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행동을 보면, 어떤 목적이 있어 보인다. 아니면 뭔가가 되고 싶던가.
“선생님?”
“네, 보안관님.”
“사람들 심리는 다 비슷비슷합니다.”
“보안관님과 제 심리는 다를 텐데요?”
“그래서 혼자인 적이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거죠.”
“....?”
턱을 만지며 피치가 고민할 때.
홀리데이가 다가와 막스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우리 막스 보안관님. 보더 러피안들 상대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뭐라도 드셔야죠?”
“감자는 사양입니다.”
“겨우 감자로 이러겠습니까.”
홀리데이는 씩 웃으며 막스와 함께 보안관 사무실로 향했다. 가는 길목마다 마주친 마을 사람들이 엄지를 추켜세우고 막스에게 웃음을 보였다.
*
“사실 레인 의원이 리븐워스로 간다고 했을 때 걱정이 됐었거든.”
홀리데이가 고기를 오물거리며 말했다.
“근데 만든 지 한 달도 안 된 민병대로 막아서, 솔직히 놀랐다.”
“운이 좋았죠. 진짜로 총을 쏠 생각까진 안 했을 겁니다. 보더 러피안들은 작년 선거 생각하고 왔을 거예요.”
총과 칼로 협박하면 순순히 선거에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 한 차례 경험이 있기에 그 정도로만 생각하고 온 것이다.
“문제는 다른 마을이죠.”
막스의 말에 홀리데이의 표정이 굳어졌다.
로렌스 마을이 이정도면 다른 마을은 어떨까.
“레인 의원이 리븐워스로 갔으니까, 거긴 괜찮겠지?”
“글쎄요. 어쨌든, 그래 봐야 선거구 두 곳이네요.”
“큰일이네···.”
“며칠 지나면 결과가 나오겠죠.”
투표 당일, 로렌스는 평소와 똑같았다.
외부의 개입 없이, 자신들의 신념을 투표로써 행사했다.
하지만 다른 마을은 상황이 심각했다.
리븐워스.
“레인 의원님. 당신을 뽑아준 애리조나 사람들은 어쩌고, 여기에 있습니까.”
무장한 자들에게 둘러싸인 제임스 헨리 레인. 사나운 맹수처럼 러피안들을 쏘아보던 그가 홀스터에 손을 뻗는다.
“저런. 마을 사람들 안전은 신경도 안 쓰는군요. 우린 유권자들의 보호를 위해 온 거지, 싸우려는 게 아닙니다.”
“유권자? 뻔뻔한 놈들.”
“당신도 마찬가지죠. 총 들고 노예 폐지론자를 돕는 것과 우리랑 뭐가 다릅니까?”
리븐워스는 캔자스에서 가장 큰 도시.
로렌스의 배가 넘는 보더 러피안들이 들이닥쳤다.
공포에 휩싸인 사람들은 투표를 포기하고, 그 표들을 보더 러피안들이 행사했다.
레인과 수하들은 투표가 끝날 때까지,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고개 숙인 채 투표소를 떠나는 마을 사람들을 그대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모습들이 눈에 담아질수록, 레인의 마음속 분노도 쌓여만 갔다.
신념을 짓밟는 폭력 앞에서의 무력함.
레인은 안일했던 자신을 자책하며, 지금까지의 노선을 전면 수정하게 된다.
폭력은 폭력으로 맞서야 함을 마음에 깊이 새겨넣고 있었다.
*
헤럴드 오브 프리덤 편집자 조지 브라운.
주지사가 있는 레콤프턴에 머물며 정보를 캐던 그는 신문을 만들기도 전 보안관 사무실부터 찾았다.
피곤에 찌든 그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시발, 해도 해도 너무하네, 진짜.”
“결과 나왔어요?”
앉아있던 홀리데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막스는 별 반응 없이 날짜 지난 신문을 읽고 있었다.
“39석 중에 겨우 3석이야.”
“......?”
“포토와토미와 로렌스. 이곳에서만 3명이 선출됐다고!”
홀리데이가 눈을 껌뻑이며 물었다.
“리븐워스도 졌나 보네요.”
제임스 헨리 레인은 투표 날 이후 보이지 않는다. 항간에는 애리조나로 돌아갔다는 설만 나돌았다.
“듣기로는 유권자보다 두 배나 많은 표가 집계됐다는데, 명백한 부정 투표지. 작년에도 당했는데, 어떻게 또 당하냐고!”
“젠장.”
자유주는 바뀐 게 없고, 노예주는 오히려 치밀하게 행동한 결과다.
노예주는 보더 러피안을 끌어모아 전날부터 마을 주변으로 진을 치고.
당일 날, 돌격 대원들이 투표소를 점령하면 그때 일제히 투표소로 들어가는 전략을 취했다.
로렌스 마을로 진격한 보더 러피안 역시 돌격대다.
만약 그들이 성공했다면, 수백 명의 무장하지 않은 노예 옹호론자들이 마을 투표소를 점령했을 터였다.
