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화 (17/360)

토드는 씩 웃으며 막스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이때 리블리 상점 주인이 그에게 다가와 불만을 쏟아냈다.

“토드! 내 진작에 지원요청을 하지 않았나. 집회 때만 되면 문제가 생긴다는 걸 자네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말야.”

“그러게 애초에 노예 지지자들 모임에 아이작을 연설자로 초청하지 말았어야죠. 제가 몇 번이나 충고하지 않았습니까.”

“충고만 하지 말고 지원을 했어야지! 그리고 말야. 반대 의견도 들어야 사람의 사고방식도 유연해지는 거라네. 안 그런가?”

“옳으신 말씀입니다만, 그것도 상황을 봐가면서 해야죠.”

상점 주인 RP 리블리는 멕시코 전쟁에서 소령으로 제대한 장교 출신이다.

아이작 코디, 조지 러셀과 함께 초기 리븐워스의 개척주민 중 하나였다.

보안관 토드와 상점 주인 리블리의 설전.

막스는 슬그머니 발을 빼며 등을 돌렸다.

그런데 그 앞에 한 아이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며 서 있었다.

‘호오. 이게 누구야.’

아이작 코디의 아들.

서부 역사를 관통하는 상남자로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전설적인 총잡이.

버팔로 빌 코디.

그를 수식하는 단어는 꽤 많다.

미국 대중의 영웅이자 군인, 버팔로 사냥꾼, 그리고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와일드 웨스트’를 만든 쇼맨.

‘진짜 내가 서부시대로 오긴 왔구나.’

지금껏 만난 인물 중 가장 유명한 인물.

그리고 그런 역사적인 인물이 입을 달싹거리며 말을 건네려 하고 있다.

“아버지를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더니.

8살짜리의 입에서 은혜라는 말이 나온다.

“이름은?”

“윌리엄 코디. 8살이에요.”

“어리네.”

“아이니까요.”

헛웃음을 지은 막스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한편으론 아쉽기도 하다.

‘너무 일찍 만났어.’

당장 뭔가를 함께 하긴 이른 감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은 결국 흐르지 않겠는가.

“은혜를 갚겠다고?”

앙다문 입술로 윌리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언젠가 내가 찾으면, 한 번은 나를 도와줄 수 있어?”

“물론입니다!”

아이라 가능한 대답일 수도 있고.

아이라 지금의 약속을 잊을 수도 있다.

막스는 품 안에서 뭔가를 꺼내 윌리엄 코디의 손에 쥐여줬다.

“?”

“약속의 징표다. 절대 잊지 말라는.”

윌리엄은 손바닥에 올려진 걸 쳐다봤다.

구리로 도금된 탄두.

그게 총알인지는 한참 뒤에야 알게 되지만.

위쪽에 새겨진 이니셜은 볼 수 있었다.

‘MJ···.’

윌리엄은 탄두를 손에 꼭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든 절 부르면 꼭 찾아갈게요!”

‘어, 꼭 그럴 거야.’

그러려고 도와준 거니까.

막스는 윌리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끊어진 라이플 멜빵끈

버팔로 빌 코디는 산전수전 다 겪은 서부의 상징적인 인물.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건 ‘와일드 웨스트’라는 쇼. 인디언과 카우보이라는 서부영화의 전형을 만들어낸 과장 섞인 쇼다.

1대 30을 상대했다는 허풍선이가 즐비한 서부에, 쇼맨이면 오죽하겠는가.

그의 일생 전반에 어느 정도 허풍은 섞였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난 믿는다. 버팔로 빌 코디!’

거친 야생과도 같은 서부의 상남자로 자라거라, 버팔로 빌이여···.

훗날 자신에게 힘이 되어 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막스는 미래의 버팔로 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윌리엄! 얼른 아버지 모시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이때 아이작을 치료하던 남자가 소리쳤다. 마을 의사로 보이는 남자의 빠른 응급처리 덕분에 아이작의 상태는 심각하지 않았다.

원래 역사라면 칼침 두 방 중 복부에 맞은 게 원인이 되어 몇 년 안에 죽고말 텐데.

지금은 어깨의 상처 하나뿐, 막스에 의해 사건이 왜곡된 것이다.

‘그걸 복잡하게 언제 따지고 앉아있냐.’

자신이 이곳 리븐워스 마을에서 숨 쉬고 있는 것 자체가 이미 역사 왜곡 아닌가.

‘나비효과니 뭐니, 그딴 걸 신경 쓰려면 집안에서 꼼짝도 하지 말아야지.’

