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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 十 章. 화주대도 3 (82/90)

                                      第 四 十 章. 화주대도 3

그의 무공인 화주음장은 사실 어느 누구든지 익히면 반드시 석앙처럼 되고야마는 무공이었다. 석앙이 강호인들에게

서 화주대도란 칭호를 얻은 것은 여자와 명주만 훔치고 다녀서였다. 하지만 실제로  그가 사용하는 장법 이름이 화

주음장임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그가 화주대도라서 화주음장을 지닌 게 아니라 화주음장 때문에 화주대도가 

된 셈이다. 헌데 화주음장이라는 이름을 아는 강호인이 손가락으로도 꼽을 수 있을 정도라면? 

석앙은 여자와 술을 훔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고통스럽게 열흘 간 고생하다가 죽기 때문이다. 해서 

화주음장을 익히면 누구든지 석앙처럼 화주대도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이랬다. 이 무공의 악랄한 점이자 그 이유였던 세 가지가 바로 그것이었다. 

첫 번째는 일단 화주음장을 익히면 다른 무공을  익힐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무학은 내기와  외초를 겸하는데 이 

중에서 내기가 빠지면 초식에 위력이 없고, 외초가 빠지면 파락호 싸움이 된다. 그리하여 몇몇 예외의  경우를 빼놓

고는 전부 내, 외를 함께 익힌다. 이 화주음장 역시 그 점은 같았다. 허나 내기의 부분에서 큰 문제가 있었다.  화주

음장의 내기를 익히면 단전에 괴이한 기운이 하나 생기는데 바로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이 괴기는 실로 악랄하다. 

다른 무공을 익힐 수 없도록 어떤 기운이 단전에 오면 그 기운을 공격하여 소멸시켜버리는 것이다. 때문에 어떤 무

공을 배워도 내기를 조절하지 못하니 결국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두 번째는 이 무공 자체의 악랄함이다. 진양은 음양합무론에 힘입어  고강해졌기 때문에 석앙과 싸우면서도 별다른 

걸 느끼지 못했지만, 실제로 화주음장은 매우 악랄한 무공이었다. 일단 일 장에 격타 당하면 그 부위가 꽁꽁 어는데 

독기도 가미되어 있어서 화주독장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맞은 부위는 그렇게 얼고  시퍼렇게 변하며 독은 

몸을 타고 빙빙 돌아 오장육부를 손상시킨다. 해독은  할 수 있지만 워낙 독이 번지는 속도가  빨라서 마치 강풍을 

등진 불길처럼 순식간에 독이 번지고 마는 악독한 점이 있었다. 

세 번째는 이 무공을 익히려면 숱한 처녀가 정조를 잃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화주음장은 그 특성상 많은 음기를 소

모한다. 그래서 여자가 익히면 문제가 없지만 남자가 익혔을 경우에는 음기를 보충해줘야만 했다. 만일 보충하지 않

으면 단전이 부글부글 끓다가 파괴되어 폐인이 된다. 내공이 심후하면 사실 문제가 없었는데 내공이 심후해지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래서 석앙은 여자를 겁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음기는 아직 동정을 잃지 않은 여자에게서 

얻을 수 있다. 남자와 교합을 한 여자는 순음의 기운을 잃어서 화주음장의 음기를 채우는데 어떠한 영향도 끼칠 수 

없었다. 

그 외에 좋은 술은 처녀와 교합한 뒤 얻은 음기를 다스리는 데 필요했다.  음기 역시 하나의 기운이라 단전에 있는 

괴기는 절로 발동해 그것을 소멸하려고 한다. 그걸 막는 방법은 바로 명주였다. 명주는 몸을 편안하고 느슨하게 풀

어주기 때문에 이 괴기도 풀어져서 음기를 얻을 수 있었다. 허나 다른 무공을  익힐 때 얻는 내기는 명주도 소용이 

없다. 혹 방홍미녀의 정녀검법 같은 순음지체의 무공이라면 모를까, 그게 아니면 명주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내가 화주대도라 불리며 많은 사람들에게 저주를  받지만 나도 원한 것은 아니야. 계속  그 일을 지속하지 않으면 

내 단전이 파괴되고 난 폐인이 되니……." 

"그럼 그 무공은 왜 배웠어? 누가 가르쳤지?" 

진양은 그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의혹도 느꼈다.  어떻게 이런 악랄한 무공이 있을 수  있을까, 그리고 대체 

누가 이런 악랄한 무공을 전수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그의 질문에 석앙은 머뭇거렸다. 

"그걸 꼭 알아야겠나?" 

"그걸 꼭 숨길 이유도 없잖아?" 

"아니야. 숨길 이유가 있어. 사실 너에게 알려줘도 상관은 없을 듯 하지만 안전을 위해 말하지 않겠다." 

