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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 十 三 章. 북망산 하산 길 2 (68/90)

                                  第 三 十 三 章. 북망산 하산 길 2

한편 숲 속에서 사공환은 다행히도 바로 일을 안 벌이고 형란을 농락하고 있었다. 말로써 그녀를 달래기도 하고 더

러운 말로 유혹하기도 하였다. 그에 형란은 눈을 감고 처절히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제발 울지 좀 말아라. 뭐 운다고 일을 못 벌이는 건 아니지만! 이제 슬슬 극락으로 인도를 해야겠지? 넌 지금은 울

며 죽겠다 살겠다 하지만 나중엔 내 품에 절로 안겨들 거야. 하하." 

그는 실컷 웃은 후에야 그녀의 옷깃에 손을 내뻗었다. 여유로 가득 찬 행위다. 하기야 설마 북아가 진양의 산공독을 

몰아줬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테니까. 그는 앞으로 다가올 일은 짐작도 못하고 정욕이 발동하여 그녀의 옷을 벗

기려 했다. 

"이 개자식. 내가 너를 극락으로 보내주마." 

진양은 도착하여 안도의 한숨을 내쉼과 동시에 막 일을 벌이려는 사공환을 보며  대노하였다. 즉시 몸을 퉁겨 사공

환의 등뒤로 와서는 그의 허리를 걷어 차버렸다. 어찌나 세게 찼는지 사공환은 늑골이 다 작살나는 듯한 고통을 느

꼈다. 진양은 숲 밖으로 날아간 사공환엔 신경도 안 쓰고 곧바로 형란의 혈도부터 풀어주었다. 

"이제 괜찮아. 울지 않아도 돼." 

"진 대형……." 

그녀는 진양의 품에 안겨 울음을 그칠 줄 몰랐다. 이런 일이 찾아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테니 그녀가 받은 충격

도 심할 것이었다. 진양은 이런 점을 잘 알고 그녀를 다독거려주었다. 

"이제 사공환 그 개놈에게 보복을 해야겠지! 내 독은 다 몰아내서 널 지켜줄 수 있으니 걱정 안 해도 된다." 

"대형……." 

"그래. 자자! 그만 울고." 

그는 충격에 비틀거리는 그녀를 일으켜 세운 뒤 부축하여 끌고 나왔다. 밖에 나오니 북아가 놀라 사공환에게 막 달

려가고 있는 중이었다. 옆으로 동, 서, 남아도 같이 오는 걸 보니 진양이 사라진 후 곧장 혈도를 풀어준 모양이었다. 

진양은 그녀들이 막으면 차마 사공환을 때릴 수 없을 거라 여겨 재빠르게 몸을 날렸다. 아무래도 거리는 진양 쪽이 

더 가까웠기에 먼저 그의 정면으로 도달할 수 있었다. 

"사공환. 설마 이렇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겠지." 

"어… 어떻게……." 

"그건 네놈이 알 바가 아니야. 네가 알 것은 오늘 벌인 일에 대한 대가로 죽어줘야 한다는 거지." 

사공환의 낯빛이 새파래진다. 달려오던 북아는 이 광경을 목격하고 급히 부르짖었다. 

"진 대협! 손을 쓰지 말아요." 

"가까이 오지 마라. 가까이 오면 당장에 이놈을 죽여버리겠다." 

진양이 한번 호통치니 방홍미녀는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척 멈춰 섰다. 

"사공환. 그래, 어떻게 죽고 싶으냐? 사지가 잘리는 방법도 있고 목만  잘리는 방법도 있지. 또는 물에 빠져 죽는다

던가 내 봉에 죽을 때까지 얻어맞는다던가……." 

"나, 나는 아직 그녀를 건드리지 않았소!" 

"흥. 건드렸다면 태어난 걸 후회하게 해주었을 텐데 다행히도 건드리지 않아서 이 정도로 끝을 보는 거다. 자! 어떻

게 죽고 싶은지 그거나 말해." 

북아는 안절부절못하고 발을 동동 굴렀다. 

"진 대협! 제발 그러지 마요. 제가 도와줬으니 이제 우리의 은원은 끝난 거잖아요!" 

"끝나긴 무엇이 끝나? 이 개 같은 놈이 란아가 충격을 먹도록 조장했으니  다시 빚이 생긴 거야. 더구나 아까 나를 

모욕하였던 것까지 생각하면 가만둘 수는 없지!" 

"보아하니 형 아가씨는 무사한 거 같은데 제발 고정하세요!" 

"시끄러워! 이 개놈을 죽여야 내 속이 후련하겠다." 

사공환은 그제야 전말을 알 수 있었다. 허나 의구심도 들었다. 진양이 아직 신선폐에 중독된 상태인가 하는 점이다. 

안색을 보니 그다지 나아진 것이 없어 보여 더욱 그런 의심이 들었다. 아까  그랬듯 당했으면서도 안 당한 척 허장

성세를 부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도, 독은 어찌되었소?" 

"그야 당연히 몰아냈지! 이제 네놈 따위는 내 발끝에도 못 미쳐. 그냥 조용히 죽음을 맞는 게 좋을 것이다." 

사공환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슬쩍 북아를 돌아보니 그녀는 온갖 걱정으로 가득 찬  눈빛이요, 표정이

었다. 사공환은 그걸 그저 자신을 걱정하는 걸로만 여겼다. 그건 사실 진양의 단전에 독이 사라졌다는 걸 의미하는

데 사공환은 착각을 일으킨 셈이다. 더욱이 진양의  안색은 별로 나아진 점이 없어 보여 그런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번에도 진양이 또 허장성세를 부린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또 속을 줄 알고? 어디 내 마보진검을 받아봐라!" 

"소주님! 안돼요!" 

