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四 十 一 章. 짧은 인연 1
바야흐로 천하의 군웅들이 눈빛을 번뜩일 대결이 펼쳐지게 되었다. 사천 지방의 대천산, 그 중에 널찍하지만 낮은
봉우리 위에서, 자존자대 무굉과 함종문 장문인 조덕과의 싸움이 시작되려는 것이다.
세상은 알고 있었다. 자존자대가 분명 천하제일이라는 것을. 예전까지는 감히 그의 앞에서 소리치진 못했어도 그를
천하제일이라고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의 무공은 확실히 막강했지만 오만함 때문에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았던 것이
었다. 지금은 모두가 천하제일로 그를 꼽는다. 그가 착해진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의 생각이 바뀐 이유는 그런 성격
에 관계된 게 아니라 다른 데에 있었다. 바로 지난날 난주에서 여러 사람들을 구해내고, 또한 천무대협의 제자라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한 가지 더 붙이자면 난주에서 그의 무공을 잘 보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 비해 조덕은 그리 강하다고 할 수 없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조덕도 일류고수의 반열에는 낄 수 있었다.
오늘날 함종문이 거하게 성장한 데는 장문인 조덕의 무공 수준이 한 몫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굉에 비하면 조족
지혈이라고 할만하다. 감히 그 누가 무굉 위에 조덕을 올려놓으려 하겠는가? 다만 그런 조덕에게도 무굉과 어깨를
동등히 할만한 게 있다고 하니, 그것은 명성이다.
그런 생각은 군웅들의 표정에 자연히 드러났다. 시작하기 전에는 결과를 다들 예측한다는 듯이 여유만만한 표정을,
그리고 막 시작했을 때는 조금 흥분한 표정을, 또한 시작하자마자 조덕이 맹공을 퍼붓고 무굉이 막기에 급급할 때
는 당혹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놀라운데? 무굉이 손도 못 써보고 밀리고 있어."
석앙의 말이었다. 헌데 진양은 그 말을 듣고도 단지 미소만 했다. 마치 곧 터질 무굉의 반격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무굉의 승리로 쉽게 막을 내릴 것까지 다 알고 있다는 듯 가만히 웃고만 있었다. 과연 석앙이 그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기 무섭게 사방에서 군웅들의 놀란 경호성이 터졌다.
"이제 시작이야!"
한 사내가 그리 소리쳤다. 정말로 이제 시작이었다. 실제로 아까 막 싸움이 시작됐을 때 조덕은 이화접목을 최대한
발휘하여 맹공을 펼쳤었다. 무굉은 이화접목에 맞서는 방법도 몰랐고 그러한 해괴한 상승무공은 접해본 일이 없었
기 때문에 너무 쉽게 상수를 내주고 만 것이었다. 허나 몇 초식 맞서보다 보니 이화접목이란 게 어떤 건지 좀 이해
를 한 듯 했다. 이게 무공이 아니라면 절대 금방 이해할 수 없었을 테지만, 천무대협의 무학 지식을 고스란히 넘겨
받은 무굉은 아주 쉽게도 그 이치를 깨달았다.
무굉은 그때부터 반격에 나선 것이었다. 진양은 무굉의 숨소리로 그가 당황하고 있다는 걸 알았었지만 이내 정상으
로 돌아오고 차분히 가라앉은 기색이 엿보여 곧 반격할 거라는 걸 짐작하고 있었다.
"이화접목도 별 게 아니구나!"
무굉은 곧바로 광표장법의 표정필살, 그 강맹한 초식을 펼쳤다. 지난날 융정의 대도를 부러트릴 때 사용했던 것으로
한 목표를 향해 멧돼지처럼 돌진하여 일 장을 후려갈기는 그런 무식한 초식이었다. 조덕은 급하게 이화접목의 수법
을 응용하여 비천엽절의 초식을 펼쳤다. 이화접목은 하나의 수단으로 사량발천근과 비슷한 것이다. 위력 면에선 감
히 비교할 수 없지만 둘 다 정해진 게 없는 하나의 깨달음과도 같았다.
