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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 十 二 章. 적수 대전 5 (89/90)

                                    第 四 十 二 章. 적수 대전 5

새벽이었다. 한 차례 절정으로 깊어졌던 밤은 점차 지나가고 있었다. 달빛과 화톳불의 빛에 의지해 싸우던 것도 이

제는 필요 없게 되었다. 어느새 달은 잘 보이지  않아졌고 사방은 미약하게나마 환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싸움을 멈출 순 없었다. 팽준은 아까 기겁하며 오줌까지 질질 싸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오히려 눈을 부릅뜨

며 명을 내렸다.

"쳐라!"

명령을 받은 병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공격했다. 겹겹이 포위한 채, 하지만 공간이 부족하여 수백의  인원이 동시

에 투입될 순 없었다. 일단 정면에 있던 불쌍한 병사들만 공격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꼭 불쌍하다고 할 수

는 없다. 어쩌면 이들만으로도 진양 등 군웅들은 전멸할 수가 있었다. 다 합쳐봐야 열댓  명 정도. 그들은 좀 전 지

나간 밤을 마지막 밤으로 알았고, 하늘에 떠있던 달을 마지막으로 보는 달로 여긴 채 병기를 쳐들고 뛰쳐나갔다.

전투는 치열했다. 이젠 혼전이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숫자가 월등히 차이나고 완전 포위되어 이만하면  사면초가라

고 할만했다. 집단 구타에 가까운 이 공격은  확실히 위력이 있었다. 그러나 군웅들은 쉽게  전멸하지 않았다. 종종 

한두 명씩 창칼에 찔려 비참한 최후를 맞았지만 군웅들은 조금도 슬퍼하지 않고  사력을 다해 맞섰다. 병사들은 애

당초 크게 전의를 상실했고 진양이나 양만풍, 동촉삼속이나 운무, 운화는 굉장히 두려워하여 잘 접근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또 몇 명이 죽어나갔다. 얼마 지나지도 않아  이리 된 것이다. 이제는 그야말로 고수라 불릴 사람들만 

남은 상태였다. 이 중에 운무와 운화, 진양은 적을 죽이지 않고 전부 점혈하고 있어서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병사들은 그들을 에워싸고 공격을 끊지 않았다. 비명 소리가 숲을 가득 메우고 핏물이 사방으로 튀어 어떤 

사람 키 만한 작은 나무는 피를 뒤집어쓰기도 했다.

어느새 진양을 위시하여 동촉삼속과 양만풍, 운무, 운화를 제외하고는 모조리 죽게 되었다. 마지막까지 버티는 유호

도 온몸에 창을 찔려 죽고 말았다. 양만풍은  그렇게 비참하게 죽는 그를 보며 슬픔에 눈물이  흐르는 채로 싸움에 

임했다. 생각 같아서는 모두 당장 무덤을 만들어주고 그 앞에 팽준과 융왕의 목을 바치고 싶었다. 그러다 양만풍 그

도 부상을 입고 말았다. 아까 허리를 깊게 찔려 동작이 시원치 못하더니 결국  어깨 죽지를 깊게 베이는 상처를 입

고야 말았다. 그의 뒤로 병사 한 명이 달려와 칼을 높게 쳐들었다. 진양은 싸우다 깜짝 놀라서 탄봉비천의 초식으로 

봉을 날렸다. 봉은 정확히 병사의 어깨를 쳐서 1장이나 밀려가도록 만들었다. 진양은 달려가 다시 봉을  낚아채고는 

소리쳤다.

"양만풍! 여기서 쉬고 있어."

"안 돼……."

양만풍은 그가 장님인데도 이처럼 절묘한 걸 보고 놀랐다. 그런 그를 보자 갑자기 자신이 한심해졌다. 이때 다시 병

사들 셋이 덤벼서 진양은 봉을 휘둘러 막는 수밖에 없었다. 셋을 쓰러트리고 뒤를 돌아보자 양만풍은 다시 창을 들

고 금병과 싸우고 있었다.

