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넨 아나?”
“아무도 모르는 걸 안다고?”
“말 잘해야 할 걸세.”
레인은 팔짱 끼며 막스를 노려봤다.
물론 나쁜 의도는 아니다. 레인만의 궁금하다는 표시였다.
“자리를 비우던 주지사가 갑자기 입법부를 포니라는 곳에서 소집시켰습니다.
이게 뭘 말하는 걸까요.”
“...... 포니와 무슨 관계가 있다 이건가?”
“노예주와 자유주에서 거리가 떨어졌다는 건 핑계죠. 입법부 구성이 노예주 쪽인데, 그렇다면 오히려 노예제 옹호론자들로 꽉 찬 지금의 레콤프턴이 안전하죠?”
“흠.”
전적으로 동의하긴 어렵지만 그럴듯한 추측이다. 다들 포니와 주지사의 관계를 생각하고 있을 때, 막스는 레인을 보며 말을 건넸다.
“레인 의원님께서 이 일을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만.”
“포니에 가서 알아보라는 말인가?”
“어디까지나 제 예상입니다만, 주지사의 재산을 추적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재산이라면 땅이겠군.”
어이없게도 훗날 주지사 앤드류 리더가 대통령에게 해고당한 사유도 이 때문이었다.
죄목은 불법 토지 투기.
앤드류 리더는 땅 투기꾼으로 포니 마을의 토지를 에이커당 90센트씩 1,200에이커(약 147만 평)를 소유하고 있었다.
막스는 레인에게 증거를 찾아내 협박하길 종용했다.
조 짐 주니어
보안관 사무실.
학교를 그만둔 피치는 마을 협의체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다음날 사무실에 오자마자 쪼르르 옆에 붙어 물었다.
“어제 회의에서 뭐 중요한 얘기 있었어?”
“별거 없었어요.”
“근데 뭔 회의를 이렇게 오래 해.”
“그러게요.”
막스가 던진 로렌스 단독 입법부 구성.
그 파급력을 고려해 모든 회의 내용은 비밀에 붙이기로 했다.
그리고 위원회와는 별개로 이루어진 회의 결과. 레인은 수일 내로 포니 마을을 찾아가기로 하고, 이 일에 조 짐 부자를 동행시키기로 했다.
“쟤 또 왔네. 아주 출근을 하는구나.”
문을 열고 들어온 자는 다름 아닌 조 짐 주니어. 그날 사건 이후 보안관 사무실을 수시로 들락거리고 있다.
“좋은 아침입니다!”
“진짜 좋아서 하는 소리냐?”
“식사는 하셨어요? 옥수수빵 좀 가져왔는데, 드세요.”
피치는 쳐다도 안 보고 주니어는 막스에게 빵을 내밀었다.
“고마워. 잘 먹을게.”
빵 다음은 커피.
길쭉한 철제 주전자에 물을 붓고 거칠게 간 원두커피 가루를 넣는다.
물이 끓고 뚜껑이 김을 뿜으며 들썩거릴 때마다 커피 찌꺼기가 흘러내렸다.
피치는 옥수수빵에 이어 커피까지 눈독 들였다.
“잘 마실게.”
“부보안관님 마실 건 없어요.”
“왜 그래, 어차피 만들어 줄 거면서.”
“쳇.”
'내가 있어야 할 자린데.'
피치에게 자리를 빼앗긴 기분이랄까.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물론 그러면서 해줄 건 다 해주고 있었지만.
막스는 입을 오물거리며 조 짐 주니어를 쳐다봤다.
나이는 막스보다 한 살 어린 18살.
딱히 뭐를 가르쳐달라고 조르진 않는다.
옆에서 묵묵히 무기를 손질하거나 막스가 운동할 땐 그 옆에서 똑같이 하곤 했다.
그리고 아주 가끔. 보다 못해 몇 가지 알려주면 부르르 몸을 떨며 곧잘 따라했다.
- 앞으로 뭐가 되고 싶은데?
- 막스같이 강한 사람이요.
- 그래서?
- 함께 일하고 싶어요.
막스는 누군가를 키워 동료로 만들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어느 정도 완성된 인간을 받아들이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그 싹수가 보이면 작은 조언 정도는 해줄 용의가 있었다.
조 짐 주니어가 그런 경우다.
체력과 스피드, 그리고 끈기가 있었다.
지금은 특출날 게 없지만 몇 년 후가 기대되는 인물이었다.
막스가 조 짐 주니어를 보며 생각하는 때.
잠시 후, 사무실로 홀리데이가 들어왔다.
그는 모여있는 사람들을 보며 휘파람을 불며 말했다.
“여기가 진정 자유의 심장부로구나.”
동양인, 여성 부보안관, 거기에 인디언까지. 흑인만 있으면 완벽한 그림이 아닌가.
홀리데이는 사무실 가운데 놓인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어제 회의에선 말 안 했는데 말야. 입법부가 구성되면서 캔자스 마을의 행정 구역도 정해질 거야.”
“로렌스는 더글라스 카운티에 들어가겠네요.”
