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三 十 八 章. 혈해(血海)속의 강호 1
남송 연호 보정(寶慶) 2년, 몽고 대군은 징기스칸의 지휘 아래 서하(西夏)를 침공한다. 그들은 순식간에 감주 지방의
주천(酒泉)을 점령하고, 다시 동쪽으로 군을 파병해 양주(凉州)까지 점령했다. 징기스칸은 서하인에 인정을 베풀지
않고 살육을 주도했다. 감주는 순식간에 시산혈해로 뒤덮이고 말았다.
같은 보정 2년, 징기스칸의 셋째 아들인 오고타이는 차간을 대장으로 삼아 금국을 침공하였다. 차간이 이끄는 몽고
군은 손쉽게 금의 기병을 제압하고 위하를 따라 서안을 함락, 다시 변경(변京)을 향해 진군했다. 이 와중에 수많은
난민이 생기고 몽고군의 말발굽에 밟혀죽은 사람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이에 겁을 먹은 금나라 황제는
사신을 보내 화의를 청하였다. 이는 받아들여져 다시금 몽고와 금은 화친을 했으나 그것이 명목상의 잠시 휴전이라
는 것은 세 살짜리 어린 아이도 알고 있었다. 몽고는 서하를 침공할 때 위험한 배후를 처리해둔 것이기 때문이었다.
강호의 시산혈해도 이에 못지 않았다. 강호를 통째로 집어삼키고 천하제일이 되려했던 융왕의 소문이 천하에 알려
져 강호인들은 저절로 규합하였다. 더욱이 난주에서 많은 사람을 구했던 무굉과 진양 등을 비열한 수단으로 죽이려
했던 것이 드러나 강호인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이들은 순식간에 수백 명이 되어 감총방과 함종문의 주도 아래
북망채를 공격, 수적으로 불리한 그들을 전멸시켰다. 융정은 사로잡혀 양만풍에게 직접 죽임을 당했고 융왕은 불타
는 집안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타죽었다. 이때 칼에 베이고 타죽은 사람은 가히 북망산을 뒤덮었다 하니, 안 그
래도 귀기로 흘러 넘치는 북망산에 때아닌 시산혈해가 일어났음은 자명하다.
허나 시산혈해는 그것으로 끝이 나지 않았다. 북망채가 전멸한지 채 1년을 넘기지 못하고 감총방과 함종문에 불이
붙었다. 발단은 함종문 장문인인 조덕이 사부의 명을 받들어 무굉을 죽이려 한 것이었다. 이때는 이미 무굉이 천무
대협의 제자이며 미양의 제자도 된다는 소문이 천하에 잘 알려진 상황이었다. 무굉은 당년 북망산에서 감총방 사람
들의 도움으로 난주에서 쉬고 있었는데, 함종문이 무굉을 죽이려하자 양만풍 등 감총방이 이에 막고 나선 것이었다.
이들의 싸움은 3년이 넘도록 지속됐으며 그 와중에 서로 죽고 죽어 양쪽의 사상자가 백 명에 달했다.
그들의 싸움에 다시금 불을 붙일 편지 한 장. 그것을 품에 고이 담은 한 복면인은 사력을 다해 달려 난주에 도달했
다. 그는 온몸이 상처로 가득했고 벗은 복면으로 드러난 얼굴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그는 가까스로
감총방에 도착해서 서신을 넘겨주었다.
"빠, 빨리… 대비를……."
복면인은 그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쓰러져선 일어날 줄을 몰랐다. 감총방 사람들은 그를 묘지에 묻어주는 한편
방주에게 그 서신을 건넸다. 감총방 방주이자 근래 함종문의 조덕과 함께 대명을 울리고 있는 양만풍은 서신을 단
번에 펼쳤다. 글씨는 매우 삐뚤삐뚤하고 언뜻 보아도 급히 쓴 글이 분명했는데, 내용은 이러했다.
<함종문이 총공세를 취할 듯 합니다. 대천산엔 얼마 남기지 않고 1대, 2대 제자까지 하여 거의 백 명에 달하는 숫
자가 난주를 향해 다가오고 있습니다. 장문인 조덕이 직접 나왔고 동촉삼속(東蜀三俗)도 함께 하여 미리 방비를 하
지 않으면 기습을 당할 우려가 있습니다. 그들은 하루에 한번만 쉬고 이동하고 있으며 앞으로 5일은 못 넘겨 그곳
에 도달할 듯 합니다. 그러므로 서신을 받으실 땐 함종문도 거의 도달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5
대 제자를 통해 전합니다.
4대 제자 규환(奎煥) 배상(拜上)>
양만풍은 다 소리내어 읽기가 무섭게 서신을 꽉 움켜쥐었다. 얼굴엔 어느덧 노기가 일어나고 있었다. 전체적인 얼굴
은 예전과 변함이 없지만 수염이 조금 생긴 건 나이를 먹었음을 알려주었고, 무서운 기가 풍기는 건 그의 무공이
한층 진보했음을 알려주었다.
