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화 (16/360)

그리고 이날 막스는 자신이 서부 역사의 한복판에 서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전생에 꿈꿔온 웨스트 라이프.

그 본격적인 시작은 한 레전드와의 만남이었다.

  MJ

덜커덩, 덜커덩.

리븐워스 시내로 가는 길.

코닐은 마차에 팔을 걸친 채 뒤따라오는 막스에게 말을 건넸다.

“막스, 오늘 뭘 살 거야?”

“먹을 거.”

“그리고 또?”

“먹을 거.”

“참 내.”

코닐은 입을 삐죽 내밀고, 막스는 웃으며 말했다.

“먹어야 체력이 튼튼해지지. 너도 음식 가리지 말고 닥치는 대로 먹으라고.”

“엄마랑 똑같은 말 하네. 어휴....!”

“당연하지, 그게 맞는 말이니까.”

마부석에 있던 메리가 뒤를 돌아 눈을 흘겼다.

말을 탄 막스는 주변 풍경을 바라봤다.

허허벌판의 평야에서 시내로 갈수록 목조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개척마을의 시작은 단순하다.

가장 처음 생기는 게 잡화점, 선술집.

그중 잡화점엔 식자재부터 옷, 농기구, 무기, 천막까지 취급하고 마을의 규모가 커지면, 세분화가 이루어진다.

리븐워스의 경우 식품점, 포목점, 철물점, 정육점 등으로 잡화점들이 쪼개져 나름 규모가 큰 마을에 속했다.

메인 스트리트의 동쪽에 다다를 즘.

제임스가 한쪽을 가리켰다.

“저기가 조지가 운영하는 철물점이야.”

자신의 이름 ‘조지 러셀’이 대문짝만하게 박힌 리븐워스 최초의 철물점.

대장간에서 만든 물건들이 진열되고, 손님들의 주문제작 의뢰도 받는 곳이었다.

마침 문이 열리며 그 안에서 조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누구야. 가족이 총출동 했구만.”

“이것저것 살 게 많네요.”

“마침 잘됐어. 혹시, 가는 길에 나 좀 떨궈줄 수 있나?”

“물론이죠. 어디 가는 데요?”

“리블리 상점. 길 따라 쭉 가면 솔트 크릭 벨리에 있네.”

메리가 마부석에 자리를 내주고, 그녀는 막스와 코닐이 있는 짐칸에 올라탔다.

“번거롭게 해서 미안해요, 메리.”

“별말씀을. 신경 쓰지 마세요.”

겸연쩍은 얼굴을 한 조지는 이내 막스를 보며 입을 열었다.

“혹시 총알 쏴 봤어?”

“기간도 짧은데, 잘 만들어졌던데요.”

“그래? 마음 같아선 포트 리븐워스에 당장이라도 보여주고 싶은데 말야.”

“사령관이 바뀐다면서요.”

“죄다 일 년 짜리거든.”

구리 탄두의 성공을 확신한 조지는 하루빨리 군대의 반응을 보고 싶었다.

조지가 총알에 대해 열을 올린 지 얼마 안 되어 일행은 리블리 상점에 도착했다.

Rively’s Store(Trading post).

간판에 흥미를 느낀 막스가 조지에게 물었다.

“여긴 뭐 하는 곳이에요?”

“여길 몰라? 포트 라일리 로드와 오레곤 트레일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인데?”

“모릅니다.”

“평상시엔 물건 거래하는 교역소고, 가끔은 회의나 연설하는 장소로도 쓰여. 몇 개월 전엔 이곳에서 캔자스 입주자들 회의가 처음 열렸거든.”

“오늘은요?”

“내 친구가 오늘 연설을 하기로 했어. 같이 가볼래?”

“전혀요.”

교역소는 흥미롭지만, 연설은 관심 밖이다.

막스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입을 닫았다. 이때 제임스가 조지에게 물었다.

“친구분이 무슨 연설을 하는데요?”

“아이작 코디라고, 노예 폐지 운동에 아주 적극적인 친구야.”

“요즘은 민감한 시기 아닙니까?”

“그러니까 가보는 거지. 노예 지지자들이 모인 곳에서 연설하고 있거든.”

‘정신이 가출하셨구만···. 근데, 아이작 코디라고?’

어디서 들어봤더라.

막스의 눈이 반짝거린다. 그리고 기억을 들춰낸 끝에 한 가지 정보에 도달했다.

‘이건 그냥 못 넘어가지.’

“우리도 가서 구경하죠, 제임스.”

“어? 그러지 뭐.”

갑자기 막스가 관심을 보이자, 제임스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참. 교역소 안에 총기는 가지고 들어갈 수 없네.”

조지의 말에 막스는 짧은 고민 끝에 총을 마차 짐칸에 감춰두었다.

