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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 十 七 章. 진안(眞眼) 1 (73/90)

                                    第 三 十 七 章. 진안(眞眼) 1

아미산은 불가의 명산으로 아미사원은 세워진지 오래되었다. 지난날 사성법사(四聖法師)가 복호사를 세우며 이 아미

사원의 기원이 됐다고 전해내려 오는데, 그의 등장은 천무대협보다도 한참  앞서있다. 본래 사성(四聖)이란 네 명의 

성인을 말하는 것으로 불가에선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大勢至)보살, 대해중(大海衆)보살을 말한다. 일설에 사

성법사의 성격이 괴팍하여 감히 스스로 사성이란 단어를 붙였다 하니 당년에 욕을 많이 먹었을 것은 당연한 이야기

다. 

이런 면에서 아미사원은 다른 절 승려들에게 고운 시선을 받지 못했다. 현 아미사원 주지인 정오(正悟)는  사부였던 

심라(心裸)의 의지를 받들어 아미사원 제자가 함부로 아미산을  떠나는 걸 막았다. 이런 이유가 있었기에 아미산에 

사원이 있다는 걸 아는 자는 적었다. 그들은 완연한 폐쇄적 입장에서 아미사원을 유지해나갔던 것이다. 

이번 해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그러나 날이 점차 풀리자 새봄을 맞는 비가 뿌려지고 있었다. 이 비는 사천 전역

에 퍼부어져 한동안 그칠 줄 몰랐다. 아미산 역시 사천에 속하여 이 비의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는데,  더욱이 산

이 험하고 계곡이나 절벽이 많다보니 이런 날이면 다른 곳보다 더 피해가 크기 십상이었다. 

"사백님. 그냥 돌아가면 안될까요?" 

놀랍게도 이런 날 아미산을 쏘다니는 여승이 둘이나 있었다. 한 명은 매우 늙었고  한 명은 매우 젊었는데 방금 말

은 젊은 여승이 한 말이었다. 여승답지 않은 미모로 비를 맞으니 그 미모가 한층 더 하는 여승이었다. 반면 늙은 여

승은 완연한 할망구로 이마에 잡힌 주름은 번데기의 주름보다 더했다. 

"이 녀석아. 고난 속에서 마음이 닦여야 진짜인 거지, 사원 안에서 마음 닦는다고 좋을 거 같으냐?" 

"하지만……." 

젊은 여승은 비를 몹시 맞아 추위에 떨고 있었다. 목소리가  심하게 떨려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허나 늙은 여승은 

허락하지 않았다. 

"빨리 따라오기나 해. 바로 저기니까." 

그녀가 가리킨 곳은 아주 위험한 절벽이었다. 가파르게 내려가던 길이 갑자기 뚝 끊기는 곳으로 그 밑은 도대체 보

이지 않을 정도로 깊었다. 이런 날 아미산에 사고가 잦은 건 바로 이런 장소가 많기 때문이다. 사천 지방의 특성상 

안개가 짙어서 앞도 잘 안 보이는데 비까지 오면 매우 미끄러워 아주  어이없게 실족하는 경우가 허다했던 것이다. 

대로로 걸어도 아차 하는 순간 죽기 쉬운데,  지금 저런 절벽으로 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죽겠다는  말과 같을 수도 

있었다. 젊은 여승은 완전 겁을 먹었다. 

"사, 사백님……!" 

"안 따라와? 내 말은 무조건 따라야해." 

늙은 여승은 화를 내며 그녀를 끌었다. 억지로 끌고 가니 중간에 발이 미끄러져 하마터면 실족할 뻔하기도 했다. 그 

장소에 도달한 후에야 늙은 여승이 다시 입을 열었다. 

"괜히 꿈틀대면 아까처럼 실족하게 돼. 조심하고 내 말을 잘 들어." 

늙은 여승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젊은 여승이 주춤대자 강제로 또 앉히고는  무념의 경지에 빠지라며 서서히 수

도에 들어갔다. 장대비가 퍼붓는 이때 절벽처럼 위험한 곳에서의 수도는 참으로 할말을 잃게 만드는 그것이었다. 가

파른 땅으로 빗물이 작은 강을 만들며 줄줄 흐르니 가만히 앉아있어도 저절로  몸이 미끄러졌다. 젊은 여승은 자신

의 몸이 미끄러진다는 걸 느끼고 움직였는데, 그리하자 미끄러지는 속도가 더욱 빨라져 한순간에 절벽 아래로 떨어

질 위기였다. 순간 늙은 여승이 버럭 고함을 쳤다. 

