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화 (22/360)

전체 도시를 비교하면 아마도 가장 좋은 위치가 아닐까 해. 나는 이 결정을 확신하고 있거든.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는 땅이 마법 같이 바뀌는 동안 태양은 이 모든 과정을 찬란하게 비추고 있을 거야.

여기 마리아님, 하나님의 친절한 허락하에 우리의 보금자리도 지어질 거고.

아, 그리고 당신이 오면 소개해 줄 사람이 있어. 아주 재미있는 친구야.

친구의 의미가 조금 다르긴 한데.

로렌스 마을의 보안관이고, 앞으로 내 사업을 함께 할 것 같아.

아마 당신이 만나 보면 깜짝 놀랄 거야.

사랑스러운 딸 릴리, 조만간 태어날 아기.

우리 가족이 함께하는 날이 머지않았음을 전하며, 몸 건강하길.

홀리데이가 사랑하는 아내 메리 딜런에게.]

막스는 봉투를 밀봉하는 홀리데이에게 물었다.

“결혼한 줄 몰랐네요.”

“한 2년 됐어. 펜실베니아에 있는데, 보금자리가 마련되면 데려올 생각이거든. 천막은 좀 그렇잖아?”

홀리데이는 피식하며 말했다.

“나는 좀 늦었지만, 서부에선 다들 일찍 결혼해. 너도 19살이면 생각해볼 때는 됐지.”

“여자는요?”

“이곳에 세 명이 혼자더라. 둘은 여관을 운영하고 있고, 다른 한 명은 알지? 너한테 관심 있어 보이던데.”

에밀리에 파운 피치.

그녀의 관심은 동양인이라는 호기심 정도에 그치지 않을까. 그게 아니더라도, 막스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난 혼자가 좋습니다.”

서부의 척박한 땅을 혼자 개간하기엔 무리가 있을 터. 해서 대부분 이른 나이에 결혼하고 자식을 줄줄이 낳곤 한다.

이 시대의 흔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삶이고.

‘창창한 나이에 미쳤다고 얽매여 살아.’

“참, 며칠 전에 말한 것 말야.”

홀리데이가 토피카에 관한 말을 꺼냈다.

“아직 네 신분이 명확하지 않으니까, 내 이름으로 투자하되 우리 사이의 계약은 따로 하는 게 좋겠어.”

“당연히 그래야겠죠.”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만들어 왔다.”

“오, 빠르네요.”

홀리데이는 원래 법학자가 되려 했다.

실제로 법학 학위가 있기에 공문서를 작성하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

“규정대로 공적 토지 매입은 에이커당 2달라···.”

“훗. 1.25달러인 거 알고 있습니다. 공적 용도는 특별 입찰로 값이 내려가는 것도 알고 있고요. 어디서 약을 팔아요.”

“......흠흠. 어찌 됐든. 그렇게 하면 넌 625에이커를 할당받는 거지.”

‘625에이커면 76만 5천 평.’

여의도 90만 평에서 조금 빠진다.

토피카의 총면적 4천 8백만 평의 1.5%에 해당하는 면적이었다.

토지 할당으로 기금을 조성하고, 이는 공탁금 형식으로 정부에 계약금과 함께선점을 알린다. 이후 개인에게 일정 토지를 판매하여 생긴 수익이 마을의 공적 자금으로 마련되고...

아무튼 꽤 복잡한 구조였다.

“위치는 상관없지?”

“캔자스강 이남으로 해주세요. 가능하면 강하고 2마일(3.2km) 거리가 좋겠네요.”

“강 이남을 원하는 이유가 뭔데?”

“전 강남 스타일이거든요.”

홀리데이가 막스를 빤히 쳐다봤다.

“나랑 어쩜 똑같냐. 이거 볼래?”

그는 자신이 생각한 마을 구상도를 내밀었다. 막스의 생각과 비슷했다.

‘나야 그렇다 쳐도. 이 양반은 부동산에도 감이 있네.’

사실 토피카가 주도라고는 해도 대 도시에 견줄 바는 아니다.

그냥 투자보다는 자연경관 좋고 조용한 도시에 흔적 남기는 정도랄까.

다만 이 투자로 인해, 막스는 캔자스의 중심에 다가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주지사, 시장, 그 외 핵심 권력층이 바로 토피카의 창립 멤버에서 나올 테니까.

*

로렌스 마을에 회의가 열렸다.

보안관은 회의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 막스 역시 참석한다.

화두는 목재가 오는 대로 공사를 할지 말지의 여부. 하지만 의견이 엇갈렸다.

“토지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다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리븐워스의 제재소에선 이미 목재를 싣고 출발했다. 하지만, 부의장 플러는 법적 해결을 우선으로 두고 있었다.

“노예주의 방해가 뻔한데, 서류상 문제가 없으면 공사를 바로 시작하는 게 맞죠.”

“그러다 문제가 생기면요?”