조지 브라운과 홀리데이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질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이런 식으로 완패를 당할 줄은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애써 노력한 게 물거품이 되었다.
그 충격이 상당했다.
“로렌스는 민병대까지 만들어서 표를 지켰는데, 다른 곳은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야!”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다.
흥분한 홀리데이는 분노를 내뱉고 있었다.
막스는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생각했다.
‘원래대로라면 2석인데.’
한 석이 늘었다.
막스와 민병대가 만들어낸 역사의 뒤틀림.
물론 이것만으로 큰 흐름이 바뀌진 않을 것이다.
“부정선거면 재투표를 요구하지 않겠습니까?”
“글쎄. 과연 받아줄까? 그런 일이 벌어지면 노예주에서 난리가 날 텐데.”
조지 브라운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럼 자유주는요? 이번 선거를 받아들일 것 같아요?”
“당연히 가만히 안 있겠지···.”
“주지사가 노예주에게 시달렸다면, 앞으론 자유주에서 괴롭힐걸요. 이대로 끝나진 않을 겁니다.”
막스의 말에 홀리데이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 어찌 됐든. 미주리 놈들은 지금쯤 파티를 벌이고 있겠구만.”
*
“자자, 오늘 같은 날 다 같이 축배를 들어야죠.”
미주리주의 잭슨 카운티.
보더 러피안을 주도했던 데이비드 라이스 애치슨이 술잔을 들었다.
그는 한때 미주리 상원이자, 캔자스의 애치슨이라는 마을을 설립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미주리를 대표하는 노예제 옹호론자들. 승리를 자축하며 미래를 논의했다.
파티가 끝나고, 애치슨은 핵심 인물들과 좁은 회의실에 모여 대화를 나누었다. 다들 뼛속 깊이 노예제를 옹호하는 자들이었다.
“39석 중에 36을 얻었으니, 압도적인 승리로군요. 캔자스 헌법은 노예주로서 무리 없이 만들어질 겁니다.”
미주리 전 법무장관인 벤자민 프랭클린 스트링펠로. 그는 보더 러피안의 사령관이고, 애치슨은 이자를 통해 자신의 뜻을 펼친다.
“그런데 조금 아쉽긴 하군.”
“뭐가 말입니까?”
“3석을 빼앗긴 것 말일세.”
애치슨이 굳은 표정으로 말하자,
벤자민의 얼굴에도 그늘이 드리워졌다.
포토와토미는 그렇다 쳐도 로렌스가 문제였다.
진짜 대포가 가짜 대포에 놀라 도망간 희대의 사기극. 마을 진입은커녕 사상자 7명을 남긴 채 도망간 건, 보더 러피안들에게 치욕을 안겨준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분노는 망원경만 멀뚱멀뚱 쳐다보다 후퇴한 리더에게로 향했다.
결국, 며칠 전 그는 보더 러피안이 쏜 총에 맞아 죽음을 맞이했다.
“그놈 말고 다른 놈은?”
“다른 놈이라면···.”
“건방진 쿨리놈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 들었는데, 아닌가?”
“아, 로렌스 보안관 말이군요.”
“보안관?”
애치슨은 코웃음 치며 말을 이었다.
“지금 주지사는 컨트롤이 안 되고 있네. 자유주에서 압박하면 또 무슨 일을 벌일지 몰라.”
“설마 재투표까지 가기야 하겠습니까.”
“그건 모를 일이지. 로렌스에서 병신 짓 한 것 때문에, 다른 곳도 민병대를 조직하려 한다는 소문은 들었지?”
“......”
“같잖은 쿨리가 일으킨 바람은 이 정도에서 멈춰야지. 안 그런가?”
애치슨의 시선을 마주한 벤자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동생 로버트와 함께 밖으로 나가자, 애치슨과 한 남자만 남게 되었다.
“로렌스는 곧 더글라스 카운티에 편입될 거야. 정식으로 도시의 형태가 갖춰지면, 카운티의 보안관을 새로 뽑아야 할 테고.”
애치슨이 한 남자를 쳐다봤다.
“사무엘, 너를 그곳의 보안관으로 앉힐 테니까 준비하도록 해.”
“예.”
짧고 건조한 대답.
주근깨 가득한 남자 사무엘 제퍼슨 존슨. 나이는 어리나, 총잡이로서 데이비드 라이스의 신임을 받는 인물이었다.
*
켈리 여관 & 펍.
투표가 끝난 이후론 그 많던 미주리 사람들이 코빼기도 보이질 않는다.
지금도 한 테이블에 앉아있는 남자 셋이 전부였다.
“그래서 언제 습격한다는데?”
“내일 밤. 지난번 그 동양인 새끼한테 당했던 놈들도 참여한다더군.”
“그딴 병신들을 또 보낸다고?”
“리더가 병신이지, 걔들이 무슨 죄냐. 아무튼···.”
남자들의 은밀한 대화들. 하지만 손님이 없는 탓에 신경 쓰면 충분히 들을 만한 크기였다.