"나뭇가지를 잡아!" 

젊은 여승은 마침 아무거나 막 움켜쥐려던 차여서 옆에 솟은 나무의 한 가지를 움켜쥘 수 있었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그녀는 아주 질린 표정이었다. 늙은 여승은 직접 그녀를 끌어올리고는 질책을 했다. 

"그러니까 왜 움직이고 있어? 가만히 있으면 안 미끄러지니 걱정하지 마라.  네가 미끄러졌다는 건 지레 겁을 먹어

서 몸을 꿈틀댔기 때문이야. 한 치의 떨림도 없이 마음을 평정하고 잡념을 지우면  이까짓 빗물은 저 혼자 절벽 아

래로 떨어질 거야." 

젊은 여승은 그 말을 듣고 조심스레 몸을 앉혔다. 그러나 역시 한두 번에 될 일이 아닌 듯 저절로 몸이 미끄러진다. 

그녀는 스스로도 당황한 듯 다시 미끄러지며 나뭇가지를 움켜쥐고 비명을 지르는 추태를 보였다. 

"이 멍청한 것! 겁을 먹지 말아야지, 자꾸 절벽 아래를 의식하면 어떡해? 절벽 아래를 사바세계라 여기지 말고 아무

것도 없는 무(無)임을 알아야지. 이곳 역시 경사진 땅이 아니라 평평한 땅이며 너는 지금 한가로운 초원에서 촉촉한 

비를 맞으며 수도하는 사람임을 알란 말이야. 넌 절벽 아래를 의식해서 겁을 먹고 몸을 떠니 지 스스로 미끄러지는 

게 아니겠냐!" 

늙은 여승은 성깔이 보통이 아닌 듯 크게 호통을 내질렀다. 그런데도 그녀는  몸이 떨리지도 않으며 저절로 미끄러

지지도 않는다. 젊은 여승은 송구스러운 얼굴로 여러 번 시도를 하였지만 끝내 미끄러져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

릴 수밖에 없었다. 

"에이, 이래서 무슨 마음을 닦아?" 

늙은 여승이 투덜대며 그녀를 잡더니 위로 집어던졌다. 이런 몸짓은 늙은 여승  자신의 몸을 미끄러지게 했으나 간

단히 나뭇가지를 잡고 위로 올라왔다. 그녀의 힘이 대단해 보이는 건 아니었고 젊은 여승의 체구가 매우 작았다. 더

구나 그녀는 이런 환경에 굉장히 적응한 듯 하여 젊은 여승과는 아예 몸놀림 자체가 달랐다. 경사진 절벽에서 나와 

평탄한 곳에 도착한 늙은 여승은 젊은 여승을 앉혀놓고 떠들었다. 

"하여간 이러니까 넌 안 되는 거야. 왜 무념의 경지에 빠져들지 못하냐?" 

"그게… 너무 무서워요." 

"무섭긴 뭐가 무서워! 네가 젊어서 아직 진짜 무서운 걸 보지 못했구나." 

늙은 여승이 탄식했다. 젊은 여승은 그녀의 눈치를 보며 다시 말문을 열었다. 

"진짜 무서운 것이요?" 

"그래, 이 녀석아. 바로 이런 거다." 

갑자기 그녀가 벌떡 일어서더니 젊은 여승을 절벽 아래로 밀어버렸다. 이 평탄한  곳 앞으론 절벽이 이어지는데 그 

밑의 깊이는 좀 전 있던 곳과 다를 바가 없었다. 젊은 여승은 목이 터져라 비명을 내질렀다. 그녀의 몸이 순식간에 

떨어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늙은 여승에게 손목을 잡히며 몸이 멈춰졌다. 늙은 여승은 그녀를 잠깐 들어올

리더니 옆의 굵은 나뭇가지에 몸을 매달아버렸다. 옷을 굵은 나뭇가지로 뚫어 매다니 금방 대롱대롱 매달린 상황이 

되고 말았다. 

"사, 사백님!" 

그녀는 얼어붙은 표정으로 늙은 여승을 불렀다. 대롱대롱 매달렸지만 금방  옷이 찢어지기라도 한다면 저 보이지도 

않는 절벽 밑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그녀는 덜덜 떨며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사백님. 한번만 살려주세요." 

"이 녀석이 웃긴 녀석일세. 내가 언제 널 죽인다고 했냐? 조용히 마음을 가다듬고 가만히 있어. 지금처럼 호들갑 떨

면 옷이 찢어져서 저 밑으로 떨어질 걸?" 

