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이때, 정 반대 방향에서 총성이 울렸다.
타아앙!
바운서가 쏜 총에 또 한 놈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그래서 이름은요?
‘어떻게 미리 알고 있었지?’
리더의 머리가 혼란에 휩싸였다.
전혀 다른 방향에 날아온 총알.
헛간 주변에 있는 놈들까지 치면, 자신들의 계획이 새어나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돌아갈 순 없지.’
이전 리더를 자신의 총으로 죽였다.
그리고 이제는 입장이 뒤바뀌었다.
이대로 도망치면 다른 보더 러피안이 자신에게 총구를 겨눌 터. 곧 죽어도 이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
“너희 셋은 헛간, 나머지는 흩어져서 동양인과 또 한 놈을 찾아낸다!”
“개자식들, 모가지를 따주마!”
세 방향으로 적들이 분산되고,
장전을 끝낸 민병대원은 헛간으로 다가오는 무리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막스의 등판은 대원들의 불안과 초조함을 날려버렸다.
이는 제대로 된 사격 솜씨로 나타났다.
탕탕탕!
“끅.”
잇단 총성과 함께 헛간으로 다가온 놈들이 말에서 떨어졌다. 총에 맞은 두 놈은 그렇다 쳐도 멀쩡한 한 놈이 말에서 내려 잔뜩 몸을 웅크린다.
그는 숨어있을 민병대원을 찾아내기 위해 발소리를 죽여 위치를 감추었다.
숨 막히는 긴장 속.
피치가 한 곳을 향해 돌을 던졌다.
탕!
탕!
놈이 총을 쏘고, 피치는 재빨리 그 총성이 울린 곳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푹.
“윽···.”
짧은 신음을 끝으로 장내에 적막이 흘렀다.
피치는 짜릿한 기분에 움켜쥔 라이플을 처다봤다.
책을 통해 알고 있던 지식.
비록 소설일지라도 실전에서 통하자 또 다른 흥분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끄, 끝난 건가?”
민병대원들은 눈만 껌뻑거리며 장내를 살펴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자신들이 세 명이나 처치했다는 사실은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알 수 있었다.
피치가 남은 한 명을 처리할 때.
막스와 바운서는 한 곳을 향해 적들을 유인했다.
로렌스 이남의 캔자스강 유역.
나무들이 있어 몸을 숨기기 좋은 장소였다.
말에서 내린 바운서는 강어귀로 달려가고.
막스는 그 중간 나무에 숨어 적들을 기다렸다.
“여기 숨으면 못 찾을 것 같아?”
곧이어 나타난 적들은 막스와 바운서의 말을 확인하곤, 자신들도 땅에 발을 디뎠다.
리더가 손짓으로 방향을 지시하고, 이내 여덟 명의 수색이 펼쳐졌다.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
나뭇잎 밟는 소리가 어우러져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한 차례 당해서 그런지, 놈들의 발걸음엔 신중함이 묻어 있었다.
어둠 속에 스며든 막스는 야전 장교의 검을 들고는 놈들이 오길 기다렸다.
그렇게 놈들과의 거리가 2미터가량 좁혀졌을 때.
타아아앙!
“저쪽이다!”
바운서의 총성과 함께 놈들의 신중함이 무너졌다. 빠른 발걸음으로 막스가 몸을 숨긴 나무를 지나쳤다. 그러던 어느 순간.
막스가 팔을 뻗어 한 놈을 잡아당겼다.
동시에 입을 막고 보위 나이프의 칼끝을 목에 쑤셔 박았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슬며시 눕히고,
다음 목표물을 뒤쫓았다.
바운서가 이목을 끌고 그 뒤를 막스가 처리했다.
그렇게 하나둘 처치한 끝에 남아있는 거라곤 리더 뿐이었다.
놈을 처리하는 건 막스와 바운서에겐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 이 개자식들!”
탕! 탕!
공포에 질린 리더가 사방을 향해 총을 쏜다.
철컥.
총알이 떨어지자, 리더가 보위 나이프를 뽑아 들었다.
“덤벼라, 이 개···.”
휘우우웅.
막스가 야전 장교의 검으로 놈의 가슴을 꿰뚫었다.
“컥···.”
가슴에 피를 꾸역꾸역 토해내는 리더는 막스가 아닌 옆에 나타난 남자를 처다봤다.
‘이 새끼가 밀고자였구나.’
