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양인 놈은 뭘 하고 있으려나.’
예전에 펍으로 세 놈이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한쪽 귀가 병신인 놈, 팔뚝에 붕대를 두른 놈, 그리고 모자에 구멍이 뚫린 놈이었다.
- 시발, 뭔 동양인 새끼가 총을 그렇게 잘 쏴?
- 그러니까 보안관 된 거 아니겠습니까. 딱 봐도 보통 놈이 아니더만요.
- 어이구. 존나 예리하네. 그래서 아군한테 총질했냐?
- 몇 번을 말해요. 갑자기 귀때기가 화끈거려서, 나도 모르게 방아쇠를 당겼다고. 그건 본능이었습니다.
- 본능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내 본능대로였으면 넌 벌써 뒤졌어, 새끼야.
시답지 않은 욕설은 걸러내고,
바운서의 머릿속엔 ‘동양인 보안관’이 두 단어만 남게 되었다.
‘애새끼가 대단하긴 하네.’
마을이 작긴 해도, 보안관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아야 가능한 일.
짧은 기간 그의 행적을 떠올리면 뭐 이런 인간이 다 있나 싶을 정도다.
바운서가 막스를 떠올리고 있을 때, 여관으로 한 무리가 다가왔다.
바운서는 슬쩍 신문을 젖히며 말했다.
“방은 꽉 찼고, 펍만 이용 가능합니다.”
“팔자 좋구만. 일 참 편하게 해.”
“시비 걸려면 그냥 돌아가쇼.”
카악, 퉷!
무리들은 침을 바닥에 뱉으며 펍 안으로 들어갔다.
최근 혼란한 분위기에 편승해, 같지도 않은 놈들이 뭉쳐 다니는 일이 부쩍 늘어났다.
노예주를 옹호하는 신문들은 연일 선동기사를 쏟아내고, 투표에 지면 세상이 끝나기라도 할 것처럼 감정을 자극한다.
시궁창 같은 현실의 불만이 쌓여있는 젊은이들의 분노. 그 방향을 캔자스로 이끄는 데 성공했다.
노예를 소유할 수 없는 가난한 자들이 남부의 부자들의 요청에 응답한 것이다.
펍에 모인 자들은 오늘도 자유주를 향한 증오를 키워간다.
피 끓는 젊은이들은 거짓 신념에 매몰되어 술 한잔에 허세를 더해갔다.
*
“자아, 이 나무를 50야드 간격씩 박아둬요. 그리고 그 위에 깡통을 얹어 놓습니다.”
가슴 높이의 나무기둥에는 숫자가 쓰여 있었다. 마을에서 50야드 떨어진 곳을 1로 시작해, 멀어질수록 나무에 써진 숫자가 커져갔다.
“이렇게 하면 적들의 거리도 알 수 있고, 평소 사격 거리와 똑같이 유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목적이 뭐라고 했죠?”
“절대 마을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는다!”
“우리의 신념이 협박받지 않으려면, 그 방법뿐입니다.”
막스의 지시에 따라 민병대원들은 마차에 실은 나무를 정해진 위치에 박기 시작했다.
투표 당일인 3월 30일.
봄기운이 가득한 새벽을 뜨겁게 달구는 곳이 있다.
미주리와 캔자스의 경계.
데이비드 라이스 애치슨이란 자가 보더 러피안들을 모아두고 일장 연설을 펼쳤다.
“신사, 장교, 군인 여러분! 오늘은 제 인생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보더 러피안이 된 날입니다! 저주받을 노예제 폐지론자들의 표를 빼앗아, 우리는 승리를 얻어낼 것입니다. 러피안들이여, 리볼버와 보위 나이프를 꺼내 그들의 거짓 권리를 빼앗아옵시다!”
“와아아!”
마침내 캔자스 국경을 넘는 보더 러피안들.
총질한 뒤에 잠은 미주리에 잔다는 그들의 대규모 러시가 시작되었다.
캔자스 전역의 투표소를 장악하기 위해, 무리를 이루어 각 지역으로 진격했다.
그리고 이 일에 두 대의 대포까지 동원되었다.
하나는 리븐워스, 다른 하나는 캔자스시티를 거쳐 로렌스로 향했다.
“총칼 앞에 자신들의 신념을 얼마나 지킬 수 있을지 두고 보자고.”
“자유주에서 온 놈들은 하나같이 약골들이야. 부들부들 떠느라 후보 선택도 못 할 거라고?”
남부인은 상남자요 북부 놈들은 치마가 어울리는 샌님들이지 않은가.
기세등등하게 로렌스 마을로 전진하는 무리. 어느 순간 길목에 꽃혀 있는 가슴높이 만한 나무기둥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갈수록 숫자가 주네.”
15부터 시작한 나무기둥이 지금은 9에 이르렀다.