"조덕! 제 사부의 한을 풀고자 쓸데없는 살상을 저지르는구나."
그는 탁자를 내리치며 분노했다. 이 대청 좌우에 나열한 채로 지켜보는 감총 제자들은 그의 심정을 잘 알고 있었기
에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그나마 3대 제자인 유호(類浩)가 고개를 들며 그를 위로했다.
"방주님. 규환은 최선을 다하고 결국 죽음을 맞이한 것이니 너무 슬퍼하실 것 없습니다. 저희는 슬퍼하기보다 그가
죽어가면서까지 보내준 정보를 기반으로 준비를 해야할 것입니다."
"알고 있소. 조덕 그가 끝내 이러니 이번에 확실히 사생결단을 내야겠소!"
대노한 양만풍 말에 한쪽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서존은 안색이 변했다.
"방주님. 우리의 숫자는 함종문에 반도 되질 않습니다. 이번엔 무굉 무 대협의 힘을 빌어야만 난관을 타개할 수 있
다고 생각합니다."
"무 대협의 힘을 빌 순 없소. 그 분은 우리의 손님이고 진양의 의형으로서 이곳에 쉬고 계시는 거요."
"무 대협께선 아직도 사태의 전말을 알고 계시지 못합니다. 만일 이번에도 그냥 두고 저희끼리 막는다면… 정말 감
당하기 힘듭니다."
양만풍은 할말을 잃었다. 서존은 계산이 빠르고 방내의 사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4년 전에 죽은 전대
방주 용상만큼은 되지 않아도 항상 계산을 하기 때문에 양만풍은 그의 조언을 자주 듣는 편이었다. 지금도 그러했
다. 서존의 말은 사실이었고 또 양만풍도 잘 알고 있었다.
"허나… 무 대협은 많이 노쇠하시기도 하고 진양의 의형이라 난 가능한 그 분을 끌어들이기 싫소."
"아닙니다. 이번 일은 전부 무 대협으로 인해 일어난 일입니다. 더욱이 그 분의 무공은 초절하여 조덕이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만일 그 분께서 조금만 힘을 쓴다면 함종문과의 일은 원만히 해결될 수도 있습니다. 마침 조
덕과 동촉삼속이 직접 나왔다 하니 이번 기회에 확실히 매듭을 짓는 게 좋습니다."
양만풍이 길게 탄식하자 서존은 다시 말을 이었다.
"괜히 함종문이 유명해진 게 아닙니다. <서촉유청 동촉유함(西蜀有靑 東蜀有咸)>이란 말처럼 예전과는 달리 이젠
사천에서 청성파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문파입니다. 더군다나 저번에 보았던 산중답 십이공진(山中答 十二功陣)의
위력을 잊으셨습니까? 우리의 작전이 전부 무너질 정도로 강했던 그 진법은 이번에도 필시 펼쳐질 것입니다. 동촉
삼속과 함께 백여 명이나 나오는 걸 보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알았소. 그대의 말을 따르겠소."
"감사합니다, 방주님. 훌륭하신 판단입니다."
양만풍은 말없이 자리에 앉았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게 있는 듯 유호를 보며 말했다.
"아, 그나저나 진양과 형란의 소식은 없소?"
유호가 고개를 숙이며 답한다.
"없습니다……. 당시 무 대협과 함께 동쪽으로 빠져나간 자들은 전부 살아 돌아왔는데, 전효와 한마일이 이끌고 간
자들은… 단 한 명도 소식이 없습니다."
"융정에게 물어봤더니 도망갔다고 하던데 대체 어디 있는 것일까?"
"방주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두 분은 남을 위할 줄 아는 분들이라 쉽게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팔을 잘렸다고 하니 절로 걱정이 된다오."
양만풍은 한숨을 내쉬었다.
"본래… 전효와 한마일이 그들을 돕도록 하고 그 일을 끝으로 절교를 하려고 했는데, 수녀는 죽었다고 하고 진양은
크게 다쳤다고 하니……."
"방주님은 친구를 아끼셔서 그러실 수 없을 겁니다. 게다가 진 소협도 나쁜 뜻으로 수녀를 도운 게 아니었으니 말
입니다."
유호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참. 복형은 어디 있소?"
그의 갑작스런 질문에 유호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가 다시 재촉하자 겨우 입을 연다.
"방주님, 복차경은 방에서 잠을 자고 있을 겁니다. 그런 놈은 신경 쓰실 필요가 없습니다."
"유형. 그러지 마시오. 그가 나를 미워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오. 내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감총방 방주직은 그
에게로 돌아갔을 테니까."