사공환은 더 듣지 않았다. 어쩌면 아까 진양을 한번 누른 것이 그에게 자신감을 심어줬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지피

지기 백전백승이라 하였다. 그는 진양의 독이 다 풀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아까 자신이 이겼던 것만 생각했다. 

진양의 안색에 아직 독 기운이 서린 건 독이 배출된 게 아니라 팔로 옮겨져서 그런 것인데, 사공환은 이것을 또 허

장성세를 부림으로 착각하였다. 이만하면 스스로 화를 자초한 것과 같다. 

"옳지! 바로 그거다. 그렇게 덤벼야 내 아까 당한 한을 풀 수가 있어." 

진양은 웃으며 봉을 휘돌렸다. 유루봉법의 진수가 나오는 것이다. 사공환은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기마 자세를 취했

다. 한쪽은 음유하면서도 활동적이고 한쪽은 양강하면서도 정적이니  조금 괴상한 무공들이긴 했다. 진양은 단숨에 

봉 끝을 그의 머리로 내질렀다. 사공환이 쳐내는 순간 유루봉법의 전 요결이 나오기 시작했다. 검에 봉이 퉁겨지자 

봉은 갑자기 회전하며 이쪽저쪽 신출귀몰하게 그의  대혈을 노렸다. 사공환은 이런 건 아까  봐둬서 알고 있었지만 

크게 놀라고 있었다. 그 위력이 아까 붙었을 때하고는 천지차이가 아닌가. 아까는 대혈을 맞아도 그 힘이 별거 아니

라 효과가 없었는데 지금은 그게 아니었다. 날아올 때는 꼭 힘이 빠진 채로 그냥 휘돌려지는 것 같으면서도, 대혈에 

맞을 때는 그 위력이 대단했다. 신선폐가 단전에서 빠져나갔다는 걸 그때가 돼서야 사공환도 알 수 있었다. 

"이… 이럴 수가……!" 

"망할 놈아. 어디 이걸 받아봐라." 

갑자기 사공환의 턱 밑으로 봉이 치고 올라왔다. 이것을 맞으면 턱이 다칠 수  있고 다시 봉이 반대로 회전하여 백

회혈을 노릴 것이 분명했다. 사공환은 그  사실을 순간 눈치채고 기겁을 하였다.  급하게 삼검한문(三劍閑門)이라는 

초식을 펼친다. 삼검한문은 마치 3개의 검이 상대의 공방 행로를 막는다는 데 기인하여 이런 이름이 붙여진 것이었

다. 검이 굉장히 빠르고도 굳게 움직여 상대의 모든 공격을 막아내는 초식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다른 무

공을 상대로 할 땐 몰라도 유루봉법을 상대할 땐 도리어 패배를 부르게  되어있었다. 사공환은 급한 대로 시전하였

기 때문에 그건 미처 생각도 못한 상황이었다. 이런 점이 유루봉법의 최고 비결이라 할만한 것이 아닐까. 

과연 초식명만큼 뛰어나긴 해서 진양이 치고 올린 공격은 쉽게 무산되고 말았다. 그러나 다시 유루봉법의 특유수법

을 살려 회전방향이 뒤바뀌며 사공환의 안면으로 재차 공격이 들어왔다. 다시금 또  쳐내자 허벅지를 노렸고 또 쳐

내자 전중혈도 노렸다. 삼검한문을 펼친 덕분에 결국 막기에도 급급한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진양은 조금도 공격

을 늦추지 않고 소원범활 같은 현란한 초식을 선보였다. 

"진 대협! 일단 제 말을 들어보세요. 잠깐만 멈춰봐요!" 

한쪽에선 북아가 열심히 고함을 치고 있었다. 하지만 진양이 들을 리 없다. 사공환만 그 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성급

함을 탓할 뿐이었다. 사공환은 쳐내면 오고 쳐내면 오는 이 괴상망측한 공격에  싸울 마음을 잃고 물러서기 시작했

다. 허나 진양은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아예 이번에 사공환을 죽이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진양은 최후의 

일 초를 생각해내고 먼저 오른손을 봉에서 떼었다.  왼손은 공력을 운용할 수 없긴 하지만 지금  상태론 그냥 봉의 

중심만 쥐고 있어도 충분한 상황이었다. 사공환이 열심히 쳐내는 무렵, 진양은 오른손에 천천히 공력을 집중시켰다. 

아까 내공만 일으키면 다 산산이 흩어지는 일은 역시나 찾아볼 수 없었다. 

사공환은 그가 한 손만으로 잡고 공격을 퍼붓자 점차 화가 치밀었다. 지금  이처럼 상황이 반전된 것도 분통터지는

데 여유 부리는 꼴을 보자니 아니꼬워 미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차라리 역공을 취해서 끝장을 보자는 생각

으로 변하였다. 

"이놈!" 

그는 일갈하며 갑작스레 역습을 가했다. 봉이 막  사공환의 팔뚝에 맞고 퉁겨질 때 틈을 놓치지  않고 맹렬히 검을 

내지른 것이었다. 진양이 양손으로 펼칠 때는 동작이 훨씬 빨라서 틈을 잡을 수가 없었으나, 지금  상황에선 충분히 

역습을 펼칠 수 있었다. 검은 매섭게 진양의 목젖으로 돌진했다. 걱정하던 방홍미녀의 얼굴엔 깜짝 놀란 색이 엿보

였고 형란은 입을 벌려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그들 누구도 이것이 마지막 일 수를 위해 고의로 보인 허점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바로 진양은 이런 경우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순간 진양의 펴져 있던 오른손이 콱 움츠러들며 주먹으로 변화했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사공환의 단전을 향

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목젖을 노리고 날아들던 검을 이미  피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자세는 흡사 유리장강과도 

비슷했다. 저 자세라면 상당한 힘이 나올법하여 그런 생각을 가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속도는 유리장쾌에 못지 않

고 그 흔들림 없는 정묘함은 또 유리장묘의  수인 듯 싶기도 했다. 이것은 바로 함종권법의  최후 절초인 유리장사

(柔裏藏死)였던 것이다. 