석앙은 두어 마디 주고받으며 말투가 확고하게 변했다. 진양은 더 얘기를 들을 수 없음을 알았다. 하지만 실망하지

는 않았다. 문제는 그게 아니다. 어쨌든 이 석앙이란 남자는 비록 세상이 화주대도라고 하며 경멸하는 남자지만, 진

양에게 있어서는 당당하면서도 불쌍한 구석이 있는 남자일 뿐이었다. 그런  그가 고통을 받으니 진양으로선 당연히 

그를 도와줄 방법을 찾는 게 급선무였다. 

"그럼 알려주지 않아도 된다. 나도 그 악랄한 무공만 알면 됐지, 네 사부까지 꼭 알 필요는 없으니까." 

"고맙다." 

그가 다시 발작을 일으킨 건 고맙다고 한 후로 눈 깜박 할 시간도  안 지나서였다. 보아하니 아무래도 사정을 들려

주면서 꾹 참아온 듯 했다. 

"빌어먹을… 으으윽!" 

진양은 잽싸게 그의 수혈을 눌러 잠들게 했다. 고통이 있어도 일단 수혈을 눌러  억지로 잠들 게 하면 좀 괜찮아질 

거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장님이 그리도 정확히 수혈을 누르다니, 석앙도 그렇지만 누구든 이 장면을 본다면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진양은 확실히 앞을 볼 수 없는 장님이다. 하지만 그는 오로지 귀로만 모든 걸 해결할 뿐 눈이란 것은 필요가 없었

다. 진안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만물의 소리를 듣는 법이다. 마음의 눈이라는 심안(心眼)의 경지까진 도달하지 못했

지만, 진안은 그 바로 아래 단계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굉장한 것이었다. 매우 미세한 그야말로 벌레 기어가는 

소리부터 바람소리, 숨소리, 풀잎 흔들리는 소리까지. 단  한 가지도 놓치지 않고 소리로써 모든  걸 판단하는 것이 

바로 진안이다. 

진양은 사실 마음의 득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진안, 그와 같은 걸 얻을 만한 성격이 못 되었다. 그는  본래 특정한 

경우가 아니면 진지하지도 못하고, 총명하다고는 하지만 참을성은 부족하여 심득이란 자체가 그의 일생에서 찾아보

기 어려울 정도였다. 내공이 항상 부족한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참을성이 부족한지 일깨우게 한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는 매우 달랐다. 진양은 이미 눈을 잃었다. 때문에 귀가 아니면 평생 병신으로 살아야할 운명이

었다. 그것이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누구나 벼랑 끝에 몰렸을 때 비책이  나오는 법이요, 배수의 진을 편 군대처

럼 무서운 군대가 없는 법이다. 진양도 귀가 아니면 형란을 만날 수도 없고 강호에 다시 나갈 수조차 없다는 걸 알

았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변모한 것이었다. 거기에 몇 가지 더하자면, 정고의 도움과 여러 가지 고통으로  인한 정신

적인 성장 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어찌되었건 진안은 그처럼 훌륭했다. 눈으로 잘못 보아 오판할 수  있는 것을 귀로써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상대의 

감정쯤 아는 일도 우습게 되었다. 눈이 있을 때는 상대의 표정과 말투와 눈빛과 행동을 보면서 짐작했지만, 눈을 잃

으니 말투만 남았다. 목소리, 그 안에 담긴 감정을 유추해내는 건 엄연히  말하자면 그냥 '감(感)'이었다. 그러나 단

지 감일 뿐일까? 진양의 영리함과 예리함, 거기에 심장 박동소리가 그것을 도왔음이  분명하다. 아니, 설령 그런 것

이 없다고 해도 알 수 있을지 모른다. 진안은 괜히 진안이 아니다. 이른바 진안(眞眼 = 참된 눈, 진짜 눈)으로 세상

을 보는 방법이다. 평범한 눈으로 본다면 거짓된 것을 볼  수도 있지만, 진안을 습득한 귀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

다. 왜냐하면 정말 작은 미세한 소리까지 전부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새가 날아가는 걸 보지 못한다 해도 날아가

는 소리가 들리며, 날개를 어떻게 젓는지 보지 못한다 해도 소리로 알 수 있었다. 일부로 푸드덕대는 소리를 들려줘

도 감으로 뭔가 이상함을 알기 때문에 속지 않는다. 또  소리를 내지 않다가 갑자기 소리를 내도 당황하지 않는다. 

새가 푸드덕거리기도 전에 벌써 미세하게 움직이는 소리와 심장 박동소리를 듣고 다음 상황을 진작에 예측해버리니

까. 이것이 바로 진안이다. 

"혈의 위치쯤이야 우습지……." 

진양은 문득 석앙이 놀라하던 생각이 들어 혼자 미소하며 중얼거렸다. 과연 상대의  위치를 찾는 건 입으로 바람불

기요, 혈도를 찾는 건 바람 들이마시기다. 