"그건 절대로 안 될 일입니다. 그가 만일 방주에 앉았다면 전 당장에 때려 치고 감총방에서 나왔을 겁니다. 그는 생
각이 매우 짧고 성격이 급해서 매우 극단적입니다. 더구나 전대 방주 용 방주의 귀여움을 받아 뭐든지 자신 맘대로
하려하고 이루어지지 않으면 생떼를 씁니다. 그런 작자가 어찌 감총방의 방주가 되겠습니까?"
유호가 말하자 서존 등 이곳에 모인 감총방 사람들 태반에 고개를 끄덕였다. 양만풍도 그들이 복차경을 미워하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나도 그의 성품은 잘못됐다고 생각하오. 하지만… 요즘 그는 외로울 거요. 용 방주에게 버려지고 그대들이 따돌리
니 불쌍하기도 하오."
"다 그놈이 자초한 일입니다. 애당초 행실을 똑바로 했으면 될 것을……."
양만풍은 그냥 가볍게 웃으며 손을 뒤흔들었다.
"에이, 자자. 그만 합시다. 유형은 지금 무 대협이나 불러주시오. 긴히 할 얘기가 있다고 전해주시구려."
"알겠습니다."
"서형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방내를 정리해주시오. 갑자기 들이닥치더라도 동요하지 않고 바로 대응할 수 있도
록 말이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양만풍은 유호와 서존에게 각각 명을 내렸다. 이미 그는 예전의 젊고 패기 넘치는 양만풍이 아니라, 큰 방파의 근엄
한 일대 방주 양만풍이었다. 그들은 곧 읍을 하고 함께 밖을 나섰다.
무굉이 찾아온 건 깊은 밤이 다 된 후였다. 양만풍은 함종문의 침입에 대비하느라고 잠시도 쉬지 못하고 계속 대청
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때 무굉이 찾아오자 양만풍은 벌떡 일어나서 그를 맞이했다.
"무 대협, 오셨습니까."
"험. 그래, 나 왔네. 무슨 일인가?"
양만풍은 그를 먼저 상석에 앉게 하였다. 자신은 스스로 밑으로 내려온 후 다시 읍을 한 후에야 지금까지의 사정을
말해주었다. 함종문의 조덕이 제 사부의 한을 풀겠다고 무굉을 죽이려 한다는 것과, 그 때문에 몇 년간 열심히 맞서
싸웠다는 것. 그리고 이번에 함종문이 총공격을 해와 막을 수 없을 듯 하여 도움을 청하려 한다는 것들이었다. 무굉
은 듣는 내내 귀를 파며 딴짓 하다가 도움을 청하려 한다는 말에 눈을 번쩍 떴다.
"뭐라고? 내 도움을?"
"그렇습니다. 가능하면… 대협께서 직접 나서지 않길 바랬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 어쩔 수 없게 됐습니다."
"정말이지!"
무굉은 갑자기 상석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혼자 앙천대소했다.
"우하하. 간만에 몸을 풀겠구나!"
"무 대협, 도와주실 건지요?"
양만풍은 그의 생각이나 행동이 매우 거만하면서도 머리는 덜떨어진다는 걸 알아서 별로 당황하지 않았다. 저런 갑
작스런 행동은 이미 많이 겪은 일들이다. 양만풍의 말에 무굉은 펄쩍 뛰었다.
"당연하지, 그럼 내가 안 도와줄 줄 알았느냐? 그 건방진 놈들이 함종문이라고 했지. 천하제일 자존자대께서 직접
쓸어버려 주마."
"무 대협. 살생은 안 됩니다."
"알아알아. 까짓 거 안 죽이고 반만 죽이면 되지."
양만풍은 어이가 없어 절로 웃음이 터졌다. 무굉은 그처럼 혼자 뭐라고 더 떠들더니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일은 이른 아침에야 터졌다. 함종문의 조덕 이하 등이 쳐들어온 것이다. 그들은 일거에 침입하지 않고 따로따로 나
누어서 감총대전으로 진입했다. 이유는 뻔하다. 감총방은 몽고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한번에 백
여 명씩이나 달려가면 몽고군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물을 게 뻔하고 감총방을 치려한다는
걸 알면 반드시 방해할 것을 조덕 등은 대비한 것이다. 본래 강호인과 관아인은 서로 관계하지 않고 참견하지 않는
게 상례이지만 몽고는 다르기 때문에 대비를 하는 것이 옳았다.
감총방 역시 잘 대비하고 있었다. 함종문은 거의 기습적으로 높은 담을 넘어서 전원이 감총 대전에 침입했다. 감총
대전은 그 크기가 웅장하여 백여 명은 충분히 수용할 수 있었다. 지난날 융왕과 싸움이 벌어질 때만 해도 그 수가
백 명을 훨씬 넘기지 않았던가? 함종문 문도들은 전후좌우에서 삼삼오오 짝을 지어 담을 넘고 들어왔다. 이에 감총
방은 미리 중앙에 모여 대비를 하고 있었다.