사공환은 이 일 권을 막아낼 수도 피할 수도 없었다. 유리장강처럼 일 권으로  끝을 보려는 듯한 이 공격은 동작도 

쾌속하고 이미 단전 코앞으로 도달했기 때문이었다. 일단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날리려 했지만 그때쯤엔 벌써 단전

을 격타 당한 후였다. 단전은 무림인에게 있어선 그 어떤 급소보다도 중요한 것이었다. 이곳이 작살났다면 그건 폐

인이 됐음을 의미한다. 이제 사공환도 그런 꼴이 된 셈이다. 유리장사는 그 위력이 엄청나서 한 대 맞자 몇 장이나 

퉁겨지고 말았다. 별의별 부서지는 소리는 다 내더니 겨우 그의 몸이 멈춰지며 땅바닥에 힘없이 늘어졌다. 꼭 죽은 

것 같았다. 방홍미녀는 동시에 비명을 지르며 그에게로 달려갔다. 

"소주님! 소주님!" 

사공환은 대답이 없었다. 일단 엎어진 그를 돌려놓고 보니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한 듯 했다. 숨소리가 매우 가냘프

고 적었으며 입에선 연신 핏덩이가 튀어나오고 있었다. 방홍미녀는 모두 눈물을 흘리며 그의 몸 상태를 걱정했다. 

"소주님! 일어나 보세요. 소주님!" 

그녀들의 걱정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듯 그는  입만 오물거리며 또 한번 피를 쏟아냈다.  그리고는 고개를 까딱까딱 

흔들며 당장이라도 죽을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의 비참한 모습에 북아는 절규했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 자신 때

문이라 생각했다. 

"소주님… 이게 다 저 때문이에요. 저는 소주님이 악한 길로 빠지지 않도록  도우려 했을 뿐인데 이런 결과를 낳다

니 정말 저는 할말이 없어요……." 

"네가 무슨 잘못이 있어? 다 제 놈이 스스로 자초한 거지!" 

진양이 뒤에서 차가운 음성으로 말하였다. 북아는 더 눈물을 흘렸지만 남은 세 명은 모두 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진양은 본래 그녀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공환 같은 자를 위해 슬퍼하고 또  따른다는 것이 정말 생각할 수 없

는 해괴한 일이라고 여겼다. 아무리 그녀들의 소주라지만 이미 가문도 망했는데도 저리 따른다는 건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지금에서야 바뀌었다. 그녀들의 눈빛이나 표정은 단지 주인이 부상을 입었다고  분노하

는 얼굴들이 아니었다. 그와 함께 있는 슬픔의 기운은 사랑으로 인한 것이었다. 진양은 왕령과 오래 살아서 여인의 

눈빛에 대해선 제법 알고 있었다. 눈빛이란 게 실상은 보고 분석하는 것이 아니고, 척 보면 느낌으로 와  닿는 것이

다. 막 살인을 하려는 자의 눈빛을 보면 그걸 알 수  있다. 그냥 느낌으로 이 자는 슬프며, 저 자는 분노하며, 하는 

것들을 쉽게 알 수 있다. 진양은 이런 쪽에선 제법 눈이 있었다. 

그녀들의 눈빛은 비분으로 가득 찬 눈이었다. 그 중에서도 슬픔의 기운은 유난히도 잘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리며 덤벼들 듯한 분노와 슬픔. 꼭 왕령을 생각나게 만들었다. 진양은 그런 그녀들을 보며 갑자기 살심이 줄어드

는 걸 느꼈다. 지금 사공환을 저 꼴로 만들고 이젠  죽여야겠다 하고 있었는데, 그녀들의 눈빛을 보니 그런 마음이 

싹 가시는 것이었다. 허나 그런 진양의 마음을 알지 못한 북아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진 대협! 소주님께 이제 손을 쓰지 마세요. 이렇게 됐으니 이제 모든 은원은  잊도록 해요. 꼭 죽여야 직성이 풀리

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진양은 더욱 생각을 굳혔다. 사공환은 죽이지 않고 이  정도에서 끝내야겠다며 슬쩍 미소를 머

금었다. 하지만 왠지 놀려주고 싶은 생각은 들어 짐짓 분노한 척 작태를 선보였다. 

"아니지! 난 그를 꼭 죽여야겠어. 너희들이 막는다면 너희들까지도 모두 죽여버리겠다." 

"어… 어떻게 그럴 수가……!" 

"뭐가 그럴 수가야? 사공환이 나와 란이에게 했던 걸 생각한다면 약과지! 자, 각오나 하라고." 

진양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그들에게도 다가갔다. 방홍미녀는 다시 검을 내밀며 사공환을 막아섰다. 북아만  그들 

틈에 끼지 않고 진양의 앞으로 달려나왔다. 

"정말 용서해주지 않을 건가요?" 

"그럼! 물론 용서해줄 수 없지. 사공환이 저승으로 가는 꼴을 봐야겠다." 

"그럼… 좋아요. 마음대로 하세요. 하지만 소주님 대신 죽는 저를 본다면……!" 

순간 그녀가 들고있던 검을 자신의 배에 꽂았다.  푹, 하는 음향과 함께 피가 쏟아져  진양에게까지 튀었다. 진양은 

물론이고 방홍미녀나 형란까지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이라 아! 하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북아!" 

