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라, 개자식들아!”
“말로만 하지 말고 올라오던지, 새끼들아!”
탕! 탕!
낮은 언덕 위 셋, 그 아래에 일곱이 서로를 향해 욕을 퍼붓고 총을 쏴댔다.
막스는 바위에 말을 묶고, 망원경과 라이플을 챙겨 주변보다 높은 언덕에 자리를 잡았다.
‘어디 한 번 볼까.’
먼저 당하는 쪽을 살폈다.
수세에 몰린 그들은 언덕 바위 뒤에 숨어 간간이 총을 쏘았다. 그런데 상대를 노려 쏘기보단 다가오지 못하게 시간을 끄는 것처럼 보였다.
‘지원군이 오길 기다리는 모양이네.’
이번엔 아래쪽을 살폈다. 그런데 그중 몇 명은 분명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보더 러피안.’
무장단체이자 노예제 옹호론자들.
미주리 잭슨 카운티, 여관 앞에서 마주쳤던 놈들이었다.
‘반대쪽은 노예제 폐지론자들이겠군.’
막스는 여전히 엎드려서 상황을 관망했다.
그러던 중, 보더 러피안 두 명이 크게 돌아가는 모습이 눈에 띈다.
언덕에 있는 자들은 아직 눈치채지 못했다.
'저러다가 뒤통수 맞고 죽겠는데?'
막스는 짧은 고민 끝에, 라이플을 꺼내 해머를 뒤로 젖혀 코킹하고, 퍼커션 캡을 끼웠다.
거리는 대략 200미터.
버팔로 사냥 때보다 조금은 먼 거리다.
하지만 구리 탄두의 정확도를 감안하면 못 맞출 거리는 아니었다.
철컥.
막스는 쥐새끼처럼 숨어서 접근하는 보더 러피안을 겨냥했다.
뺨으로 느껴지는 바람의 방향을 가늠하고, 호흡은 들이마신 뒤 조금 내뱉는다.
막스는 바로 쏘지 않고, 놈들의 총성이 멈출 때를 기다렸다. 지원군의 존재를 알리려는 의도였다.
목표물을 노려보던 막스가 이윽고 호흡을 멈췄다. 그리고는 쏜 듯 안 쏜 듯 방아쇠를 스르르 당긴다.
타아아앙!
철컥.
상태 확인보다 더욱 중요한 건 재장전.
하늘을 향해 누운 채, 방아쇠울을 당기고 드랍블록이 젖힌 약실에 종이 카트리지 탄을 밀어 넣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복잡한 장전방식을 줄일 필요가 있다.
거기다 스코프도 달아야 할 거고.
길리 슈트도 있으면 금상첨화고.
‘할 거 많네.’
한편 분노한 보더 러피안들의 고함이 들려왔다.
“비겁한 새끼!”
“어떤 놈인지 나와서 모습을 보여라!”
‘보이긴 뭘 보여.’
초탄에 우왕좌왕하는 꼴이라니.
철컥.
막스는 다시금 엎드려 라이플을 조준했다.
방금 쏜 놈은 어깨를 감싼 채 땅을 기어 다니고 있었고. 나머지는 말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막스는 크게 도는 또 다른 놈을 찾았지만, 이미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
‘고새 멀리도 갔네.’
확률에 의존하기보단, 차라리 다른 놈을 겨냥하기로 했다.
여관 앞에서 지나칠 때 메리를 음흉하게 쳐다본 놈이 마침 눈에 들어왔다.
정신없이 움직이는 놈을 막스의 눈동자가 따라간다. 이윽고 호흡을 가다듬은 막스는 또다시 총성이 잠잠해지길 기다렸다.
타아앙!
막스는 일순 흐르는 정적을 틈타 방아쇠를 격발했다.
장전 대신 막스는 망원경을 꺼내 들었다.
방금 쏜 총이 팔에 맞았는지, 말이 빙글 돌면서 고함을 내질렀다. 그리고는 일행들과 함께 후퇴하기 시작했다.
*
“동양인?”
막스에게 도움을 받은 남자들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어디 안 다치셨습니까?”
“어? 어, 우리야 뭐. 괜찮긴 한데. 방금 네가 쏜 거 맞아?”
“예. 정확히 두 발 쐈습니다.”
스나이퍼가 매력적인 건, 언제 어느 때 자신을 향해 날아올지 모른다는 거.
