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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 十 九 章. 감옥 이야기 2 (79/90)

                                   第 三 十 九 章. 감옥 이야기 2

"앗! 당신은?" 

형란은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를 뻔했다. 누군가의 놀란 음성이 발 밑에서 들렸기 때문이다. 이곳 감옥의 각방은 아까 

형란도 들었다시피 밑에 작은 구멍이 있는데 그곳에서 웬 사람의 눈이 보이며 경호성이  흘러나오는 게 아닌가! 형

란이 아직 진정을 하지 못했을 때 대노한 만조가 눈을 부라렸다. 

"이 역적 놈이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당장 입 다물고 안에 들어가지 못해?" 

"만형. 제발 이러지 마시오. 이곳에 그냥 있자니 귀가 멍해서 머리까지 멍해지는 느낌이오." 

이 감옥에선 원래 조용해야 한다. 그들에게 벌을 준다기보다는 벌을 주면서 그보다 먼저 참회를 할 수 있도록 해주

는 곳이 바로 이 감옥인 것이다. 그래서 만조도 입을  열지 않았고 형란과 시종에게도 당부를 한 것이었는데, 감옥 

안에 갇혀있던 복차경이 자꾸 떠드는 게 아닌가? 그에 만조는 화가 났다. 더구나  방주와 굉장히 친한 걸로 알려진 

형란이 저리 놀라하는 모습을 보자 걱정하는 마음도 생겨 더 화가 났다. 

"복차경! 그 입을 찢어버리기 전에 입 다물어라." 

"내 입을 찢어도 할 수 없소. 잠깐이라도 누군가 나와 대화를 해준다면 당장 목이 날아가도  좋겠소이다. 머리가 멍

해서 금방 미친놈이 될 거 같소." 

복차경도 만만치 않았다. 그 작은 구멍으로 눈, 코,  입을 내밀며 보고 말하는 것이 불쌍하면서도 구차했다. 만조는 

그 구멍을 향해 발길질을 하려고 했다. 허나 발을 뒤로 들었다가 앞으로 후리려는  것을 본 형란은 급하게 그를 말

린다. 

"기왕 이렇게 됐으니 어쩔 수 없지요. 제가 아까 소리를  질러서 그가 안 것 같아요. 때리지 말고 우리가  나가도록 

해요." 

"휴……. 형 낭자의 생각이 그렇다면 따르겠습니다." 

만조는 형란의 말에는 따르려는 듯 했다. 슬쩍 복차경을 노려보며 눈을 불태우더니 몸을 홱 돌렸다. 그때 또 복차경

이 소리를 내질렀다. 지금까지 하던 음량보다도 몇 배는 더 크게 아주 악을 질렀다. 

"그냥 가지마! 나하고 대화 좀 해줘! 여기 오래  있다간 머리가 하얗게 변해서 미친놈이 되고 말 거야!  참회당인지 

뭔지 모르니까 나 좀 살려줘!" 

"이놈이… 죽고 싶으냐?" 

만조는 더 화를 못 참고 기어이 다가와 구멍 사이로 발길질했다. 형란이 말릴 틈도 없이 날아간 발이다. 하지만 복

차경은 어떻게 잘도 알아채고 쏙 피해버려서 오히려 만조의 발목이 동그란 구멍 면에 부딪쳤다. 

"너… 더 떠들면 사부님을 모셔오겠다. 이곳에 규율 1항이 절대 말을 해선 안 된다는 것이라는 걸 알 텐데?" 

"그러는 너는 어떻고! 아무튼 말 좀 하자고 만형. 이러다 말하는 법까지 잊어버리겠소." 

"입 다물지 못해?" 

그들의 음성이 점점 높아지자 이쪽저쪽에서 부시럭대는 소리가 들렸다. 다른  각방을 쓰는 죄인들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구멍으로 얼굴을 들이대는 것이다. 삽시간에 여러 개의 방문 구멍으로 정기 없는 눈빛들이 나타났다. 형란은 

그 모습에 덜컥 겁이 났지만 불쌍하기도 했다. 특히 이 복차경은 더 불쌍해 보였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대화만이라

도 나누자고 저리 발악을 할까? 그녀는 마음이 착해서 원한다면 말상대라도  되어주고 싶었다. 허나 이곳은 명백히 

감옥이고 고요함 속에서 스스로 참회하는 곳이라니 그럴 수도 없다. 

