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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 十 三 章. 산중답속인 (90/90)

                                     第 四 十 三 章. 산중답속인

팽준은 융왕이 죽은 걸 알고 안색이 새파랗게  변했다. 다시 다리가 덜덜 떨리고 가슴이 뛰어  금방 기절이라도 할 

것 같았다. 병사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모두 융왕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기기도 하고 한스럽게 여기기도 하며 또 

다행으로 여기기도 하니, 그런 뒤죽박죽 뒤섞인 요상한 마음 상태였다.

그러나 팽준은 바보가 아니었다. 천성적으로 겁이  많고 인간성도 좋지 못해서 장군은커녕 이  부하들도 제대로 못 

다스릴 그런 인물이었지만, 대세 판단쯤은 그나마 할 수 있었다. 그는 진양만 빼고 모두 부상을 입은 걸 안다. 지금 

융왕이 쓰러지는 걸 보고 역시 진양이 무서운 걸 느끼긴 했으나 나머진 모두 부상을 입었으니 병사들로 하여금  능

히 제거할 수 있을 듯 했다. 바보가 아닌 이상 모두 그리 생각할 것이다.

진양이 그의 마음을 꿰뚫어보지 못할 리가 없다. 만일 그가 남은 병사 이백여 명을 동원하여 공격을 명한다면 절대

로 살아남을 수 없었다. 진양은 아무 말 없이 일어서서 가만히 고요한 분위기를 조장하더니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

다.

"나의 목표는 원래 융왕이었으므로 너희는 죽일 생각이 없다. 너희도 보았듯 융왕은 이렇게 죽었다. 몇 번째 말해주

는 거지만 난 너희를 죽일 맘도 없고, 석앙도 그런 부탁을 했으니 가능한 싸우기 싫다. 알아들었으면 꺼져라!"

병사들은 팽준의 눈치를 보는 듯 했다. 팽준도 그 기색을 알아채고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이놈들아! 감히 장군을 버리겠다고? 그렇다면 내 왕부로 돌아가서 폐하께 고하고, 훗날 너희를 끝내 찾아내 다 죽

여주겠다. 가족들도 몰살시킬 테다."

오늘 하루동안 팽준도 제법 협박의 묘미를 익힌 듯 했다. 말투와 내용이 그럴싸하여 병사들은 절로 겁을 먹었다. 그

러나 어찌 그가 진양을 따르겠는가? 진양은 내공을 끌어올려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와하하! 금나라 잡병들은 들어라. 나의 말을 따라 여기를 떠나 산 속에 들어가도  좋고, 팽준 말을 따라 끝까지 싸

워도 좋다. 너희를 죽이긴 싫지만 너희가 끝내 덤빈다면 나도  하는 수 없으니까, 뭐. 덤벼도 좋고 안 덤벼도 좋다. 

마음대로 해라."

아주 계획적인 말이다. 실제로 진양처럼 정을  소중히 하는 사람이 석앙의 마지막 소원을  그렇게 간단히 무너트릴 

리가 없었다. 한마디로 이건 은근한 협박일  뿐이었다. 병사들은 과연 금새 동요를  일으켰다. 상대적으로 바깥쪽에 

있던 병사 몇몇은 이런 때를 틈타 잽싸게 도망가기도 했다. 팽준은 몇 번 더 악을 질렀다.

"이놈들! 겁먹지 마라. 이길 수 있단 말이야."

병사들은 급기야 듣지도 않고 도망쳐대기 시작했다. 진양은 활짝 웃었다. 사립은 벗겨져 얼굴이 드러난 상태라서 이

제 눈웃음까지 잘도 보였다. 비록 자는 사람처럼 눈을 감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웃지도 못하는 건 아니었다. 그의 활

짝 핀 웃음은 반은 기쁨이요, 반은 조소 같았다. 그러면서 그는 팽준에게로 접근했다.

팽준은 떨림을 견디지 못하고 저 혼자 자빠졌다. 진양은 그에게서 지린내가 나는 걸 느끼고 실소를 터트렸다.