진양은 먼저 길을 나서서 여러 약방을 찾아다녔다. 음기 보충에  좋다는 약들을 사러 다니는 것이다. 싼 약은 사지 

않았다. 석앙은 순음을 말했음으로 음을 보하는 좋은 약을 써야했다. 사실 비싼 약이라도 처녀와 교합하는 것만큼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잠시라도 석앙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다른 방책을  찾을 때까지 버텨줘야 하기 때문

에 이렇게라도 하는 것일 뿐이었다. 

진양은 일부로 비싼 약을 사느라 큰 약방을 찾았고 덕분에 가지고 있던 몇  푼은 모조리 사라졌다. 허나 조금도 억

울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약들을 들고 서둘러 석앙을 찾아가 먹였다. 홀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어떤 방

법으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가져 보았다. 

운이 좋았던 것일까? 석앙으로선 다행이게도 마침 그가 정신을 차리던 날 진양은 좋은 방책을 떠올리게 되었다. 왜 

진작에 그 생각을 못했냐면서 진양은 스스로 제 뺨을 두드리고 있었다. 석앙은 그의 모습에 웃음부터 터졌다. 

"뭔 짓을 했기에 뺨을 치고 난리야?" 

진양도 그가 깬 것을 알고 소리내어 웃었다. 

"그러는 너는 다 죽었다 살아난 놈이 깨자마자 낄낄거려?" 

과연 말발에는 천하제일인 진양이다. 석앙 따위는 상대도 안 된다. 

"아이고, 알았습니다. 그럼 이유나 물어야지. 왜 뺨을 치지?" 

"그걸 알아서 뭐하게?" 

"나를 구해준 은인이 제 뺨을 치고 자빠졌는데 그럼 가만히 있으라고?" 

진양은 피식, 하고 웃었다. 

"그럼 알려줘야겠네. 너의 은인이 한번 더 도와줄 기가 막힌 방책을 떠올려서 기뻐하고 있던 거란다." 

"기쁜데 왜 제 뺨을 때리나?" 

"후후… 너도 의외로 꼬치꼬치 캐묻는 구석이 있단 말씀이야." 

"자네도 만만치 않다네." 

석앙의 모습은 꼭 지난날의 진양과 비슷했다. 진양은 자신의 모습이 절로 떠올랐는지 문득 감상에 젖었다. 

"어디, 은인님. 기가 막힌 방책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시지요." 

"까부는 걸 보니 다 나았군! 알려줄 필요가 없겠어." 

"이제 장난은 그만 치자. 웬일로 내 장난을 받아주니 재밌어서 계속 한 건데 정말 안 알려주려고?" 

사실 석앙이 깨어난 게 기뻐서 진양은 저도 모르게 옛날 행동이 그대로 나왔을  뿐이다. 진양의 양 입 꼬리가 느긋

하게 벌어진다. 

"말해줘야지. 잠깐 농담한 거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 잠시 멈췄다가 곧 입을 열어 그 기가 막힌 방책을 털어놓았다. 

"너의 말을 통한 바로, 화주음장이 비록 순음의 무공은 아니되 순음의 내기는 가지고 있는 것이지.  그러니 너의 단

전에 위치하는 괴이한 기운도 순음이 아니겠어? 너의 상태가 호전되는 방도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확실

한 방법은 필경 화주음장의 내기를 없애버리는 것일 거야. 아예 그 괴이한 기운 자체를 부수고 새로 무공을 익히는 

것 말이다. 너도 생각한 적이 있었겠지. 하지만 어떤 무공이든 내기만 익히면 반드시 소멸된다고 했으니… 넌 그동

안 화주음장에 소멸되지 않을 정도로 더 음기로 가득 찬 무공을 찾아보았겠지?" 

"그래, 분명 네 말대로다. 화주음장을 제압하려면 그보다 더한 음의 무공을 익혀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천하 각지를 

떠돌아다녔지. 그러나 찾을 수 없었어. 어쨌든 화주음장은 내기가 순음이었고, 더  막강한 순음의 무공도 찾기 어려

웠으니까. 그런데 기가 막힌 방도란 게 그거냐?" 

"너는 그처럼 독을 없애겠다고 더 강한 독을 찾으러 다닌 꼴이야. 불로 태워버리면 될 것을. 내가 말하는 바가 뭔지 

알겠나?" 

석앙은 그제야 깨달아지는 게 있어서 손뼉을 치며 외쳤다. 

"알았다, 알았어!" 

그는 아까 진양이 했던 것처럼 스스로 제 뺨을 때리고 있었다. 화주음장의 순음 내기를 없애겠다고 더 강한 순음만 

찾아다녔던 그는 이처럼 단순한 방법을 왜 몰랐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불은 독의 상극이 아

닌가? 그처럼 순음의 상극은 당연히 순양이 아니겠는가! 이건 석앙도 잘 알고 있는  방법이었지만 미처 생각해내지 

못했는데, 진양의 도움이 있어 깨달을 수 있게 된 셈이다. 

"됐구나! 이제 순양의 무공을 찾으면 되겠군!" 

"아니, 그럴 필요도 없어. 순양의 무공을 익힌 고수가 내공으로 그 괴이한 기운을 작살내주면 되니까." 