방홍미녀는 부르짖으며 그녀에게로 달려왔다. 진양은 정말 예기치 못한 상황이었다. 그냥 그녀들이 덤벼들면 가볍게 

제압해서 자신의 무위를 과시하고, 사공환을 죽이려 하다가 마음써서 봐주는 식으로 끝을  맺으려 한 게 바로 진양

의 생각이었다. 허나 갑자기 그녀가 막아서더니 그를 죽이지 말라며 자결을 하는 게 아닌가. 어이가 없기도 하고 후

회스럽기도 하여 그녀에게 다가갔다. 남은 방홍미녀 셋은 그가 다가오자 검을 휘두르며 악을 써댔다. 

"가까이 오지 마라, 이 악한! 나쁜 놈!" 

진양은 도무지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그녀들을 제압하는 건 쉽지만 지금은 그럴 마음이 나질 않았다. 

"정말 미안하게 됐다……. 난 그저 장난삼아 한 말이었는데 설마 자결까지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닥쳐! 가까이 오면 우리 모두 자결하여 너에게 농락을 당하지 않겠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이 더러운 자식!" 

진양은 이쯤 되니 변명할 마음까지도 사라지고 말았다. 본래 그의 성격이 그러해서 그냥 입을 다물기만 했다. 방홍

미녀는 북아와 사공환을 붙들고 대성통곡했다. 북아는  바로 즉사하지 않아서 뭐라고 입을 열려  하고 있는데 힘이 

나지 않는 듯 했다. 동, 서, 남아 셋이서 내공을 불어넣어 주자 조금 힘이 생긴 듯 그제야 목소리가 들렸다. 

"소주님께… 정말 죄송하… 언니들한테도……. 진 대협은 이제… 공격하지 않을 테니… 그만……." 

"북아! 알았어, 다 알았으니까 그만 말해. 일단 내공을 넣어서 숨을 붙이고 빨리 의원에게로 가자. 그러면 살  수 있

어!" 

북아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단전을 찔렀기 때문…… 언니들… 소주님… 모두 무사히……." 

"북아!" 

"진 대협… 부디 인정을……." 

그녀는 막 진양을 바라보며 인정을… 까지 말하다가 결국 잇지 못하고 고개를 꺾고 말았다. 이렇게 되니 정말 그녀

들에게 미안하여 차마 이곳에 있을 자신이 없었다. 자신이 고의로 그런 건 아니지만  결국 남은 세 명은 오해를 할 

것이고 그럼 또 싸움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 분명했다. 

"나는 이만 가겠다. 난 고의가 아니었지만 믿기 싫으면 그만두자." 

"가긴 어딜 가? 오늘 끝장을 보자!" 

"흥! 너희 따위는 날 이길 수 없어. 그냥 나중에 복수를 하던가 해라." 

진양은 코웃음치며 아예 등을 돌려버렸다. 이런 모습은 당연 방홍미녀의 분노를 살만한 것이었다. 그녀들은 몸을 부

르르 떨며 기절한 사공환과 죽은 북아의 시신만  잡고 있었다. 진양은 오래 있으면 좋지 않다  여기고 형란과 함께 

그 자리를 떠났다. 나중에 해야할 얘기지만, 방홍미녀 동, 서, 남아는 이 날 이후로 소식이 끊겼다고 한다. 

본디 북망산은 모두 세 개의 하산하는 길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대로로서 남쪽 낙양으로 곧장 나가는  길이요, 둘

째는 서쪽 섬서 지방으로 가는 길이며, 셋째는 동쪽 황하를 따라 개봉으로 가는 길이었다. 북쪽은  황하가 가로막고 

절벽이라 길이 없었다. 이 길들 중에 진양과 형란은 서쪽 길을 택한 상황이었다. 이쪽 길은 험난한 편이었지만 그래

도 어쩔 수가 없었다. 복면인이 가르쳐줬던 샛길을 지나 그 후에 사공환을 만났으며 이제야 서쪽 길에 진입한 셈이

다. 여기서 사공환 때문에 시간은 너무 지체되었다. 원래  지금쯤이면 하산하고도 남았을 텐데 사공환을 만나 일을 

겪느라 시간을 많이 빼앗긴 것이었다. 진양은 이 사실을 알아 서둘러 떠나려고 했다. 이제 산공독이 왼팔로 옮겨져 

싸울 수는 있으나 추격 무리가 한둘은 아니지 않겠는가. 

헌데 이것을 운명이라 해야할까. 아니면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  해야할까. 한참 내달리던 진양은 뭔가 심상치 않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사삭사삭, 사삭사삭. 얼마 안 되는 풀잎이 밟히는 소리. 북망산은 초목이 적은데 그나마  동

북쪽과 서쪽 지대는 있는 편이다. 진양과 형란이 도망가는 길은 서쪽으로 섬서를  통하는 길이라 주변에 약간의 초

지가 있긴 있었다. 사삭사삭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숨소리도 들렸다. 어림잡아 십여 개 정도 같았다. 진

양의 내공이 웅후하진 않지만 공력을 끌어올리면 그 정돈 알 수 있었다.  아니, 그만큼 거리가 가까웠다. 그는 직감

적으로 이 소리를 내는 자들이 북망채 추격 무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무리 우리가 지체했다지만 그들이 우리를 잡기엔 아직 이르다. 우린  서남으로 빠져나와서 서남 두 갈래의 길이 

있는데 우연히 찍어서 맞춘 건가? 아니야. 융가는  내가 약아서 서남쪽으로 나온 뒤 동쪽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텐데……. 세 방향으로 모두 추격 무리를 보낸 걸까?) 

진양은 도망치면서도 매우 희귀하게 여겼다. 행여 자신들이 흔적을 남겼나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런 적은 없었다. 가

능한 흔적을 지우고 도망쳤는데 흔적을 쫓아온 것일 리는 없었다. 잠시 생각하던 그는 순간 손뼉을 치고야 말았다. 

