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심상치 않았잖아요.”
“이번엔 의도가 빤히 보이거든. 놈들이 자기 쪽 신문사들을 이용해서 지금 뭐라고 선동하는 줄 알아?”
생각만 해도 어이가 없는지 조지 브라운은 헛웃음부터 터트리고는 입을 열었다.
“이번 선거를 위해, 자유주가 이곳 캔자스로 이주민을 보낸다. 그 수가 자그마치 3만 명이다. 이렇게 기사를 내보내고 있어.”
“와, 미친놈들이네요.”
거짓 선동의 전형이다.
하지만 꽤 효과적일 것이다.
놈들이 노리는 건.
자유주에서 선거를 위해 이주민 3만 명을 계획하고 있다. 이러다간 진짜 노예들이 해방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노예 옹호론자들이여 어서 빨리 캔자스로 이주하라.
가서 투표에 참여하라.
노예주를 지속시켜라.
이런 메시지를 끊임없이 신문을 통해 내보내고 있었다.
“투표까지 27일 남았네요.”
“주지사가 오늘 유권자 수를 파악하라고 했다던군. 그 숫자를 토대로 표가 나와야겠지.”
캔자스 준주의 입법부 구성.
그 대표 의원을 뽑기 위한 투표가 얼마 남지 않았다.
로렌스는 비교적 조용하지만, 리븐워스와 다른 도시들은 날이 갈수록 긴장이 고조되고 있었다.
캔자스 전역에 이주민이 늘어가고, 그들 대부분은 노예 옹호론자들이었다.
*
“자네가 여긴 어쩐 일인가.”
막스는 제임스 헨리 레인을 찾아갔다.
그는 로렌스 중심에서 1마일 떨어진 곳을 자신의 거처로 삼고 있었다.
“신문 보셨습니까?”
“방금 읽어봤네. 노예주에서 선동질을 심하게 하고 있더군.”
“그래서 말입니다만.”
막스는 그가 생각한 구상을 말하였다.
그 내용인즉.
“민병대를 만들자고? 투표 때문에?”
레인이 눈을 크게 뜨며 놀란다.
“지금 같은 불안한 시기에 의원님께서 민병대를 만드신다면, 아무도 반대하지 않을 겁니다. 마을 사람들은 물론 자유주에도 의원님의 평판이 좋아질 거고요.”
머지않아 민병대의 총사령관이 될 인물이지만, 이번 투표가 폭력으로 번지리라는 걸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역사대로라면 민병대는 투표 이후에 만들어질 테지만, 막스는 그 시기를 앞당기고자 했다.
‘어차피 만들 거 미리 만들면 좋잖아.’
얻는 건 두 가지.
로렌스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 그리고 훗날 레인에 의해 변질될 민병대를 막스가 장악할 토대를 얻는 것이었다.
“흠.”
제임스 헨리 레인의 고민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 역시 민중의 지지를 얻는 정치인. 지금 분위기에서 민병대를 만드는 건 그의 업적으로 기록될 수도 있다.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이 건을 회의에 붙이도록 하지.”
그날, 레인은 말처럼 회의에서 민병대 창설을 제안했다.
그리고 결론은 쉽게 나버렸다.
로렌스 마을의 민병대 창설.
반대 없이 구체적인 이야기가 회의 내내 진행되었다. 그렇게 레인은 자연스레 민병대의 대장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 후.
“줄을 서시오!”
막스의 주도하에 민병대 선발이 이루어졌다.
진격의 보더 러피안
미국의 역사는 대서양 연안을 중심으로 시작된다.
동부의 버지니아주를 기점으로.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미국은 13개의 주가 합쳐진 미연방국가를 이루게 된다.
그리고 로렌스의 정착민들은 동부에서 자유와 신념을 위해, 총이 아닌 성경책을 무기 삼아 건너온 자들이었다.
타타타탕!
그래서인지 총을 더럽게 못 쐈다.
30야드(27m)에서 표적을 맞힌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다들 총은 왜 산 거예요?”
“서부로 간다니까···.”
막스가 구성한 민병대원은 12명.
총기 수만큼 뽑은 탓에 인원이 적었다.
게다가 총기는 박물관 전시 수준.
총기발달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그중 골동품 하나가 막스의 눈에 들어왔다.
미국 독립운동을 이끈 1725년형 펜실베니아 라이플(훗날 켄터키 라이플로 불린다).
총열에 강선이 파인 나름 명중률이 높은 총이었다.
“이거 방금 총알 나갔어요?”
“...... 엉.”
“미국 독립운동 때 쓰던 것 같은데.”
남자가 자랑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가 쓰던 거야. 프린스턴 전투에서 이 총으로 영국군 50명을 잡았대.”
‘설마.’
50번 장전하다 전쟁 끝났겠구만.
