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8화 (28/360)

이곳 오너는 민병대원인 호치슨.

막스의 부탁이라면 이보다 더한 세팅도 할 수 있었다.

쪼르르.

술잔을 따르고, 말없이 잔을 부딪힌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위스키의 거칠고 강렬한 향이 입안에 맴돌았다.

“근데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너무 빨리 묻는 거 아니냐.”

바운서는 피식하며 시거를 입에 물었다.

“콜린 프랭크 매드슨.”

“처음 듣네요.”

“들어봤을 리가 없지. 콜린이라고 불러.”

뭔가 있을 것처럼 분위기 잡더니,

진짜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래서, 아까 말한 부탁이 뭡니까.”

콜린은 연기를 길게 내뿜고는 입을 열었다.

“혹시 지하철도라고 들어봤어? 나 거기서 일하거든.”

은하철도 아닌 지하철도(Underground Raiload).

‘물론 알고 있지.’

흑인 노예들을 탈출시켜주는 네트워크.

물론 이 시대에 철도가 있을리는 없고.

탈출하는 노예들이 마치 땅속으로 들어간 것처럼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졌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전혀 모르는 비밀에 싸인 조직.

막스는 모르는 척 눈만 껌뻑거렸다.

세상에 찌든 표정의 바운서지만, 지금은 꽤 진지한 얼굴이었다.

“그래서 거기서 무슨 일을 합니까?”

“역 차장(conductors). 티켓든 자들을 역에 데려다주는 일을 하고 있지.”

은어가 난무하지만, 막스는 전부 알아듣고 있었다. 한 마디로 흑인 노예들을 안전한 곳까지 안내하는 역할이었다.

바운서, 아니 콜린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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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가 티켓을 발견하면, 차장인 내게 데려오지. 그럼 나는 승객을 더 안전한 역으로 옮겨주고, 그렇게 바퀴는 계속 돌아가는 거야.”

“...... 노래 가삽니까?”

지하철도의 역 차장.

콜린 프랭크 매드슨은 자신이 하는 일을 은어로 표현했다. 흑인 노예들을 어떻게 탈출시키는지에 관한 내용이었다.

“5년 전 만들어진 도망 노예법 알지?”

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부에서 탈출한 노예가 북부로 갔을 경우 주인이 직접 잡아갈 수 있는 법안.

도망 노예의 증언과 배심 재판이 금지된 탓에, 자유 흑인을 노예라고 모함하면 변론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악법이었다.

그리고 그 법이 생긴 이후 더 악랄해진 노예상인, 노예 사냥꾼들의 추적. 죽거나 붙잡혀간 흑인 노예들의 이야기가 콜린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들으면 들을수록 지하철도에 올라타는 기분이랄까.

지시받고, 얽매이는 건 로렌스 보안관 자리만으로 충분하다. 막스는 굳이 이 조직에 몸담을 생각이 없었다.

짝짝.

손뼉 치고 주위를 환기한 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래서 부탁이 뭡니까.”

“로렌스 마을에 역 하나 만들어줘.”

역은 노예들을 숨겨주는 은신처.

막스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결정할 사안이 아닙니다.”

“네가 말하면 마을 의장도 들어 줄걸?”

“글쎄요. 일단 말은 해보죠. 다만, 제가 지하철도에 몸담을 일은 없을 겁니다.”

콜린은 막스를 흘겨보며 물었다.

“동양인이면 흑인 노예 편을 들어야지?”

“해괴한 논리네요. 그런데 내가 누굽니까. 노예 폐지론자들이 만든 마을 보안관입니다. 이 이상 어떻게 편을 들어요?”

반박할 말이 생각나질 않는지, 콜린이 입맛을 다셨다. 그러다 갑자기 눈빛이 돌변하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넌 이미 너무 많은 정보를 알고 있어.”

“혼자 떠들고 이런 식으로 나오면 곤란하죠. 정 입 막고 싶으면 총을 뽑던가. 자신 있으면.”

둘의 시선이 엉키며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이때 콜린의 머릿속엔 막스가 보더 러피안들을 처리하는 모습이 스쳐 갔다.

‘시발, 이길 자신이 없네.’

대체 어디서 이딴 놈이 튀어나왔는지, 콜린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때 막스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역은 아니지만, 내가 지하철도를 도울 일이 있을 겁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종착지를 향하는 노선이 다를 뿐, 결국 목적은 같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오늘 우리가 죽인 자들이 누구인지를 생각해 봐요.”

노예 폐지론자들이 모여 만든 정착 마을.

콜린은 동양인, 아니 보안관과 노예 옹호론자인 보더 러피안들을 죽였다.

방법은 다르지만, 이 또한 흑인 노예들을 위한 일이었다.

“아무튼, 그건 그거고. 두 번 빚졌으니, 두 번은 도와줄게요.”

대신, 도움은 단발성일 것. 시일이 걸리거나 지역이 멀면 무조건 거절한다는 등의 조건이 붙었다.

“전 빚지는 건 질색이거든요.”

“뭐야, 너 사기꾼이야? 빚진 거 갚는다면서 뭔 조건을 덕지덕지 붙여.”