"아차! 그녀들이구나." 

필시 방홍미녀들의 입에서 나온 얘기일 것이리라. 남은 그녀들 세 명이 떠나는 걸  보지 않고 그냥 떠난 만큼 그녀

들이 북망채 무리를 만나 이야기를 전해줬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오해였다지만 어쨌든 그녀들은 진양을 철천지원

수로 생각하니 아무래도 그럴 가망이 높았다. 

"뭐가 그녀들이에요?" 

옆에서 같이 달리는 형란은 아무것도 모른 체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묻고  있었다. 본래 약한 여잔데 신선폐에까지 

당했으니 추격하는 자들이 있다는 건 알지도  못할 것이다. 진양은 그녀에게 말해줄까 하다가  그럴 여유가 없다고 

판단하여 그냥 웃기만 하고 내달렸다. 형란은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추격 무리는 바로 손을 쓰지 않고 진양의 하산을 막으려는 듯 했다. 형란의 동작은 굉장히 둔하다. 진양이 손을 잡

아 이끌어주긴 해도 함부로 빨리 달릴 수가 없을 정도였다. 때문에 도망치는  속력이 느려서 추격하는 무리가 마음

만 먹었으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었다. 헌데도 그들은 도무지 나서질 않았다. 다만 빠른 길목으로 지나가려 하면 

일부로 기척을 내는 식으로 행로를 막기만 했다. 당장 공격은 안 하고 꼭 시간을 끄는 것 같았다. 영악한 진양이 그

들의 속셈쯤 모를 리 없다. 그들의 숨소리로 보아 그 수가 10여 명 정도인 듯 한데, 방홍미녀에게서 여러 사실을 전

해듣고 산공독의 효용이 없어졌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이런 때에 함부로 덤벼들자니 못 이길 것 같고, 그렇다고 그

냥 내버려둘 수도 없어서 빨리 북망산을 떠나지 못하게 시간을 끄는 것이었다.  그들은 진양이 아직 눈치채지 못하

고 단지 정체불명의 소리에 지레 겁을 먹어 피할 거라 생각하는 셈이다. 

진양은 잠깐 생각하다가 그에 따라주지 않고 강제로 돌파하기로 했다. 그들이 일부로  그리 한다는 건 그만큼 자신

감이 없다는 얘기니, 그럴수록 진양에겐 유리한 것이 아닌가.  상황으로 보아 이대로 강제 돌파를 감행하면 공격이 

쏟아질 게 뻔하다. 아마도 기습이 한번 있을 것이다. 허나 그들이 섣불리 덤비지 않는 걸 보면 별로 대단한 인물들

은 아님이 분명했다. 괜히 기척만 내서 길을 돌아가게 만들려 하지만 진양은 당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란아. 너도 소리 들리지?" 

"네… 저 소리는 대체 뭐지요?" 

어느새 친근해진 진양의 어투였다. 이런 말에 평소의 형란 같으면 얼굴을 붉힐 법 하나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었

다. 약간 겁에 질린 듯 창백해진 얼굴로 다른 물음을 하고 있다. 그녀 역시 이게 사람이 내는 기척이란 걸  알고 있

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누군지 몰라 겁을 먹는 것이다. 진양은 어차피 곧 알게 될 거라 굳이 설명해주지는 않았

다. 

"곧 알게될 거야. 아무튼 조만간 저들의 기습이 있을 거야. 대비하고 있어." 

"알았어요, 대형!" 

그는 한순간 그녀의 허리를 잡고 맹렬히 내달렸다. 굉장히 빠른 동작이다. 과연 경공술이 뛰어난 그답게 속도가 대

단했다. 더욱이 산길이라면 금상첨화. 그에겐 초원보다 산길이 경공 펼치기가 더 좋았다. 빠른 발놀림으로 능숙하게 

달리니 그 모습은 실로 비호와도 같았다. 형란을 안고도 이만한 속력을 내는 만큼 진양의 경공 실력은 감탄할 정도

인 것이다. 

숨어서 지켜보는 자들의 기척이 뭔가 심상치 않아졌다. 역시 짐작대로 공격을 감행할 모양이었다. 진양은 더욱 빠르

게 달리며 그들의 공격을 유도했다. 한 걸음에 몇 장씩 펄쩍펄쩍 뛰어다니며 점차 산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순간 

의문의 소리가 들린다. 쐐액, 하는 이 괴상한 음향은 갈수록 커지고 있었다.  진양은 추격 무리에 대비해서 온 공력

을 끌어올렸음으로 이쯤 소리를 듣는 건 일도 아니었다. 또 그런 만큼 이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도 알았다. 이 소리

는 암기가 날아오며 내는 파공음으로 당연히 진양을 노리는 것이었다. 다만 방향은 알 수가 없어 일단 몸부터 옆으

로 틀었다. 

곧 푹, 소리를 내며 무엇인가가 바닥에 꽂혔다.  멈추고 바라보니 한 자루의 짧은 비도다.  진양은 거만하게 웃음을 

터트리더니 좌우를 향해 고함쳤다. 

"숨어있을 것 없다! 진작에 너희의 수작을 눈치채고 있었으니 지금 나를 막지 않으면 후회하게 될 거다." 

그의 고함에도 추격 무리는 선뜻 나오지 않았다. 가만히 서서 좀 기다려보았으나 꼭 아무도 없는 척 하듯 고요하기

만 했다. 진양은 그들이 겁에 질린 거라는 걸 알 수 있어 한번 더 웃고야 말았다. 

"정 나오지 않으면 어쩔 수 없지!" 