“레콤프턴, 와카루사, 블루밍턴, 유도라, 빅 스프링스 정도가 포함되겠지.”
홀리데이가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정식 보안관 임명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막스는 말 그대로 임시 보안관.
역사에도 기록되지 않을 이름 없는 자리였다.
하지만 입법부가 소집되고, 헌법이 공표되면 로렌스는 더글라스 카운티 보안관의 지침을 받아야 한다.
“레콤프턴에 있는 주지사가 곧 보안관을 임명할 텐데, 과연 누구를 내세울지 참.”
챙.
피치가 라이플 총열을 쑤시던 꼬질대를 땅에 떨어트렸다. 그리곤 동그랗게 눈을 떠 막스에게 물었다.
“우리 곧 잘리는 거야? 한 것도 없이?”
“난 한 거 많은데.”
“그런데도 잘린다잖아. 아무튼, 우린 한 몸이니까 어디든 같이 가는 거지?”
“샴쌍둥이예요? 뭔, 한 몸입니까.”
막스가 피식하자, 피치가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그럼 확 합체하던가.’
혼자 생각하고 코웃음 친 피치는 떨어진 꼬질대를 주웠다. 그리곤 총열을 쑤셔댔다.
어차피 부보안관은 막스와 함께하려고 한 것뿐. 자리에 큰 미련은 없다.
오히려 보안관에서 물러난 막스가 무슨 일을 할지 궁금했다.
*
미주리주의 잭슨 카운티.
보더 러피안을 끌어모으고, 부정선거를 모의한 핵심 주동자 데이비드 라이스 애치슨은 측근들을 회의실로 불러모았다.
주의 상원의원으로 재선에 떨어진 애치슨은 최근 더욱더 캔자스를 노예주로 만드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포니에서 열리는 입법부는 예정대로 초기에 당선된 자들로 구성한다.”
“재투표로 당선된 자들은요?”
“해선 안 될 재투표였어. 그냥 배제해.”
모든 상황은 노예주로 만드는 데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다만 애치슨은 캔자스 주지사 리더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노예주의 영향력에서 벗어난답시고 포니에 입법부를 소집하겠다고? 이 미친 소리를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있나. 헌법을 만들고 빠르게 처리하려면, 이 방법뿐이야.”
재투표는 무시하고 3월 투표로 당선된 36명의 노예제 옹호론자를 입법부로 구성한다. 반대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애치슨은 무리한 일을 벌이고 있었다.
“포니에 보더 러피안들을 보내야겠군요.”
“노예제 폐지론자들이 발붙이지 못하게 막아야지. 만약 주지사가 헛짓거리하거든 참을 필요 없어.”
벤자민 스트링팰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더 러피안을 이끄는 스트링팰로우 형제.
그들은 노예제를 지지하는 책까지 출판한 골수분자들이었다.
“그나저나, 인디애나주 하원이었던 제임스 헨리 레인이 아예 로렌스에 정착을 했다고 하더군요. 가족들까지 전부요.”
“그럴 생각으로 로렌스를 기웃거린 거겠지. 만만치 않은 놈이라 꽤 성가실 거야.”
인상을 찌푸린 애치슨은 이내 구석에 앉아있는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주근깨가 많은 막스 또래의 남자.
사무엘 제퍼슨 존스는 지난 3월 선거에서 로렌스 인근에 있는 블루밍턴 마을의 선거를 방해한 전적이 있는 자였다.
그의 집은 레콤프턴. 로렌스와 함께 더글라스 카운티에 속한 곳이다.
“곧 더글라스 카운티의 보안관으로 임명될 텐데. 이참에 로렌스를 둘러보는 건 어때?”
“알겠습니다. 혹, 그 동양인 새끼를 죽여도 되는지요?”
존스는 담담한 얼굴로 애치슨에게 물었다.
‘나이를 감안하면 냉정하고 침착한 놈이란 말야. 실력은 두말할 것도 없고.’
애치슨은 존스의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정식으로 보안관이 되거든 죽이면 된다. 그땐 네가 곧 법이니까.”
“그럼 가볍게 손만 봐주도록 하겠습니다.”
“그 정도야 괜찮겠지. 가서 소문이 얼마나 과장되었는지 확인해 봐.”
애치슨도 동양인 보안관의 실체가 궁금하긴 했다. 신문 기사만 보면 신화에서나 나올법한 인물이었으니 말이다.
이미 당한 적이 있긴 하지만, 그걸 동양인 혼자 해냈다고 누가 믿겠는가.
로렌스 신문사에서 지어낸 허무맹랑한 기사일 뿐이었다.
*
“아버지! 저 다녀올게요!”
“조심해서 다녀와. 해지기 전엔 돌아오고.”
“알겠어요!”
조 짐은 멀어지는 주니어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날 막스를 본 자신도 가슴이 두근거렸는데 아들은 오죽할까.
‘그래, 나처럼은 살지 말아야지.’