조덕은 가장 나중에야 담을 넘어 대전으로 들어왔다. 길고 하얀 수염이나 주름진 얼굴은 그가 많이 노쇠했음을 알
려주고 있었다. 허나 아직 그는 강했다. 사부인 단목리에게서 배운 이화접목의 수법으로 명실공히 함종문을 사천 최
고의 문파로 성장케 하지 않았는가! 물론 그가 만일 이화접목을 더 일찍 대성했다면 함종문이란 게 생기지 않았을
지도 모르긴 하다.
"양 방주는 여전히 풍채가 좋으시군."
조덕이 처음 한 말이었다. 양만풍도 지지 않는다.
"조 장문도 만만치 않소이다."
"쓸데없는 말은 그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지. 자존자대를 내놓으시오."
그는 으레 수적인 우세를 이용하여 압박하였다. 허나 그렇다고 양만풍이 당할 자인가?
"그거야말로 쓸데없는 말이올시다."
"그래서 안 내놓을 거요?"
"뻔한 걸 묻소? 무 대협은 우리의 손님으로 당신들이 뭐 어쩌고 해가며 빼내갈 수 없소."
조덕은 슬슬 화가 났다.
"당신들에겐 손님이지 나에겐 원수요. 내 사부인 선리절미께선 분명 그가 죽기를 기다리고 있을 거요."
"나도 그 얘긴 들어서 알고 있소. 뭐 미양의 제자라서 죽이겠다는… 그거 참 황당한 말이 아니겠소?"
"그만하고. 내놓을 거요, 안 내놓을 거요?"
"안 내놓겠소."
"그럼 붙어야지."
말싸움에선 양만풍이 이겼다고 봐야하지만 실제 무공 대결에선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다.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누
구든 함종문이 우세할 거라 점칠 것이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지금껏 함종문과 감총방은 수십 차례에 걸쳐서 소모전
을 펼쳤지만 그때마다 전략적인 면만 감총방이 앞섰을 뿐, 무공 수준에선 함종문이 턱없이 높았다.
조덕이 한마디 내뱉고 가볍게 손을 휘젓자 단숨에 12명의 함종 문도가 나타나며 앞으로 나왔다. 그들은 나오자마자
바로 이쪽저쪽 움직이더니 금새 이상한 모양을 만들어냈다. 12명이 모두 뭉쳐있으면서도 떨어져있는 것 같은 게 분
명 진법으로 그 유명한 산중답십이공진일 것 같았다. 양만풍은 그 진법 모양을 자세히 노려보았다. 아무리 봐도 12
명이 서로 규합하는 진법은 아니다. 좌측에 여섯, 우측에 여섯으로 밟은 방위만 좀 해괴할 뿐 별다른 점은 없었다.
허나 방심하진 않았다.
"어떻소? 이미 얘기를 전해들어 알겠지만 바로 4년 전에 우리 함종문이 만든 진법이요."
"흥. 그 진법을 모르는 자가 누가 있겠소? 그 진법 덕분에 동촉유함이란 칭호까지 받았는데 말이오."
양만풍이 날카롭게 맞받자 조덕은 앙천대소했다.
"아무튼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 나선 이들이 함종문의 2대 제자라는 거요. 이들도 제압하지 못한다면 일찌감치 포
기하고 무굉을 내놓는 게 좋을 거요."
"그렇소? 그럼 제압해버려야겠군."
"흥. 할 수 있으면 해보시지."
조덕은 자신만만했다. 양만풍도 그가 그러는 것을 이해했다. 분명 저 산중답십이공진은 근래 가장 유명한 진법으로
맞붙은 사람들은 다시는 함종문을 무시하지 않을 정도라고 하기 때문이다. 함종문이 동촉유함의 칭호를 받은 것은
물론 그들의 무공에 이화접목이라는 상승 무학이 곁들여져 있기 때문이지만, 그 모든 것을 잘 혼합하여 만든 이 해
괴한 진법도 굉장히 큰 역할을 했다.
그 위력은 양만풍이 직접 본 것은 아니나 분명 북망채 전투에서 펼쳐졌다고 한다. 그때 감총방은 서쪽으로 침입하
고 함종문은 남쪽으로 침입했는데, 이때 남쪽으로 갔던 강호인들이 말하길 진법의 위력이 너무나 대단하여 별로 손
쓸 것도 없이 쉽사리 북망채로 진입했다던 것이었다. 이 말은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몇몇 기개 있는 강호인들이 함
종문을 찾아가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모조리 다 패한 일이 있었다.
"어쩔 거요? 벌써 포기한 거요?"
양만풍이 가만히 있자 조덕이 시비를 걸었다. 양만풍 뒤에 있던 유호가 나선다.
"이 진이 강하다는 건 알지만 감총방을 누를 순 없을 걸?"