석앙은 환하게 웃으며 기뻐했다. 헌데 그것도 잠시였고 금방 표정이 침울해진다. 

"하지만… 순양의 무공을 찾기도 어려울 텐데. 더군다나 그런 고수를 찾기도 힘들고, 또 그런 고수가 나를 돕겠다고 

나설까?" 

"핫핫! 그런 생각도 없었다면 내가 말이라도 했을 거 같으냐? 다 준비가 되어있지. 고수도 보통 고수가 아니니 걱정

하지 말아라." 

"그게 대체 누군데?" 

석앙이 놀라며 묻자 진양은 말없이 탁자 위에 있던 붓을 들어 벽에다 글을 새겼다. 본래 왼손잡이가 아니라서 본연

의 필체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많이 적응이 돼서 그런지 악필은 아니었다. 

<내가 가장 대단하고 내가 가장 존귀하다.> 

더 생각해볼 것도 없다. 석앙이 그를 모를 리도 없고 말이다. 

"자존자대 무굉!" 

헌데 이상한 점을 진양은 느끼고 있었다. 석앙의 놀라움은 어딘가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다. 뭐라고 표현하긴 어려운 

것이었지만 분명 놀라긴 놀라면서도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진양만이 느낄 수 있는 그런 감이리라. 진양은 물

어볼까 하다가 그냥 그만두었다. 석앙의 숨소리가 점점 미약해지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진양은 그가 너무 무리했다

고 생각하고 다시 쉬게 한 뒤 객잔에서 나왔다. 웬일로 태양이 보이는 좀처럼 보기 힘든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석앙은 그 뒤로 여인을 겁탈하러 다니지는 않았다. 진양이 도와준다고 하며 언제나 음기를 보할 수 있는 약을 사왔

기 때문이다. 석앙은 자신의 돈으로 약을 사먹고 있고 효과도 처녀를 겁탈하는데는  미치지 못해서 사실 불만을 가

질 법했다. 허나 비록 화주대도로 악명이 높지만, 인간 자체는 의외로 솔직하고 은원을 아는 편이라  진양이 말리는 

일은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항상 단전이 뒤엎어지는 고통 속에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진양은 그에게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자존자대 무굉에게 치료를 부탁하겠다는 것이다. 무굉이 순양의 무공을 소유하

고 있다는 건 잘 알고 있다. 더구나 내공으로 말하자면 가히 천하에 적수가  없다 할 정도이니 순양의 무공으로 화

주음장의 내기를 부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를 만나는 방법은 간단했다. 대천대연에 참석하여 그를 찾으면 되는 일이다. 이미 소문을 들어서 대천대연에 조덕

과 무굉이 일전을 벌인다고 하는데, 진양은 필경 무굉이 이길  거라 여겼다. 그 후에 무굉에게 부탁하면 되는 일이 

아닌가? 진양은 자신이 비록 강해졌지만 무굉은 도무지 이길  수 없을 정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조덕에겐 승산이 

거의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알았나? 그러니까 함부로 여인을 겁탈하지도 말고 명주를 훔쳐 마시지도 마." 

"날 도와주는 사람 말을 어떻게 무시하리? 겁탈도 하지 않고 명주도 훔치지 않겠다." 

그들 둘은 지금 대천산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잠시 쉬면서 대화를 나누던 중이다. 석앙은 은근히 신기해하고 있

었다. 이미 진양에게 진안이란 게 어떤 건지 전해들어 납득은 하고 있었지만, 저처럼 복잡한 길도 잘만 헤쳐가니 신

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도 알긴 안다. 이렇게 잘 걸을 수 있는 게 다 미세한 바람 소리 때문이라는 것을. 바람이 

불다가 사물에 부딪치는 그 소리마저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다 알 수 있다는 것을. 허나 역시 

그의 입장에서 볼 땐 언제나 신기한 광경이었다. 

"대천산까지 얼마나 남았나?" 

석앙이 먼저 일어서며 물었다. 진양도 일어난다. 

"북쪽을 보면 유달리 우뚝 솟은 봉이 보일 거다. 그 봉이 대천산의 출입구라고 할만하지." 

"아……! 얼마 안 걸리겠군. 저녁이 되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구먼." 

그의 말대로 보니 과연 그런 봉이 있었다. 별로 짙지 않은 안개 사이로  천산처럼 우뚝 서있는 봉은 보기에도 매우 

가까운 듯 했다. 

그들은 그대로 말을 타고 빠르게 달렸다. 굳이 달려서 갈 정도로 늦은 건  아니었지만 또 느긋이 갈 정도로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산이 가까워짐에 따라 점점 지세가 험난해지며 고지대로 진입하고 있었다. 진양은 볼 수 없어

도 피부에 닿는 이 서늘한 감촉만으로 벌써 사방에 안개가 펼쳐졌다는 걸 알았다. 

