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화 (33/360)

노예 폐지론자들은 로렌스 이주를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모세 그린터

“우선 자네한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군.”

그린터는 막스와 독대를 청했다.

노예제 찬성 여부는 차치하고.

딸 아이의 복수를 대신해 막스에게 감사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언제 준비했는지 현상금 100달러를 내민다. 마을이 아닌 그린터 개인이 내건 현상금이었다.

“신속하시군요.”

“이런 건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않은가.”

부유한 마을의 의장. 그래서 살인범의 타겟이 되었을까.

“그런데 부인께서 인디언이더군요.”

“델라웨어족과 영국인의 혼혈이지.”

부인의 이름은 애니, 인디언 이름은 윈디가멘이 부인의 이름이다.

막스가 부인에게 관심을 둔 이유는 찰스 의장이나 홀리데이와 달리 그린터 이 마을에 오래전부터 정착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모세 그린터.

그는 마을의 설립자가 아닌 델라웨어족이 사는 마을을 비집고 들어온 특이한 사람이었다.

‘인디언과 결혼한 사람이 지금은 열성적인 노예제 옹호론자가 되었네.’

이상할 건 없지만 뭔가 어색하다.

“처음 왔을 때 마을에 백인들은 얼마 없었겠군요.”

“그때야 프랑스령에서 미국령으로 바뀐 지 얼마 안 되었으니까.”

1803년 나폴레옹은 연이은 전쟁으로 재정이 바닥나자 캔자스가 포함된 루이지애나 영토를 1,500만 달러에 팔아버린다.

기존 영토와 맞먹는 엄청난 크기라 이후 미연방은 캔자스 일대를 인디언들이 거주 할 수 있는 영토로 지정한다.

이때 24개 족 1만 명의 인디언 이민자들이 캔자스로 몰려드는데, 그중 델라웨어족도 포함되어 있었다.

포트 리븐워스와 남쪽의 포트 스콧은 이런 인디언 족들의 분쟁과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처음 이 마을에는 백인이라곤 손에 꼽을 정도였네. 그런데 점차 미주리주에서 한두 명씩 넘어와 지금처럼 되었지.”

“그때는 노예제가 문제는 아니었겠군요.”

그린터는 대답 대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캔자스-네브래스카 법 이후 촉발된 노예제 갈등.

그린터는 왜 노예제 옹호론자가 되었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백인들에 의해 밀려나는 델라웨어족을 보았을 테고.

그 백인들은 하나같이 미주리주에서 넘어온 노예 옹호론자들이다.

그 속에서 영향력을 유지하고 가족을 지키려 그들에게 동조한 게 아닐까.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꽤 그럴듯했다.

희생자의 아버지, 델라웨어 마을의 의장.

‘이게 전부라면 별 흥미를 못 느꼈겠지.’

막스는 그가 벌이는 사업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정착한 지 오래된 그린터는 미연방의 지원 아래 그럴듯한 사업을 벌이고 있었다.

“그나저나, 앞으로 로렌스로 향하는 물류 수송을 막는 일은 없을 걸세.”

“그것만으론 부족하지 않습니까?”

“자네가 말한 배상은 불가하네. 마을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을뿐더러, 나 역시 그럴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거든.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서 말한 건 아니겠지?”

의외로 막스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배상에 관한 건 보안관 권한 밖이죠. 로렌스 의장 역시 그걸 원하진 않을 거고. 대신.”

그린터는 눈에 이채를 띄며 막스를 쳐다봤다. 나이도 어린 동양인이 말하는 건 노회한 정치인 같지 않은가.

“캔자스강 페리 운송을 로렌스까지 확대해 주십시오.”

“로렌스?”

그린터의 눈이 커지고, 막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캔자스강 유역에 페리를 운영하고, 교역소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건 맞네만, 북쪽과 동쪽의 미주리에서 오는 것들이 대부분이네.”

그린터 플레이스는 미래에도 존재하는 교역소다.

지금은 시작 초기지만 조만간 160여개의 품목들이 거래되고, 페리로는 여객, 물류를 수송하게 된다.

물론 막스는 이것까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은 쉬이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현재 페리는 포트 리븐워스와 남쪽의 포트 스콧을 이동하기 위한 여객 용도에 그칠 뿐, 로렌스까지는 운행하지 않는다.

인구가 적은 서쪽은 타산이 안 맞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로렌스와 레콤프터, 토피카까지 캔자스 강을 따라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유입될 겁니다. 마을도 더 많이 생겨나겠죠.”

“흠···.”

“마을 사람들에게 배상하라고 큰소리쳤으니, 의장님께선 작은 답례만 하시죠. 그럼 반발도 없지 않겠습니까.”

“애초에 이걸 노리고 그런 허무맹랑한 소릴 했단 말인가?”

막스는 웃으며 말했다.

“이 결정은 의장님께도 도움이 될 겁니다. 노예제 폐지론자든 옹호론자든 사업에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알 텐데. 캔자스가 노예주로 될 텐데, 굳이 반대 길을 갈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건 의장님이 노예 옹호론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어서 그렇습니다. 가까이서 들리는 소리가 더 큰 법이죠.”

