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0/360)

“아니, 처음 보는데.”

“캔자스에 정착할 생각이면, 저 남자와 가까워지는 게 좋겠어요.”

“딱 봐도 우리와는 다른 부류잖아. 동부 출신에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게 분명하다고.”

“그러니까 더더욱 가까워져야죠.”

언뜻 제임스를 위한 말 같지만, 정작 막스의 눈에서 열기가 피어났다.

그 부류에 속하겠다는 열망이랄까.

“미안하지만 저자와 다리 좀 놔줄 수 있을까요?”

“뭐 하려고?”

“일자리 얻어야죠. 그냥 한 마디만 던지면 돼요. 파이브 호아킨스 갱단을 잡은 총잡이가 있다고.”

어차피 캘리포니아 레인저스는 소문을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제임스가 아닌 막스 조가 갱단을 잡았다는 것을.

“홀리데이 밑에서 일하게?”

“제가 잘하는 걸 해야죠. 게다가 자본가와 일하면 여러모로 도움이 될 거에요.”

‘이 친구, 이거. 야망이 있어.’

제임스는 알면 알수록 막스의 성격을 짐작할 수가 없었다.

단순히 생존이 목적인 줄로 알았는데, 지금은 그 이상을 보는 것 같다.

18살이면 꿈과 이상을 좇을 나이.

하지만 막스는 노회한 실패한 사업가가 재기를 노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문득, 메리가 줄곧 떠든 말이 생각난다.

- 막스는 애늙은이에다 능구렁이에요.

농담이겠지만, 꽤 일리 있는 말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자네 일자리를 고민하던 참이었는데. 잘됐네.”

“그럼 지금 이럴 게 아니라. 당신은 홀리데이가 사라지기 전에 어서 말하고 와요.”

메리가 잘되었다며 제임스를 재촉했다.

“번거롭게 해서 죄송합니다.”

“죄송은 무슨. 갔다 올게.”

제임스는 곧바로 광장에서 멀어지는 홀리데이를 쫓아갔다.

*

- 홀리데이, 그 친구 성격이 화통하더군.

- 어땠는데요?

- 갱단 처치한 이야기를 해주니까, 꼭 만나고 싶다더라고. 그래서 내가 여관에 머물고 있으니까, 언제든지 오라고 했지.

그런데 금방 올 줄 알았던 홀리데이는 며칠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그동안 막스는 줄곧 마차에 머물렀다.

‘먹고 운동하면서 체력을 키워야지.’

아사 직전까지 갔던 이막산의 몸은 회복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애초에 제임스를 따라온 것도, 그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으니. 지루함 없이 몸을 만드는 데만 열중했다.

여느 때처럼 제임스가 음식을 가져오고,

막스는 홀리데이에 관해 물었다.

“어제는 보안관 사무실을 들락거렸다던데.”

“그래요?”

‘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걸까. 신중한 거야, 의심이 많은 거야. 아니면··· 설마 내 의도를 눈치챘나?’

보안관 사무실까지 들락거렸으면, 여러 정보를 수집했을 터. 조만간 현상금을 두고 캘리포니아 레인저스와 갈등이 생길 거라는 걸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똑똑하면 일할 맛 나겠네.’

희망을 품어보지만, 과연 홀리데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두고 볼 일이었다.

그렇게 캔자스시티에 머문 지 사흘째.

“네가 막스 조인가?”

갑자기 일단의 무리가 여관 뒤 헛간에 몰려왔다.

캘리포니아 레인저스였다.

‘왜 니들이 먼저 오냐···’

*

긴 곱슬머리에 콧수염을 기른 중년인.

퉁퉁한 몸의 남자는 강렬한 시선으로 막스를 노려본다.

‘눈깔을 확.’

딱 봐도 레인저스를 이끄는 대장. 그 첫인상은 그리 좋진 않았다.

“네가 막스 조냐고 물었다.”

“그렇습니다만.”

고작해야 동양인에 비쩍 마른 몸.

막스를 본 레인저스 대장은 혀를 끌끌 차며 입을 열었다.

“파이브 호아킨스 갱단이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쿨리 따위한테 뒈졌다 이거지.”

“그러게요.”

“놈. 그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냐!”

막스가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 대자, 소리친 놈이 오히려 식겁한 표정을 지었다.

레인저스 역시 움찔하며 한걸음 물러서고.

‘새끼들, 쫄긴.’

반응으로 봐선 소문을 듣고 온 게 확실했다. 말이 안 된다면서도 놈들의 몸은 정직했으니 말이다.

“마차에서 잤더니, 벌레가 많더라고요.”

막스가 허리를 긁적거리자, 레이전스 대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리곤 헛기침을 한 뒤에 말을 이었다.

“난 헤리 러브 대위다. 캘리포니아 레인저스를 이끌고 있지.”

