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화 (15/360)

지금은 그걸 되묻고 있으니, 이해가 되질 않았다.

제임스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막스는 물을 가져온 마틴에게도 물었다.

“방금 질문 들었지? 알면 10달러에 플러스 알파로 노예에서 해방시켜 줄게.”

“지, 진짜?”

“새끼 좋아하긴.”

막스가 피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틴의 눈빛에 희망의 불씨가 살아났다.

막스의 말투와 욕 따윈 개의치 않았다.

“약속··· 지키는 거지?”

“노예 새끼가 건방지게 되묻긴. 아무튼, 여기 사람들이 증인이야. 난 약속은 칼 같이 지키거든.”

“조, 좋아.”

“그래서 알아?”

“...... 아니.”

“이 새끼가···.”

막스가 손을 뻗자, 마틴이 움찔하며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쫄긴. 물이나 내놔. 그리고 답 알 때까지 고개 들지 마, 새꺄.”

막스가 물을 마시려 할 때였다.

제임스가 슬그머니 손을 든다.

“흠흠. 내가 알 것 같은데···.”

이목이 쏠리자 제임스는 헛기침하며 말을 이었다.

“방금 만들었던 건, 구리로 덮는 게 균일하지 않아서 총알의 정확도가 떨어져. 그게 단점이지.”

“납탄보단 정확도가 높을 텐데요?”

“짧은 거리면 모를까, 라이플 사정거리를 생각하면 우리가 작업한 구리도금으로는 정확도가 떨어질 거야.”

막스는 짐짓 흥미롭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럼 내가 제시한 구리 탄두가 해결책이 아닌 거네요?”

“그건 아니지. 도금 방법만 개선하면, 구리 탄두는 확실히 납탄보다 좋거든.”

짝짝.

“정답이에요. 제임스!”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은 얼굴의 제임스.

그리고 사람들은 그의 말을 곱씹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추셨으니까, 10달러 드리겠습니다.”

“와···. 진짜 주는 거야?”

참고로 브렛의 일주일 주급은 6달러.

그는 부러운 눈으로 제임스를 쳐다봤다.

하지만 정작 제임스는 고개를 저었다.

“10달러는 됐어. 대신 말야.”

제임스는 마틴을 쳐다봤다. 그는 여전히 막스의 지시대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마틴을 이제 그만 놔줬으면 좋겠는데.”

번쩍. 마틴이 고개를 쳐들었다.

놀라움과 감동에 눈가마저 파르르 떨었다.

장난이 장난 같지 않은 시대라 가능한 반응이었다.

“앞으로 나와 함께 일할 친구야. 내 얼굴 봐서라도 막스 자네가 이해해줘.”

“흠.”

막스는 마틴을 바라보며 갈등했다.

아니 갈등하는 척했다.

그러다 이내 선심 쓰듯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 하시면, 뭐.”

막스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마틴은 입가를 꿈틀거리며 울먹거렸다. 그리곤 촉촉한 눈으로 제임스를 쳐다봤다.

‘다시는 깐족거리지 않겠지.’

막스가 깔아준 판을 제임스는 눈치껏 잘 이용했다.

이로써 마틴과의 갈등은 봉합되었고.

이젠 진짜 원하는 걸 얻어야 할 때다.

막스는 마틴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주위를 환기했다.

짝짝.

“자, 그럼 제임스의 말이 맞는지 확인해 볼까요?”

불균형한 구리도금의 단점은 쏴보면 알 수 있다.

구리 탄두 네 개를 장전하고, 20m가량 떨어진 곳에 나무토막 4개를 세워두었다.

막스는 총 네 발을 신중하게 발사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적중한 건 단 한 개였다.

동전 두 개를 맞춘 건 거리가 가까워서일 뿐, 먼 거리에선 구리 탄의 정확도가 엉망이었다.

“내 사격 솜씨를 탓하진 않겠죠?”

다들 고개를 가로저었다.

누구도 막스의 실력을 의심하지 않았다.

“보다시피, 결과가 이렇네요. 제임스가 정확히 맞춘 거죠. 그래서 말인데 이런 탄두를 만들어 볼까 합니다.”

막스는 땅에다가 뭔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전기도금의 개념이 보급되지 않은 시기라, 둥근 탄두의 균일한 도금은 꽤 어려운 작업이었다.

그 때문에 막스는 바닥이 평편한 원추형의 미니에 탄을 보여주었다. 라이플에 주로 사용하지만, 권총 탄에도 유효한 탄이니까.

“바닥까지 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 나머지는 고르게 도금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막스가 사람들을 둘러보며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가장 먼저 만드신 분에게 특허 지분 10%를 드리겠습니다.”