막스는 고개를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멀리 보세요. 시대 흐름이 어느 쪽으로 가고 있는지.”

할 이야기는 끝났다.

막스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판단 잘해야 할 거야.’

사업가인 그린터가 교역소 하나만 유산으로 남긴 건 노예 옹호론자들 편에 섰기 때문이다.

반대로 지금 로렌스와 손을 잡는다면 그린터의 색깔이 옅어지면서 훗날 자유주인 캔자스에서도 충분히 사업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

“오셨어요.”

집으로 돌아온 그린터를 흑인 여자 둘이 맞이한다. 모녀지간으로 오래전부터 데리고 있었던 노예들이다.

평소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오늘은 물끄러미 그녀들을 바라봤다.

방금까지 울었는지 눈시울이 붉어 있다.

주인이 오늘따라 자신들을 빤히 쳐다본다.

눈이 마주치자 나이든 여인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아가씨 방을 치우던 참이었어요.”

눈물조차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그게 주인의 딸을 위한 눈물이었어도.

“그래.”

그린터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딸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화들짝 놀란 노예들이 그린터를 따라간다.

“바, 방이 아직 정리가 아직 안 됐습니다.”

“저희가 금방 치울게요.”

“됐어. 너흰 다른 일들 봐.”

“...... 알겠습니다.”

덜컥.

방문을 열자 노예들의 말마따나 짐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하지만 그녀들이 놀란 건 다른 이유가 있었다.

수북이 쌓인 책 중 맨 위에 놓인 것.

그린터가 그걸 볼까 두려웠던 것이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

노예제 옹호론자들의 집엔 절대 있어선 안 될 책이었다.

그린터는 딸이 쓰던 의자에 몸을 묻었다.

그리고는 손을 뻗어 책을 어루만진다.

다시는 만질 수 없는 딸의 손길이 느껴지는 것 같다.

복받치는 감정을 가다듬은 그린터는 이내 책을 펼쳤다.

딸을 죽인 살인범들이 노예제 옹호론자라는 걸 알게 된 순간 신념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

로렌스 마을로 돌아온 막스는 홀리데이와 함께 찰스 의장을 찾아갔다.

조지 브라운도 동행했다.

델라웨어에서 있었던 일을 조지 브라운이 설명하던 중. 막스가 배상을 요구했다는 말에 홀리데이와 찰스의 눈이 커졌다.

“와, 노예제 옹호론자들이 득실거리는 곳에서 배짱도 좋네.”

“살아 돌아온 게 믿어지지 않는군.”

“제가 이렇게 목숨 걸고 일합니다.”

알아달라는 막스의 말에 다들 웃음을 터트렸다. 한편으론 로렌스의 어려운 일들을 해결하고 있는 막스가 죽는다면 그건 정말 큰 문제였다.

찰스 의장이 막스의 어깨를 두드렸다.

“매번 이렇게 목숨 걸지는 말게.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막스는 시키지도 않은 일을 찾아서 한 셈이다.

미래를 안다는 것.

이는 한편으론 일 복이 터진 것과 같았다.

“그나저나, 과연 그린터가 자신이 운영하는 페리 운행을 이곳까지 확장 시킬까? 뼛속까지 노예제 옹호론자라고 들었는데.”

“제안은 했으니까, 두고 보면 알겠죠.”

홀리데이의 말에 막스가 대답했다.

회의실에서 긍정적인 건 막스가 유일하다.

지금껏 델라웨어 마을이 한 짓을 보면, 부정적인 것도 이해가 가고.

다만 막스는 그린터가 심각한 노예제 옹호론자라는 걸 믿지 않았다.

델라웨어 마을 이야기가 끝나고, 대화 주제는 현 캔자스 준주의 주지사 앤드류 호레이쇼 리더로 옮겨졌다.

불만이 많은 홀리데이가 목소리를 높였다.

“주지사가 멀쩡했으면, 이번 델라웨어 마을 건도 해결했을 겁니다. 재투표가 코앞인데, 대체 뭔 생각으로 이 시국에 자리를 비운 건지 모르겠네요.”

“피신한 거겠지, 뭐. 노예주든 자유주든 재투표를 반기는 쪽은 아무도 없으니까. 그리고 결과가 빤하잖아.”

조지 브라운의 말처럼 주지사는 자리를 비웠고, 결과도 빤하였다.

캔자스 준주의 입법부는 총 39명.

이중 지난 투표로 노예제 옹호론자들이 36명 폐지론자들이 3명 선출되었다.

그리고 다가오는 5월 22일엔 부정 선거라 의심되는 11곳에서 재투표가 이루어진다.

“결국, 전부를 이겨도 입법부 구성은 여전히 노예제 옹호론자들이 우세하다는 거죠.”

“캔자스가 노예주로 전락 되는 건 시간 문제겠군.”

“크윽. 토피카···.”

막스의 말에 홀리데이와 찰스가 침음을 흘렸다.

