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여기서 꼼짝 말고 있어 봐요.”
막스는 홀리데이를 놔둔 채 무리에게 다가갔다.
“응?”
“뭐지, 이놈은?”
놈들은 동양인이라는 것에 놀라고, 배지를 본 뒤엔 눈가를 파르르 떨기까지 한다.
“말세구나, 말세야. 쿨리 놈이 보안관 놀이를 하고 앉아있네.”
“왔으면 용건이나 말해.”
“어허. 어디서 건방지게. 어른들한테 볼일 있으니까 넌 마저 놀아, 쿨리 새끼야.”
막스는 짜증나는 얼굴로 말을 내뱉었다.
“로렌스 마을의 보안관이니까, 볼일 있으면 나한테 말해.”
“보안관?”
놈들은 서로를 바라보더니 어깨를 들썩거렸다. 그리곤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보안관 없다고 들었는데, 무슨 개소리야.”
“로렌스인지 뭔지. 아무튼, 동양인 애새끼를 보안관으로 내세울 정도면 알만하다. 사람이 그렇게 없어? 시발, 내가···.”
“한 마디만 더 해 봐.”
“이 건방진 새끼가!”
리더가 총을 뽑기도 전,
어느새 뽑힌 막스의 총이 그자를 겨눈다.
탕!
리더의 머리에 쓴 모자에 구멍이 뚫리고.
엄청난 속도에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침을 삼켰다.
리더는 미간을 찌푸리며 한발 물러섰다.
“한 마디 더 안해?”
“......”
‘이 종이배지 단 미친 새끼가···.’
총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쏜다.
리더는 식겁한 얼굴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그런데 이때.
“뒈져라, 새끼야!”
그 순간 세 놈 중 슬쩍 가려져 있던 놈이 총을 뽑았다.
탕!
탕!
“히익!”
“끄악!”
두 발의 총성과 두 마디의 비명.
첫발은 막스가 쏜 것으로 총을 뽑은 놈의 왼쪽 귓불을 날려버렸고.
맞은 놈은 놀란 건지 앞에 있던 동료의 팔에 총을 쏘아 두 번째 총성을 울렸다.
‘팀킬!?’
막스도 놀라고 같은 편도 놀랐다.
“이, 이 병신새끼가!”
욕설이 같은 동료에게로 향했다.
왼쪽 팔의 옷 끝이 찢어진 거로 봐선 피부 겉을 맞은 것 같다.
다행히 마을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
그들은 막스가 동시에 두 명을 맞췄다며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막스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뭐야, 너네 서커스단이야?”
“윽.”
정곡을 찔러서라기보단, 두 놈의 고통스런 신음이었다. 귀 떨어진 놈과 팀킬당한 두 놈은 끙끙 앓고 있고.
리더는 잔뜩 움츠러들었다.
“꺼져, 이마에 총알 박히기 전에.”
막스를 노려본 리더는 행여 뒤에서 쏠까, 뒤를 힐끔거리며 일행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곤 이내 마을에서 멀어져갔다.
‘뭘 노리고 온 거지.’
막스가 사라진 그들에게서 등을 돌리자,
마을 사람들은 손을 흔들며 환호했다.
더러는 엄지를 추켜세우기도 한다.
“역시 보안관이 있으니까 든든하구나!”
“소문이 사실이었어.”
“아휴. 이제 안심해도 되겠어요.”
막스를 보안관으로 추천한 피치.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휙하니 고개를 돌리며 사라졌다.
‘성격을 알 수가 없어.’
한편 아이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완전, 멋졌어요!”
“저도 아저씨처럼 되고 싶어요!”
“이게 보안관이다.”
막스가 씩 웃음을 지을 때, 홀리데이가 활짝 미소를 지은 채 다가왔다.
“와, 솔직히 소문만 믿고 널 고용한 건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세 명을 그냥 개 쫓듯이 돌려보내네.”
홀리데이가 탄성을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
“근데 대체 왜 온 거야?”
“글쎄요. 한가지 의심해볼 건 있죠.”
아직은 무법자가 많지 않은 시기.
있다 하더라도 대부분은 캘리포니아 혹은 뉴멕시코에서 총질하며 강도질하고 있을 때다.
그러니 이런 개척마을에 뭐 먹을 게 있다고 갱단이 오겠는가.
“놈들을 보낸 자들은 노예주일 가능성이 커요.”
“뭘 노리고?”
정착민들에게 공포와 불안감을 심어주고, 자유주와의 충돌을 본격화하는 것.
미래의 지식을 비춰보면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땅 가지고 훼방 놓는 거랑, 비슷한 맥락인 거죠.”