"그냥 나가요. 아인, 우리도 나가자." 

여종의 이름이 아인(兒忍)이다. 형란의 말에 만조는  씩씩대면서도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뒤에서  복차경이 뭐라고 

악을 쓰든 말든 무시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아까처럼 조용한 발걸음이 아니라 쿵쾅거리는 성난 발걸음이다. 여종 아

인도 지레 겁을 먹었는지 사륜거를 밀며 급하게 그곳을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올 때까지 복차경의 악은 계속 들렸으나 일단 나와서 문을 닫고 나자  소리가 거의 안 들렸다. 조금 들린

다 함은 감옥 정문 옆에 있는 작은 구멍사이로 소리가 들리는 정도. 하지만  이것도 멀어지면 저절로 안 들릴 것이

며 복차경도 제풀에 지쳐 입을 다물 것이다. 문득 만조가 형란을 보고 말했다. 

"형 낭자. 오늘 있었던 일은 가능한 발설하지 말아주십시오. 서 사부님이 아시면 제가 크게 혼날 것 같습니다." 

"만 소협의 솔직함이 좋군요. 사람은 거짓이 없어야하죠. 하지만 이번 일은 전적으로 제가 잘못한 거니 가능한 발설

하지 않겠어요. 설령 발설하게 된다 해도 제가 책임질 테니 만 소협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만조는 감사한 마음이 들어 깊이 고개 숙여 읍했다. 형란과 여종은 곧 그와  함께 울타리 밖으로 나섰고 만조는 숲

길 한가운데서 멈추며 그들을 떠나보냈다. 

이후로 형란은 그 감옥에 3일 간 가지 않았다. 자신 때문에 또 소란스러운 일이 생길 것이라 짐작하고 일부로 가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 있다보니 복차경이나 그곳 감옥이 있던 사람들의 가련한 모습이 떠올랐다. 

(서 대협의 허락을 받고 가서 말상대가 되어줘야겠다.) 

그녀는 작심한 때부터 곧장 행동에 옮겼다. 아인과 함께 서존을 직접 찾아가  사정을 구하며 그들이 너무 고통스러

워하니 잠깐 말상대가 되고 싶다고 전했다. 서존은 난감한 듯 했다. 

"형 낭자는 마음씨가 착하고 고와서 그리 생각하시는군요. 허나… 그곳은 감옥이지만 아무래도 참회를 목적으로 해

서 말을 하면 안 되는데……." 

"하지만 그는 참회는 못하고 매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어요." 

"그건 처음 들어간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요. 형 낭자도 불법을 배웠으니 알 테지만, 본래 어떤  일이든 처음 시작할 

땐 고통이 따르는 법이올시다." 

형란은 딱히 할말이 없었다. 분명 그건 사실이다. 어떤 일이든 초반엔 잘  되지 않고 고통스러운 법, 그것이 적응이 

되고 숙달이 되면서 변해 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복차경의 불쌍한 모습은 얼른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는… 저 때문에 그런 꼴을 당하게 된 셈이니 그가 참회할 수 있도록 좋은 말이라도 해야겠어요." 

"복차경 그놈은 아마 듣지 않을 겁니다. 전대 방주님도 그의 성품을 고쳐보려고 많은 시도를 했지만 도무지 통하지 

않는 놈이었습니다. 항상 복수심에 불타서 양 방주님께도 감히 무례한 태도를 자주 하지요." 

말하는 서존의 낯빛이 무섭게 변한다. 형란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서존의 말로 보아 복차경은 모두에게 미움을 받

고 있는 듯 했다. 만조도 그가 몇 마디 한 것 가지고 무섭게 눈을 부라리며 무섭게 발길질까지 했었다. 그럴수록 형

란에겐 복차경이 더 불쌍하게 느껴질 뿐이다. 형란의 착한 마음씨, 자신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미안함, 참회를 하지 

못하니 참회하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거기에 복차경이 그 날 보여주었던 가련한 모습까지 합쳐지자 이

렇게 필요 이상의 행동을 하는 것이리라. 