‘이름 참. 잠깐··· 러브라고?’

무리에타, 쓰리 핑거드 잭, 그리고 러브···

‘생각났다. 마스크 오브 조로!’

극 중 조로는 죽은 무리에타의 형.

그리고 그는 러브에게 복수를 하는데···.

별로 중요한 건 아니지만 영화에서 악당이 러브라는 게 묘한 위화감이 느껴진다.

‘이 자식이 악당인가···.’

하지만 조로는 가상의 인물일 뿐, 실제로 무리에타에게 형은 없었다.

게다가 제임스 가족에게 한 짓을 보면 호아킨스 무리에타는 악당이 확실했고.

막스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때.

여관을 관리하는 바운서가 끼어들었다.

그는 건수라도 잡은 듯, 헤리 러브에게 물었다.

“이 동양인 놈이 문제라도 저질렀소?”

“당신이 끼어들 일이 아니네.”

헤리 러브가 코트를 젖히며 총을 보인다.

뒤에 서 있는 시커먼 남자들이 뿜어내는 살기 역시 단순한 위협이 아니었다.

‘캘리포니아 레인저스가 왜 여기까지 기어 들어왔지.’

바운서는 눈알을 비굴하게 굴리며 양손을 들어 올렸다.

“워워, 진정들 하쇼. 난 그냥 여관에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그런 거니까.”

“알았으면 빠져.”

바운서는 슬그머니 뒤로 이동했다.

하지만 갈 생각은 않고 구석에서 상황을 지켜봤다.

‘캘리포니아에서 왔으니, 저놈을 잡으러 온 것 같은데.’

하지만 이어진 헤리 러브의 말은 그의 예상을 빗나간 것이었다.

“막스 조, 오레곤 트레일 일대에 자네 이름이 쫙 퍼졌더군.”

“그렇습니까?”

“혼자서 파이브 호아킨스 갱단을 잡았다지?”

‘히익!’

바운서는 눈을 부릅뜨고 헛숨을 들이켰다.

이때 막스가 입을 열었다.

“행패를 부리길래 처리했죠.”

“그런데 왜 다른 자를 내세웠지? 현상금 처리 때문인가?”

“제가 아직 미국 시민이 아니거든요.”

“단순히 그 이유다?”

“다른 이유는 생각이 안 나는군요.”

헤리 러브의 눈이 가늘어졌다.

하지만 눈꼬리가 처져서인지 날카로움보단 졸린 것처럼 보였다.

그는 바운서를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언제까지 거기 있을 거야?”

다른 레인저스 역시 그를 노려봤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바운서는 냉큼 여관으로 몸을 피했다.

바운서가 사라지자, 헤리 러브는 다시 막스에게 말을 건넸다.

“파이브 호아킨스 갱단을 잡기 위해 레인저스가 만들어진 건 알고 있나?”

“글쎄요.”

“우리가 놈들을 쫓느라 개고생한 게 3개월이야. 두 놈을 처리하고 두목인 무리에타를 거의 잡았다 싶었을 때, 네놈이 그걸 가로챈 거지.”

“하필 저한테 온 게 문제였네요.”

“너는 그냥 당했어야 했다.”

병신같은 말을 뻔뻔스럽게도 내뱉는다.

“우리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었으니, 책임은 져야지.”

“다시 살릴 능력은 없습니다만.”

막스의 말에 헤리 러브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이 상황에서도 말장난하는 걸 보니, 보통 놈은 아니군. 더럽고 무식하기만한 캘리포니아의 중국놈들과는 확실히 달라 보여.”

“전 조선인이거든요.”

“조선이라··· 뭐, 어디서 왔든. 네놈은 사라져 줘야겠다.”

“그렇게 한다고 현상금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입꼬리를 올린 헤리 러브가 수하에게 눈짓을 준다. 그가 말 뒤에 매달린 보자기를 꺼내 풀자, 커다란 술병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병에는 무리에타의 머리와 손이 담겨 있었다.

‘어우, 깜짝이야···.’

이미 보안관 사무실에 들러 시신을 확인하고 목까지 땄다는 말인데.

“한 십 년 담가놓으면 술맛이 기가 막힐 것 같지 않나?”

헤리 러브는 술병을 보며 입맛까지 다셨다.

‘이거 미친 새끼네.’

막스는 짐짓 태연한 척 입을 열었다.

“그걸 보여준다고 캘리포니아 의회에서 현상금을 주겠습니까?”

“수혜자가 죽으면 시신을 수습한 우리가 가져가는 게 맞지. 아니면 대충 네놈과 비슷한 동양인 놈을 잡아 내세우던지.”

“그래서 나를 죽이겠다?”

“글쎄······ 과연 너만 죽일까?”