놀랍게도 이화접목은 전혀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무굉의 우장이 덤벼들고 그 주변으로 조덕의 검과 손이 난무하
며 순식간에 뒤섞였는데, 무굉의 우장이 힘이 빠져 멈추는 게 아니라 도리어 더 힘차게 돌진해서 조덕의 앞가슴을
때리려는 게 아닌가? 조덕은 너무나 놀라서 사력을 다해 뒤로 몸을 날렸다.
"이럴 수가?"
"뭐가 이럴 수가야."
공격은 끝이 아니었다. 무굉은 이어서 광표장법의 쟁쟁한 초식들을 연달아 펼쳐댔다. 와표안광(臥豹眼光), 적해불퇴
(敵邂不退), 험악표기(險惡豹基), 격렬표부(激烈豹副)와 같은 초식들이다. 광표장법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한 듯 하나
같이 오로지 저돌적인 면만 추구했고 그 맹렬함과 위력은 가히 거목을 산산조각 낼 수준이었다. 조덕에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리 이화접목을 쓰고 사량발천근을 쓰며 함종절검법에 배합해도 도무지 소용이 없는 게 아니
겠는가! 그는 대강의 이유를 짐작했지만 혹시 다른 이유가?, 하면서 생각할 정도로 이화접목은 전혀 효력을 발휘하
지 못했다.
실로 그 누구도 상상치 못한 아주 짧고 간단한 결과였다. 누구든 무굉이 이길 거라고 생각했었지, 설마 이렇게 허무
하게 끝이 날 줄은 예상도 못했던 것이다. 아직 조덕은 싸우고 있었다. 무굉에 맞서서 이쪽저쪽 얻어터지며 죽을힘
으로 맞섰다. 허나 아무도 대세가 뒤집힐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 싸움은 이미 끝이 난 셈이다.
"하아압!"
멧돼지라고 해도 좋고 곰이라도 해도 좋은 무굉은 일갈하며 한순간 조덕의 검을 부러트렸다. 그가 기합에 놀라 얼
떨떨한 표정을 지을 때 갑자기 쌍장을 교차시켜 검을 두 동강 낸 것이었다. 이어서 무굉의 발은 그의 양 무릎을 한
대씩 때렸고 다시 이어서 좌장이 그의 오른쪽 가슴을 격타했다.
"사부님!"
동촉삼속이 소리치며 조덕에게 달려들었다.
"사부님, 괜찮습니까?"
"괜찮다……."
그러나 전혀 괜찮지 않다. 그의 입가에 흐르는 한 줄기의 피가 그것을 짐작케 했다. 무굉은 매우 놀란다는 얼굴로
주둥이를 움직였다.
"미리 말하는데 이거 내가 일부로 한 거 아니다. 설마 이렇게 간단히 쓰러질 줄은 몰랐다."
"이놈! 네놈이 감히 사부님을 모욕해?"
연경후는 그의 말을 놀리는 걸로 오해하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마보강도 마찬가지다. 무굉은 깜짝 놀라며,
"내가 언제 모욕했다고 그래? 정말 이렇게 간단히 쓰러질 줄 몰랐다."
"이놈이……."
"어어? 오지마 이놈아!"
설령 지금 그의 말들이 놀리는 게 아니라도 상관없다. 그런 뜻이 아니었더라도 그의 말은 조덕을 한낱 웃음거리로
만들게 하는 말들이었다. 더군다나 어찌되었건 간에 조덕은 동촉삼속 그들의 사부였다. 사원이 조덕에게 말을 걸며
일으켜 세우고 그 사이 연경후와 마보강은 분노를 참지 못한 채 무굉에게 덤비고 있었다.
"오지 말라니까! 오지마!"
무굉답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새파란 애들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얼굴이며 눈이며 벌써 두려움이 가득
끼어 있었다.
"이노옴!"
연경후가 악을 쓰며 빠르게 일 검을 내미는 순간,
"그만두시오."
때마침 양만풍이 단상 위로 펄쩍 뛰어올라 검을 대신 막아주었다. 그는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긴 창을 연경후의 검
끝에 대고 있었다. 연경후가 말했다.
"양 방주가 막을 심산입니까?"
"당연한 것 아니오? 당신들을 위해서라도 막아야 하오."
"뭐라고요? 우리를 위해서라니!"
