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이드 길이는 약 32인치(82cm)에 조선도처럼 날은 휘어진 날에 손잡이는 사브르처럼 손 보호막이 있는 검이었다.
훗날 세이버 모델로서 남북전쟁까지 쓰인 건 극악의 장전속도를 보완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
막스가 대장간에 있는 동안.
로렌스의 보안관 사무실로 한 남자가 찾아왔다. 책을 읽던 피치는 총부터 찾았다.
“보안관은?”
“누군데 오자마자 보안관을 찾아요?”
“급한 일이 있어서 그래.”
“저한테 말해요. 지금 없으니까.”
“없다고?”
남자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곧 보안관을 죽이려는 놈들이 올 거야.”
“누가 무슨 목적으로 온다는 거죠?”
피치 침착하게 되물었다.
남자는 곧 벌어질 상황을 이야기했다.
“그래서 보안관 어디 있어?”
“말해 줄 수 없어요.”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흠. 잠시 기다려봐요.”
상대 말만 듣고 막스의 행방을 알려줄 수 있나. 피치는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홀리데이를 부르기로 했다.
잠시 후.
피치에게 끌려온 홀리데이는 남자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가 구면이던가요?”
“뭐, 펍이나 여관에 들락거렸으면 봤을 수도 있겠지.”
“아, 생각났다. 잭슨 카운티의 바운서.”
남자는 대답 대신 피치를 노려봤다.
자기가 누군지 잊어라, 밀고자에 대한 비밀을 지키라는 뜻이었다.
피치는 이걸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 말하지 않을게요.”
“이런 건 잘 알아듣는군.”
홀리데이는 고민 끝에 바운서에게 말했다.
“보안관은 리븐워스에 있습니다. 차라리 거기 있는 게 안전할 것 같네요.”
“글쎄. 그럼 이 마을이 위험할 텐데?”
“보안관을 노린다면서요?”
“몰라서 묻는 거야? 그냥 돌아가겠냐고.”
“......”
바운서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리븐워스에 갔으면, 제임스라는 자의 집에 있겠군.”
막스와 제임스 가족은 잭슨 카운티의 켈리 여관에 머물렀고, 남자는 그곳의 바운서다.
그가 둘을 아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홀리데이가 궁금한 건, 이렇게까지 도우려는 이유였다.
“막스에게 빚이라도 졌습니까?”
“빚이라. 1달러를 빚지긴 했지. 동양인 주제에 건방지게 내게 팁을 줬거든.”
팁으로 건네준 1달러.
분명 빚은 아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기꺼이 도우러 왔다?
‘진짜 남자네.’
피치와 홀리데이가 새삼스럽게 바운서를 쳐다보자, 입꼬리를 올린 그는 모자를 슬쩍 만지며 고개를 까딱했다.
“그럼 또 보자고.”
삐걱, 삐걱.
스윙도어를 밀고 밖으로 나간 바운서는 말에 올라타 북쪽으로 내달렸다.
세상에 찌든 얼굴, 그 한쪽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1달러는 개뿔.’
도움이 필요할 땐, 상대에게 미리 빚을 지우면 된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때.
‘동양인은 자신의 도움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라는 커다란 착각을 하고 있었다.
*
“어머! 이게 누구야!?”
“막스!”
금방 올 줄 알았던 게, 어느덧 3개월이 흘러버렸다. 메리는 눈물까지 글썽이고, 코닐은 잃어버린 형제라도 만난 듯 반겼다.
“그렇지 않아도, 고기가 사고 싶더라니!”
메리는 음식을 준비하고, 코닐은 막스를 졸졸 따라다니며 질문을 쏟아냈다.
힘들게 일하고 퇴근한 제임스는 안중에도 없었다.
“막스 형, 로렌스 보안관이라며?”
“이거 안 보여?”
“오오, 뱃지! 근데··· 종이네?”
“보통 종이가 아냐.”
“그럼? 여자 친구가 만들어줬어?”
“여자 친구란 단어도 있었냐?”
막스의 방은 떠날 때와 변함이 없었다.
메리가 매일같이 청소한 탓에 오히려 더 깨끗해진 모습이었다.
모처럼 저녁을 먹으며 즐거운 대화가 오고 갔다. 그런데 저 멀리 말발굽 소리가 들려온다.
