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8/360)

갑자기 한국말이 튀어나왔다.

돈 욕심은 생기지만, 그것도 상황에 맞게 부려야 한다.

지금은 적당히 나눌 때였다.

“반반 나누자는 뜻입니다.”

“!”

막스는 갱단에게 빼앗은 현금 절반을 메리에게 내밀었다.

그녀는 순간 벌어진 입을 막으며 제임스를 힐끔거렸다. 아들인 코닐 역시 눈을 껌뻑거리며 아버지를 쳐다봤다.

하지만 제임스는 그들의 기대와 달리 정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역시 융통성 없는 인간이다.

“그건 안 될 말이야.”

“은혜를 입었는데, 현상금이 뭐가 대수겠습니까. 일단 이것부터 받으시죠.”

“은혜는 우리가 입었는데···.”

“낯선 동양인을 여정에 끼워준 게 은혜죠. 받은 게 있으면, 그만큼 돌려줘야 한다는 게 제 신념이기도 합니다.”

막스의 진심 어린 말에 제임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원한을 맺었으면 큰일 날 뻔했네.”

“그땐 배로 갚아줘야겠죠?”

막스의 농담이 농담 같지 않다.

멋쩍게 웃음을 짓던 제임스는 이내 부인과 아들을 쳐다봤다.

둘은 어서 수락하라며 눈빛으로 재촉하고 있었다.

제임스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캘리포니아에서 고생만 진탕하게 만든 주제에 왜 망설이는지 스스로가 한심할 따름이다.

“자네의 호의에 감사하네.”

“오히려 제가 감사드려야죠.”

막스가 고개를 숙이자, 메리는 웃으며 그에게서 현금을 받아 챙겼다.

‘일단 돈은 그렇게 처리하고. 다음은···’

무기도 돈 만큼이나 짭짤했다.

1848년 모델 콜트 드라군 세 자루, 1852년 모델 콜트 네이비가 두 자루, 그리고 샤프스 라이플이 두 자루.

거기에 탄환과 화약까지.

‘과하다 과해.’

그렇다고 갱단이 제 돈 주고 샀을 리도 없고, 획득한 대부분은 다른 누군가를 죽여 빼앗았을 것이다. 막스처럼···

‘내가 황금 고블린을 잡았구먼.’

그리고 이제는 제임스의 마차가 황금마차가 되었다.

그런 이유로 막스는 날마다 버팔로를 사냥하고, 몰몬교도들과 바베큐 파티를벌였다.

덕분에 막스의 몸에 살이 붙기 시작하고, 습격자들은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

“윽, 냄새 때문에 도저히 못 버티겠어요!”

시체가 부패하면서 마차 안에 썩은 내가 진동했다.

하는 수 없이, 막스는 오레곤 트레일 부근에 들어선 마을에 들러 커다란 관을짰다.

이동의 편리성을 고려해 바퀴까지 달아, 마차 뒤에 연결해 끌고 다녔다.

그렇게 유타에서 시작한 여정은 근 두 달이 되어서야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네브래스카에서 남쪽으로 갈라진 길을 따라 캔자스로 진입. 캔자스강을 건너자마자 미주리의 서쪽 끝인 잭슨 카운티의 캔자스 시티에 도착할 수 있었다.

미주리주를 경기도(道)라 치면, 카운티는 양평군, 캔자스 시티는 양평읍 정도 될까.

막스는 제임스와 몇 가지 상의를 한 뒤에야 마을로 들어섰다.

“와, 역시 시티라 다르네요.”

황야에서 제대로 된 도시를 보자 코닐이 탄성을 내뱉었다.

‘어딜 봐서? 겁나 작구만.’

막스 기준에 캔자스 시티는 시골 촌 동네보다도 못한 모습이다.

전생에 봤던 엄청난 대도시의 모습이라곤 1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미주리강과 캔자스강이 합류되는 어귀에 지어진 건물들이 한눈에 다 들어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Sheriff office.

길모퉁이 목조 건물로 지어진 건물이 보안관 사무실 앞에 마차를 세웠다.

사무실 앞 테라스엔 남자들 넷이 한가로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하루가 멀다고 이주민들이 오는 탓에, 제임스 가족은 그들의 관심 밖이었다.

“범죄자를 처리하고 싶습니다.”

제임스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범죄자라··· 이곳 보안관 허드슨이오.”

“제임스 헤리스입니다.”

콧수염의 통통한 남자가 마차로 다가오며 말을 건넨다. 가슴엔 별 모양의 보안관 뱃지를 달고 있었다.

“어디서 왔소?”

“캘리포니아요.”

“어째 풍파가 여기저기 보인다 했더니, 꽤 먼 길에서 오셨구만. 그런데 범죄자는 어디 있소?”

제임스가 마차 뒤를 가리켰다.

이때 막스는 마차에 연결된 관짝을 분리하는 중이었다.

철컥.

쿵.

육중한 소리와 함께 관짝이 땅에 떨어졌다.

그런데 보안관 허드슨은 관은 대충 쳐다보고, 막스에게 더 큰 관심을 보였다.

“동양인?”

시체보다 동양인이 더 신기한 건가.

