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신발을 벗은 막스가 칼을 뽑으며 말했다.
-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다는 게 뭔지 알아요?
도리도리.
- 지금부터 보여드리죠.
‘모조리 숨통을 끊어 주마.’
한 놈이라도 놓치면 어디 두 발 쭉 펴고 잘 수나 있을까.
치밀하고 조심성 많은 놈들이라, 언제고 완벽한 계획을 짠 뒤 다시 나타날 것이다.
첫 목표는 집 뒷벽에 붙어있는 놈.
어둠 속에 완벽히 동화된 막스는 입에 보위 나이프를 문 채, 언덕을 내려갔다.
탐정 놀이 끝
캔자스강의 잔잔한 물소리.
구름에 가려진 달빛이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그 안에서 한 인영이 불쑥 튀어나왔다.
‘!’
푸욱.
입을 막는 동시에 턱 아래로부터 보위 나이프를 서서히 찔러넣는다.
부릅뜬 눈알의 실핏줄이 터져나가고.
막스는 9인치(23cm) 헌팅 나이프의 칼끝을 쑤신 뒤, 몸을 눕혀 자연스레 칼을 회수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헛간에 있는 놈은 집 안에 있을 사람들을 유인하기 위해 갖은 소음을 만들어냈다.
대체로 귀에 거슬리는 소리인데, 다행히도 부인과 딸들은 밖으로 나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조 짐이 말하길.
- 수십 년을 외딴곳에 살다 보면, 저절로 습득하는 게 있죠. 밤에 들리는 소리엔 귀를 막고 호기심을 갖지 말라는 겁니다.
밤에 들리는 소리는 죽음의 레퀴엠.
두려움과 공포를 굳이 확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리 위치를 파악해둔 막스는 두 번째 표적으로 은밀한 접근을 시도했다.
무릎까지 오는 티머시 건초가 차곡차곡 쌓인 더미. 그 뒤에 웅크리고 있는 놈은 집 안에 누군가 나오길 기다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초조함, 아니 심심함을 느낀 모양이다.
놈은 실실 쪼개며 한 손으론 칼끝을 땅에 찔러넣는 행동을 반복했다.
푹. 푹.
그리고 이 행동의 끝은. 목 안을 쑤셔오는 뜨거움이 전해질 때 비로소 끝이 났다.
우에서 좌로, 목을 관통한 보위 나이프의 칼끝에 피가 주루륵 흘러내렸다.
닦는 건 어렵지 않다. 칼을 빼내고 놈의 몸에 슥슥 문지르면 그걸로 충분했다.
한편, 피치와 인디언 부자는 위에서 막스의 움직임을 전부 지켜보고 있었다.
검은 고양이처럼 어둠 속을 누비며 순식간에 둘을 처리하는 모습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완벽한 암살자가 있다면, 그건 막스를 두고 하는 말일 터.
조 짐의 아들 주니어는 생각했다. 그동안 가슴에 품어왔던 인디언 전사들은 그만 놓아줄 때라고. 그리고 그 빈자리는 막스로 채워 넣기로 했다.
피치 역시 깨닫는 바가 있었다.
‘농담도 가려서 해야겠다.’
지난번 무법자를 가장한 보더 러피안들의 시체를 볼 때와, 시체의 형성과정을 지켜보는 건 커다란 괴리감이 느껴졌다.
겸손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배우는 것.
피치는 닭살 돋는 팔을 어루만지며, 이제는 시체가 된 옷가지에 칼을 닦는 막스를 지켜봤다.
*
‘이제 한 놈 남았군.’
하나라도 놓치면 잠자리가 뒤숭숭하지 않겠는가. 그만큼 조심성이 과한 놈들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멍청한 구석도 있다.
치밀한 듯 보여도, 놈들은 밤을 너무 맹신했다.
‘만약 나였다면.’
밤이 아닌 낮에 집을 습격했을 것이다.
낮은 사람을 대범하게 만들고, 헛간의 작은 소리에도 겁 없이 나타났을 테니까.
하지만 머리만 사악한 겁쟁이들은 밤을 너무 좋아했다.
두 명의 숨통을 끊은 막스는 실소를 지으며 마지막 표적이 있는 헛간을 응시했다.
아직도 놈은 헛간 벽을 긁고 있다.
그 소리에 초조함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되려 리듬까지 타는 걸 보면 이 상황을 즐기는 게 틀림없었다.
어느 시대에나 사이코패스는 있는 법.
‘이놈은 상대하기 까다롭겠는데.’
일단 헛간 안 어디에 있는지 놈의 위치를 모른다. 그렇다고 벽 긁는 소리로
위치를 판단하기엔 무리가 있다.
기다란 갈퀴를 이용했을 수도 있으니까.
잠시 고민하던 막스에게 건초 옆에 세워둔 기다란 쇠스랑이 눈에 들어왔다.
