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맨손으로?”
“설마 인디언 새끼한테 지진 않겠지. 안 그래?”
“다, 당연하지.”
둘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부터인가, 서부의 거친 사내들이 동부의 존스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서열이 정해지고 존스가 이들의 중심에 선 것이다.
- 만약 나를 죽이려거든 확실하게 죽여야 할 거야. 안 그러면 가족 전부를 찾아내서 살을 발라줄 거니까.
섬뜩한 미소로 내뱉는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건 그동안 충분히 겪어왔다.
둘에게 존스는 공포와 두려움의 존재였다.
“그럼 밀리, 네가 저놈과 싸워.”
존스의 선택을 받은 밀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무장을 해체했다. 이런 적이 많은 건지 행동이 꽤 자연스러웠다.
“인디언. 너도 준비해.”
*
달그닥, 달그닥.
푸르르르.
말이 멈춰선 곳은 로렌스 보안관 사무실.
소리를 들은 피치가 밖으로 나왔다.
피떡이 되어 말 안장에 온몸이 묶여있는 조 짐을 볼 수 있었다.
“이거···. 네놈들 짓이야!?”
피치의 눈이 뒤따라오는 남자들로 향해 소리칠 때.
삐걱, 삐걱.
막스가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조 짐을 본 뒤엔 천천히 시선을 세 명에게로 향한다.
한 명은 얼굴이 퉁퉁 부어 있다.
그리고 막스와 존스의 시선이 마주쳤다.
“말에서 내려.”
막스의 말에 존스가 입꼬리를 올렸다.
사무엘 제퍼슨 존스
피치는 말과 주니어를 엮은 밧줄을 풀었다.
몸이 기울어 떨어지려는 걸 피치는 가까스로 잡아 땅에 앉혔다.
외부 자극에 정신이 든 주니어가 꿈틀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내, 내가··· 이겼어요···. 근데···· 갑자기··· 다른 놈이 끼어들어서··· 이렇게 됐어요···.”
“알았으니까, 말하지 마.”
그나마 심각한 부상은 아닌 것 같다.
막스는 주니어에게 눈을 떼 얼굴이 부은 놈을 응시했다.
인디언과 주먹대결을 했다는 이야긴데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뭐 하는 놈들이야.’
상대의 정체를 고심할 때.
말에서 내린 존스는 막스 일행을 쳐다보며 이죽거렸다.
“여자 부보안관에 인디언이라. 동양인 새끼가 마을을 아주 개판으로 만들어놨군.”
“입에 총알 들어가기 전에, 누군지부터 밝혀야지. 안 그래?”
존스는 가소롭다는 듯 말을 이었다.
“앞으로 두 달이다. 그동안 네놈의 악취 나는 냄새를 사무실에서 없애. 내가 쓸 곳이니까.”
“혹시, 더글라스 카운티의 보안관?”
존스는 입꼬리를 올리며 고갤 까딱거렸다.
‘이미 정해진 것처럼 이야기하네.’
조만간 캔자스가 노예주가 되면 그들의 뜻대로 되긴 할 거다.
하지만 반란에 가까운 독자노선을 걷게 될 로렌스는 놈들이 정한 보안관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근데 이놈 이름이 뭐였지.’
전생의 기억을 뒤적거리던 끝에 몇 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노예주의 사주를 받아 사사건건 일들을 훼방 놓고. 몇몇 굵직한 사건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것.
한마디로 보안관을 가장한 보더 러피안이 더글라스 카운티의 보안관이었다.
막스의 가라앉은 눈빛이 존스를 향한다.
“그래서 찾아온 용건은?”
“미리 네놈에 관한 그 허황된 개소문을 확인하고 싶어서 말이야.”
존스와 막스의 시선이 부딪혔다.
그 속에서 존스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만만치 않은 놈이군.’
맹수의 본능. 막스의 위험성을 감지한 존스는 짜릿함과 설렘에 가슴까지 두근거렸다.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났다는 생각에 눈빛까지 일렁거렸다.
“자신감만큼은 인정하···?”
존스는 갑자기 부츠를 벗는 막스를 보며 하던 말을 멈추었다.
“뭐 하는 짓이냐.”
“앞으로 정식 보안관이 되실 분이 총질하러 오진 않았을 테고. 이걸 원한 거 아냐?”
주니어의 상태를 보면 짐작할 수 있는 일.
용병 시절에도 존스 같은 놈들이 있었다.
첨단 무기보다 주먹을 선호하는 놈.
그중엔 죽은 동료 에릭도 있었다.
- 총은 총알이, 칼은 칼날이 죽이는 거야! 네가 진짜 누군가를 죽였다면, 이 손과 발로 했어야 ‘진짜 죽였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거라고.
- 또 또 개소리한다. 그게 겉멋이라는 거야, 에릭. 효율적인 총이 있는데 뭔 주먹질이야.
- 넌 낭만이 없어. 밋밋해, 재미도 없고.
- 그럼 나랑 주먹으로 붙어 보든가.
- ...... 너랑은 뭐든 싫어, 새꺄.
- 쫄긴. 하여간 말만 스파르타쿠스여.
에릭을 비웃긴 했지만, 몸으로 직접 상대를 가격할 때의 쾌감은 확실히 중독성이 있었다. 막스 역시 그 맛을 알기에 특공무술 외에 다양한 걸 익힌 거고.
