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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 十 二 章. 적수 대전 3 (87/90)

                                    第 四 十 二 章. 적수 대전 3

융왕은 가능한 시간을 끌려고 입을 열어 크게 소리쳤다.

"이 비열한 놈! 일부로 격장지계를 써서 나를 곤경에 빠트린 후 제압하려는 수작이구나. 그러고도 네가  영웅호한이

란 말이냐?"

"그러게 말이다."

진양은 흐흐, 웃으며 대꾸하고는 봉 끝으로 그의 천돌혈을 노렸다. 그의 속내를 훤히 들여다보고 재빨리  선공을 가

하는 것이었다. 융왕은 이미 여러 번 당한 후라 잘 대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주 손쉽게 피해내고는 다시금 고함을 

쳤다.

"또 이런 기습을 하다니? 정말 못된 놈이구나."

"시끄럽다. 네놈은 주둥이로 싸우는 것이냐?"

이 말에 융왕은 갑자기 창피해졌다. 진양은 비록 무공이 뛰어나고  그 정체를 잘 모르지만, 어린 건 확실하여 분명 

새파란 후배였다. 그런데 무림의 선배이자 악명이나마 북망 채주로 이름을  떨친 늙은 대선배가 이처럼 자질구레한 

것에 매달리니 어찌 창피하지 않겠는가? 그는 느껴지는 게 있어 더 대답하지 않고 쌍장을 휘둘렀다. 좌장은 사립으

로 날리고 우장은 가슴으로 날리고 있었다.

"흥!"

이때 진양은 뒤로 한 발 물러서며 반격을 하려고 했는데, 의외로 융왕이 코웃음치며 우장을 위로 빠르게 쳐드는 게 

아니겠는가! 알고 보니 좌장은 허초였고 우장 역시 가슴을 노리는 척 하다가 갑자기 위로 올라 사립을 쳐내려는 것

이었다. 이 공격은 애당초 진양의 얼굴을 드러내게 하려했던 것이다. 진양이 습득한 진안은 귀로써 모든 걸 해결하

는 것이라 허초와 실초는 아무리 숨겨도 쉽게  알 수 있는데도 이번만큼은 전혀 알지 못했다.  과연 융왕의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진양은 황급히 고개를 뒤로 젖히며, 이어질 공격을 생각하곤 두  발을 디디어 

하늘 높이 떠올랐다. 이리 하자 몸이 반동을 받아 자연히 한 바퀴 돌게 되었고 융왕의 안면은 정면으로 보였다. 진

양은 발이 땅에 닿기도 전에 먼저 봉을 그의 견정, 천돌, 옥당 같은 대혈로 향하게 했다.

"이얍!"

일전에 석앙에게 말해준 적이 있는 그  봉법이었다. 상혼봉법이라고 하는 이 봉법은 그  움직임이 마치 유루봉법과 

비슷했다. 일단은 견정, 천돌, 옥당 이 세 혈도를 빠르게 찌르더니 다  실패하자 그와 동시에 봉이 빙글빙글 회전하

며 유루봉법처럼 공격이 끊이지가 않는 것이다. 융왕은 그런 걸 알아채고 상혼객의 정체마저 깨닫게 되었다.

"옳거니! 본래 네놈은……."

"자, 받으시지."

막 말이 나오는 찰나 이미 진양의 봉은 그의 오른쪽 인영혈로 덤비고 있었다. 옆으로 후려 패는 듯 했는데 그 위세

는 지난날 유루봉법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융왕도 느낀 바가 있어서 경시하는 생각을 버리고 일 장으로 봉을 직접 

쳐내었다. 그러나 방식은 똑같았다. 예전처럼 봉을 쳐내니 반대로  회전하며 왼쪽 목덜미 인영혈로 덤비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융왕은 시험을 해볼 겸 이번엔 위로 쳐내버렸다. 과연 예상대로 봉 끝은 위로 올라갔고 반대편 봉 끝이 

아래서 거세게 올라오며 융왕의 턱주가리를 노리고 있었다. 융왕은 뒤로 물러서며 피했다. 그러자 봉은 허탕을 치면

서도 그 원심력을 그대로 받아 빙글빙글 돌면서 다시금 융왕에게 덤벼들고 있었다.

