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로 간 검은머리 용병
글 노오력.
------------------------------------------------------------------------
프롤로그
휘이이이잉.
거친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황야.
대지의 열기에 피어오른 아지랑이 속,
말 한 마리가 느릿느릿 마을로 다가온다.
다각 다각 다각.
히이이이잉.
“워워.”
실뭉치처럼 굴러다니는 뿌리 뽑힌 회전초가 말의 신경을 건드렸다.
고삐를 잡아 진정시킨 남자는 일명 카우보이모자라 불리는 텐갤런 햇을 슬쩍 들어 올렸다.
쌍꺼풀 없는 날카로운 눈매, 검은 눈동자.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동양인의 시선이 마을을 훑어내린다.
건물이라곤 고작해야 몇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었다.
덜컥. 드르르륵.
곧 불어닥칠 피바람. 마을을 휘감은 전운에 사람들은 황급히 문을 닫았다.
그리고 누군가는 술집 안으로 들어가 동양인의 등장을 알렸다.
“마, 막스 조가 왔습니다!”
“흠······”
자신의 이름을 따 갱을 만든 톰 벨.
그는 깊은 침음을 뱉으며 몸을 일으켰다.
“갔다 와서 마저 마시지.”
바텐더가 고개를 끄덕인다.
위스키는 그대로 둔 채, 톰 벨은 술집 밖으로 향했다. 그 뒤를 부하들이 따른다.
삐걱 삐걱.
기름이 마른 스윙 도어가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밖을 나온 톰 벨은 주변을 힐끔거렸다.
몇몇 수하들이 마차 뒤, 건물 옥상에서 놈을 겨냥하고 있다.
‘온몸에 총알을 박아주마.’
한쪽 입꼬리를 올린 톰 벨.
눈을 가늘게 떠 말에 탄 채 다가오는 동양인, 막스 조를 쳐다봤다.
다각, 다각.
히이이잉.
말이 멈추고 막스 조가 내려섰다.
콧수염에 가려진 입술이 벌어지며 톰 벨은 검은 머리 막스 조를 오시하며 말했다.
“혼자 오다니, 남자는 남자로군. 도망갈 줄 알았는데 말야.”
서로의 거리는 대략 20m.
홀스터를 향한 오른손을 꼼지락거리며 톰벨이 소리쳤다.
“오늘, 내 동생의 복수를 끝낸다!”
막스 조가 피식 조소를 짓는다.
으득하며 어금니를 깨문 톰 벨의 눈빛이 흉폭해졌다.
“네놈뿐 아니라 차이나 전부를 죽여주마!”
광기 섞인 일갈에도 막스 조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또 시작이네. 대한··· 아니, 조선에서 왔어, 인마.”
“헛소리! 내 당장 네놈을 죽이고 캘리포니아에 있는 차이나 놈들을 모조리···.”
톰 벨의 말이 끝나기도 전.
막스 조의 손이 쾌속하게 움직였다.
총을 꺼내 리볼버의 해머를 젖혀 코킹까지 그야말로 찰나의 시간.
타탕!
패스트 드로우에 이은 패닝.
털썩.
톰 벨과 수하들이 썩은 볏 짚단처럼 쓰러졌다.
“빠···르다···.”
톰 벨의 몸이 꿈틀거리다 이내 잠잠해졌다.
하지만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타아앙! 탕! 탕!
여기저기 총소리가 들려오고, 마차 뒤 건물에서 추락한 자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잠시 후.
“후우우.”
막스 조는 총구의 연기를 날려버리고.
휘리릭, 허리춤에 총을 집어넣고는 판초를 휘날리며 휘적휘적 발걸음을 옮겼다.
주변으로는 그의 동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총소리가 그치자, 마을 사람들이 슬그머니 창문을 열었다.
여기저기 널린 시체들.
그리고 석양을 등지고 서 있는 자들이 눈에 들어온다.
“세븐 스트롱!”
그런데 왜 여덟이지?
마을 사람들이 의문을 풀고 있을 때.
리더이자 유일한 동양인 막스 조가 옆을 힐끔 쳐다봤다.
“숫자 안 맞는다. 막내 뒤로 빠져.”
“씨···.”