“트, 특허 지분!?”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다.

무법지대인 서부라도, 특허에 대한 개념은 박혀 있었다. 그게 돈이 된다는 것

도 알고 있었고.

기억이 맞는다면, 금속제 탄피의 특허는 스미스 앤 웨슨이 갖고 있을 터.

이런 이유로 그 유명한 콜트 회사는 특허가 끝나는 1872년까지 금속 탄피를 만들지 못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탄피 이야기일 뿐.

탄두의 특허는 아직 없다고 봐야 했다.

물론 확실치는 않았다.

‘아님 말고.’

중요한 건 사람들의 열정을 끌어내는 것.

내친김에 막스는 조지를 보며 말했다.

“특허 지분은 제가 7, 대장간이 2, 그리고 나머지 1은 제가 말한 구리 탄두를 만든 분에게 드리겠습니다.”

조지의 눈빛에 잔잔한 물결이 일었다.

대장간에서 만들었으니 어느 정도 이익은 예상했다. 하지만 특허 지분은 또다른 이야기가 아닌가.

마치 금광이라도 얻은 기분이었다.

한편, 막스는 마틴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는 관계회복에 힘써야 할 때였다.

“마틴도 잘 한번 생각해 봐요. 앞으로 잘 지내봅시다.”

“나, 나야 말로. 하하···.”

악수하는 모습을 본 조지는 제임스의 어깨를 두드렸다. 조지 역시 마틴의 콧대가 꺾인 걸 내심 기뻐하고 있었다.

브렛, 홀렌은 아무 말도 없었다.

그들은 구리 탄알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머리를 쥐어짜고 있었다.

‘나머지 특허 지분은 내 거다!’

1를 향한 갈망.

그러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

당장 해야 할 일은 안 하고 죄다 생각하는 로댕이 되어버렸다.

“오늘 만들 거 없어요? 일은 해야죠?”

“어? 어. 해야지···.”

막스의 말에 하나둘 연장을 들기 시작했다.

‘앞으로 이 대장간을 무기제조 회사로 만드는 것도 나쁘진 않겠네.’

어찌어찌 대장간의 중심이 되는 데는 일단 성공한 것 같다.

막스는 조지와 특허 관련 이야기를 나누며 그의 마음을 다시 한번 흔들어놓았다.

*

터벅터벅 말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란히 가던 제임스가 말을 건넸다.

“덕분에 마틴하고 관계가 좋아졌어.”

“별말씀을요. 같이 일하는 동료가 거지 같으면 그것만큼 짜증 나는 게 없죠.”

전생에서도 하루에 몇 번씩이나 죽이고 싶은 동료들이 있었다.

군대와 용병이라는 폐쇄된 공간.

동료 간의 갈등이 얼마나 스트레스인지 막스는 잘 알고 있었다.

“그 총알 말이야.”

“예.”

“막스 자네가 쓰려고 만드는 거지? 그래서 대장간에 찾아온 거고.”

“겸사겸사죠.”

싸가지없는 마틴을 바닥까지 끌어내리고, 특허 지분으로 대장간 직원들의 혼을 쏙 빼놓았다.

그리고 단 하루 만에 대장간의 중심이 되어버렸으니.

‘전부 의도한 거라면, 진짜 치밀한 건데.’

만약 불량 소총과 마틴을 보고 즉흥으로 계획했다면, 그건 더 대단한 일이었다.

문득 제임스는 막스를 쳐다보며 말했다.

“자넨 꿈이 뭐야?”

“꿈이요?”

“놀라지 않을 테니까, 말해 봐.”

“일단 집에 가서 고기 먹는 게 꿈입니다.”

“놀랍구만.”

제임스는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눈앞에 있는 현실에 충실하겠다.’라는 답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하루하루가 얼마나 거대해질지, 자못 기대되었다.

“자네가 원하는 총알. 내가 최선을 다해서 만들어 볼게. 그리고 다른 것도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하고.”

“신경 써주셔서 감사해요.”

“내가 할 말을 자네가 하면 쓰나.”

평원을 붉게 수놓은 석양.

말 두 필이 느긋한 속도로 집을 향해 가고 있었다.

*

제임스의 집에서 머무는 한 달.

구리 탄두와는 별개로, 막스는 창고에서 몸을 단련했다.

여기저기 주워온 나무로 운동 기구도 만들고 특공무술을 갈고닦기 위해 목인장도 만들었다.

전생의 조유강은 특전사에선 특공무술을, 용병 때는 시스테마와 크라브 마가,

칼리 아르니스나 실랏과 같은 실전 무술에도 심취했었다.

