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 (9/360)

더구나 이곳 잭슨 카운티는 몰몬교도들과 전쟁을 치른 곳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만큼 차별이 심한 동네였다.

‘종교, 인종, 노예. 아주 종합세트구만. ’

막스는 제임스 가족을 강제로 안으로 밀어 넣고, 자신은 헛간 앞에 세워진 마차로 향했다.

그날 저녁.

제임스가 마차를 찾아왔다.

손에는 쟁반 가득 음식이 담겨 있었다.

“메리가 이것저것 챙겨줬어. 이거 참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

“길거리에서 자는 것보단 낫습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일단 이거나 들지.”

같이 먹을 생각이었는지, 제임스 역시 빵과 고기를 입에 넣었다.

막스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캔자스에 아는 분이 있다고 했죠?”

“멕시코 전쟁을 함께 참전한 동료지. 뭐, 후방에서 무기와 물자를 정비하는 역할이었지만 나름 생사고락을 함께한 전우였어.”

1846년에 벌어진 멕시코-미국 전쟁.

이 승리로 미국은 뉴멕시코에서 캘리포니아까지 6개의 주를 손에 넣게 된다.

당시 제임스는 돈을 벌기 위해 부인과 다섯 살 된 코닐을 놔둔 채 전쟁터로

향했다.

“자넨 아직 어려서 모르겠지만, 전쟁의 참상은 실로 끔찍하네. 팔로알토 전쟁에서 대포가 굉음을 울리며 적진에 떨어질 때는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겠더군.”

‘누가 들으면 현무-3라도 떨어진 줄.’

팔로알토 전쟁에서 쓰인 건 27개의 철공이 들어있는 파열탄의 M1841 12파운드(5.4kg) 곡사포.

현대 무기와 비할 바는 아니나, 이 전쟁에서 미국 포병이 승리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사실이었다.

“그런데 전쟁보다 더 끔찍한 게, 차별이었네. 아일랜드계라고 무시당하고 박해를 받아야 했거든.”

“종교적인 문제였습니까?”

잉글랜드는 개신교, 아일랜드는 가톨릭.

“뭐, 복합적이지. 하얀 깜둥이라느니, 게으르고 다혈질인 알코올 중독자라느니. 전쟁 중에 그런 소리를 총소리만큼 들었거든.”

“원숭이와 쿨리보다 다양하군요.”

제임스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낙담하진 않네. 아일랜드에 이런 말이 있거든. 낯선 사람이 있는게 아니라, 아직 만나지 않은 친구가 있을 뿐이라고. 그러니 좋게 생각해야···.”

“쳇. 우리만 저녁 먹게 하고 당신은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메리가 입을 삐죽이며 나타났다.

움찔하는 제임스에게 막스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바가지 긁는 소리 듣고 싶으면 결혼하라, 칭찬을 듣고 싶으면 죽어라. 갑자기 이 말이 생각나네요.”

“오오, 자네가 그 말은 또 어떻게 알지?”

“그러게요. 그거 아일랜드 속담인데.”

제임스와 메리가 신기한 듯 막스를 쳐다봤다.

“에릭이라고 아일랜드 출신 친구가 있었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 만난 건가?”

“뭐··· 그런 셈이죠. 하지만 지금은 죽었습니다.”

‘아니, 아직 그 친구가 태어나려면 120년은 더 있어야겠지.’

분위기가 싸해지고, 막스는 메리가 들고 온 병에 시선을 고정했다.

‘설마···’

“그거 맥주에요?”

메리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순간 막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빵 보고 그러더니, 이젠 맥주 보고 저러네. 18살이 술을 알면 얼마나 안다고.”

“아주 잘 알거든요? 그런데 코닐은요?”

“침대에서 눕자마자 곯아떨어졌어.”

어둠이 짙게 깔린 마을.

여관 헛간에 세워진 마차에선 때아닌 술판이 벌어졌다. 쓸쓸히 혼자 있을 막스를 배려한 것이었다.

“크으으. 역시 맥주는 이 맛이지.”

