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화 (14/360)

그게 차라리 쉽긴 하지.

하지만 대장간이면 대장간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빛을 발하는 법.

“그런 무식한 방법 말고. 해결책을 줄까 하는데, 그럼 댁은 나한테 뭐 줄 거요?”

마틴의 눈동자가 미친 듯 요동쳤다.

흥분을 넘어선 분노였다.

불과 이틀 전만 해도 마틴은 이 대장간의 왕이었다. 그런데 제임스라는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려 하고 있다.

정작 제임스는 아무것도 한 게 없었지만, 그 존재가 마틴의 신경을 건드렸다.

저 혼자 위기의식에 함몰되고 있던 것이다.

게다가.

‘이젠 동양인 새끼까지 날 무시하네.’

주변을 훑어본 마틴은 들고 있던 장갑을 땅에 내팽개쳤다.

“씨발, 해결책이 있으면 앞으로 내가 니 동생이다, 이 노랭이 새끼야.”

“반대면 내가 댁 동생 되는 거고?”

“좆까고. 넌 내 노예가 되는 거지.”

흥분한 마틴의 말이 거칠어지고.

막스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똑같이 해야지. 지는 쪽이 노예가 되는 거로 갑시다. 여러분들이 증인입니다.”

다들 마틴의 눈치만 살핀다.

대장간의 오너는 조지가지만, 이상하게도 마틴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그 중심을 빼앗아 주마.’

대장간은 앞으로도 요긴하게 쓰일 터.

막스는 마틴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밀어붙였다.

“해결책, 즉 내기의 조건은 납을 사용하되 지금처럼 불량이 안 생기는 것. 그리고 총포 수리를 맡긴 의뢰인에게 합격을 얻어내는 것으로 합시다. 동의하죠?”

“개자식, 아주 주둥이만 살았구만.”

“일단 입에 문 걸레 좀 뱉읍시다.”

보이진 않지만, 마틴의 머리에선 김이 뿜어 나오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막스는 이죽거리며 말을 이었다.

“이제 해결책을 알려줄 테니 가서 준비물 좀 가져오쇼.”

“...... 네가 해 새끼야!”

“노예가 되려면 미리 적응해야 할 텐데.”

“이게 진짜 미쳤나!”

마틴은 안타깝게도 총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화를 내면서도 은근슬쩍 막스의 권총에 시선이 갔다.

‘총 있으면 이길 것 같지?’

막스는 코웃음 치며 조지에게 말을 건넸다.

“잠시 대장간 좀 살펴봐도 되죠?”

“어? 어, 물론이지.”

조지는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막스는 마틴을 지나쳐 대장간 안으로 들어갔다.

조지 러셀이 운영하는 대장간은 생활에 필요한 철제 기구를 만든다.

말발굽과 농기구, 개인이 집에서 사용할 법한 연장들이 주 상품들이었다.

막스는 완성품보다 만드는 장비들에 관심을 두었다.

모루는 기본이고, 재료를 작업대에 고정하는 바이스, 집게, 드리프트, 슬리터, 센터펀치, 비트는 도구와 끌까지.

마침 막스의 눈에 4개의 둥근 납 탄두를 동시에 만들 수 있는 집게처럼 생긴 주물이 들어왔다.

‘녹인 납을 넣고, 만들어진 뒤엔 사과 꼭지 따듯 튀어나온 부분만 따버리면···.’

탄두가 만들어진다. 이후 종이 카트리지로 화약을 담아 납 탄두를 끼우면 총알 하나가 완성된다.

이 얼마나 쉬운 공정인가.

‘근데 단점이 너무 많아.’

포트 리븐워스에서 가져온 소총처럼 납알탄은 문제가 많았다.

총기 발전은 장전속도의 역사.

극악의 장전속도와 불발률, 정확도 측면에서 보면 총알부터 만드는 게 이득이었다.

‘총보다 시급한 게 총알이지.’

갱단 잡을 때도 세 발째는 불발이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한 순간이지 않은가.

막스가 대장간을 찾아온 것도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이론만 알 뿐, 전생에 대장장이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막스는 콩알처럼 생긴 납알 탄 다섯 개를 작은 그릇에 주워 담았다.

이때 슬그머니 제임스가 다가와 나직이 묻는다.

“대체 어쩌려고 그래?”

“그냥 볼 수가 있어야죠. 근데 마틴인가 하는 놈은 왜 저렇게 날뛰어요? 정작 오너는 조지인데.”

제임스가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보기와 달리 실력이 뛰어나대. 어려운 작업은 혼자 다 한다고 하더라고. 저 친구 때문에, 군대에서 총도 맡겨오는 거고.”

