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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 十 二 章. 적수 대전 4 (88/90)

                                    第 四 十 二 章. 적수 대전 4

"흥!"

코웃음쳐대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병사들 틈에서 빠르게 튀어나왔다. 그곳은 마보강과 매우 가까운 거리였다.  마보

강은 설마 병사들 중에서 누가 방해할 줄은 몰라 전혀 대비를 안 하다가 코웃음치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니 웬 

병사 한 명이 주먹을 날리고 있었다. 자세를 보니 무공을 익힌 듯 정중했고 이  일 권 또한 어디서 많이 본 자세였

다. 양손을 모두 쓰고 있어서 막을 수 없으니 일단 피하고 보자는 심산에서 팽준의 맥문과 목을 쥔 채 그대로 뒤로 

물러섰다. 이 병사는 그래도 쫓아왔다. 더 빠르게 돌진하였는데  어깨가 굳어진 것처럼 팔이 좀처럼 움직이질 않았

다. 군웅들은 이걸 보고 깜짝 놀라 소리질렀다.

"혼연권법?"

병사의 움직임은 매우 빠르고 기습적이었다. 주먹은 마보강의 어깨를 향했는데  만일 그가 상대하려고 했다면 충분

히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혼연권법은 본래 뛰어났고 이 병사도 자신보다는 하수 같지만, 감총방과는 막 친해

진 상태라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그 틈을 병사는 교묘하게도 놓치지 않았다. 마보강이 주먹을 피할 것을 짐

작이라도 했다는 듯 왼 주먹을 날려 그의 가슴을 때렸다.

"이놈이? 네놈은 대체 누구냐?"

역시 하수인 듯 별로 타격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왼쪽 어깨로 날아드는 주먹을 피하느라 한순간 맥문을 약하게 쥐

고 말았을 때 가슴을 맞아서 결국엔 놓고야 말았다. 병사가 곧장 팽준을 잡아  빼는 바람에 그의 목 오른손에서 빠

져나갔다. 병사는 한 차례 웃더니 병사 투구를 벗었다.

"아니? 이놈, 복차경! 거기 있었구나!"

양만풍이 펄펄 날뛰며 소리쳤다. 과연 그는 복차경이었다. 예전  감옥에 갇혀있을 때보다 훨씬 좋아진 안색이 그의 

요즘 생활이 편안하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양만풍은 그의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복차경은 그보다 더 빨리 

달려온 융왕에게 팽준을 넘겨주고는 당당하게 맞섰다. 먼저 양만풍이 귀청이 찢어지도록 소리친다.

"네놈이 감히 이런 반역의 행위를 하다니! 참회를 하라고 감옥에 넣었는데 이게 무슨 짓이냐?"

복차경은 비웃듯이 웃으며 답했다.

"웃기는구나. 어째서 반역행위냐? 내 방주직을 슬쩍해간 네놈을 그냥 둘 수야 없지."

"네놈이 융왕과 손잡고 정보를 주었다던데?"

그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물론이다. 내가 그에게 정보를 주었다."

"형란은 어디 있느냐!"

"내가 데리고 있다."

놀랍게도 그는 예전과는 달리 상당히 당당했다. 예전의 그는 코앞에 무슨 일이  닥치면 앞뒤 내다보지도 않고 거짓

말을 늘어놔서 상당한 골칫거리였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당당하게 밝히는 게  아닌가? 양만풍은 그가 무슨 믿는 

게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를 데리고 와라!"

"시끄럽다. 내가 어째서 데리고 와야 하느냐? 난주의 감총대전은 그녀가 살기엔 너무 답답한 곳이었다. 여기도 피로 

물들고 살벌한 곳이니 그녀를 데리고 올 수 없다."

그들은 몇 차례 더 말싸움을 하며 시끄럽게 하고 있었다. 그 대화를 듣는 진양은 몸을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오히

려 크게 놀라지 않았다. 그런 자신이 놀라웠다.  처음 아미산을 내려왔을 때도 형란을 찾으려고  했었고, 이곳에 온 

것도 절반은 형란 때문이었다. 그녀를 만나면 바로 이  지긋지긋한 속세를 떠날 생각이었다. 신선처럼 살며 단둘이 

지내고 싶었다.