지켜보고 있던 군웅들은 모두들 감탄을 금치 못했다. 세상에 이런 기가 막힌 공격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여

기 군웅들은 깨나 실력이 괜찮다는 사람들이고 또 수년 전까지만 해도 명성을 날렸던 유루봉법에 대해 알고 있어서 

이 봉법이 그와 비슷하다는 것도 알았다. 물론 봉에 담긴  힘이 유루봉법과 다르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 중에 가장 

놀라는 사람은 양만풍이었다. 그는 이 봉법은 틀림없이 유루봉법에서 따온 것이라 여겼다. 뭔가 다르긴 하지만 이전

부터 상혼객의 정체를 짐작해오고 있던 터라  그가 진양이라는 걸 분명히 깨달을 수  있었다. 동촉삼속이나 감총방 

제자들 역시 확연히 알고 있는 상황이다.

융왕은 가면 갈수록 밀렸다. 이전과는 정말 판이했다. 본래 유루봉법이란 강이  흐르는 듯한 것을 기반으로 삼는다. 

강의 물이 흐르는 것처럼 유유하고 연약하게 회전시키면서도, 강이 멈추지 않는 것처럼  그 흐름이 끊기지 않게 했

다. 모두들 알다시피 봉은 계속 빙글빙글 돌며 그것을 멈추게 하려고 정면으로 받아치면 오히려 그 힘을 받아 반대

로 세게 들어온다. 거기에 또 전이라는 구결도 사용한다고 하니 그것이 바로 유루봉법인 게다. 헌데 이 봉법은 조금 

달랐다. 흐름이 끊기지 않는 방식은 비슷하면서도, 봉에 힘이 담긴 듯 기세가 날카로우며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기

막힌 절초를 보여주고 있었다. 마치 봉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처럼 만들기 어려운 자세도 잘만 소화해냈다.

이 상혼봉법은 과연 진양의 피 말리는 노력이 담긴 만큼 뛰어난 것이었다. 무공을 창안한다는 것은 본래 많은 지식

을 필요로 한다. 세상에 고수가 많지만 함부로 무공을 만들지 못하는 이유는 그러한 데 있었다. 무공만 높아도 되는 

게 아니고 그렇다고 아는 것만 많아도 되는 게 아닌 것이다. 허나  왕령이 유루철장법을 봉법으로 소화시켜 유루봉

법을 만들어냈듯, 진양도 유루봉법에 부족한 점을 보완하여 상혼봉법을 만들 수 있었다. 거기에는 당연히  음양합무

론의 도움이 컸다. 아니, 거의 전부라고 해도 좋았다. 음양합무론에선 음과 양처럼  서로 다른 기질이 합할 수 있다

는 것을 말해주었다. 이는 천무대협의 무학 철학으로 어떤 것이든  쉽게 소화하고 합할 수 있다는 것, 결국 무학의 

근본은 하나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진양은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명확히 깨닫지 못했었는데, 그걸 

읽자 어떤 광명을 보듯 느껴지는 게 있었다. 마치 어둠 속에서 한 줄기의 밝은 빛을 보듯이 뭔가 깨달음이 있던 것

이다. 그리하여 그는 상혼봉법을 만들 수 있었다. 유루봉법을 기반으로 하고 거기에 탄지신통, 함종권법, 함종절검법

을 모두 합하여 강점을 더 강점으로 만들고 약점은 가리는 식으로 모조리  보완한 셈이었다. 거기에 진안까지 합치

면? 가히 전대미문의 무공이 된다.

그런 상혼봉법이니 감히 융왕이 어찌 상대할 수 있겠는가? 융왕은 고전하는 수밖엔 없었다. 그리 대단한 무공과 교

활함을 가지고도 진양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실제로 융왕은  진양보다 강했다. 무공도 엄밀히 따지면 초고성장을 

12성 대성한 융왕이 뛰어났고, 내공도 무굉과 맞먹을 정도로 강대하니 당연히 진양은 상대도 안 되었다. 괜히 진양

이 얕은 수로 융왕을 골려주었겠는가? 그러나 이 상혼봉법을 펼친다면 얘기가 다르다. 이 봉법은 계속 공격이 공격

으로 이어져서 중간에 반격을 할 틈이 없었다. 유루봉법보다 빠르니 그건 더 심각했다. 당년 유루봉법도 공격할 시

간이 없어 패하는 고수가 부지기수였는데 그보다 빠른 식으로 달려드는 상혼봉법이니!  한번만 틈을 잡으면 융왕이 

승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틈을 잡기가 어려운 것이다.