시간은 흐르고, 양만풍은 견디지 못한 채 쓰러지고 말았다. 다행히 더 다친  데는 없었지만 위험하긴 했다. 일단 진

양이 급히 달려들어 병사들을 물러서게 하고, 조금은 과격하지만 그의 엉덩이를 걷어 차 군웅들의 가운데로 날려보

냈다. 그래야 그나마 안전하기 때문이다. 이때 갑자기 경호성이 들려서 돌아보니 융왕이 연경후를 맹렬히  공격하고 

있었다. 언제 튀어나왔는지, 진양조차도 혼전에 휘말리고  양만풍의 부상 때문에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 것이었다. 

진양은 그가 위급한 걸 보고 비호처럼 달려들어 융왕의 백회혈을 향해 봉을 내리찍었다.

"이놈!"

아뿔사, 진양이 속으로 외쳤다. 갑자기 융왕이 일갈하더니 연경후의 안면으로 날리던 일 장을 변초하여 위로 쳐드는 

게 아닌가! 그냥 들어 치는 게 아니고 완전 변한 수가 되어 진양의 손을 노리고 있었다.

본래 유루봉법의 아주 심각한 약점은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봉에 힘이 없어서 내공이 뛰어난 자가  수조공(手爪功)

을 펼치면 봉이 그대로 잡힌다는 것이었고 남은 하나는 상대가 어떤 이유로 잘도 접근하여 손을 낚아채면 끝이라는 

것이었다. 전자는 이미 힘을 가하는 형태로 바꾸고 내공을 잘 이용하여 보완했다. 후자의 경우 역시 봉의 회전을 더 

빠르게 만들고 진양도 진안을 익혀서 상대의 접근을 사전에 알 수 있기  때문에 그다지 걱정거리가 아닌 것이었다. 

허나 이 순간은 달랐다. 양만풍이 연달아 두어 번 위기를 겪고 혼전이라 진양도 깜빡하고 속고 만 것이다. 결국 손

은 그대로 잡혀버렸다. 급한대로 빼려고 했으나 그 일 장이 워낙 빨라서 미처 제대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말았다.

진양은 공격이 이어질 것을 알고 다급히 연경후의 어깨를 밟으며 그를 뒤로  밀어냈다. 이것은 그를 위험해서 벗어

나게 해줌과 동시에 자신도 공중에서 중심을 잡을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어깨를 밟은 반동으로 그는 앞으로 접

근하여 오른발을 강하게 휘둘렀다. 목표는 융왕의 태양혈이었다. 하지만  융왕은 발이 닿기 전에 더 빠르게 우장을 

날려서 진양의 가슴에 명중시키고 말았다.

"윽!"

진양이 막 피를 뿌리며 날아갈 듯 했으나 융왕은 악랄하게도 잡은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다시 왼손을 잡아당기고 

우장을 한번 더 쳐들어 또 일 장을 먹였다. 이렇게 또 먹이고 또 후려서 다섯 장이나 얻어맞았을 때야 손을 놓아주

었다. 그러나 아직도 남았으니, 날아가는 그를 뒤쫓듯 몸을  날려서 왼손으론 사립을 벗기고 오른손으론 다시 그의 

가슴에 일 장을 때리는 것이었다. 진양은 이렇게 연거푸 육장을 맞고 피를 분수처럼 뿜어댔다. 거센 바람에 힘없이 

날아가는 깃털 같은 그를 운무가 잽싸게 받으며 급히 명문혈로 내공을 들여보내 주었다.

"진양!"

모두들 크게 놀라고 말았다. 그는 여기 있는 사람들 중 최고 고수며 또한 소중한 존재가 아닌가! 운무는 그를 양만

풍 옆에 앉히고 장심을 명문혈에 대어 계속 내공을 흘려보내 주었다. 진양은  12성 대성한 융왕의 초고성장에 여섯 

번이나 적중되어 이미 내장이 뒤집힐대로 뒤집히고 망가질대로 망가지고 만  상태였다. 그나마 진양 스스로 운기하

여 방어하지 않았다면 내장은 모조리 파열되었을  정도다. 그는 지금 기절해버린 상태라 깨어날  수 있도록 운무가 

직접 내공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었다.

