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화 (32/360)

“신문 광고 오려간 거 알아요. 아무튼, 그래서요?”

“마음을 바꿨어. 너한테 배우기로!”

“배우는 건 오늘이 끝인데요.”

“어?”

막스는 피치의 시선을 흘리며 말했다.

“탐정 놀이는 오늘부로 끝입니다.”

“......”

“피치 선생님. 나한테 필요한 건 동료지 탐정 수업받으려는 학생이 아니거든요.”

“그럼 오늘은 왜 가르쳐 주려고 한 건데?”

“궁금해서 그랬습니다. 탐정 자질이 있는지, 보고 싶었거든요.”

“... 그래서, 결과는?”

막스는 피치를 쳐다보며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자질 있어요. 나는 당장 내 옆에서 나를 도와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내 발목잡지 않을 사람. 그럴 자신 없으면, 그냥 핑커톤으로 가요. 배우려면 거기서 배우고.”

“...... 너도 달밤에 얘기하면 안 되겠다. 애가 이상해졌어.”

막스가 코웃음 치고, 그렇게 둘은 로렌스에 도착할 때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삐걱, 삐걱.

보안관 사무실롤 돌아온 막스는 한쪽 구석에서 잠을 자고 있는 홀리데이룰 볼수 있었다.

“도움이 안 되네.”

침상을 빼앗긴 막스는 책상에 다리를 올린 채 의자에 몸을 묻었다.

긴 하루를 끝내고 남은 건 피로감.

시거에 불을 붙여 연기를 들이마셨다 내뿜었다.

그리고 잠시 후.

잠자던 홀리데이가 콜록 거리며 기침을 했다.

치지직.

“하여간.”

한 모금 빨고 손으로 연기를 휘이 날려버린 막스.

눈 감은지 얼마 되지 않아 잠이 들어 버렸다.

*

몇 시간 뒤 아침.

막스는 시체처리를 위해 찰스 의장을 찾아갔다.

“델라웨어 마을에 시체들을 데려가겠다고?”

“놈들의 소지품 중에서 이게 나왔거든요.”

희생자의 잘린 새끼손가락. 귀금속들이 놈들의 품속에서 튀어나왔다.

이는 막스만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거긴 노예 옹호론자들이 많이 사는 곳인데, 괜찮겠나? 만약 살인범들이 아니면, 자네가 곤경에 처할 텐데.”

“확인 차원에서 가는 겁니다.”

그리고 현상금도.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살인범들로 확정되는 순간 이야기가 달라진다.

희생자가 있는 마을 두 곳에서 내건 현상금이 각각 100달러.

하지만 막스의 진짜 목적은 다른데 있다.

희생자의 아버지는 노예제 옹호론자이자 델라웨어 마을의 의장.

동시에 사업가이기도 하다.

막스는 그와 거래를 하고 싶었다.

그날 오후.

막스는 시체를 싣고 델라웨어 마을로 향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라이플 2정, 리볼버 6정과 보위 나이프 그리고 탄약 300발로 무장상태를 끝마친 상태였다.

  델라웨어 마을

델라웨어로 가는 길에 한 명이 따라붙었다.

‘헤럴드 오브 프리덤’ 신문의 조지 브라운.

그는 막스를 훑어보며 물었다.

“마을 사람 몰살시키러 가는 건 아니지?”

“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무장상태가 장난 아니라서 그래. 바로 전쟁터 나가도 되겠어.”

“만약을 위해서 준비하는 거죠.”

고개를 끄덕이던 브라운은 이내 갸웃거리며 물었다.

“근데 위험한 걸 알면서 굳이 시체를 운반까지 하는 이유가 뭐야? 현상금은 델라웨어 보안관을 불러서 확인시켜주면 되잖아.”

“그거론 부족하죠. 지금 로렌스 마을의 가장 큰 문제가 뭔지 알죠?”

“음. 물류 수송?”

