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당 당원이 아닐 수도 있다 이거지? 흠. 그렇게 생각하니까, 이상하긴 하네. 원래 미국당은 노동자를 타겟으로 표를 얻잖아. 이 마을과는 어울리지 않지.
동부의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에게 고용된 자들. 그런데 언제부턴가 아일랜드와 독일 이민자들이 낮은 임금으로 자신들의 밥그릇을 빼앗기 시작했다.
미국당은 그런 노동자들의 분노와 증오심을 교묘히 파고들어 지금의 세를 이룬 것이다.
- 또, 다른 건요?
- 글쎄.
- 없으면 따라다니면서 의혹이 풀릴 때까지 관찰해야죠.
놈들은 마을을 누비며 미국당을 홍보했다.
상점과 집 문을 두드리고, 대화를 나누고. 그 뒤를 막스와 피치가 미행한다.
그렇게 돌아다닌 끝에 놈들이 간 곳은 민병대원인 허치슨이 운영하는 펍. 따라 들어가려던 피치의 팔을 막스가 붙잡았다.
- 밖에 놈들이 세워 둔 말들이 있어요. 가방들이 있는데, 어떻게 할래요?
- 아.
의도를 파악한 피치가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말들에게 곧바로 다가가지 않고, 창문을 통해 펍 안을 살펴봤다.
의도적인 건지, 놈들은 자신들의 말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있었다.
막스는 한쪽 구석에서 팔짱 끼고 서 있고.
피치는 얼굴을 가까이하여 물었다.
- 안 도와줘?
- 지금은 증거 수집 단계에요. 탐정이라면 오롯이 혼자 힘으로 해결해야죠.
- ... 오케이.
장난으로 여겼다면, 진작 돌아갔을 터.
피치는 어느 때보다 진지한 얼굴로 이 일에 임하고 있었다. 기필코 저들의 정체를 밝히겠다는 오기까지 엿보였다.
궁리하던 피치.
그녀는 마침 잡화점에서 막 나오는 두 명의 여인을 볼 수 있었다.
로렌스 마을 최초의 하숙집(Boarding house)을 운영하는 매사추세츠에서 온 똑부러지는 여인들이었다. 피치와 더불어 결혼 안 한 여인들이기도 하고.
피치는 둘에게 다가가, 하숙집이 필요할 것 같은 손님이 있다며 넌지시 일러주었다.
막스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적들의 시선을 가리려는 방법으론 꽤 그럴듯했다.
“고마워 피치양. 가뜩이나 손님도 없었는데, 오늘 제대로 영업해야겠네.”
두 여인이 펍으로 들어가고, 남자들과 말을 섞기 시작한다.
시선을 돌리는 데 성공한 피치는 자세를 웅크려 말들에게 접근. 가죽으로 된 서류 가방을 뒤적거렸다.
미국당 전단지가 담긴 가방은 빠르게 패스.
비슷하게 생긴 다른 가방에 손을 대었다. 놀랍게도 그 안에는 지금은 공화당과 합병한 자유토지당(Free Soil party)의 전단지가 튀어 나왔다.
마지막 세 번째 가방에는 다소 황당한 이름의 무효정당(Nullifier Party)의 전단지가 있었는데, 역시나 지금은 없어진 정당이었다.
세 개의 전단지를 챙긴 피치가 막스의 옆으로 왔다.
“저놈들 진짜 수상해.”
의심이 자리 잡자 머리는 영민하게 돌아가고 행동은 더욱 적극적이다.
퍼즐 조각 맞추듯, 한참 뒤엔 펍에서 나온 두 여인을 쫓아가 물었다.
“어땠어요?”
“오늘 마을에서 안 잘 거래.”
‘그냥 간다고?’
피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을에서 뭔가 벌이려고 예상했는데, 틀린 것이다.
“근데 무슨 대화를 그렇게 오래 나눴어요?”
주로 마을 상황을 물어봤단다. 그리고 마을 보안관에 관심을 보였다고 했다.