스나이퍼 한 명이 한 개 중대를 몰살시키는 것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남자 셋이 막스의 사격 솜씨에 혀를 내두를 때였다. 멀리서 일단의 무리가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고 있었다.
“오오, 대장님 오신다!”
남자들은 환한 웃음을 지으며 그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막스는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생각했다.
‘대장이라···.’
이들이 레인저스는 아닐 테고, 그렇다고 군인은 더더욱 아니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하나.
‘제이호커스인가.’
제이호커스(Jayhawkers)는 노예제 폐지론을 주장하는 무장투쟁세력.
보더 러피안과 대척점에 있는 조직이다.
피의 캔자스라는 유혈 사태를 일으킨 주범들이 바로 이 양대 세력이었다.
잠시 후.
무리를 이끌고 온 리더는 오자마자 자초지종부터 묻기 시작했다.
들어보면, 선발대인 그들은 하필 보더 러피안과 마주쳐 싸움이 났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이 동양인이 놈들을 쫓아냈다고?”
“예. 저기 바위 뒤에서 대장님 오실 때까지, 버티던 중이었거든요.”
리더는 재차 막스를 훑어보았다.
40대 초반의 중년 남자는 수염 없는 매끄러운 얼굴에 양 입꼬리가 쳐진 냉막한 인상이었다.
그는 막스를 찬찬히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리븐워스에서 온 동양인이라···. 자네가 아이작 코디를 구해주었나?”
‘여기서 아이작 코디가 나오네.’
막스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서 동양인은 희귀종에 가깝다.
뭘 해도 소문이 퍼지고, 그게 막스라는 걸 아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리더는 표정 변화 없이 말을 이었다.
“아이작 코디에 이어 이번에는 내 부하들을 구해주었군.”
“우연히 끼어들게 된 것뿐입니다.”
“자네, 이름이?”
“막스 조입니다.”
리더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홀리데이에게 가는 길일 텐데, 같이 가지.”
‘뭘 이렇게 잘 알아.’
막스는 애초에 지원군이 올 걸 짐작하고 있었다. 더구나 홀리데이와도 친분이 있는 거로 봐선 함께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말에 탄 막스에게 리더가 말을 건넸다.
“그나저나, 동양인이 왜 여기···.”
그때였다.
막스가 갑자기 한 쪽 방향을 향해 상체를 틀고는 재빨리 총을 뽑는다.
탕!
“뭐, 뭔데?”
“너, 이새끼 이게 무슨 짓이야!”
막스의 총 쏘는 속도가 워낙 빨라 사람들은 대응조차 하지 못했다.
부하들은 어처구니없음에 분노를 터트리고, 리더는 막스의 총구가 향한 곳을 응시했다.
“아까 제가 맞춘 놈이 쥐새끼처럼 숨어있어서 처리했습니다만.”
막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부하 하나가 달려갔다. 그리고는 방금 총에 맞은 놈의 목덜미를 잡은 채 끌고 왔다.
“지, 진짠데요. 대장님?”
리더의 시선이 막스를 향했다.
눈이 마주치자, 막스가 물었다.
“아까 하던 이야기마저 하시죠?”
리더의 동공이 흔들리더니, 이내 미친 듯 웃음을 터트렸다.
“이렇게 패기 넘치는 동양인을 만나게 될 줄이야. 놀라운 속사수에 총솜씨도 일품이 아닌가.”
냉막한 인상이라 말도 웃음도 상당히 어색하다. 어찌 됐든 그는 미소를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게. 빚진 건 얼른 털어버려야 속이 편하거든.”
“그런데···. 실례지만 누구십니까?”
부하들이 어깨를 들썩거리고.
미소가 사라진 리더는 입술을 씰룩거리며 말을 이었다.
“제임스 헨리 레인일세.”
“아하, 그렇군요.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현재는 인디애나 주의 하원의원.
그리고 조만간 제이호커스의 사령관이 될 제임스 헨리 레인과의 첫 만남이었다.
끊어진 멜빵끈은 불운이 아닌 행운이었다.
작가의말
수정할게 있어서 연재 시간이 늦었습니다.
단위에 대해 몇몇분이 글을 남겨주셨는데,
피트, 인치, 파운드, 에이커, 온스의 단위를 써야 맞긴 합니다만
그게 한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고요.
몇 가지 제 스스로 타협한 부분인데,
이부분으로 현실감이 떨어진다면,
바꾸는 것도 고려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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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재미있으셨다면, 선작 추천 쾅쾅!
