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자스-네브래스카 법이 통과하자마자 캔자스를 자유주로 만들기 위해 설립된 회사가 있는데 말야.”
‘노예주를 늘려선 안 된다.’라는 기치 아래, 동부의 매사추세츠에서 뉴잉글랜드 이민 원조회사(NEEAC)가 만들어지고, 그들은 곧 캔자스에 정착할 이민자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와서 텐트 치고 오두막을 만들었는데 문제가 생겼지 뭐야.”
NEEAC는 땅의 원주인인 스턴스라는 자에게 500달러를 주고 소유권을 이전받았다.
그런데 갑자기 다른 자들이 몰려와 자신들의 땅이라며 돈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예주에서 사주한 거겠지.’
그게 합리적인 생각일 것이다.
“해결이 되긴 해요?”
“계속 협의 중이야. 터무니없는 가격을 요구하고 있거든.”
“땅 말고는 무슨 문제가 있어요?”
“말 그대로 집 짓는 문제지. 목재가 없어.”
막스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사막 오지에서도 집 짓고 사는 데, 나무가 없어서 못 짓는 다고요?”
“근처엔 집 지을 만한 나무가 없어. 더 큰 문제는 인근 제재소에서 우리한테 공급을 안 하겠다고 선포했거든.”
“훼방꾼들이 많군요.”
“그래도 조만간 좋은 소식이 들릴 것 같아. 리븐워스에 있는 제제소를 찾았거든”
“리븐워스?”
“아이작 코디라고 노예제 반대에 열성적인 사람이 운영하고 있거든.”
툭.
“어이구. 얘가 감자 귀한 줄 모르네.”
홀리데이는 손으로 흙먼지를 후후 불며 다시금 막스에게 감자를 내밀었다.
“아직도 영양실조야? 뭔 감자를 떨어트려.”
“아니, 그것보다. 아이작 코디가 제재소를 운영했어요?”
홀리데이는 그게 놀랄 일이냐며 다시금 감자를 후후 불며 내밀었다.
“또 흘리면 안 털어준다.”
“근데, 그거 알아요?”
막스는 감자를 오물거리며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 아이작 코디 칼 맞았어요.”
툭.
이번엔 홀리데이가 감자를 떨어트렸다.
막스는 그걸 들어 후후 불며 건네줬다.
“감자만 먹으니 힘이 없죠. 아무튼, 노예제 지지자들 앞에서 반대 연설 하다가 당했거든요.”
“그럼···. 죽은 거야?”
막스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어깨에 찔렸는데, 치명상은 아니었어요.”
“햐, 천만다행이네. 설마 네가 도와준 거?”
고개를 끄덕이자, 홀리데이는 막스의 어깨를 잡으며 흔들었다.
“진짜, 네가 큰일했다! 제대로 구했어.”
‘책에선 상인이라는 단어만 봤는데. 그게 제재소였구나.’
뜻하지 않게 로렌스 마을에 도움을 준 것 같다.
“그럼 본격적으로 일 얘기를 해보죠. 그때 봤던 경호원들은 어딨어요?”
“집으로 돌아갔어. 사실 내가 아니라, 회사에서 고용한 자들이거든.”
NEEAC는 개척지의 이주민을 보호하기 위해 퇴역 군인들을 고용했다. 막스가 미주리에서 홀리데이를 본 것 또한 잠시 그를 보호해준 것에 지나지 않았다.
문제는 그들의 고용 기간이 짧다는 거.
해가 바뀌기 며칠 전 대부분 떠나버렸다고 한다. 남아있는 자들도 있지만, 그
들은 이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착이 목적이었다.
“그럼 내 고용주는 누굽니까?”
“당연히 나지.”
“제가 할 일은요?”
홀리데이가 갑자기 얼굴을 바짝 들이민다.
“나와 이곳 마을 사람들을 보호해주면 돼.”
“여긴 보안관 없습니까? 그냥 아무나 앉히면 되는 거 아녜요?”
“아쉽게도 희망자가 없네.”
개척마을. 더구나 시도 때도 없이 분쟁이 일어나는 마을이라 아무도 떠맡으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외부에서 들여오자니, 실력 있는 자들은 천막 친 마을을 보고는 말없이 말 머리를 돌렸다고 한다.
“간단해. 나랑 같이 다니면서, 분쟁이 있으면 해결해주면 되는 거야.”
“말 참 쉽게 하시네.”
“복잡한 일은 아니잖아. 대부분 동부에서 농사짓거나, 농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야. 총도 안 잡아 본 사람들이 대부분이지.”
노예주가 되는 걸 막기 위해 신념으로 온 사람들, 동부에서 밑바닥을 살던 자들이 섞인 곳. 그들에게 거친 서부는 두려움인 동시에 기회의 땅이기도 했다.
어찌 됐든, 홀리데이는 애초에 이럴 목적으로 막스를 고용한 것 같다.
분쟁이 일어나고, 홀리데이가 끼어들면 그를 보호해야 하는 게 막스의 임무.