“조지가 쩔쩔매는 이유가 있었네요.”

‘계획을 수정해야겠다.’

마틴이 뛰어난 대장장이라면, 깔아뭉개는 대신 관계를 좋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막스가 방향을 굳힐 때, 제임스가 물었다.

“근데 진짜 해결책이 있는 거야?”

“글쎄요.”

“어이구야.”

제임스의 얼굴에 불안감이 가득하다.

마틴의 성격으로 봐선, 기필코 노예로 만들려 할 게 빤했다.

하지만 제임스가 걱정하는 건, 여차하면 막스가 마틴을 죽여버릴 것 같아서였다.

‘노예가 안 되려면, 분명히 죽이겠지···.’

그러지 않길 바라지만, 마음 한구석엔 그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그만큼 마틴은 제임스에게도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으니.

찜찜함과 불안함이 뒤죽박죽일 때,

막스가 나직이 뭔가를 속삭였다.

내용은 구리 탄두의 단점이었다.

‘뜬금없이 그걸 왜 말해주는 거지?’

멍한 표정의 제임스를 두고 짧은 설명을 마친 막스는 대장간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기존의 납탄을 사람들에게 하나씩 건네주었다.

다들 의아한 얼굴로 막스의 말을 기다렸다.

“자, 일단 이 납탄 표면을 0.04인치 정도 갈아주세요.”

“0.04인치?”

대충 1미리 정도 된다.

현대식 그라인더는 당연히 없다.

대장간에 있는 둥근 천연 연삭숫돌을 손으로 돌려야 했다.

하지만 그것도 하나뿐, 조지가 그걸 사용하고 나머진 작은 숫돌을 사용해야 했다.

막스는 뒷짐 지고 있는 마틴에게도 납탄을 내밀었다.

“존나게 문질러 새끼야(한국말).”

“뭐? 너, 이새끼. 방금 욕한 것 같은데!”

“문지르세요. 0.04인치 씩 고르게.”

웃으며 말하는 게 더 얄밉다. 마틴은 씩씩거리면서도 납탄을 문질렀다.

‘너도 결과가 궁금하겠지.’

마틴은 꽤 정성스럽게 표면을 깎아냈다.

잠시 후, 겉면이 갈린 납탄이 만들어졌다. 기계보다 정밀성이 떨어졌지만, 구리를 표면에 입히기엔 적당했다.

“이제 구리를 녹여주세요.”

많이도 필요 없다. 손톱만큼이면 되었다.

구리를 녹여 주물에 붓고. 그 안에 납탄을 넣었다.

이렇게 납탄의 표면을 구리로 코팅하고.

막스는 지저분한 외관을 살짝 연마하여 완전한 원형으로 만들도록 했다.

납을 감싼 매끈한 구리 탄알이 모양을 갖추자 지켜보던 마틴의 얼굴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 이, 이게 뭐지?”

이름하여 탄두만 풀메탈재킷(FMJ).

막스는 마틴의 흔들리는 눈동자 앞에 구리 탄두를 가져다 대었다.

“자, 테스트 한번 해 볼까요?”

“......”

사람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막스가 리볼버에 총알 장전하는 걸 지켜봤다.

기름 먹인 카트리지에 기존의 납알 탄 하나, 그리고 다른 하나엔 구리 탄을 끼워 두 개의 총알을 만들었다. 그런 다음.

철컥.

장전 봉으로 탄을 약실에 밀어 넣고.

화려한 백스핀으로 리볼버를 홀스터에 꽂았다.

“우와···.”

누군가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이때.

‘동양인 건맨?!’

지금껏 존재감 없던 브렛이란 백인 청년이 소리쳤다.

“이제 생각났다! 당신 혹시, 파이브 호아킨스 갱단을 잡았다는 그 동양인 아니야!?”

“억!”

마찬가지로 존재감 없던 홀렌이 경악을 터트렸다.

가장 당황한 건 마틴.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오면서 갱단을 잡았다는 게, 그거였어?”

“제가 누군지 말 안 했었나요?”

조지의 질문에 제임스는 짐짓 시치미를 떼며 대답했다.

현상금 때문에 말 안 했는데, 벌써 소문이 퍼진 모양이다.

사실 막스와 제임스만 몰랐을 뿐, 잭슨 카운티에 있는 신문사에서 파이브 호아킨스 갱단 사건을 대문짝만하게 다루었었다.

그게 불과 사흘 전의 일이었다.

브렛이 호들갑을 떨고, 조지는 놀라운 시선으로 막스를 쳐다봤다.

