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화 (12/360)

“뭘 배우고 싶은데?”

“총 쏘고 칼 다루는 거!”

“아직은 일러.”

“나도 벌써 13살이거든?”

“그래, 일단 좀 더 크자.”

코닐은 쳇 거리며 입을 오물거렸다.

막스는 부부를 보며 물었다.

“주말엔 놀러 가도 되죠?”

제임스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메리는 한술 더 뜬다.

“막스 방도 만들어 놓을 거야. 집이라고 생각하고 아무 때나 와.”

“또 눈물날라 그러네요.”

“흘리지도 않을 거면서, 뭘.”

막스가 처음 빵과 맥주 마실 때 눈시울을 붉힌 걸 두고 하는 말이었다.

막스는 슬쩍 매운 고추를 만지작거리다, 그냥 내려놓았다.

“그나저나, 현상금이 줄어서 미안해요.”

“그게 자네가 미안할 일인가? 오히려 우리가 미안하지.”

3천에서 2천으로 줄었음에도, 막스는 정확히 반을 고수했다.

“아무튼, 캘리포니아 레인저스와 그 정도에서 끝난 게 다행이야.”

텍사스 레인저스가 자경단으로서 꾸준히 유지되는 것과 달리 캘리포니아 레인저스는 일회성이다. 파이브 호아킨스 갱단의 임무를 끝으로 해산이 확정된 조직이었다.

그러니 일이 틀어졌으면 언제고 앙갚음을 할지 모르는 놈들이었다.

‘지금도 딱히 좋게 끝나진 않았지.’

다시 만날 때도 혼자라면, 총부터 쏘는 게 살길이었다.

다음 날.

홀리데이가 부하 한 명만 대동한 채 여관을 찾아왔다.

“캘리포니아 의회에 제출할 서류야. 여기 사인 좀 해줄래?”

막스는 서류를 자세히 훑어봤다.

갱단을 잡은 사건 경위부터 시작해서, 홀리데이 자신이 대리인으로서 현상금을 수령 한다는 내용이었다.

“너 글도 읽을 수 있어?”

“물론이죠.”

“대충 썼으면 큰일 날 뻔했네.”

홀리데이는 막스가 마음에 드는지 얼굴에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근데, 진짜 천 달러면 되는 거야?”

“예. 당장은 그거면 됩니다. 고마워요, 사장님.”

“사장?”

홀리데이가 웃으며 막스의 어깨를 두드렸다. 보통은 누구누구 씨를 붙이곤 했으니 말이다.

“우린 오늘까지 여기서 일을 보고, 내일 로렌스로 갈 생각이야. 너는?”

“제임스 가족과 리븐워스로 가야죠.”

“먼 거리는 아니네. 그럼 하루빨리 영양실조에서 벗어나고, 한 달 뒤에 보자고.”

여관을 나가려던 홀리데이는 뭔가 할 말이 생각난 듯, 몸을 돌렸다.

“리븐워스에 도착하거든 조심해. 로렌스도 그렇지만, 캔자스가 요새 문제가 많거든. 만약 노예제에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거든. 모른다고 해.”

“알겠습니다.”

막스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홀리데이는 잠시 그를 보더니 물었다.

“넌 노예제를 어떻게 생각해?”

“반대합니다.”

“에이, 그렇게 대답하면 안 된다니까. 절대 내색하면 안 된다고!”

홀리데이는 막스가 못 미더운지, 몇 번을 말하고서야 여관을 벗어났다.

*

캔자스시티에서 리븐워스까지는 대략 30마일 정도(48km) 거리.

멀진 않지만, 마차로 가려면 하루를 꼬박 가야 한다.

떠나기 전, 막스는 바운서에게 1달러 동전을 내밀었다.

‘언제 또 이 여관을 이용할지 모르니까.’

미주리 여관 중 동양인을 받아주는 곳이 이곳뿐이라, 1달러로 환심을 사두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제가 쓴 물값입니다.”

“...... 됐어. 그냥 한 소리였으니까.”

“그래요?”

막스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비록 하루였지만, 덕분에 목욕도 하고 잠도 푹 잘 수 있었습니다. 고마워요.”

막스는 웃으며 금화를 그의 손에 쥐어졌다.

바운서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1달러를 팁으로 주는 동양인이라니.’

자존심을 떠나, 이런 적이 없어 기이한 기분마저 들었다.

막스와 제임스 가족은 마차에 짐을 싣고 떠날 채비를 끝냈다.

“자, 그럼 출발!”

마차 안에 앉아있던 코닐이 소리쳤다.

제임스가 웃으며 말에게 채찍을 휘두르려 할 때였다.

때마침 그들 옆으로 마차 한 대와 대여섯 명의 남자들이 지나쳤다.

총으로 무장한 것도 그렇고, 흡사 갱단 같은 모습들이었다.

찍.

침을 뱉은 선두에 있던 남자가 날카로운 눈으로 막스 일행을 훑어본다.

뒤따르던 놈들도 마찬가지.

막스는 텐갤런 햇을 깊이 눌러 쓰고 있어 그들의 흥미는 끌지 못했지만, 일부는 메리를 음흉한 눈빛으로 힐끔거리기도 했다.

