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먹으러 왔으면, 고기를 먹어야지.”
막스가 꼬챙이를 가리켰다.
무리에타의 눈에 이채가 서린다.
“캘리포니아에선 죄다 이상한 말로 시부렁거리던데. 제법 말을 할 줄 아는군.”
경계심 속에 호기심이 깃들었다.
“그나저나 다행이야. 내가 죽인 중국놈들이 29라 30을 채우고 싶었거든.”
무리에타의 말에 막스가 살짝 고개를 비틀었다. 최대 중국인 28명을 죽였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거짓말하면 안 되지. 파이브 호아킨스.”
“······뭐?”
‘맙소사, 파이브 호아킨스라고!?’
메리의 눈이 커지고, 무리에타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 틈을 노린 막스는 전광석화처럼 권총 홀스터로 손을 뻗쳤다.
검지에 걸친 방아쇠를 절반에 두고, 왼손으로는 해머를 당겨 한 발, 두 발을 연달아 쏘았다.
탕!
패스트 드로우에 이은 패닝.
어찌나 빠른지 총성은 한발에 그쳤다.
한 발은 무리에타의 이마 정중앙, 한 발은 막스에게 등진 놈의 뒤통수에 박혔다.
그리고.
딸칵.
옆에 있던 놈을 향한 나머지 한 발은 불발이다···
“?!”
막스와 놈의 시선이 교차했다.
그가 허겁지겁 라이플을 들어 올릴 때,
막스가 빠르게 왼손을 흩뿌렸다.
휘이잉. 푸욱!
30cm가량 되는 칼등이 휘어진 보위 나이프가 목을 관통했다.
“끅······”
칼과 목을 쥔 놈의 손가락 틈으로 피가 꾸역꾸역 솟아났다.
막스는 혹시라도 고기에 피가 튈까, 발로 놈의 가슴을 차 목에 박힌 칼을 뽑아냈다.
털썩.
“워···, 막스 형···. 장난 아니네···.”
제임스 옆에 있던 코닐은 시체들을 보며 눈을 껌뻑거렸다.
하지만 정작 세 놈을 처리했지만, 메리의 안색은 더욱 창백해졌다. 이들의 정체가 막스의 말대로라면 아직 끝이 아니었다.
“파이브 호아킨스면 다섯 아닌가요? 나머지 둘은요···?”
“!”
메리의 말에 제임스와 코닐은 주변을 빠르게 둘러보았다.
이 근방 어딘가에 둘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총알이 날아올 것 같은 두려움과 불안감.
하지만 그들의 반응과 달리 막스는 태평하기만 했다.
*
“세 명뿐이라고?”
메리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막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와 가족들을 안심시켰다.
“두 놈은 이미 레인저스에게 잡혔습니다.”
“그걸··· 어떻게 알아?”
잡은 두 놈의 정보를 토대로 캘리포니아 레인저스는 무리에타를 추격한다.
그 기록이 박물관에 버젓이 적혀 있었다.
게다가 실제로 파이브 호아킨 갱단은 세 명을 주축으로 움직였다.
만약 그걸 몰랐다면, 막스가 이렇게 섣불리 손을 쓰진 않았을 것이다.
“캘리포니아에 있을 때 들었거든요. 아마 레인저스에 쫓겨서 왔을 겁니다.”
“우리도 캘리포니아에 있었는데, 왜 못 들었을까.”
제임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캘리포니아가 좀 넓은가요.”
“하여간, 설마 이놈들이 파이브 호아킨스 갱일 줄이야. 자네 덕분에 또 한 번 위험한 고비를 넘겼구만.”
제임스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그리고 이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몰려오기 시작했다.
‘상황이 종료되니까 오는 센스 봐라.’
“당신이 이들을 죽인 겁니까?”
“와우. 동양인이 파이브 호아킨스 갱을 처치하다니. 이거 빅뉴스인데?”
그들의 입에서 원숭이니 쿨리라는 말은 튀어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당신 이름은 어떻게 됩니까?”
“막스 조요!”
코닐이 막스를 대신해 큰소리로 대답했다.
사람들은 그 이름을 곱씹으며 말했다.
“막스 조. 동양인 건맨의 등장이군.”
“이자들 실력이 대단하다 들었는데. 어떻게 하면 그렇게 빨리 쏠 수 있는 거요?”
‘총을 잘 쏘는 이유라···.’
알파 리드 코프 사장 덕분일까.
그가 준 콜트 M1873. 일명 ‘싱글 액션 아미’를 줄기차게 가지고 다녔으니까.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언젠가 너튜브에서 본 인간 같지 않은 속사의 달인 기록을 본 게 주요했다.
홀스터에서 총을 뽑아 표적물을 맞추는 데 걸리는 시간. 즉, 21피트(6.4m) 거리의 패스트 드로우 기네스 기록이 0.295초였다.