하지만 서두르지는 않았다. 아무튼 복차경이 데리고 갔고 그들은 모두 적수로 모였으니  필시 이 근방 어디에 숨겨

져 있을 거라 믿었다. 행여 그녀가  복차경이나 융왕에게 괴롭힘을 받지 않았나 싶기도  했지만 복차경의 말투에서 

별로 악의가 없음을 깨달은 진양은 그냥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양만풍과 복차경의 말싸움은 계

속되고 있었다. 보다못한 팽준이 미친 듯이 부르짖었다.

"복형! 말다툼 할 거 없소. 그냥 다 짓밟아 죽이겠소! 모조리 쳐라, 쳐라!"

복차경이 머뭇거리자 이번엔 융왕이 그에게 손짓했다. 복차경은 그의 말은 거역할 수 없다는 듯 그리로 갔다. 양만

풍은 그를 놓아줄 수 없어서 팔을 뻗었으나 그보다 먼저 융왕이 돌을 집어던져 손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허나 병사들은 움직일 기미가 안 보였다. 그들은 정말로 이들과 싸우기 싫었다. 팽준의 정체에 대한 의심도 극에 달

했다. 그러나 융왕이 나서서 이간질에 속는 자는 죽여버리겠다고 하던 모습이 떠올라 죽기 싫어서라도 나가야만 했

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것이다. 융왕은 그들의 속내를 알아채고 내공을 실어 고함쳤다.

"모두 창을 들고 칼을 뽑아 저들을 쳐라. 저들을 죽이는 자에겐 내가 금을 주겠다. 그러나  만일 도망친다면 배신자

로 간주하고 내 직접 처참하게 죽여주겠다. 우리는 적어도 삼백 명이 넘고 저들은 이제 오십 명도 안 된다. 무엇이 

두렵단 말이냐? 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칠 것이냐? 빨리 치란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병사들은 활을 쏠 순 없었다.  아까 한바탕 혼전이 벌어지며 가장 근접해있던  궁병들은 많이 죽었고 

또 활들도 많이 파손되었다. 그러나 창과 칼이 있다. 병사 수도 많이 죽었다지만 아직 삼백 명은 되었다. 융왕의 살

기 서린 말에 삼백의 병사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하나 둘씩 군웅들을 노리기 시작했다. 차츰  많은 수의 병사들이 

자세를 갖추는 듯 했다. 진양은 사태가 불리하게 돌아감을 느끼고 말했다.

"석앙의 부탁으로 살려주려고 했더니 감히 그걸 이용해 배반을 하겠다고? 그렇다면 모조리 죽는다."

병사들은 아까 그가 해괴한 봉법으로 여기 있는  사람들 중 세 사람만 빼고 모조리 쓰러트린  걸 기억했다. 게다가 

융왕과도 백중지세로 싸웠으니 융왕에 대한 공포만큼 진양에게도 큰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융왕의 살육은 

눈앞으로 보았지만 진양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병사들은 왠지 융왕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자연히 창칼은 내려가

지 않았다. 진양은 그들의 그런 마음을 눈치채고 아무래도 한 명을 희생시켜야 한다고 여겼지만, 그  행위는 상당히 

악독무비한 거라 여기고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말로써 다시 포기하도록 만들려는 찰나, 융왕이 살기 어린 음성으로 

왼발을 구르며 호통쳤다.

"빨리 치지 못하겠느냐!"

병사들은 겁에 질려 무작정 앞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어떤 병사는 너무 겁을 먹어서 기절도 했고 어떤 병사는 막 

달려가 창을 내지르다가 제 편을 죽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건 곧 진정이  되고 군웅들을 겹겹이 에워싸며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역시 넓지가 않으니 삼백 명이나 되는 금병들에게 일순간 공격을 받을 리 없다는 것

이었다. 활도 없어서 오로지 접근해야 함으로 뭉쳐 다닌다면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양만풍은 일

단 사태가 이렇게 되어버렸으므로 뒤섞여 싸우는 수밖엔 없다고 여겼다.