제임스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 이때, 여관에서 바운서가 황급히 뛰어나오며 소리쳤다.

“아직 계산 안 끝난 게 있어!”

“그게 무슨 소리예요?”

“사용한 비품들이 계산에 빠졌으니, 잠시 기다려 보쇼!”

제임스와 메리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 사이 옆을 지나던 무리는 저만치 앞서가고 있었다.

  리븐워스(Leavenworth)

막스에게 달려온 바운서는 숨을 몰아쉬며 입을 열었다.

“캔자스로 향하는 보더 러피안들이야. 만약 가는 길에 마주치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거든.”

보더 러피안(Border Ruffian).

일명 국경 깡패라는 미주리의 노예제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무장투쟁 세력.

최근 캔자스 하원 선거 또한 그들의 깽판으로 벌어진 일들이고, 앞으로는 더 많은 일을 벌일 집단이었다.

“가려거든 시간 차이를 두고 떠나.”

‘1달러의 효과인가.’

아니면 원래 그런 성격이거나.

막스는 바운서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보더 러피안이 최근 캔자스로 많이 넘어간다더니, 진짜였군요.”

“뼛속 깊이 노예제도 옹호자들이라, 네가 동양인인 걸 알면 그냥 넘어가지 않을걸.”

“불필요한 싸움은 피해야죠.”

그들이 캔자스 어느 마을로 이주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때문에 막스와 제임스 가족은 출발을 늦추기로 했다.

“그런데 왜 알려준 거예요?”

“뭐, 나도 보더 러피안이 싫거든.”

“의외네요. 당신도 노예제를 옹호하는 줄 알았는데.”

바운서는 입술을 꿈틀거렸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여관 주변에서 두어 시간을 보낸 뒤, 일행은 출발하기로 했다.

막스는 바운서에게 슬쩍 손을 흔들었다.

“나중에 또 봐요.”

“뭐, 그러던가.”

시큰둥한 얼굴을 한 바운서를 등 뒤로,

막스 일행은 마침내 리븐워스로 향했다.

*

서부의 개척마을은 워낙 소수가 모여 살기 때문에 동부의 대도시보다 규모는 작다.

하지만 시로 불리는 곳이 꽤 되었다.

그중 리븐워스(Leavenworth)는 인구 5천 명밖에 되지 않은 캔자스주에 편입된 최초의 도시였다.

이 당시의 마을 명은 공을 세우거나, 유명한 인물들의 이름에서 따오곤 했는데.

“리븐워스는 제1 용기병을 이끌고 저 미주리강을 따라 인디언들과 전쟁을 벌인 헨리 리븐워스 대령의 이름에서 따왔지. 그리고 도시 북쪽에는 포트 리븐워스가 있고.”

미주리강을 따라 이동하면서, 제임스는 가족이 살게 될 곳의 역사를 말해주었다.

하지만 그 역사란 불과 20년도 안 된 것이었다. 그나저나.

‘포트 리븐워스라...’

포트는 요새라는 뜻으로, 현대로 치면 군부대를 말한다.

포트 리븐워스는 서부개척을 위한 전진 기지로 미래에도 남아있는 미국 최초의 영구적인 군 시설이었다.

“근처에 조병창도 있습니까?”

“그런 건 주로 동부에 있고, 간단히 수리하는 곳이야 있지. 내가 일하는 대장간에서도 가끔 그 일을 하고 있다더군. 근데 그건 왜?”

“제가 가진 무기를 손볼 수 있나 해서요.”

“그 정도야 가능하겠지.”

멕시코 전쟁에서 무기 보급과 정비를 맡았던 제임스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하지만, 막스가 원하는 건 단순히 수리 차원이 아니다.

총알부터 시작해서 무기를 새롭게 만들 생각이었다.

다만, 어느 수준까지 무기를 만들어야 할지는 결정 내리지 못했다.

적당한 선에서 튜닝과 업그레이드를 할지.

혹은 시대를 개무시하고 파격적인 무기들을 만들어낼지는 꽤 고민되는 일이었다.

‘아직 급할 건 없지.’

가지고 있는 무기가 만족스럽진 않지만, 그렇다고 못 쓸 정도는 아니다.

무기에 관해서 막스는 여유를 두고 접근하기로 했다.

어둠이 짙게 깔릴 즈음.

일행은 미주리강 주변에 자리 잡은 리븐워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제임스는 멈추지 않고 강가에서 조금은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Blacksmith(대장간).

날은 어둡지만, 목조 건물 위에 새겨진 간판을 볼 수 있었다.

세 개의 작업장 건물.

뒤로 백여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엔 2층짜리 집과 헛간이 있었다.

땅도 남아돌겠다, 작업장 소음을 피하려 집과는 거리를 둔 것이다.

덜컥.

마차 소리에 집 문이 열리고 중년 부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뒤로는 아이들이 빼꼼히 제임스 일행을 쳐다보고 있었다.

“제임스, 이 친구! 드디어 도착했구만!”

조지 러셀은 제임스와 멕시코 전쟁을 함께 치른 동료이자 같은 아일랜드계 이민자.