끝내 융왕은 싸우는 도중에 탄식을 흘리고 말았다.

"대체 이 봉법의 이름은 뭐라고 하느냐? 굉장하군!"

"상혼봉법이라 해두지."

진양은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군웅들은 그 말을 듣고 저마다 한번씩 되뇌며 멀뚱멀뚱 서로를 쳐다보았다. 이때 봉

이 낌새가 심상치 않아졌다. 회전하고 있음에도 한 차례 부르르 떨며 뭔가 튀어나올 기미가 엿보였다. 그러더니 갑

자기 진양이 무서운 속도로 접근했다. 융왕은 봉을  피하고 또 봉이 떨려서 그가 이처럼 빠르게  접근할 줄은 몰라 

크게 당하고 말았다. 진양과 융왕의 거리는 그냥 손만 뻗으면 닿는 거리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 융

왕은 많은 생각을 했다.

(이리 붙었으니 차라리 물러서지 말고 오히려 반격을 할 기회다!)

하지만 이것이 계획된 작전이었을 줄 어찌 알았으랴! 융왕의 일 장이 화산 폭발하듯  맹렬히 튀어나와 진양의 전중

혈에 닿으려는 순간 진양이 갑자기 봉 끝을 들이대며 몸은 옆으로 살짝 이동했다.  이때 봉에는 그다지 큰 힘이 없

었다. 조금의 힘은 있었지만 그건 밀어내는 힘도 아니고 버티는 힘도 아니고 다만  몸과 함께 유지할 수 있을 정도

의 작은 힘이었다. 자연히 이 맹렬한 일 장을 맞으니 봉과 몸은 약간 밀려나며 저절로 옆으로 돌아섰다. 봉 끝에 맞

았으므로 반대편 봉 끝은 도리어 융왕의 얼굴로 맹렬히 돌진하게 되었다. 융왕은 그제야 이것이 작전임을 알아채고 

황급히 몸을 뒤로 날려 피했다. 진양은 그것도 예상하고 있었다. 애당초 그가 노렸던 것은 바로 그 다음의 동작이었

다.

"자, 탄봉비천이라고 한다."

융왕이 제멋대로 덤비는 봉을 피했으니 봉에는 그 원심력이 그대로 있었다. 진양은 그  봉을 두 손으로 잘 잡고 함

께 한 바퀴 돌더니, 내공을 이용하여 봉의 방향을 교묘하게 바꾸어 앞으로 세게 밀어냈다. 그리고  앞으로 튀어나가

는 봉의 끝에 중지를 퉁겨 잘 고정되어 날아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탄봉비천이란 초식으로 탄지신통

과, 사량발천근을 잘도 교합한 절초였다.

융왕은 뒤로 물러서면서 진양이 갑자기 한 바퀴 도는 걸 보고 뭔가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이처럼 해괴한 수

법으로 봉을 날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더군다나 진양의 동작이 너무나 빠른,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이라 융왕의 

몸은 아직 뒤로 물러서고 있는 중이었다. 거기에 또 한 가지 첨가하여, 융왕의 초고성장 힘이 담긴 것을 사량발천근

으로 교묘하게 방향을 바꿔 날려주었으니 대체 얼마나 빠르겠는가? 진양은  사실 아까 그가 일 장을 날렸을 때 봉 

끝으로 막자 초고성장의 내력이 전해져와 가슴이 약간 답답했으나, 다행히  봉 끝으로 밀려나듯 두었으므로 그다지 

피해는 입지 않았었다. 그래서 아무 일도 없다는 초고성장의 힘을 그대로 돌려주게 되었던 것이다.