"대로가 보이지? 그 길을 쭉 따라 오르다가 끝이 나는 곳에 바로 함종문이 있을 것이다." 

"그럼 얼른 가야지. 미리 가서 쉬고 있는 게 나을 것 같군." 

"그 전에 들릴 곳이 있다." 

헌데 진양은 바로 갈 생각이 아닌 듯 문득 말머리를 돌렸다. 그가 택한  길은 그 대로에서 옆으로 좀 우회하다보면 

나오는 작은 샛길이었다. 말은 타고 갈 수 없을 만큼 가파른 길이다. 석앙은 뭐라고 말리려 했으나 진양이 먼저 말

에서 내린 후 그냥 오르자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오르면 오를수록 추워졌다. 지상은 지금 봄이 되었는데 이곳은 가을 같았다. 과연 높으니 만큼 추운 것이다. 진양은 

아는 길처럼 척척 잘도 걸었다. 석앙은 그때 의문이 들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까부터 쭉 봤는데… 어떻게 이 산의 지리를 그리 잘도 알지? 대로나 샛길 같은 건 바람이 불어도 알 수 없을 텐

데." 

"그거야 내가 한때 여기 살았으니까 그렇지." 

궁금해하는 석앙에게 진양은 간략하게 자신의 어린 시절을 들려주었다. 석앙은 매우 놀란 듯 했다. 

"그럼 조덕은 너의 사부잖아." 

"그렇지." 

"무굉은 의형이고?" 

"물론이지." 

진양은 석앙이 생각하는 바를 알 수 있었다. 의형과 사부가 싸운다는데 어떻게 그리 태연하냐는 그런 모습이다. 하

지만 그건 그가 진양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는 것이었다. 진양은 언제나 생각을 미리 해두고 행

동으로 옮긴다. 격한 감정이 솟았을 때는 돌발적인 행동도 많이 하지만 대체로 그러했다. 지금도 마찬가지. 이 싸움

은 무굉의 승리라 점치고 있었고 무굉은 절대로 조덕을 죽이지 않을 거라는 것도 점치고 있었다. 차라리 이렇게 싸

워 빨리 은원관계를 청산하는 게 낫다고 여기기 때문에 아무런 근심걱정이 없는 셈이다. 

그걸 모르는 석앙을 내버려두고 진양은 발걸음을 재촉하여 안개 속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석앙은 황급히 따를 뿐이

다. 

꽤나 오래 오른 끝에 도달한 곳은 웬 작은 절이었다. 별로 크지도 않고  사람도 없는 듯해서 심한 적막감이 느껴진

다. 진양은 신경 쓰지 않고 일단 절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석앙은 뒤를 따르면서 암자 정면에 붙어있는 편액에 

눈길을 주고 있었다. <대명사>라는 글씨는 별로 명필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제법 불가의 흔적이 남아있는 글체였다. 

"아무도 없는 걸?" 

석앙이 따라 들어오며 말했지만 진양은 진작에 알고 있었다. 대명사 코앞까지 왔을 때 이미 알았다. 안에서 숨소리

가 하나도 안 들렸기 때문이다. 절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불상 하나와 흐트러진 방석만이 존재했다. 진양은 가만히 

서 있다가 문득 허리를 굽혀 바닥을 손바닥을 쓱 밀어보았다. 

"아무도 없는 게 확실하군. 모두들 떠났구나." 

석앙은 그의 의도를 금방 알지 못했으나 그의 손바닥에 검은 먼지가 짙게 묻어있는 걸 보고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

덕이고 말았다. 진양은 홀로 중얼거린다. 

"하긴… 벌써 10년도 넘었지. 다들 떠나셨나보군." 

"이곳에서도 지냈나?" 

석앙의 물음이다. 

"이곳에 한 대사께 무공을 전수 받았었지. 약속도 못 지켜서 사실 뵐 낯이 없지만 그래도 용서를 받고자 왔거늘 아

무도 없군." 

"몇 년 전에 떠돈 얘기가 있는데, 대명사라는 절에 천둔검법을 가진 노승이 있다는 얘기였어. 여러 강호인들이 찾아

가자고 함께 대화하는 걸 엿들었지." 

"천둔검법을? 그랬군……." 

진양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어차피 비밀이란 들통이 난다고 생각했기에 조금은 짐작도 했던 바이다. 아마도 재수가 

없어서 소문이 퍼진 걸 것이다. 함종문이 유명해지니 대천산에 사람들의  출입도 잦았을 것이고 덕분에 대명사에도 

사람이 자주 들렸을 것이다. 그러다 우연히 휴정의 얼굴과 천둔검결을 가지고 갔었다는  걸 아는 인물이 들려서 모

두 드러난 게 틀림없었다. 그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없다. 

"그 뒤로 별다른 소문은 없었나?" 

"별로 관심이 없어서… 하지만 언뜻 듣기로 그 노승이 사라졌다던 거 같더군." 

그럼 확실했다. 