그 역시 골드러시에 편승했지만, 쓰디쓴 실패를 맛본 끝에 이곳 리븐워스에 정착하게 되었다.

“조지, 그동안 잘 지냈습니까?”

“나야 자네가 오기만을 기다렸지. 자, 어서들어오···.”

막스를 발견한 조지의 시선에 당황함이 깃들었다. 부인과 아이들도 마찬가지.

어딜 가나 동양인은 설명이 필요한 존재다.

제임스는 그간의 일을 말하느라 집 밖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그래서 이 친구가 갱단을 처치했다고?”

“예. 인디언도 그렇고, 막스 덕분에 가족이 무사할 수 있었죠.”

그 갱단이 파이브 호아킨스라는 건 말하지 않았다. 굳이 현상금을 밝힐 필요는 없었으니 말이다.

사정을 들은 조지는 경계심을 지우고 입을 열었다.

“대단한 친구로군. 자, 일단 밤이 늦었으니 자네가 머물 집부터 안내하지.”

조지는 자신의 집과 3km 떨어진 곳에 제임스 가족이 살 집을 준비해두었다.

복층구조의 집 옆에는 작은 헛간과 용도를 모를 커다란 창고도 멀찌감치 지어져 있었다.

“원래는 목장을 하려고 만든 집이었네.”

“그래서 저쪽에 창고를 지어놨군요.”

뜬금없이 지어진 창고는 나중에 가보기로 하고, 메리는 신이 나는지 코닐의

손을 붙잡고 집을 둘러봤다.

“미안하지만, 부족한 게 많을 걸세.”

“그거야 살면서 차차 채우면 되죠.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마음에 드네요.”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구만.”

조지와 제임스는 훈훈한 분위기 속에 집을 둘러봤다. 막스는 그들 뒤를 묵묵히 따르면 바쁘게 시선을 움직였다.

막스는 여관이 아닌 일반 집을 처음 보는 거라 신기한 것이 많았다.

주로 박물관에서 봤던 것들과 유사했다.

전체적으로 집은 세 가족이 살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추위를 막기엔 꽤 비효율적인 철제 난로를 제외하면 말이다.

“자세한 건 내일 대화 나누기로 하세.”

조지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고. 막스는 마차에서 짐을 내리며 제임스에게 물었다.

“이 집이 공짜는 아니겠죠?”

“한 달에 2달러를 월세로 내던가, 아니면 100달러를 주고 사던가 해야겠지.”

“크기가 얼만 하죠?”

“50에이커.”

1에이커는 대한민국의 평(坪) 기준으로 대략 1,224평. 50에이커면, 무려 6만 평에 달하는 땅 크기다.

‘에이커당 2달러라니. 오지게 싸긴 싸구나.’

지금 사봐야 수십 년이 흘러야 차익을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땅값이 물보다 싼 시대.

그만큼 수요가 없다는 말이었다.

더구나 수년 뒤에는 링컨이 발의한 그 유명한 홈스테드 법(Homestead Act)이라는 자영 농지법이 실행된다.

몇몇 조건은 있지만, 영화에서 보던 말 타고 달려 깃발 꽂으면 곧 자신의 땅이 되는 그런 법이었다.

‘동부 대도시를 빼면, 부동산으로 돈 벌기는 쉽지 않겠네.’

물론, 앞으로 개발될 중심가의 땅을 매입하면 적어도 십 년 안에는 몇 배에 달하는 수익을 낼 수도 있다.

다만 막스가 대략적인 주요 도시를 알고 있다 해도, 그걸 제 때에 사고팔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시민권은커녕, 제대로 된 영주권도 없으니 말이다.

“이곳을 살 생각입니까?”

“여기 자네가 준 돈이 있잖아.”

마차의 바닥 아래 숨겨둔, 돈 꾸러미를 꺼내며 제임스가 미소를 지었다.

홀리데이에게 받은 현상금 천 달러였다.

그것 말고도, 갱단에게 빼앗은 현금이면 이 집과 땅을 사고도 남았다.

“이건 그렇다 쳐도, 앞으로 땅을 사거든 비싸더라도, 중심가에 사두세요.”

“살지도 않을 건데 굳이?”

“일종의 투자죠. 돈은 비료와 같아서, 뿌리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고 했거든요.”

“꽤 그럴듯한 말이군. 갑자기 큰돈이 들어와서 어떻게 할지 몰랐는데 자네 말을 새겨듣도록 하지.”

“그렇다고 아무거나 사면 큰일 납니다. 사기꾼이 득실거리니까요.”

제임스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투자할 일이 생기면 꼭 자네와 상의를 하겠네.”

“저를 믿으신다면, 그렇게 하세요.”

“당연히 믿지.”

제임스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껏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을 뿐.

‘먹고 살 궁리 외에 투자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는데.’

막스를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은 자신보다 월등히 나았다.

‘동양인인 게 아쉬워.’

제임스 자신이야 색안경은 벗었지만, 세상이 어디 그런가.

시민권조차 얻지 못하는 동양인의 신분은 분명 커다란 걸림돌이었다.

주류로 올라서는 데 한계가 있었다.

막스 또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