제임스는 창밖으로 향하고, 막스는 방으로 가 리볼버를 챙겼다.
히이이잉!
말이 멈추고, 한 남자가 내려섰다.
그런데 익숙한 얼굴이었다.
“저자가 왜 여길 찾아왔지?”
제임스는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창문으로 힐끔 쳐다본 막스도 같은 반응이었다.
덜컥.
막스가 문을 열고 나오자, 그른 본 바운서가 땅에 침을 뱉는다.
“왜 하필 오늘 같은 날 여기 있어서 사람 힘들게 하는 거야.”
“무슨 일입니까?”
막스가 목소리를 낮게 깔자, 바운서는 민망한 듯 먼지가 쌓인 모자를 털었다.
“준비해. 널 죽이려고 로렌스 마을에 꽤 많은 놈이 몰려오고 있으니까.”
“보더 러피안입니까?”
“글쎄. 오늘은 무법자들이라고 봐야지.”
얼굴만 보면 신뢰하기 힘들지만, 그렇다고 여기까지 찾아와 거짓말할 것 같진 않다.
일전에 여관에서 도와준 일도 있고, 막스는 바운서의 말을 믿기로 했다.
즐거운 저녁 식사는 여기까지.
막스가 뒤를 돌아보자, 제임스 가족의 눈빛에 걱정이 서려 있었다.
“맛있는 요리는 다음에 먹어야겠네요.”
“... 차라리 여기가 더 안전한 거 아냐?”
“다시 올게요.”
막스는 굳은 표정으로 방을 향했다.
파이브 호아킨스 갱단에게서 얻은 콜트 드라군 두 자루를 추가로 챙겨 나왔다.
막스는 제임스 가족에게 인사를 건네곤 바운서와 함께 로렌스로 향했다.
그리고 대장간을 지나치던 중.
막스는 말에서 내려, 모루 밑에 숨겨둔 대장간 문 열쇠를 찾았다.
[삽니다. 막스.]
야전 장교의 칼을 챙기고, 쪽지와 함께 1달러 동전을 놔두었다.
한참을 달리는 중 막스는 뒤를 쳐다봤다.
알려준 건 고맙지만, 무슨 생각으로 따라오는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막스의 표정을 읽기라도 한 듯, 그가 소리쳤다.
“혼자서는 힘들걸?!”
“죽어도 책임 못 집니다!”
“책임은 무슨! 대신, 부탁 하나 들어줘!”
“...... 잘 안 들려요!”
막스가 귀를 가리키며 도리질 쳤다.
“거, 시발 너무하는 거 아냐?! 두 번이나 도와줬는데?!”
바운서는 욕을 하고, 막스는 앞만 보며 질주했다.
같은 시각 다른 방향.
환한 달빛 아래, 요란한 말발굽 소리를 내며 한 무리가 평원을 질주한다.
그 수가 열다섯.
목적지는 로렌스, 표적은 보안관이다.
‘기다려라, 원숭이 새끼. 머리 가죽을 벗겨주마!’
동양인에게 당한 치욕은 리더를 죽여도 사라지지 않는 낙인.
‘오늘 놈을 죽여 비웃음과 조롱에서 벗어난다.’
분노의 질주 끝에 도착한 로렌스 마을.
그 중심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도 보이질 않았다. 늦은 시간을 생각하면 이상할 건 없었다.
히이이잉!
무리가 멈춰선 곳은 보안관 사무실.
촤르륵.
기름을 끼얹고, 횃불에 불을 붙여 보안관 사무실을 향해 내던졌다.
철컥.
그런 다음 일제히 총을 꺼내 곧 튀어나올 동양인을 기다렸다. 하지만 건물이 불길에 휩싸일 때까지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미리 눈치라도 챈 건가?’
미간을 찌푸린 리더는, 말에 탄 채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리고는 총구를 하늘로 향하며 소리쳤다.
“이 로렌스의 쥐새끼들아!”
타아앙!
“지금부터 5분 준다! 빌어먹을 동양인 새끼를 우리 앞에 안 데려오면, 모조리 찾아내 죽을 줄 알아라!”
타아앙!
타아앙!
타아앙!
잇단 총성이 마을에 울려 퍼졌다.