막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리븐워스에서 로렌스로 향하는 물류가 델라웨어 마을 주민들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로렌스 마을을 살인범의 배후로 몰아가며, 번번이 물류 수송을 지연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찰스 의장은 머리가 다 빠진다며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리 마을과는 상관없다는 걸 보여줘야죠. 정확히는 자기들과 같은 노예제 옹호론자가 범인이라는 걸 알린달까.”

“어떻게? 얘들이 누군데?”

브라운이 작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미주리주 제퍼슨 시티에 있는 노예제 옹호론자의 자식들입니다.”

“와, 진짜야? 대체 그걸 어떻게 알았어?”

‘전생의 기억이지, 뭐.’

하지만 이걸 말할 순 없고.

“미리 알아봤죠. 아무튼, 우리는 그렇게 주장해야 합니다.”

“사실에 근거한 주장이지?”

“내가 거짓말을 왜 하겠어요.”

전생의 기억을 뒤적거리면, 놈들은 미주리주 출신이 확실했다. 다만, 그걸 밝히려면 시간이 걸린다.

막스가 조지 브라운을 데려가는 건 이미 조사를 마친 것처럼 만들기 위함이었다.

“근데 델라웨어 마을 의장 그린터라는 자가 보통 사람이 아니야.”

“희생된 딸의 아버지라면서요?”

“뼛속 깊이 노예제 옹호론자라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네. 일단 물류 수송이나 어떻게 잘 해결됐으면 좋겠다.”

조지 브라운은 그걸 가장 우선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스는 더 많은 걸 원한다.

그린터는 생각보다 많은 걸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피 흘리는 캔자스, 이 혼란과 갈등의 기간동안 벌어질 사건들.

이는 노예제 폐지론자와 옹호론자들의 충돌이며, 토지 분쟁과 같은 개인 간 문제를 당사자들의 성향으로 구분 지어 사건을 확대하게 된다.

때문에 델라웨어가 일방적으로 로렌스를 흉수로 몰아간 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다.

*

로렌스에서 델라웨어 마을까지 약 25마일(40km). 수레에 시체를 실은 막스와 브라운이 마침내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이름은 레나페(Lenape)족 혹은 델라웨어(Dellaware)족이라 부르는 인디언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라 지어진 이름이었다.

미국의 지명 중엔 인디언 부족 혹은 그들의 언어로 지어진 곳이 많다. 동부의 델러웨어주 역시 초기 델라웨어 족이 정착한 곳이었다.

하지만 백인들에게 터를 빼앗기고 <인디언 강제이주법>이 공표된 후엔 완전히 서쪽으로 밀려나 지금의 캔자스까지 오게 되었다.

그렇다고 이곳 델라웨어 마을이 그들의 종착지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정부는 인디언 보호구역으로서 리븐워스 이남의 땅을 내주었으나, 지금은 또다시 미주리주에서 넘어온 정착민들에게 밀려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정착민들이 이제는 수레를 끌고 온 막스와 브라운을 막아 서고 있다.

기자인 조지 브라운은 그렇다 쳐도, 막스를 본 델라웨어 마을 사람들은 낯빛이 칙칙해졌다.

‘로렌스 마을의 동양인 보안관.’

‘어린놈의 동양인 새끼라더니, 진짜네.’

그렇다고 무시하기엔 로렌스 보안관에 관한 소문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신문기사가 날조된 게 아니라면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뭐야, 저건.’

가까이 다가온 보안관의 무장상태에 다들 식겁한 표정을 지었다.

양쪽 가슴과 허리춤에 보이는 리볼버만 4자루. 안장 뒤쪽으론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게끔 라이플 두 자루가 꽂혀있다.

이는 재장전 없이 28명을 한 번에 죽일 수 있는 무장상태. 어딘가에 감춰둔 리볼버 두 자루를 더하면 40명까지 가능하다

막스의 위압적인 등장에 델라웨어 마을 사람들은 누가 나서주길 바라듯 눈빛을 교환하고. 그런 끝에 몇 명이 호기롭게 앞으로 나섰다.

“보안관이면 마을이나 지킬 것이지, 여긴 왜 왔어?”