짜증 난 콜린은 연거푸 위스키 두 잔을 들이켰다. 그리고 잔을 내려놓을 때, 막스가 뭔가를 내밀었다.

“이건 우리 약속의 증표.”

“햐......”

구리 탄두 위에 새겨진 MJ.

콜린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지 이니셜을 새겨놨네.”

“내 도움이 필요하면 들고 와요. 한 발당, 하나씩. 잃어버리면 우리는 모르는 사입니다.”

탄두를 만지작거리던 콜린은 고개를 절레 저으며 품속 깊숙한 곳에 집어넣었다.

막스의 실력을 감안하면, 오늘 하루 개고생한 값치곤 나쁘지 않았다.

*

“오늘은 괜찮습니다만.”

“마차 떠났어.”

피치가 단칼에 잘라버린다.

막스는 시무룩한 얼굴로 톱질에 집중했다.

콜린은 동트기 전 마을을 떠나고, 낮부터는 잿더미가 된 보안관 사무실을 재건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동원되었다.

피치는 막스를 보조하며 공사를 도왔다.

“시체 대부분이 목과 가슴에 보위 나이프로 찔린 상흔이 있더라.”

“그걸로 찔렀으니까요.”

“총 대신 나이프 파이팅을 택한 건 다수를 상대하기 위해서겠고. 특이한 건 한 놈의 상처가 유독 깊다는 거야. 그건 야전 장교의 검으로 쑤신 거지?”

“그렇다고 봐야죠.”

드르륵, 드르륵.

“그럼 혼자서 9명을 죽였다는 소린데, 나도 배우면 가능할까?”

“죽이고 싶은 놈들이 많은가 봐요?”

“만약을 위해서지.”

잠시 톱질을 멈춘 막스의 시선이 피치에게로 향했다.

뒤로 단정하게 넘긴 머리카락.

새하얀 피부, 갸름한 얼굴과 오똑한 코는 전형적인 서구 미인상이었다.

“대체 뭐가 되고 싶은 거예요? 보안관? 아니면 검시관?”

“서부에 있는 여자는 세 종류라더라.”

“뭔데요.”

“유부녀 아니면 미망인. 그리고 매춘부. 이 중에서 나는 뭐가 될까?”

“어려운 질문이네요.”

드르륵, 드르륵.

막스는 다시 톱질을 시작하고, 피치는 어제 싸울 때의 상황을 상세히 물어왔다.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로렌스 사건을 다룬 신문이 캔자스는 물론 이웃까지 퍼져나가고. 내용엔 보더 러피안이 아닌 무법자의 소행으로 결론 내었다.

*

보안관 사무실이 완공되고 며칠 뒤.

찰스 의장이 막스를 찾았다.

처음 있는 일로, 작은 회의실에는 오직 둘만이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새로운 보안관 사무실은 어떤가?”

“아주 마음에 듭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찰스는 이내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머지않아 로렌스 마을도 카운티에 묶이게 될 거네. 듣기론 더글라스 카운티라고 하더군.”

“새로운 보안관이 선출되겠군요.”

막스의 말에 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레콤프턴과 로렌스가 함께 더글라스 카운티에 묶일 텐데, 이렇게 되면 레콤프턴에게 우리가 밀리게 되네.”

현재로선 주지사와 노예주들의 영향력이 미치는 레콤프턴이 준주의 주도로 여겨질 때다.

찰스와 홀리데이가 로렌스와 토피카를 밀고 있지만, 아직은 영향력이 미미했다.

“새로운 보안관이 자넬 경질할 수도 있네.”

“어차피 전 임시 보안관 아닙니까.”

“물론 그렇긴 하지. 그런데 놈들이 내세우는 보안관은 빤하지 않은가.”

막스는 찰스를 보며 말했다.

“그건 의장님께서 하실 일이죠. 로렌스가 레콤프턴을 집어삼키면 되는 일입니다.”

“말이야 쉽지. 사실 자네를 부른 것도 그 이유 때문이네. 지혜를 구하고 싶어서 말일세. 처음엔 동양인이니 뭐니 따졌지만, 지금은 그것조차 깜빡하네. 마을 사람들도 그렇지 않은가.”

동양인이 아닌 로렌스의 보안관.

이런 이미지가 강렬하게 박혀 있어, 마을 사람들은 막스를 이름 내지는 보안관으로 부른다.

그리고 막스의 취미는 신문과 독서.

토지 분쟁과 토피카, 민병대 창설의 혜안이 결코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라는 걸 찰스는 인정하고 있었다.

“내가 캘리포니아의 의원이었을 때 어느 정당 소속이었는지 아나?”

“휘그당이었을 것 같은데요.”

전생의 기억이 아니라, 막스의 감이었다.

민주당이나 이름도 해괴한 아무것도 모르는(Know Nothing)당과 같은 곳은 어울리지 않았으니 말이다.

“맞네. 휘그당이었지. 그런데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달라졌어.”

“여러 당으로 쪼개졌죠.”

“그래서 고민이 많네.”

