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화 (29/360)

하지만 당장 갈 일은 아니다.

현시점에선, 가봐야 핑커톤에서 얻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적어도 내 세력은 있어야겠지.’

전생의 용병처럼 함께 전장에서 뛸 동료.

지금까지 떠오르는 건.

‘꼬맹이랑 흑인 노예들의 마니또, 그리고 성격 특이한 피···.’

삐걱, 삐걱.

피치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에머리씨가 널 찾아.”

에머리는 마을의 목수.

최근 마을 피난처 공사를 두고 잦은 회의를 하고 있었다.

에머리는 막스에게 몇 가지를 확인하고, 이어 다른 화제를 꺼내었다.

최근 캔자스 마을 두 곳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에 관한 이야기였다.

“왜 하필, 둘 다 노예 옹호론자들이 많은 마을일까. 보안관도 폐지론자들이 한 짓으로 보여?”

“글쎄요.”

사실 막스는 처음 기사를 보고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정착민들끼리 토지 문제로 죽이는 일은 많았으니 말이다.

문제는 비슷한 사건이 두 마을에서 벌어지고, 그중 한 곳이 로렌스와 가까운 델라웨어라는 점이었다.

리븐워스에서 로렌스로 향하는 물류의 길목으로 노예 옹호론자들이 많이 모여있는 델라웨어. 그곳 마을 주민들은 살해된 자가 노예 옹호론자라는 이유만으로 범인을 폐지론자로 몰아갔다. 그 결과는 리븐워스에서 로렌스로 향하는 길목을 막는 것이었다.

이런 사태가 벌어지자, 막스는 전생의 기억을 적어둔 노트들을 뒤적거리며 범인들을 유추할 수 있었다.

일부는 이 일을 복잡한 흉계가 숨어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범인들은 노예제 따윈 관심 없는 자들이었다.

그저 여자면 겁탈하여 죽이고, 돈 많으면 갈취한 뒤 죽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무법자냐면, 그렇지도 않다.

막스가 이런 놈들을 기억하는 건,

앞으로 크고 작은 사건들도 싸잡아 노예제 폐지론자들의 범행으로 몰아가는 계기를 마련한 놈들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정작 놈들은 미주리주 출신의 노예제 옹호론자들이라는 사실.

정체가 한참 뒤에야 밝혀졌기에 노예제 폐지론자들은 일방적으로 누명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게 이때라 이거지.'

막스는 놈들이 로렌스에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피치는 의자에 앉아 멍하니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뭐합니까?”

“생각하고 있었어. 네 생각.”

“......”

이럴 땐 뭐라고 답해야 하나. 막스의 눈동자가 흔들릴 때, 피치가 말을 이었다.

“신문 보니까, 델라웨어에서 살인 사건도 그렇고 범인 잡기 힘들어 보이네.

진짜, 범인은 우리 같은 노예제 폐지론자들일까?”

‘아니, 그냥 생각 없는 놈들이야.’

피치는 곰곰이 생각하던 끝에 말했다.

“이런 사건은 핑커톤이 오면 금방 해결해 줄 텐데.”

“핑커톤?”

막스는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유능한 탐정들이 모인 곳이야. 거기라면 분명 범인들을 금방 잡을걸?”

추리 소설을 즐겨 읽고, 주인공인 탐정에 흠뻑 빠져있는 피치.

그녀가 핑커톤을 동경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아니, 그동안 그녀의 행동을 생각하면 꽤 잘 어울렸다.

“핑커톤에 관심이 많았군요.”

“그럼 내 꿈인데. 받아줄지 모르겠지만.”

‘음? 핑커톤의 여성 탐정···?’

순간 막스의 머릿속에 한 여자의 이름이 떠올랐다.

핑커톤 최초, 아니 세계 최초의 여성 탐정.

하지만 그녀에게 중요한 건 타이틀이 아니다. 바로 업적이었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첫 번째 암살 시도를 막아낸 여성 탐정.

만약 그녀가 없었다면, 남북전쟁은 어떻게 흘러갔을지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근데 그 여자는 미망인에다 피치라는 이름도 아니란 말이지.’

공통점이 있다면 갈색 머리에 나이 정도.

문득, 피치라면 충분히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도 남을 거란 생각이 든다.

“저기 혹시.”

막스는 파르르 입술을 떨며 물었다.

“미망인이에요?”

피치의 눈가도 파르르 떨렸다.

그것은 놀라움보단 분노.

두리번거리는 게 총을 찾는 것 같다.

막스는 재빨리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그럼 이름은 본명 맞아요?”

“왜 이래. 에머리씨가 망치로 때렸어?”

‘아닌가 보네.’

긴가민가하는 차. 이런 생각도 든다.

본명이 아닌 가명으로 핑커톤에 들어갈 수도 있으니 말이다.

“혹시, 평소 좋아하는 이름 있어요? 갖고 싶은 이름이나.”