“우리 막스 보안관이면 또, 할 얘기가 좀 많아? 유명한 갱단을 잡은 것부터 시작해서 최근 무법자 15명을 죽인 일까지 죽 말해줬지.”
“반응은요?”
“한동안 말이 없더라고.”
‘쫄았네.’
피치는 병신들이라며 고개를 끄덕이고, 여인들이 말을 이었다.
“아무튼, 남자들이 꽤 친절하더라고. 정착 마을 돌아다니면서 귀중품 잃어버리는 걸, 많이 봤다면서 잘 챙기라고 신신당부를 하더라고.”
“그래서요?”
“뭐, 우린 귀중품 보관 담당자가 따로 있잖아. 그 얘길 했더니, 무릎을 탁 치더라고.”
“음음. 무릎을 탁, 쳤다 이거죠.”
“아무튼, 이런저런 이야기 하느라 말이 길어졌지 뭐. 다음에 오면 그때 꼭 우리 하숙집에 머물러야겠다고 하더라고.”
‘왜 오늘 마을을 떠나는 걸까.’
막스의 이력이 화려하니, 나쁜 짓 하려는 마음이 사라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귀중품 담당관 정보를 얻은 마당에 계획을 수정하진 않을 것이다.
‘오늘은 정보 수집 차원인가.’
여인들과 대화를 끝낸 피치는 막스에게 고대로 말을 전해주었다.
“다음은 어떻게 움직일 것 같아요?”
“보나 마나 리바이씨 집으로 가겠지.”
“그럼 가 볼까요?”
미국당이 아닐 수도 있다.
이 작은 의심 하나로 피치의 생각와 행동이 바뀌었다.
막스는 그 변화가 만족스러웠다.
‘내가 용병이지 탐정은 아니잖아.’
적이라 생각하면 총을 쏘든, 칼을 쑤시든 잡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힘에만 의존하면 조직의 한계는 명확하다.
막스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줄 다양한 능력자들이 모인 집단. 그들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조직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
그 때문에 피치가 그러한 능력이 있는지, 그녀의 역량을 지켜보는 건 나름 의미있는 일이었다.
마을이 석양으로 붉게 물들었을 즈음.
놈들이 펍에서 나왔다.
얼큰하게 취한 얼굴로 놈들이 향한 곳은 리바이 게이츠의 집. 마을의 귀중품 보관 담당자 집이었다.
- 오늘은 그냥 돌아갈 거야. 놈들의 패턴을 봐선 정보 수집이 목적인 것 같거든.
피치가 나직이 속삭였다.
그러면서 나름의 추리를 늘어놨는데, 막스도 미처 생각지 못했던 날카로움이 있었다.
- 굳이 당원 행세 하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접근하기 쉽고 의심을 피할 수 있어서야.
전단지는 마을 성향을 고려해 접근 방법을 달리한 것이고, 민주당과 공화당은 어딜 가나 당원이 존재하기 때문에 놈들은 동부에나 있을 법한 정당을 택했다.
- 그리고 전단지를 나눠 주면서 마을 지리를 익히고, 정보를 수집하는 거지.
그러면서 범행 대상을 물색하고 실행하는 게 놈들의 수법이야.
- 하, 설마 그럴 줄이야.
- 뭐?
막스가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자, 피치가 물었다.
- 아닙니다. 제가 생각한 것과 일치하네요.
- 으힛.
기분 좋은 피치가 푼수처럼 실소를 터트렸다. 막스가 얼굴을 찌푸리자, 그녀는 정색하며 말했다.
- 그런데 쟤들은 대체 언제 일을 벌이려고 저러는 걸까.
놈들은 리바이 집 문을 두드리고, 전단지를 핑계로 대화를 나누었다.
피치는 리볼버를 만지작거리며, 만약의 사태를 대비했다.
하지만 그녀의 예상대로 놈들은 아무 일도 벌이지 않았다.
- 하긴, 오자마자 일을 벌일 만큼 허술한 놈들이었으면, 전단지 까지 준비하진 않았겠지.
- 좋습니다. 이대로만 하세요.