"진…양! 대사… 운무대사! 그는 괜찮습니까……?"

양만풍은 부상 때문에 더 움직일 수조차 없어서 아예 드러누운 상태였다. 진양이  부상당한 걸 알았는지 운무를 향

해 더듬더듬 물었다. 운무는 대답하지 않고 계속 내공만 들여보내 주었다. 얼마 지나자 진양은 정신을 차렸다. 백짓

장처럼 창백해진 그의 안색이 부상이 얼마나 심한가를 잘 알려주고 있었다.

"와하하! 진가가 죽기 일보직전이니 너희들은 이제 더 걱정할 게 없다."

융왕은 대소하며 병사들에게 고함쳤다. 병사들도 이 장면을 보아서 조금 힘이 생긴 듯 했다. 연경후는 자신이 살아

나고 진양이 중상을 입어서 무척 대노한 상태였다. 무엇보다도 융왕의 비열한 암수가 증오스러웠다.

"이놈… 네놈과 오늘 사생결단을 내야겠다!"

"핫핫. 네까짓 놈이? 할 수 있다면 해보아라."

사원과 마보강도 이 장면을 본 터라 이미 분노할 대로 분노한 상황이었다.  연경후가 그에게 뛰어들자 그들도 머뭇

거리지 않고 병사들을 밀어낸 뒤 함께 협공을 퍼부었다. 그러나 따로 놀아도 융왕에 미치지 못하고 함께 해도 융왕

에 미치지 못했다. 운화는 진양에 별로 좋은 감정이 없어서 그냥 반룡장을 휘두르며 병사들을 후려패고 있었다. 하

지만 그 역시 융왕의 비열한 술수에는 치를 떨었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제 신경은 그만하시고… 적들을 상대하십시오. 그러나… 병사들은 죽이지 마십시오……."

진양이 운무에게 한 말이었다. 운무가 보니 눈은 자는 사람처럼 감겨있었고 머리는 융왕에 뒤지지 않는 봉두난발이

요, 얼굴은 아주 새하얗게 변해있어서 평소에도 많았던 온후한 마음씨가  이때만큼은 분노에 가까운 흥분으로 변했

다. 그러나 소림사 방장답게 수행의 깊이를 알려주듯 최대한 참으며 변함 없는 어조로 말했다.

"아미타불. 과연 진 시주는 협의지사시오. 걱정마시오, 노납은 절대로 병사들에게 살수를 전개하지 않을 것이오."

그는 병사들에게, 란 말에 약간 강조를 하였다. 그건 융왕에게는 아니라는 뜻과 같았다. 진양도 그들은 살려둘 생각

이 없었다. 소위 말하는 쉬운 말로 진양은 많이 착해졌지만 융왕에 있어선 얘기가 달랐다. 운무는 그를 앉혀두고 융

왕과 맞서러 나갔다.

진양은 운기를 했다. 가만히 앉아서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고 있자니 오랜만에 바람이 얼굴 전면을 스쳐 매

우 시원하고 상쾌한 것이 다른 세상에 온 것만 같았다. 괜한 탈속의 느낌도  들어 얼른 형란과 은거하고 싶다는 생

각이 간절해졌다. 그런 탈속의 기분에 진양은 금새 젖어들어 잠시 명상에 빠질 수 있었다.

그러나 명상에선 곧 깨어났다. 지금은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모두들 금병과,  융왕과 싸우는 게 

아니라 죽음과 싸우는 것이다. 진양은 빨리 내상을 치유하고 그들과 힘을 합하여 융왕을 물리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운기를 해보니 내상이 결코 만만치 않아 이만하면 몇 달은 걸려야 완치될 것 같았다.