그는 말을 끝맺기가 무섭게 형란을 안아 또 내달리기 시작했다. 안 나오면 우린 가겠다, 라고 하는 말과 같다. 그의 

움직임에 다시금 기척이 들렸다. 이번엔 여러 명이 움직이는 듯한 소리였지만 진양은 철저히 무시하고 오로지 경공

만 펼치기였다. 순간 또 다시 암기 소리가  들린다. 허공을 가르며 빠르게 비도가 날아드는  것이다. 진양은 가볍게 

피하려다가 문득 다른 소리를 듣고 몸을 움찔거렸다. 반대 방향에서도 같은 파공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

라 또 다른 여러 방향으로 파공음이 귓전을 때리고 있었다. 

진양은 그들이 합공을 펼침을 알고 정색했다. 아까 사공환과의  일도 기억나고 해서 안이한 생각은 가지지 않았다. 

그쯤 벌써 한 자루의 비도가 진양의 태양혈을 노리고 들어왔다. 형란을 안은 채로 고개를 숙여 가볍게 피하자, 반대

편에서 어깨를 노리고 비도가 덤벼들었다. 그것은 앞으로 빠르게 달림으로써 피할 수 있었다. 그러자 이번엔 두 자

루의 비도가 동시에 근접하고 있었다. 하나는 등 한복판을 노렸고 다른 하나는 형란을 노리고 있었다. 진양은 한순

간 무릎을 굽혀서 그것마저 모두 피해냈다. 허나 그 후에 진양의 정수리로 날아온 마지막 비도는 실로 피하기가 난

감했다. 사실 지금 이렇게 피한 것도 매우 급박하게 피한  것이다. 비도의 속도가 가히 쾌속하고 여러 개의 비도가 

마치 미리 계산된 것처럼 잘 연결되어 형란까지  안은 진양은 마음껏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나마 사력을 다해 

피한 것인데 무릎을 굽히느라고 자세가 완전히 흐트러지고 말아서 이번 비도는 정말  피할 수가 없었다. 일단 급한 

대로 봉을 들어올리기는 했다. 그러나 막을 자신은 없었다. 몸을 깊이 숙인 상황이라 비도를 잘 볼 수가 없다. 만일 

봉으로 막지 못한다면 비도는 진양의 머리통을 뚫고 말 것이다. 진양의 봉이 정수리 위로 올라왔다. 비도는 봉보다 

약간 우측으로 꺾여서 달려들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형란에겐 아주 잘 보였다. 진양이 두 자루 비도를 피한답시고 몸을 크게 낮췄지만 형란은 옆으로 슬쩍 

누인 상태라 마지막으로 날아드는 비도가 잘 보였다. 물론 진양의 대응책도 보였다. 봉을 들어 비도를 막으려는 모

양, 그러나 그녀가 보기에는 너무 위험했다. 첫째로 비도가 너무 빠르고 강렬해서 저 얄팍한 봉으로는 막을 수 없을 

듯 했고, 둘째로 방향도 백회를 노리는 게 아니라 옆으로 약간  빗나간 듯 해서 막기도 틀린 듯 했다. 형란은 이걸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검을 뽑기엔 너무 늦은 시간. 그녀가 딱히 권법을 아는가, 장법을 아는가. 당장 

맨손으로 막을 수 있는 방도란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너무 급한 나머지 자신의 왼손을 희생하기로 했다. 

"악!" 

그녀는 엄청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무작정 왼손을 내밀어 비도를 움켜쥐려 한 것이다. 그것도 날을 움켜쥐는 게 

아니라 그냥 비도의 끝을 무식하게 막아버렸다. 그녀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게, 그녀는 수(手)공에 대해서도 전

혀 아는 바가 없기 때문에 충분히 감지하고도 낚아챌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단순무식으로 비도의 정면을 손바닥으로 

콱 막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수라도 해야 진양이 살 수 있다 여기고 있었다. 

"란아!" 

진양은 크게 놀라 부르짖었다. 그녀를 보진 못한 채, 단지  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비명만 들었기 때문에 그녀가 

크게 다친 거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일단 재차 들어올 공격에 대비해 몸을 날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몸을 일으키

고 그녀를 보며 손바닥에 박혀있는 비도를 볼 수 있었다. 얼마나 세게 박혔는지 비도의 끝은 손등을 뚫고 튀어나와 

있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대형이… 위험해서……." 

"이 멍청이!" 

피는 샘물처럼 그칠 줄 몰랐다. 얼른 응급 조치라도 취해야 하는데 별로 아는  바는 없고 그냥 천으로 감싸는 정도

만 알았다. 허나 그것마저도 할 시간이 없다. 재차 공격이 들어올 기세라 그녀의  상처를 치료해줄 수 없었다. 일단 

급박한 마음에 봉을 든 왼손으로 비도를 잡아 빼버렸다. 꽉 박혀서 제법 힘을 써야만 했다. 비도를 뽑으니 피는 더

욱 철철 흘렀다. 완전 손바닥에 구멍이 나있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아무래도 안되겠다 여기고 봉을 허리

춤에 꽂았다. 달리는데 불편하고 떨어트릴 위험이 있었지만 지금 그런 건 중요한 축에 끼지도 못했다. 봉을 허리춤

에 꽂고 자신의 옷을 찢었다. 상의를 잡아당기니 찌직, 하는 소리와 함께 옷이 찢겨졌다.  일단 그 천을 한 손에 움

켜쥔 후 형란의 다친 손에 갖다댔다. 그리곤 자신의 손과 함께 꼬옥 움켜쥐었다. 