부 보안관들도 막스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그중 한 명이 몽타주를 꺼내 들었다.

‘노예상인···’

막스는 그들의 표정에서 한가지 떠오르는 게 있었다.

“쿨렌 베이커씨가 말한 동양놈과 인상착의가 비슷한데요?”

쿨렌 베이커는 막스를 남부 노예로 팔려했던 노예상인. 이곳을 지나가면서 보안관에게 자신을 잡으라고 사주한 것이 분명했다.

남부로 가려면 반드시 이곳 잭슨 카운티를 지나야 했으니 말이다.

“붙잡아.”

허드슨의 말에 부 보안관들이 막스를 포위했다. 제임스와 가족들은 이 상황을 미리 대비라도 한 듯, 당황하지 않았다.

막스 역시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일까요?”

“음?”

“그 몽타주 인물과 많이 닮았나 본데, 오면서도 몇 번이나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물론 처음 듣는다. 하지만 막스는 능청스레 지겹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허드슨의 눈이 가늘어졌다.

쿨렌 베이커가 말하길.

- 영어도 못 하는 빌어먹을 중국놈이야. 여기까지 올 리는 없겠지만, 혹시 오거든 붙잡아 주시죠. 참고로, 동양인답지 않게 키가 좀 큽니다.

실제로 막스의 키는 175 정도로 꽤 큰 편이다. 인상착의만 놓고 보면, 쿨렌이 말한 동양인이 확실했다.

문제는 영어가 꽤 유창하다는 거.

허드슨이 긴가민가할 때, 막스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캘리포니아에 가면, 저랑 닮은 동양인들이 수두룩합니다. 하나같이 못 먹어서 말라 비틀었죠.”

“그럼 쿨렌과 노예 계약을 맺은 자가 아니라 이건가?”

“제가 미쳤다고 노예 계약을 맺겠습니까. 글도 모르는 까막눈들에게나 통할일이죠. 전 이분 제임스와 3년간 정식 노동계약을 맺었습니다.”

허드슨의 시선이 제임스에게로 향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막스는 중국이 아닌 조선에서 왔습니다. 영어도 곧잘 해서 제가 고용했죠.”

“무슨 일을 했소?”

“채광 장비를 만들었습니다.”

“대장장이로구만.”

실제로 제임스는 캘리포니아의 커다란 대장간에서 일했다. 이걸 알게 된 막스는 그에게 더 큰 흥미를 느꼈던 거고.

막스를 뚫어지게 노려보던 허드슨은 부 보안관들과 짧은 상의를 마친 뒤에야 막스에게서 떨어졌다.

허드슨의 관심이 애초의 목적인 범죄자들의 시체로 향하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관짝을 발로 차며 말했다.

“뚜껑 좀 열어봐.”

막스는 쇠지렛대인 크로우 바를 끼운 뒤 뚜껑을 탈착했다. 안에선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세 구의 시체가 드러났다.

“보아하니 한 달은 된 것 같군.”

악취에 허드슨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는 손수건으로 코를 막으며 날파리들을 손으로 휘이 저어 쫓아냈다.

“한 놈은 이마 정중앙, 요놈은 뒤통수에 쏜 것 같고. 어이구, 이놈은 목에 칼을 쑤셔 박았네. 총도 안 든 잡범들을 죽였군.”

허드슨은 상흔을 살피며 중얼거렸다.

평범한 제임스 가족에게 이렇게 당할 정도면 잡범들이 아니겠는가.

잭슨 카운티 보안관이 된 지 일 년.

그동안 현상금 사냥꾼들이 잡아 온 범죄자들은 그리 유명하지 않은 놈들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연방이나 주 단위에서 내건 놈들은 흉악하고 솜씨가 뛰어났기 때문에 잡기는커녕 역으로 당하기 일쑤였다.

때문에,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현상금을 걸어 놓은 범죄자들이 대부분이었다.

허드슨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제임스에게 물었다.

“그래서 이놈들은 누구지?”

귀찮은 일을 떠맡은 것 마냥, 나른한 표정이다. 하지만 제임스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그의 예상을 한참이나 빗나간 것이었다.

“파이브 호아킨스 갱단입니다.”

“헉!”

3천 달러 현상금이 붙은 갱단!

이걸 모를 리가 없는 허드슨과 부 보안관들은 눈이 튀어나온다.

막스는 시체로 몰려드는 그들에게 친절히 설명했다.

“가운데가 두목 호아킨스 무리에타에요.”

“...... 캘리포니아 레인저스도 잡지 못한 걸 잡았다고? 더구나 총잡이로 유명한 무리에타를?”

대체 누가 잡았냐며, 허드슨의 시선이 막스와 제임스를 번갈아 쳐다봤다.

“오레곤 트레일에서 우리 가족을 위협하길래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죽였다고? 대장장이인 자네가?”

“이 친구의 도움이 컸습니다.”

싸움의 주체는 제임스가, 막스는 도움을 준 거로 입을 맞췄다.

“너희들은 빨리 신원 확인해 봐.”