막내가 입을 삐죽 내밀며 뒤로 빠졌다.
‘이제야 그림이 좀 나오겠군.’
와일드 웨스트.
골드러시.
카우보이.
그리고 무법자.
이곳은 낭만이 가득한 혼돈의 카오스 서부.
19세기 중반 미국의 텍사스다.
이렇게 가는 건가
Fast is fine,
but accuracy is final
빠른 것도 좋지만,
정확한 것이 최고다.
-------- Wyatt Earp (와이어트 어프)
내전이 한창인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
- 헬로우 조유캉.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
수년째 이름 하나 제대로 발음 못 하는 알파 리드코프라는 PMC(민간군사기업)의 오너다.
- 얘기 들었어. 진심이야?
“7년이면 그만둘 때도 됐지. 왜, 섭섭해?”
- 당연하지. 함께 작전 나갔던 게 어제 같은데. 이런 식으로 그만두는 게 어딨어!
“뭐야. 그럼 총이라도 맞고 나가란 말야?”
- 농담이라도 그런 농담하는 거 아냐. 솔직히 말해 봐. 에릭 때문인 거지?
“뭐, 겸사겸사야.”
형제같이 지냈던 동료 에릭의 죽음.
무엇보다 조유강을 무기력하게 만든 건.
에릭을 죽인 흉수를 잡고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에릭과 민간인 수십 명을 학살한 놈은 시리아 정부군에게 인도되면서 조유강을 비웃기까지 했다.
정식 재판에 회부되고 판결이 나기까지 최소 일 년. 상황으로 봐선, 그 판결조차 놈에게 유리하게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전장에서 죽은 PMC 용병들은 공식적인 사망 집계에도 포함이 안 된다.
‘그게 용병인 거지···.’
돈과 목숨을 바꾼 용병의 한계.
동료의 복수 또한 의뢰인과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해결해야 하고. 이런 것들이 조유강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 네 마음은 알지만, 어쩔 수 없었잖아. 놈을 죽이는 건, 우리의 임무를 넘어선 거라고.
“알아. 그래서 흥미와 열정이 사라졌어.”
- 그럼 원하는 곳으로 보내줄게. 이라크, 수단, 소말리아. 어디든 말해 봐.
다른 팀에서도 너랑 일하고 싶어서 난리라고.
“말했잖아. 장소가 문제가 아니라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 좋아! 그럼 나랑 본사에서 일하자.
“사무실에서 양복 입고?”
-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야. 정장 입은 네 모습을 생각해 봐. 불가능하겠지만, 여자라도 사귈지 누가 알겠어.
“불가능? 쳇. 갑갑한 사무실에 있다 보면, 야전이 그리워지고. 그럼 다시 보내 달라고 하겠지. 너 이거 노리는 거냐?”
- 흠흠. 네 덕분에 우리 알파 리드코프가 이만큼 컸잖아. 이대로 보내기엔 능력이 아까워서 그래. 내 제안도 좀 고려해 봐.
오너가 되더니, 꽤 음흉해졌다.
조유강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나도 심사숙고해서 내린 결정이다.”
- 쳇. 그럼 내가 준 리볼버 돌려줘.
“치사하게 그럴 거야? 줬다 뺏는 게 제일 나쁜 짓이라고.”
수화기 너머로 작은 웃음이 들려온다.
리볼버는 그가 선물한 것으로, 140년도 더 된 골동품이다.
정식 명칭은 M1873 콜트 싱글액션 아미.
피스메이커라 불리는 방아쇠를 누를 때마다 해머를 뒤로 젖혀 쏴야 하는 방식이다.
골동품이라도 총알을 넣으면 지금도 무리 없이 작동된다. 조유강은 개인 화기 소지가 가능한 임무에는 항상 허리에 차고 다녔다.
그만큼 마음에 꼭 들었기에, 절대 돌려줄 생각이 없었다.
조유강의 반응을 즐긴 오너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 알았어, 알았어. 대신 미국에 오면, 사무실에 들러. 어차피 여기 여행할 거잖아.
“정보 한번 빠르네. 내가 미국 여행한다는 건 또 어떻게 알았어.”
- 에릭의 유언이었으니까.