막스가 생각하는 사이 미래의 버팔로 빌은 탄두를 손에 꼭 쥐고 아버지에게 돌아갔다.

건장한 남자가 아이작을 부축하고 윌리엄이 그 뒤를 쫄래쫄래 따라간다.

그리고 상점을 벗어날 땐 막스를 향해 슬쩍 고개를 숙여 보였다.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진 모르지만.

‘앞으로 흥미진진하겠어.’

막스는 피식하며 손을 흔들었다.

아직은 본격적인 서부시대라 부르기엔 이른 감이 있다.

무법자와 갱단, 보안관과 카우보이들이 난립하여 진정한 무법지대가 펼쳐지려면 남북전쟁이 끝난 이후.

즉, 몇 년은 더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그때가 오면 서부개척 시대에 이름을 남긴 전설들이 이곳 캔자스에 몰려들게 될 터. 막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동료들을 만들어야겠지.’

제아무리 돈 많고 실력이 뛰어나도 혼자서는 개털이다.

등 뒤를 맡길 수 있는 동료야말로 가장 큰 자산이자 무기. 특전사와 용병 생활을 했던 막스는 팀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미래의 버팔로 빌 코디 역시 이런 밑 작업의 일환. 탄두를 징표로 건네준 것이 못내 오글거리지만, 나름 의미있는 일이었다.

리블리 상점의 소동이 끝나고, 막스는 제임스 가족이 있는 마차로 돌아갔다.

조지는 리블리 상점 주인과 할 이야기가 있다며 남아있었다.

막스는 마차에서 총을 꺼낸 뒤 제임스에게 말했다.

“저는 먼저 집으로 돌아갈게요.”

“혼자?”

“왜, 무슨 일 있었어?”

메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같이 있어 봐야 좋을 게 없거든요. 그리고 식료품점에 들리거든···.”

막스는 자신이 사려고 했던 것들을 메리에게 말해주었다.

식료품점.

‘도저히 모르겠다!’

양손을 허리에 짚은 메리의 얼굴에 짜증이 잔뜩이다. 보다 못한 제임스가 물었다.

“왜 그러는데?”

“막스가 말하는 고추를 못 찾겠어요.”

“뭔 고추?”

“맛있게 매운 고추 사오라는 데 뭔지 알 수가 있어야죠. 그냥 대충 처먹지 좀!”

“뭐라 할 말이 없구만.”

힘겹게 식료품 장을 본 뒤엔, 포목점도 들렀다. 곧 로렌스로 떠날 막스를 위해 여벌의 속옷과 옷을 사기 위해서였다.

*

‘용병 생활 때도 안 그랬는데, 왜 이렇게 한식이 당기지.’

아무래도 몸의 주인이었던 이막산. 그 혀가 한식을 갈구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서부에서 한식이 가당키나 한가.

된장은 콩이 없어서 못 만들고, 된장이 없으니 고추장에 들어갈 메줏가루를 못 만든다.

‘첩첩산중이로구나.’

그렇게 해서 생각한 게 고춧가루.

멕시코가 원산지라 분명 있을 것이다.

“이게 뭡니까.”

“고추.”

“이게 어딜 봐서 고춥니까, 피망이지.”

“아니야, 분명 고추랬어. 그것도 매운 거.”

“흠.”

막스는 피망같이 생긴 짜리몽땅한 칠레산 고추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컥.”

맵긴 더럽게 매웠다. 상상 이상으로.

“근데 맛이 없어요.”

“그니까, 맛있게 매운 게 뭔데.”

“청양고추요.”

“없다고!”

아쉬운 대로 이거라도 시도해보기로 했다.

겨울철이라 한낮 땡볕에 고추를 말리고, 해가 지면 철제 난로 앞에 늘어놓아 말리기 시작했다.

“금도 저렇게 애지중지 안 할 텐데.”

“저거 건들면 막스 브로가 총 쏘겠죠?”

코닐의 말에 메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막스는 고추 말리는 데 지극정성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방앗간에서 빻아달라는 요청에 메리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제정신이야? 밀 빻는 데서 이걸 해주겠냐고.”

“1달러 주겠다고 해요.”

“와! 무슨 이딴 걸 빻는데 그만큼을 줘!”

‘이딴 거라니···.’

잠시 충격받은 막스는 기필코 메리의 입에 고춧가루의 참맛을 보여주길 다짐했다.

크리스마스 당일.

감자에 고기를 넣은 스튜와 칠면조가 식탁에 올라왔다. 풍성한 음식을 두고 평소에도 하는 기도가 크리스마스엔 더 길었다.

실눈을 뜬 막스는 고춧가루를 스튜에 투척할 준비를 했다.

