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360)

막스는 지금이야말로 적절한 협상 타이밍이라 생각했다.

‘마지노선은 천 달러.’

그동안 무리에타를 쫓느라 개고생한 캘리포니아 레인저스에 대한 위로금.

그리고 놈들에게 원한과 복수를 남기지 않을 합의금으로 천 달러가 적당했다.

‘지금 분위기면 가능하다.’

그렇게 막스가 헤리 러브와 거래를 시작하려 할 때였다.

“차라리 이러는 건 어떻겠습니까.”

누군가 불쑥 끼어들었다.

광장에서 봤던 홀리데이.

그가 무리를 이끌고 장내에 나타났다.

여관 뒤.

허름한 헛간 주위로 삼십 명의 무장한 남자들이 먹구름 잔뜩 낀 우중충한 기운을 마구 뿜어냈다.

*

“캘리포니아 레인저스 여러분은 천 달러, 여기 동양인 친구는 직접 잡았으니 2천 달러로 합의를 보시지요.”

“씨발, 이건 또 뭐야?”

홀리데이의 말에 레인저스에서 거친 욕설이 튀어나왔다.

반면, 막스의 입가엔 미소가 나타났다 빠르게 사라졌다.

‘미리 상황을 예상했다 이건가.’

합리적인 현상금 배분도 그렇고, 막스는 홀리데이가 마음에 들었다.

헤리 러브는 특유의 처진 눈으로 갑자기 끼어든 홀리데이를 쳐다봤다.

“누군지 모르지만, 장소를 보고 끼시게나.”

“제 소개가 늦었군요. 사이러스 칼츠 홀리데이, 펜실베니아에서 온 사업가입니다.”

캔자스가 아닌 동부의 펜실베니아를 강조한다. 촌 동네가 아닌, 동부의 제대로 된 사업가라는 걸 알리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헤리 러브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젊은 친구가 사업이나 할 것이지, 남 일에는 왜 끼어들지?”

“이 친구에게 관심이 있거든요.”

헤리 러브가 피식하며 막스를 가리킨다.

“곧 뒈질 놈에게 관심은 무슨.”

“혼자 안 죽는다니까 그러네.”

홀리데이는 물러서지 않는 막스를 묘한 눈으로 쳐다보곤, 이내 헤리 러브에게 말을 건넸다.

“일을 그렇게 처리하면 되겠습니까. 캘리포니아 의회에선 당신에게 절대 현상금을 주지 않을 겁니다.”

“다들 뭘 그렇게 의회에 잘 안다고 나불거리는지 모르겠군.”

홀리데이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주지사인 존 비글러씨, 의회 수장인 닐리 존슨, 존 맥듀갈씨 말고도 아는 분이야 꽤 많죠.”

“······”

“시체 가져가 봐야, 절대 돈 안 줍니다. 차라리 제가 당신들에게 돈을 지급하죠.”

헤리 러브의 눈이 반짝였다.

돈에 관해선 자본가들의 말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었으니 말이다.

“현상금 받는 시간도 절약하고, 이 자리에서 천 달러를 드리죠.”

“지금?”

“롸잇 나우.”

홀리데이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뒤에 있는 남자가 묵직한 돈 꾸러미를 내밀었다.

레인저스는 황당하면서도 탐욕스러운 눈으로 이를 쳐다봤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고, 헤리 러브가 입을 열었다.

“고작 운 좋은 동양인 하나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다니. 사업하다 곧 망하겠구만.”

“저도 손해 보는 짓은 안 합니다. 캘리포니아 의회에서 전부 받아낼 테니까

요. 만약을 위해서, 갱단 시체들과 함께 사진도 찍어놨으니 다른 생각은 하지 마십쇼.”

“흠···”

헤리 러브는 슬쩍 부하들을 쳐다봤다.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그들은 당장이라도 돈을 챙겨 자리를 뜨고 싶었다.

여기서 협상이 좌절되면, 남은 건 박 터지게 싸우는 것뿐.

막스와 홀리데이가 데려온 열 명을 상대로는 레인저스의 희생이 불가피했으니.

누구도 그렇게 되는 걸 원하지 않았다.

헤리 러브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인다.

“사업가라 그런지, 시원시원해서 좋구만.”

“거래는 확실히 해야죠.”

그렇게 돈 꾸러미가 옮겨지는 순간.

“잠깐. 나는 동의 안 했는데?”

자신을 배제하고 오고 가는 거래.

그걸 보고만 있으면 영락없는 호구 인증이아닌가.

막스가 어처구니없다며 혀를 차자, 지켜보는 레인저스는 더욱 기가 막혔다.

“저 새낀 혼자서 왜 저렇게 당당한 거야?”

잃을 게 없는 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행동이랄까. 막스는 오늘 하루만 사는 새끼들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반면, 레인저스는 잃을 게 있었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돈이 그들의 목숨을 소중하게 만들었다.

막스는 레인저스의 반응은 무시하고 홀리데이를 바라봤다.