"어떻게 방도가 없을까요? 그 감옥 안에선 말을 하면 안 된다고 하니……." 

서존도 형란의 뜻은 잘 알고 있었다. 

"형 낭자의 생각은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요. 하지만  감옥 안에선 말을 해선 안 됩니다. 그곳

은 감옥이면서 참회당과 같은데다가 복차경 이놈 한 명만 있는 것도 아니라서." 

"……." 

형란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안타까워했다. 서존은 눈치가 빨라서 그녀의 생각을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이러는 이

유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녀를 도와주고 싶기도 했다. 

"형 낭자는 불법에 정통하고 마음씨가 고우니 필시 그를 개과천선시킬 수 있을  겁니다. 허나 감옥 안에선 말을 할 

수 없죠. 그렇다고 말을 안 하면 도움을 줄 수 없을 테니 밖에서 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어차피 울타리 안에는 죄

인을 지키는 고수가 많고 책임자 만조도 실력이 괜찮습니다. 복차경의 손목과 발목을 묶어두면 되겠지요." 

서존의 이 말은 형란의 웃음을 샀다. 형란은 활짝 웃으면서도 동시에 스스로 꿀밤을 쥐어박는다. 

"정말 좋으면서도 간단한 방법이군요! 그 생각을 못하다니… 아무튼 정말 고마워요." 

서존은 슬쩍 눈웃음을 지었다. 양만풍에게 들은 말대로 그녀는 확실히 단순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서존은 

복차경에 관한 친필 서한을 써서 그녀에게 넘겨주었다. 허나 이제 저녁이니 가는 건  지금 가는 건 좋지 않다며 내

일 가기를 권했다. 그녀는 조금 고민했으나 이를 받아들였다. 벌써 노을이 지고 있었다. 

다음 날 형란은 아인과 함께 감옥에 도달했다. 만조는 그녀가 다시 온 것이 놀란 듯 했다. 친필 서한까지 넘겨주니 

더 놀라하고 그 내용을 보며 더더욱 놀라한다. 만조는 한참동안이나 그 친필 서한을 보고는 확실히 서존의 글이 맞

다고 여겼는지 직접 감옥에서 복차경을 데리고 나왔다. 

복차경의 꼴은 가관이었다. 저번에 봤을 때와는 많이 다르다. 지난번 함종문과 감총방이 싸울 때 봤던 복차경은 눈

매가 찢어지고 눈도 정명하여 약은 것 같은 느낌이 풍겼다. 헌데 지금은 그런 기운은 온데간데없고 배고파 죽어 가

는 거지같은 모습이었다. 옷은 더럽고 이곳저곳이 찢어졌으며 얼굴엔 핏기가 다 없어 보였다. 봉두난발에  맨발이기

도 했다. 얼마 전 감옥에서 봤을 때의 얼굴보다도 더 핼쑥해 보였다. 

그는 만조에게서 상황을 전혀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거의 만조에게  끌려나오다시피 나왔는데 그러는 와중에 사륜

거에 앉은 형란을 보고 굉장히 놀라는 눈치였다. 그는  만조를 돌아보며 형란을 흘낏흘낏 돌아보았다. 만조가 그의 

뒤통수를 때린다. 

"이 반도야. 형 낭자가 마음이 고와서 네가 편안히 개과천선할 수 있도록 도우신단다. 가서 감사 드려라." 

"만형. 자꾸 나보고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시오. 옛날에 만형은 내 앞에서 얼굴도 못 들었잖소." 

"너… 이놈이?" 

만조가 다시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방금 전 때린 것보다 배는 더 센 것 같다. 복차경이 엄살 같은 비명을 지르자 형

란이 소리쳐 말렸다. 

"만 소협, 그만 하세요." 