"이래서야 무슨 장군이 되겠느냐? 너 같은 놈이 금군의  장군직에 있다면 참 좋은 일이지만 그래도 명색의  장군이 

이 모양 이 꼴이니 살려둘 필요가 없겠구나."

"사,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저는… 사실 장군이 아닙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팽준은 진양의 장난에 넘어가 스스로 사실을 술술 불고야 말았다. 그래도 아직 의기가 있어서 안 가고 꾸물대는 병

사들은 그의 말에 입만 딱 벌리게 되었다.

"저… 저는 사실 장군이 아닙니다. 서안에  있다가 살고 싶어서 병사들을 속이고 호위병으로  삼아 데리고 온 겁니

다… 제발 살려주세요! 전, 전……."

"병사들이 잘도 속았네?"

"그, 그게… 워낙 다급한 상황이어서……."

과연 위기에 처했을 때 그런 수작을 부렸으니 멍청한 병사들은 속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진양은 그를 본래 잡병쯤

으로 여겼는데 이제 보니 아닌 듯 했다. 잡병이라면 이런 교활한 생각까지 할 수 있다고는 믿지 않았다.

"넌 잡병이 아니구나. 본래 직책은 무엇이냐?"

"본래… 본래 직책은… 시, 시중드는……."

진양도 이때만큼은 황당했는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본래는 그런 놈이었단 말이냐?"

"네, 네이……."

"재미있구나. 너 같은 놈에게 휘둘릴 병사들이라니 금나라의 앞날도 뻔하다."

본디 금군은 몽고군만큼 용맹하진 않았지만 그처럼  허약하지도 않았다. 지금의 경우에는 상황이  그러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남아서 팽준의 이야기를 들은 병사들은 더 있을 필요성을 못 느끼고 슬금슬금 그곳에서 빠

져나갔다. 팽준이 진양의 발목을 붙들며 머리를 조아린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오냐. 너를 살려둬서 금군이 광명을 보도록 해야겠다."

여기서의 '광명'이란 당연히 좋은 뜻이 아니다. 그 같은 인물은 죽이지 않고 계속 살게 해서 금군이 조금이라도 더 

무너지게 만들겠다는 그런 뜻이었다. 양만풍 등은 진양의 성격이 변하긴 했으나 여전히 예전과 같은 호기가 있음을 

알고 매우 친숙함을 느꼈다. 팽준은 진양의 말에 감격하여 머리를 땅에 꽂고 비명을 지르듯 고마워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진양은 이런 인물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제 볼일 다 봤으니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볼기짝이라도 걷어차 

날려보내려던 순간 퍼뜩 떠오르는 게 있어서 그를 불러 세웠다.

"잠깐!"

"네, 네? 아이고, 살려주세요!"

"누가 널 죽인다고 했느냐? 물어볼 게 있는 것뿐이다."

"마, 말씀하십시오."

진양의 안색은 약간 상기되어 있었다.

"형란이 있는 집에 대해서 이미 알아두었다. 저쪽으로 가면 있는 모옥에서 거처한다며?"

"어… 어떻게? 마, 맞습니다."

"난 독심술을 할 줄 알아서 어렵지 않다. 일찍이 고인이 남긴 무학서를 보았는데, 거기에 독심술이 있어서 익혔다."

"과연… 대협이시니 하늘의 축복을 내려준……."

"아부는 그만 떨어라. 또 맞춰볼까? 그 모옥 주변엔 함정이 있지?"