그는 자신을 보호해 줄 유능한 총잡이가 필요했고, 그 때문에 돈까지 싸 들고 자신을 찾아왔다.

‘너도 곧 캔자스에 피바람이 분다는 걸 직감했구나.’

*

- 일단 이 일부터 끝내자고. 우리 동양인 친구에게도 나머지를 지급할 테니까.

홀리데이는 막스에겐 따로 현금을 지급하겠다며, 상황을 정리했다.

두둑하게 돈 꾸러미를 챙긴 헤리 러브는 막스를 노려보며 한 마디 내뱉었다.

“애송이. 다시 만나면 그땐 각오해라.”

“각오가 아니라, 그땐 웃으면서 한잔해요.”

“술? 어린놈이 건방지긴.”

막스가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가자, 헤리 러브와 레인저스는 또다시 한발을 물러선다. 본인들도 한심한지, 레인저스의 누군가는 자조 섞인 한탄을 쏟아냈다.

잠시 후. 헤리 러브는 욕하는 레인저스들을 이끌고 마을을 떠났다.

막스는 코웃음 치며 멀어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이제 제대로 대화해 볼까?”

레인저스가 보이지 않을 때 즈음.

홀리데이가 말을 건넸다.

그의 나이는 올해로 28.

막스와는 10살 차이가 났다.

“그래서 내 2천 달러는요?”

“내일 줄게. 은행에 돈이 없다는 데 난들 어떻게 하겠어. 근데, 우리말 잘하네.”

부유하게 자라서 그런가, 홀리데이는 우울한 조선의 이막산과 달리 티 없이 맑아 보였다.

“아무튼, 내 경호원 일을 하고 싶다고 그랬다면서?”

“예. 그런데···”

막스는 홀리데이 뒤를 힐끔 쳐다봤다.

“저분들로는 부족합니까?”

“내가 하는 일이 좀 많아야지. 사업체로 흩어지면 경호 인력이 부족하거든.”

“이유가 그게 다예요?”

“뭐··· 요새 분위기가 흉흉하기도 하고.”

막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조건은요?”

홀리데이가 얼굴을 들이밀며 막스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주급 10달러.”

“광부네요.”

“······ 원래 광부 몸값이 제일 비싸.”

“무슨 소리, 주지사가 더 많겠죠.”

“네가 주지사는 아니잖아?”

“광부도 아니죠.”

홀리데이는 쩝 소리와 함께 잠시 얼굴을 떨어트렸다. 하지만 곧 다시 들이밀었다.

“13달러. 그 이상은 안 돼. 동양인에다가 네 나이를 생각해야지.”

“알겠습니다. 대신.”

“또 뭔 조건이 붙어.”

“토요일과 일요일은 홀리데이···?”

홀리데이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그는 이내 헛웃음을 터트렸다.

“주일은 당연히 쉬는 거지만, 토요일까지 쉬는 건 오버 아니냐?”

“그걸 쉰다고 생각하면 안 되죠. 자기계발은 경호 임무의 수행능력을 높여줄 수 있거든요.”

“...... 좋아, 토요일은 오전 근무. 대신 주급에서 1달러 깎자.”

‘이 양반, 거래 잘하네.’

막스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동양인에게 이런 제안을 한 것도 나름 파격적이었다.

다만 홀리데이 뒤에 있는 자들에게 막스는 갑자기 튀어나온 동양인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표정은 담담하지만, 눈빛은 경멸과 시기가 깃들어 있었다.

‘얼른 몸을 만들어야겠다.’

홀리데이를 경호하는 일은 한 달 뒤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당연히 펄쩍 뛰었지만, 못 먹어서 영양실조 걸릴 것 같다고 핑계를 대었다.

“어휴. 아무튼, 내일 돈 들고 올 테니까 그때 보자고.”

“그럼 우선 천 달러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천 달러? 나중에 마음 바뀌면 어쩌려고?”

막스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대답하지 않았다. 홀리데이는 피식 웃고는 몸을 돌렸다.

*

“굳이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 있습니까?”

홀리데이 옆에 있던 남자가 물었다.

그는 멕시코 전쟁 당시 장교 출신으로 앨버트 앱스턴이란 이름의 사내였다.

“왜, 그가 동양인이라서요?”

“뭐, 그런 것도 있지만. 고작해야 말라 비틀어진 애송이 아닙니까.”

18살이 어린 나이는 아니지만, 막스의 외모는 확실히 더 어려 보이긴 했다.

“레인저스 대장, 헤리 러브에 대해 잘 알아요?”

“어느 정도는요.”

“총솜씨가 꽤 뛰어나다죠?”

“뭐, 나름 그 일대에선 유명한 인물이죠.”

“그런 자와 레인저스 19명을 눈앞에 두고 동양인 애송이는 전혀 밀리지 않더군요.”

앨버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홀리데이는 그를 넌지시 보며 말했다.