‘솔직히 말도 안 되는 속도지.’
전생의 조유강은 그 벽을 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하지만 0.3초라는 마의 벽을 넘지 못한 채, 서부로 끌려왔다.
‘오늘은 과연 몇 초를 기록했을까.’
피골이 상접한 몸이라 훨씬 느렸을 것이다.
사람들은 혀를 내두르지만, 막스에겐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훈련을 더 많이 해야 해.'
총기발달이 워낙 급변하는 시대라 익숙하지 않았을 뿐. 조만간 서부에는 괴물들이 넘쳐날 테니 말이다.
몰려든 사람들은 저들끼리 대화하고 쏙닥거리며 떠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방관자들치곤 실없는 모습이 아닌가.
하지만 그들의 목적은 따로 있었다. 다들 시체를 보는 눈빛들이 예사롭지 않았다.
파이브 호아킨스 갱단들이 가진 소지품 중엔 현금과 금, 무기가 있을 테고.
무엇보다.
‘이것들이 현상금 때문에 꼬여 들었구만.’
그 액수가 크다는 것만 기억난다.
하긴 이들을 잡으려 캘리포니아 레인저스까지 창설하기까지 했으니.
‘월척인가.’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는다더니, 졸지에 대어를 낚은 현상금 사냥꾼이 되어 버렸다.
‘시작이 좋군.’
막스는 누가 들을까, 제임스에게 전음처럼 속삭였다.
- 현상금 얼마인 줄 알아요?
- 음?
경황이 없어서인지 제임스도 그 생각은 하지 못한 모양이다.
그런데 이때 머리 하나가 불쑥 둘 사이를 파고들었다.
- 3천 달러.
메리의 눈이 반짝거리고, 제임스가 입을 쩍 벌렸다.
반면 막스는 메리가 어떻게 둘만의 귓속말을 엿들었는지가 더 궁금했다.
아마 돈의 가치가 확 와닿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 3천 달러라니. 어마어마한데?
- 그것도 호아킨 무리에타 한 사람에게 걸린 거예요. 물론 다른 사람들은 훨씬 작겠지만요.
- 근데, 3천 달러면 큰 건가요?
막스가 물었다.
순간 제임스와 메리는 막스를 병신 쳐다보듯 바라봤다. 다른 건 다 알면서, 그걸 왜 모르냐는 표정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막산은 캘리포니아에서 돈을 받은 적이 없었다. 일해서 얻은 거라곤 먹고 자는 게 전부였다.
‘글로벌 흑우새끼···.’
그게 조선의 이막산이었다.
제임스는 3천 달러의 가치를 설명했다.
- 자네가 지닌 콜트 드라군 권총이 15달러고, 광부들 주급이 8달러쯤 돼. 그러니 3천 달러면 어마어마한 거지.
이제야 기억난다.
‘지금 돈에 대충 30배 때려 박으면, 전생과 비슷하다고 했었지.’
그렇게 따지면 3천 달러는 9만 달러.
한화로 1억이 넘는 금액이다.
뒤늦게 막스의 입이 쩍 벌어졌다.
- 자네 이런 반응은 꽤 느리군.
제임스가 헛웃음을 지었다.
- 그런데 현상금은 어떻게 받을 수 있죠?
- 캘리포니아에서 현상금을 내걸었으니, 거기로 가는 게 맞지.
- 그건 차마 못 할 짓이네요. 캔자스에선 처리할 수 없나요?
- 캔자스는 이제 준주가 되어서 처리하긴 힘들어. 차라리 미주리의 잭슨 카운티가 낫겠군. 바로 옆이니까.
다만, 3천 달러를 온전히 받을 수 없고, 받더라도 수개월 걸릴 수 있다고 했다.
그래도 캘리포니아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이득이었다.
막스는 목적지를 캔자스와 미주리의 경계에 있는 잭슨 카운티로 정했다.
그곳은 제임스가 가려던 리븐워스라는 마을과도 가까웠다.
“자자, 우린 이제 식사를 해야 하니 이만 해산해주시죠.”
막스는 시체를 탐욕스럽게 바라보는 구경꾼들을 쫓아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일부 몰몬교도들은 시체보단 버팔로 고기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그들 역시 단체로 사냥을 하긴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안락한 동부에서 신앙심으로 살던 자들이라 솜씨가 변변치 못했다.
“제임스, 저들과 함께 고기를 나눠 먹는 건 어때요? 어차피 못 먹으면 썩잖아요.”
“자네가 사냥한 거니, 마음대로 해.”
막스는 터벅터벅 돌아가는 몰몬교도들을 다시금 불러들였다. 그리고 잠시 후엔 그들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져갔다.
메리는 그 모습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되게 생뚱맞네요. 살도 없는 말라깽이가 누굴 신경 쓴다는 건지 원.”
“오히려 저런 마음씨 보니까 난 더 안심되는데?”