“토지 구획을 나눈 거 아닐까?”
“이런 식은 아닐걸? 기둥 위에 깡통은 또 뭐고?”
“흠, 50야드 간격으로 박아둔 것 같은데. 다음 숫자는 8이겠군···.”
보더 러피아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진격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8이라 쓰인 나무토막에 도착했을 즈음. 갑자기 커다란 목소리가 평원에 울려 퍼졌다.
“이 이상 다가오면! 몸에 구멍 난다!”
육안으로는 제대로 확인조차 안 되는 거리.
한 남자가 서서 외친 것이다.
보더 러피안들의 실소가 흘러나왔다.
“뭐여, 저 병신은?”
“멀리서도 소리치네.”
“저 새끼 우리가 가면, 뒤로 물러나서 또 저 지랄할걸?”
키득거리던 보더 러피안 놈이 손으로 나팔을 만들었다. 그리고 고함을 질렀다.
“야이 개······!”
타아아아앙!
깡!
총성과 함께 기둥 위 깡통이 튕겨 나갔다.
“......”
400야드(365m) 거리.
단 한 발의 총성이 보더 러피안의 발을 멈춰 세웠다.
더욱이 상대는 혼자가 아니다.
옆에 총을 든 자들이 하나둘 늘어 갔다.
선두에 있던 보더 러피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게 뭔···.’
작가의말
에밀리아 파운 피치의 외모가
금발에서 갈색머리로 수정되었습니다.
금발 여인은 잊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완패
4개월 전의 캔자스 준주 하원 선거.
이를 승리로 이끈 보더 러피안들은 그날을 생각하며 로렌스 마을로 진격했다.
더구나 대포까지 가져왔으니, 마을을 장악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저 멀리, 한 남자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동양인 새끼가 건방지게···.”
‘근데 저건 또 뭐야?’
놈들 뒤에 천막으로 둘러싼 게 눈에 들어왔다.
가슴 높이에 부피는 꽤 커 보인다.
신경은 쓰이는데, 당최 알 수가 없었다.
리더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 자식들이 민병대를 만든 것 같은데. 우리와 전쟁이라도 벌이겠다는 건가?”
“쳇. 저깟 놈들이 총이나 제대로 쏘겠어?”
“여차하면 대포로 날려버리면 되지.”
리더는 고개를 돌려 주변 동료들을 힐끔 쳐다봤다. 무장한 남자들이 20. 작은
마을을 접수하기엔 충분한 인원이었다.
그럼에도 망설여진다.
‘진격해, 말아.’
상부의 지시가 리더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들의 목적은 마을을 장악해 선거 승리를 이끄는 것. 옵션에서 살인은 빠져있다.
- 유권자가 죽으면, 이걸 빌미로 재선거가 이루어 수도 있어.
그렇다면 반대의 경우는 어떠한가.
보더 러피안이 죽는 건 별도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우리 중 누군가 죽으면···.’
불가항력으로 후퇴했으니, 비난받지 않을 것 같다.
짧은 생각을 마친 리더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저딴 놈들 때문에 물러나면 보더 러피안이 아니지. 이대로 진격한다.”
“당연히 그래야지! 우릴 우습게 본 대가를 치르게 하자고!”
흥분한 놈들이 말 허리를 자극하며 속도를 낸다. 그렇게 일행들이 앞서나가지만, 리더는 상대를 관찰하는 척하며 자신의 말은 속도를 내지 않았다.
동료들의 비난을 피하고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진격하는 보더 러피안들은 나무기둥을 무서운 속도로 돌파했다.
“8을 지났어.”
민병대원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막스의 지시를 기다렸다.
막스는 총구를 적들에게 향한 채 입을 열었다.
“흩어져서 범위 안에 들어오면 쏘세요. 훈련 때처럼 하면 됩니다.”
“진짜 죽여도 되는 거야?”
“안 죽게 쏠 수 있으면 쏘던가요.”
말이 끝나자마자, 막스가 방아쇠를 당긴다.
타아앙!
달려오던 무리 중 하나가 휘청이며 비명을 토해냈다.
막스가 라이플을 건네자, 옆에 서 있던 대원이 다른 라이플을 내민다.
미리 총알을 장전해둔 라이플이었다.
사격에 소질이 없는 통통한 허치슨 씨는 이런 식으로 도움을 주고 있었다.
다른 대원들이 각자의 위치로 재빨리 흩어질 때, 막스는 두 번째 표적을 응시했다.
타아앙!
이번에 맞은 놈은 말에서 떨어졌다.
막스가 손을 내밀 때, 허치슨은 땀을 흘리며 첫 발을 쏜 라이플의 재장전을
아직 끝내지 못하고 있었다. 첫발과 두 발의 텀이 워낙 짧아, 손을 내민 막스에게 극도의 초조함을 느끼고 있었다.