이런 조치는 여전히 도망치는 중에 한 거라  그만큼 훌륭하다 할만한 것이었다. 비록 천으로 손을  잘 묶어줄 수는 

없었지만 천을 사이에 끼고 손을 맞잡는 방법은 실로 좋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손등으로도 피가 흐르긴 했

다. 허나 그녀의 손이 무척이나 작고 진양이 손은 좀 큰 편이라 충분히 감싸쥘 수 있었다. 이후에 비도의 공격은 더

욱 거세졌다. 형란이 다치자 진양은 크게 전의를 상실하여 도망칠 엄두를 못 냈다. 행여나 그녀가 또 다칠까봐 신경

을 그에 집중하니 제대로 비도를 피할 리도 없다. 결국 진양 역시 비도에 이리저리 긁히며 상처를 입고야 말았다. 

(이대로 있다간 죽고 말 거야. 더 이상 무리하게 밖으로 나갈 수 없다. 그녀의 상처도 심하고 이  수십 개의 비도도 

피할 자신이 없으니 되돌아가는 수밖엔 없겠구나.) 

진양은 한탄하며 방향을 틀었다. 북쪽으로 방향을 잡고 열심히 내달려 일단 그들의 비도 공격에서 벗어날 생각이었

다. 그리고 숨어 있다가 회복이 되면 다시 나와 싸우든 도망치든 할 계획이었다. 

북망인들의 추격은 한참을 도망침으로써 따돌릴 수 있었다. 비록 그들의  주거지인 북망산이라지만 진양의 산에 대

한 지식은 가히 훌륭한 점이 있었다. 언덕이나 굴곡지세를 잘 이용하였고, 북쪽으로 가면 갈수록 나오는  초목에 따

라 잘 몸을 숨기자 진양은 그들의 손에서 무사히 벗어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모두 대천산에서 지낸 결과로 얻어지

는 것이요, 또 그만큼 산을 좋아하여 이루어지는 쾌거였다. 이제 비도 공격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진양은 형란의 치료를 위해 오랫동안 편히 쉴 곳을 찾아보았다. 약간 다친 경상이지만 어쨌든 부상을 입은 채로 그

녀를 안고 조용한 곳을 찾는 건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더구나 초목이 있어도 역시 얼마 안 돼서 장기간 쉴 곳을 

찾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러던 진양은 날이 다 어두워져서야 겨우 쉴 곳을 찾아냈다. 사위가 캄캄해지고 귀

기가 흘러 넘치는 북망산에서 가까스로 안전한 곳을 찾은 것이다. 그곳은 바로 북망산 북쪽 끝인 절벽이었다. 

이 절벽 근방은 북망산에서 가장 위험한 곳으로  사실 북망채 사람들도 잘 안 오는 곳이었다.  어차피 길도 없어서 

약탈할 것도 없거니와 위험해서 올 가치가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절벽은 깎아지는 듯하고 그 밑은 잘 보이지도 않

다. 그냥 올라서 보면 황하가 보이고 구름에 가려 제법 풍치가 있지만, 지세는 험난하기 짝이 없고 인적이  드문 건 

말할 나위도 없다. 초목이 어느 정도 있는데 이 역시 길을 험난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로 이런 여러 가지 요소가 

합하여 이쪽은 아예 뚫린 길이란 게 없을 정도였다. 

이 절벽 앞엔 작지만 좀 깊은 웅덩이가 있었다. 본래 물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고 그냥 깊이 파여져 있었다. 경공을 

펼치면 쉽게 오를 수 있는 높이지만 평범한 사람이나 동물들은 일단 빠지면 죽어도 나올 수 없는 깊이이기도 하다. 

참으로 괴상한 웅덩이로 과연 북망산에 어울리는 웅덩이가 아닐 수 없었다. 진양은 이곳을 바로 편히 쉴 장소로 정

했다. 주변을 살펴보니 동물은 거의 없어서 맹수를 만날 위험도 적었고, 비도 올 것 같지가 않아 안전하다고  할 수 

있었다. 더구나 북망채 무리가 나타나면 일단 숨어 있다가 빠져나갈 수도 있지 않는가. 

진양은 그녀와 함께 웅덩이 안으로 뛰어들었다. 자리가 비좁아 두 명이 누울 정도는 못 됐다. 그녀를 눕히고 진양은 

옆에 앉아있으면 꽉 찰 정도랄까. 하지만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그녀의 치료가 급선무니 어찌됐든 이런 장소를 찾

은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었다. 그는 그녀를 눕히고 말했다. 

"일단 여기서 치료하자. 그런데 난 의술을 몰라서 뭐로 치료해야하는지 모르겠어. 그러니 먼저 여기서 피를 멎게 하

고 상처를 조금 다듬은 후에 다시 하산하도록 하자." 

"대형 뜻대로 하세요… 저는 다 좋아요." 

그녀의 목소리가 매우 공허하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손을 맞잡아  상처를 막긴 막았지만 피는 많이 흘린 상태였다. 

그걸 증명하듯 안색은 창백해져있었고 목소리도 그 모양이었다. 진양은 그녀가 답답했다. 

"바보 같으니… 그러게 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해?" 

"어쩔 수가 없었어요……." 

"아무리 권각을 몰라도 그렇지, 그냥 무식하게 손바닥으로 막는 바보가 어디 있어?" 

그녀는 진양의 질타를 들으며 고개를 숙였다. 허나 표정은 꼭  미소를 짓는 것 같았다. 진양은 그녀의 생각을 모두 

읽을 수 있어 너무 고마웠다. 다만 그녀의 바보 같음이 답답할 뿐. 

"다음부턴 그렇게 할 필요는 없어. 아무리 내가 죽을 위기를 맞아도 함부로 몸을 버릴 생각은 하지마. 넌 아직 어린

데 그렇게 몸을 상하게 해서야 쓰겠니?" 

"대형이 무사하면 전 어찌 되도 좋아요. 대형도 저를 구해주고 많은 도움을 주었잖아요." 