(큰일이구나! 내상이 너무 심각해서 더 싸울 수가 없겠다. 어찌하는가? 뭔가 계책이나 강구하면 좋겠건만 딱히 떠오

르는 방법도 없으니…….)

그의 귀로 마보강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진안의 능력을 발휘해 귀와 몸, 머리, 마음으로 느껴보니 그는 아무래도 배 

부근에 부상을 입은 것 같았다. 진양은 이제 죽음이 다가왔음을 알았다. 과연 운명이란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원망하지는 않는다. 하늘은 나에게 선택권을 주었고 나는 이 길을 택했다. 결국  이렇게 비참히 죽겠지만… 

이것도 지난날 내가 저지른 죄의 대가라면 받아야만 한다.  아아……! 다만 안타까운 것이 있다면 아무래도 형란을 

보지 못한 것이로구나. 죽기 전에 그녀라도 한번 봤으면 좋을 것을…….)

진양은 이렇게 죽음이 임박하니 왠지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형란을  생각하며 그녀말고도 많은 사람을 기억하

기에 이르렀다. 이제 저승으로 갈 것이니 이승에서 있던 기억들을 떠올리자 자연히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신

을 버렸지만 불쌍한 여자 왕령부터 시작하여 당주고나 당무, 당광, 당유민 등 당 씨 가문이 떠오르고 이  자리에 있

는 양만풍 등의 동료들도 떠올랐다. 그러다 문득 무굉일 떠올리자 갑자기 뭔가 머릿속을 번쩍, 하고 지나가는 것 같

았다. 잠시 후 진양은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양만풍은 얼마나 피를 쏟고 힘이 빠졌는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모두가 고전하고 있는데 자신은 누워서 

구경이나 해야한다니, 새삼 스스로의 무공이 얼마나 약한지 생각하게 되었다. 진양도 중상을 입어 크게 걱정이 되었

다. 동촉삼속 등이 고전하는 걸 보다가 어디선가 중얼중얼 주절대는 소리가 들려 시선이 진양에게로 돌아갔다. 이내 

양만풍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듯 물었다.

"진양! 왜 그래? 진양!"

양만풍에게 세상에서 가장 알기 어려운 인물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진양을 꼽을  것이었다. 그만큼 진양은 자주 그

를 놀라게 만들었다. 여러 번 그런 과거가 있었다. 이번에만 해도 갑자기 엄청난 무공을 소유하고 나타나서는 그 기

세를 여실히 떨치지 않았는가? 그래서 지금 진양의 행동도 무척 이해할 수 없게  느껴졌다. 지금 진양은 그냥 뭔가

를 중얼중얼 주절대고 있었다. 옆에 가까이 있으면서도 자세히 듣지 못할 정도로 낮은 음성이었지만 양만풍은 왠지 

걱정이 되었다. 중상을 입은 몸으로 저런 괴이한 행동을 하니 뭔가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으나, 그보다  먼저 걱

정이 앞서는 것이다. 한 마디로 그가 미친 줄 알았다.

"진양! 뭐라고 하는 거야?"

그가 여전히 대답이 없자 양만풍은 억지로 몸을 꿈틀대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내용이 들리긴 하는데 대체 뭔 

소린지 알 수가 없었다. 심오한 무학 같기도 하고 말도 안 되는 헛소리 같기도 했다. 큰 의문과 큰 걱정을  느낀 양

만풍은 한번 더 외쳤다.

"이봐, 진양!"

"……그러므로 사지백해로 뻗어나가서……."

그쯤 진양의 왼손을 들더니 검지와 중지를 모아 갑자기 제 혈도를 찍어대기  시작했다. 양만풍은 그가 미쳤다고 확

신하자 어디서 갑자기 힘이 솟았는지 일어나  말리려고 했다. 그러나 진양은 또 어떻게  눈치챘는지 무서운 속도로 

혈도를 다 누르고 말리려는 양만풍의 어깨를 밀어버렸다. 양만풍은  그 두 손가락에 내공이 담겨져 있음을 알았다. 