쏟아지는 총탄 속, 장전을 위해 우뚝 선 채 긴 총열을 세워 화약을 붓고 탄환
을 넣고, 꼬질대로 쑤셔 한 발을 쏠 수 있는 전장식.
화약 붓는 것도 정확히 재야하고 납알 탄은 얇은 가죽에 감싸 쑤셔 넣어야 하고.
그것도 잘 안 들어가서 망치로 툭 쳐야 들어가니, 이 정도면 극악의 장전속도라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50명을 죽였다면 할 말은 없다.
한편, 골동품이 아닌 2년도 안 된 따끈따끈한 신제품.
엔필드 1853 라이플도 있었다.
퍼커션 캡이긴 하나 이 총 또한 펜실베니아 라이플처럼 전장식이라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막스가 신경 쓰이는 건 엔필드 라이플의 주인이 에밀리아 파운 피치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 선생님? 펜을 들어야지, 총이 웬 말입니까.
- 아이들 지키는 것도 선생님의 의무지. 설마 남자만 받는 거야?
- ...... 그건 아니죠.
- 그럼 뭐가 문제야?
피치와 다른 대원들의 총기들을 일일이 확인한 막스는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한 발을 쏴도 정확한 게 중요합니다. 지금부터 보여주는 자세를 따라 하세요.”
총기 파지, 견착과 사격 자세까지.
막스는 민병대원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일일이 자세를 교정해주었다.
“그런데, 막스 보안관님?”
“예. 말해요, 피치.”
“권총 잘 쏘는 건 알겠는데, 라이플은 아직 본 적이 없네요?”
“제 실력을 의심하는 겁니까?”
“의심이 아니고, 자극이죠. 잘하는 사람을 봐야 동기 부여가 되지 않을까요?”
그냥 딴지 거는 건 아니다.
피치는 진심으로 궁금한 표정이었다.
민병대원들의 눈빛도 덩달아 반짝거렸다. 그들은 막스 등 뒤의 샤프스 라이플을 노골적으로 쳐다보며 총 쏘는 걸 재촉했다.
“뭐, 그렇지 않아도 보여주려 했습니다.”
라이플을 앞으로 가져오며 막스는 피치를 쳐다봤다.
“원하는 거리에 표적 하나 세워봐요.”
“아무 곳이나?”
“멀어도 상관없어요. 그건 안 맞을 테니까.”
피치는 빈 깡통을 들고 꽤 먼 거리까지 이동했다. 대략 300m가량 되었다.
지금의 막스에겐 어렵지 않은 거리.
“다들 저를 따라 하세요.”
막스가 자세를 취하면, 민병대도 똑같이 자세를 취했다.
“목표물을 향해 비스듬한 자세로 선 다음, 개머리판을 어깨에 장착해서 반동을 최소화합니다. 허리는 꼿꼿이 펴고···.”
목표물을 비스듬히 본다고 하여 붙여진 블레디드 오프 자세.
막스는 호흡법까지 일러준 뒤, 표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아앙!
깡!
“오오!”
“저 거리를 맞추네. 이야.”
감탄 뒤에 보내는 존경심 가득한 눈빛.
막스의 입가에도 미소가 그려졌다.
“자세만 좋으면 충분히 맞출 수 있습니다. 그러니 다들 연습을···.”
“응? 저기, 피치 양이 손을 흔드는데?”
피치는 더 먼 거리에서 깡통을 세워놨다.
그리고는 막스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와, 저 정도면 400야드(365m)는 되겠는데?”
“뭐가 보이긴 보여?”
“저걸 어떻게 맞춰? 적도 안 보이겠구만.”
대원들이 눈을 껌뻑인다.
‘내가 못 맞출 것 같아?’
그런데 굳이 맞출 이유도 없었다.
막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여러분이 저 정도 거리에 있는 적을 쏠 일은 없습니다. 설사 있다 해도 앞으로 가서 쏘면 되고. 자, 방금 자세 반복해 볼까요?”
“피치 양은?”
“알아서 오겠죠.”
한참 뒤에 피치가 왔다. 뛰어왔는지 겨울인데도 얼굴에 땀이 맺혀 있었다.
막스는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한창 바쁜 시기니까 일주일에 두 번 모여 훈련하는 거로 하죠.”
집을 막 지었거나, 짓고 있는 자들이 많다.
군인들이 아닌 민병대라 총을 쏘고 간단한 전술 훈련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혹시 미닛맨이라고 들어보신 분?”
절반이 손을 들었다.
독립전쟁 초기 정규군이 없던 정착민들은 영국군과 싸우기 위해 민병대를 조직했고,
‘1분 안에 출동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에서 그들을 미닛맨(Minute-man)이라 불렀다.
한국의 군인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5분 대기조와 비슷한 의미였다.
“총은 항시 사용할 수 있게 손질을 해두고, 일이 터졌을 땐 1분 안에 싸울 준비를 마쳐야 합니다.”