턱수염을 매만지던 홀리데이가 막스에게 물었다.
“공포와 불안감을 조성해서 저놈들이 얻는 건?”
“주민 투표죠.”
3월 30일.
캔자스 입법부를 선출하는 선거의 결과로 노예주와 자유주로 갈리게 된다.
미주리는 노예주. 그들이 원하는 건 캔자스를 같은 노예주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 모든 건 그 날을 위한 밑밥으로도 볼 수 있었다.
“공포와 두려움이 스며들면, 마을 내에서 내분이 일어납니다. 설사 티는 안내더라도 투표 당일엔 작은 폭력에도 쉽게 무너지거든요. 노예주들은 그걸 시험하는 거예요. 어느 마을이 취약한지.”
캔자스엔 로렌스만 있는 게 아니다.
심지어 그조차도 정착 집단에 따라 여러 곳으로 쪼개져 있다.
막스는 NEEAC에서 보내온 이주민들이 모인 아주 작은 마을의 보안관일 뿐이었다.
로렌스 외에 리븐워스, 키카푸, 델라웨어, 애치슨, 레컴프턴, 마운드 등등.
보더 러피안은 캔자스 전역의 마을 투표권을 장악하는 게 목적이었다.
홀리데이가 막스를 빤히 쳐다본다.
“넌 왜 이렇게 잘 알아?”
“3개월 전에 했던 하원 선거도 마찬가지 아니었나요.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예상할 수 있는 그림 아닙니까.”
“난 전혀 예상 못 했는데.”
‘거짓말.’
세세한 상황까진 아니더라도, 홀리데이 역시 돌아가는 판을 아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로렌스 협의체의 구성원으로서 마땅한 역할도 없고 꽤 한가하게 보이지만.
머릿속엔 몇 수를 내다보고 있는 자다.
노예제, 마을의 미래, 사업적인 면까지.
하루 내내 머릿속으로 복잡한 궁리를 하고 있을 게 빤하였다.
막스가 이렇듯 확신하는 이유는.
홀리데이가 로렌스가 아닌 자신이 족적을 남길 곳. 새로운 마을을 계획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막스가 처음 홀리데이에게 관심을 둔 것도 이 부분이 컸다.
그리고 오늘 일의 영향탓인지.
자신의 계획 일부를 보여주려 한다.
“며칠 뒤에 나랑 어디 좀 가자. 너한테 보여주고 싶은 곳이 있어.”
"멀어요?"
"아니. 반나절이면 충분해."
*
마을은 잠시 비워두고,
막스는 홀리데이와 함께 캔자스강을 따라 북서쪽으로 향했다.
“저기 보이는 마을이 레컴프톤이야. 주지사가 저곳에 머물고 있어서, 지금은 캔자스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지.”
마을의 성향은 노예제도를 옹호하는 자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노예주들은 이곳 레컴프톤을 사실상 캔자스의 주도로 여기고 있었다.
“레인 의원과 일전에 만났을 때, 보더 러피안들이 저기로 가던 길이었나 보네요.”
“리븐워스에서 오는 길에 마주쳤다면 그럴 수 있지.”
홀리데이에겐 다소 위험한 마을이지만, 막스에게 보여주기 위해 조금은 가까운 길로 지나가고 있었다.
레컴프톤을 지나쳐 홀리데이는 허허벌판인 곳으로 막스를 안내했다.
로렌스와는 24마일(38km) 떨어진 곳이다.
“여기가 내가 계획하는 새로운 캔자스의 중심 도시. 그리고 자유인들이 마음껏 살아갈 땅이야.”
‘자유인이라.’
막스는 홀리데이를 힐끔 쳐다봤다.
그는 평원을 보며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흑인과 백인이 동등한 위치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곳.
‘그리고 당신의 무덤이 있을 곳이지.’
나쁜 의미는 아니다. 자신이 개척한 도시에서 죽을 수 있는 건 영광일 수도 있으니.
“여기 어떤 것 같아?”
“좋네요.”
“어떤 점에서?”
홀리데이가 집요하게 물었다.
“일단 위치가 나쁘지 않습니다. 사실 로렌스는 미주리와 너무 가깝거든요. 노예주의 폭동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죠.”
“와, 너도 나랑 같은 생각이구나. 내가 찰스 의장을 설득한 것도 그런 이유였어. 머지않아 캔자스에 피바람을 불러올 것 같거든. 가능한 노예주와 거리를 두고 싶었어.”
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홀리데이는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이곳 이름이 뭔지 알아?”
‘토피카겠지.’
“토피카야!”
“그렇군요.”
“그게 무슨 뜻인 줄 알아?”