융왕은 너무나 다급하여 자신도 모르게 앗, 하고 경호성을 발했다. 그 짧은 경호성이 제대로 울려 퍼지기도 전에 가

슴으로 날아드는 봉을 향해 쌍장을 발출했다. 좌우 쌍장으로 교차시키듯  후려쳐 봉을 중도에 부러트리려는 심산인 

것이다. 이 짧은 순간에도 그처럼 빠르게 반응할 수 있으니 과연 융왕의 무공은 초절하다는 표현이 알맞았다. 하지

만 봉에 담긴 힘은 융왕 그 자신이 자랑하는 초고성장의 일 장이었다. 그는  우장을 뒤편에 두고 좌장을 앞에 두어 

교차시켰는데, 봉이 너무나 빠른 덕에 우장은 피해가고 좌장에만  옆구리를 맞게 되었다. 이에 봉은 방향이 뒤틀려 

그의 가슴을 찌르지는 못했으나 도리어 옆으로 회전해버려서 얻어터지듯 옆  대가리로 맞게 되었다. 융왕은 쓰러지

는 것 같다가 겨우 중심을 잡았다. 그 사이 봉은 빙글빙글 돌며 공교롭게도 진양이 있는 자리로 멋들어지게 되돌아

갔다.

"네놈을 살려두면 안 되겠구나!"

가슴을 얻어맞은 융왕은 노할대로 노하면서도 은근히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진양을 살려 두었다간  큰 후환이 될 

거라 여겼다. 지금은 자신이 아직 한 발 앞서는 상황이니 그가 상혼봉법을 펼치기 전에 먼저 공격을 퍼부어 반드시 

목을 따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건 진양도 마찬가지다. 진양은 원래 융왕은  죽이기로 계획했다. 수년 동안 정

고와 지내서 마음이 너그럽고 협심이 많아졌으나 융왕에 대한 한은 없어지지 않았다.  하물며 스스로 살 기회도 버

리고 덤볐으니 죽는 길밖에는 없다고 여겼다. 그는 지금 탄봉비천으로 융왕을 죽이려 했는데 이렇게 실패해서 다만 

한스러울 뿐이었다.

"다시 한번 해보자."

융왕이 고함치며 덤벼들었다. 이번에는 확실히 달랐다. 진양은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하는 

수 없이 사력을 다해 맞서 싸웠다. 허나 융왕의 무공에는 과연 따를 수가 없었다. 경험도 많고 뛰어난 그이니 어떤 

속임수도 통하지 않았고 통한데 해도 효과가 없었다. 융왕은 진양이 허초에 잘 속지  않는 걸 보고 일부로 전부 실

초만으로 상대하여 진양을 위기에 몰아넣었다.

상황이 위급해진 걸 느낀 양만풍은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었다. 벌떡 일어나서 당장에 도움을 주려고 했다. 하물며 

상혼객이 진양이라는 것도 알았으니 더 지체할 필요도 없었다. 막 창을 꼬나 쥐고 발을 내디디는데 뒤에 있던 팽준

이 일어서며 방해했다.

"저놈이 저 팔 없는 괴물을 도와 융형을 치려고 한다. 저놈을 쳐라!"

팽준의 난데없는 고함에 분위기가 크게 살벌해졌다. 금병들은 처음엔 멀뚱멀뚱 했으나 팽준이 다시 고함을 치자 그

제야 깨닫고 양만풍을 둘러쌌다. 양만풍은 그들을 뚫고 지나가려다 멈추며 입을 열었다.

"상혼객은 너희가 죽지 않길 바라니 그냥  비켜준다면 나도 손을 대지 않겠다. 난  원래 금나라를 뼈에 사무치도록 

증오하지만 이번만은 봐주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비키지 않고 방해한다면 그때는 상혼객이라도 날 말릴 수 없다."

병사들은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팽준이 악을 쓴다.

"다 개소리다. 얼른 창으로 찔러라. 그놈은 하나란 말이다, 이 멍청이들아!"

"뭐가 하나라는 거냐? 네놈은 아무래도 죽어야 되겠다."

갑자기 병사들 틈에서 누군가 번쩍 튀어나왔다.  어느새 한 금병의 검을 빼앗아 팽준에게  돌진하는 그는 연경후가 

아닌가? 팽준은 소스라치게 놀라 오줌을 지리며 뒷걸음질쳤다.

"저…, 저놈을 막아! 저놈… 저놈!"

"막으면 모두 죽는다!"

연경후의 경공은 뛰어난 편이었다. 몇몇 막아서는 금병들의 어깨를 밟고 오히려 다 빠르게 팽준에게 달려들었다. 그

러나 팽준이 만일 명망 있는 장군이라던가, 병사들에게 신임이 있다던가, 하는 장군이었다면 이렇게 쉽게 뚫지는 못

했을 것이다. 병사들은 이미 그에게 의심을 품고  있던 상황이었고 그도 추태를 한두 번 보인  게 아니라서 자신도 

모르게 주춤하고 말았다. 물론 거기에는 연경후나 양만풍의 살벌한 고함이 있던 이유도 있었다. 막아서는  병사들은 

그냥 바로 근처에 있다가 자신도 모르게 막아선 자들일 뿐이다.