뭔가 다른 생각이 있는 것인가, 했다.

그런 생각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진양의 발광은 폭발하는 듯 했다. 갑자기 성치도 않은 몸으로 벌떡 일어서더니 빙

그르르 돌면서 기가 막히게 옆으로 눕는 게 아니겠는가? 그런 상태로 왼팔을 뒤로 꺾고 오른다리를 쪼그리니 그야

말로 우스꽝스런 자세가 되고 말았다. 양만풍은 걱정도 되고 웃기기도 해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진양은 그런 

생각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가만히 그 자세로 있으며 또 뭔가를 주절대더니, 몸을 일으켜서 이번엔 몸을 뒤로 꺾어

댔다. 그리고는 또 옥당, 기해혈 같은 위험한 혈도를 무식하게 찍어댔다. 양만풍은  기가 막혀서 입만 딱 벌리고 있

었다.

순간 양만풍의 안색이 갑작스레 변했다. 기쁨의 얼굴이었다. 진양은 아직도 그런 미친 발광 자세를 취하고 있었으나 

양만풍은 안색이 변해있었다. 그는 이 자세를 어디서  본 것 같다고 느끼고 있었다. 아니겠지,  하고 매우 기이하게 

여기기만 했는데 머릿속으로 갑자기 무굉이 스쳐 지나갔던 것이다. 바로 대천대연에서 무굉이 혼자 주저앉아 뭘 주

절대며 기괴한 자세를 취하던 걸 보았던 양만풍이었다. 그는 당시 무굉이 독을  당했음에도 이런 자세를 취하고 뭔

가 주절대더니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변하는 걸 보았었다.

(그럼 이것이 무슨 신묘한 방법이라도 된다는 건가? 아니면 진양이 독을 당했나?)

그 사이 진양은 다시 자세를 두어 번 바꾸었고 마침내 정좌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는 않은 듯 일정한 

호흡을 계속하며 혈도를 두어 곳 더 찍었다. 이때였다. 갑자기 짧은 신음소리와 함께 연경후와 마보강, 사원이 동시

에 날아왔다. 양만풍은 진양이 괜찮은 것 같아서  온몸에 다시 힘이 빠졌는데 이들을 보자 또  힘이 솟아서 그들의 

등을 양팔을 벌려 받아냈다. 물론 본래의 힘은 없어서 뒤로 꼴사납게 자빠지고 말았다. 운무와 운화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 역시 그리 힘이 빠진 상황에 융왕이 달려들자 채 다섯 초를 못 넘기고 일 장씩을 맞아 역시 날아오

게 되었다. 융왕은 병사들이 달려드는 걸 제지하고 잠시 여유를 부리듯 앙천대소했다.

"거참 별 것들도 아니구나."

"다수로 공격한 주제에 말이 많다!"

마보강이 맞받았다. 그러나 융왕은 웃을 뿐이었다.

"핫핫. 시끄럽다, 애송아."

"너……!"

"네가 뭘?"

융왕은 발을 뻗어 그의 턱주가리를 걷어찼다. 마보강은 그대로 또 1장 가량 몸이 뒤로 날아갔다. 그때 융왕도  진양

의 상태를 보았다. 마침 사방이 고요해진 터라 그가 읊어대는 해괴한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융왕은 잠시 듣다가 이

해를 할 수 없자 괜한 걱정이 생겼다.

(이놈이 혹시 무슨 요술이라도 부리려는 게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뭔 저런 헛소리를 읊어?)

이내 생각을 마친 융왕은 진양을 죽여버려야겠다고 작정했다. 그에게로 한 걸음 내딛자 눈치를 챈 연경후가 가로막

았다. 융왕이 웃으며 묻는다.

"죽고 싶으냐?"

"그래, 어차피 다 죽겠지! 네놈도 함께 가자."