"그럼 해보시오. 내가 자랑하는 게 아니라 빨리 끝을 봐야할 게 아니오?"
유호가 대답하지 않고 양만풍을 보았다. 양만풍은 슬쩍 미소를 머금었다.
"맞는 말이오. 그럼 12명이니 우리도 12명을 쓰겠소."
"마음대로 하시오."
양만풍은 즉시 유호를 포함하여 이회(李淮), 미생요(微生要), 해완(海完) 등 감총방의 실력 있는 12명을 불러냈다. 그
들은 말 그대로 하나같이 감총방의 실력 있는 자들이었다. 전부 3대 제자지만 무공 수준은 지난날 전효나 한마일보
다도 한참 위였다. 양만풍은 그들에게 싸울 것을 명하였고 그들은 모두 이를 악물었다. 긴장한 얼굴로 각자 감총방
의 유명한 무공인 혼연권법 기수식(起手式)을 취했다. 그것만 보아도 산중답십이공진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선공은 당연히 감총방이었다. 그들은 나름대로의 장점을 살려 세 패로 나눠져 공격을 가했다. 4명씩 짝을 짓고 그들
끼리는 서로 화합하며 이러한 세 패가 각기 덤벼들자 그 위세가 자못 뛰어났다. 조덕은 갈, 하고 고함치며 싸우라는
명을 내렸다. 그 즉시 함종문 제자들은 바로 진법을 발동했다.
산중답십이공진은 그 방위가 12방위로서 한 방위씩 잡아 곧 12명이 펼치는 진법이었다. 이 진법의 가장 특이한 점
을 고르라면 양쪽 두 패로 갈라졌는데, 이 중 특정한 3명이 모이면 그 위력이 굉장해진다는 것이다. 이는 방위의 교
합으로 특정인 3명씩 합해지면 그것이 총 4개가 되어 위력이 상상을 초월했다. 이런 것들을 알지 못하는 유호 등은
조금도 주춤거리지 않고 맹공을 펼치고 있었다. 해완이 이 진법을 한번 본 적이 있었으나 자신들이 이처럼 잘 규합
해서 공격하면 충분히 이길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다.
물론 그런 안이한 생각은 반드시 깨지기 마련이다. 이들의 치고 빠지며 합하고 분해되는 공격은 가히 할말을 잃을
정도였다. 특정한 사람 셋이 모여 공격하지도 않건만 그냥 평소 진법의 상태로도 유호 등 12명을 제압할 수 있었다.
가령 유호가 어느 한 명에게 일격을 가하면 그는 아주 손쉽게 피하고, 만일 미처 보지 못해 피하지 못한다면 바로
곁에 있는 여러 명이 동시에 막고 반격까지 해주었다. 이런 조화는 실제로 특이하다 할 것은 아니다. 허나 그 동작
이 너무나 신속하고 척척 들어맞아 유호 등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이었다.
또 한 가지 유호 등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화접목! 한 사람이 펼치는 이화접목이 아
니라 마치 이 진법 자체가 펼치는 이화접목 같았다. 좌측에서 공격을 가하던 미생요가 저도 모르게 유인되어 우측
으로 나가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그냥 나가면 말도 안 하지, 아예 자기편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후방에서 한참
공격을 하고 있었는데 한번 헛질 하고 나니 모르고 전방에서 공격하던 자기편에게 주먹을 내지르는 경우도 종종 발
생했다. 그렇게만도 하질 않는다. 어떤 경우는 한참 공격을 하는데 왠지 힘만 빠지고 정신을 못 차리다가 위기에 처
하곤 했다. 참으로 귀신에 홀린 것이라 하면 잘 설명될 법하게 유호 등은 완전 그들 손에 농락을 당하고 있었다.
양만풍은 더 볼 수가 없었다. 단숨에 내공을 극으로 끌어올려 세게 일갈했다. 그는 본래 내공이 없었지만 용상이 죽
기 전에 건네준 특이한 내공 심법으로 이미 상당한 내공의 경지를 이룩하고 있었다. 그의 일갈은 굉장히 크고 가슴
을 진동하게 만들어서 유호 등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들은 모두 얼굴을 붉히며 이쪽저쪽 찔러보더니 결국 뒤로
물러서고야 말았다.
"죄송합니다, 방주님."
양만풍은 그저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뭘 그런 걸 갖고 그러시오? 저 진법엔 사실 귀신이 있나보오."
"정말 그런 거 같습니다. 너무 해괴해서 도무지 감을 잡지 못하겠습니다."
그들의 대화를 듣던 조덕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이보시오. 왜 산중답십이공진에 귀신이 있다는 거요?"
"그렇지 않소? 분명 상대를 열심히 후리는데 결국 얻는 것은 하나도 없고 도리어 힘만 쭉 빠져서 비틀거리니 그야
말로 귀신이 붙어서 정기를 빨아먹은 것 같소."