“무슨 문제요? 설마 놈들이 전쟁이라도 일으키겠습니까?”

설전이 오고 가고. 홀리데이 역시 이 문제에 있어서는 공사하는 게 맞다며 소리를 높였다.

의장 찰스 로빈슨은 장내를 정리하며 말했다.

“상대의 저항이 심하면, 자칫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제가 걱정하는 게 바로 이런 이유죠.”

찰스 로빈슨은 한 곳을 응시하며 물었다.

“우리 보안관의 생각을 들어봅시다.”

사람의 이목이 쏠리고, 막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사를 강행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주지사가 토지분쟁에서 상대편을 들어주면, 건물을 허무는 수가 있을 텐데.”

안전이 걱정이라면서 찰스 로빈슨은 사건의 본질을 언급한다.

‘이 양반이 나를 시험하나.’

홀리데이에게 토피카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서일까. 막스의 식견을 슬쩍 떠보는 느낌이다.

“주지사가 결정을 미루는 건 노예주들의 압박 때문이라는 걸 아실 겁니다.”

“그러니 더 난감한 상황 아닌가?”

“중요한 건 주지사가 결정을 미루는 이유죠. 우리 손을 들어주고 싶은데 마땅한 구실이 없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찰스 로빈슨이 턱을 매만지며 막스의 말을 확인하듯 물었다.

“구실이란 게 무엇을 말하는 거지?”

“본인이 빠져나갈 구멍. ‘나도 어쩔 수 없었다.’라는 일종의 변명거리죠.”

실제로 주지사가 앞으로 보일 오락가락 행보를 보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머리는 노예주 폐지론자에 가깝지만,

몸은 옹호론자들에게 둘러싸인 현실.

그게 현 주지사의 상황이었다.

잠시 골몰히 생각하던 찰스 로빈슨이 막스에게 물었다.

“구실을 만들려 강행하다, 물리적 마찰이 생기면. 그때 어쩔 텐가?”

“막아야죠. 그러라고 보안관에 앉혀준 거 아닙니까?”

자신감 충만한 모습은 땅 문제가 해결된다는 걸 알기에 보인 행동이다.

노예주에서 원하는 건 선거 때까지 시간을 끄는 것. 하지만 놈들에겐 시작된 공사를 막을 명분이 없었다.

그리고 주지사는 마지못해 우리 쪽에 손을 들어줄 것이고.

“자네 말대로면 공사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군.”

“그게 주지사를 돕는 거죠.”

*

1월 10일.

첫 번째 목재가 도착했다.

노새들이 이끄는 마차 행렬이 리븐워스 서쪽에서 출발해 마침내 도착한 것이다.

3시간이면 충분한 거리를 무려 이틀이나 걸렸으니, 그들이 싣고 온 양이 워낙 많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혹시 모를 습격을 막고자 레인 의원의 호위 아래 무사히 마을로 도착할 수 있었다.

환호하는 마을 사람들과 섞여 일행들을 지켜보던 중.

중년의 수염을 기른 남자가 막스에게 다가온다.

제재소를 운영하는 아이작 코디.

버팔로 빌의 아버지였다.

그는 막스에게 다가와 덥석 손을 잡았다.

“고맙다는 인사를 이제야 하는구만.”

“어깨는 괜찮습니까?”

“물론이지. 다 자네 덕분일세.”

아이작은 어깨를 이리저리 돌리며 멀쩡하다는 걸 확인시켜줬다.

둘 사이를 호기심 있게 쳐다본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저마다의 추측을 하고 있었다.

“아드님은 잘 지내고 있나요? 영특하게 생겼던데.”

“아들이면···. 아, 윌리엄 말이군. 요즘 인디언 친구들과 뭘 하고 돌아다니는지 집구석에 있질 않네.”

본인이 바빠서 얼굴 보기 힘들다는 건 생각 안 하는 모양이다.

어찌 됐든, 아이작 코디는 총 세 번에 걸쳐 결혼하고 자식들만 여덟.

그중 첫째 아들이 죽어 실질적으론 윌리엄 프레데릭 코디가 장남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 위로는 전부 누나들이었고.

‘인디언들과 지내면서 말과 활을 배우고, 야생의 법칙을 습득하고 있겠구만.’

이런 경험이 윌리엄 코디를 버팔로 빌로 만들어주는 토대가 될 것이다.

“그나저나, 그때 일 이후로 문제가 생기진 않았습니까?”

“흥. 제깟 놈들이 그래 봐야 나를 어쩌진 못할 걸세. 그런다고 내 신념이 바뀌진 않을 테니까.”

아이작 코디의 눈빛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오히려 노예제 폐지에 대해 어떻게 하면 더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는지를 모색하고 있었다.

“아, 이건 제임스라는 친구가 전해달라고 하더군.”

아이작 코디가 꽤 묵직한 가죽 바구니를 내밀었다.

그 안에 든 것은 음식들이었다.