“참나. 누가 보면 몇십 년 마신 줄 알겠네.”

“하여간 자넨 나이답지 않은 구석이 있어.”

등잔의 기름 탄 냄새가 마차에 퍼지고,

막스는 제임스에게 중요한 말을 건넸다.

캔자스에 정착하기로 한 이상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었다.

“두 분은 노예제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뜬금없이 질문이 뭐 그래?”

메리는 어이없어하지만, 막스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제가 보기엔 두 분은 노예 폐지 쪽인 것 같은데, 맞습니까? 이거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서 그래요.”

“흠. 자네 말대로 우리 가족은 노예 폐지를 찬성하는 쪽이네. 피부색으로 차별하는 건 신의 뜻이 아니지. 같은 사람이지 않은가.”

제임스의 말에 막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이걸 물어본 이유는 곧 캔자스에서 벌어질 일 때문에 그렇습니다.”

“앞으로 벌어질 일?”

미국은 새로운 주가 생기면 북위 36도를 기준으로 위는 자유주, 아래는 노예주로 정하는 협정을 체결했다.

그리고 이번에 새롭게 준주가 된 네브래스카와 캔자스는 전부 북위 36도 위. 즉, 저절로 자유주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되면 노예주의 수가 자유주에 밀리게 된다는 겁니다.”

현재 스코어는 12대 12.

그래서 갑자기 이 같은 큰 결정을 주민의 찬반 투표를 붙이기로 했다. 물론 남부 노예주에서 강력하게 밀어붙인 탓이었다.

“그러니 자유주라고 가만히 있겠습니까? 곧 심각한 일이 벌어질 겁니다.”

“자네 우려는 알겠네만. 캔자스에 노예를 가진 자들이 없는데 찬성할 이유가있나? 캔자스 하원 선거가 며칠 전 끝났을 거네. 아마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는 자가 뽑혔겠지.”

미연방으로 보낼 캔자스의 대표 하원을 선출하는 선거. 하지만 이미 결과를 아는 막스는 고개를 저었다.

“투표는 조작되었을 겁니다.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해 노예주에 있는 사람들이 이주했을 테니까요.”

“설마, 그렇게까지 한다고?”

“투표가 끝났다고 했죠? 그 결과를 보시면 알 겁니다.”

제임스와 메리는 생각에 잠기고, 막스는 말없이 맥주로 목을 축였다.

다음 날.

“진짜 여기에 동양인이 있다고?”

“그렇다니까, 어제 마차 앞에서 막 운동하고 있는 걸 봤어.”

꼬맹이들 너 댓이 마차를 기웃거린다.

눈을 뜬 막스는 산발한 머리를 긁적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마차에서 거지꼴의 남자가 상체를 일으키자, 아이들은 질겁하며 뒷걸음질 친다.

아이들의 손에는 나뭇가지와 돌도 들려 있었다. 지금은 그걸 던질까 말까 눈동자가 요동치고 있었다.

‘이젠, 애새끼들한테도 무시 받는구만.’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던 막스가 갑자기 눈을 부릅떴다.

“으아아악!”

“튀어!”

아이들이 도망치고, 코웃음 친 막스는 마차에 내려 헛간으로 갔다. 그곳엔 말에게 물을 먹이기 위한 물이 한가득이었다.

한겨울이라 살얼음이 제대로다.

“어으, 시원하다.”

추위보단 먼지가 씻기는 상쾌함에 흡족한 기분마저 든다. 세수도 하고, 나뭇가지 끝부분을 질겅질겅 씹어 양치에도 각별한 신경을 썼다.

그런데.

“누가 그 물을 마음대로 쓰라고 했지?”

바운서가 휘적휘적 다가왔다.

“씻긴 해야 할 거 아닙니까.”

“말이 네 몸뚱이보다 비쌀 거다. 더구나 더러운 동양인은 씻어도 티도 안 난다고.”

막스는 그에게 다가가 얼굴을 내밀었다.

“피부 반짝거리는 거 안 보여요?”

바운서는 순간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살짝 고개를 비틀었다.