팽준의 입이 딱 벌어진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이때는 양만풍 등도 조금 놀라고 있었다. 팽준은 중원의 무학에 대해

서 모를 것이므로 그가 독심술을 쓴다는 말을 믿었다. 그러나 양만풍 등은 독심술이 있기나 한지도 잘 몰랐고, 진양

이 지금껏 장난만 친 터라 믿기지도 않았다.  하지만 또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모옥에 형란이  있고 주변에 함정이 

있는 것을 알았을까? 머리 좋은 연경후도 뭔가 잡힐 듯 말 듯 하면서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진양은 희미한 미소를 머금으며 음산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네가 만든 함정이니 스스로 제거하고 가야겠지? 너도 그냥  가고 나도 그냥 형란만 데리고 돌아간다면 훗날  어떤 

평민이 지나가다가 당할지도 모르는 게 아니겠느냐? 나와 저들은 곧장 가볼 데가 있어서 이런 데서 시간을 허비할 

수가 없다. 또한 자신이 벌인 일은 자신이 직접 해결해야하는 법이다. 그러니 네가  직접 제거하고 가라. 그렇지 않

는다면 네가 만든 함정에 네가 당하도록 만들겠다."

팽준은 완벽히 속고 말았다. 연경후는 이쯤이 돼서야 조금 짐작이 가는 바가 있었으나 그것도 다 깨달은 건 아니었

다. 하기야 연경후가 독심술이라도 할 줄 아는 게 아닌데 어찌 진양이 복차경과 싸우면서 밀담을 했다는 걸 알겠는

가! 팽준은 아까부터 오줌을 지리는 둥 겁을 잔뜩 먹고 있었다. 살려준다 해서 잽싸게  도망가려고 했는데, 이런 일

을 맡기니 안 할 수가 없었다. 안 한다면 그 함정에 빠지게 한다니 더 그랬다.

운무와 운화가 잠시 공력을 이용하여 각각의 몸 상태를 조금씩 회복시켜주었다. 진양은 팽준을 앞세워 바로 가보려

다가 다시 멈췄다. 그리고는 막 따라오는 양만풍 등에게 말했다.

"모두를 묻어주고 가자."

백 명에 이르는 군웅들부터 금병들과 융왕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땅에  묻어주자는 것이었다. 양만풍도 형란을 구한 

후에 다들 묻어줄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반대하지 않았다. 이 일을 하는데는 거의 반나절이 걸렸다. 다들 부상이 있

고 진양도 왼팔밖에 없어서 공력을 운용해서 땅을 파고는 했다. 팽준도 거들게 만들었다. 그는 의외로 열심히 일했

다.

양만풍은 죽은 군웅들의 무덤에 묘비를 세워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운무의 장기인 지공(指功)을 빌어서 모든 

군웅들의 이름을 새기고 명복을 빌었다. 진양은 운무에게 부탁해서 특별히 하나의 비석을 만들었다. 이 비석은 다른 

군웅들 것과 같았지만 묻히는 곳은 전혀 달랐다. 금병과 융왕은 좌측에 묻고 군웅들은 우측에 묻었던 것이다. 진양

은 이 비석을 들고 융왕의 무덤으로 가서 그 앞에 박아주었다. 묘비에는 이런 글이 쓰여져 있었다.

<천하제이 융왕의 묘, 삼가 진양이 세우다(天下第二 隆王之墓, 辰揚揖立).>

일생에 그토록 미워했던 자이거늘 천하제이라는 칭호에다 이처럼 예의까지 갖추었으니, 진양의 심경에는 어떤 변화

가 있었던 것일까? 그곳에 있던 자들 중 팽준만  빼고는 모두 그의 마음을 알았다. 그러나 그  누구도 함부로 입을 

여는 이는 없었다.

팽준은 앞장서서 모옥으로 향했다. 가는 길엔 과연 여러 무너진 집들이 있었다. 과연 폐허가 된 적수의 근방다웠다. 

숲을 빠져나오자 곧 물소리가 들렸다. 졸졸졸, 끊이지 않는 그 음향은 모옥이 위하 근처에 있음을 알 수 있게 했다. 

거기서 어느 정도 더 가니 다시금 풀 냄새가 맡아졌다. 그 풀 냄새는 본래 아까 있던 숲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것이

었으나, 시원히 흐르는 강물 소리를 듣자니 저절로 기분이 상쾌해져 더 향기롭게만 느껴졌다.

한참 갔을 때, 양만풍이 깜짝 놀라듯 말했다.

"저기 모옥이 있다. 저기냐?"