아마 시간이 흐를수록 더할 것이다.

이대로면 캔자스 준주의 주도가 토피카가 아닌 레콤프턴이 확실시될 테니까.

막스는 팔짱 끼고 앉아, 머리를 쥐어뜯는 둘을 한심한 눈으로 쳐다봤다.

이들은 머지않아 자신들이 엄청난 결정을 내리게 된다는 걸 아직은 모르고 있다.

캔자스 준주의 주도가 두 개가 되는.

초유의 사태를 만든 장본인이라는 것을.

*

회의를 끝내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전 재산을 쏟아부은 토피카 공사가 허공으로 날아갈까,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홀리데이의 다크써클이 입까지 내려왔다.

“얼굴 좀 펴요. 뭔 죽을상을 하고 있어요.”

“너는 투자자 아냐? 어쩜 그렇게 마음이 편해 보여.”

“속은 썩어들어가고 있습니다.”

“전혀 안 그래 보여. 아, 참.”

홀리데이가 생각난 듯 말했다.

“피치양, 이번 주만 하고 학교 그만두는 거 알지?”

“!?”

막스가 발걸음을 멈췄다.

“원래 3개월 계약 조건으로 왔거든. 엘르 선생님이 곧 올 거야.”

“그렇군요. 그럼 앞으로 뭐한 대요?”

“다른 곳으로 떠난다고 들었는데.”

“!”

“아씨, 그만 좀 놀래. 너한테는 이런 말 안 한 모양이네. 둘이 친한 줄 알았는데.”

설마 핑커톤 사무실이 있는 일리노이로 가려는 걸까.

‘뭐, 선택이 그거라면 어쩔 수 없지.’

기껏 탐정 수업한다고 끌고 다녔더니, 핑커톤 좋은 일만 시켰다.

갑자기 짜증이 솟구친 막스가 총을 뽑았다.

“아씨, 깜짝이야!”

“사격 연습 좀 하고 올게요.”

“갑자기? 저녁도 안 먹고?”

“...... 먹고 가야겠다.”

피치를 머릿속 귀퉁이에 밀어두고 막스는 홀리데이와 함께 사무실로 돌아갔다.

*

며칠이 지나고, 그동안 막스는 피치를 두 번 정도 볼 수 있었다.

말 그대로 보기만 했을 뿐 대화를 나누진 않았다.

의도적으로 막스를 피했다.

피치가 아이들을 가르치던 마지막 날.

찰스 의장이 막스를 찾았다.

“자네 말야. 대체 무슨 수를 쓴 거야?”

“좋은 의미죠?”

“이거 읽어 봐.”

찰스 의장이 우편물을 내밀었다.

발신자는 모세 그린터.

수신자는 찰스 의장과 보안관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그 내용은.

[...... 그린터 플레이스는 주 1회 로렌스를 오가는 페리를 운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페리는 물류 수송 및 여객을 포함하며, 정기선의 횟수는 분기별 상황을 보고 결정할 예정입니다. 세부사항을 논의하기 위해 마을의 담당자가 그린터 플레이스를 방문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실 때, 보안관님이 함께라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군요. 그럼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찰스는 막스의 어깨를 두드리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우리 보안관이 제대로 한 건 해냈구만.”

리븐워스에만 의존하던 유통망의 다변화.

그 새로운 시작은 그린터 플레이스였다.

찰스 의장은 마을 협의체를 소집해, 회의를 개최했다.

그리고는 부의장 플러 대신 의장인 찰스가 직접 이 일을 전했다.

델라웨어 마을의 문제를 해결하고, 여기에 더해 로렌스의 정기선까지 얻어냈으니.

누군가 웃으며 말했다.

“막스 보안관. 이럴 땐 일어나서 한마디 해야 하는 거 아냐?”

위원회의 미소가 담긴 시선이 막스를 향한다.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 끝이야?”

“제 자랑하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어?”

회의장에 웃음이 터져 나오고, 다들 박수로 막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리고 남들 박수칠 때, 혼자 천장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으니.

곧 마을을 떠난다는 피치였다.

회의가 끝나자 몇몇이 몰려와 막스를 포옹한다. 그렇게 인사를 끝내고 사무실로 돌아갈 때, 피치가 따라붙었다.

“살인범이 마을에 나타났을 때부터, 오늘 결과까지 그냥 기가 막히더라. 전부 네 계획대로 물 흐르듯 흘러간 거잖아.”

“물줄기가 끊기면 큰일 나죠. 그나저나, 웬일입니까. 말을 다 걸고.”

“마지막 날이잖아.”

막스는 걸음을 멈추고 피치를 바라봤다.

하지만 이내 발걸음을 옮겼다.

“말해요.”

“한 가지 부탁할 게 있어.”

“들어주진 않을 거지만, 들어는 줄게요.”

“...... 뭔 개소리야. 아무튼.”

피치는 막스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나. 부 보안관 시켜줘.”

“!”

막스의 눈동자가 크게 출렁거렸다.

서부에 온 이후로 예상하지 못한 가장 큰 이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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