“간댕이가 부었군. 고작 아일랜드인 주인을 믿고 기고만장한 거냐?”

“난 노예가 아니요.”

막스의 눈에 힘이 들어간다.

둘의 시선이 부딪히고, 바운서는 막스의 허리춤을 힐끔거리며 말했다.

“그 장식품 총으로 한 번 해보겠다고?”

“장식품으로 보입니까?”

“이런 소문을 들었거든. 캘리포니아엔 총 뽑다가 발바닥에 구멍 난 멍청한 동양인들이 천지라고.”

“제 발은 멀쩡한데요?”

“아직 뽑질 않았나 보지. 크크큭.”

바운서는 비아냥거리며 마저 말을 이었다.

“애송이. 네가 쓴 물은 주인에게 청구하도록 하마. 그리고 그 총을 뽑는 것보다 네놈 이마에 총알이 먼저 박힐 게야.”

바운서는 몸을 돌려 여관으로 돌아갔다.

막스는 허리춤의 총을 뽑아,

“탕!”

입으로 소리를 낸 뒤엔 방아쇠울을 손가락에 걸어 백스핀과 플랫스핀을 잇달아 펼치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때 마침 제임스가 찾아왔다.

손에는 아침 식사가 담긴 쟁반을 들고 있었다.

“워, 엄청나구만.”

화려한 건 스핀에 이어 홀스터로 들어가는 리볼버를 보며 제임스가 혀를 내둘렀다.

“얼굴 보니까 잔뜩 화가 난 것 같은데?”

“그럴 리가요. 그나저나 끼니마다 미안하네요.”

“미안은 무슨. 근데 말야···”

쟁반을 내려놓은 제임스가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캔자스 하원 선거 결과를 알아봤네.”

막스는 이미 결과를 알고 있었다.

“자네 말대로, 노예제를 옹호하는 자가 선출되었더군. 미주리에 있는 사람들이 대거 이주했다는 소문도 들었어. 투표권자보다 투표수가 많았다니 이거야원...”

“부정 투표네요. 다음 선거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앞으로 4개월 뒤에 있을 입법부 선거.

지금까진 작은 바람일 뿐. 이는 곧 태풍이 되어 캔자스를 휩쓸고 갈 것이다.

“자넨 답을 알고 있어서 내게 물어본 거겠지?”

“제가 신도 아니고, 답을 어떻게 알겠어요. 다만, 몇 가지 선택지는 있죠.”

캔자스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거나.

노예에 대한 중립적 입장을 고수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적극적으로 자유주의 편에 서서 싸우거나.

“캔자스에는 내 일자리와 보금자리가 보장되어있네. 여기까지 와서 다른 곳으로 옮기긴 힘들어. 물론, 자네 입장이야 다를 수도 있겠지만.”

“그럼 이렇게 하세요. 노예에 관해 아무런 입장도 취하지 않는 겁니다.”

“만약 선택해야 할 상황이 오면?”

“그땐 무조건 자유주 편에 서야죠.”

막스의 말엔 확신이 묻어 있었다.

제임스는 더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말대로 하겠네.”

막스가 정세에 밝고, 판단이 뛰어나다는 걸 제임스는 인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광장에서 듣게 된 연설로 제임스는 더욱 확신을 할 수 있었다. 막스의 충고가 괜한 것이 아니었음을.

“제아무리 자유주에서 발광해도, 결국 캔자스의 하원은 우리 편이 선출되었습니다! 현명한 캔자스주민들이 올바른 판단을 내린 것이지요!”

막스와 제임스 가족이 마을 광장을 지나던 때였다.

연설자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모여든 자들에게 노예제의 정당성을 설파했다.

“광활한 서부를 개척하는 것은 우리의 명백한 운명이자 사명이요 의무입니다!

그리고 이런 피땀 흘려 이룩한 땅에서 개, 돼지와 같은 노예를 먹여 살리는데, 대체 이게 누구 덕분이란 말입니까!”

“깜둥이 옹호하는 놈들은 전부 죽여야 해!”

“옳소!”

메리는 듣기 싫은지 제임스의 팔을 끌어당겼다.