일행은 조지와 마차에서 내리고 상점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이미 그 안은 조지가 걱정했던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빠각.

털썩.

한 남자가 쓰러지며 탁자가 부서졌다.

조지의 친구라는 아이작 코디였다.

주변으로는 그를 죽이려는 자들과 말리는 자들이 뒤섞여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당신은 코닐과 마차에 있는 게 좋겠어.”

“제임스도 마차에 있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흠.”

만약 자신이 이 사건에 끼어들면 제임스 가족에게 좋을 것이 없었다.

막스는 그들 전부를 마차로 돌려보내고는 혀를 차며 장내를 지켜봤다.

‘아주 개판이구만.’

“짐승은 흑인들이 아닌, 바로 네놈들이야!”

“그 주둥아리는 무덤에서나 나불거리라고. 이 개자식아!”

“네깟 놈이 뭔데 깜둥이들에게 자유를 주라마라 지껄이는 거야!”

“다들 진정들 하게! 남의 가게에서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

상점 주인 RP 리블리는 싸움을 말리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피 흘리는 어깨를 감싸며 아이작은 바닥을 기어 벗어나려 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조지는 황급히 아이작에게 다가갔다.

“조지! 당신도 저 꼴 당하고 싶지 않으면, 이 일에 빠져. 평소에도 저 자식과 어울리는 거 눈여겨보고 있었으니까.”

“아무리 서로 생각이 달라도 그렇지. 이건 아니지 않은가!”

“생각은 무슨. 아이작의 머릿속엔 똥만 가득 찼다고! 노예해방이니 하는 개똥같은 말은 다시는 못 하게 만들어 주겠어!”

이때 한 놈이 막 일어선 아이작을 죽이려 달려든다.

손에 들린 칼끝은 복부를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때,

막스가 그사이를 파고들었다.

빠각.

얼굴을 제대로 맞은 놈은 달려든 속도보다 더 빠르게 뒤로 튕겨 나갔다.

“끄윽···.”

“뭐, 뭐야 저 새낀!?”

동료들이 분분히 소리치며 칼을 뽑아 든다.

장내의 소란을 단번에 잠재운 막스 조.

그는 아이작을 막아서서는 담담하게 상대를 쳐다봤다.

그 모습에 분노가 치민 한 놈이 칼을 들고 달려들었다.

“동양인 주제에 감히!”

‘총이 없으니 죄다 칼이로군.’

막스도 장단에 맞춰주기로 했다.

그 역시 보위 나이프를 빼 들어 상대를 맞이했다.

“죽어라, 이 쿨리 새끼야!”

찔러오는 칼끝을 슬쩍 흘리고, 상대의 팔목을 잡아끌었다. 중심을 잃은 놈이 끌려오고 막스는 순식간에 뒤를 점유하며 머리카락을 잡아챘다.

“흡!”

상대가 헛숨을 들이킬 땐 뒤에서 다리를 걷어찼다. 머리카락이 잡힌 놈은 순식간에 막스의 손에 매달린 채 무릎을 꿇고.

사람들은 넋을 잃고 이 광경을 바라봤다.

막스는 허리를 숙이곤, 놈의 목에 칼을 가져다 대며 속삭였다.

“이제 어쩔래.”

“윽···.”

추운 겨울. 칼날의 한기가 고스란히 목을 통해 전해진다. 공포를 느낀 놈의 입에서 비굴함이 흘러나왔다.

“사, 살려주게. 보는 눈이 이렇게 많은데 이러면 쓰겠나···.”

‘황야로 나가야 마음대로 할 수 있으려나.’

비교적 큰 마을에선 사람을 죽이기가 쉽지 않다.

현상금 받는 절차도 그렇고.

총기 소지 때문에 칼 들고 싸운 부분에선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걸 실감한다.

‘아니면 본격적인 총잡이 시대가 오지 않아서 그런가.’

막스는 담담한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분노 혹은 호기심.

일부는 신문기사를 보았는지, 막스를 보며 속닥거렸다.

그게 무엇이든,

막스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조지의 친구이자 사건의 발단이 된 아이작 코디.

정확히는 옆에 울먹거리며 서 있는 작은 꼬마 아이였다.

‘저 아이가 버팔로...’

탕!

돌연 상점 밖에서 들려온 총성이 막스의 생각을 정지시켰다.

그리고 중년의 남자가 상점 안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가슴에 배지를 단 그는 리븐워스의 임시 보안관 그린 D. 토드라는 자였다.

“동양인 친구는 그 칼부터 치우지그래.”

중후한 목소리에 모나지 않은 말투.

막스는 허리를 펴며 목에 댄 칼을 천천히 거둬들였다. 목을 매만지던 놈은 막스를 노려보며 바닥에 침을 뱉었다.