늙은 여승의 말에 그녀는 눈물을 주르륵 흘린다. 정말 감당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중엔 소리까지 내며 흐느끼니 

늙은 여승도 별 수가 없었다. 

"하여간… 쯧쯧." 

늙은 여승은 그녀를 일으키려고 절벽 아래로 손을 내뻗었다. 그녀의 양어깨를 잡고  번쩍 치켜들어 다시 언덕 위로 

올려다 놓았다. 그때 늙은 여승의 눈빛이 반짝였다. 

"아니, 저건 뭐냐?" 

젊은 여승을 올리면서 문득 시선이 반대편  절벽으로 향했는데 그곳에 웬 사람이 엎어져있던  것이다. 실로 우연치 

않게 발견하여 늙은 여승도 놀란 듯 했다. 젊은 여승은 다시 살아난 듯 금방 울음을 그치고 이상한 눈으로 그 자를 

바라보았다. 

"너무 멀어서 모르겠지만 사람 같은데요?" 

"나도 알아. 빨리 가보자." 

그들은 서둘러 자리를 떴다. 절벽을 넘어가기 위해 한참을 돌아서 폭이 일 장도  안 되는 다리를 건너고 다시 그곳 

절벽까지 간 것이다. 그곳까지 가는 길은 굉장히 위험하여 젊은 여승이 자주 실족할 뻔했지만 늙은 여승이 직접 잡

아줘서 무사할 수 있었다. 그곳에 도달하고 보니 과연 사람이었다. 옷은 갈기갈기 찢기고 오른쪽 팔도 없는 웬 남자

였다. 늙은 여승은 그를 거꾸로 일으키고는 한순간 헛, 하고 경호성을 내질렀다. 

"묘작(苗雀)아. 이놈 어디서 본 놈 같지 않느냐?" 

"이, 이 사람은……." 

"그래. 바로 그놈 말이야." 

묘작이라 불린 젊은 여승은 10년 전에 이곳으로  온 이후로 한번도 바깥으로 나간 적이 없었다.  때문에 남자를 볼 

기회가 없었는데 6년 전 딱 한번 본 일이 있었다. 남자는 그 사람밖에 본 적이 없어서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이놈이 어디서 호되게 당했구먼. 내 이럴 줄 알았지. 그토록 까불더니 참 꼬시다." 

늙은 여승은 독하게 말하면서도 그를 업었다. 번데기 주름에 거의 백 살까지 산  듯한 이 늙은 여승은 어디서 힘이 

나는지 그를 잘도 업는다. 다리가 조금 떨리고 인상이 찌푸려지는 걸로 보아 무거운 듯 하기는 한 것 같았다. 채 다

섯 걸음도 못 가고 그녀의 입에서 불평이 쏟아졌다. 

"이 망할 놈. 왜 하필 여기 쓰러져있어서 날 귀찮게 하는 거야. 이만하면 사바세계를 떠날 법도 한데 어떻게 살았는

지. 아… 오늘은 묘작 너부터 이놈까지 도대체 되는 일이 없어." 

묘작은 올해 17세로 체구가 작고 연약해서 그를 업을 수 없었다. 그녀의 법명이 작(雀 = 참새)이 된 것은 사실 성격

과 연관이 있지만 작은 체구와 연약함 역시 한몫을 했다. 그녀는 은근히 낑낑대며 걸어가는 제 사백을 보고 입술만 

물어뜯었다. 

진양이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건 늙은 여승에게 업혀간 후로 열흘이 지나서였다.  그는 분명 정신이 들었음에도 그

게 꿈인 줄 알았다. 세상이 캄캄했기 때문이다. 옆에서 들려오는 말소리 역시 꿈속의 한 장면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나 정신이 또렷했다. 캄캄한 세상이 오히려 그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말소리도 너무나 잘 들리고 자신

의 숨소리마저 들려서 꿈이라 할 순 없었다. 

"이 빌어먹을 놈 왜 안 깨?" 

늙은 할망구의 음성과 여린 젊은 여인의  음성이 번갈아 들리더니 갑자기 할망구의 불평과  함께 다리가 아파졌다. 

그냥 갑자기 아파진 게 아니라 누가 걷어찬 것이었다. 진양은 분명 신발의 감촉을 느꼈고 아픔도 느껴서 확실히 꿈

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입을 열었다. 

"아……." 