"그건 참 멍청한 소리요. 당신이 이화접목을 안다면 그런 소리를 못하겠지."
조덕이 은근이 자랑하자 양만풍은 그가 매우 얄미웠다.
"흥. 이화접목이라면 귀파의 동촉삼속을 통해 자주 보았소. 그럼 그 이화접목을 진법에 부합시켰다는 거요?"
"이제야 알아듣는구려. 그렇소. 산중답십이공진은 방위를 그렇게 정하고 전후좌우 사방팔방에서 올 공격을 모두 이
화접목에 근거하여 막기 때문에 스스로 힘을 잃고 마는 것이오. 이화접목이 어떤 건지는 잘 알 테니 굳이 설명해줄
필요는 없겠지."
"물론 잘 알고 있소. 역시 함종문은 참으로 잘났소이다."
양만풍은 대답하며 동촉삼속을 바라보았다. 동촉삼속이라! 4년 전만 해도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릴 이름이다. 하지만
지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간 강호인 취급을 못 받는다. 함종문이 산중답십이공진을 만들고 강호에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을 때, 이들이 그 맛을 보여줘서 여러 강호인들은 그들을 동촉삼속이라 불렀다. 그 동촉삼속이 대체 누굴까?
바로 사원, 연경후, 마보강이었다. 이들은 현재 함종문의 1대 제자요, 그 실력은 모두 최고 수준이라 그런 별호 정도
가 붙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 당연했다.
이 중 연경후와 마보강은 양만풍과 절친한 벗이었다. 지난날 우연히 남양에서 만나 의기투합했던 그들은 나라를 사
랑하는 마음이 통하여 함께 변하지 않을 의리를 다졌다. 하지만 운명은 너무나 악하여 결국 이런 원수 관계가 되고
말았다. 물론 처음엔 그들 모두 주춤주춤했다. 허나 연경후 등에게 있어서 사부의 은혜란 감히 '다 갚을 수 있다'라
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깊었고, 무엇보다도 마보강의 아내가 된 문인능이 감총방의 제자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때문에 이들은 원하지 않던 원수 사이가 되고 만 것이다.
동촉삼속인 사원, 연경후, 마보강은 양만풍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층 더 매서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
았다. 이제 그들은 철천지원수가 된 것이다. 아무도 원하지 않았지만 운명은 그것을 조장했고 결국 이런 상황을 만
들어냈을 뿐이다.
"양 방주. 저 아이들만 노려보지 말고 뭔가 빨리 결단을 내리시구려."
양만풍은 조덕의 말에 정신이 들었다. 쭉 상황을 가늠해보았다. 첫째로 함종문의 수가 감총방 수의 배도 넘는다. 둘
째로 산중답십이공진의 위력이 초절하여 감히 맞서서 이길 자신이 없었다. 셋째로 좀 전의 패배로 감총방의 사기가
너무 저하되어 있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양만풍은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직접 나설 거요?"
그가 창을 높이 든 채 나서자 조덕이 조금 놀라며 한 말이었다. 양만풍이 맞받는다.
"우리 분위기가 너무 침체된 거 같아서 말이오."
"괜한 행동은 안 하는 것만 못 하오. 산중답십이공진은 일단 펼쳐지면 설령 양 방주라도 힘을 못 쓸 거요."
"흥. 어디 해보시지."
조덕은 분명 고의로 오만을 떠는 것이 아닐 것이다. 본래 조덕은 도의를 알아서 함종문이 대파가 됐다고 건방을 떨
인물이 아니었다. 지금 보이는 오만은 사실 오만이라기보다는 자신감에 가까웠다. 확실히 동촉유함이라 불릴 만큼
문파를 크게 성장시켰는데, 절로 자신감이 안 든다면 그게 사람인가? 양만풍은 그를 이렇게 이해하면서도 약이 오
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창을 거세게 휘저으며 악가창법의 진수를 펼쳤다. 이참에 아예 산중답십이공진에 대결해 끝을 보려는 것이다. 양만
풍의 무공 수준은 이미 변해있었다. 악가창법은 실상 내공이 필요 없는 무공이다. 그 빠름과 동작 등의 초식만으로
도 상대를 충분히 제압하기 때문이며, 창시자라는 악비가 내공이 심후한 고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럴 정도인데
내공을 가미하면 어떻겠는가! 그가 예전에 악가창법을 시전해도 위력이 뛰어났거늘, 이제 감총방 방주 대대로 내려
오는 내공 심법을 익혔으니 그 증대된 위력이란 참으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는 창을 빠르게 세 가닥 찔러 넣었다. 좌측 두 명의 가슴과 우측 한 명의 배를 노린 것으로 동작 자체가 매우 시
원시원했다. 창이 깊숙이 찔러들어 가는 게 흡사 근골을 깨부수겠다는 의지가 엿보여 그야말로 찬호노육(餐胡虜肉
= 오랑캐의 살을 씹어먹는다)이란 초식 이름에 걸맞았다. 그의 갑작스런 기습에 산중답십이공진을 펼치고 있던 자
들은 좀 놀란 듯 했다. 굉장히 빨라서 피하기 어려울 듯 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서로 화합하여 그 공격을 무색
하게 만들어버렸다. 그러니 양만풍이 화가 안 치솟을 수가 없다. 이번엔 창을 빙글빙글 돌려 한순간 내리그었다. 창
이란 본래 찌르기 위주이긴 하나 악가창법은 쉽게 변형을 줄 수 있었다. 이 초식은 먼저 상대를 베는 듯 그으면서
몸에 닿는 순간 비틀어 살갗이 찢기고 피를 내뿜게 하니, 이 역시 음흉노혈(飮匈奴血 = 오랑캐의 피를 마신다)이라
는 초식 이름과 잘 부합한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소용이 없었다. 산중답십이공진은 그의 공격에 일순 와해되는 듯 하더니 사실은 그 공격을 와해시키는 것
이었다. 더구나 잠깐 틈이 생기자 도리어 역습을 가하는 게 아니겠는가! 양만풍은 화도 나고 기도 막혀서 창을 휘두
르며 물러섰다. 고작 두 초식을 이용해 싸움을 벌였을 뿐이지만 그 해괴함은 충분히 견식했다.