팽준은 너무 놀라서 그냥 제자리에 자빠졌다. 그 광경을 본 융왕은 크게 놀랐다.  본디 융왕은 팽준을 알지 못한다. 

융왕은 난주에서 감총방을 무너트리고 서안으로 돌아왔는데  몽고군에 함락된 걸 알고 서둘러  동쪽으로 피했었다. 

원래는 석앙의 소개로 서안에 있던 금군과 함께 지냈던 것이다. 그런데 우연히 적수에 이르렀을 때 죽은 금나라 병

사를 발견하고 찾아가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다. 그는 한눈에도 이 팽준이란 작자가  형편없다는 걸 알았지만 

강호의 적들을 상대하려면 혼자는 무리이기 때문에 일부 무공을 보여주고는 식객처럼 지내게 되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만일 팽준이 죽는다면 큰 위험을 겪게 되는 것이다. 지금 진양을 조금만 몰아붙이면 이길 수 있었

지만, 그를 죽인다고 해도 팽준 또한 죽으니 금병들은 뿔뿔이 흩어질 것이 분명했다. 자신이 아무리  나서서 지도하

려 한다해도 들을 병사들이 아니라고 여겼다. 융왕은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한 차례 진양을 밀어붙인 후 무섭게 달

려가 연경후의 어깨를 잡아버렸다.

"이놈이?"

연경후는 그를 보자 갑자기 울화통이 터졌다. 아까부터 삼진을 무너트리는 둥 방해만 하더니 지금 또 팽준을 못 죽

이게 막지 않는가! 연경후는 어깨를 잡혔음에도 그냥 무식하게 융왕의 허리를 쪼갤 듯이 검을 휘돌렸다. 융왕은 절

정고수라 이런 수에 당할 리 없다. 조금 의외의 공격이었지만 손으로 어깨를  누르고 그를 뛰어넘어 팽준의 정면을 

가로막았다. 연경후는 펄펄 날뛰듯이 달려들었다.

"흥. 너 같은 놈은 살려둘 필요가 없지."

융왕은 연경후의 무공 수준을 알고 있어서 살짝 비웃었다. 곧바로 왼손 소매로  마치 바람을 날리듯 거세게 휘저었

다. 이는 광풍중목(狂風中木)이라는 초식으로 근래 융왕이 직접  만든 초식이었다. 갑자기 거센 광풍이 휘몰아쳤다. 

비록 바람은 소매에 날려 한순간만 불고 말았지만, 그 광풍이 어찌나 센지 달려들고 있던 연경후의 몸이 저절로 딱 

멈춰버렸다. 이름이 광풍중목인 건 본래 이런 걸 말하는 것이다.

연경후는 어이가 없어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멍하니 있었다. 과연 융왕의  내공이 대단하여 소매로 이런 광풍

을 발휘한다고 생각하니 약간 겁도 나고 황당하기도 한 것이다. 그런 사이 융왕은 번개 같이 덤벼들며 우장을 그의 

가슴에 꽂았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연경후는 피를 뿌리며 몇 장은 날아갔다. 이 동작은 무척이나 빨라서 설령 연

경후가 멍하니 있지 않았다 하더라도 피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안 돼!"

가장 먼저 반응한 사람은 양만풍이었다. 진양은 끼어 들려다가 양만풍이 고함을 쳐서 그냥 가만히 있도록 했다. 양

만풍은 뛰어올라 직접 연경후를 받아들었다. 얼마나 세게 밀려나는지 양만풍이  받았는데도 몸이 뒤로 한참 밀려날 

정도였다. 만일 받지 않았다면 그는 떨어져 머리가 깨져버렸을 것 같았다. 물론 마보강과 사원이 뒤에서 받을 준비

를 하고 있었지만.

"연형! 괜찮소?"