자신의 음성이 곧 들리는 게 아닌가? 진양은 이것이 꿈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 순간 누군가 자

신의 앞가슴을 손으로 미는 것 같았다. 전체적으로 까칠까칠하며 만두 같은 감촉을  중심으로 다섯 개의 점이 미는 

듯한 느낌은 분명 누군가의 손바닥이었다. 진양은 누군지 보려고 눈을  뜨려고 했다. 헌데 눈을 뜬 건지 안 떠지는 

건지 앞이 안 보인다. 손을 들어 눈을 만져보니 웬 천이 둘러싸여 있었다. 

"이놈이 이제야 깨는군. 역시 맞아야 정신이 드는 놈이야." 

"다, 당신은 대체 누구요?" 

진양은 도무지 상황파악이 되지 않았다. 입이나 귀는 뚫려있으니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헌데 그의 말에 

갑자기 웃음소리가 들린다. 

"푸하하! 이놈 봐라. 네놈의 말투가 변했구나." 

"당신은 누구냔 말이오." 

"그래도 그 욱하는 성격은 여전하군." 

진양은 큰 의문을 느꼈다. 

"대체 누구기에 날 아는 척 하는 거요?" 

"예끼! 이놈아." 

순간 진양은 또 허벅지를 걷어차였다. 그는 지금껏 앞뒤 정황을 몰라서 함부로 화를 내지 않았다. 허나 정체불명의 

노파가 자꾸 예의 없이 나오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정체를 말하지 않으니 그녀  말대로 욱하는 울화가 치밀었다. 그

는 몸을 벌떡 일으키며 붕대를 풀어버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앞이 보이지 않는 게 아닌가? 붕대는 분명 풀어

서 눈을 가린 건 아무것도 없는데 도대체 눈이 뜨여지지가 않았다. 억지로 힘을 줘도 아프기만 할 뿐이고 눈꺼풀이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 이게 어떻게……." 

"멍청한 놈. 어쩌다 그 꼴이 된 거냐? 네놈은 이제 장님이 됐어." 

"뭐라고!" 

노파의 말은 진양이 크게 놀랄 만한 얘기였다. 왜냐하면 자신이 눈을 다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퍼뜩 떠오르는 게 

있어 오른쪽 어깨를 만져보았다. 역시 오른팔은 없었지만 신기하게도 아프지는 않다. 이제 보니 붕대로 칭칭 감겨져 

있으며 상처는 다 아문 듯 했다. 

"당신이 치료해주었소? 대체 당신은 누구며 내 눈이 왜 이런 거요?" 

"물론 내가 치료해주었지. 그리고 나는 정고며 네놈 눈이 그 꼴이 된 건 나도 모른다." 

"정고?" 

진양은 조용히 되뇌다가 아! 하고 경호성을 발했다. 

"그럼 당신은?" 

"그래, 이 머저리 같은 놈아. 몸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으니 얼른 엎어져있어.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 모양이

냐? 오른팔은 잘리고 눈은 병신이 되고 며칠을 굶었기에 원기도 없고." 

그녀의 말은 진양이 과거를 생각해볼 기회를 주었다. 그는 천천히 기억을 되살려보았다. 왕령에게 팔을 잘린 때부터 

형란과 헤어져 도망치게 된 일. 전효의 죽음. 비를 맞으며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걸었던 일도 기억이 났다. 허나 그

런 기억을 떠올리자 갑자기 또 울적해져서 그냥 입을 다물고 말았다. 

"이놈이 금새 시무룩해지네. 마음대로 해라. 몸이 다 치료되면 얘기하든지 말든지. 사람이 필요하면 악을 질러라. 묘

작이 도와줄 거다." 

그녀는 진양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사라졌다. 진양은 그걸 직접 보지 못했지만 발소리가 사라진 것, 방문 닫히는 소

리가 들린 것으로 보아 이곳이 대강 어디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아미산……. 전형이 남쪽으로 피했다고 하더니 어쩌다 이곳까지 오게 됐구나. 이곳은 아미사원인가? 아… 전형.) 

또다시 전효가 떠오르고 그것으로 인해 북아 같은 사람들이 떠오르자 괴로웠다. 옆에  기척이 들리는 걸로 보아 묘

작이란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다. 현재 일의 전말이나 이곳이 어딘가 하는 여러 가지 궁금한 게 많았지만, 울적하여 

대화할 기분이 나지 않아 그냥 몸을 눕혔다. 눈을 감자 다시금 피로가 몰려 금새 잠에 빠지고 마는 진양이었다. 

그가 다시 깬 건 누군가의 목소리와 함께 자신의 몸을 흔들어서였다. 잠에서 깼음에도 여전히 눈이 안 떠져서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잘 분간이 가질 않았다. 그는 일단 몸을 일으켰다. 