허드슨은 믿기지 않는지, 재차 시신을 확인하라며 부 보안관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시신과 소지품들을 일일이 확인한 그들은 마침내 파이브 호아킨스 갱단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막스도 미처 몰랐었던, 무리에타의 오른팔 ‘쓰리 핑거드 잭’. 별명대로 놈의 손가락 세 개가 결정적인 증거였다.

‘무리에타, 쓰리 핑거드 잭···. 이거 무슨 영화에서도 들어본 것 같은데.’

막스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허드슨이 제임스에게 말을 건넸다.

“이거 엄청난 일을 해냈구려. 지금 캘리포니아 레인저스에서 이놈들을 쫓으려고 콜로라도까지 넘어왔을 거요.”

“그렇습니까?”

“자자, 이러지 말고 안으로 들어갑시다.”

허드슨은 밝게 웃으며 제임스의 팔을 잡고는 사무실로 이끌었다.

표정과 행동이 이전과 사뭇 다르다.

대륙이 주목하는 갱단이 시체가 되어 자신에게 왔으니, 그 흥분을 주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막스와 메리, 그리고 코닐은 마차에서 제임스가 나올 때까지 시간을 보내야했다.

그리고 관짝을 사무실 옆으로 옮기던 부 보안관들은 막스를 힐끔거리며 관심을 보였다.

잠시 후. 사무실에서 나온 제임스가 고개를 절레 저었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이곳에 머물러야 할 것 같아. 현상금은 둘째치고, 일단은 캘리포니아 레인저스가 와서 확인해야 한다네.”

“이미 예상한 일이었잖아요.”

메리의 말대로다.

현상금 전액을 턱 하니 내주는 곳은 현상금을 내건 캘리포니아에 가야 가능한 일. 그나마 다행인 건 레인저스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점이었다.

다만, 막스는 레인저스가 이곳에 직접 오는 것까지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소문을 들었다면, 제임스가 아니라 내가 죽였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현상금 쉽게 타려고 했다가, 괜히 일만 복잡해진 기분이다.

일행은 숙박을 위해 인근 여관을 찾아갔다.

대개 일 층은 술집, 그 위가 숙소인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이곳엔 바운서라는 질서 유지를 위해 고용된 총잡이가 상주했다.

“잠깐. 들어가기 전에 이것부터 읽어보쇼.”

바운서가 막스 일행을 제지했다.

만사가 귀찮은, 삶에 찌든 50대의 얼굴.

그가 가리킨 곳엔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몰몬교, 유색인종, 노예 출입 금지]

문에 붙어있는 문구에 제임스와 메리의 인상이 구겨졌다.

막스의 얼굴은 비교적 담담했다. 물론 속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빌어먹을 인종차별.’

작가의말

인종차별이 하루 이틀 일은 아니죠.

소설에서 등장하는 온갖 동양인 비하발언에 대해 

수위를 조절하고는 있지만 혹 기분 나빠하실 

독자님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아무쪼록 전개상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하시고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중립

흑인이나 동양인이나.

새삼 자신의 처지를 깨닫게 된 막스는 이걸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그런데 이때 메리가 격양된 얼굴로 말했다.

“돈을 안 내는 것도 아니고, 장사하는데 무슨 피부색을 따져요?”

“부인이 뭐라 해도, 동양인은 안되니까 그리 아쇼.”

“쳇. 여관이 어디 여기만 있나요? 우리 다른 데로 가죠.”

“다른 곳도 마찬가지일 텐데.”

바운서는 거드름을 피우며 말을 이었다.

“잭슨 카운티, 아니 미주리 어디에도 동양인을 받아주는 곳은 없을 거요. 여차하면 헛간 정도는 내줄 수 있으니, 괜한 힘 빼지 말고 여기 묵으쇼. 그나마 아일랜드인을 차별 안 하는 게 어디야.”

“이 사람이 진짜,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예요?”

메리가 흥분하며 말하지만, 바운서는 귀를 후벼 파며 한 귀로 흘려 버렸다.

‘아일랜드인들도 찬밥이구나.’

백인도 다 같은 백인이 아니다.

조유강이 살던 전생에서도 미국의 주 상류층은 WASP로 지칭하는 백인/앵글로 색슨/개신교도들이 주축을 이루었다.

아일랜드인 대부분은 감자 기근으로 탈출한 이민자들. 막스보단 덜 하지만 제임스 가족 역시 대우받는 처지는 아니었다.

막스는 메리를 진정시키며 입을 열었다.

“이 사람 말대로, 다른 곳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냥 셋은 이곳에서 묵어요.

전 마차에서 보내면 되니까.”

“호오, 동양인 주제에 제법 이해가 빠르구먼.”

바운서가 비아냥대자 막스는 잠시 하늘을 올려봤다.

‘이거 일일이 총을 뽑을 수도 없고···’

참을 인을 새기며 막스는 제임스 가족을 여관 안으로 밀어 넣었다.

코닐은 울상을 지으며 막스를 쳐다봤다.

“진짜 마차에서 지낼 거야?”

“그래. 이따 저녁밥이나 챙겨줘.”

굳이 자신 때문에 이리저리 전전해 봐야 결과는 빤하지 않은가.

미주리주는 남부에 속한 노예가 합법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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