연경후는 미친 듯 덤벼들어 유리장쾌의 초식을 펼쳤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융왕의 왼발에 걷어차여 역시 마보강이 

있는 곳에 떨어졌다. 사원은 그제야 나섰으나 그는 또 따귀를  한 대 맞아 그쪽으로 날아갔다. 운무와 운화가 벌떡 

일어섰다.

"시주는 어쩔 생각이오?"

"난 저 진가를 먼저 죽이고 그 다음 양가를 죽이고 그 다음 동촉삼구(東蜀三狗)를  죽이고 그 다음 너희 까까중 두 

놈을 죽일 것이다."

운무는 가능한 온화하게 말했지만 융왕은 그처럼 말했다. 운화가 이걸 참고 있으면 운화, 그 이름이 아깝다.

"이 망할 잡놈아. 내가 네놈을 먼저 죽여주마."

"하하. 네놈이 나를?"

운화는 노기로 얼굴이 시뻘겋게 변하며 무섭게 반룡장을 내리찍었다. 그러나 너무 흥분한 탓인지 허점이 너무 많았

다. 융왕이 이걸 놓칠 리가 없다. 몸을 돌려 반룡장을 피하고는 틈이 훤히 보이는 그의 옆구리에 일 장을 후려쳤다. 

운화는 내공이 심후하여 그런대로 버텼지만 워낙  장법이 강렬해서 한동안 말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시뻘개졌던 

얼굴은 또 어느새 새하얗게 된 상태였다. 운무는 아, 하고 탄식하며 입을 열었다.

"아미타불. 시주는 자존자대와 비슷할 경지에 올랐음에도 이처럼 악독하니 어찌 편히 살 수 있겠소? 불타는 자비로

와 지금이라도 회개한다면 용서해줄 것이오."

"불타고 잡타고 간에 개소리는 그만 집어 치워라."

운무는 눈앞으로 무언가 번쩍하여 황급히 고개를 뒤로 젖혔다. 융왕은 운무의 무공이 대단함을 알아서 이처럼 기습

을 가한 것이다. 과연 그의 무공은 뛰어나서 실제로는 융왕의 한 수  아래쯤밖에 되질 않았지만 병사들을 상대하느

라 이렇게 불리해진 것뿐이었다. 융왕의 기습은 너무 급작스러운  것이라 비록 무공이 뛰어나 피할 수는 있었지만, 

이어서 들어오는 제 2의 공격은 피할 수가 없었다.  운무 역시 어깨에 일 장을 맞고 운화  옆으로 물러서며 운기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융왕은 득의양양한 미소를 띄우며 다시 진양을 내려다보았다. 양만풍은 자신밖에 없다는 걸 깨닫고 다시 기적 같은 

힘을 발휘해 그에게 주먹을 내밀었다. 하지만 역시 부상자는 부상자. 주먹엔 힘이 없고, 조금도 정교하지 못하며, 양

만풍 자신의 몸엔 허점 천지요, 그렇다고 빠른 것도 아니었다. 융왕은 느긋하게 그것을 바라보다가 가까이 올 때 도

리어 반대로 주먹을 내뻗어 그가 코피를 흘리며 쓰러지게 만들었다. 융왕은 쓰러진  그를 걷어차 멀리 떨어지게 만

들고는 진양의 머리 위로 오른손을 쳐들었다.

운무, 운화는 큰일이다 싶어 하는 수 없이 운기를 멈추고 덤벼들려고 했다. 그러나 이번엔 병사들이 막았다. 팽준이 

마침 명령을 내려 그들을 둘러싸게 한 것이다. 이만하면 그  누구도 살아나갈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하게 될 것이다. 

진양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태연하게 운기만 하고 있었다. 고통에 신음하던 양만풍이 사력을 다해 악을 썼다.

"진양! 조심해, 이 바보 맹꽁아."

"진 시주! 정신을 차리시오!"