“막스 조. 막스 조 주니어?”

“!”

“그거 말곤 내 이름이 최고지.”

‘역시, 아니구먼.’

뭔가 아쉬우면서, 한편으론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솔직히 피치 실력이면 누구라도 탐낼만 하지 않은가.

‘최초가 아니라 그다음 탐정이 될 수도 있었겠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고,

핑커톤에 관심 갖는 피치가 갖고 싶어졌다.

물론 여자가 아닌 동료로서.

“핑커톤 별거 없습니다. 차라리 제 밑에서 배워요.”

“솔직히 우리 보안관이 대단하긴 하지. 총 잘쏴, 칼질 잘해, 상황 파악은 또 어떻고. 다만.”

“다만이라뇨. 그런게 있을 리가...”

“세세함이 부족해. 탐정은 작은 걸 놓치지 않은 치밀하고 분석적인 능력이 중요하거든. 아직 너한테 그걸 못 봤어.”

막스의 자존심에 금이갔다.

그깟 핑커톤, 자신이 부족한 게 무엇인가.

“그리고. 넌 보안관이 잘 어울려. 너도 여기에 만족하고 있잖아.”

“그래 보입니까?”

“말했지? 서부에 땅 없는 남자는 남자도 아니라고. 근데, 너 오늘따라 왜 이렇게 말이 많은 거야? 남자 말 많으면 매력 떨어진다.”

피치는 고개를 절레 저으며 사무실을 벗어났다. 멍하니 서 있던 막스는 코웃음 치며 자리에 앉았다.

“동료는 개뿔.”

저런 성격이면 지시에 따르지도 않을 거고.

꼬치꼬치 따지려고 들 거고.

아무튼, 동료로서는 빵점이다.

피치를 머릿속 아주 미세한 구멍으로 몰아넣고. 막스는 책상에 펼쳐진 신문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금 피치가 머릿속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핑커톤 광고가 오려진 것이다.

막스는 구멍 뚫린 신문을 응시하며, 손가락으론 책상을 두드렸다.

그리고는 피치가 말한 델라웨어 살인 사건 기사를 슬쩍 쳐다봤다.

‘탐정이 뭔지 제대로 보여줘야겠네.’

*

며칠 뒤 홀리데이가 사무실을 찾아왔다.

옆에는 인디언 부자가 함께였는데, 옷은 서부식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최초 토피카의 부지를 알려주고, 그 일대를 가이드한 인디언들이었다.

“조 짐입니다. 이쪽은 아들 주니어고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조 짐. 막스 조입니다.”

조를 연달아 발음하니 이상하다.

악수하려던 막스는 손을 바꾸어야 했다.

조 짐은 오른손이 없는 외팔이었다.

“독에 중독되어서 한쪽 팔을 잃었죠.”

“그렇군요. 근데 오늘 무슨 날인가요?”

막스가 홀리데이를 보며 물었다.

“찰스 의장과 상의 할 게 있거든. 공사를 서두르다 보니 이것저것 골치 아픈게 한두 개라야지.”

최근 토피카는 도시의 틀을 갖추기 위한 공사가 한창 중이다. 구획을 바둑판처럼 나누고, 캔자스의 주도가 되기 위한 공사가 진행중이었다.

더구나 홀리데이는 원활한 공사를 위해 캔자스강을 정기적으로 오가는 증기선까지 끌어들였다.

토피카와 로렌스에 상륙장이 만들어지고, 동쪽에서 고기, 목재, 밀가루를 실어 날랐다. 그리고 이곳에서 생산한 감자, 옥수수, 밀을 다시 동쪽으로 실어 날랐다.

사실 토피카가 캔자스의 주도가 되려면 그 첫 번째 조건은 반드시 자유주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 길은 멀고도 험난한 길이었다.

“우린 찰스 의장 만나러 갈 테니까, 이따가 보자.”

홀리데이와 인디언 부자가 나가고 얼마 뒤.

데자뷰처럼 피치가 사무실을 찾아왔다.

“낯선 사람들이 온다는데?”

“그래요?”

피치는 자연스레 책상으로 다가왔다.

“오늘은 같이 가죠.”

“그러든지.”

궁금한 게 없는 피치는 먼저 사무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오늘은 탐정 수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대체 탐정이란 게 뭔지, 그 갈증을 해소해 드리죠.”

“참, 뜬금없네.”

“아니죠. 그런 말 하기 전에, 왜 하필 오늘 이런 말을 할까, 유추를 해봐야죠.”

“음. 약 먹을 시간 지나서?”

“저런. 그래서 아마추어라는 겁니다.”

피치는 어이없는 표정을 짓더니, 제대로 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

얼마 후,

둘은 마을로 들어온 20대의 젊은 남자 셋을 볼 수 있었다.

막스는 피치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나랑 떨어져 있어요. 그리고 이제부터 낯선 자들을 분석하는 겁니다.”