"네, 네."

진양은 모옥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대강 어떤지는 진안을 통해 알 수 있어서 걱정하지 않았다. 진양은 팽준이 지

금껏 아무 말 없이 갔기 때문에 필경 모옥 근처에 함정이 있다고 여겼다.

"자, 어서 함정을 제거해라."

팽준이 답하고 달려나간다. 확실히 여기서 팽준말고는 아무도 함정이 어디 있는지,  어떤 함정인지 전혀 몰랐다. 팽

준도 멍청하진 않은 인물이다. 하지만 진양의 앞에선 고양이 앞의 쥐새끼였다. 그는 모옥 바로 코앞까지 달려가더니 

한참을 끙끙댔다. 바닥에 엎드려서 뭔가를 하는 것 같더니 자꾸 어딘가를 왔다갔다했다. 호기심이 든 양만풍이 가서 

보고는 대소를 터트렸다.

"이 멍청한 인간아. 네놈이 이 큰돌을 움직일 수 있을 거 같아?"

알고 보니 함정은 수십 장이나 되는 깊이의 구덩이였다. 팽준은 처음부터 없애기  힘들다는 걸 알았으나 진양이 하

는 말을 듣고 무조건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여겼다. 그래서 아까 내키지도 않는 묘지공사를 열심히 하며 한편으론 

잘 생각해보았다. 그 끝에 내린 결단은 큰돌로 구덩이를 막아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도착한 후 한번 살펴보고 큰

돌을 찾아 어떻게든 움직이려고 했다. 물론 그의 힘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양만풍은 한바탕 더 대소를 터트리더니 그 큰돌을 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부상을 입은 몸이었다. 운무가 공력을 

불어넣어서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것이었지, 그게 아니었으면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는 상태의 몸이었다. 운화가 

이 광경을 보고 번쩍 날아와서는 반룡장을 휘둘러 돌의 뒤를  후려갈겼다. 쩌정! 하고 귀를 찢는 소리와 함께 돌은 

천천히 굴러가서 구덩이 입구를 꽉 막아버렸다. 잘 고정이 된 듯해서 장정 수십 명이 힘을 합해야 될 것 같았다.

"됐다. 훗날 어떤 사람들이 궁금해서 이 돌을 기어이 밀어본다 해도 그 아래 구덩이가 있음을 알 테니 걱정이 없겠

다. 팽준, 수고했다."

"아이고, 아닙니다. 그… 그럼 저는 이만……."

그는 실실 웃으며 대답하더니 어디론가 도망쳐버렸다. 양만풍은 아직 그의 모습이 사라지기 전에 진양에게 물었다.

"대체 또 어떤 수작을 부린 거지?"

"수작은 무슨 수작! 그냥 좀 가지고 논 거지."

"대강 알 거 같은데… 이 모옥하고 함정이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

"복차경이 알려줬지. 아까 일대일로 대결을 벌이면서 밀담을 나누었어."

양만풍은 놀라우면서도 분노하는 듯 했다.

"그놈은 어디 갔어?"

"모르겠다. 나에게 형란을 구해가라고 했는데… 어쩌면 그가 먼저 형란을 데려갔을지도 모르겠군."

진양은 더 말할 생각이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양만풍도 그런 기색을 느끼고 더 묻지 않았다. 이때 운무가 불호

를 외우며 모두에게 말했다.

"이제 노납과 사제는 그만 가야겠소. 소림사를 너무 오래 비워뒀구려."

운화는 별 말이 없었다. 진양은 안타까운 듯 침울하게 표정이 변했다.

"운무, 운화 대사도 잠시 형란을 보고 가시지요. 듣자하니 그녀를 돌봐주었다던데, 그녀도 매우 기뻐할 것입니다."

"아니오. 형 시주는 진 시주와 만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오. 노납은 그저 이번에 진 시주를 통해 큰 것을 배워

서 마음이 가득 찼소."