메리가 제임스에게, 그리고 조지에게 건네준 것으로 보인다.

막스는 가슴 뭉클함을 느끼며, 아이작 코디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럼 또 보자고.”

아이작은 직원들과 함께 목재를 마차에서 내려놓기 시작했다.

지금은 천막이라 모여있지만, 각자 흩어져 할당된 토지에 집을 짓게 될 것이다.

정착민의 삶. 그 고되고 힘든 삶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

탁탁. 깡깡.

막스는 건물 짓는 걸 돕고 있다.

마을 사람들 대다수가 동원된 공사는 다름 아닌 학교를 짓는 일이었다.

“보안관 말고 목수가 잘 어울리겠는데?”

“뭘 하든 다 잘 어울립니다.”

“말하기 싫어지네.”

에밀리에 파운 피치. 그녀는 막스 옆에 붙어 보조를 맡고 있었다.

원해서는 아니고, 공사 책임자가 그렇게 짝을 지어줬다.

“몇 살이야?”

“19살이요. 그쪽은요?”

“숙녀 나이 묻는 거 아니야.”

“......”

“글도 읽을 줄 안다며?”

“그게 신기해요? 동양인이라?”

“너 자격지심 있구나. 백인들도 글 못 읽는 사람 많아서 물어본 거야. 여긴언제 왔어?”

막스는 망치질하며 대답했다.

“몇 년 됐어요.”

“동양인이니까, 캘리포니아에 왔겠고. 당연히 땅도 없겠지?”

“땅 있으면 왜요?”

“땅이 없으면 남자는 아무것도 아니거든. 특히 서부에선.”

잠시 손을 멈춘 막스는 피치를 돌아봤다.

새삼 이지적으로 생긴 이목구비가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막스의 입에서는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일하는 데 상당히 방해되는데요?”

“알았어. 조용할 게.”

피치는 손가락으로 입을 막는 시늉을 했다.

이후로는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이상해.’

막스는 고개를 절레 저으며 망치질에 집중했다.

학교가 완성된 건 그로부터 사흘 뒤.

1월 16일이 로렌스의 첫 학교 개교일이 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그 시작을 축하했다.

학교에 이어 교회가 만들어지고, 협의체의 공동 회관도 지어졌다.

그러는 동안 어떤 방해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막스를 부른 찰스 로빈슨은 직접 한 가지 소식을 알렸다.

“자네 말대로 되었네. 주지사가 우리 쪽에 손을 들어줬어.”

수개월째 지지부진하던 결정이, 공사 시작 보름 만에 결정 나버렸다.

막스의 예측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다행이군요.”

“홀리데이에게 듣긴 했지만, 토피카에도 자네의 힘이 필요할지 모르겠네.”

“함께 한다면 저 역시 영광이죠.”

“앞으로 잘 부탁하네.”

찰스 로빈슨은 온화한 성격이지만, 때론 과감함을 보일 때도 있다. 특히 노예 제도에 관해선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로렌스 정착지를 주도한 NEEAC 소속이 아님에도 협의체 의장이 된 것은 그만한 통솔력과 능력을 지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토지 분쟁의 해결로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술집, 잡화점, 철물점과 같은 상점들이 하나둘 생겨나고 이 기간에 막스는 보안관이 아닌, 목수였다.

그리고 마침내 3월 2일.

로렌스의 메인 스트리트 중간에 보안관 사무실이 지어졌다.

*

스무 평 남짓한 공간.

작은 철제 스토브와 옷걸이.

창문의 햇살을 등지고 책상에 앉은 막스.

‘어디 한번.’

책상 위에 발을 올리곤 의자에 몸을 깊숙이 묻어본다. 그리고 시가를 입에 물었다.

치이이익.

“후우.”

‘이거지.’

막스는 천장을 바라보며 연기를 내뿜었다.

전생에 끊었던 담배조차 다시 피우게 만드는 보안관 사무실. 이 환경이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그래도 많이 피우지는 말자.’

특별한 분위기 만끽용이랄까.

막스가 혼자 실실 웃고 있을 때.

삐걱 삐걱.

스윙도어가 소리와 함께 한 남자가 들어왔다.

예수님처럼 수염을 기른 다소 이마가 넓은, 캔자스 자유의 전령(Kansas

Herald of Freedom) 신문 편집자 조지 워싱턴 브라운이라는 자였다.

NEEAC 이민자 파티에 섞여 온 그는 캔자스 최초의 자유주를 대표하는 신문 발행인이다.

툭.

“방금 인쇄한 따끈따끈한 신문이야.”

“웬일로 직접 들고 오셨어요.”

“그만큼 중요한 소식이 있다는 얘기지.”

브라운은 소파에 등살이 여러 개 난 윈저체어에 앉아 시거를 물었다.

순식간에 둘이 내뿜는 연기가 사무실 안을 가득 메웠다.

“노예주들의 행동이 심상치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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