동촉삼속도 가만히 있지 않고 검을 들고 뛰어들었다. 그러는 사이 팽준은 융왕의  보호 속에 뒤로 물러나서 이것을 

관전하게 되었다. 복차경은 스스로 원하여 이 싸움에 뛰어들었다.  반대로 운무는 가만히 눈을 감고 참견하지 않았

다. 그는 융왕만 잡아서 교화시켜야겠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운화가 발을 동동 구르며 뭐라고 더 떠들었지만 운무가 

전혀 듣지 않아 하는 수 없이 그의 곁에 정좌하고 말았다. 진양도 원래는 참견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복차경이 

융왕과 팽준에게 직접 허락을 받고 뛰어드는 소리를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복차경을 잡아서 형란이 있는 곳을 알아내야겠다. 일단 그녀를 구해야 안전해. 혹시 나중에  저들이 불리해지면 그

녀를 잡고 협박할 수도 있지 않는가?)

진양은 그대로 뛰어들어 병사들 틈을 헤집고 다녔다. 병사들은 그를 죽이기 위해 창칼로 무자비하게 찔러댔지만 진

양은 조금도 화를 내지 않고 그냥 피하기만 했다. 종종 어쩔 수 없는  상황에는 살짝 혈도를 눌러 기절하게 만드는 

정도였다. 그러나 워낙 혼전이다 보니 복차경을 찾을 수가  없었다. 소리를 들어야 하는데 이처럼 혼전에서는 수백 

명의 함성과 소리가 뒤섞여 구별을 해낼 수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진안이라도 무적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람을 찾아낼 수가 없게 된다. 진양은 비록 그의 숨소리나 옷이 펄럭이는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지만 그 소리

가 어디서 나는지. 아니, 나기는 나는지 그것을 분간할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일단 근접한 병사들의 혈도를 찍으며 복차경이 있을 법한 쪽으로 이동했다. 얼마나 그리 전투를 벌였

을까? 주로 챙챙, 하는 금속성이 많았는데 어느새 베이고 맞아 나오는 비명 소리들로 가득해졌다. 군웅들도  죽어나

갔고 병사들도 죽어나갔다. 근처를 지나다니던 짐승들은 이 광경이 얼마나 살벌했는지 꼬리를 감추며 도망갔고,  달

은 양쪽 다 무사 하라는 듯 더 밝아지는 듯 했다. 그러나  상황은 어쩔 수 없다. 별로 좋지 않은 상황이 되어 가는 

것이다. 진양은 수십 명의 병사들 틈에 끼어 분투했다. 그와 가까이 있던 이름 모를 두 강호인은 어느새 칼과 창을 

온몸에 맞고 피범벅이 되어 쓰러졌다. 진양은 이런 위급한 상황에도 여전히 적의 혈도만 눌러댔다. 그가 이만큼 수

십 명에 둘러싸였으면서도 버틸 수 있는 것은 첫째로  위축되지 않았음이요, 둘째로 봉이 계속 회전하기 때문이요, 

셋째로 병사들이 무공을 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이런 때에 누군가 등뒤에서 암습을 했다. 하기야 이런 혼전에는 암습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적을 죽이는 데는 어떤 

방법도 상관이 없다. 여기는 비무대가 아니라 전장과도 같기  때문이다. 진양은 상대가 평범한 병사인 줄 알았는데 

점차 가까이 오고 매우 쾌속무비한 것이 무기가 아니라 주먹이란 걸 깨달았다. 그는 속으로 쾌재를 질렀다.

(찾았구나!)

진양은 싸우는 도중 새로운 인물이 나타났다고 느껴지면 즉각 숨소리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무공을 배웠다면 당연

히 보통 사람보다 숨소리가 고요하기 마련이라 군웅과 적을 가리기는 무척이나 쉬웠다. 여기서 복차경을 가려야 했

는데 진양은 아까 그가 나타났을 때 숨소리 규칙이나 옷자락에서 나는 소리, 권법을  펼칠 때 나는 소리를 아주 잘 

기억해두어서 대번에 알아챌 수 있었던 것이다.

진양이 간단히 피하자 그는 맹렬히 연속 공격을 퍼부었다. 피해도 또 덤벼들고  한번 반격을 하여 손목을 걷어찼지

만 그는 다시 미친 듯이 돌진해왔다. 진양은 큰 의문을 느꼈다. 그에게서 은은한 살기가 느껴지면서도 그 한구석엔 

또 온화한 기운도 느껴져서 기도만 가지고는 뭐라 판단하기도 그랬다. 그러다가 진양이 살짝 반격하니 웬일로 복차

경이 뒤로 멀리 물러섰다. 지나치게 멀리 물러나서 진양은 또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늘러붙는 잡병들

을 떨쳐내고 복차경과 붙었다. 복차경은 또 피하면서 입을 열어 말했다.