"알만하군. 많은 강호인이 와서  행패를 부리니 휴정 대사는  다른 대사들과 함께 빠져나간  거야. 끝이 없을 테니

까……." 

"나도 그렇게 생각해." 

이제 이곳에 더 있을 이유가 없었다. 진양은 조금 감상에  취하는 듯 가만히 서있었다. 장님이지만 굳이 눈으로 볼 

필요가 없이 마음으로 느껴지는 이 절은 그에게 있어선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어렸을 땐 아무것도 몰랐지만 휴정

에게 배웠던 탄지신통은 두고두고 도움이 되었다. 상혼봉법에도 탄지신통을 배합해  만든 초식이 있으니 그것이 탄

봉비천(彈棒飛天)이다. 

그들은 곧 함종문으로 향했다. 대로를 따라 쭉 오르니 과연 끝인 곳에 바로 함종문이 위치하고 있었다. 진양은 석앙

에게 난데없이 집들의 구조를 물어보았다. 바람이 건물에 부딪치는데 소리로 들어보니 예전보다 집채가 많고 큰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서촉유청 동촉유함이라는 말처럼 사천 최고의 문파가 된 함종문은 예전의  초

라한 집채를 수리하고 새로 지어서 더욱  좋은 곳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석앙은 대강  집들의 구조를 설명해주고는 

덧붙였다. 

"은근히 장엄한 기세가 풍기는 걸. 과연 동촉유함이야." 

몇 걸음 더 걸아 가보니 예전처럼 계단은 존재하고 있었다. 허나 이전엔 그냥  산의 흙바닥을 깎아 만든 눅눅한 계

단이었고, 지금은 잘 제련된 돌로 만들어진 계단이었다. 

계단을 다 오르니 정문 좌우로 두 명의 함종문도가 서있었다. 보초인 듯 하다. 정문은 꽤나 부유한 티가 나도록 변

해있었는데, 지금 석앙은 그런 쪽엔 관심이 없었다.  보초를 서는 함종문도 두 명의 기세가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눈을 부릅뜨고 벌레가 지나가는 것까지 모두 보겠다는 듯 철통같이 잘 경계하고 있었다. 

석앙은 의혹이 일어서 진양에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함종문은 원래 저런가?" 

"아마 대연에 미리 참석한 자들을 감시하고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는 거겠지.  그들이 어떻든 간에 우린 그냥 참

석할 의사만 비추면 될 거야." 

그가 그렇게 말하자 석앙도 더 생각하진 않았다. 한 세 걸음 정도 더 갔을까. 두 보초는 그들이 다가오자 먼저 읍을 

한 뒤에 정중한 어조로 신분을 물었다. 

"어디서 온 누구신지요?" 

"대연에 참석하려고 온 사람들이요. 별로 밝힐만한 이름은 못 됩니다." 

석앙은 원래 그런 건지, 아니면 이곳이 진양의 옛 사문이라는 걸 의식해서 그런 건지 제법 정중했다. 보초는 가만히 

그들 둘을 쓸어보다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죄송하지만 사부님께선 대연에 참석할 인물들은  반드시 신분을 밝혀야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립도 쓰고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그는 진양을 보고 말했다. 진양은 피식 소리내어 웃었다. 

"소협의 사부님은 누구신가?" 

"네? 갑자기 그걸 왜……." 

"누구신가?" 

진양의 말투는 은근히 압도하는 기운이 있어 보초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말투가 꼭 강호의 선배 같았다. 

"사부님들을 알고 계시는지요?" 

"사부님이 누구신가?" 

여전히 변하지 않는 어조다. 보초는 무슨 느낌을 받았는지 잠깐 다른 보초를 쳐다보더니 입을 열어 대답했다. 

"제 사부님은 사 씨 성을 쓰십니다." 

"대제자의 제자가 여기서 보초를 서다니?" 

"사부님을 아십니까?" 

"알긴 알지… 하지만 함종문 대제자가 사원이라는 걸 누가 모르겠나?" 

진양의 대답은 모호했다. 아는 사이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소문을 들은 거 같기도 했다. 보초가 꾸물대자 

진양은 미소지었다. 

"난 얼굴이 흉측해서 벗지 않으려는 것이니 걱정 말게. 의심이 나면 나를 대제자의 앞으로 데려다주던가." 

보초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 아닙니다. 그냥 존성대명만 알려주십시오. 장문인의 명령이 있어서 신분만은 알아야합니다." 

"그런가? 난 한동안 강호에 나오지 않아서 말해줘도 모를 텐데… 이름은 됐고 별호는 있네. 상혼객이라고……." 

"아, 상혼객이시군요." 

사실 이 보초가 상혼객이란 별호를 알 턱이 없다. 괜히 아는 척 하는 건 강호의 예의쯤 되는 것이라 모르면서도 자

주 이런 대화가 오고가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우습기도 했다. 상혼객이란 별호는 석앙이 지어준 지 보름도 넘

지 않았으니까. 진양은 그냥 웃으며 걸어 들어갔다. 석앙은 화주대도라고 밝히지 않고 상혼객의 시종이라고만  해서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을 수 있었다. 