만조는 복차경을 노려보며 뒷목을 잡아들었다. 만조의 힘은 좋은 듯 했다. 한번에 그를 들어올리더니 버둥거리는 그

를 순식간에 형란 앞까지 데리고 왔다. 만조는 곧 그의 종아리를 걷어찼다. 여길 세게 차면 절로 다리가 구부러지기 

때문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다. 형란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다시 세우세요! 사람을 함부로 모욕하면 안 되는 거예요." 

"형 낭자. 이런 놈은 모욕을 좀 당해봐야 합니다. 이놈이 어떤 놈인지 형 낭자는 잘 모르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안돼요." 

만조는 하는 수 없이 복차경을 세워주었다. 일어선 그가 미소를 짓는 것  같아 만조의 열화를 정수리까지 닿았지만 

형란이 앞에 있음을 의식하고 몸만 부르르 떨었다. 

"만 소협은 이제 가셔도 돼요. 그의 손목과 발목은 묶였으니 어쩌지 못할 거예요." 

"알겠습니다. 혹 도움이 필요하면 소리를 지르십시오." 

형란이 고개를 끄덕이자 만조는 한번 복차경을 노려보더니 곧 물러섰다. 그는 한쪽  끝으로 가되 멀리서도 형란 등

을 보고 있었다. 혹시 생길 위급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함일 것이다. 만조말고도 주변엔 여러 감총인들이 널려있었

다. 

"정말 고맙소. 내가 낭자의 도움을 한두 번 받는 게 아니구려." 

먼저 말문을 연 사람은 복차경이었다. 그는 허리를 굽히며 읍했다. 형란은 웃으며, 

"아니에요. 저 때문에 이런 일을 당하게 됐으니 돕고 싶었어요. 하지만 죄는 분명히 있어서 더 도울 수가 없군요." 

"괜찮소. 이곳으로 나와서 이리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정말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올시다. 하하, 이제야 살만

하군." 

복차경은 웃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털썩, 하고 편하게 앉는 것이 조금은 방자한 작태다. 하지만 형란은 조금도 개

의치 않았다. 

"서 대협께 들었는데, 복 소협은 방주님을 매우 싫어한다고 하더군요." 

"아… 그게……. 아무튼 별로이올시다." 

복차경은 그녀의 질문에 놀랐는지 조금 더듬다가 곧 바른대로 대답했다. 형란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양 대협은 훌륭한 기개가 있고 정직하며 감총방을 위해 열심히 일하시는데 어째서 싫어하는 거죠?" 

"그거야 당연히… 당연히……. 음, 아무튼 싫소." 

"말하면 안 되는 건가요?" 

"난 어떤 말도 하면 안 되오. 아… 좀 전에 양만풍을 싫어한다고 했던 말도 취소하겠소." 

형란은 궁금해졌다. 방주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도 그렇고 갑자기 입을 다무는  것도 더 궁금증을 크게 만들었

다. 

"왜 말하면 안 되요? 말하고 싶어서 나왔잖아요." 

"그냥 대화는 대환영이오. 저 안은 감옥이 아니라 지옥이라서 입도 뻥긋하지 못하게 만든다오.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거야말로 천국에서 지내는 거지! 아무튼 양만풍과 관계된 말들을 하면 저놈들이 날 죽이려 들 거요." 

그는 말하며 만조 등을 손가락질했다. 

"저도 언뜻 들은 바가 있어요. 사람들이 그러길, 방주 자리를  뺏겨서 양 대협을 미워한다고 그러더군요. 수년 전에 

한마일 소협과 제가 이곳에 못 오도록 한 것도 복수심 때문이라고 그러던데요." 

"흥. 맞는 말이지. 아니아니……, 틀린 말이오." 

그는 또 만조 등을 흘낏 쳐다보며 말을 바꿨다. 확실히 그들을 두려워하는 게 틀림없었다. 형란은 그가 그럴수록 더

욱 불쌍해 보였다. 

"괜찮아요. 저들은 멀리 있어서 우리 대화를 듣지 못해요." 

"혹시 모르잖소? 형 낭자가 그럴 인물은 아니지만 그들에게 또 전해줄지……." 

"전하지 않겠다고 약속할게요. 그냥 편한대로 말하면 돼요." 

형란은 순전히 그를 도와주려고 한 것이라 그런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아예 생각조차 해보지도 않았던 부분이다. 