"이놈은 나 혼자 상대하마. 너희는 걱정하지 말고 다른 놈들을 죽여라."

고함은 아니었으나 근방에 있던 병사들은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그들도 막강한 진양과 싸우고 싶지는 않았다. 그

냥 근처에 있느니 살기 위해 일단 찌르고 보는 것일 뿐이다. 진양은 여기서  뭔가 있다고 느끼고 일부로 융왕의 시

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그를 몰아넣었다. 복차경도 마치 알았다는 듯이 그에 잘도 넘어가 주었다. 드디어 융왕의 시

선이 중도에 나무에 부딪쳐 닿지 않는 곳에 이르자 복차경은 여전히 주먹을 날리며 입을 열었다.

"말해줄 것이 있소. 융왕이 보면 끝이니 싸우는 척 하되 전력은 다하지 맙시다."

과연 복차경의 공격은 겉만 그럴싸했지 전혀 위력이 없었다. 진양도 그처럼 공격을 하면서 물었다.

"무슨 일이오?"

"본래 당신의 성은 진이고 이름이 양이오?"

"맞소."

아무래도 복차경은 진작에 병사들 틈에 낀 듯 했다.

"당신의 얼굴은 본 적이 있으니 좀 보여주었으면 하는데?"

"난 사고를 당해 얼굴이 흉악하게 변했소. 일단 무슨 일인지나 들읍시다."

"알았소. 당신도 알겠지만 형 낭자는 내가 데리고 있소."

진양은 형 낭자란 말이 나오자 저절로 손이 떨렸다. 그러나 복차경이 알아챈 것 같지 않자 슬쩍 감추며 말했다.

"시간이 없으니 요지만 말합시다. 오래 이러고 있으면 융왕이 의심할 거요."

"그렇군. 하지만 대강 경위는 말해야 하오."

"말하시오."

"난 그녀와 감총대전에서 처음 만났소. 어쩌다가 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지. 그녀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버릴 수 있

소."

확실히 간단하게 말을 시작하고 있는 복차경이었다.

"허나 양만풍은 정말 미워했소. 그를 죽이고 싶었소. 그래서 융왕과 모종에 계획을 짜고 대전이 빈  것을 정보로 주

기도 했소. 대전이 무너지고 난 그에게 부탁하여 형 낭자와 함께 이리로 온 거요."

"그렇군……."

"여기서 한참을… 아니오. 아무튼 형 낭자가 간절히 원하는 게 있어서 이렇게 했소."

진양은 원래 총명했으므로 반쯤은 짐작했다. 생각대로 복차경의 말은 그랬다.

"당신을 만나고 싶어하오."

"그래서 이렇게 날 찾은 거요?"

"아까 말했듯이 그녀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버릴 수 있소. 난 그녀를 사랑하지만 그녀는 마음을… 열지 않고 당신만 

찾으니……."

진양은 대강의 경위를 짐작할 수 있었다. 상당히 의외이기도 했다. 형란이 의외인 게 아니라 복차경이 의외인 것이

다. 예전부터 이야기를 통해 들은 복차경은 이런 인물이 아니었다. 여자에 관한 얘기는 비록 없었지만, 아무튼 사랑

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와 만나고 싶어한다고  이리 주선해주는 자라곤 여기지 않았다. 매우  생각이 짧고 자기밖에 

모르며 별로 좋은 인물은 아니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가 아니었는가? 그래서 잠깐 의심도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가

로 흔들었다. 목소리나 숨소리에 진심이 담겨져 있음을 진양은 눈치챘던 것이다.

복차경은 주먹을 날리면서 턱을 자신의 등뒤 쪽으로 흘낏 가리키고는 말했다.

"뒤쪽으로 들어가면 몇 채의 무너진 집이 있소. 거기서 더 안으로 들어가면 임시로 지어놓은 모옥(茅屋)이 있소. 매

우 낡고 당장 무너질 거 같은… 형 낭자는 거기서 쉬고 있소. 거기 있는 모옥은 원래 팽준이 위기에 처하면 숨으려

고 만들어놓은 곳인데, 한동안 아무 일도 없고 융왕도 만나서  자연히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곳이 되었소. 아마도 

시녀 한 명과 함께 있을 것이오."