‘보인다. 내 미래가 보여.’
막스의 솜씨를 믿고, 홀리데이는 모든 분쟁에 끼어드려 할 게 빤하다.
“이럴 거면, 차라리 내가 보안관이 되는 게 낫겠네요.”
“글쎄. 나도 그 제안을 안 해본 건 아닌데. 반대가 심하더라고.”
“하긴 18, 아니 이제 19살 된 동양인에게 그 자리를 누가 맡기겠어요.”
“그래도 찬성하는 사람도 꽤 있었어. 일단 이곳 의장님은 긍정적이었으니까.”
“의장이 누구였죠?”
“닥터 찰스 로빈슨.”
“아하.”
“아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네.”
‘알지. 캔자스의 주지사가 될 양반인데.’
준주가 아닌 정식 주가 되는 해. 정확히는 남북전쟁이 발발하는 해 주지사가된다.
막스가 홀리데이와 일하려 한 건, 돈도 돈이지만 이런 인맥들이 그의 주변에 있기 때문이었다.
“마을의 의장님이 긍정적이면 문제 될 게 있나요?”
“반대하는 자도 만만치 않거든.”
“누군데요?”
“제임스 헨리 레인. 지금은 리븐워스의 아이작 코디를 만나러 가서, 내일이면 오려나 모르겠네.”
“오오···.”
막스의 반응에 상관없이 홀리데이는 말을 이었다.
“인디애나 하원 임기 끝나면 이곳에서 정착할 거야. 명망도 있고, 아주 열정적인 사람이지.”
“오다가 봤는데요.”
“그래? 너한테 뭐라고 안 해? 막, 총을 쏘려고 했다던가. 굉장히 거친 사람이거든.”
“딱히요.”
홀리데이는 턱을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동양인에 나이, 거기다 영주민도 아니라면서 널 반대했거든.”
‘영주권이 없긴 하지.’
“부하들도 많던데, 그중 한 명을 보안관으로 내세우면 되지 않나요?”
“다른 일을 할 사람들이래. 아무튼, 레인은 수틀리면 너를 쏴버릴지도 몰라.
거친 사람이거든.”
그런 자가 반대하고 있으니, 홀리데이는 막스가 보안관 되기 힘들다고 했다.
‘그건 당신 생각이고.’
막스는 슬그머니 머릿속 계산기를 꺼냈다.
보안관이 되어서 얻을 이득. 앞으로 이곳에서 벌어질 일들을 따져봤다.
그렇게 해서 내린 결론은.
“갑자기 보안관이 되고 싶어졌어요.”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만약 제가 되면 어떻게 할래요.”
“그럴 일은 없다니까.”
“내기할래요? 되면 한 가지 부탁 들어주기로.”
“뭔데?”
홀리데이가 말이나 해보라며 물었다.
“제 신분 서류 좀 만들어줘요.”
“신분?”
“영주권 얻고 싶거든요.”
홀리데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실소를 흘렸다.
“나한테 천 달러 맡긴 것도, 은행에 넣질 못해서 그렇구나?”
“꼭 그 이유 때문은 아니죠.”
“그럼?”
“그런게 있습니다. 그래서, 내기는요?”
잠시 고민하던 홀리데이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해줄 순 있을 것 같아. 물론 네가 보안관이 된다면 말이지.”
막스는 담담한 표정으로 재차 약속을 다짐받고, 홀리데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리븐워스에 있더니, 허세만 늘었네.”
“그러게요.”
“레인 의원 앞에서 허세 부리면 진짜 널 죽일지도 몰라. 그 사람도 총 잘 쏘거든.”
“네네.”
막스는 그날부터 홀리데이 뒤쪽에 천막을 치며 생활했다.
마을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얼굴을 익혔다.
‘회의를 열어야, 보안관을 뽑던지 말던지 할 텐데.’
정작 만나고 싶었던 찰스 로빈슨 의장은 만나질 못했다. 제임스 헨리 레인도 그렇고 핵심 인물들은 저마다 바쁜일정들 속에 움직이고 있었다.
아침과 점심은 각자 해결하지만, 저녁이 되면 파티가 형성되곤 한다.
오레곤 트레일을 연상시키듯, 해가 지면 모닥불 주변으로 하나둘 사람들이 모여든다.
여인들은 음식을 나르고, 아이들이 돕는다.
한겨울의 추위를 녹이고, 저녁을 먹는 시간. 이민자들의 고달픈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캠프는 이곳 말고도 몇 개가 더 있었고, 대부분은 같은 풍경을 하고 있었다.
식사가 끝나면 사람들은 바이올린 연주자에 맞춰 ‘캔자스 이민자들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이러한 풍경은 집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계속될 것이다.
막스가 로렌스 마을에 도착한 지 사흘째 되는 날.
한 무리가 소란을 일으켰다.
홀리데이가 나서자 한 남자가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멀드윈이라는 자로,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와 땅 주인이라며 우겨댔다.