피치가 멀리 거리를 두었다.

그리고 둘은 각자의 눈으로 남자들을 살펴봤다.

말쑥한 옷차림에 보기엔 평범했다.

막스를 보며 놀라는 것도.

“뭐, 뭐야? 이 동양인은.”

지겨운 반응들이라 막스는 무덤덤하게 말을 건넸다.

“마을 보안관인데 무슨 용무로 왔습니까?”

“엉? 뭐야, 이게 말이 되는 거야?”

“저기요. 이놈, 진짜 보안관 맞아요?”

심지어 사람들에게 묻기까지 한다.

“놈이라뇨? 막스 조는 우리 보안관 맞거든요?!”

“갑자기 찾아와서, 이게 무슨 무례람.”

마을 사람들이 대신 흥분하며 남자들을 비난했다.

얼굴을 찌푸린 그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돌연 미소를 지었다.

“오해가 조금 있었던 모양입니다. 자자, 다들 이거 한 장씩 받으시죠.”

남자들은 가방에서 전단지를 꺼내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호기심이 생긴 막스가 손을 내밀었다.

“줘봐요.”

“동양인은 됐어. 종이 아까우니까.”

“참나. 내가 주면 되지! 이게 뭐라고.”

참다못한 마을 주민이 그들에게 받은 종이를 막스에게 건네줬다.

[미국당(American Party)은 오직 이 나라밖엔 모릅니다.]

‘호오. 미국당.’

막스에겐 필요 없는, 정당 홍보를 위한 전단지였다.

그 유명한 에이브러햄 링컨이 소속됐던 휘그당의 몰락 이후.

새로운 정당들이 쏟아지고, 그중 소수정당치곤 무섭게 세를 불리고 있는 정당이 바로 미국당이다.

그리고 이들의 진정한 정체는 막스를 비롯해 마을 사람들도 잘 알고 있었다.

일명 ‘아무것도 몰라요(Know nothing)’라는 태생부터 삐딱한 집단이었다.

흑인보다 이민자인 아일랜드인과 독일인을 쓰레기 취급하는 이민배척주의자.

백인, 잉글랜드, 개신교 남성만이 입단할 수 있는 조직이지만, 지금은 어엿한 정당으로 거듭나며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우리 미국당이 캔자스의 자유의 땅 로렌스까지 찾아와 여러분에게 인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잠시 후에 광장에서 연설이 있을 예정이니,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전단지를 다시 회수한 남자들은 마을 사람의 냉담한 반응은 아랑곳하지 않고 마을 중심을 향해 나아갔다.

정당의 홍보 활동을 막을 수도 없고. 막스는 묵묵히 그들이 지나가는 걸 지켜봤다.

그리고 피치에게 다가갔다.

“저들을 보고 분석한 걸 말해 봐요.”

“음. 일단 얼굴에서 가식들이 느껴졌고. 그건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의 특징이겠지. 그리고 복장에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아. 또···.”

피치는 진지했다. 그녀는 상세하게 남자들의 외관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리고 또?”

“미국당 당원답게, 너를 개무시했어. 재수없었지.”

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날카로운 분석이네요.”

“아무튼. 이 정도면 된 거 아냐?”

“여기서 잘못된 게 뭔 줄 알아요?”

“뭔데?”

막스는 피치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피치는 지금, 쟤들을 미국당 당원이라는 전제하에 생각했다는 겁니다.”

“당원이 아니면 뭔데?”

‘범인들이지.’

미국당과 노예 제도따윈 관심 없는, 잔 대가리 잘 굴리는 놈들. 캔자스 마을 두 곳에서 강도 살인을 저지른 범인이 마침내 로렌스에 기어 들어왔다.

  탐정과 살인범들

“여러분 우리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오직 이 나라, 여러분 말고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미국당의 사명은 우리 개신교도의 피땀으로 일군 이 땅을 지키고 여러분의 행복을 지키는 것입니다!”

먼지 휘날리는 광장.

고작 주변보다 넓은 공터 수준이라 광장이라 말하기 민망할 수준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미국당의 공허한 연설을 듣는 이는 고작해야 두 명.

막스와 피치뿐이었다.

“아무튼···.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짝짝.

막스가 박수치자, 놈들은 똥씹은 표정으로 힘 떨어진 연설을 끝냈다.

- 저 동양인 새끼, 좆나 신경 쓰이네.

- 알 게 뭐야. 일단 목이나 축이자.

- 근데, 마을이 너무 후진 거 아냐? 그나마 저년이라도 있어서 다행이지, 어휴.

남자의 말에 일행들은 피치를 힐끔거렸다.

나이, 외모는 일단 합격이다.

- 마을 정보부터 캐고. 오늘 밤엔 거기서 실컷 마셔 보자고.

남자 셋이 속닥거릴 때, 막스와 피치도 목소리를 죽여 은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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