그녀의 말에 복차경은 의심하는 듯 했으나 곧 믿는지 열심히 떠벌리기 시작했다. 

대체로 내용은 들은 바와 같았다. 용상의 신임을  받고 방주 자리를 얻는 듯 했는데 갑자기  양만풍이 나타나서 그 

자리를 뺏겼다는 것. 그리고 그 후로 모두가 양만풍만 따르고 자신은 따돌려서 매우 화가 난다는 것들이었다. 형란

이 듣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며 귀를 기울이자 복차경은 신이 나서 더 떠벌려댔다. 

"원래 저 만조 같은 인물도 내 앞에선 땅만 쳐다보던 놈들인데 상황이 이렇게 변하니까 저리 배신을 한다오. 이 얼

마나 배신감 느끼겠소? 나중에 내가 힘을 얻으면 저놈들을… 한 놈도 남김없이 다 죽여버리겠어." 

그 말에 형란이 처음으로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그건 안돼요. 사람을 죽이는 건 좋지 않은 거예요. 게다가 복수는 복수를 낳는 법이에요." 

"에이, 그런 말은 수도 없이 들었소. 복수가  복수를 낳는다지만 내가 안 당하면 될 게  아니오? 아니, 아예 복수의 

씨를 말려버려도 좋겠지." 

확실히 소문대로 복차경의 생각은 짧았다. 아예 복수의  씨를 말린다지만 정말 완벽히 다 죽일 수  있을까? 형란은 

그건 힘들다는 걸 알고 있었고 사람을 죽인다면 반드시 보복이 있다는 것도 알아서 복차경이 그런 생각을 하는  걸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안돼요. 다시 한번 생각해봐요. 저들을 다 죽인다고 해도 어디에 누군가  살아남아서 복수를 할 거예요. 복수는 복

수를 낳아요. 설령 그걸 피하려 한다해도 결국엔 응보를 받게 되니 그것도 복수예요. 훗날 편안히 지낼 수 없을 거

예요." 

"난 절대 변하지 않소! 그들을 다 죽여서 내 한을 풀어야겠어." 

형란은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좀 전 그에게서  많은 이야기를 전해들었지만, 그가 불쌍하다고 생각할 뿐 그 

분노를 느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누구나 그럴 것이다. 복차경의 분노, 그 분노의 씨는 자신을 전혀  돌이켜

보지 않는데서 출발한 것이다. 그가 만일  자신의 과오를 한번이라도 느끼고 생각해봤다면 절대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없다. 

형란이 지금껏 그의 말을 다 듣고 고개를 끄덕여준 건 그만큼 불쌍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양만풍의 등장으로 하

루아침에 날던 독수리에서 기어가는 개미가 되었으니 이 어찌 불쌍한 꼴이 아니라 할 수 있으랴? 게다가 그의 처지

는 자신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비록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진 외로움이요, 복차경은 아무도 가까이  하지 

않는 외로움이라 다르다. 하지만 외롭다는 그 맥락은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복차경의 생각을 막고 싶은 걸지

도 몰랐다. 형란의 성격이라면 누구든 똑같이 대하겠지만 그 속에는 그런 감정도 담겨져 있었다. 

"형 낭자, 아직 멀었소?" 

문득 저편에 있는 만조가 소리쳐 물었다. 형란은 더 오래 있을 수 없음을 알았다. 

"복 소협은 다시 한번 생각해보세요. 내일도 올게요." 

"뭐라고? 정말로 또 올 거요?" 

복차경은 크게 놀랐다. 하지만 모두에게 배신당했다고 생각하는  그였기에 놀람보다는 의심이 먼저 앞섰다. 형란이 

웃는다. 

"정말이죠, 절대 거짓말이 아니에요." 

형란의 웃는 모습은 꼭 선녀 같았다. 말하는 것도 그렇고 전혀 거짓이 담기지 않는 표정이다. 복차경은 난데없이 감

동을 느꼈다. 그리고 이상한 감정도 느꼈지만 그건 이내 사라졌다. 지금 복차경은 무엇보다도 형란에게  고마움이라

는 걸 느끼고 있었다. 

