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할 놈들. 앞에선 터무니없이 돈을 올리고, 뒤에선 행패를 부리고 있구만.”
“NEEAC는 어떻습니까? 아니면 우리가 모은 자금으로라도 해결하던지요.”
“회사는 여유 자금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모은 5,040달러는 말 그대로 정착 자금입니다. 집과 식료품을 사기에도 빡빡한 돈이죠.”
“그럼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 겁니까?”
답답한 마음에 목소리는 점점 커져간다.
결국, 의장인 찰스 로빈슨이 손을 들며 장내의 흥분을 가라앉혔다.
“최초 우리가 스턴에게 500달러를 주고 매입한 서류는 아무런 하자가 없습니다. 지금 주장하는 자들은 그 근거조차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요. 이 문제는 앤드류 리더 주지사와 곧 결판이 날 겁니다.”
‘우기는 놈들한테 뭔 서류를 따져.’
막스가 힐끔 제임스 헨리 레인을 쳐다봤다.
그 역시 입술을 꿈틀거리는 거로 봐선 할 말이 많은 듯 보인다.
다만 아직은 애리조나 하원의 신분이라 굵직한 일에는 말을 아끼고 있었다.
찰스 로빈슨과의 경쟁으로 보일 걸 우려한 행동. 막스는 그렇게 해석했다.
‘신중한 찰스, 과감한 레인.’
언제고 충돌할 수밖에 없는 조합이 아닌가.
“다음 의제로 넘어가죠. 레인 의원께서 좋은 소식을 가져왔습니다. 리븐워스의 제재소에서 목재를 납품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오오, 그거 잘 됐구만!”
레인은 계약 조건과 납품 일자를 설명했다.
듣고 있던 찰스 로빈슨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다른 곳보다 저렴하네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제재소 오너인 아이작 코디가 노예제 폐지에 꽤 적극적이더군요. 마을의 정착을 위해 손해도 감수하겠답니다.”
“고마운 일이군요. 그런데 그만한 양을 제재소 한 군데에서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레인은 별거 아니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키카푸족 인디언들에게 목재를 공급받는다더군요. 포트 리븐워스에도 납품한 이력이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럼 그렇게 진행하는 거로 하죠. 레인 의원님 덕에 걱정거리가 해결되었군요. 감사드립니다.”
“별말씀을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다음 의제로 넘어갔다. 인원과 재정 현황, 주변 정세에 관한 말이 오고 갔다.
그리고 마지막 의제는 개척마을에 없어서는 안 될 학교에 관한 이야기였다.
부지는 정해졌으나 아직 공사조차 하지 않아 학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선생님은 정해졌다.
에밀리에 파운 피치.
회의 시작 전부터 막스를 강렬하게 쳐다보던, 갈색 머리의 20대 여자였다.
‘전생에도 못 한 솔로 탈출을 설마 여기서···?’
눈빛이 하도 반짝거려 막스에게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피치는 여러 사항을 말하던 끝에 오늘 벌어진 일을 언급했다.
“멀드윈이 찾아와 행패 부린 건 다들 알고 계실 거예요. 레인 의원께서 오시지 않았다면, 큰일이 생길 뻔한 상황이었죠.”
“놈들이 협박한 거야 어디 하루 이틀입니까. 그냥 개가 짖는다고 생각해야죠.”
“그러다 물으면요? 불 지른다고 난리 치는 데, 진짜로 그럴지 누가 알겠어요.”
“그렇게까진 못할 겁니다.”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확신하냐고요.”
탁탁.
부의장 플러가 탁자를 치며 말했다.
“피치양. 그래서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입니까?”
“불안한 환경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최소한 안전을 책임질 보안관은 있어야죠.”
“흠. 우리도 여기저기에서 물색하고 있습니다만, 마땅한 인물이 안 나오더군요.”
피치의 말이 맞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도 지원을 하지 않는데 방법이 있나.
‘슬슬 손을 들어 볼까.’
막스는 얼굴에 철판 깔고 손을 들 각오를 하고 있었다. 총 뽑는 것처럼 그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릴 때였다.
갑자기 피치가 손가락으로 막스를 가리켰다.
“홀리데이씨가 고용한 저 동양인. 유명한 갱단을 물리쳤다고 들었는데, 그 실력이면 충분한 거 아닌가요?”
‘저 말 하려고 나를 그렇게 쳐다봤구나.’
살짝 실망감이 들지만, 괜찮다.
막스에게는 저절로 굴러온 기회였으니.
장내의 이목이 막스에게 쏠렸다.
원하던 흐름이지만, 눈빛들이 상당히 부담스럽다.
부의장은 찰스 로빈슨을 쳐다보며 해답을 구하고. 그는 막스를 훑어보며 말했다.