부탁드리겠습니다!
로렌스 마을
“시체는 어떻게 할까요?”
“그냥 놔둬. 책잡힐 일은 하지 말아야지.”
레인은 보더 러피안의 시체를 방치했다.
상대는 캔자스를 노예주로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자들.
작은 사건이 불씨가 되어 활활 타오르길 바라는 놈들에게 먹이를 주지 않기위한 선택이었다.
동료에게 버림받은 보더 러피안.
어깨와 이마에 총알이 박힌 시신은 독수리의 배를 채우게 될 것이다.
로렌스 마을은 캔자스 강 이남에 위치한다.
강을 건너는 방법이 꽤 원시적이었는데, 강을 가로질러 뻗어 있는 밧줄을 이용해 조류의 도움을 받는 평평한 배를 이용해 강을 건널 수 있었다.
그렇게 로렌스에 도착할 즈음.
레인과 일행이 말을 멈춰 세운다.
“이 길로 가면 마을에 곧 도착할 거네. 우린 근처에 볼일이 좀 있어서.”
“알겠습니다.”
“그럼 며칠 뒤에 보도록 하지.”
레인은 부하들을 이끌고 사라졌다.
인디애나주의 의원이 부하들을 데리고 캔자스를 어슬렁거리는 게 어디 정상인가.
캔자스를 자유주로 만들기 위해 그가 선택한 건 무장투쟁. 말보단 총이 우선인 사람이었다.
이런저런 생각하는 사이 어느덧 로렌스에 도착했다.
“워워.”
막스는 고삐를 당겨 속도를 줄였다.
믿을 수 없는 마을 풍경에 입이 쩍 벌어졌다.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집 대신 천막들이 즐비한 모습.
전쟁 아니면 자연재해가 난 것이 분명하다.
그건 그렇고.
‘일단 사람부터 찾아야지.’
문득 홀리데이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 로렌스에 도착하거든 내 이름을 크게 소리쳐.
- ...... 그럼 집을 찾을 수 있습니까?
- 당연하지. 나를 금방 볼 수 있을 거야.
막스는 멍하니 길옆에 늘어선 흰 천막들을 응시했다.
드문드문 천막 앞에 있던 사람들은 낯선 동양인을 경계한다.
그들에게 묻느니, 홀리데이의 말처럼 크게 소리치기로 했다.
“홀-리-데-이!”
제법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니나 다를까, 한쪽 천막에서 익숙한 남자가 감자를 손에 들고 튀어나왔다.
“오오, 자네 왔는가!”
‘이야··· 진짜였어.’
막스는 어이없는 실소를 흘렸다.
홀리데이 주변으로는 경호원들도 보이지도 않았다.
“딱 한 달 맞춰서 왔네. 어서 들어가자.”
“어디를요?”
“어디긴. 내 집이지.”
“집이 어딨습니까.”
“우리 집은 조기. 그 뒤에 천막 치면 그건 막스 집.”
“......”
천막들 사이로 가족들이 빼꼼히 쳐다보는 걸 보면. 그 말이 허언은 아닌 것 같다.
“전쟁 났어요? 아님, 자연재해?”
“무슨 소리야. 안으로 들어가자. 마침 점심 식사로 감자 삶고 있었는데.”
‘기껏 살찌워놨더니, 감자?’
막스는 말머리를 뒤로 돌리며 말했다.
“점심 좀 먹고 올게요.”
“어디서?”
“리븐워스요.”
“갔다 오면 왕복 6시간. 저녁 먹으러 또 가겠네?”
“오면 아침 먹으러 가야겠죠. 후···.”
‘뭔가 당한 느낌인데.’
이막산을 글로벌 호구라며 무시했는데,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막스는 고개를 절레 저으며 말에서 내렸다.
홀리데이가 머무는 천막 내부는 전쟁피난민의 은신처와 흡사했다.
바닥에 깔린 볏짚 위엔 버팔로 가죽이 펼쳐져 있고, 한쪽엔 간단한 식기류와 옷가지들이 너부러져 있었다.
“제법 아늑하지?”
“...... 그런데 왜 집은 안 지어요?”
“몇 가지 문제가 있거든.”
홀리데이는 감자 두 개를 건네주고는 밖으로 나가자며 몸을 일으켰다.
오다가다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막스를 소개해주고, 한편으로는 이전의 설명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