"왜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는 거요? 누가 시킨 거요?" 

"시키다니요? 뭐를 시켜요?" 

형란으로선 그의 말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복차경은 그녀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지만 조금도 거짓의 기운이 느

껴지지 않았다. 그게 진실이란 것을 알면서 더욱 감동의 물결이 몰려왔다. 

"난… 믿지 못하겠소. 누구도 나에게 이렇게 대하지 않았는데……. 게다가 난 당신과 한마일을 막아서  고생하게 만

들고 또 한마일을 죽게 하지 않았소?" 

"그건 지난 일이에요.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  그 대가로 감옥에 갇혀 고생하고 있으니  아무렇지도 않아요. 저는 

복 소협이 빨리 마음을 바로 잡았으면 좋겠어요. 양 대협을 무조건 미워하지 말고 모두에게 인정을 베풀길 바래요." 

복차경은 그녀의 나중 말은 제대로 듣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감사하는 마음은 몰아쳤다. 용상 이후로 그를 이렇게 

대한 사람은 없다. 분명 용상의 수제자로 있을 때는 여러 감총인들이 고개를 숙였지만 그게 진심이 아니라는 걸 그

는 잘 알고 있었다. 나중에 용상이  양만풍을 받아들이고 그를 방주로 내세우면서 복차경은  정말로 기어가는 개미 

꼴이 되었다.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며 누구도 그와 말을  트려 하지 않았다. 항상 나가면 경멸하는 눈초리를 받기 

일쑤요, 만조 같은 인물에게도 툭하면 얻어맞았다. 

그렇다고 덤빌 수는 없었다. 복차경은 누구도 자신의 편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한 가지 이유가 또 있다고 

말한다면, 그의 천성적인 성격이다. 생각이 매우 짧고 즉흥적이지만  겁이 많고 강자 앞에선 절로 움츠러드는 그런 

성격이었다. 해서 지금까지 거의 홀로 지내왔는데 이처럼 잘 대해주는 사람을 만났으니 얼마나 감동을 받았겠는가? 

며칠 전 양만풍이 그를 죽이려 할 때 형란이 말렸었다. 그때는 단지 동정하여 살려준 거라 생각했다. 또 지난번 감

옥으로 찾아왔을 때 만조가 때리려하자 말렸을 때도 여전히 동정하는 거라 여겼을  뿐이다. 오늘 와서 자신을 불러

낸 자가 형란이라는 걸 알았을 때는 의심마저  들었다. 대화를 하면서 그런 생각은 조금 가셨지만  내일 또 온다는 

소리를 듣자 다시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로  진심임을 알았을 때, 그때라면 설령 냉혈인간이라 해도 

뜨거운 감정이 솟지 않을 수 있을까? 

"약속하시오. 꼭 온다고……." 

"약속할게요. 꼭 올게요." 

형란은 대답하면서 몸을 일으켰다. 그녀가 일어나자 만조 등 다섯 명의 감총인이 잽싸게 다가왔다. 그들은 즉각 복

차경을 일으키며 감옥 안으로 끌고 들어 가버렸다. 

이 날 이후로 형란은 1달 간 하루도 빠짐없이 그곳을 찾았다. 만조는 그때마다  복차경을 끌어내 놓고 한쪽으로 비

켜서 있었다. 그럼 그때부터 형란과 복차경의 담소가 시작되는 것이다. 한 삼사 일이 지날 때까지는 그들의 대화도 

뭔가 어색했다. 감동 받은 복차경과 그가 개과천선하길 바라는 형란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들은 서로에게 매우 편해졌다. 

형란의 열렬한 도움 덕인지 복차경의 성품은 조금씩 변화했다. 무엇보다도 그 짧은 생각이 사라졌다. 조금 더 진지

하게 생각하고 깊이 파묻히기도 했다. 가끔은 과오를 돌이키며 '그건 내가 잘못했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확실히 

변화한 것이다. 만조 등이 입을 딱 벌리며 감탄을 터트릴 만큼 복차경은 변하고 있었다. 양만풍에 대한 복수심만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런 일들을 양만풍이 모를 리 없었다. 그 일로 한번 형란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생

각을 전해듣고 굳이 말리지는 않았다. 양만풍도 복차경이 개과천선하여 마음을 바로 잡으면 좋은 일이다. 운무나 운

화 역시 형란의 마음씨를 크게 칭찬했다. 