"누구시오?" 

"전 묘작이라고 해요. 지난번에 한번 뵌 적이 있어요." 

진양은 그런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가 어리둥절해 하는 걸 안 듯 묘작은 다시 말했다. 

"지난날 아미산에 올랐을 때 시주가 저보고 정 사백님이 있는 곳을 말하라며 괴롭혔지요." 

"아……!" 

이제야 알만했다. 그때 자신이 흥분하여 하마터면 죽일 뻔했던  그 어린 비구니였던 것이다. 진양은 그녀의 도움을 

받아 차근차근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자신이 아미산 절벽 부근에서 기절해있었다는  것과 그때 이미 눈이 멀어있었

다는 것. 그리고 온몸에 상처가 있었으며 원기가 부족하여 한참동안 보약을 먹었다는 것들이었다. 다 전해들은 진양

은 갑자기 정고와 묘작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뭐라고 감사해야… 그러니까… 음. 내가 뭔가 도울 수 있는 것 없소?" 

진양은 일생에 도움을 받았지 함부로 준 적이  없는 인물이다. 부상당한 형란과의 이별, 왕령의  죽음, 전효의 죽음 

앞에서 진양은 많은 걸 깨달았지만 도움을 줘본  적도 없었고 그런 생각을 별로 가진 적도  없어서 매우 어색했다. 

묘작은 그의 말에 웃었다. 

"괜찮아요. 뭘 바라고 한 건 아니에요." 

"그, 그렇소?" 

진양은 머리를 긁적였다. 

"내 눈이 왜 이리 된 건지 알 수가 없소." 

"사백님께서 말씀하시길, 눈 부위가 찢어져 있었다고 하셨어요. 꽤 오래 되고 비를 많이 맞은 채로  무방비 하게 지

내서 눈이 정기를 잃는 바람에 시력을 잃은 거라 하셨어요." 

"그럴 리가?" 

"처음 시주를 발견했을 때 굉장히 무서웠어요. 시주 눈에서 볼을 타고 피가  흘러서 꼭 피눈물을 흘린 사람 같았어

요." 

그녀의 말은 진양이 전말을 깨달을 수 있게 해주었다. 대강의 전말을 금방 추리해낸 것이다. 그는 전효의 죽음에 비

통하였던 것을 기억했다. 그때 어떤 일을 벌였는지 자세한 기억이 없지만 눈이 아팠던 것 같기도 하고 한동안 눈을 

감고 걸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렇구나……." 

"시주의 오른팔은 거의 치유됐어요. 팔이 잘리고 치료도 안 받았는데  그렇게 살아있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사백님

께서 그러시더군요." 

"사실 먹은 약이 있어서 그런 거요. 여하튼… 이번에 큰 은혜를 입었군." 

진양은 눈을 잃은 사람 같지가 않았다. 묘작은 은근히 그가 발작을 할까 걱정했었는데 의외로 그는 침착했다. 오히

려 그는 정고를 만나고 싶을 뿐이었다. 바로 안내해 달라고 했으나 묘작은 거부했다. 

"시주는 지금 몸이 성치 않아요. 팔만 회복됐을 뿐이지 시력을 잃고 체력도  없어서 함부로 움직이면 안 된다고 하

셨어요." 

"하지만… 그냥 이렇게 앉아있는 건……." 

"괜찮아요. 나중에 감사하면 될 거예요. 사백님은 성격이 이상… 아무튼 그래요." 

이렇게 된 이상 하는 수 없었다. 진양은 그 날부터 몸 회복에 들어갔다. 

몸이 깨끗이 회복된 건 다시 열흘이 더 지나서였다. 진양의 몸은 한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많이 망가져 있었

다. 내적인 아픔과 외적인 아픔. 두 개가 다 합한 게 진양의 상처라 할  수도 있었다. 허나 정고의 의술이 뛰어나고 

묘작도 성심껏 간호하자 진양은 망가진 심신을 어느 정도 치유할 수 있었다. 

처음엔 앞이 안 보이는 게 적응이 되질 않아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진양은 그런 자신의 신세를 한탄

한 적도 없고 남에게 화를 낸 적도 없었다. 그는 깨닫고 있는 것이다. 자신은 이렇듯 아픔과 상처를 받으며 병신이 

되었지만 전효나 북아, 왕령, 당유민 같은 사람들은 젊은 나이에 자신으로 인해 죽었다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진양

은 자신을 원망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자다 일어날 때마다 머뭇거리던 것도 뒷간도 혼자 가질 

못해 묘작의 도움을 받던 것도 모두 불만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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