“파이브 호아킨스는 어설픈 갱단이 아니에요. 헤리 러브는 놈들을 세 번이나 놓치고, 심지어 부하 두 명까지 잃었습니다. 더구나 무리에타와 쓰리 핑거드잭의 총솜씨에 밀렸다고 하니, 내가 막스를 욕심내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

“참고로, 파이브 호아킨스가 탈취한 금이 무려 10만 달러어치입니다. 그래서인지 캘리포니아 의회에서 얼마 전 현상금을 3천에서 5천으로 올렸다는군요.”

“5천 달러··· 말입니까?”

“쉿, 이건 비밀이에요.”

홀리데이가 웃으며 입가에 검지를 가져다 대었다.

앨버트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여전히 비쩍 마른 동양인이 못마땅했지만, 그보다 홀리데이에 대해 새삼 깨닫는 게 있었다.

‘절대 손해 볼 짓은 안 한다는 거.’

오지랖 떤다고 생각했는데, 홀리데이는 앉아서 2천 달러를 번 것이다.

“레인저스가 이걸 알면 가만히 있을까요?”

“그 일은 막스가 해결해야 할 일이죠.”

“······.”

“왜 그런 눈으로 봅니까. 나는 내가 다 먹는다는 말은 안 했습니다만?”

*

무장한 남자들이 사라지고.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헛간 주변으로 적막이 찾아왔다.

‘아직까진 순조로운데.’

찜찜했던 캘리포니아 레인저스와 원만한 해결을 이루었고, 서부로 내던져진지 두 달 만에 돈과 직업도 얻게 되었다.

무기는 권총 세 자루, 라이플 두 자루, 보위 나이프가 세 자루. 지나친 무장이지만, 나중에 쓸 데가 있었다.

잠시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때.

막스가 갑자기 칼을 뽑아 들었다.

그리곤 한 방향을 향해 내던졌다.

쇄에에엑. 터어엉.

“헙!”

누군가 헛숨을 들이키고, 막스는 모서리 나무 벽에 꽂힌 칼을 향해 다가갔다.

“몰래 숨어있지 말고 나오쇼. 몸에 구멍 나기 전에.”

“······.”

머쓱한 얼굴로 나타난 자는 바운서.

막스는 그가 홀리데이가 왔을 때부터 숨어서 지켜보는 걸 알고 있었다.

“물값 받으러 왔습니까?”

“아, 아니. 전할 말이 있어서. 커흠.”

“전할 말?”

“그 뭐시냐. 오늘은 여관에 들어와서 자.”

“갑자기 룰이 바뀌었나요?”

“나야 오너가 시키는 대로 할 뿐이지.”

막스는 잠시 턱을 매만지며 생각했다.

급작스러운 태도 변화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따져봤다.

‘명성. 인맥. 아니면 혹시 나중에라도 깽판 칠지 몰라서 사전에 차단하는 건가?’

뭐가 됐든, 한 가지는 알 것 같다.

명성과 부를 쌓으면 인종차별 따윈 문제 되지 않다는 걸.

막스는 바운서의 위축된 눈을 응시했다.

“이왕이면 욕실 딸린 방으로 줘요.”

*

막스는 욕실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애새끼가 나이가 어려서 그런가. 수염이 없어, 왜.’

젊은 건 좋지만, 수염 한 올 없이 맨들맨들한 피부는 막스를 더욱 어려 보이게 했다.

그런데 또 나이에 안 맞는 의외의 것도 있었다.

‘그건 아주 튼실하구먼.’

굳이 따지면, 전생의 조유강보다 나았다.

막스는 거울 앞에서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곤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물이 담긴 욕조에 몸을 담그고.

얼마 안 되었음에도 때 구정물이 동동 떠다녔다.

‘그러고 보니까, 미국으로 건너온 뒤론 처음 목욕하는 거네.’

어쩌면 태어나서 처음일지도 모르겠다.

시냇물에 몸은 담갔을지언정, 이막산의 기억 어디에도 목욕하는 광경은 없었으니까.

한 시간 만에 욕조에서 나온 막스는 상쾌한 기분으로 새로 산 속옷과 옷을 걸쳤다.

제임스와 메리가 옷가게에서 사 온 것들이었다.

종아리까지 오는 부츠. 바지, 셔츠에 조끼까지 온통 검정 일색이다.

‘스타일이 나쁘진 않네.’

입던 옷이 죽은 놈 것이라 찝찝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그 옷을 알아볼 수도 있는 일. 흔적을 지울 겸 모조리 태워버렸다.

황야가 아닌 여관의 식당. 모처럼 막스는 지붕이 있는 곳에서 저녁을 먹었다.

“이렇게 같이 밥 먹으니까, 가족 같다.”

코닐은 기분이 좋은지 입을 가만 놔두질 않았다. 제임스와 메리도 막스가 여관에서 자게 된 걸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앞으론 떨어져서 살아야 해서 아쉽다. 나 막스한테 배우고 싶은 거 많았는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