헤리 러브가 비릿한 조소를 짓는다.

제임스를 내세웠으니, 그 또한 살인 멸구의 대상이 되어 버린 건가.

놈의 처진 눈은 게으름이 아닌 탐욕과 욕망의 무게 탓이리라.

‘이 새끼, 이거. 조로에서 괜히 악당으로 나온 게 아니었구나.’

하지만 머리 담근 술병을 보여주며 시시콜콜 대화까지 나누는 이유를 보면, 자신을 죽이기 위해 온 건 아닐 터.

백주대낮에 찾아온 것부터 살인은 차후의 선택지일 가능성이 크다.

결국, 캘리포니아 레인저스가 원하는 건.

‘나랑 협상하겠다, 이거네.’

현상금 전부를 먹으면 놈들의 원한이 하늘을 찌를 것이다. 나중이면 모를까,

당장 적을 만드는 건 피해야 한다.

생각을 마친 막스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캘리포니아 의회가 바보도 아니고. 조사도 안 하고 현상금을 주겠습니까. 받는다 해도 기대에 못 미칠 텐데요.”

“네까짓 놈이 의회에 대해 뭘 안다고 지껄이지?”

“어느 나라든 돈 주는 건 인색한 법이죠. 책상머리에 앉아, 자기 돈도 아니면서 어떻게 하면 돈을 아낄까 궁리하는 자들 아닙니까?”

헤리 러브가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내심은 막스와 같은 생각이었다.

‘빌어먹을 의원 새끼들이긴 하지.’

막스가 재차 입을 열었다.

“뭐, 일단 제게 선택지를 주시죠.”

얼마를 원하니.

막스와 헤리 러브의 시선이 엉켰다.

“이해가 빠르군. 그럼 현상금을 포기해.”

“전부를?”

“네게 300달러를 주지.”

“고작 10분의 1? 욕심이 지나치네요.”

“우린 딸린 식구가 많거든.”

그 식구들이 지금은 무섭게 막스를 쏘아보고 있다.

“그냥 깔끔하게, 제가 5백 달러를 드리죠. 많이 양보했습니다.”

“양보?”

다들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다. 일부는 총을 만지작거리며 위협적으로 노려보기도 하고.

“말귀가 통하는 줄 알았는데, 멍청하군.”

“멍청하다뇨. 보다시피 전 잃을 게 없는 몸입니다.”

꼬리를 내리면 더욱더 물어뜯으려는 게 이런 놈들의 습성이다.

오늘만 살 것처럼, 곧 죽어도 직진 한다는 걸 보여야 한다.

“그런데 캘리포니아 레인저스가 미주리에서 살인을 저질러도 되는 겁니까?”

“동양인 죽여봐야 아무도 신경 안 써.”

“안 죽고 나를 죽일 자신은 있습니까?”

“뭐?”

코웃음 치는 헤리 러브에게, 막스는 음산하게 말을 내뱉었다.

“무리에타와 쓰리 핑거드 잭이 똥 싸다 죽었을까요? 내게 6발의 총알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상대로 싸우겠다?”

“6명은 데려갈 수 있습니다. 어디로?”

그러면서 막스는 슬쩍 눈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하늘로···”

레인저스 여기저기서 씨발거리며 탄성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아무도 섣불리 총을 뽑진 않았다.

  홀리데이

'새끼들 잔뜩 쫄았네.'

1대 20이라는 터무니없는 숫자.

그런데 그 1이 장내를 압도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캘리포니아 레인저스는 목격자들을 통해, 막스가 엄청난 속사수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실제로 무리에타의 이마 정중앙에 박힌 총알이 그걸 증명했으니.

6발의 총알이 자신에게 날아올 것 같은 건 기분 탓만이 아니었다.

‘그냥 확 쏴 버려? 하, 고 새끼 진짜.’

레인저스를 이끄는 수장, 헤리 러브는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강하게 나가자니 총알 하나는 자신에게 날아올 것 같고, 물러서자니 수하들에게 체면이 서질 않는다.

‘그래. 난 거래를 하러 온 거다.’

돈 때문에 왔지, 죽이려고 온 건 아니지 않은가.

자신을 합리화한 헤리 러브는 목소리만큼은 있어 보이게 말을 내뱉었다.

“지나친 자신감은 화를 부르는 법이야.”

“첫발은 무조건 당신 이마에 박힐 거요.”

‘하, 새끼. 눈치가 없어요.’

다시 협상이나 시작하자고.

헤리 러브는 입술을 꿈틀거리며 막스를 노려봤다.

잠시간 장내에 적막이 흘렀다.

팽팽하게 날 선 감정은 오로지 현상금을 향한 것. 협상의 유리한 조건을 얻기위한 신경전이 이어졌다.

'일단 쫄게 만들었으면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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