막스의 격려에 피치는 입을 막으며 키득거렸다.
서부가 무법지대라도 연방 보안관과 현상금 사냥꾼이 존재한다.
행여 자신들의 행각이 발각되면, 도망자가 되고 그 순간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를 불안한 생활을 해야 한다.
놈들은 그걸 감당할 만큼의 무법자는 아니었다.
날이 어두워지고, 리바이 집에서 멀어진 놈들의 목소리가 조금은 높아졌다.
“이제 슬슬 거기로 가 볼까?”
“드디어 오늘 인디언 살맛 좀 보겠구나.”
“그 외팔이는 내가 맡을 게.”
“이 새낀 맨날 쉬운 것만 하려고 하네.”
셋은 그렇게 말한 뒤, 마을 밖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피치가 속삭여 물었다.
- 인디언? 외팔이? 저게 다 뭔 소리지?
‘이게 이렇게 흘러가네.’
막스는 자신의 존재로 말미암아 사건이 왜곡되었음을 깨달았다.
원래대로라면 홀리데이가 인디언 부자를 데려오면 안 되었다.
그들은 자신의 집을 습격한 놈들을 죽이고, 이 일로 조 짐의 부인이 죽게 된다.
그런데 홀리데이는 하필 오늘, 자신에게 소개해주려 인디언 부자를 데려온 것이다.
‘여기서 놈들을 죽이면, 죄목이 뭐지?’
전단지 세 장 들고 다닌 사기꾼.
놈들은 이곳에서 술 처먹고 전단지 뿌린 게 전부였다.
결국, 사건 현장에서 처리하는 방법뿐이다.
애초에 이걸 염두하긴 했었지만, 꽤 번거로운 일이었다.
막스는 놈들을 쫓으려는 피치를 제지했다.
그녀의 열정이 대단했다.
- 설마, 여기서 포기?
- 사무실 가 보면 알아요.
고개를 갸웃거린 피치는 이내 막스와 함께 사무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곳엔 홀리데이와 인디언 부자가 막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뭐야!?’
인디언들을 본 피치는 눈을 동그랗게 떠 막스를 쳐다봤다.
이때 홀리데이의 핀잔이 들려왔다.
“대체 어디 갔다 오는 거야? 너랑 저녁 먹으려고 이 둘을 토피카에서 모셔온 거라고.”
“일이 좀 있었습니다.”
막스는 인디언인 조 짐을 보며 물었다.
“그런데 집엔 누가 있습니까?”
“부인과 딸이요. 그건 왜 묻습니까?”
“아무래도 위험에 처한 것 같네요.”
“그, 그게 무슨...”
“피치 양?”
조수처럼 막스가 피치를 쳐다보자, 잠시 멈칫한 그녀는 이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오늘 있었던 미국당 당원 놈들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말미에 이르러서는 인디언 부자의 얼굴이 굳어졌다.
“홀리데이, 저녁은 다음에 먹어야겠습니다.”
“제가 피치와 함께 따라가죠.”
막스의 말에 피치는 비장한 눈빛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홀리데이는 자신도 가겠다는 걸, 막스가 만류했다. 어차피 가 봐야 도움도 안되고.
“사무실 지켜요. 혹시 모르니까, 민병대 순찰조도 짜주고.”
“알았어. 막스가 따라가니까 아무일 없을 거예요, 짐”
인디언 부자는 아무 말도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집으로 가는 것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
이 일대의 토박이답게, 조 짐은 토피카로 향하는 지름길을 택했다.
노예제 옹호론자들이 득실거리고 보더 러피안들이 들락거리는 레콤프턴 마을과 가까워 평소엔 이용하지 않는 길이었다.
구름이 잔뜩 낀 우중충한 밤.
캔자스 강둑에 있는 조 짐의 통나무 집에 도착했다. 일행은 말을 멀찌감치 세워두고, 은밀히 접근했다.
집 안, 기름 등불의 은은한 불빛이 창밖으로 새어 나오고 세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행히 먼저 도착한 것이다.
평상시와 다름없는 대화.