"시녀라니? 그럼 가보지 않았소?"

그 의문은 당연했다. 복차경은 전말을 알려주었다.

"그렇소. 가보고 싶었지만… 정말 가보고 싶었지만 가지 못했소. 융왕이 계속 가지 못하게 막는 게  아니겠소? 망할 

놈… 처음엔 몰랐는데 내가 그녀를 만나 함께 도망칠까봐 그랬던 거 같소. 팽준한테 말해도 허락 안 하고… 제기랄. 

하여간 이리로 온 후엔 도무지 만날 수가 없었소."

"그냥 함께 진채에 있지, 왜 그리로 보냈소?"

"융왕이 안전한 곳이 그곳이라기에 나야 좋다고 보냈다오. 알고 보니  우리를 일부로 떨어트리게 해서 함부로 도망

칠 수 없게 한 거 같소. 솔직히… 나야 좋은 뜻에서 형 낭자를 데리고 왔지만 융왕에겐 그게 아닐 거요.  동행을 허

락한 것도 인질로 유용하기 때문일 거요. 그놈은 내가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눈치채고 이런 수작을 부린 거요."

진양은 이제 이해를 할 수 있었다. 한 가지 의문은 남아서 물어보았다.

"그럼 그녀가 나를 만나고 싶다는 건 어떻게 알았소?"

"후후… 그거야 오래 전부터 귀에 박히도록 들었던 거지……. 좀 전까지는 당신이 바로 그 자라는  걸 몰랐소. 그러

다가 양만풍이 외치는 걸 보고 알았소. 뭐 오래 된 친구… 그리고 군웅들이 유루봉법하고 비슷하다고 떠드는 걸 보

고 또 눈치챘지."

복차경과의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진양은 너무 시간을 지체한 것 같았다. 복차경은 진양을 부러운 듯한 눈으로 

쳐다보면서도 매우 비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긴 확실히 그럴 것이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이런 일이나 벌여

야 하는 자신의 신세가 한스러웠을지도 모른다. 진양은 들어가려다 말고 그에게 위로의 한 마디라도 해주려고 했다. 

이때 양만풍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연경후의 외침도 들린다.

"양 방주, 괜찮습니까?"

"으윽… 괜찮소."

진안의 덕을 본 것이다. 진양에게 만일 진안의 능력이 없었다면  절대로 들을 수 없는 소리였다. 크긴 크지만 혼전 

중이라 그 비명 소리말고도 수많은 비명 소리가 있었다. 진양은 자신도 모르게 그쪽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양 방주!"

양만풍은 혼전 속에서 고전분투하다가 결국 창에 옆구리를 찔린 것이었다. 그 말고도 대부분의 군웅들은 죽거나 부

상을 입은 상태였다. 살아남은 사람은 채 스무 명도 안 되었다. 진양은 정신을 집중하여 진안을 극도로 발휘한 덕에 

그것들을 전부 알 수 있었다.

"싸우시오, 내 걱정은 하지말고. 별거 아니오."

"출혈이……."

"난 괜찮소!"

양만풍은 격양된 목소리로 외쳤다. 그건 연경후 등 군웅들이 자신에게 신경을 쏟다가  다치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

이다. 연경후 등은 결국 계속 병사들과 전투를 벌이는 듯 했다. 그래도 아까와는 달리 주저앉은 양만풍을 둘러싼 채

로 싸우고 있었다. 이것은 비록 그를 보호하겠다는 것이었지만, 안타까운 건 이리 됐으므로 자연히 포위된다는 점이

었다.

진양은 큰 갈등을 겪고 있었다.

(장난이구나, 장난이야! 하늘의 장난이로다! 융왕을 뚫고 형란을 구할 자신이 없으니  지금이야말로 그녀를 구할 절

호의 기회가 아닌가? 허나 양만풍 등 군웅들이 위기에 처했으니 형란을 구한다 하더라도 살아남은 사람이 없을 것

이겠다. 그럼 융왕을 죽일 수도 없는 게  아니겠는가? 하지만 또 그들을 구해준다면 기회를 스스로  버리는 셈이니 

형란을 구하기는 매우 어렵게 되겠구나. 아……!)