나라마다 특성이 있지만, 근본적인 목표는 효과적인 살인 및 회피와 방어.

막스는 그런 기술들을 몸에 배도록 훈련하며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엔가, 퇴근하던 제임스가 창고에 들렀다.

“헙! 헙!”

목인장을 칼로 대가리부터 발끝까지 슥슥 써는 모습을 보며, 제임스가 소리쳤다.

“대체, 자네 꿈이 뭐냐고!”

“저녁에 고기 먹는 겁니다!”

스걱, 스걱.

“왜 난 자네가 나라를 전복시킬 것처럼 보이지.”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얼굴의 땀을 닦으며 막스가 물었다.

“그런데 어쩐 일이세요?”

“드디어 탄을 만들었거든.”

“누가 만들었어요?”

“모두가 합심해서지. 뉴 마틴도 한몫했고.”

싸가지없는 마틴은 사라지고, 인간다운 모습으로 뉴 마틴이 돌아왔단다.

자신도 그 이름으로 불리는 걸 좋아한다고 하니, 확실히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이었다.

“특허 지분은 함께 나누기로 했어. 내가 제안했더니, 다들 안도의 한숨을 쉬더군.”

막스는 웃으며 제임스가 내민 포켓을 받아들었다. 안에는 구리로 도금된 탄알 30개가 들어있었다.

“표면이 생각보다 매끄럽네요.”

막스는 기존 납탄을 구리 탄으로 대체한 뒤, 평소 연습하던 20m 멀리에 떨어진 손바닥 크기의 나무토막을 향해 발사했다.

탕!

총성이 울릴 때마다 나무토막이 튕겨 나간다. 여섯 발 모두 표적에 정확히 들어갔다.

“이거면 충분하겠네요. 포트 리븐워스에는 언제 보여줄 거죠?”

“조만간 사령관이 바뀐대.”

현재 사령관은 제4포병대의 FE 헌트 대위.

계급에서 보듯, 총알이 아무리 좋아도 결정권이 없는 자였다.

“대신 1월에 부임하는 사령관은 대령이라니까. 조지는 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게 낫다고 그러더라고.”

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군대에서 이걸 채택하든 안 하든 크게 상관은 없다.

‘그래도 궁금하긴 하네.’

구리 탄두에 열광할지, 아니면 시큰둥할지.

예상하기가 힘들었다.

제임스가 돌아가고.

창고에 홀로 남은 막스는 탄두 앞부분에 날카로운 송곳으로 이니셜을 새겨넣었다.

MJ.

이 행동에도 나름의 의미는 있었다.

납탄의 경우, 맞으면 안에서 모양이 퍼지기 때문에 맞으면 엄청난 고통이 따르지만 손에 쥔 구리 탄은 몸을 관통해 버린다.

대인 억제력은 있지만, 치명적이지 않다는 게 풀메탈재킷의 단점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탄두 앞부분에 흠집을 내면, 할로우 포인트와 유사한

JSP(Jacketed Soft Point) 탄이 된다.

목표물에 적중 시, 버섯처럼 앞부분이 갈라지며 납탄과 같은 데미지를 줄 수 있었다.

‘일단 탄두는 만들었고.’

아직은 부분 풀메탈재킷 총알.

앞으로 탄피는 황동으로, 건파우더인 흑색화약을 무연화약으로 바꾸는 작업이 남았다. 하지만 그건 시기를 가늠해 진행할 생각이다.

아이디어만으로 뚝딱 만드는 것도 있겠지만, 발전이란 그 시대의 기술과 상황에 맞춰가게 마련이지 않은가.

당장은 납탄으로 인해 생기는 총기 불량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그날 저녁.

막스는 메리가 차려준 음식을 오물거리며 생각했다.

‘총 다섯 가지의 메뉴에서 바뀌질 않아···.’

전투 식량도 종류가 다양한데, 메리의 메뉴는 다섯 가지가 전부였다.

선택 불가능한 식단의 독재화.

제임스가 전복 얘기를 해서 그런가.

‘갑자기 전복이 먹고 싶네.’

한식은 포기했지만, 가끔 이럴 때면 눈앞의 음식이 쓰레기로 보일 때가 있었다.

“시내 언제 가요?”

“내일. 왜, 막스도 갈래?”

“식료품점 겁나 큰 데 있으면, 같이 가요.”

“훗, 뭐야. 직접 요리라도 하게? 그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거든?”

‘겁나 쉬워 보이는데···.’

“아무튼, 뭐가 있는지 궁금해서요. 아직 시내는 한 번도 안 가봤잖아요.”

다음 날, 제임스 가족과 막스는 마차를 끌고 리븐워스의 중심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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