백인과 인디언 혼혈로서 어중간한 위치에서 어중간하게 살던 자신과는 다르게 살아가길. 조 짐은 아들의 앞날을 기원하며 솟아오르는 태양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온몸에 부딪히는 바람을 만끽하며 로렌스로 향하는 길. 조 짐 주니어는 말 허리를 박차며 속도를 높였다.
머릿속엔 온통 훈련 생각뿐이다.
처음엔 힘들어 죽을 것 같던 몸이 지금은 펄펄 나는 기분이랄까.
별로 가르쳐준 것도 없는데 막스가 툭툭 내던지는 말들은 꽤 유용한 것들이었다.
예를 들면 저 멀리 보이는 세 명의 남자.
- 상대 쪽수가 많다? 그럼 눈 마주치지 말고 달려야지.
숫자가 많으면 없던 자신감도 생긴단다.
더불어 물어뜯고 싶은 본능이 꿈틀거린다고도 했다.
그리고 막스의 말은 틀리는 법이 없다.
“존스, 저놈 로렌스로 가는 것 같은데?”
“그럼 이러고 있으면 되나. 같은 방향이면 잡고 가야지.”
“모처럼 인디언 사냥이나 해볼까.”
사무엘 제퍼슨 존스.
그가 뒤를 힐끔 보며 말을 내뱉었다.
“말했잖아. 당분간 살인은 금지라고.”
“아, 맞다. 곧 보안관 된다 그랬지.”
일 년 전. 버지니아주 출신의 사무엘 존스가 캔자스로 넘어와 사귄 친구들은 하나같이 노예제 옹호론자들이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존스가 캔자스 일에 깊숙이 관여하게 된 건, 데이비드 라이스 애치슨의 눈에 들게 되면서부터였다.
- 망할 노예 폐지론자를 죽이는데 그 총을 사용하는 건 어때?
- 죽여도 되는 겁니까?
- 물론이지. 벌레만도 못한 놈들이거든.
‘노예제 따위 알 게 뭐야.’
사무엘 존스는 자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뭐가 되든 상관없었다.
“자, 그럼 잡아 볼까.”
아침 바람이 상쾌한 게 사냥하기 딱 좋은 날씨가 아닌가.
존스가 말 허리를 박차며 내달렸다.
*
“요, 인디언 새끼. 도망가면 우리가 못 잡을 줄 알았지?”
“윽.”
밧줄로 말머리를 휘감는 탓에 조 짐 주니어는 말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충격은 있었지만 그럭저럭 버틸만 하다.
하지만 세 놈을 상대로 탈출하기는 힘들 것 같았다.
‘이럴 땐 두목부터 노리라고 했는데.’
주니어의 눈이 존스에게 멈췄다.
좌우에 있는 놈들은 전부 그의 눈치를 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냉랭한 표정, 벌레 보듯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주니어가 총을 향해 손을 뻗으려 할 때, 놈이 입을 열었다.
“로렌스로 가는 인디언이면···. 토피카 정착을 돕는 놈이군.”
‘나를 알아?’
주니어의 눈가가 파르르 떨려온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가라앉혔다.
“내가 로렌스로 가는 게 너랑 무슨 상관이지?”
“상관있지. 곧 보안관이 되실 몸인데.”
존스가 아닌 옆에 있는 놈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주니어는 며칠 전 사무실에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더글라스 카운티에 임명될 보안관.
“아직 임명되지도 않았으면서, 무슨 자신감이야?”
“잔말 말고, 너 동양인 보안관 새끼 알아?”
존스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말조차 섞기 싫다는 표정으로.
“...... 그건 왜 묻는데?”
“잘 아는 모양이군. 우리가 그 새끼 죽이러 갈 거거든.”
“뭐?”
눈을 크게 뜬 주니어는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고작 셋이서 죽이러 간다고?”
“이, 새끼가 비웃어?”
존스 옆에 있던 놈이 총을 뽑으려 한다.
하지만 그보다 빨리 주니어의 손이 홀스터에서 총을 뽑았다.
탕!
“윽.”
주니어는 망연자실한 채 땅에 떨어진 리볼버를 바라봤다.
총알에 움푹 찌그러진 총신.
동시에 손으로 전해진 충격에 손 떨림 역시 멈추질 않는다.
주니어는 고개를 들어 상대를 쳐다봤다.
존스는 어느새 총을 뽑아 자신을 겨누고 있었다.
‘빠르다.’
주니어가 침을 꿀꺽 삼킬 때, 존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동양인 보안관을 잘 아는 모양이군.”
“......”
“그놈이 나보다 빠른가?”
“다, 당연하지.”
“총이 없으면?”
존스는 총보다 맨주먹을 선호한다.
동부의 버지니아주에선 총은 문제가 되지만 주먹은 상대적으로 관대했다.
게다가 돈을 건 싸움에서 존스는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
“너 같은 건 상대도 안 될걸?”
“이렇게 자극하는 걸 보니까, 내가 널 못 죽일 거라 생각하는 모양인데.”
존스는 갑자기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정답이다. 널 죽이진 않을 거야. 대신 나를 자극한 만큼, 그 새끼한테도 자극은 줘야겠지.”
존스는 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친구들을 쳐다봤다.
“누가 싸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