연경후는 황당하다는 듯이 소리치다가 문득 뭘 느꼈는지 독한 표정으로 코웃음치며 물러섰다. 양만풍은 틈을 놓치
지 않고 말했다.
"연형도 깨달은 듯 하구려. 그렇소. 당신들은 죽었다 깨나도 무 대협을 이길 수 없기 때문에 당신들을 위해서 내가
일부로 막는 것이오."
"신경 끄십시오. 설령 싸우다 죽는다 해도 사부님을 뒤따르는 것뿐인데 무엇이 어쩌고 어째요?"
양만풍이 웃었다.
"핫핫. 난 연형이 항상 차분하고 생각이 깊은 인물인 줄 알았는데 오늘 보니 아니로군. 조 장문이 죽은 것도 아니고
곧 죽는다는 보장도 없거늘 대체 누구를 따라간단 말이오?"
"양 방주가 직접 보란 말이오! 사부님은 어떤 일이 있어도 피는 흘리지 않는데 갑자기 피를 토하시니……."
연경후는 약간 이성을 잃은 듯 했다. 이런 경우 양만풍은 어찌 해야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일부로 따끔한 어조로
날카롭고 크게 소리쳤다.
"장난하시오? 피 조금 토했다고 죽는다면 세상에 지금 누가 살아남았다는 거요? 말 같지도 않는 소리는 하지 마시
오. 가만히 있으란 말이오. 그리고 지금 당신네들이 무 대협을 친다고 해도 절대 이길 수 없을뿐더러, 이기든 지든
당신네들은 더 비참한 신세가 될 거요. 이 싸움은 조덕이 원한 바고 정정당당히 승부를 겨루었는데 복수를 하겠다
고 날뛰다니 말이오!"
"그… 그건……."
그의 폐부를 쑤시는 듯한 말은 연경후의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곧 느껴지는 바가 있었는지 빨개진 얼굴로 양만풍
에게 읍하고는 물러섰다. 진양은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함종문 1대 제자는 모두 조덕에게 하늘과 같은 은혜를 입
은 몸이기 때문에 조덕이 조금만 다쳐도 길길이 날뛰는 것이다.
마침 조덕이 사원의 부축에 의해 무굉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연경후와 마보강이 말렸지만 조덕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무굉을 향해 말했다.
"놀랍구나… 네가 이화접목을 무너트린 건 어떤 이유냐?"
"아, 그거? 보니까 굉장히 유유한 게 자꾸 내 힘을 갉아먹어서 화나서 후려친 건데."
"하하……."
조덕이 예상한 대로였다. 그는 혼잣말처럼 말했다.
"유(柔)를 이용해 무(無)를 만들지만, 극유(極有)의 극(極)에는 막히니."
그 자리에 있던 군웅들은 그 말뜻을 알지 못했다. 그 뜻을 깨달은 사람을 꼽으라면 이화접목을 배운 함종문도들과
진양일 뿐이다. 왜냐하면 그 말은 이화접목 구결에 속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이화접목을 익혔으니 구결을 모를 리
없고, 구결을 모를 리 없으니 그 말을 못 알아들을 리 없었다. 허나 진양은 이화접목을 배우지 않았다. 그가 저 말
뜻을 알아차린 데는 음양합무론의 덕을 보았을 뿐이었다. 음양합무론엔 이화접목에 관해서도 짤막하게나마 쓰여져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알고 보면 별로 어려운 말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부드러움으로 아무것도 없게 만드는 것은 이화접목의 기본
이지만, 극에 달한 존재가 덤비면 그 극함을 이기지 못하고 당하게 된다는 말이었다. 고로 이화접목으로 무굉의 공
격을 와해시킬 수 있었지만, 그의 공격이 너무나 맹렬하고 또 막강하여 극에 달한 양(陽)이었기 때문에 감당할 수
없었다는 얘기가 되는 셈이다. 무굉의 무공은 지극한 양기를 품는다. 이화접목은 음(陰)에다 그 뜻을 두고 있고 아
주 오묘한 무공이라 어떤 것이든 쉽게 제압할 수 있지만, 극에 달한 무공에는 맥을 못 춘다. 극양이든 극음이든, 결
국 한 방향으로 한 무공으로 대성한 상대는 그 누구도 제압하기 힘들며 이화접목으로도 제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알고 보면 별 것도 아닌 얘기. 그러나 이걸 깨닫는 사람은 모두 이화접목이 어떤 무공인지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
들이었다. 그럼 조덕은 무엇 때문에 그런 말로 슬슬 돌려서 한탄했는가? 그거야 뻔했다.