함종문엔 벌써 사람들이 많이 와있는 듯 했다. 대연은 며칠 뒤에 열리는데도 이미 마련된 자리에 앉아 술판을 벌이

는 사람들도 있었다. 말 그대로 대연이라서 열리는 이유가 조덕과 무굉의 대결이라지만  이 정도 술판은 당연한 일

이었다. 열심히 뭔가를 대화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간간이 연무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매우 시끌벅적한 모습이었다. 

진양은 이런 곳에 오래 있고 싶지 않았다. 석앙을 재촉하여 함종문도의 안내를 받아 쉴 곳으로 이동했다. 처음 와보

는 집채였는데 숙소로 지정된 듯 했다. 

"피곤하나? 밖에 재미있을 거 같은데 왜 그냥 들어오지?" 

"사립을 썼지만 함종문 사람들이 알아볼 수도 있다. 그리고 다른 강호인들도 알아볼 수 있고." 

"뭔 죄를 졌군!" 

석앙은 넌지시 그런 말을 던졌다. 진양은 또 그 입가를 끌어올리는 의미심장한 미소만 짓는다. 보이는 게 입뿐이니 

어쩔 수 없는 거지만 석앙은 그 미소를 볼 때마다 절로 안도감을 느꼈다.  여유만만한 미소 같아서일까? 진양이 대

답 없이 미소만 짓자 석앙은 또 물었다. 

"사람들이 알아보면 왜 안 되나? 정말로 죄를 지었나?" 

"죄야 많이 지었지……." 

역시 의미심장한 말투. 죄를 많이 지어서 그들  앞에 나설 수 없다는 건지, 일생에 죄는  분명 많이 지었다는 건지. 

도무지 분간이 되질 않았다. 석앙은 집요하게 들러붙었다. 

"그들에게 죄를 졌나?" 

"지었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그럼 그거 때문에 사립을 안 벗는 건가? 미안해서?" 

"그렇다고 하면 좋겠지만… 사실은 이유가 따로 있지." 

석앙의 눈이 번쩍였다. 

"어떤 이유?" 

"귀찮아지거든." 

"고작 그거 때문에?" 

진양은 고개를 끄덕이며 침상에 누웠다. 석앙의 황당한 표정은 걷힐 줄 모른다. 

순식간에 여러 날이 지나갔다. 진양은 그동안 바깥출입을 삼가고 방안에서만 지냈다. 그의 성격으로 보자면 아마 몸

이 근질거려서 발작이라도 한번 일어났을 법한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과연 그의  성격 변화는 이런 부분에까지 미

쳤던 모양이다. 

대연이 열리는 춘절이 되자 산에는 수많은 강호인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숙소는 텅텅 비었고 모두들 대연이 

열리는 봉우리로 향했다. 진양과 석앙도 예외는  아니었다. 강호인들 틈에 섞여서 알게  모르게 봉우리로 따라갔다. 

그 숫자가 어찌나 많은지 하늘에서 본다면 검은 개미떼 같을 정도였다. 

봉우리에는 이미 대연의 준비가 다 완료되어 있었다. 굉장히 넓어서 꼭 공터 같이 느껴지는 이 봉우리는 진양도 잘 

알고 있는 키가 작은 봉우리였다. 그다지 높지 않은 덕에  어렸을 때부터 별로 좋아한 건 아니었고, 넓으며 평평한 

편이라 봉우리 같지도 않았다. 정상에 넓은 공터로 많은 강호인들이 몰려들었다. 절벽 쪽을 정면으로 삼아 다들 마

련된 의자에 앉았다. 대연답게 탁상이 있고 맛깔스러울 듯한 음식들이 풍성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허나 군웅들의 숫

자가 백여 명도 훨씬 넘어서 일부 사람들은 서서 음식을 들어야했다. 

절벽 쪽엔 큰 단상이 놓여져 있었다. 단상 위엔 예전 무림산 대회 때처럼  여러 의자가 놓여져 있었고 그곳은 초청

을 받은 대문파 장문인들이 앉는 귀빈석인 듯 했다. 전체적으로 무림산 대회와 다를 바가 없는 듯 했다. 허나 다른 

점은 분명 있었으니, 그건 모인 군웅들의 숫자가  첫째요, 모인 이유가 둘째였다. 어느새 봉우리는  백여 명도 훨씬 

넘는 사람들로 새까맣게 뒤덮이고 말았다. 

군웅들은 한동안은 소란스럽게 음식을 들었다. 허나 머지않아 진정이 되고 단상 위로  청성파나 개방 같이 큰 문파

의 장문인이 자리하자 그제야 대연이 시작되는 듯 싶었다. 단상엔 연경후가 직접 올라와 몇 마디 말을 하고는 먼저 

초청된 인물들을 소개했다. 

"언제 시작하려나." 