삼지창이 굽혀진 모양의 쇠스랑은 높이 쌓아 둔 건초더미를 내리는 용도로 보였다.
쇠스랑을 손에 넣은 막스는 낮은 포복으로 헛간 외벽까지 이동했다.
그런 다음 쇠스랑을 들어 벽을 긁었다.
끼이익.
쇠꼬챙이에 긁혀 소리가 날카롭다.
드르륵.
끼이익.
드르···.
놈이 헛간 벽의 합주를 깨버렸다.
한쪽 입꼬리를 올린 막스는 계속해서 벽을 긁었다.
이때 헛간 벽 너머로 낮게 으르렁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 장난할 상황이냐, 병신아.
드르륵.
- 뒤진다.
드르륵. 끼이익.
- ......
헛간 안에 있던 살인마, 커틴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집에선 아무도 안 나왔는데···.’
지금 벽을 긁고 있는 놈은 누구일까.
아무리 개념 없어도 친구들이 이러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당했다고 하기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으니 말이다.
커틴이 속삭이듯 친구 이름을 불렀다.
- 로이.
이내 응답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왜.
‘시발!’
커틴의 등줄기에 소름이 돋아났다.
- 너··· 누구야.
- 네가 죽인 사람.
원래부터 고장 난 커틴의 머릿속 무언가가 끊어져 버렸다. 이성 대신 공포와 두려움, 분노가 폭발하며 총을 빼 들었다.
“이, 이 개새끼야!”
커틴은 총을 꺼내 목소리가 난 곳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물론 막스는 자리에서 이탈한 뒤였다.
탕탕탕!
후드드드득.
커다란 총성에 고요하던 캔자스강이 잠에서 깨어났다. 새들을 하늘로 날아가고, 집 안에서 여인의 짧은 비명이 새어 나왔다.
섬광탄처럼 번쩍인 총구의 불빛.
헛간 안 위치를 가늠한 막스는 리볼버로 여섯 발을 한 곳 퍼부었다.
탕탕탕!
그런 다음엔 구멍 뚫린 나무를 향해 보위 나이프를 내던졌다.
파직.
나무가 쪼개지고, 곧이어 던진 칼이 뼈와 살에 박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끄윽.”
휘청거리는 발걸음. 허우적거린 팔들은 연장들을 바닥에 떨구었다.
그리고 잠시 후.
쿵 소리와 함께 커틴의 몸 역시 바닥에 무너져 내렸다.
가슴에 꽂힌 칼을 빼내려던 커틴은 피를 토하며 이내 고개를 헛간 문으로 향했다.
‘절대 혼자 안 간다.’
온몸을 부들거리며 리볼버를 힘겹게 끌어 올려 총구를 헛간으로 틀었다.
상황이 끝났다고 생각한 놈이 분명 나타날 것이다. 그땐.
‘단 한발이면 된다.’
아직 방아쇠를 당길 힘은 남아있었으니.
물론 상황은 커틴의 바람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헛간 밖. 건초더미에 등을 기댄 막스는 헛간을 응시했다.
“...... 다 끝난 거 아닌가요?”
조 짐이 조심스레 물었다.
막스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정확히 어디 맞았는지도 모르고,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안심하고 들어갔다간 당할 수도 있죠. 다 죽어간다 해도 방아쇠 당길 힘 정도는 남아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시발···.’
분노로 지탱하던 커틴의 의식이 점점 옅어졌다. 그럼에도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들을 수 있었다. 피치에겐 주옥같은 말이지만, 커틴에겐 절망을 안겨주는 말들이었다.
“과다 출혈이든 장기 손상이든. 확실하지 않을 땐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죠. 급할 거 뭐 있습니까? 단, 도망 못 가게 입구는 지켜야겠죠.”
결국, 숨통이 끊어질 때까진 절대 방심하지 말라는 게 막스의 충고였다.
“짐. 이제 부인과 딸들을 안심시켜야죠.”
“알겠습니다!”
집 안으로 들어가는 대신 조 짐은 부인의 이름을 소리쳤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부인과 딸들이 나타났다.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렸던 가족들은 서로 얼싸안으며 감동의 해후를 하고. 피치는 막스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그러다 흠칫하며 자세를 풀었다.
“미안, 이러지 않기로 했지.”
“뭔 소리예요.”
“아무튼, 이제 뭐 해야 해?”
“기다려야죠.”
막스가 헛간에 들어간 건, 10분이 지나서였다. 함께 들어간 피치는 짧게 탄성을 내뱉었다.
시신의 두 눈은 헛간 밖을 향해있고, 손에 쥔 리볼버의 총구 역시 밖을 향해 있었다.
피치는 막스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의 예측이 정확히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를 예측한 막스는 내심 놀라고 있었다.
‘이 새끼 진짜 이러고 있었네.’