“모르죠.”
“감자 캐기 좋은 땅이래. 사실 어디 가나 감자야 잘 자라지만, 인디언들이 특히 이곳을 그렇게 불렀다더라고.”
“별 의미는 없어 보이는 데요.”
“소리가 경쾌하잖아. 토피카.”
홀리데이는 이곳에 심취해 있었다.
로렌스는 몸이 머무는 곳, 토피카는 그의 정신이 깃든 곳이랄까.
“사실 보안관 한다고 할 때는 긴가민가했는데. 며칠 전에 보니까, 확신이 들더라.”
“뭐를요?”
“네가 여기를 지켜줄 것 같은 생각.”
“나중에 잘 되면, 한자리 주는 겁니까?”
“물론이지. 너와 함께 이 도시를 키운다면 의미가 클 것 같은데?”
홀리데이는 진심 어린 얼굴로 막스를 쳐다봤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은 아니었다.
시작은 총솜씨였지만, 막스의 면면을 살펴보고 내린 결론이었다.
‘나도 여기에 내 역사를 심어 볼까.’
막스 역시 드넓은 평원을 보며 생각했다.
홀리데이가 꿈꾸는 것처럼, 자신도 역사의 한 조각을 차지하고 싶다고.
미국의 여느 대도시처럼 유명하진 않지만, 그 시작을 함께 한다는 건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다 봤으면, 돌아가죠.”
“어. 그래. 마을을 오래 비우면 안 되지.”
*
토피카를 둘러보고 돌아온 막스는 사무실 책상에 앉았다.
홀리데이는 맞은 편에서 한가하게 책을 읽고 있었다.
탁탁.
막스는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열심히 머릿속 계산기를 두드렸다.
기존의 지식들을 꺼내 이리저리 살폈다.
그러던 끝에 막스는 홀리데이에게 말을 건넸다.
“땅을 둘러봤으니까, 이제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요?”
“뭔 얘기?”
“주지사나 기타 자리에 앉으려면 조건이 있는 거로 아는데요.”
막스의 말에 홀리데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있지. 북서부 영지법이라고. 주지사는 해당 지역에 거주하고, 자유 토지는 어느 정도 보유해야 하는지 정해진 법이지.”
홀리데이는 이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로렌스도 그렇지만, 마을의 시작은 토지가 절대적이다.
그런 이유로 막스는 토피카의 상황이 궁금했다.
“토피카 도시 건설 자금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요?”
“동부의 재력가들이 관심을 보이긴 하는데 아직은 부족해. 계속 진행 중이야.
근데 이거 왜 묻는 거야?”
“너 설마···.”
홀리데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제 천 달러 중에, 500달러 거기에 넣어줘요.”
“!”
애초에 이럴 목적으로 홀리데이에게 맡긴 돈이다.
토피카의 의미는 시작하는 정착지의 의미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토피카는 캔자스의 주도가 된다.
막스는 전생에 그곳을 지나갔고, 커다란 빌딩들도 본 적이 있었다.
홀리데이는 도시 대부분의 땅을 거머쥐며, 이는 철도 사업을 뛰어들 밑바탕이 된다.
‘그러니까 나도 껴야지.’
작가의말
피치의 머리 색이 금발이 아닌 갈색으로 수정하였습니다.
보안관 사무실
현 상황에서 막스의 흥미를 끄는 인물은 눈앞의 사이러스 컬츠 홀리데이.
‘다방면으로 일을 벌인단 말야.’
물론 이 시기엔 홀리데이 같은 자들이 많긴 하다. 하지만 그는 아직 막스에게 말하지 않은 것들이 더 있었다.
‘양파 같은 인간이야.’
한편 홀리데이에게도 막스 역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이었다.
캘리포니아에서 사금 채취하고 있어야 할 동양인이 노예주인 미주리에서 튀어나오질 않나. 파이브 호아킨스라는 거물 갱단을 잡아 거액의 현상금을 받지않나.
‘이젠 토피카에 투자를 해?’
“뭘 또 그렇게 쳐다봅니까.”
“막스 너 말야. 왠지 천 달러 맡길 때부터, 미리 알고 있던 것 같아.”
“뭘요?”
“토피카 말야.”
“그럼 천재네요.”
“그건 아닌 것 같고.”
홀리데이는 입맛을 다시며 더는 말을 걸지 않았다.
*
며칠 뒤.
[사랑하는 나의 아내 메리.
나는 캔자스 강을 따라 로렌스에서 24마일 떨어진 곳에서 새로운 도시를 만들고 있어. 여러 사람이 돕고 있고, 그곳은 “정착된” 지역의 중심에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