"정말 보면 볼수록 해괴한 진법이군. 과연 이화접목이야."
"알았으면 그만 자존자대를 내놓으시오."
양만풍은 패배를 시인하면서도 조덕의 말에는 코방귀만 뀌었다. 조덕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대체 그가 양 방주에 있어서 무어요? 왜 그를 두둔하려는 거요? 난 수년 간 그게 참 이상했소."
"생각할 것도 없소. 무 대협은 지난날 난주에서 우리를 구해주었고 또 많은 강호인들도 구해주었소. 게다가 그 분은
내 벗인 진양의 의형이요. 내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소?"
"그건 물론 맞는 말이오. 사람이 은혜를 잊는다면 그건 이미 사람이 아니겠지. 하지만 자존자대는 다르오. 그는 난
주에서 당신들을 구해줬지만 내 이야기를 들어보니 본의 아니게 구해준 거라더구려. 그는 단지 진양을 구하려 했던
것이지, 당신들을 구하려고 온 게 아니었음을 알란 말이오."
양만풍은 냉소할 뿐 답하지 않는다. 조덕이 말을 이었다.
"또 진양도 그렇소. 그놈은 분명 내 제자였고… 양 방주의 절친한 벗이었지만, 이제는 그 아무것도 아니잖소? 그 녀
석은 오래 전에 함종문에서 파문됐으며 몇 년 전에는 양 방주도 그와 절교를 했잖소? 이는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인
데 대체 왜 그러는 거요?"
"흥."
"강호에선 양 방주가 자신이 내뱉은 말도 지키지 않는다고 수군거리고 있소. 한번 잘 생각해보시오."
양만풍이 버럭 화를 냈다.
"내 분명 할말을 지키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진양이 잘못한 건 없었소! 더욱이 수녀는 죽은 지 오래고 그는 행방불
명되지 않았소? 이런 것이라면 언제든 마음을 바꾸고 더 좋은 방향을 택할 수 있는 거요. 무작정 한 말이라고 다
지킬 수는 없는 거요."
"하지만 절교라는 건 보통 큰 게 아닐 텐데……."
"흥. 조 장문도 그리 잘한 건 없소. 지금까지 조 장문 자신을 되돌아본 적이 있기나 했소? 한번 봐보시구려."
조덕이 얼른 대답하지 못하자 동촉삼속이 나섰다. 그들 셋은 나란히 서서 무기를 꺼내들었다. 연경후가 소리친다.
"양 방주, 사부님을 모욕하면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연형도 잘 생각해보시오. 지금 당신들은 모두 실수하고 있는 거요. 세상에 수년 간 사부의 원수를 갚겠다고 하면서
수많은 인물을 죽게 만들다니. 그야말로 감총방, 함종문 양 방파의 손실이올시다."
"양 방주가 선공을 허락한 걸로 알고 시작하겠습니다!"
연경후가 그에게 예의를 갖추는 이유는 지금 양만풍은 일파의 방주이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모두 동급으로 이런
예의를 지킬 필요가 없었지만, 지금 양만풍은 일파의 방주로 그들의 사부인 조덕과 동격이기 때문에 함부로 말을
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 연경후는 사원과 마보강에 눈짓하며 달려들었다.
양만풍은 그들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모두 사부를 하늘처럼 떠받들고 있어서 조덕에게 한번 욕하는 것은 그들
에게 백 번 욕하는 것보다도 심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이다. 양만풍은 일단 그들의 공세를 막기 위해 창을 휘둘렀다.