그러나 진양은 끝내 반응이 없다. 융왕은 한번 더 너털웃음을 터트리더니 일순  정색하며 무섭게 일 장을 내리찍었

다. 헌데 그때였다. 마치 진양은 기다렸다는 듯 자세엔 전혀 변함이 없는 채로 왼팔만 위로 쭉 뻗었다. 진양은 일찍

이 장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처럼 왼팔 좌장을 날려 융왕의 일 장에 맞서려는 것이다. 물론 그것도 놀라

운 것이긴 하다. 허나 역시 가장 놀라운 점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행동이다. 융왕은 이미 일 장을 발출한 

상태였고 진양에게 뭔가 계획이 있다해도 빼낼 생각이 없었다. 그는 자신보다 내공도 한참 떨어지는데다 장법도 익

히지 않았으며, 무엇보다도 중상을 입은 자가 아닌가! 융왕은 그가 머리가 터져 죽을 것을 떠올리고 괜히 좋아서 음

흉한 미소를 흘렸다.

융왕의 초고성장과 진양의 무식한 맞받아 치기가 이루어졌다. 두  손바닥이 매섭게 부딪치자 쩡, 하는 소리가 울렸

다. 모두들 진양은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진양 자신은 그렇게 여기지 않았다. 이건 목숨을 건 모험이였다. 그리

고 그건 성공했다.

놀랍게도 손바닥이 부딪치는 순간 융왕은 안색이 대변하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이 아닌가? 그런 표정을 보이

기 무섭게 진양은 갑자기 입을 벌려 온힘을 다하는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

"하아아!"

이 기합에 무슨 힘이라도 담겼는지 융왕은 얼굴이 일그러지며 그 가운데 조급함이 느껴졌다. 운무는 그의 눈빛에서 

살기를 느끼고 진양이 위험할 거라 여겼다. 그러나 살기가 미처 퍼지기도 전에 융왕은 으악, 하고 비명을 지르며 피

를 뿜은 채 몸이 붕 뜨고 말았다. 그 거대한 몸은 그대로 떠올라 빙글빙글 돌며 저 한쪽 바닥에 쿵, 소리와 함께 떨

어지고 말았다.

"와……."

한참 뒤에야 흘러나온 그 소리는 놀랍게도  운무였다. 그도 강호인답게 무공엔 큰 관심이  있었는데 뜻밖에도 이런 

장면을 보니 탄성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어서 동촉삼속과 양만풍도 벌떡  일어나 서로 웃는 낯을 바라보며 

좋아했다. 다만 망연자실해하는 건 병사들이었다.

진양은 그때 묵묵히 일어섰다. 그리고는 융왕 앞으로 걸어가서 말했다.

"설마 그럴 줄은 몰랐겠지."

"어찌… 그럴 수가…… 어떻게?"

융왕은 아직도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 가득했다. 진양은 그가 심하게 기침하는 걸  알고 또 피를 뱉어내는 걸 알아

서 괜히 측은지심이 생겼다.

"일찍이 나의 의형인 무굉, 무 형님이 가지고 있던 무의라는 의술이 있었다. 이것은 무공과 의술을  잘 결합해서 스

스로 몸을 치유하는 것인데 난 그 중 조금만 외워서 해보았다. 뜻밖에도 효과가  있어서 단 일 각만에 내상을 전부 

치유한 것이다."

"그런 것이 있다니… 믿을 수가… 욱!"

융왕은 말을 잇다 말고 또 피를 토해냈다. 진양은 그의 숨소리가 한바탕 광적인 기운을 띠는 걸 보고 죽을 때가 된 

것을 알았다. 하긴 그럴 것이다. 융왕은 자신의 5성 공력의 초고성장과 진양의 전심공력을 그대로 전해 받았으니 당

연한 것이었다.