진양과 석앙은 다행히 자리를 잡았다. 석앙은 배가 고팠던지 틈틈이 고기를 주어먹고 있었다. 좀 전 말은 그가 이것

저것 먹으면서 혼자 중얼거린 말이었다. 진양이 대답했다. 

"곧 시작하겠지. 그런데 감총방 사람들은 안 보이는군." 

"함종문과 싸운다는데 그들이 차려준 음식을 먹을 맛이 나겠냐? 오긴 오겠지만……." 

진양도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과연 소개가 모두 끝나고 군웅들이 감총방을 찾기  무섭게 양만풍을 위시한 수십 명

의 감총문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같이 굳은 기개가 엿보이는 인물들로 모두 감총방에서 실력 있는  자들이었다. 

양만풍의 기세는 더욱 빛이 났다. 적지에 온 사람 같지 않게 매우  당당하여 모두들 '과연 양만풍이다.'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진양은 가만히 앉아서 석앙을 통해 얘기를 듣고 있었다. 

"양만풍 등이 왔나?" 

"그래, 왔다. 한 서른 명쯤 될 거 같은데." 

"그 중에서 백발에 매우 오만해 보이는 사람은 없나?" 

석앙은 뒤져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있긴 있는데… 백발의 노인이 있긴 있는데 전혀 오만해 보이지 않아." 

"그럴 리가?" 

"소림사도 있어. 소림사 중이 두 명 있는데 그들 뒤에서 고개 숙이고 따라가는 걸?" 

진양은 백발의 노인이 필시 무굉일 거라 짐작했다. 허나 어찌 그가 고개를 숙이고  간단 말인가? 물론 그건 진양이 

몰라서 그런 것이고, 소림사의 두 중이란 당연  운무와 운화였다. 그들은 단상 가까이에 간 후  양만풍, 무굉, 운무, 

운화만이 단상 위로 오르고 나머지는 아래에 대기했다. 단상 한쪽에 앉아있던 조덕은 그들을 직접 맞이했다. 

"모두들 잘 오셨소. 안 보이시기에 무슨 일이 생겼나 싶었소." 

양만풍을 향해 한 말이었다. 양만풍은 언중유골의 뜻을 알아채고도 웃는 낯으로 맞받았다. 

"삼 개월 만이구려. 조 장문이 그동안 열심히 연공해서 행여 피로하진 않을까 생각되오만." 

"괜찮소. 아무튼 자존자대가 왔으니 이제 곧 시작합시다." 

조덕은 조금 서두르는 눈치였다. 아무래도 사부의 한을 빨리  풀어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이맘때면 무굉이 한 마디 

건방진 말을 할 법하다. 허나 운무의 눈치를 보기에 바쁜 무굉은 자신이 지금  단상 위에 올라와 있다는 것조차 잘 

모르는 듯 했다. 조덕도 그의 상태가 이상함을 느꼈다. 

"자존자대가 이상하군." 

"아무것도 아니니 걱정 마시오. 대사님들, 저희는 그만 내려갑시다." 

양만풍은 조덕의 말에 답한 후 곧장 운무와 운화를 향해 말을 이었다. 그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곧 단상에서 내려왔

다. 하지만 무굉은 여전히 초조한 얼굴이었다. 그들이 내려가자 좀 표정이 밝아지는가 싶었는데 밑에서 지켜보고 있

으니 더 초조해져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런 그를 본 양만풍은 속으로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무 대협. 운무 대사께서 지난번에 말씀하신 것 분명 지켜드린다고 하십니다." 

"저, 정말?" 

우습게도 무굉의 안색은 꽃이 피듯 활짝 펴졌다. 

"정말이지요. 하여간 늘 하시던 대로 하세요. 그럼 운무 대사도 약속을 지킬 겁니다." 

"알았어, 알았어." 

돌변한 무굉의 태도는 조덕은 물론이고 강호인들을 놀라게 했다. 그가 기가 팍 죽은 것도 굉장히 의아한 것인데 무

슨 약속이 어쩌고 하면서 금새 펴지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조덕은 과연 일파의 장문인답게 금새 마음을 

추스르고 말했다. 

"무굉. 지금 바로 대결하겠느냐?" 

"빨리 하자. 빨리 끝내자." 

"무기는?" 

"없어도 돼!" 

조덕은 그 즉시 검을 뽑았다. 대연이 무르익기도 전에 즉각  대결을 펼칠 셈인 것이다. 군웅들은 전부 숨을 죽이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도 안다. 무굉이 천하제일이라는 것, 그리고  조덕도 그에게 쉽게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 순간 여유만만하게 있는 사람은 진양뿐일 것이다. 진양은 가만히 귀로 다 들으면서도 무굉이 이길 거라 확

신했다. 이상한 게 있다면 석앙이다. 아까 무굉의 이름이 들린 후부터 그의 숨소리가 심상치 않아졌음을 진양은 알 

수 있었다. 

(화주음장을 없애줄 사람이라서 흥분한 건가?) 

진양은 단지 그렇게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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