그럴 때쯤 복차경은 그의 생각을 읽은 듯 했다. 그의 어깨를 붙잡으며 소리쳤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요? 그녀를 구하지 않을 거요?"

"……."

"빨리 결단을 내리시오. 얼른 가서 구하고 이곳을 떠나시오. 아까 봐서 아는데 당신은 비록 대단하지만 융왕을 이길 

순 없을 거요!"

"……."

어찌 그냥 간단 말인가? 예전의 진양이었다면 한 차례 갈등은 했겠지만 사랑을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

다. 그는 분명히 변해 있었다.

(일은 사람이 하고 결정은 하늘이 내리는 법이라고 하더라. 하늘은 결국 이런 시련의 결정을 내려주었으니 나는 내 

생각대로 옳은 일을 행하면 된다. 내 이 선택으로 말미암아 설령 형란을 구하지 못하고 융왕을 없애지 못한다 하더

라도 나는 누구도 원망할 수 없다. 그것이 내 운명이거늘 어찌하겠는가? 나의 사랑은 형란, 그녀가 가장 잘 알 것이

다. 내가 어찌했는지 전해듣는다 해도 나를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진양은 드디어 용단을 내렸다. 한번 모옥이 있다는 그 숲쪽 방향을 쳐다보다가  곧 냉정하게 고개를 돌리고 격전장

으로 가려고 했다. 복차경은 소스라치게 놀라면서도 분노하여 그의 어깨를 거세가 붙잡았다.

"어떻게 하려는 거요? 구하지 않겠다는 거요?"

"어쩔 수 없소. 그녀는 날 원망하지 않을 거요. 그녀를 구하지 않아 그녀가 죽는다면 난 한 사람만  죽인 것이 되지

만, 그녀를 구하느라 이들 스무 명을 버린다면 난 스무 명을 죽인 셈이 되는 거요. 어찌 그들의  경중이 같겠냐마는 

생명은 모두 같은 것이고, 저 군웅들 또한 충심만 믿고 온 자들이니 결코 가벼운 목숨이 아닐 게요. 그리고 저들 중

엔… 형란만큼이나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많소."

복차경은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럴 수가? 당신이 어찌 이럴 수 있지?"

"그럼……."

"잠깐! 당신은 절대로 그냥 갈 수 없소. 빨리 그녀를 구해 도망가시오."

진양은 더 듣는 것 같지도 않았다. 안타까운 듯 섣불리 발을 떼지는 못하고  있으나 그렇다고 몸을 돌려 숲으로 갈 

생각도 하지 않았다. 복차경은 여러 차례 말했지만 그가 듣지 않자 매우 노했다.

"가지 않는다면 네놈부터 죽이겠다."

"쓸데없는 소리……."

마침 양만풍 등이 위기의 절정에 달하고 있는 듯  했다. 금새 스무 명이던 군웅들이 여럿 죽어서 이젠  고작 열 명 

정도가 된 상태였다. 진양은 이 모든 걸 숨소리 하나로 계산하는 중이었다. 살기 등등한 복차경의 가슴에 발을 얹히

고 디디어 그 방향으로 멋들어지게 날아갔다. 복차경은 그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그가 용천혈로 공력을 내보냈기 때

문에 저절로 몸이 밀려나가고 말았다.

"못된 놈! 천하의 죽일 놈! 그렇다면 마음대로 해라. 사실대로 그녀에게 말해주고 내가 그녀의 사랑을 얻겠다."

복차경은 그것이 힘든 것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분노를 표출하고  싶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에

게 있어서 사랑이란 매우 거대하고 중요한 것이었다. 복차경은 일생에 사부의 정 말고는 딱히 느낀 정이 없는 인물

이었다. 형란을 만나려고 그랬는지 젊었을 때부터 여자엔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방주직에만 매달리는 자였

다. 고아였으므로 부모의 정도 없고 단지 자신을 수제자로 삼아준 용상에 대한 사부의 정이 있을 뿐이었다.