“홀리데이! 남의 땅에서 언제까지 천막 치고 있을 거야? 이런 식으로 나오면 부숴버린다고 했을 텐데!”
“토지 관련 서류를 검토하고 있는데, 자꾸 이렇게 재촉하면 어떻게 합니까.
사실 관계는 따져야죠.”
“따지긴 뭘 따져! 내가 여기서 살아온 게 몇 년인데. 천막에 확 불을 지를까보다.”
세 명의 무장한 남자를 앞세운 멀드윈은 기세등등했다. 실제로 불이라도 지를것처럼 작은 기름통을 들이밀었다.
“어떻게, 내가 나설까요?”
막스가 홀리데이에게 물었다.
고민 끝에 그가 대답하려 할 때였다.
뒤로 먼지를 일으키며 또 다른 무리가 달려왔다.
“오오! 레인 의원!”
사람들이 환호하자, 식겁한 건 멀드윈 무리였다. 익히 소문을 들었는지, 그들은 황급히 말에 올라탔다.
“홀리데이, 내 경고를 잊지 마!”
“미친놈.”
홀리데이가 피식하며 막스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는 레인 무리를 보며 말했다.
“봤지? 레인 의원이 저런 사람이야. 그래서 네가 보안관 되기 힘들다고 말한거야.”
레인이 코앞까지 다가올 때,
막스는 담담하게 말했다.
“난 가능할 것 같은데요.”
보안관
“리븐워스의 일은 잘됐습니까?”
홀리데이가 레인에게 말을 건넸다. 막스는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대신했다.
“그럭저럭.”
냉막한 표정의 레인은 홀리데이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이작 코디가 우리에게 목재를 공급하기로 했네. 조만간 도착할 거야.”
“오오! 다행이네요!”
“드디어 집이 생기는구나!”
사람들은 흥분하며 소리쳤다.
땅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천막을 벗어날 수 있는 목재에 열광했다.
“이 일로 회의를 해야 하니, 한 시간 뒤에 보세나.”
“알겠습니다.”
공급처가 정해졌으니, 거래 가격과 수량, 납품 일자까지 정보를 주고받으며 회의를 하게 된다.
회의 참여자는 이 마을을 이끄는 의원단들.
홀리데이도 그중 하나였다.
그런데 무리를 이끌고 지나치던 레인이 문득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막스를 보며 입을 열었다.
“자네도 오지그래. 새로운 얼굴인데, 인사라도 해야지 않겠나.”
“.......?”
‘저 양반이 왜 저러지?’
홀리데이의 고개가 천천히 막스에게로 향한다. 왜 레인이 막스에게 살갑게 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 거기서 뵙죠.”
레인 일행이 사라지고, 홀리데이는 막스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어떻게 된 거야? 그냥 오다가다 만난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솔직히 가다가는 아직 안 만났습니다.”
“...... 말하는 센스가 내 취향이네.”
입을 삐죽 내민 홀리데이는 이내 피식하며 말했다.
“보안관 자리를 두고 내기한 이유가 있었구나.”
“반대할 것 같지 않더라고요.”
홀리데이는 고개를 절레 저으며 말했다.
“네가 아직 저 사람을 몰라서 그래. 게다가 반대하는 자는 저자 말고도 많아.
아무튼,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이다.”
“보안관 안 된다고 실망까지야 하겠습니까. 그냥 하던 일 하면 되는 거죠.”
“그래. 그렇게 생각해야지.”
홀리데이는 미리 위로라도 하듯 막스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
마을의 회의장은 커다란 천막.
홀리데이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이거 만들 때 몇 번이나 부숴졌어. 노예주에서 사람들이 몰려와서 훼방을 놨거든.”
“그랬군요.”
“기둥 하나 세우는 데 며칠이 걸렸다니까.”
천막 안에 놓인 의자들은 굵지 않은 통나무를 깎아 만든 것이다.
대초원에서 이런 나무는 구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캔자스강 건너에서 조달해 온 것이라 했다.
자리에 앉은 지 10여 분.
마을 협의체 핵심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선두는 30대 중반의 남자로, 의장인 찰스 로빈슨. 매사추세츠주의 피츠필드에서 의학을 전공한 그는 캘리포니아에서 12번째 주 의회 선거구를 대표한 이력이 있는 자였다.
그의 뒤로는 아직 아무런 직책도 없는 제임스 헨리 레인. 부의장, 비서관 그리고···.
“맨 뒤에 있는 사람은 귀중품 보관 담당자 리바이 게이츠야.”
“그런 직책도 있습니까?”
“당연하지. 천막에 귀중품을 보관했다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알겠어.”
일부러 상대를 모함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 때문에 정착 초기에 귀중품을 한곳에서 보관하여, 나머지는 분실해도 책임을 묻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자, 다들 오셨으면 회의를 시작하도록 합시다.”
부의장 페르디난드 플러가 진행을 맡았다.
첫 번째 안건은 역시나 땅 문제였다.
“놈들이 또 액수를 늘렸습니다. 이젠 3천 달러를 요구하더군요. 이대로면 협상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