그러는 사이 순식간에 많은 시일이 지나갔다. 추위는 어느 때 절정에 달했다가 점차 약해지기 시작했다. 뼈를 얼릴 

듯한 냉기가 그저 피부를 차갑게 하는 그런 냉기로 변했고, 사람들도 세 겹씩 입던 옷을 두 겹으로  바꾸었다. 사람

들도 자주 움직이며 난주 내에는 왠지 모를 생기가 치솟았다. 

이렇던 어느 날, 양만풍은 매우 바빴다. 그는 옆에 있는 서존과 함께 뭔가를 논의하고 있었다. 

"확실히 그들이 보낸 초청장이 왔습니다. 각파나 유명 인사들에게도 초청장이 돌아갔으며 초청 받지 못한 인물이라

도 원하면 올 수 있다는 소문이 강호에 파다합니다." 

"아마도 사람이 엄청 모일 거요. 무 대협과 조 장문의 정면 대결이니……." 

"그럴 겁니다. 하지만 무 대협이 이기겠죠. 문제없습니다. 방주님도 그 날 보지 않으셨습니까? 산중답십이공진에 맞

서서 혼자 그렇게 잘 싸우는 분은 그 분 뿐일 겁니다." 

대화가 그쯤 지나갔을 때 유호가 들어왔다. 

"준비되었습니다. 식량도 넉넉히 챙겼고 여러 가지 필요한 것들을 넣었습니다." 

"수고했소. 유형도 이리 오시오." 

양만풍의 말에 유호는 깊이 읍하고 서존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먼저 양만풍이 말문을 열었다. 

"이번 대천대연이 확실히 크게 소문이 난 만큼 조덕이 설마 비열한 수단은  쓰지 않을 거요. 서형은 어떻게 생각하

시오?" 

"확실합니다. 우리가 떠난 틈에 감총방을 기습할 그들이 아닙니다. 게다가 어차피 무 대협도 같이 나서기 때문에 사

람들이 많이 떠나도 감총방은 안전할 겁니다." 

"유형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만 누가 가고 누가 남을지 문제로군요." 

양만풍은 한동안 생각하다가 다시 입을 연다. 

"서형과 유형은 같이 갑시다. 나도 가고 운무, 운화 대사도 가고 무 대협도 가고. 그 외에 해형과 이형도 같이 가고 

4대 제자들 역시 소집합시다. 미생형은 남은 감총방을 지휘하도록 해야겠고 말이오. 어떻소?" 

"방주님의 의견에 따르겠습니다." 

서존과 유호는 동시에 일어서서 허리를 굽히며 대답했다. 양만풍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들은 즉각 밖으로 나섰다. 그

런데 문득 서존이 멈춰 서더니 양만풍을 보며 입을 열었다. 

"형 낭자는 어찌 할까요?" 

"란아는……. 그 아이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소?" 

"아마도 감옥에서 복차경과 함께 계실 겁니다." 

양만풍은 엷은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럼 서형이 가서 물어보시오. 허나 난 그 아이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소." 

"잘 알겠습니다. 제가 직접 갈 테니 걱정 마십시오." 

서존은 대답하기가 무섭게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양만풍은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동안 수련도 열심히 했고 이제 

함종문과 붙을만 하다고 여기고 있는 그다. 이번엔 물론 조덕과 무굉의 싸움이지만  행여 그들이 다른 수작을 부릴 

경우 감총방이 책임지고 맞서야 한다. 

"진양아, 진양아! 넌 대체 어디 있는 거냐? 살아있다면 강호에 고개라도 내밀어줘라. 그동안  난 무 대협과 함께 했

지만 이젠 슬슬 피곤해지는구나. 이게 내 한계인가보다……." 

허공에 대고 소리치는 양만풍의 얼굴은 그 오래 전보다 듬직했지만, 동시에 야위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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