그렇게 첫날 훈련을 마치고, 막스는 보안관 사무실로 향했다.
옆에 피치가 따라붙었다.
그런데 깡통 일이 아닌, 다른 말을 꺼냈다.
“권총은 언제 가르쳐줘?”
“왜요?”
“배우고 싶어서. 총에 관한 건 전부 다.”
“누구 죽이고 싶은 사람 있어요?”
“생길지도 모르지. 아무튼, 권총도 가르쳐줬으면 좋겠어. 그럼 훈련에서 보자고, 보안관님.”
피치가 사라지고 막스는 권총에 대해 고민했다.
‘근접전까지 고려할 상황은 아닌데.’
막스의 목적은 애초에 보더 러피안들의 마을 진입을 막는 것이다. 이는 라이플을 든 민병대를 보이는 것만으로 가능한 일.
만약 투표소로 쳐들어 와 총격전이 벌어진다면 그거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어차피 투표 결과는 정해졌는데, 피를 흘릴 필요는 없지.’
*
민병대를 조직한 지 이주일.
홀리데이가 막스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대원들이 다들 네 얘기 하더라. 귀에 쏙쏙 박히게 설명도 잘하고, 자기들도 서부의 건맨이 된 것 같다고.”
“자신감이 생기면 좋은 거죠.”
게다가 실력들도 좋아졌다.
특히 피치의 사격 솜씨는 놀라울 정도라, 250m의 표적을 잇달아 맞추었다.
- 더 먼 것도 맞춰 볼까?
그 외에도 모건과 홀맨 역시 사격에 재능을 보였다.
‘이래서 교관이 중요하다니까.’
막스와 홀리데이는 탁자에 놓인 신문들을 읽느라 눈만 바쁘게 움직였다.
로렌스의 신문사는 세 곳.
헤럴드 오브 프리덤, 캔자스 트리뷴, 캔자스 프리 스테이트다.
그리고 이들 세 곳이 공통으로 다룬 건 이번 선거의 투표인단.
“캔자스 총인구가 8,601명이고, 그중 유권자가 2,905명이네.”
“인구가 적긴 하네요.”
“준주가 된 지 겨우 반년이 지났잖아. 아무튼, 39명의 입법부 의원 중 우리가 몇 명이나 가져올 것 같아?”
단 2명.
완벽한 노예주의 승리로 끝난다.
“글쎄요. 그걸 누가 알겠어요.”
“근데 막스. 너 얼마 전, 토지 분쟁을 정확히 예측했잖아?”
“그랬나요?”
“공사 시작하자마자 허탈할 정도로 주지사가 우리 손을 들어줬잖아, 네 말대로 된 거지.”
“근데 왜요?”
“이번 사전 유권자 조사까지 한 걸 보면, 네 말대로 주지사가 우리 쪽에 가까운 것 같아서. 공정성을 지키려는 거잖아.”
‘혼자 지키면 뭐하나.’
정작 미국의 14대 대통령 프랭클린 피어스는 남부의 지원을 등에 업은 민주당 출신.
그는 자유주가 내세우는 노예 폐지론이 국가를 분열시킨다고 생각했다.
씁쓸한 얼굴의 막스와 달리 홀리데이는 결과를 낙관했다.
“캔자스가 자유주가 되면, 미주리 놈들 표정도 볼 만할 거야. 지들은 이곳에 와도 노예들은 데려오지 못할 테니까.”
사실상 투표의 승리는 캔자스의 완전한 자유를 뜻하는 것이다.
자유와 생동감 넘치는 곳엔 사람들이 몰리게 마련. 인구가 늘면 준주가 주로 승격하는 시간도 단축할 수 있었다.
홀리데이는 투표 승리를 확신했고, 마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결과에 불복한 노예주에서 폭동을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했다.
캔자스 정착민들은 그들의 신념을 과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만약 그 신념이 무너진다면?
*
캔자스와 미주리주의 경계인 잭슨 카운티.
선거가 다가올수록 광장에는 연설자와 사람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흑인 도둑들이 캔자스를 손에 넣으려 하고 있습니다! 망할 북부 놈들은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우리의 재산을 빼앗으려, 노예 해방이라는 거짓 선동 뒤에 숨어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있습니다!”
연설자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거친 말을 쏟아냈다.
“지금 필요한 건 여러분의 총과 칼입니다! 빌어먹을 폐지론자들로부터 승리를 얻어내야 합니다!”
“옳소! 캔자스를 노예주로 만들자!”
“이 리볼버로 놈들의 심장을 노리겠어!”
광기가 넘실거리는 광장.
한 남자가 이를 보며 냉소한다.
‘미친놈들.’
켈리 여관의 바운서.
신문으로 얼굴을 가린 채, 의자에 몸을 묻은 남자의 두 발은 난간 위에 걸쳐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