“그냥 가요.”

“어? 어···”

광장에 모인 자들은 연설자의 말에 박수치고, 노예들을 조롱하는데 기꺼이 동조했다.

제임스는 그 분위기에 위화감을 느꼈다.

‘4개월 뒤에 있을 주민 투표 후엔 이보다 더 심할 것 같은데···.’

이들의 광기가 충돌하면, 막스의 말마따나 피바람이 불 것이 빤하였다.

그만큼 주변은 온통 캔자스의 노예제 이야기뿐이었다.

제임스는 막스를 쳐다봤다.

그는 연설이 아닌 말을 탄 채 뒤에 다가오는 무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열 명의 무장한 남자들.

그중 선두에 있는 남자는 나비넥타이에 말쑥한 차림의 멋진 턱수염을 기른 청년이었다.

  캘리포니아 레인저스

“오오, 누군가 했더니 캔자스 로렌스의 개척자 사이러스 홀리데이씨가 아니오! 우리 미주리주는 이번 하원 투표 결과를 환영하는 바요!”

연설하던 자가 청년을 지목하며 소리치자 광장에 있던 이목이 그에게 쏠렸다.

홀리데이는 뭇 시선들을 담담히 받으며 대답했다.

“나는 일개 사업가일 뿐. 캔자스의 주민들이 내린 현명한 판단을 존중합니다.”

“당연히 그래야겠지요. 이로써 미주리와 캔자스는 함께 발전하게 될 거외다!”

“...... 그럼 이만.”

홀리데이는 모자를 벗어 숙이곤 말머리를 돌렸다. 대중의 시선을 벗어난 그는 미간을 찌푸리고, 입가를 씰룩거렸다.

그러다 문득 막스와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동양인이라는 호기심은 짧게 머물다 사라졌다.

홀리데이는 일행과 함께 광장을 벗어나고, 막스는 그의 뒷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며 기억을 뒤적거렸다.

사이러스 컬츠 홀리데이.

토피카를 개척해 캔자스 주도로 만든 자이며, 맨 처음 캔자스에 철도를 세운 자본가.

‘그리고 자유주를 지지하는 자.’

홀리데이가 인상을 구긴 건, 이번 투표 결과에 실망과 분노를 느껴서일 것이다.

‘철도왕 밴더빌트에 비견할 바는 아니지만, 나름 이름을 남긴 자다.’

막스는 사이러스 홀리데이의 가치를 따져봤다. 그에게 무엇을 얻어낼 수 있을지를.

직업, 돈, 연줄, 사업.

그리고.

‘레인저스와의 마찰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막스는 시간이 갈수록 캘리포니아 레인저스가 신경 쓰였다.

원래대로라면, 그들은 파이브 호아킨스 갱단을 잡아야 했고 현상금도 차지했을 것이다. 그런데 예기치 않게 모든 공을 막스가 가로챈 게 되었으니.

‘적당히 넘어가진 않을 거야.’

그렇다고 현상금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

놈들에게 금액 일부를 떼어주더라도, 일종의 보험은 필요했다.

‘어떻게 접근할까···.’

광장의 연설자는 홀리데이를 추켜세우는 척하면서 실제론 자유주를 옹호하는 그를 비아냥거렸다.

홀리데이 역시 그걸 알고 있을 것이다.

확실치는 않지만, 그는 현재 상황을 위험하게 여기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 열 명에 달하는 경호원을 데리고 다니는 걸 테고.

‘경호원이라···.’

제임스가 막스의 일자리까지 책임지진 않는다. 그가 일하는 대장간의 규모가 작은 것도 있고, 무엇보다 그 일에 종일 얽매일 생각이 없었다.

막스는 다른 일을 찾고 있었고, 그런 점에서 경호원도 첫 직업으론 나쁘지 않았다.

이름난 갱단을 처치한 건 좋은 이력이 되었으니 말이다.

다만 동양인인 자신이 먼저 다가갔다간,

대화를 꺼내는 것조차 힘들 수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제임스.

“사이러스 홀리데이에 관해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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