“바·· 운서··· 이 개자식···.”
“그러게 술집에선 항상 말조심하랬잖아.”
바운서는 비릿한 조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캔자스 강 유역에 퍼진 총성과 함께 리더의 몸이 무너졌다.
“후우.”
바운서가 총구의 연기를 불어 날리고.
그걸 본 막스가 입을 열었다.
“냉정하시네.”
“네가 그런 말 하면 안 되지. 보위 나이프 든 상대를 장검으로 쑤시면, 그게 더 잔인한 거야. 아니지, 야비한 거지.”
“꼭 한번 써 보고 싶었습니다.”
“너도 정상은 아니구나.”
바운서는 낄낄거리며 리볼버를 집어넣었다.
“일단 헛간으로 돌아가죠.”
“민병대원들이 무슨 허수아비야? 고작 세 놈에게 당했겠냐고.”
“그렇게 믿고 싶긴 한데.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막스와 바운서는 말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도착할 즈음해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막스와 바운서는 재빨리 몸을 숨겼다.
하지만 나타난 자들을 확인하곤 헛웃음을 터트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무사했구나, 보안관!”
“와, 둘이서 다 해치운 거야?”
피치와 호치슨, 모건이었다.
“마을 사람들은요?”
“다들 무사해.”
피치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상황과 맞지 않았지만, 나름 매력적인 모습이었다.
상황이 정리되고, 수습하는 과정에서 막스는 바운서를 유심히 지켜봤다.
결코, 평범한 인물이 아니었다.
‘총도 잘 쏘고, 배짱도 두둑해.’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시체처리다.
그는 적들이 타고 온 말들과 시체를 밧줄을 이용해 줄줄이 엮어버렸다.
그 솜씨가 능숙했다.
“원래 직업이 뭐였어요?”
“뭐, 이것저것 많이 했어.”
‘저런 사람이 나한테 무슨 부탁이 있을까.’
그게 뭔지 듣기가 겁날 정도다.
막스는 가능한 대화를 피하기로 했다.
*
“망할 보더 러피안들!”
“이런 식으로 마을까지 처들어오는 게 어딨습니까!”
“절대 그냥 넘어가선 안 돼요!”
막스가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웬 잿더미 앞에 모여 분노를 터트리고 있었다.
잿더미의 정체는 깨끗이 전소된 보안관 사무실. 기둥 하나 남지 않은 모습에 막스의 입이 쩍 벌어졌다.
‘너무한 거 아냐?’
막스는 착잡한 기분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런 일을 겪게 해서 죄송합니다.”
“워워. 그게 무슨 소리야. 보안관이 무슨 잘못이 있어.”
“미친놈들 상대하느라 고생했어.”
“어디 다친 곳은 없지?”
따지고 보면 막스로 인해 벌어진 일.
애초에 민병대를 만들어 대응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진 않을 터였다.
하지만 아무도 막스를 탓하지 않았다.
폭력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들의 투표권을 행사했다는 자부심. 비록 결과는 실망스러웠지만. 자랑스러움은 로렌스 마을 사람들에겐 커다란 자산이었다.
찰스 로빈슨 의장은 오늘 일이 충격이었는지,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그답지않게 꽤 흥분한 모습이었다.
“오늘 일은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네. 무슨 일이 있어도, 주지사를 찾아가 이번 일의 책임을 따질 걸세.”
그 책임의 대상은 보더 러피안을 보낸 노예주들이다. 하지만 막스가 보기엔 의미 없는 짓이었다.
“잠시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조용한 곳으로 장소를 옮긴 막스는 찰스에게 은밀한 제안을 했다.
“이번 습격은 무법자들의 소행으로 마무리 짓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의장님께서 보더 러피안들이라 주장하면, 노예주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반박을 할 겁니다. 누명을 씌운다면서 말입니다.”
그런 다음, 노예 옹호론자들이 사는 마을을 습격해 자유주들이 벌인 것처럼 꾸밀 수도 있다.
“그래서 놈들이 얻는 게 뭔가?”
“재투표의 가능성을 폭력사태로 변질시키는 거죠. 그 빌미를 우리가 제공하면 상황은 불리해질 겁니다.”
투표에서 이긴 노예주가 왜 로렌스 마을을 공격했을까. 이런 의문이 드는 순간 찰스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된다.
“그럼 이 일을 묻어버리자는 말인가?”