(남들이 알아서 좋을 거 없으니까.)
진양은 그렇게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무굉만한 내공과 막강한 무공을 가진 인물은 드물지만, 어쨌든 이화
접목이 그런 한 방향으로 대성한 공격에 약하다는 걸 남들이 알아서 좋을 게 없지 않는가.
문득 석앙이 말했다.
"이크… 이제 다 끝이 난 거 같군. 아까부터 뒷간을 좀… 다녀오겠으니 기다려."
진양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별 게 아니라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곧 사라졌다.
그러는 사이 조덕은 허탈한 얼굴로 말없이 몸을 돌렸다. 이제 사부의 한을 풀기는 틀린 것이다. 그는 사부를 매우
존경하고 감사하게 여기는 사람인데 기어코 그 한을 풀어드릴 수 없게 되었으니 깊이 탄식할 만도 했다. 생각 같아
선 봉우리를 내려가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대연 중이다. 아무리 패해서 슬프고 무기력해졌다 해도 대연을
주최한 문파의 장문인으로서 중도에 먼저 갈 순 없는 법이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단상 위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다른 대문파들과 함께 앉는 자리였다. 어느새 청성파의 장문인이 된 채문은 그와 사이가 돈독했으므로 그의 패배도
안타까웠다. 위로의 말은 건네지 않고 말없이 술을 한 잔 따라주기만 했다.
대연은 이렇게 쉽게 마무리되는 듯 싶었다. 곧 대연이 끝나면 다시 평화로울 것 같았다. 이제 함종문과 감총방이 싸
울 일도 없고 함종문이 무굉을 죽이려고 치를 떨 것 같지도 않았다. 그 증거로 조덕은 연회 도중 일어나서 연경후
의 입을 통해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오늘 패했으므로 자존자대 무굉이나 또는 감총방과 싸울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함종문 장문인 조덕은 비록 사부의
한을 풀어드리진 못했으나, 약속된 정정당당한 승부에서 패했으니 할 말이 없습니다. 이것은 그저 천명이라고 여기
고 저를 위시한 함종문은 오늘 대연이 끝난 뒤 봉문(封門)하겠습니다."
다만 안타까운 거라면 함종문 같은 훌륭한 문파가 봉문한다는 점이었다. 기간은 정확히 말해두지 않아서 언제 다시
강호로 나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봉문이란 문파의 활동을 전부 중지하겠다는 말로 세상에 나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봉문한 문파는 봉문을 선언한 뒤로 그 어떤 활동도 하지 않고, 세상의 어떤 일에도 관여하지 않으며, 세상의 어떤
사람도 만나지 않는다. 그게 바로 봉문이었다.
그러나 평범한 군웅들에게 있어서 그건 별로 큰 의미를 주지 못했다. 그냥 사천의 동촉유함이라 불리는 함종문이
봉문을 한다, 라고만 생각할 정도였다. 그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생활만 있을 뿐이고, 사실 함종문과 감총방이 머리
터지게 싸워도 별로 상관할 게 없었다. 다만 그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고 또 천하의 형세도 다시 대송이 일어
나는 듯하여 그들이 싸우지 않기를 원했던 것이다.
대연이 한 차례 무르익듯 사람들은 어느새 좀 전 놀라운 대결 광경을 잊은 채 즐겁게 놀았다. 서로 무공에 대해 얘
기도 나누고 대작도 하며 각자 흥겨운 취기를 한층 뽐내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슬슬 떠날 때가 다되어가
고 있었다. 벌써부터 다른 일이 있다는 말로 먼저 자리를 뜨는 사람마저 있었다. 이제 대연은 끝이 나는 듯 했다.