“뭐, 저도 그렇긴 해요.”
침착, 냉정. 거기에 경악할 총솜씨까지.
충분히 두려워할 만하지 않은가.
하지만 타인을 생각하는 막스의 따뜻한 마음이 그런 두려움을 걷어 냈다.
이주자들의 몰골이 죄다 거지 같긴 하지만, 그중 몰몬교들은 그 상태가 심각했다.
종교적인 박해를 피해 쫓겨온 그들은 대부분 마차가 아닌 손수레를 끌고 이동했다.
게다가 아이들과 노부모들로 구성된 가족 단위로 움직인 탓에, 험난한 여정 속에 죽는 자들 또한 속출했다.
그래서인지 막스의 배려가 더욱 돋보였다.
비록 종교는 다르나 제임스 가족은 막스의 말에 환하게 웃음 짓는 몰몬교도들을 보며 덩달아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들은 커다란 착각을 하고 있었다.
막스의 행동엔 철저한 계산이 깔려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3천 달러 현상금이 코앞에 있는데, 욕심이 안 나면 거짓말이지.’
여자와 13살 아이 포함해서, 일행이라곤 달랑 넷이 전부다. 남자 둘만 처리하면 끝인데, 충분히 노릴만하지 않는가.
한밤중에 누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고기는 미끼일 뿐, 막스는 몰몬교도들에게 마차와 손수레를 제임스의 마차 주변으로 끌고 오도록 했다.
그렇게 트레일에 뚝 떨어져 홀로 야영하던 제임스 가족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이게 되고. 그들이 끌고 온 마차와 손수레는 둥글게 울타리를 치기에 충분한 숫자였다.
‘이런 식으로 보호막을 치면 헛짓거리하는 놈들은 없겠지.’
타닥, 타닥.
울타리 중심의 모닥불. 식기를 들고 모여든 몰몬교도가 40명 가까이 되었다.
식사 전 기도를 드릴 때, 막스는 고기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에겐 고기가 곧 종교였으니.
그리고 어둠 속. 혀를 차며 그 모습을 지켜보는 눈동자가 한둘이 아니다.
“씨발, 시체 빼앗기 힘들겠는데.”
단 네 명뿐이라 만만히 봤던 자들은 입맛만 다시고, 현상금에 눈이 돌아간 자들은 깊은 밤이 되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어떤 놈이든 와 봐라.’
막스는 코웃음 치며 고기를 뜯었다.
배에 기름진 고기가 채워지고, 포만감이 느껴지니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다.
말라비틀어진 살갗이 조금은 부풀어오른 착각마저 들었다.
‘내일도 사냥해야겠다.’
파이브 호아킨스라는 거물급 갱단을 잡은 소문은 금방 퍼져나갈 것이다.
캔자스 주도 토피카에 도착할 때까지는, 몰몬교도들의 저녁을 책임지기로 했다.
그래서 이놈들이 누군데
싸움이 끝나면 전리품이 생기게 마련.
파이브 호아킨스 갱을 죽여 획득한 것들은 생각보다 짭짤했다.
우선 현금이 82달러, 제임스가 저울로 측정한 결과 금은 8온스 정도 되었다.
“합치면 240달러네. 현상금까지 하면 어마어마한데? 이제부턴 막스에게 밥값이라도 받아야 하나.”
메리의 말에 제임스가 눈을 흘긴다.
“쓸데없는 소리. 덕분에 우리에게 아무 일도 없던 걸 감사해야지.”
“당신도 참. 그냥 해본 말이죠···.”
메리는 제임스의 눈치를 보며 입을 삐죽거렸다. 찰나지만 그녀의 눈빛엔 진한 아쉬움이 담겨 있었다.
막스는 제임스를 슬쩍 쳐다보았다.
우직한 얼굴엔 욕심 한 점 보이질 않는다.
‘내가 처리했으니, 내 거라 이건가.’
막스는 제임스의 성격을 대충은 알 것 같았다.
남에게 신세 지기 싫어하고, 정당하게 얻은 것 이외에는 욕심내지 않는 성격.
종교적 신념 내지는 애초에 성정을 그렇게 타고났을 수도 있다.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고집과 고리타분함. 조선으로 치면 선비가 아닌가.
막스는 제임스의 성격이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몇 가지 걸리는 것들도 있었고.
“파이브 호아킨스 갱단은 제임스가 잡은 거로 하죠.”
제임스와 메리가 눈을 크게 뜨며 막스를 쳐다봤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시민권은커녕, 영주권도 없는 동양인에게 현상금을 제대로 주겠습니까. 받는다 해도 절차가 복잡할 게 분명합니다.”
“...... 근데 내가 잡았다는 걸 대체 누가 믿겠어?”
“제가 도운 거로 하면 되죠. 주체는 제임스로 하고, 대신 현상금은 반띵하죠.”
“반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