과연 그러했다. 융왕은 설마 그가 무의라는 것으로 단시간 내에 내상을 치유했다는 생각은 할 수조차 없었다. 누구

라도 그럴 것이다. 어찌 그런 게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것은 무굉이 창안한 것으로 진양이  수년 전 북망산 

앞에서, 그리고 얼마 전 대천산에서 보고 듣고 외웠던 것이다.

그런 고로 융왕은 큰 힘을 소모하지 않았다. 진양을 뼈에 사무치도록 미워했지만 그렇다고 12성까지 발휘할 필요는 

없었다. 그건 쓸데없는 힘 낭비가 되는 셈이다. 실제로도 한 2성이면 무방비 상태의 진양 머리통을 부술 수  있었지

만 그래도 미운 감정이 치솟아 5성까지 운용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어찌  알았으랴? 이때 진양이 오히려 전심공

력을 다 끌어올려 내공 대결을 펼칠 줄을!

진양은 진작에 무의를 마쳤으나 때마침 융왕이 다가와 자신을 죽이려는 걸 보고  그런 절묘한 작전을 계획했다. 모

두가 부상당했으니 그를 막을 수 없을 것이고, 또 그는 자신을 가장 미워하니 먼저 죽이려 들 거라  여겼다. 그리고 

온힘을 다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건 분명 모험이었다. 만일 융왕이 그를 미워하는 마음이 대단하여 전력이라

도 다했다면 진양은 반드시 죽었을 것이다. 또는 그냥 살짝 쳐서 죽이려고 했다면 설령 그의 전심공력이 되받아 쳐

서 함께 돌아온다고 해도 그 힘이 약하기 때문에 이런 상황까진 가지 않았을 것이었다. 이만하면 하늘의 도움이 없

었다고는 할 수 없었다.

진양은 그처럼 그의 일 장이 나오기를 기다리다가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걸 알고 온몸의 머리털 만한 기까지  전부 

끌어 모아 모험을 했다. 그리고 성공했다. 쌍장이 부딪치면서 융왕의 5성 공력의 초고성장이 밀려왔으나 진양은  전

심공력으로 맞섰으므로 당연히 융왕이 밀리게 되었다. 융왕은 그걸 느끼는 순간 아차, 싶어서 급히 자신도 전심공력

을 끌어올리려고 했지만, 이미 늦은 상황으로 이 쌍방의 무서운 내공은 그대로 융왕의 몸을 공격하고야 말았다.

융왕은 몸을 부르르 떨며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하…하……. 이것은… 하늘의 뜻이구나……."

"그래, 일은 사람이 하고 결정은 하늘이 한다고 하지 않느냐? 너는 분명 나를 능가했지만 운명은 내 편을 들어주었

다."

"그래… 그래……."

진양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네가 만일 참회를 했다면 이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후회하지 않느냐?"

"후후… 난 후회… 하지 않는다… 그래도 이처럼 뛰어난… 뛰어난 무공이 있다는 걸… 알리게 되었잖느냐……?"

대답하던 융왕이 피를 토했다. 진양은 측은지심이 생겨 일부로 그런 걸 물은 것이었다. 만일 그가 후회한다고 대답

한다면 살려주려고 했다. 그런 생각을 모르는 듯 융왕은 여전히 미소를 띤 채로 피를 토하고, 또 말을 하고 있었다.

"이제… 난 가는 건가……?"

"그렇다."

"난… 천하제일이냐?"

"아니다. 넌 천하제이다."

융왕은 끝내 자신이 듣고 싶었던 말을 듣지 못하자 한이 서린 듯한 웃음을  터트렸다. 죽어 가는 그는 결국 마지막

으로 힘을 다해서 한바탕 웃음을 터트린 것이었다. 그 광소엔 온갖 비애가 담겨져 있었다. 진양은 그가 무공을 너무 

좋아한 것이 무굉과 비슷하다고 여겼지만, 사부를 잘못 만나서 이처럼 비참한 말로를 맞이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융왕은 그렇게 한바탕 크하하핫, 하고 미친 웃음을 터트리다가 돌연 숨을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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