그런 모녀간의 대화를 듣고 있는 인디언 부자의 눈시울은 뜨거워진다.
그만큼 오는 내내 마음을 졸였었다.
피치는 주변을 둘러본 끝에 입을 열었다.
- 놈들은 우리처럼 말을 놔두고 접근할 거예요. 신중한 놈들이라 바로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주변을 관찰하겠죠.
피치는 최적의 장소로 집 오른쪽에 붙은 언덕을 선택했다.
집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지형.
막스가 생각한 곳과 일치했다.
- 여기서 놈들을 기다리죠.
피치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인디언 부자는 언제라도 쏠 수 있도록 리볼버를 쥐고 있었다.
피치가 속삭이듯 조 짐에게 물었다.
- 주변에 다른 집은 없나 봐요?
- 오래전부터 우리 가족만 살았습니다.
인디언들은 주로 집단생활을 한다.
하지만 조 짐은 특이한 경우로, 몸에 흐르는 피가 원인이었다.
그는 프랑스인의 피가 1/4 섞여 있었다. 그래서인지 조 짐은 어느 한쪽도 소속되지 않은 중간에서 가이드와 통역이라는 자신의 길을 찾게 되었다.
문득, 홀리데이가 이 둘을 사무실로 데려온 이유가 궁금하다.
막스는 아들 조 짐 주니어를 쳐다봤다.
나이는 비슷한 또래에, 키는 막스보다 머리 하나는 작다. 굳게 다문 입은 아버지와 달리 진중한 성격으로 보였다.
홀리데이가 조 짐의 아들까지 대동했으면 뭔가 목적이 있지 않을까.
막스는 조 짐에게 물었다.
- 홀리데이가 저에 관해 뭐라 하던가요?
- 아, 보안관님의 실력이 뛰어나다면서 칭찬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제 아들이 꼭 만나 뵙고 싶다고····.
막스와 눈이 마주친 조 짐 주니어는 담담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나이는?
- 18이요.
- 나를 왜 만나고 싶어 했지?
- 그건···.
주니어가 말을 하려 할 때였다.
바시식.
멀리서 나뭇가지 밟는 소리가 들려온다.
막스 일행은 침묵 속에서 다가오는 자들을 지켜봤다.
그리고 잠시 후.
미국당 당원 행세를 하던 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피치의 예상대로 곧바로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주변부터 둘러봤다.
- 밤에 보니까 또 색다롭네. 경치도 좋아서, 사흘 정도 죽치고 있기엔 딱 아니냐.
‘미리 와봤다고?’
인디언 부자의 등줄기에 소름이 돋아났다.
- 넌 진짜 머리 하난 타고났다니까. 토피카에서 인디언 보자마자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냐.
- 외팔이 새끼 옷이 깔끔한 게 부인 아니면 딸이 있다는 소리지. 다들 봤지? 인디언치고 반반하게 생긴 거. 모녀를 묶어서 쌍으로 ··.
조 짐이 부들거리자, 아들이 그의 왼손을 잡는다. 행여 뛰쳐나갈까 걱정한 아들은 참으라며 고개를 저었다.
- 자, 슬슬 시작해 볼까. 여기서 한동안 로렌스 공략이나 짜 보자고.
마을에 들른 다음 본격적인 일은 며칠 뒤에 벌인다. 그게 의심을 피하는 놈들의 전략이었다.
그리고 그 조심성은 표적을 눈앞에 두고도 여전히 유효했다.
집 밖에 있는 건초더미에 한 놈,
작은 헛간에 한 놈.
마지막 놈은 집 뒷벽에 붙었다.
그리고 잠시 후.
드르륵.
드르륵.
헛간 안에 있던 놈이 연장으로 나무 벽을 긁어댄다. 동시에 집 안에서 들려오던 모녀들의 대화가 뚝 그쳤다.
밖으로 나오게끔 하려는 유인책이었다.
- 지금 쳐야 하는 거 아닌가요?
머리칼이 쭈뼛거릴 헛간 벽 긁는 소리.
인디언 부자와 피치의 눈이 막스를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