막스는 담담하게 다가가 시신의 총상을 확인했다. 여섯 발 중 세 발이 적중.
가장 치명적인 건 가슴에 박힌 보위 나이프였다.
쑤욱.
막스가 칼을 뽑을 때, 조 짐의 가족들이 헛간으로 몰려왔다.
“부인과 딸들이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네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보안관님이 아니었으면, 오늘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로렌스에서 이렇게 함께 와주신 것도 너무 감사하고요.”
“이놈들 계획을 알아낸 건 피치양이에요. 저는 몸만 썼을 뿐입니다.”
“어?”
“탐정 수업한다고 했지, 누가 진짜 탐정이 되라고 했어요? 아무튼, 오늘 좋았습니다.”
눈을 껌뻑거리는 피치에게 조 짐의 가족들이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묘한 기분이 된 그녀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막스를 쳐다봤다.
‘내가 탐정이라고?’
생각을 읽기라고 했는지, 막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이 짜릿한 기분을 느낀 피치는 입으로 탐정을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오늘 하루를 곱씹었다.
피치가 구석에서 쭈그리고 앉아 생각하고 있을 때, 늦은 시간에도 조 짐의 부인은 음식을 차리겠다며 딸들과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조 짐과 아들 주니어는 시체를 헛간 한곳에 모아두었다.
*
조 짐의 부인과 딸은 감자와 고추, 치즈를 넣어 만든 스튜와 고기를 나뭇가지에 꽂아 만든 음식을 내왔다.
조 짐의 부인은 캔자스 일대에 거주하는 카와(Kawa)족 추장의 딸이다.
남편과 달리 헐렁한 인디언 옷을 입은 그녀는 단아하고 부끄러움이 많아 보였다.
영어가 서툰 부인의 말을 조 짐이 통역했는데, 대부분 고맙다, 감사하다는 말이었다. 15, 13살 된 딸들 역시 어머니를 닮아 막스를 힐끔거리기만 할 뿐 말을 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미주리주 버논 카운티에 살고 있던 오세이지(Osage) 족이었죠. 그리고 할아버지는 프랑스에서 건너온 상인이었습니다.”
가족 중 유일하게 말 많은 자는 조 짐.
상황이 종료되고 긴장이 풀어지자 말 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토피카가 왜 토피카인지 아십니까?”
“감자랑 관련 있는 것 같은데, 맞나요?”
조 짐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홀리데이씨에게 들었군요. 그거 제가 알려준 거거든요. 오세이지족 언어로 ‘감자 재배하기 좋은 곳’이라는 뜻이죠. 그런데 흔히 알고 있는 감자는 아니고 팀술라라는 대초원에서 자라는 순무에요.”
“오호, 그런 뜻이 있었군요.”
적당한 추임새를 넣는 막스는 생각했다.
인디언들과 떨어져 사는 건 혼혈의 문제가 아니라고.
성격이 유쾌하고 말이 많아 그냥 가이드와 통역관이 된 것뿐일 거라고 말이다.
“그런데, 보안관님. 저 시체들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로렌스 마을로 가져가야죠. 그리고 놈들이 다른 사건과 관련이 있는지 알아볼 생각입니다.”
‘다른 사건?’
피치의 눈이 반짝였다. 멈췄던 머리가 다시금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간은 늦었지만, 막스는 로렌스에 돌아가기로 했다. 공간도 좁을뿐더러, 피에 절은 옷들은 찝찝하기만 했다.
조 짐은 헛간에 있는 수레를 막스와 피치가 타고 온 말에 연결했다. 그 위에 시체를 싣고 떨어지지 않도록 끈으로 동여맸다.
부인과 딸들은 잠이 들고, 막스와 피치는 조 짐과 주니어의 배웅 속에 로렌스로 향했다.
구름이 어느새 걷히고, 달빛은 가는 길을 훤히 비추었다.
느릿느릿 이동하는 말 위에서 피치는 볼에 바람을 넣고는 입을 이리저리 오물거렸다.
생각이 많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볼에 바람이 빠졌을 때, 말을 건네왔다.
“근데, 아까 한 말 진심이야? 내가 탐정 같다는 거.”
“내가 빈말할 사람입니까?”
“아니.”
피치가 하늘을 보며 말을 이었다.
“사실 오늘 일은 전부 네가 알려주고, 계획하고, 처리했잖아.”
“피치는 미행, 증거수집, 분석, 그리고 여기까지 찾아와서 인디언 가족들을 구했잖아요.”
“그래도, 내가 거기서 한 게 별로 없잖아. 그냥 탐정 행세를 한 거지.”
막스는 피치를 힐끔 보며 말했다.
“달빛 보면 우울해지고 막 그런 성격인가 본데. 낮에 얘기합시다.”
피치는 아니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솔직히 나 일리노이로 가려고 했다.”
일리노이에 있는 시카고.
핑커톤 사무실이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