 대비도 안 하여 막을 수가 없었다. 마침  등

을 돌린 상태여서 미처 몸을 돌리기도 전에 모두가 등뒤 지양혈을 점혈 당하고 말았다. 서아가 소리친다. 

"너… 미쳤니?" 

"정말 미안해요.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이건 정말 인륜에 어긋나는 경우예요. 형 아가씨도 그렇고 진 대협도 그렇

고, 오늘 우리가 보은하지 않으면 결국 자결하고 말 거예요." 

"하지만 우린 소주님의 시녀들이야!" 

"안돼요. 저는 소주님이 잘못하시는 걸 막아야겠어요. 예전에 마님께서도, '환아의 말은 전적으로 따르되, 행여 인륜

에 어긋나는 사악한 일을 벌이려하면 즉각 막아서 가문의 명성에 흠집을 내는 일이 없도록  하라' 라고 말씀하셨어

요!" 

그렇게 말했는데도 그녀들은 안 된다고만 할 뿐이었다. 역시 그녀들에게 있어서 소주 사공환의 존재는 대단할 수밖

에 없었나보다. 허나 북아는 달랐다. 그녀 역시 사공환을 소주로 모시고 또  사랑하지만, 그런 만큼 잘못된 길로 빠

지는 건 절대로 보기 싫었다. 만일 여기서 일을 벌인다면 훗날 사공가문을 세우는데 큰 지장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

이다. 행여나 진양이나 형란이 살아서 그때 사공환의 행적을 말한다면 가문이 폭삭 망하는 건 일도 아니지 않는가. 

북아는 일단 진양의 몸부터 회복시켜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즉시 그를 일으키고 앉아 세운  후 자신은 그 뒤로 돌

아가 장심을 갖다댔다. 이미 사정은 엿들어서 알고 있었다.  신선폐의 독기를 몰아내려면 남이 도움을 주어야만 한

다. 그녀는 즉시 공력을 일으켜 단전의 독기를 몰아내기 시작했다. 진양도 정신을 차려서 그녀의 기 운행이 편하도

록 합심하고 있다. 

타인의 몸에 있는 독을 몰아낼 때는 굉장한 내공이 있어야만 한다. 허나 단전에서 몰아내어 한쪽 구석으로 모는 일 

정도는 북아도 할 수 있었다. 그녀의 내공이 웅후하진 않지만 그래도 정순하기는 하기 때문이었다. 정녀검법을 배웠

기 때문에 순음의 내공을 연마하고 또 정조를 지킨 이유에서였다.  이 일을 하는데 무려 반 각이나 걸렸다. 북아는 

사력을 다해 단전에 쌓였던 독기를 진양의  왼팔로 옮기는데 성공하였다. 이 독은 결국  공력만 무산시키는 것이라 

이젠 왼팔에 공력을 운행하지 못할 뿐, 다른 일을 하는데는 모두 괜찮아졌다. 그녀는 이 일이 끝나자 바로 혈도까지 

풀어주고는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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