“보안관은 분명 있어야겠죠. 다만 홀리데이가 제안할 당시에도, 상당한 논란이 있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나이도 어리고. 전혀 우리 마을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솔직히 동양인이 뭘 알겠습니까. 총만 잘 쏜다고 될 자리는 아니죠!”
“총을 잘 쏘긴 해?”
반대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홀리데이가 막스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 실망하지 않는다고 약속했지?
‘이 양반이 웃고 있네?’
막스는 홀리데이 면상에서 눈을 돌렸다.
그리고 향한 곳은 제임스 헨리 레인.
그를 강렬하게 쳐다보며, 눈을 깜빡여 모스 신호를 보냈다.
· · · — — — · · ·
일명 SOS 신호.
알아듣겠냐 만은, 의외로 레인의 눈빛이 반짝인다.
‘호오, 보안관이 하고 싶다 이건가?’
이 타이밍에 저 짓거리를 할 이유가 있을까.
부하들을 구해준 것에 대한 보답.
레인은 자신이 약속한 걸 떠올리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번쩍 손을 든다.
“오, 레인 의원님 말씀하시죠.”
부의장이 발언권을 레인에게 주었다.
워낙 강력하게 반대했던 자라, 다들 그가 어떻게 동양인을 깔아뭉갤지 내심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저는 일단 찬성입니다.”
“컥.”
홀리데이가 짧은 비명을 토했다.
장내 곳곳에서도 그와 같은 반응이 튀어나왔다.
“흠흠. 일전에는 그렇게 반대를 하시더니. 갑자기 왜···.”
“피치양의 말마따나, 보안관의 부재가 꽤 큰 것 같더군요. 저 친구 실력이라면 나쁠 건 없죠.”
“갱단 잡은 건 우연일 수도 있습니다. 소문은 과장되게 마련이니까요.”
부의장도 막스가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안 될 이유를 굳이 찾으려 했다.
“우연은 아닐 겁니다. 우리에게 목재를 공급해줄 아이작 코디를 위험에서 구해줬고. 보더 러피안에게 포위당한 부하들도 저 친구 덕에 무사할 수 있었으니까요.”
“아니, 그 말이 사실입니까?”
누군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레인은 감히 자기 말을 의심하냐며 그 남자를 노려봤다.
딸꾹.
남자는 슬며시 뒤로 몸을 뺐다. 그리곤 딸꾹질을 멈추기 위해 가슴을 두드렸다.
멕시코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장교.
애리조나의 현역 하원 의원.
그리고 그를 추종하는 부하들이 열 명.
레인의 카리스마는 장내를 침묵으로 몰아넣고, 그런 다음 말을 이어갔다.
“다만, 아직 저 친구에 대해 잘 모르니 한번 물어보도록 하죠. 보안관이 뭔지. 왜 하고 싶은지를요.”
‘이거 면접 분위기인데.’
막스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장내를 둘러봤다.
각양각색의 눈빛들이 저마다의 생각을 내비치고 있다. 일부는 동양인 주제에 말이나 제대로 할 수 있는지 궁금한 눈치였고.
막스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홀리데이씨가 제게 그러더군요. 곁에서 마을 사람들까지 보호해 달라고요.
그 일이 보안관이 하는 일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이유가 다인가?”
이번엔 의장인 찰스 로빈슨이 물었다.
조금은 실망스러운 눈빛이었다.
막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행동하기 위해선 그에 맞는 권한이 있어야 합니다. 총에 담긴 정의는 동양인이 아닌 마을을 등에 업어야 가능한 일. 오늘처럼 누군가가 위협을 가한다면 제가 쏜 총은 아무런 의미가 없죠.”
막스는 장내를 둘러보며.
“실력은 이미 레인 의원께서 증명해주셨고. 나이는 보안관 일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겁니다. 남은 건, 제 피부색인데···.”
잠시 말을 끊은 막스는 좀 더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흑인들의 노예 해방과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오신 분들이 설마 피부색을 따지진 않겠죠.”
“......”
“게다가 또 하나의 이점은. 외부에서 볼 때, 이 마을의 진정성을 알 수 있는 척도가 된다는 겁니다. 자유 신분의 흑인들이 거주하고 동양인이 보안관으로 있는 마을. 이는 곧 로렌스를 자유의 상징적인 도시로 만들게 될 겁니다.”
실제로 미래에 그렇게 되기 때문에 허풍은 아니었다.
‘반쯤은 넘어온 것 같은데.’
막스는 쐐기를 박기 위해 장내를 둘러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인종 차별 없는 동등한 인간으로서. 저는 마을을 위한, 마을에 의한, 마을에! 속한 보안관이 될 것을 약속드립니다. 이만 말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보안관 되기 더럽게 힘드네.’
인구 232명의 개척마을.