조금 전까지 목숨을 구걸했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집회는 끝났으니 다들 해산하십시오! 더는 소란 피우면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보안관 토드의 말에 사람들이 하나둘 상점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상황이 종료되자, 막스의 눈은 다시금 아이작 옆에 있는 아이를 향했다.

‘저 아이가 바로···.’

“이봐 동양인! 넌 어느 쪽이야?”

‘거참!’

막스는 미간을 찌푸리며, 질문한 자를 쳐다봤다. 그런데 비단 한 명만이 아니다.

이곳에 모인 대부분이 노예 지지자들.

그들의 머릿속엔 동양인이 누구인지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자신들의 편을 구분 짓기 위해 막스의 입을 주목했다.

아이작을 돕긴 했으나, 그걸로는 성향을 단정 짓기 힘들다. 막스의 대답에 따라 앞으로의 향방이 결정되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중립입니다만.”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한 남자가 비아냥거리며 소리쳤다.

“개소리하네. 그게 말이 돼?”

“왜 안 됩니까. 난 노예도 아니고 부려본 적이 없어서 어느 쪽도 상관없는데요.”

“흥. 주관이 없는 놈이로군.”

“놈?”

막스가 남자를 노려보자 움찔한 반응을 보였다.

이들은 먹고살기 위해 리븐워스에 정착한 평범한 이주민들. 자신들의 신념을 부정한 아이작을 향해 분노를 표출한 것뿐이었다.

“아이작에겐 살 물건이 필요해서 그런거고, 도와준 거에 다른 뜻은 없습니다.”

기억에 따르면 아이작은 상인이다.

뭘 파는지 모르지만, 그를 구한 의미를 왜곡하지 않기 위해 막스는 분명한 선을 그었다.

막스의 가라앉은 눈빛을 본 사람들은 남자의 팔을 끌어당겼다.

입장이 불분명하면, 공격할 명분도 없다.

게다가 상대는 유명한 갱단을 처치한 총잡이. 시비를 걸어봐야 얻을 게 없었다.

“퉷. 아이작! 이딴 거나 읽으니까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운 좋게 살았어도, 결국 네놈은 죽게 될 거다!”

아이작에게 화풀이 한 남자는 소심하게 들고 있던 책을 막스 앞 바닥에 집어던졌다.

그리곤 일행들과 상점 밖으로 사라졌다.

‘칼침 놓고 유유히 나가는 걸 보면, 무법지대는 맞는 것 같네.’

고개를 젓던 막스는 허리를 숙여 남자가 집어 던진 누더기가 된 책을 집어 들었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Uncle Tom's Cabin).

노예제 갈등을 수면 위로 끌어 올려 폐지론자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소설.

그리고 미국 최초의 밀리언셀러 소설.

아이작은 이 책을 주 내용으로 노예제 폐지를 연설한 것 같다.

그것도 노예제를 지지하는 자들 앞에서···.

교회 예배 도중 스님이 나타나 법설을 설파했으니 그들의 반응도 이해는 간다.

‘간이 부은 건가.’

아니면 그만큼 신념이 투철하던가.

막스는 관심 없다는 듯 들고 있던 책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그리고 이때, 딱히 하는 것도 없어 보이는 보안관 토드가 다가왔다.

“버리는 거야? 아하, 글을 못 읽겠구나.”

‘이미 예전에 읽었단다.’

막스는 대답하는 대신 토드를 쳐다봤다.

그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물었다.

“막스 조 맞지?”

신문을 봤는지 이름까지 알고 있다.

“맞습니다만.”

“이거 영광이구만. 그런데, 방금 자네가 한 말 진짜야?”

“‘맞습니다’라는 걸 못 믿는 겁니까?”

“...... 아니. 노예제도에 중립이냐고.”

“아하, 맞습니다. 왜요?”

토드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잘 대답했다고. 다만, 앞으로 좀 성가시긴 할 거야.”

막스는 그 의미를 짐작하고 있었다.

양쪽 진영에서 자신에게 접근할 거라는 걸.

이건 막스가 의도한 부분이기도 했다.

뭔가가 정해지기 전까진. 어느 한쪽도, 자신과 제임스 가족을 공격하진 않을테니 말이다.

“그러는 보안관님은 어느 쪽입니까?”

“워워. 그런 건 나한텐 곤란한 질문이야.”

“전 딱 보니까 알겠는데요.”

“... 뭔데?”

궁금한지 토드는 막스의 입을 쳐다봤다.

“저처럼 중립이겠죠, 뭐.”

양 진영이 팽팽하게 대립하는 지역.

이런 곳의 보안관이 어느 한쪽을 편들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고 있겠지.’

“언제 시간 되면 사무실에 들러. 영어 잘하는 인디언보다, 자네가 더 신기하니까.”

“무슨 의미입니까?”

“그만큼 대화가 재미있다는 얘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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