막스가 기다리는 동안 놈들은 나무기둥 6를 돌파, 거리는 300야드(274m)까지 좁혀졌다.
‘천천히 쏘니까 공포감이 안 느껴지지?’
“여기 있어!”
허치슨이 라이플을 내밀고, 막스는 받자마자 세 번째 표적을 응시했다.
타아앙!
타아앙!
이번엔 두 발의 총성이 연달아 울렸다.
두 명의 보더 러피안이 휘청거리며 허리를 숙였다.
한 발은 막스가, 다른 두 번째 발은 피치가 쏜 것이었다.
‘과감하네.’
훈련과 실전의 갭을 무시한 그녀의 사격 솜씨는 꽤 놀라웠다.
그리고 보더 러피안들이 나무기둥 4를 막 돌파했을 땐, 일제히 총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히이이잉!
사격 솜씨가 떨어지는 민병대원들은 적보다는 말을 맞추는 데 초점을 두었다.
잔인하지만, 접근을 막는 데엔 꽤 효과적이었다.
‘젠장···.’
여러 발의 총성은 보더 러피안에게 공포를 심어주었다. 그 결과 진격하던 기세가 주춤거리고,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그들이 극도로 불안감을 느끼고 있을 때.
막스는 옆에 있던 허치슨 씨를 보며 뒤를 향해 고갯짓했다.
“슬슬 보여줄까요?”
“아하. 알았어.”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한 거리.
허치슨은 재빨리 뒤에 있던 천막을 걷어 냈다.
이것의 정체는 두 바퀴가 달린 수레.
그 위에는 검은 페인트로 덧칠한 나무를 깎아 만든 물체가 얹어있었다.
비록 허접스럽고 조악하기 짝이 없는.
대충 만든 조각물이지만, 망원경으로 지켜본 리더는 기겁하며 소리쳤다.
“대포다!”
막스는 이날 대포 2개가 동원되었다는 걸 알고 있기에 만들어 둔 것이었다.
원래 있던 수레에, 통나무 깎아 홈을 파놓은 게 전부다.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평상시라면 뜬금없이 튀어나온 대포를 보며 웃었겠지만, 저들이 대포를 들고왔기에 기겁한 것이었다.
“컥.”
진격하던 보더 러피안들이 일제히 말고삐를 당겨 멈춰선다.
자신들을 향한 포신과 유유히 대포 뒤로 향하는 막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시간상 라이플 재장전도 끝났을 타이밍.
가뜩이나 불안한 보더 러피안들에게 대포가 쐐기를 박았다.
마을에 저게 왜 있는지,
묻고 따질 시간이 없다.
“후퇴다!”
보더 러피안들이 방향을 틀어 달아나기 시작했다.
리더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들이 가져온 대포를 쳐다봤다.
‘저놈들은 대포를 어디서 가져온 거지?’
리더가 막스의 얼굴을 각인시키며 어금니를 깨문다. 그리곤 등을 돌려 말했다.
“잭슨 카운티로 돌아간다.”
한 일이라곤 망원경만 쳐다본 게 전부.
결과는 참담하지만 리더의 마음은 비교적 편안했다.
‘불가항력이었다. 아무도 날 비난하진 않을 거야.’
부상자는 있지만, 비교적 먼 거리에 맞아서인지 죽은 자들은 없었다.
민병대원들과 마을 사람들은 도망가는 보더 러피안들을 보며 환호했다.
“민병대 최고!”
“보안관 하난 진짜 잘 뽑았다!”
일부는 나무로 만든 대포에 모여 탄성을 터트렸다.
“어떻게 이걸 보고 도망갈까.”
“멀리서 보면 진짜 대포로 보이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쏘지도 않았는데 도망가는 게 말이 돼?”
통나무에 대충 구멍 파고 수레에 얹었을 뿐인데, 이게 통했다.
‘설마 대포 때문에 적들이 도망갔겠어?’
사람들이 실소를 지을 때, 피치의 생각은 달랐다.
대포가 진짜든 아니든, 보더 러피안은 민병대의 총격에 이미 사기가 꺾인 상태다.
이 상황에서 대포는 후퇴라는 강력한 명분을 준 셈이었다.
피치는 막스에게 말을 건넸다.
“나무로 대포 깎는 모습 보고 비웃었던 거. 반성합니다.”
“반성은 벽 보고 해야죠.”
“알았어. 근데 말야. 어떻게 적들의 심리를 그렇게 잘 알 수 있는 거야?”
나무기둥을 이용한 전술. 최초의 격발과 거리에 따라 달라진 막스의 대응을 살펴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리고 대포를 포함해서, 모든 건 심리를 기반으로 한 전략.
피치는 그게 궁금했다.
막스는 대답 대신 피치를 빤히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