"그래도 오늘처럼 그런 무식한 수단은 안 돼. 지금 살짝 빗나가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넌 노궁혈이 작살나서 왼손

으론 영원히 무공을 펼칠 수 없었을 거야." 

"알았어요……. 하지만 정말 위험하면 그땐 어쩔 수 없어요. 대형도 이해해줘야 해요." 

진양은 더 할말이 없었다. 답답하기도 했지만 물론 너무 고맙기도 해서 뭐라 할말이 없는 것이다. 그녀의 상처를 막

기 위해 맞잡은 손은 아직도 놓이지 않고 있었다. 도리어 힘이 들어가 한층 더 꾹 움켜쥐어진다. 허나 빨리 그녀의 

상처를 막아야한다. 그는 곧 손을 놓고 자신의 상의를 벗고 잘 살펴보며 깨끗한 부위만 골라 찢어냈다. 그리고는 그

녀의 왼손을 둘둘 감은 후에야 다시 손을 맞잡았다. 진양도 그녀의 손이 따뜻하다  느꼈고 형란 역시 그의 손이 따

뜻하다 느끼고 있었다. 

"오늘은 쉬고 내일 떠나자. 밤이 깊어서 너무 위험하겠다." 

"그래요. 저도 좋아요." 

"그럼 넌 여기서 쉬어. 상처에서 계속 피가 나올 테니까 조심하고. 혹시 무슨 일 생기면 바로 날 불러야 해." 

"그럼 대형은 어디서 쉬려고요?" 

그녀의 물음에 진양은 피식 웃었다. 

"나야 당연히 저 위에서 자야지. 나무가 있으니 기대서 잘 수 있고 경치도 나쁘진 않으니 쓸만하지 않나?" 

"하지만… 저만 이렇게 편히 쉬면……." 

"넌 부상자고 난 괜찮잖아. 얼른 잠이나 자둬. 내일 아침에 일찍 떠나야하니까." 

진양은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녀를 눕혀주고는 곧 경공을 펼쳐 웅덩이 밖으로 나서버렸다. 그 깊이가 제

법 되지만 진양에겐 식은 죽 먹기와 다름없었다. 

밖으로 나온 진양은 곧바로 웅덩이 옆 큰 나무에 기대어 앉았다. 인상을 살짝 찌푸리고 이마에선 식은땀이 흐른다. 

좀 전 형란과의 대화에서 자신은 괜찮다는 말을 했지만 그게 과연 사실이었을까. 절대 아니었다. 진양은 사실 중상

이다. 비도로 입은 상처는 별 게 아니었다. 진짜 상처는 바로 내상. 아니, 내상이라 하기엔 좀 그렇지만 어쨌든 문제

는 또 신선폐였다. 진양은 북아의 도움으로 신선폐를 왼팔에 몰아넣었다. 이는 12시진을 기다리지 않고 공력을 일으

키기 위하여 한 일이었다. 허나 북아의 공력은 일천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다. 

보통 타인이 공력을 이용해서 독을 한쪽에 몰아둘 때, 반드시 대혈을 피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대혈은 말 그대로 중

요한 혈이라 몰아넣을 때 독이 스며들면 굉장히 위험하기 때문이다. 대혈은 다른  일반 혈과는 달리 연약하여 잘못

되면 치명적이었다. 독이 스며들면 경맥을 따라 이리저리 흐르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온몸으로 퍼지게 되

어있었다. 헌데 북아의 공력은 심후하지 못하여 바로 그런 문제점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 역시 대혈을 피해

서 몰아야한다는 걸 알았지만, 당시 급한 나머지 생각도 못해보고 무작정 몰아넣었던 셈이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결

국 진양은 더 안 좋은 상황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형란은 이제 내일 아침이면 신선폐가 모두 사라진다. 허나 진양은 

이미 대혈을 타고 독이 퍼져 하루 이틀 안에 해결될 상태가 아니게 되어버렸다. 

지금 진양이 고통스러워하는 건 신선폐가 대혈로 거칠게 퍼져나가서 가슴과  왼팔이 매우 아팠기 때문이었다. 일단 

형란 앞에선 억지로 사력을 다해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지만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었다. 본래 얼마 안 퍼져있었

는데, 형란을 구해주겠다며 쉴 곳을 찾아 뛰어다니는 동안 퍼진 것이었다.  진양은 급히 정좌하고 공력을 일으켰다. 

이 신선폐의 확산을 막기 위해선 내공으로 저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먼저 왼팔에서 계속 흘러나오는 신선폐를 다시 

몰아붙이고 스스로 중부혈을 눌러 길을 막아두었다. 허나 가슴이 아픈 걸 보면  이미 퍼진 상황이라 심맥이 위험했

다. 때문에 다시 수소양(手少陽)의 대혈을 점혈하여 심맥을 보호하였다. 이런 건 모두 응급으로 막는 수단이라 길게 

지속될 수 없었다. 당장 확산은 막을 수 있으나 내일 도망치면서 발작할 우려가 있었다. 

(만일 그렇게 되면 나는 물론이고 란이도 위험할 거야. 내가 죽는 건 문제없지만 그녀마저 죽게 할 수는 없다. 허나 

가라고 해도 그녀는 가지 않을 테니…….) 

그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다시 회복에 전념하였다. 혹 그런 상황이 닥치면 형란은 떠나지 않아서 결국 공생공

사를 하게 될 것이라 여겼다. 물론 그녀만큼은 살았으면 좋겠다 생각했지만. 허나 그런 진양도 다음에 일어날 일은 

예측하지 못했다.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비참한, 더욱 지독한 일은 이 세상을 뒤덮는 어둠처럼  은밀히 다가오

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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