그런 용상에게 한때 버림을 받았으니 얼마나 사람을 불신하게 되었겠는가? 그는 그 후로 사람을 믿지 않았다. 그런 

그가 어떻게 형란을 믿고 그처럼 사랑하게 되었는지. 아무튼 그러했으므로  이제 복차경에게 있어서 형란이란 존재

는 그 어떤 수천 명의 목숨보다도 더 중요한 것인 셈이다. 친구도 없고  충의도 모르는 그이니 진양을 이해하지 못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모옥으로 향할 줄 알았던 복차경은 이후 갑자기 실종이 되었다.

한편 진양은 몸을 날려 그대로 고목의 나뭇가지에 올라섰다. 그리고는 봉을 단단히 움켜쥐며 다시 뛰어서 병사들의 

틈을 헤치고 다녔다. 병사들은 한번 당한 경험이 있었기에 절로 겁이 나서 모두들 알아서 피해갔다. 결국 포위망만 

생겼지만 그래도 당장 양만풍 등이 화를 당하는 건 면하게 할 수 있었다.

"왔구나, 진양!"

양만풍이 헉헉거리며 외친 음성이었다. 진양은 숨길 생각은 하지 않고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보이진 않지만 목소리

만 들어도 그가 얼마나 기뻐할지 상상이 되었다. 그러나 역시 보지 않아도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었다. 양

만풍 같은 인물이 헉헉거릴 정도면 단순히 찔린 정도가 아니라, 깊이 구멍이 뚫린 정도일 것이다. 진양은 그의 어깨

를 손으로 잡으며 문득 마보강을 불렀다.

"진양!"

마보강 역시 기쁜 듯 했다. 이 진양,  이라는 두 글자에는 충분한 우애의 정이 담겨져  있었다. 진양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랜만이네. 얘기는 나중에 하고… 금창약을 그에게 발라 줘."

조금은 섭섭할 만한 그런 차가운 말투. 아니, 분명 진양의 말에도 격정이  느껴졌지만 조금은 냉정한 것 같았다. 거

기에 양만풍의 치료를 부탁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보강은 오히려 기뻤다. 그가 옛일까지 아직 기억하고 있다고 여기

고 굉장히 친근한 정이 느껴졌다. 실제로 마보강은 금창약을 항상 갖고 다니는 버릇이 있었다.

마보강이 양만풍을 치료하는 사이 진양은 일어나 병사들을 향해 말했다.

"마지막 경고다. 떠나지 않으면 모두 죽이겠다."

병사들은 안색이 변하면서도 서로 눈치만 볼 뿐 움직이지 않았다. 이때쯤 혹시  병사들의 마음이 변할까 걱정이 된 

융왕과 팽준이 튀어나왔다. 융왕이 말했다.

"역시 진양 그놈이 맞았군. 오른팔을 잘리고 눈도 멀었으면서 그처럼 고수가 됐다니… 기연이라도 있었나보지?"

"그건 네놈이 신경 쓸 게 아니다."

진양은 간단히 답할 뿐이다. 융왕은 앙천대소하더니 팽준에게 말했다.

"팽 장군, 이제 명을 내려 끝을 보시지요. 자고로 오래 끌어서 좋을 것은 없습니다."

"알겠소. 자, 명을 들어라! 저놈들은 감히 대금국을 능멸하고 우리를 죽이려 했으니 가만 놔둘 수 없다. 모조리 쳐죽

여라."

병사들은 반강제적으로 창칼을 움켜쥔다. 위기라고 할 수 있었다. 진양은 봉을 든 채로 우뚝 서서 그들의 공격을 기

다리고 있었다. 사방으로 포위한 병사들은 천천히 앞으로 이동해오고 있었다.

"흥, 우리가 앉아서 그냥 죽어줄 줄 아느냐?"

용케도 일어서서 악을 쓴 자는 양만풍이다. 그는 허리에 입은 상처에 금창약을 바르고 옷 천으로 둘둘 말은 상태로 

창을 들며 외쳐댔다. 동촉삼속도 각기 사방을 노려보며 싸울 태세를 갖춤은 물론이요, 남은 열 명이 안 되는 군웅들

도 마찬가지였다. 그 열 명 사이엔 어느새 운무, 운화도 끼어 있었다.  그들은 가능한 지켜보며 서로 화해하기를 권

했지만 기어이 듣지 않고 혼전이 벌어져 하는 수 없이 싸우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처음에도 그랬듯 지금도 살수는 

펴지 않을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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