하지만 군웅들의 그런 생각은 그저 착각에 지나지 않았다. 대연은 끝이 나지 않았다. 아니, 끝이 날 수 없었다. 아직
하나의 일. 모두가 놀랄만한 일이며 진양조차도 놀랄만한 일이 남아있었다. 그건 저녁이 들어서는 듯 안개가 좀 짙
어지고 사방이 약간 어두워지며 은은한 한기가 퍼질 때쯤에 일어났다. 바로 무굉과 감총방 제자들이 앉은 그들의
객석에서.
"죽어랏!"
악독한 암기였다. 흔히 표창이라고 부르는 이 암기는 일부에선 독표(毒표)라고 부를 정도로 못된 암기였다. 주먹만
한 크기에 주변으로 예리한 칼날이 여러 개 솟아있어서 그냥 보기에는 표창 같았지만, 실제로 남만(南蠻)에서 수집
한 극독을 칠해놓은 독표였다. 근래 이 독표가 어디서부터인지 몰라도 악한 무리들 사이사이로 급속히 번졌다. 그런
독표가 빠른 속도로 어느 한 명의 기합과 함께 무굉에게 날아들고 있는 것이다. 무굉의 뒤통수를 노리는 독표였다.
진양은 누구보다도 빨리 반응했다. 자신도 취기에 휩싸여 잠깐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심상치 않은 소리
를 들었고 한순간 기합과 함께 표창의 파공음이 들렸다. 그는 방향은 알기 쉬웠다. 파공음만 들어도 그 도달하는 방
향에 무굉의 뒤통수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진양이었다. 그의 입은 저절로 벌어졌다.
"조심!"
노파심이라 해도 좋았다. 그는 그렇게 소리 지른 후에야 괜한 짓을 했다고 여겼다. 자신도 알 정도의 기습에 무굉이
당할 건 아니지 않는가! 그의 노파심을 비웃기라도 하듯 무굉은 술을 입에 쏟아 붓다 말고 갑자기 술병을 집어던졌
다.
"뭐야!"
술병이 깨지는 소리가 귓전을 자극함과 동시에 무굉도 악을 썼다. 분기충천한 음성만 들어보아도 흥겨운 취기를 깨
트린 자에 대해 화난 게 틀림없었다.
"어떤 놈이야!"
"이런 놈이다!"
무굉을 비롯한 군웅들은 표창이 날아오는 곳이 단상 뒤편이라는 걸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단상 뒤편은 절벽이 아닌
가? 그러나 군웅들도 보았듯 단상과 절벽 사이로 남은 작은 공간에서 누군가 표창을 내던진 걸 보았다. 그의 존재
는 둘째치고, 그곳까지 아무도 모르게 간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다시금 날아온 표창은 한 개도 아니고 그렇다고 두
개도 아닌, 무려 다섯 개였다.
"무 대협, 조심하세요!"
양만풍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무굉은 돌연 탁상을 뒤엎어다가 날아오는 표창들을 후려갈겼다. 순식간에 그 주변
은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무굉은 그만큼 화가 난 듯 했다.
"어떤 나쁜 놈이야! 안 나오면 잡아서 절벽 아래로 던져버리겠어."
"말 안 해도 나갈 것이다."
나온다면서 바로 안 나온다. 무굉은 조롱을 받았다고 여기고 펄펄 날뛰며 그쪽을 향해 뛰어들었다. 그 순간 또 표창
이 날아왔다. 이번에도 다섯 개다. 무굉은 백타권을 펼쳐 다섯 개를 일일이 다 쳐내버렸다. 옆면을 때렸기 때문에
독에 당할 리는 없었으나 그렇게 한다는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동시에 그쪽에서 튀어나온 자가
있었다.
"이놈! 각오해라."
무굉은 상대의 행색을 보고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웬 기생 년 같은 놈이……."
누구나 공감하는 얘기다. 여기서 행색이란 옷차림을 말하는 게 아니라 생김새를 말하는 것이었다. 얼굴이 반반하고
희며 팔과 손 등 드러난 피부도 아주 하얬다. 여자조차 부러워할 그런 몸을 가진 자. 그런데 그는 남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들 역겨워했다. 그러나 그건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곧 언제부터인가 들었던 소문을 기억해내고 입을 딱
벌리는 자, 눈을 치켜 뜨는 자, 벌써부터 무기를 뽑는 자로 돌변했다.
"누구야, 넌 또!"
"화주대도. 석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