진양은 그의 뜻을 알았다. 더 말리지 않기로 하고 왼손을 펴서 가슴 앞에 두었다. 양만풍 등도 다함께 그들을 향해 

정중히 인사를 했다. 운무와 운화는 합장하고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우리도 가야겠지?"

양만풍이 동촉삼속을 돌아보며 한 말이었다. 진양은 그들이 그런 말을 할 거라고  생각했으나 막상 듣고 보니 섭섭

했다.

"너희에겐 형란이 그 정도밖에 안 되냐? 그리고 나는? 오랜만에 만났으니 술이라도 한 잔 해야지."

"에이, 괜한 소리로 잡아두려고 하지 마라. 운무 대사의 말씀대로 그녀는 너만 만나도 족할 것이다."

"이놈아! 대사가 그런 말을 한 것은……."

"알아, 알아. 자자. 그럼 너는 들어 가보고, 우린 떠나 가보고!"

그는 동촉삼속을 보며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연경후가 한 차례 몸을 진동시키더니 눈시울이 붉어지며 갑자기 정

중히 읍을 했다.

"양 방주께 그동안 무례한 것을 생각하니 참으로 죄송합니다."

"아니, 연형 이게 무슨 짓이오?"

연경후는 사부의 정에 밀려 양만풍과의 교우를  버렸다. 그런데 오늘 보니 양만풍은 자신을  아직도 형제로 여기고 

있지 않던가! 그는 그것에 큰 감동을 받았었다. 잘 생각해보니 조덕도 원한을 잊어서 이젠 상관이 없을 거라고 여겼

다. 지금 또한 양만풍은 그를 '우리' 라고 말하며 전혀 거리낌이 없는 듯 했다.  연경후는 드디어 참지 못하고 그에

게 토로를 한 것이었다. 그는 양만풍과 원수처럼 지냈지만 조금도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

"맞습니다. 양 방주께 그동안 저희가 무례했습니다.

사원이 이어서 말했다. 마보강은 조금 주저하는 듯 했으나  무언가 결심하고 역시 이어서 말했다. 사원은 양만풍과 

친하진 않았으나, 감총방과 문제가 생기기 전에 얘기를 전해  들어서 굉장히 훌륭한 인물로 여기고 지내왔다. 오늘 

그런 양만풍의 의기 있는 모습을 보아서 탄복하던 와중이었던 것이다.

반면 마보강은 그와 친교를 맺었지만 감총방의 손에 의해 사랑하는 여인이 죽었기  때문에 잠깐 주저했었다. 그 여

인은 문인능이었다. 그러나 양만풍이 죽인 게 아니었다. 감총방의  한 제자가 그녀의 손속이 너무 악랄하여 죽였던 

것이다. 마보강은 그 자를 죽여 복수하고도 그 불똥이 양만풍에게까지 튀어 단목리  사조의 한을 푸는 게 아니라도 

감총방과 전투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것이 오늘에야 완연히 풀어졌다. 대천산에서 조덕과 무굉의 은원이 매듭지어지

는 걸 보고 허탈하기도 했고 그러면서도  아직 양만풍을 미워했었는데, 오늘 자신들을 위해  열심히 싸우고 아직도 

형제로 여기고 있는 걸 알아서 마치 응어리졌던 그 무엇인가가 후련히 사라지는 그런 것이었다.

이 순간에는 양만풍이 감동했다. 그는 허리를 굽힌 그들을 다  일으켜 세우고는 호기로우면서도 울먹거리는 음성으

로 외쳤다.

"형제들. 왜 그러시오? 우리는 친구가 아니었소? 사형의 솔직함에는 진작부터 탄복했었으니 우리 넷은 오늘부터 새

로운 우정을 쌓을 수 있을 것이오."

"안 됩니다. 당신은 감총방의 방주인데……."

"아니오, 아니오! 내 어찌 방주직을 감히  버리겠냐마는 그렇다고 형제들과 거리를 둘 생각은  없소. 방파가 일거에 

망해버렸으니 형제들이 도와주시오. 그러니… 우리 의형제를 맺읍시다!"