마침내 제임스의 장황한 기도가 끝이 나고.

막스는 고춧가루를 스튜에 잔뜩 뿌렸다.

맛은 둘째치고, 비주얼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한입 입에 넣는 순간.

‘이거지.’

“또 울어? 대체 이게 뭐라고.”

“막스 브로. 생긴 것 같지 않게, 눈물이 참 많아.”

‘이건 이막산의 눈물이다.’

메리와 코닐의 빈정이 이어지고, 막스는 츄라이 해보라며 꼬드겼다.

“그렇게 맛있어?”

“여러분이 감동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까 벌써부터 걱정이 되네요.”

“그렇다 이거지···.”

“일단 먹어보시면 압니다.”

시뻘건 국물 앞에서 가족들의 포크가 방황하고 있었다. 메리는 독약이 든 건 아닐까 싶은지 한참을 망설였다.

그중 가장 의외인 건 코닐.

‘막스 브로의 비밀이 이거일 수도!’

총과 칼질하는 비범한 능력의 근원.

코닐이 과감하게 스튜를 먹는다.

제임스와 메리 역시 코닐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같은 인간으로서 범접할 수 없는 능력의 원천. 그건 다름 아닌 고춧가루.

“으억!”

“겁나 매워, 막스 브로!”

“이게 음식이야?!”

“먹다 보면 묘한 중독이 있습니다.”

“난, 포기.”

메리는 스튜를 한곳으로 밀어 넣고, 제임스와 코닐은 그래도 꾸역꾸역 스튜를 입에 넣었다. 그들에겐 서부 개척자의 정신이 살아 숨 쉬고 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도전 정신.’

오랜만에 매운 음식을 먹은 막스는 기쁜 마음으로 스튜를 전부 먹어 치웠다.

그리고 그날 밤엔 제임스 가족은 장이 뒤틀리는 끔찍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막스도 마찬가지. 다만 티 내지 않기 위해 창고에서 밤을 새웠다.

*

어느덧 한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그동안 막스의 몸도 영양실조에서 벗어나 제법 힘 좀 쓸 것 같은 몸이 되었다.

바야흐로 홀리데이가 있는 로렌스로 떠날 시간이 된 것이다.

무장은 콜트 드라군 하나, 네이비 두 개, 샤프스 라이플이 두 자루···.

툭.

한 자루의 총기 멜빵이 끊어졌다.

‘이거, 이거. 불길한데!’

로렌스로 향하는 날에 이 무슨 불길한 징조란 말인가.

미간을 찌푸린 막스는 나머지 무기는 방에 숨겨두고 건 파우더와 구리 탄두 100여 발을 챙겼다.

‘미신이야, 미신. 훠이, 훠이.’

“막스 브로! 주말엔 올 거지?”

“당장은 힘들고, 어느 정도 적응하면.”

“어지간한 일 아니면 나서지 말아. 밥은 꼭 챙겨 먹고. 뭐, 말 안 해도 잘하겠지만.”

메리와 코닐은 아쉬운 눈빛으로 막스를 배웅했다.

“무슨 일 생기면, 곧바로 저한테 알려줘야 합니다.”

“알았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자네 몸이나 잘 챙겨.”

전화도 없고, 심지어 모스 부호를 보낼 전신주마저 없으니 연락할 방법이라곤 사람을 통하는 게 유일했다.

“시내에 무장하는 자들이 눈에 띄거든 절대 돌아다니지 말아요. 혹시나 저에 관해 묻는 자들이 있으면, 그냥 남인 것처럼 얘기해요. 욕해도 되고.”

“에이, 어떻게 그래.”

실제로 남이지만, 막스는 이미 가족의 구성원으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더욱 신경이 쓰이는 거고.

막스는 몇 가지 당부를 남기고서야 말에 올라탔다. 제임스 가족을 뒤로하고, 말머리를 남서쪽으로 돌렸다.

로렌스까지 3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

가는 길목에는 탁 트인 평원에 자란 잡초 덤불이 곳곳에 자라있었다.

구름이 드리운 벌판의 그림자.

달리던 막스의 뺨으로 추위를 머금은 바람이 칼날처럼 스쳐 간다.

타아앙!

평원에 울려 퍼지는 총성. 막스는 말고삐를 잡아 속도를 늦췄다.

‘그리 멀지 않아.’

방향도 로렌스로 향하는 길목.

그런데 총성은 한발이 끝이 아니었다.

‘멜빵끈 끊어질 때부터 불길했는데.’

막스는 미간을 찌푸리며 소리가 나는 쪽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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