“살인범이랑 한통속인데, 지킬 게 뭐가 있겠어. 지들 마을은 멀쩡할 테니까 태평하게 돌아다니는 거지.”

막스는 조롱하는 자들을 담담히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여전히 말에 탄 채였다.

“마을 의장님과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웃기지 말고, 할 말 있거든 여기서 해. 우리 의장님이 너처럼 한가한 줄 알아?”

“저 수레는 또 뭔데?”

막스는 비아냥거리는 자들을 향해 말했다.

굳이 존중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궁금하면 가서 봐봐. 뭐가 있는지.”

막스가 뒤를 향해 고갯짓하자, 마을 사람 몇 명이 우르르 몰려갔다.

그리고는 비명 지르듯 소리쳤다.

“으헉! 이거 뭔데?”

“와씨, 눈 부릅뜨고 죽은 것 봐.”

왜 시체의 눈을 감겨주지 않은 걸까.

다들 섬뜩한 시체에 고개를 돌려 막스를 향했다.

세 구의 시체를 실은 수레.

그걸 끌고 온 보안관의 무심한 눈빛이 자신들을 쳐다본다.

일부는 머리카락이 쭈뼛거렸다.

“얼마 전 살인 사건들의 범인들이야. 진범을 잡아 왔으니, 지금까지 로렌스에 일으킨 손해를 보상해야겠지?”

물류 수송을 막고 지연시킨 것.

그로 인해 식료품이 부패한 것까지 모조리 받아내야 한다.

“우, 웃기는 소리!”

“쟤들이 범인인지 네가 어떻게 확신해?”

막스는 피식하며 말했다.

“그런 당신들은 이놈들이 범인이 아니라고 확신해? 난 확신하거든. ”

“뭐라는 거야, 이 동양인 새끼가.”

모여있는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평범한 자들이다. 개중 총을 든 자는 있지만, 막스의 분위기에 눌려 섣불리 꺼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때, 사람들이 갈리지면서 마을의 보안관이 등장했다.

옆엔 중년의 남자가 함께였는데, 꽤 상기된 얼굴로 막스에게 물었다.

“살인범이라는 증거는 있나?”

‘이자가 그린터로군.’

델라웨어 마을 설립에 영향을 끼친 그린터라는 마을 의장이다.

보안관을 제쳐두고 말하는 걸 보면 그의 존재감을 알 수 있었다.

느긋하게 말에서 내린 막스는 품속을 뒤적거렸다. 그리고 밀봉된 작은 유리병을 남자에게 건네주었다.

막스가 처치한 놈들은 캔자스 마을을 돌아다니며 살인 행각을 벌였다.

게다가 사이코패스처럼 죽은 시신의 신체 일부를 유리병에 담아 전리품처럼 보관했는데, 막스가 준 유리병 안에는 그린터 딸의 것이 담겨 있었다.

“흑.”

그린터의 몸이 무너지듯 땅에 주저앉자, 마을 사람들은 비로소 막스가 진짜 범인을 잡아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잠시 후, 그린터의 가족들이 몰려오고.

조지 브라운은 비통한 분위기를 스케치하며 기사를 작성했다.

한편 시체를 확인한 보안관이 눈을 치켜떴다.

“이놈들 자유토지당 선전하던 놈 아냐?!”

“그랬습니까?”

“너한테 안 물어봤어.”

보안관은 막스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말조차 섞기 싫다는 표정. 이유는 복합적이었다.

동양인, 캔자스에 이름까지 퍼진 로렌스의 보안관, 게다가 자신과 말을 섞었음에도 눈치채지 못한 살인범을 잡은 것까지.

경멸, 열등, 질투와 시기심. 이 모든 감정이 눈빛에 담겨 있었다.

‘이놈이 물류 수송을 막으라고 지시했구만.’

보안관은 무시하고 막스의 시선이 그린터를 향했다. 그는 시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딸을 죽인 범인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빛.

분노를 갈무리한 그 눈빛이 시체를 훑어내리고 있다.