연경후는 한 차례 피를 토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색을 보니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았다. 과연 함종문 제자 중 

최고의 실력자답게 실력도 뛰어나서 비록 정통으로 맞는 것 같았지만, 그 찰나의 순간 가슴을 약간 위로 젖혀 사량

발천근의 묘를 잘 이용했다. 그래서 중상은 면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싸울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부

상은 부상이다.

"제법이로구나. 과연 동촉삼속에서 가장 뛰어난 놈답군."

"융왕과 팽준을 제외한 모든 금병들은 들어라!"

융왕이 연경후를 보며 떠드는데 갑자기 양만풍이 좌중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병사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시선을 모

았다.

"저 상혼객은 본래 나와는 절친한 친구 사이다. 오랜만에 만난 절친한 친구! 그는 지금 자비심을 베풀어 너희를  죽

일 생각이 없다. 화주대도 석앙과 상혼객 역시 친구인데 석앙이 너희들은 살려달라고 부탁을 했으므로 너희에겐 손

을 대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얼른 돌아가도록 하라. 너희는 성을 빼앗긴 패잔병들이고, 몽고군이 추격해 오진 않지

만 중간에 남송의 협의지사라도 만나면 목숨을 빼앗기기  십상이니 뿔뿔이 흩어져 너희들 고향으로 올라가기 바란

다. 내 말을 알아들었느냐?"

양만풍은 이런 얘기를 하면 융왕이나 팽준이 말을 가로막을 거라 여겼다. 그래서  처음엔 마치 진양과의 일을 토로

하는 것처럼 말하다가, 어느새 교묘하게 바꾸며 매우 빠르게 말해서 병사들이 전의를 상실케 만들었다. 팽준은 크게 

화가 났다.

"이놈! 어디서 감히 헛소리를 늘어놓는 게냐?"

"시끄럽다. 난 팽준이란 장군은 들어본 적이 없다."

"이… 이놈이!"

병사들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들 둘을 번갈아 본다. 실제로 양만풍은 사실을 말한 것이었다. 그는 언제나 금을 몰

아내고 강산을 다시 되찾을 걸 고대하여 언제나 주변에 있는 금군에 대해 조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서안은 중요

한 요지로 당연히 조사를 해두었다. 그런데 팽준이란 이름은 한번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하급 무관까지 싹 

조사해둔 바라 양만풍은 그걸 이상하게 여겼다.

그러므로 양만풍은 팽준의 실태를 알지 못했지만 그래도 뭔가 비리가 있다고 여겼다. 아니, 없어도 좋다. 없어도 이

렇게 말함으로써 병사들이 의구심을 갖도록 만들면 되었다. 이미 철저히 조사했는데도 팽준이란 작자는 본 적이 없

으니 이런 잡병들은 더 그럴 것이다. 게다가 많이 배운 자들도 아니라서 양만풍 정도의 말솜씨를 가진 자면 충분히 

이간질시킬 수 있었다. 양만풍은 곧 이어서 재빠르게 말을 잇고는 병사들을 보고 다시 소리쳤다.

"가란 말이다!"

과연 병사들은 금새 동요하기 시작했다. 한바탕 양만풍의 말을  듣고는 막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절로 일어났는데, 

거기에 팽준을 사기꾼으로 의심하게 되고 양만풍이 무서운 기세를 보이자 서로 밟고 넘으며 도망치려고 했다. 융왕

은 병사들의 도움이 절실했다. 말로 안 들으면 힘으로라도 머무르게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감히!"

그는 곧 빠르게 달려가 가장 선두에서 도망치는 병사를 잡았다. 즉석에서 모가지를  비틀어 죽이고 이어서 오는 병

사 셋의 가슴에 일 장씩을 먹였다. 그들은 모두 피를 분수처럼 뿜고 죽어버렸다. 뒤에서 따라 도망치던 병사들은 오

줌을 지릴 정도로 겁이 나서 마치 약속이나 한 듯 그 자리에 꿇어버렸다.

"요… 용서해주십시오!"

"만일 또 이간질에 넘어가 팽 장군을 배반하고 도망친다면 그땐 모조리 죽여버릴 테다."

병사들은 이마를 조아리며 이구동성으로 예, 하고 답했다. 그들은  모두 융왕이 얼마나 무서운 인물인지 알고 있었

다. 그가 처음 이 숲의 진채로 찾아와  팽준과 의기투합할 때 보여준 무공은 가히 신처럼  느껴질 정도로 대단해서 

모두가 겁을 먹지 않을 수 없었다. 하물며 지금 금병들은 모두 도망치려고 했고  눈앞에서 4명이 눈 깜짝할 사이에 

죽어버렸으니 얼마나 겁이 나겠는가? 그때 양만풍이 또 소리쳤다.