“홀리데이 그 친구가 왜 자네를 고용했는지 알겠군.”

반면 마틴은 이 상황을 부정하고 싶었다.

‘운 좋게 잡았을 거야···. 고작 동양인 주제에 말이 되냐고.’

하지만 내심과 달리 손톱을 물어뜯으며 불안해하고 있었다.

한편, 막스의 입에서 작은 한숨이 흘러 나왔다. 그리고는 눈을 가늘게 떠 흐름을 끊은 브렛을 쳐다봤다.

무려 30년을 앞당긴 풀메탈재킷 탄두를 앞에 두고 다들 정신이 다른데 팔려있으니.

‘그깟 갱단이 뭐가 대수라고.’

짝짝.

“자자,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주위를 환기시킨 막스는 동전 두 개를 내밀었다.

“여기 이 1센트 동전들을 잘 보세요.”

사람들의 눈이 집중되고.

막스는 그 자리에서 동전 두 개를 하늘로 튕기듯 던졌다.

동시에.

탕!

한 발 같은 두 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두 개의 동전이 춤추듯 날아가고, 사람들의 시선은 땅에 떨어진 동전의 행방을 쫓았다.

*

마틴은 입을 쩍 벌린 채, 막스의 손바닥에 올려진 걸 쳐다봤다.

동전 하나는 찌그러졌고,

다른 하나는 구멍이 뚫려있다.

솔직히 허공에 뜬 동전 두 개를 총알로 맞추는 건 사기 아닌가.

구리 탄두도 놀랍지만, 막스의 총솜씨는 경악할 수준이었다.

갱단을 잡은 게 절대 우연이 아니라는 걸 증명한 셈이었다.

‘좆됐네···.’

마틴의 숨이 가빠지기 시작하고.

막스의 총알 강좌가 시작되었다.

“보다시피 총알 차이가 확연히 나타나죠?”

끄덕끄덕.

“납은 부딪히자마자 퍼지지만, 구리로 감싼 건 그 정도가 덜하죠. 그래서 관통력이 뛰어납니다. 당연히 총열과 총신에도 납은 들러붙지 않을 거고요.”

“구리로 덮었을 뿐인데 이런 차이가 나다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고작 한 발 쏘고 어떻게 그걸 증명하지···?”

마틴이 애써 부정하려 했다.

“더 이상 뭘 증명할까? 직접 맞아볼래?”

막스의 눈빛은 지금 당장이라도 쏠 기세였다. 머리가 있는 자라면 방금의 테스트만으로 결과를 짐작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마틴에겐 몇 가지 반박할 말들이 있었지만,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랬다간 진짜 막스에게 죽을 것 같았다.

더욱이.

“째깍, 째깍, 째깍, 째깍···.”

갑자기 막스가 마틴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미친놈처럼 이상한 소리를 내었다.

“.... 뭐, 뭐 하는 거야?”

“내 노예가 되기 전, 당신에게 남은 자유 시간.”

“!”

  부분 풀메탈재킷

마틴의 눈가에 급속도로 짙은 다크써클이 생겨나고. 여기에 쐐기를 박듯 막스가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땡.”

“?”

“자유 시간 끝났다. 목마르니까, 가서 물 가지고 와.”

“......”

순간 마틴의 얼굴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내기가 내기만으로 끝나지 않는 시대.

마틴의 숨이 거칠어지고, 부인과 자식들 얼굴까지 눈앞에 아른거렸다.

“두 번 말 안 한다. 가서 물.떠.와. 뒤지기 싫으면.”

막스의 눈빛에 담긴 살기.

마틴은 공포에 떠밀리듯 발걸음을 떼었다.

신박한 탄두를 봤음에도 장내엔 침묵만이 흘렀다.

제임스는 난처한 표정이고, 조지와 직원들의 눈빛엔 두려움이 깔려 있었다.

도시락 전해주러 온 막스가 대장간을 장악해 버린 것이다.

숨 막히는 고요 속.

마틴의 등 뒤를 노려보던 막스가 입을 열었다.

“방금 만든 구리 탄들에는 단점이 있는데, 혹시 아시는 분 있습니까? 10달러 겁니다.”

‘존나 뜬금없네.’

브렛과 홀렌은 자신들이 잘못 들은 게 아닌지 눈빛을 교환했다.

‘지금 상황에 이런 질문이 어울리냐고.’

하지만 막스는 어느 때보다 진지하다.

애초에 대장간을 찾은 목적이 제대로 쓸 총알을 만드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아쉽게도 서로 눈빛만 교환할 뿐,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다만 제임스는.

‘아까 막스가 알려준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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