그리고 이내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걸렸다.

두 눈을 부릅뜬 채 고통스럽게 죽은 시신들의 모습이 만족스러운 것이다.

그린터는 시체에 눈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놈들을 저렇게 놔둔 이유가 있나?”

“보시다시피 편한 죽음은 아니었거든요.”

“내게 보여주려고 이렇게 가져왔군.”

“심심한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희생자들의 가족이 바라는 건 복수.

그것도 끔찍한 고통을 안겨주는 것이다.

막스는 이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죽을 때의 모습을 박제하듯 놔두었다.

물론 두 번째 건초더미에서 죽은 놈은 눈을 감았었다. 결국, 강제로 눈꺼풀을 뒤집고 얼굴을 만져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은 것처럼 보이게 했다.

이렇게까지 해서 얻는 건 상대의 마음.

기회가 온 이상, 적진에 아군 하나 만드는 건 나름 의미있는 일 아닌가.

노예제의 입장에서 한발 물러나면 결국 똑같은 사람이다.

다만 그럴 가능성이 없는 놈이라면, 지금 걸러두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린터가 시체를 보며 생각에 잠겨있을 때, 보안관이 끼어들었다.

“범인은 잡았지만, 그렇다고 로렌스 마을의 죄가 없어지는 건 아니지.”

“로렌스 마을 보안관인 내가 직접 잡았습니다만?”

“그래서 더 의심스러워. 상황이 불리하니까 이놈들을 죽여 입막음하려는 건지 누가 알겠어?”

‘이놈은 확실히 걸러둬야겠네.’

“그 말 책임질 수 있습니까?”

“네가 감히 나한테 책임을 따져?”

“그만하지.”

그린터가 끼어들자 보안관의 안면 근육이 씰룩거렸다.

“자넨 이 자들의 정체를 아나?”

“물론입니다. 다만 그전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습니다.”

막스는 마을 사람들이 들리도록 목소리를 높였다.

“로렌스 마을에 죄가 없다는 게 밝혀지면, 그동안 입은 손해는 물론 그 이상을 배상해야 할 겁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헛소리 마라! 네가 뭔데 그따위 소릴 지껄여!”

막스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냉소했다.

“그러는 당신들은 뭔데 로렌스를 범인으로 몰았지?”

“......”

사람들에게서 시선을 돌린 막스는 그린터를 보며 말을 내뱉었다.

“이놈들은 미주리주 제퍼슨 시티에서 온 놈들입니다. 당연히 노예제 옹호론자들 편에서 활동한 이력도 있는 놈들이죠.”

“확실한가?”

“사명감이 투철하신 기자분이 3개월 추적 끝에 알아낸 사실입니다.”

막스는 고개를 돌려 조지 브라운을 쳐다봤다. 그는 침을 꿀꺽 삼키며 앞으로 나섰다.

‘시벌, 이러려고 날 데려온 거였어.’

내심 욕이 튀어나오지만, 조지 브라운은 정색하며 입을 열었다.

“기자는 직접 보고 확인한 것만 말합니다. 제 신문사 헤럴드 오브 프리덤 이름을 걸고 맹세하죠. 이놈들은 미주리주에서 온 놈들이 확실합니다.”

어차피 연방 보안관과 검시관이 나타나면 밝혀질 일이다. 그럼에도 신문사까지 건다는 건 어지간한 확신이 아니면 내뱉기 어려운 말이었다.

‘모르겠다, 썅. 설마 나한테 거짓말을 하겠어.’

조지 브라운은 막스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군거리던 마을 사람들은 허탈한 표정을 짓고. 먼발치에 있던 사람들은 내심 환호하고 있었다.

마을에서 숨죽이며 사는 노예 폐지론자들. 캔자스의 노예제 갈등이 일어나기 전부터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로렌스 보안관과 자신들의 보안관을 보며 혀를 찼다.

‘비교된다, 비교돼.’

하는 일도 없이 선동만 일삼는 델라웨어 보안관과는 차원이 다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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