대통령 연설도 아니고, 이게 뭔 짓인지.
조금은 구차해 보이기도 하지만.
마지막 말의 여파가 컸는지, 눈빛들이 몽롱하다.
“괜찮은데? 보기보다 말도 잘하고.”
“레인 의원도 찬성하셨으니, 맡기는 것도 나쁘진 않겠네요.”
반대 여론은 수그러들고, 긍정적인 말들이 오고 갔다. 찰스 로빈슨은 부의장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후보의 말을 들었으니, 이제 표결을 하도록 하죠.”
보안관은 선출제. 이곳에 모인 자들의 과반수만 획득하면 된다.
“그럼 동양인···. 참, 자네 이름이 뭐지?”
“막스 조요.”
“막스 조가 보안관이 되길 바라시는 분은 손을 들어 주십시오.”
막스는 담담하지만, 그를 추천한 피치라는 여인은 꽤 긴장한 얼굴이다.
그래서인지 가장 먼저 손을 들었고,
- 나 완전 당한 것 같은데!
입을 삐죽 내민 홀리데이도 이내 웃으며 손을 들었다.
결과는, 반대 없는 만장일치.
“앞으로 잘 부탁하네.”
“젊은이가 대단하구만.”
사람들의 격려, 그리고 레인은 다가와 막스의 어깨를 두드렸다.
“자네 말이 총솜씨에 버금가더군. 앞으로 잘 지내보세나.”
“감사합니다.”
피치는 아무런 말 없이 막스 앞을 지나쳤다.
회의가 끝난 다음 날.
마을 초입에 천막을 세워 페인트로 글씨를 써넣었다.
SHERIFF Office.
주가 되지 못한 캔자스 준주.
정식으로 등록되지 않은 개척 마을.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임시 보안관이 된 막스 조.
그 첫날, 로렌스의 보안관 사무실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천막 좀 고쳐줘, 보안관.”
“말 한 마리가 도망갔어, 찾아줘 보안관!”
“자네 카드 좀 하나?”
‘이게 아닌데.’
하루 새 다크서클이 눈밑까지 내려오고.
막스의 얼굴을 확인한 홀리데이가 혀를 끌끌 찬다.
“얼른 서류나 만들어요.”
“알았다니까 그러네. 그나저나, 보안관 뱃지가 없어서 그런가, 뭔가 어색하다.”
“뭐, 그게 중요합니까.”
이때 7살 정도의 여자 아이가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저, 이거 만들어 왔는데···.”
수줍게 내민 건, 종이로 만든 별 모양의 보안관 배지.
글씨는 엄마가 써준 모양이다.
막스는 소중히 받아 들고는 갈색 머리의 아이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이름이 뭐야?”
“수잔 리치필드요.”
“그렇구나.”
막스는 종이 배지를 가슴에 달며.
“이제야 진짜 보안관이 됐네. 고마워.”
“마을을 잘 부탁드려요. 보안관 아저씨!”
‘.......’
필요에 의해 보안관이 되려 한 건데,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진다.
척박한 서부의 땅.
노예제를 둘러싼 갈등.
두려움 속에 하루를 살아갈 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 한 곳이 뜨거워진다.
아이는 고개를 숙이곤 재빨리 천막을 벗어났다. 홀리데이는 웃으며 막스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루이스 리치필드씨의 셋째 딸이야. 숫기 없는 애가 큰 용기를 냈네.”
“기특하네요.”
물론 모든 아이가 수잔 같지는 않았다.
“동양인 아저씬 바다 건너서 왔어요?”
“총 잘 쏴요? 보여줘요, 아저씨!”
“아저씨 아니라 보안관이다···.”
“그게 뭔데요?”
“대장장이 비슷한 건가.”
“대장장이는 또 아네?”
‘아이라 모를 수 있지. 암.’
그런데 때마침 밖으로 나갔던 홀리데이가 다급히 천막으로 들어왔다.
“밖에 수상한 놈들이 오고 있대.”
“!”
‘드디어 밥값 할 때가 왔구나.’
라이플을 챙긴 막스는 아이들을 보며 말했다.
“잘 봐둬. 보안관이 뭐 하는 사람인지.”
새로운 개척마을
말을 타고 마을로 접근하는 남자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다가오는 놈이 셋.
버젓이 권총과 라이플로 무장한 걸 봐선 평범한 놈들은 아니었다.
막스 옆에 선 홀리데이가 말을 건넸다.
“보더 러피안들이 이런 식으로 마을에 나타난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지금까지는 다른 정착민들을 내세워 마을에 깽판을 쳤지, 이렇듯 무장한 채접근한 적은 없었다.
“글쎄요. 한번 물어봐야죠.”
말하는 사이 놈들과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마을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불안한 기색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