그들의 기세가 여간 날카로운 게 아니라서 처음부터 독룡출동과 같은 절초를 펼쳤다. 한순간 창을 모으더니 갑자기
손을 비틀어 회전하며 돌진했다. 끝은 동촉삼속의 한 중앙을 찌르고 있어서 그들은 저절로 흩어지고 말았다.
연경후가 피하자마자 바로 그의 목젖을 노렸다. 그와 함께 마보강이 그의 허리를 노린다. 이 동작들은 분명 동시에
이루어져서 양만풍은 다 막아낼 수가 없었다. 일단 몸을 뒤로 날려 피하니 바로 사원의 공격이 들어왔다. 사원은 좀
처럼 해선 안 되는 방식인 몸을 공중에 띄운 상태에서 공격해왔다. 싸움에 임할 때 몸을 허공에 띄우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양만풍의 자세가 흐트러져있기 때문에
그의 역공을 받을 염려가 없는 것이다. 이때라면 공격은 사원이 할 수 있고 허공에서 매섭게 떨어지는 기세만으로
도 충분히 위압감을 줄 수 있었다.
과연 양만풍은 감히 맞서지 못하고 뒤로 또 물러섰다. 다시 한번 연경후와 마보강의 협공이 들어오고 연달아 사원
의 공격이 들어왔다. 두 번 반복하고 나자 양만풍은 어느새 감총방 사람들에게까지 근접할 정도로 물러서 있었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음을 안 그는 첫 공격을 하는 연경후에게 대담하게 같이 창을 내질렀다.
평범한 강호인이라면 분명 깜짝 놀라서 허둥대다가 당했을 것이다. 창의 길이는 역시 검보다 길기 때문에 허둥대며
검을 빼내다가 창에 찔릴 가망이 있었다. 허나 연경후는 과연 동촉삼속의 최고 실력자다웠다. 갑자기 왼손을 앞으로
내밀어 그의 창을 잡는 듯 하다가, 살짝 회전을 주며 급격히 빼내어버렸다. 바로 이화접목이라는 상승의 무공인 것
이다. 더구나 지금 그가 펼친 이화접목의 수법은 단지 기술로만 한 것이 아니라 내공의 힘까지 가미되어있었다. 굳
이 손을 대지 않고도 공력을 이용하여 충분히 시전이 가능했다. 이런 반격에 양만풍은 내공이 심후한 탓으로 겨우
버틸 수 있었다. 아니었다면 이 순간 창을 놓쳐버렸을 것이다.
"잘 버티시는군!"
기회를 엿보던 마보강이 빠르게 접근했다. 양만풍은 그의 검이 자신의 허리를 찌르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도무지
손을 쓸 수 없었다. 연경후의 이화접목은 과연 대단하여 한동안 자세를 허물어지게 만든 것이다. 그 순간 유호가 다
시 나섰다. 심신일도 초식으로 빠르게 날아들어 마보강의 손목을 후려갈겼다.
이걸 본 사원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마보강이면 충분히 유호를 상대할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사원은 동촉삼속의
맏형이 아닌가? 그는 바로 유호의 가슴팍을 향해 검을 날렸다. 내공을 받은 검은 실로 쾌속으로 유호에게 접근했다.
그 공격을 느낀 미생요가 뛰어들어 검을 걷어찼다. 또 그를 따라서 이회, 해완도 함께 뛰어들어 공격을 퍼붓기 시작
했다. 이럴 때 함종문 제자들이 어찌 또 가만히 있으랴? 그들은 조덕이 말리지 않을 것을 알고 바로 양만풍 등에게
덤벼들었다. 순식간에 혼전이 시작되어버린 것이다.
그야말로 혼전이었다. 좀 전까지 없던 적이 어느새 등뒤에 나타나서 공격을 하는가 하면, 적이라 생각하고 공격했더
니 사실은 아군인 경우도 있었다. 완전 뒤섞여서 누가 누군지 모르고 누구든 근접만 하면 공격을 서슴대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점점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다. 지켜보던 감총인들이 양만풍 등이 밀리는 것을 알고 또 합세한 것
이었다. 그렇게 되자 싸우는 숫자로 볼 때 감총방이 훨씬 많았다. 조덕은 다시 명을 내렸다.
"1대 제자는 나가 도와라!"
함종문 1대 제자라면 사원, 연경후, 마보강과 같은 계열이다. 즉 그들의 실력이 이들 동촉삼속에 미치지는 못하겠지
만, 1대 제자인 만큼 여간 강한 게 아닐 것이다. 양만풍은 금방 그것을 감지하고 상황이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 다는
걸 느꼈다.
(안 된다. 함종문은 개개인의 실력이 뛰어난데 하물며 1대 제자라면 동촉삼속이나 진양과 동문이 아닌가! 수도 저들
이 많으니 이대로 있다간 패배는 고사하고 전멸을 당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