"이간질이라고? 그럼 팽준의 본래 직함은 무어란 말이냐? 왜 난 한번도 들은 적이 없지? 서안에 주둔한 금군에  대

해선 잘 조사를 해두었는데 어째서 그런 이름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을까!"

"너… 너… 이놈……!"

팽준은 얼굴이 새파랗게 변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연경후 곁으로 다가와 그를 부축하던  사원과 마보강은 서로 

눈짓을 보냈다. 순간 마보강이 갑자기 팽준에게 달려들어 그의 맥문을 낚아챘다. 맥문을 한번 잡히면 기가 잘 통하

지 못하고 맥이 자꾸 끊겨서 저절로 힘이 빠지게 된다. 당연히 고수라도 저항을 제대로 못하는 것이다. 팽준처럼 무

공도 모르는 자는 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 손 놓아라!"

융왕이 몸을 날려 다시 그곳으로 왔다.  그러나 마보강은 왼손으론 팽준의 맥문을 움켜쥐고  오른손으론 그의 목을 

살짝 조르며 말했다.

"이 자는 모두를 속인 사기꾼이니 살려둘  필요가 없다. 양 방주가 말씀하시길 서안엔  이런 장군이 없었다고 하니 

필경 사기꾼일 것이다. 그리고 금나라 사람임으로 우리의 원수와도 같으며 석앙은 금병만 살려달라고 했지, 이런 사

기꾼은 살려달라고 한 적이 없다. 그러므로 어떤 식으로 죽여도 상관이 없다!"

"이 비열한 놈, 무공도 모르는 자를 그렇게 비열하게 죽이려 하다니 네놈이 그러고도 영웅호한이냐?"

융왕은 조바심이 나서 소리쳤다. 그러나 마보강은 웃기만 했다.

"그럼 네놈은 어떻고? 아니면 이놈은? 이에는 이로 갚는 게 원칙이다."

"이런 더러운 놈! 한인들은 다 이 모양이란 말이냐?"

"시끄럽다. 사람은 융통성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아무 때나 정정당당히 대결하는 줄 아느냐?"

마보강의 이 말은 상당히 사리에 맞았다. 과연 진양이 융통성 있게 융왕에게 한번 참회의 기회를 주고 거절하니 죽

이려고 애를 쓰는 것처럼, 마보강도 본래는 협의지사지만 상황에  따라선 한번쯤 바뀔 수도 있는 것이었다. 융왕은 

적당히 대꾸할 말을 못 찾아 뭘 씹듯이 입만 오물댔다.

"금나라 패잔병들에게 묻겠다. 이 사기꾼을 죽이면 내가 아주 못된 놈이 되는 것이냐?"

당연히 병사들은 대답이 없다. 마보강의 이런 말은 뒷구멍을 하나 만들어놓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융왕은 그가 연

경후만큼 생각이 깊으면서도 그보다 간교한 걸 알고 화가 머리끝가지 치밀었지만 뭐라고 대꾸할 것이 없었다. 마보

강은 좌중을 한 차례 쭉 둘러보고는 소리쳤다.

"그럼 모두 찬성한 것으로 알고!"

마보강이 막 손에 힘을 가하려고 했다. 진양은 이걸 보면서 말리려고 했으나 다시 생각해보니 상관이 없을 것 같았

다. 그가 이렇게 금병들을 살려주는 이유도 석앙의 소원 때문이었다. 비록 몇 가지 느껴지는 게 있어 진심으로 도우

려 했었지만 팽준에 대해서는 전혀 아니다. 그는 아까부터 종종 병사를 이용해  치려는 비열한 행동을 해왔고 위기

가 닥치면 도망치기에 바빴다. 양만풍과 마보강의 말을 들으며 그가 정말 장군이긴  한지 의심까지 들자 꼭 살려둘 

이유도 없다고 생각하기에 이른 것이다. 운무 역시 좀 갈등하는 듯 했으나 생각의  끝은 진양과 별로 다를 바가 없

어서 길게 한숨을 내쉬며 '아미타불' 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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