“언젠가 갚을 날이 올 겁니다. 그때까진 재투표에 힘을 쏟아야지, 이딴 일로 본질을 왜곡시키면 안 됩니다.”
“흠. 자넨 재투표가 가능하다고 보나?”
찰스가 턱수염을 매만지며 물었다.
“앞으로 자유주의 적극적인 개입이 있지 않겠습니까. 여태껏 노예주의 압력에 시달린 주지사는 이제 자유주에서도 괴롭힘을 당할 겁니다. 그 사이에서 주지사는 자신의 진짜 성향을 나타낼 거고요.”
“허···.”
돌아가는 상황을 꿰뚫는 막스의 식견.
찰스는 새삼 놀라운 표정으로 물었다.
“대체 어떻게 하면 그런 생각들을 할 수 있는 건가?”
“평소 신문을 즐겨 읽습니다.”
“내가 보는 거랑은 다른 모양이군.”
찰스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말에 따르긴 하겠네만,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설득할 건가? 다들 보더 러피안 짓이라고 생각할 텐데.”
“그건.”
막스는 찰스 의장을 보며 말했다.
“의장님 담당이잖아요.”
“......”
대화가 끝나고, 둘은 마을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홀리데이는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꽤 궁금한 눈치였다.
“오늘 일은 보더 러피안들과 전혀 상관없는 무법자들이 벌인 짓입니다.”
찰스가 사람들 앞에서 크게 소리쳤다.
정치인답게 그는 머리가 영민했다. 설득할 바엔 머릿속에서 보더 러피안을 지워버리는 게 수월하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물론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찰스는 술렁거리는 사람들을 향해 말을 이어갔다.
“이놈들은 우리 보안관이 예전에 처리한 갱단과 연관이 있습니다.”
“그 파이브 호아킨스 갱단?!”
찰스는 뻔뻔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막스는 탄성을 내질렀다. 뒤이은 말도 가관이 아니었다.
보안관은 휴가가 아니라, 이놈들을 찾으러 간 거고 하필 길이 엇갈렸다.
그래서 이 사단이 일어났다는 식이었다.
“자꾸 이놈들을 보더 러피안이라고 하시면, 진짜 러피안들이 들고 일어날 수 있습니다. 자, 시간도 늦었으니 내일 뵙도록 하죠.”
‘이쯤 했으면 알아들었겠지.’
찰스는 마을 사람들을 해산시킨 뒤, 막스에게 말을 건넸다.
“시체들은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겠나?”
“오늘은 그냥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시간은 새벽 3시. 피곤한 찰스는 막스에게 일임하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어째, 보더 러피안인 걸 필사적으로 감추는 느낌인데?”
신문 편집자인 조지 브라운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막스에게 물었다.
직업다운 날카로움이다.
이런 사람에겐 거짓이 안 통한다.
막스는 홀리데이와 조지 브라운에게 찰스에게 했던 말을 고대로 전했다.
“그러니까, 기사 쓸 때 그냥 무법자로 해주세요.”
“그런 이유라면 뭐. 오케이!”
다음으로 막스는 민병대와 함께 전리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말 15필, 리볼버 21정, 라이플 7정.
그 외 놈들이 가진 현금이 123달러.
전리품이 상당했다. 보안관 사무실을 다시 만들기에 충분할 정도로.
막스는 이 물건들을 마을의 귀중품 보관 담당자에게 맡기기로 했다.
상황이 마무리되고 남은 인원이라곤 홀리데이와 피치, 그리고 여전히 숨어있는 바운서가 전부였다.
“집이 불탔는데 여관에서 자는 건 어때?”
“아니면 우리 집에서 자던지.”
홀리데이의 말에 피치가 불쑥 끼어들었다.
막스의 눈동자가 요동치지만, 이내 진정시키며 고개를 저었다.
“다음에요.”
“다음? 어이없네. 이런 기회는 두 번 오지 않아.”
피치는 미련 없이 등을 돌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잠시 뒤엔 홀리데이마저 돌려보내자, 어둠 속에서 스윽하고 바운서가 나타났다.
“한잔하러 가죠.”
펍은 잿더미가 된 사무실과 멀지 않다.
삐걱삐걱.
스윙도어를 밀고 들어가자, 기름 등잔이 켜진 테이블에는 위스키 한 병과 술잔 두 개가 세팅되어 있었다.
“보안관 할 맛 나겠구나.”
“이런 대접 받으려면, 내가 얼마나 고생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