죽기 직전 에릭은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목걸이를 조유강에게 건네줬다.
자신이 여행 가고 싶었던 미 서부의 비스타이라는 곳을 대신 가달라는 말과 함께.
- 아무튼, 여행 끝나면 찾아와. 한잔 근사하게 살 테니까.
“알았다. 그럼 그때 보자고.”
한번 굳힌 마음은 쉽게 되돌리지 않는다.
오너 역시 조유강의 성격을 알기 때문에, 더는 설득하지 않았다.
수년간 일한 직장을 그만두는 건 허무할 정도로 쉬운 일이다. 전화 통화 몇 번이면 끝났으니까.
다만 정들었던 동료들과 헤어지는 건 먹먹하고도 아쉬움이 남는 일이었다.
조유강은 팔짱을 낀 채 무장하는 동료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오늘 임무는 시리아 정부의 요청으로 요인을 경호하는 일.
“정 아쉬우면 끼던가, 대장.”
190cm에 달하는 거구의 흑인인 머릭이 조유강을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조유강을 대신해 그는 대원 8명을 이끄는 리더가 되었다.
“전혀 아쉽지 않거든?”
“눈빛 보니까 아닌데, 뭘.”
머릭의 말에 동료들이 키득거린다.
“눈물바다가 될 줄 알았는데. 이것들이 쳐 웃고 있네.”
“대장 안 보이면 그때 울 거야. 흥.”
덩치에 안 맞게 머릭은 토라진 듯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이 하나도 안 귀엽다.
“그래서, 앞으로 뭐 할 건데?”
이번엔 머릭 옆에 있던 백인 헨리가 티꺼운 표정으로 물었다.
원래 성격이 저렇다.
실력은 좋지만 리더로는 꽝인 성격이다.
“미국 여행한다고 했잖아.”
“그다음에 말이야.”
“돈 벌어야지. 한국에서 사업이나 할까 하는데.”
“사업? 미친놈처럼 전쟁터만 찾는 네가? PMC 최강병기라는 네가?”
헨리는 전투 조끼를 착용하며 비아냥거렸다.
‘얼마나 맞아야 정신을 차릴지.’
저러다 싸우고, 매번 조유강에게 깨지면서도 성격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내가 없으니까, 이젠 네가 최고네.”
조유강의 말에 헨리가 코웃음을 쳤다.
“그나마 그건 기쁜 일이네. 아무튼, 너는 가족도 기다리는 사람도 없잖아. 우리 같은 놈들한텐 이 일이 적격이라고.”
“글쎄. 뭐, 봐서 정 아니다 싶으면 너한테 연락할게.”
“쳇. 끝까지 가겠다 이거지? 이제 꼴 보기 싫은 체 게바라 흉내는 안 봐도 되겠네.”
21세기 체 게바라. 혁명가는 아니지만 늘 책을 끼고 살기에 붙여진 별명이다.
다만 철학이나 정치가 아닌 역사와 경제 서적이 대부분이었고, 그 밑바탕은 용병 이후의 삶을 대비하기 위한 준비였다.
“어디 잘 먹고 잘사나 두고 보자!”
헨리는 신경질적으로 스카프를 목에 두르며 소리쳤다.
조유강과 눈이 마주친 다른 동료들은 어깨를 으쓱하고. 리더인 머릭은 대원들의 무장상태를 확인하며 말했다.
“시간 됐다. 언제 또 볼지 모르겠지만, 연락은 하고 살자, 대장.”
M4 소총과 글록 권총을 끝으로 대원들의 무장은 마무리되었다.
조유강은 머릭을 시작으로 호텔 방을 벗어나는 대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었다.
철썩.
헨리는 악수 대신 손바닥을 후려쳤다.
“연락처 바꾸면 끝까지 찾아낸다.”
“스토커냐?”
“아무튼. 간다···.”
헨리가 사라지자, 주변이 조용하다.
홀로 휑하니 남은 방에서 조유강은 주변을 둘러봤다.
방은 사람이 머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이 깔끔하다.
어차피 다시 복귀하겠지만, 그러지 못할 경우를 생각해서 하는 습관들이었다.
“다들 잘 있어라.”
덜컥.
호텔 방문을 닫고 배낭을 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