먹이를 놓친 사냥꾼들은 말에 탄 채 거리를 휩쓸고 다녔다.
“무, 무서워요··· 엄마.”
“쉿. 조용.”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헛간.
한곳에 모여있는 마을 사람들은 두려움에 떤 채 서로를 보듬었다.
바운서의 경고를 들은 홀리데이는 즉시 찰스 의장을 찾아갔고, 고민 끝에 피신을 결정한 것이었다. 하지만 정착 마을의 피신처란 열악한 헛간이 전부였다.
적들의 침입에 이은 고함, 총성까지.
아이들이 행여 소리를 낼까, 부모들은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마을의 민병대는 헛간 주변에 숨어 적들의 접근을 대비했다.
‘막스만 있었어도, 민병대를 이끌고 어떻게든 막아냈을 텐데.’
사람들과 섞여 있는 찰스 의장과 홀리데이는 착잡한 심정이었다.
막스를 휴가 보낸 어이없는 결정이 이런 참사를 만들었으니 말이다.
바운서가 막스를 데리러 갔으니, 시간상 얼추 도착할 때가 되었다.
하지만 홀리데이는 막스를 기다리면서도 한편으론 오지 않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차라리 천천히 와, 막스. 여긴 너무 위험하다고. 아니, 네가 아니면 누가 우리를 구해주겠어.’
홀리데이의 마음이 오락가락하는 사이 말발굽 소리가 점차 가까워졌다.
“쥐새끼들이 어디 숨어서 떨고 있으려나.”
“그냥 불 질러버리면 되지, 뭘 찾고 다녀.”
“아직 시간 남았잖아? 그리고 불 지르면 동양인 새끼 시체 찾기 힘들다. 어, 근데 저 헛간 뭐야.”
굳이 입구에 이것저것 가져다 문을 막아둔 게 수상하지 않은가.
한 놈이 말에서 내려 총을 꺼내 다가왔다.
짚단 뒤에 숨어있던 피치의 총구가 놈을 따라 움직였다. 주변에 있던 대원들의 총구도 놈을 향해있었다.
“킁킁. 뭔가 수상한 냄새가 나.”
헛간 가까이 다가온 남자는 이내 벌어진 나무 틈새로 눈을 가져다 대었다.
빤히 쳐다본 끝에, 어둡지만 그 사이로 꿈틀거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크크크. 찾았다. 이 쥐새끼들···!”
남자가 입꼬리를 올리며 이죽거릴 때.
타아앙!
퍽.
피치가 쏜 총에 남자의 뒤통수에 구멍이 뚫려 버렸다.
히이이잉!
“이, 개새끼들!”
동료가 쓰러지자 말에 탄 남자는 곧바로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타아앙!
타아앙!
민병대원들이 놈을 향해 쐈다.
하지만 밤인 데다 움직이는 표적을 맞추기란 쉽지 않았다.
“젠장, 곧 놈들이 몰려오겠어!”
피치가 쏜 총성으로 위치는 노출되었다.
그리고 짧은 시간에 헛간을 향하는 말발굽 소리가 땅을 뒤흔들었다.
피하기는 늦은 상황이었다.
달빛이 닿지 않는 어둠 속. 다급한 민병대원은 재장전하는 데도 실수를 연발했다.
극도의 긴장감에 손까지 떨고 있었다.
가까워지는 말발굽 소리.
화약조차 제대로 집어넣지 못할 정도로 민병대는 동요하고 있었다.
탕! 탕!
“쥐새끼들이 여기에 숨어있었구나!”
적들이 마침내 헛간까지 몰려왔다.
그런데 이때.
타아앙!
푸슉.
먼 곳에서 울려 퍼진 총성과 함께 무리 한 명의 머리가 꺾이며 말에서 떨어졌다.
타아앙!
짧은 텀을 두고 이어진 두 발째의 총성.
또 한 명이 말에서 떨어졌다.
두 개의 라이플을 사용한 막스.
그가 어둠 속에서 외쳤다.
“병신들. 아무도 살아나갈 생각 마라.”
‘막스!’
‘보안관이 왔어!’
마을 사람들의 안도와 희망, 그리고 민병대원은 마법처럼 냉정을 되찾았다.
“동양인 새끼를 잡아라!”
히이이잉!
적들이 막스를 향해 말 머리를 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