캔자스-네브래스카 법의 통과로 휘그당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노예 폐지론자들은 지도부에 실망하여 탈당하게 되고, 이내 공화당을 창당하기에 이른다.

늘 그렇듯, 이제 막 시작하는 당은 리스크가 따른다.

여전히 존재하는 휘그당, 자유 토지당, 미국당 등. 그 선택의 기로에서 찰스는 갈등하고 있었다.

‘어차피 공화당으로 갈 거면서.’

노예 폐지론자들이 모여드는 곳. 그리고 곧 전국 정당으로 거듭날 공화당은 시대의 흐름을 타고 민주당과 양대 정당으로 자리를 굳히게 된다.

“공화당으로 가시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이유는?”

“여론이 노예 폐지론으로 쏠리고 있으니까요. 그걸 기치로 내세우는 정당이라면 충분히 지지를 얻을 거라고 봅니다.”

더욱이 북부가 남부의 인구를 넘어선 지 오래다. 여기에 더해 흑인 노예까지 투표권을 얻게 되면 남부와 민주당은 권력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자유주의 확대는 노예 폐지로 이어지고.

이는 남부 부농들의 재산과 권력이 빼앗긴다는 걸 의미한다.

흑인 노예들을 거느린 농장주들이 캔자스를 노예주로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건 이런 위기감이 작용한 결과였다.

찰스는 막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화제를 돌리며 말했다.

“지난번 사건을 생각하면 아찔하더군. 지금 민병대 수준으로 괜찮겠나?”

“말이 나왔으니, 한 가지 건의 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마을에 총격전이 벌어지면, 여인과 아이들은 무방비상태로 위험에 노출된다.

더구나 얼마 전 헛간에 숨어있던 걸 생각하면, 가장 시급한 건 바로 피난처였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만들었으면 합니다.”

“좋은 생각이네. 이건 의원들과 가까운 시일 내에 처리하도록 하겠네.”

찰스는 대화 막바지에 이르러 막스의 서류문제를 언급했다.

“자네 이민권 문제를 두고 홀리데이와 진행한 게 있었는데. 어제 소식이 들려왔네.”

“그렇습니까?”

“1853년 1월 2일,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입국 명부에 자네 이름을 기재했네. 뭐, 불법이긴 하지만 유령을 만든 건 아니지 않은가.”

캘리포니아 의원을 역임했던 찰스 로빈슨의 입김이 작용한 모양이다. 이런 걸 보면 꽉 막힌 자는 아니었다.

더구나 출신 국가를 차이나가 아닌 조선으로 했단다.

“거기가 어디냐면서 당황했다더군.”

찰스 의장의 말에 막스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서류가 만들어졌다고 끝나는 건 아니다.

미국의 귀화법은 백인이 대상이라 막스가 시민권 자격을 얻는 건 불가능하다.

가능한 건 이 땅에 살 수 있는 권리.

영주권이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리고 이를 취득하기 위해서 막스는 홀리데이를 고용주로 앞으로 2년을 더 보내야했다.

*

로렌스 습격이 발생한 지 이 주.

편집자 겸 기자인 조지 브라운이 막스를 찾아왔다.

“홀리데이는 토피카에 갔어?”

“요새 그것 때문에 얼굴 보기도 힘들어요.”

좋은 소식이라도 있는지 입이 귀에 걸려있었다.

그러면서 신문을 쫙하고 펼쳐 보였다.

“자 봐! 네 말대로 됐어!”

“구겨져서 안 보여요.”

조지 브라운은 신문을 책상에 던지며, 막스의 어깨를 두드렸다.

“주지사가 결정했어. 재투표하기로!”

막스는 과하게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놀란 표정을 짓고, 조지 브라운은 신나서 찰스 의장을 만나러 갔다.

막스는 그가 가져온 신문을 펼쳤다.

예상되는 투표일은 5월 22일.

전부는 아니고 부분적 재투표가 이루어진다.

자유주와 노예주 사이에서 마침내 주지사가 결정을 내린 것이다.

신문을 펼친 막스는 기사를 읽던 끝에,

한 구인 광고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핑커톤 전미 탐정 에이전시.

Pinkerton National Detective Agency

전생에 몸담은 민간군사기업(PMC)의 시조.

핑커톤의 광고에 한동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핑커톤

시카고 최초의 탐정.

앨런 핑커톤이 만든 ‘핑커톤 전미 탐정 사무소’는 훗날 민간군사기업(PMC)으로 탈바꿈하는 조직이다.

현시점은 핑커톤 창설 5년 차.

작은 마을 신문사에 구인 광고를 낼 정도면 탐정 수가 부족하다는 것이고, 이는 고객들이 넘쳐난다는 말이다.

본격적으로 탐정 수가 늘어나는 건 남북전쟁 이후. 퇴역 군인들을 흡수한 핑커톤이 비로소 PMC로 진화하게 되는 시점이다.

핑커톤 광고 하나로 막스의 머릿속에 많은 것들이 스쳐 지나갔다.

전생은 물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가장 잘 할 수 있는 걸 떠올리면 답은 간단했다.

‘핑커톤 사무실에 가봐야겠어.’

위치는 일리노이주의 시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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