더구나 그림자처럼 구석에 앉아있는 바운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바운서
로렌스 보안관 사무실.
홀리데이가 선심 쓰듯 말한다.
“오랜만에 좀 쉬는 건 어때? 리븐워스에도 다녀오고. 토, 일은 홀리데이 하기로 했잖아.”
“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요? 3개월도 넘었습니다. 휴일도 없이 개처럼 일한 거.”
“누가 보면 진짠 줄 알겠네. 아무튼, 그러니까 휴가를 다녀오라는 거야.”
눈치 봐서 리븐워스를 안 간 건 아니고.
자리 비우기엔 사건이 언제 터질지 알 수가 없어서였다.
하지만 투표 날 리븐워스의 분위기를 들어보면 제임스 가족이 걱정되는 건 사실이다.
무슨 일을 당하진 않았을지, 대장간은 잘 돌아가는지도 궁금하고.
“너 없어도 마을 잘 돌아간다. 그리고 내가 다 준비를 해뒀어.”
“무슨 준비요?”
“민병대가 번갈아 가면서 사무실을 지키기로 했거든.”
마침 그 첫 번째 순서가 찾아왔다.
피치였다.
“아직 안 갔네?”
표정을 봐선 다들 진심으로 보인다. 홀리데이는 막스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라니까. 찰스 의장이 직접 챙겨 준 거야. 이번에 고생했다고.”
“흐음.”
피치와 홀리데이의 눈짓에 막스는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치는 쏜살같이 의자에 앉더니, 가져온 책을 얹어 놓았다.
애드거 앨런 포의 ‘모르그 가의 살인 사건(The Murders in the Rue Morgue)’.
사립탐정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추리 소설의 원형이자 시조로 불리는 작품.
전생에 막스도 읽어본 책이었다.
“이런 거 좋아해요?”
막스의 질문에 피치가 눈을 깜빡거린다.
“보안관님, 설마 이 책을 알아?”
“알죠. 탐정 오귀스트 뒤팽의 사건 해결이 나름 흥미진진하죠.”
피치는 혀를 차며 새삼 막스를 쳐다봤다.
비록 여자의 몸이지만 가장 좋아하고 닮고 싶은 인물이 바로 소설 속 주인공이자 사립탐정인 오귀스트 뒤팽이다.
피치는 막스에게서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보안관 일이라는 게 인수인계할 것도 없다.
막스는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눈 뒤 리븐워스로 향했다.
혹시 가는 도중 일이 생길 수도 있어 리볼버 두 정과 라이플 한 정을 챙겼고.
그나저나.
‘추리 소설이라.’
막스는 피치의 행동과 소설을 연결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말이 속도를 내고 평원을 질주할 땐 피치에 관한 생각도 바람처럼 날려버렸다.
*
Black Smith.
리븐워스의 대장간.
말이 다가올 때부터 멀뚱히 서 있던 제임스는 막스의 얼굴을 확인하곤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옆에 있던 마틴과 브렛, 홀렌도 마찬가지.
“언제 오나 눈이 빠지게 기다렸어, 막스.”
제임스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우, 로렌스 보안관님!”
“오랜만이야, 막스.”
“다들 잘 지냈죠?”
마틴은 스스럼없이 손을 내밀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는 뒤엔 그간의 짧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투표 날 장난 아니었어. 보더 러피안들이 총 들고 위협하는데. 어후,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다니까.”
다들 생각만 해도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반면, 제임스는 조용하다.
막스의 조언대로 투표소 자체를 가지 않았기 때문에 할 말이 없었다.
중립이라는 건 때론 비겁한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 제임스의 찜찜한 얼굴엔 그런 고민이 드러나 있었다.
“그런데 구리 탄두는 어떻게 됐어요?”
“아, 그거!”
마틴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포트 리븐워스에서 매달 5천 발씩 납품하기로 했어. 마음에 쏙 든 거지!”
새로 부임한 사령관은 조지 쿡 대령.
구리 탄두의 장점을 파악한 그는 다른 요새까지 확대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만족했다고 했다.
“근데 아직 소식이 없네.”
“추가로 뭐 해준 건 없고요?”
“뭘? 누구한테?”
“아닙니다.”
사령관은 뭔가를 바라고 한 말일 텐데, 이런 쪽으론 수완이 부족해 보인다.
전문 로비스트들까지 생겨날 정도로 무기사업은 커다란 비즈니스다. 하지만 대장간에는 그런 역할을 할 사람이 없었다.
“온 김에 총알 좀 줄까?”
막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마틴은 자기 것인 양 바구니에 잔뜩 담아주었다.
대충 오백 발은 되었다.
한쪽에는 군용 검 하나가 세워져 있었는데, 미래에는 쓰이지 않을 얇고 긴 중검이었다.
“이건 뭐죠?”
“오레곤 트레일에서 누가 주웠대. 1달러에 판다길래, 80센트에 샀지.”
마틴은 이걸 똑같이 만들어서 포트 리븐워스에 보여준다고 했다.
인디언과 싸우다 죽은 야전 장교의 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