반대할 사람은 없었다. 그들 넷은 서로의 어깨를 붙잡고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마치 일전에 진양이 무굉과 의형제

를 맺을 때처럼 그들은 자질구레한 의식 따위는 하지도 않고 말 한 마디로  그렇게 의형제가 된 것이다. 그들은 잠

시 형, 아우를 가렸다. 나이가 제일 많은 사원이 대형이 되고 연경후가  둘째가 됐다. 양만풍과 마보강은 나이가 같

아서 생일이 빠른 양만풍이 셋째가 되고 마보강이 막내가 되었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이들은 스스로를 사속사의

(四俗四義)라고 불렀다.

사속사의가 굳이 진양을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그가 필경 거절할 것이고, 이제 형란과  은거하겠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이었다. 과연 진양의 생각은 그러한 듯 한쪽에서 미소를 지은 채 그냥 구경만 하고 있었다. 양만풍이 크게 웃으

며 말했다.

"진양! 넌 뭘 그리 웃고 있어? 우리가 부러우면 얼른 들어가서 그녀를 만나라."

"이놈, 신경 쓰지 말고 가만히 있어."

진양이 맞받자 그들은 다함께 웃음을 터트리게 되었다. 잠시 후에야 사속사의는 진양과 작별을 고하고 떠나게 되었

다. 헤어지는 슬픔은 진양으로선 많이 겪었던 것. 하지만 언제나 안타깝고  가슴 아픈 순간이었다. 진양도 사속사의

도 서로의 감정을 들추지 않은 채 그저 웃음으로 그것을 감추며 그렇게 헤어졌다.

그들이 떠난 후에도 진양은 가만히 서서 안으로 들어서지 않았다. 진작부터 안에 두 사람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한 명은 분명 형란이었다. 진양은 가슴이 뛰기도 하고 괜히 얼굴이 붉어져서 잠시 머뭇거리고 있었다. 이때 안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진 대협은 들어오세요. 아가씨께서 기다립니다."

그 말이 들리기 무섭게 진양은 빠른 걸음으로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아마도 형란과 그 시녀라는 소녀는 진작

에 바깥의 상황을 알고 있었던 듯 했다. 하기야 거리가  가까워서 원치 않아도 다 들렸을 것이다. 진양은 양만풍이 

한 짖궂은 농담을 생각하고 얼굴이 약간 붉어졌으나 이내 평심을 되찾게 되었다.

향긋한 여인의 냄새가 코를 자극할 때쯤 눈앞에 형란이 아른거리는 듯 했다. 진양이 만일 장님이 되지 않아서 앞을 

볼 수만 있다면, 그녀가 깨끗한 녹의를 어여쁘게 차려입고 웃는 얼굴에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그를 바라보고 있다

는 걸 알 수 있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꼭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것을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고 한다. 풀 냄

새와 잘 화합하여 하나가 된 이 향긋한 냄새, 그리고  고요한 적막이지만 조금은 묘연한 그런 적막. 진양은 한동안 

움직이지도 못하고 쿵쾅 뛰는 가슴만 달랬다.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난 후. 그런 후에야 들려온  형란의 울먹이는 한 마디는, 진양이 달려가 그녀를 품에 안게 

만들었다.

"대형……."

이후에 어떤 한 쌍의 남녀가 신선처럼 심산유곡에 은거했다. 오른팔이 없는 남자와 다리를 다친 여자가 한 쌍의 부

부가 되어 어디론가 갔다는데, 그 어디론가가 어디인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문여하사서벽산(問余何事棲碧山) 왜 푸른 산중에 사느냐고 물어봐도

소이부답심자한(笑而不答心自閑) 대답없이 빙그레 웃으니 마음이 한가롭다.

도화유수묘연거(桃花流水杳然去) 복숭아꽃 흐르는 물따라 묘연히 떠나가니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인간세상이 아닌 별천지에 있다네.>

한편 사속사의가 마침내 강호에 이름을 날리는 어둠의 대협이 되어 금나라 패망에 일조한 것은, 이로부터 7년 뒤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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