“멍청한 동양인 새끼. 대체 신발은 왜 벗는 건데?”
존스 옆에 있던 놈이 비아냥거린다.
막스는 놈을 가리켜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왜 벗었는지 보여줄 테니까, 덤벼.”
“이 새끼가.”
존스가 눈짓을 주고 놈은 모자를 벗은 뒤엔 팔을 걷어붙였다.
“얘 끝나면 바로 갈 테니까, 너도 준비해.”
막스의 시선을 받은 존스는 팔짱 낀 채 실소를 흘렸다.
막스는 자신을 향해 목을 이리저리 비틀며 다가오는 놈을 바라봤다.
“아야. 어디를 닦는 거예요.”
“어? 어, 미안.”
조 짐 주니어의 피뭍은 얼굴을 닦아 주던 피치. 그녀는 곧 벌어질 싸움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주니어 역시 눈은 막스에 고정되어 있었다.
과연 막스가 어떻게 상대를 때려눕힐지 궁금했다.
이 시대의 싸움이란 본능대로 휘두르고 피하는 게 전부. 막스는 휘적휘적 몸을 흔들며 다가오는 놈을 보며 아무런 자세도 취하지 않았다.
“건방진 새끼!”
놈이 달려들며 크게 주먹을 휘두른다.
발은 놔둔 채 상체만 뒤로 움직여 회피한 막스는 왼발을 축 삼아 오른발로 놈의 면상을 후려쳤다. 일명 태권도 돌려차기다.
발등이 놈의 관자놀이에서 광대, 입까지 움푹 파인 뼈대에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뻑.
맨발이 아닌 딱딱한 신발에 맞았다면 그대로 즉사할 정도의 충격. 놈은 썩은 나무토막처럼 일자로 쓰러졌다.
털썩.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지켜보는 이들의 입이 쩍 벌어지고.
막스는 휘적휘적 존스에게 다가갔다.
그의 눈빛이 크게 출렁거렸다.
‘바, 방금 뭘 본 거지?’
막스와 시선이 마주친 존스는 흠칫하며 총에 손을 뻗었다.
“왜, 안되니까 총 뽑고 싶어졌어?”
오기가 치민 존스는 손을 멈칫하더니 이내 칼을 뽑아 들었다. 그걸 본 막스는 코웃음을 쳤다.
“칼이면 될 것 같아?”
“...... 네놈 손모가지를 잘라주마.”
용병 시절 최강의 근접 전투(CQB)가 무엇인지를 두고 설전이 오고 간 적이 있었다.
구소련의 특수부대 스페츠나츠 출신은 당연히 시스테마를 일부는 이스라엘의 크라브마가나 펜칵실랏, 심지어 주짓수까지 거론했다.
그리고 막스는 전부 다 익힌 뒤에 말해주겠다며 논쟁을 일축 시켰다.
그렇게 해서 내린 결론은.
- 모든 CQC가 훌륭하다. 중요한 건 그걸 쓰는 사람이야, 알았냐 멍청한 새끼들아.
- 시발, 저렇게 말할 줄 알았어.
- 꼬우면 덤비던지.
그 후로 여러 대련을 거치면서 사람이 문제라는 걸 몸소 확인시켜주었다.
그리고 지금.
본능만 믿고, 자신의 힘에 도취한 존스가 빠르게 칼을 찔러온다.
대응법으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만 열 가지 이상.
선택한 순간 몸이 반응한다.
찔러오는 팔을 왼손 손날로 도끼 찍듯 후려쳐 밑으로 떨구고, 동시에 오른손을 뻗어 손바닥으로 안면을 가격했다.
빠각.
놈의 머리가 뒤로 휘청거릴 때, 칼을 든 손을 잡아 끌어당긴다. 그리곤 멱살을 잡아 땅에 패대기쳤다.
무릎으로 상대의 목을 누르고, 칼 든 손목과 팔꿈치까지 서서히 비틀었다.
‘이런 개 같은.’
“으윽···.”
무릎에 짓눌린 데다 팔까지 뒤틀리는 고통에 존스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온다.
막스는 놈에게 얼굴이 가까이 가져가 속삭이듯 말했다.
“여기 온 이상 그냥은 못 돌아가지.”
음산한 목소리와 팔에 가해지는 압박과 고통. 질식할 것처럼 호흡도 하기 힘든 상황에 존스의 눈동자에 공포가 스며든다. 이를 즐기듯 바라본 막스는 마저 팔을 비틀었다.
뚜둑.
“끄아아악!”
*
‘이 정도에 실신하다니. 약해빠진 놈이네.’
막스는 존스를 보며 혀를 찼다.
이 시대의 의술까진 모르나, 당분간 팔을 사용하진 못할 것이다. 운이 나쁘면 평생 불구가 될 수도 있고.
사실 존스가 기절한 건 팔이 아닌 무릎으로 목이 눌려서 벌어진 일이었다.
어찌 됐든.
‘맘 같아선 죽였으면 좋겠는데.’
사무엘 제퍼슨 존스.
앞으로도 성가시게 굴 놈이지만, 죽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총을 들지 않은 적, 그것도 곧 보안관이 되려는 놈을 죽인다면 파장은 작지 않을 테니까.
게다가 꼬리를 잘라봐야 몸통은 그대로다.
미주리주와 수많은 노예주의 권력자들.
놈들과 힘의 균형을 유지하려면 하루속히 자유주의 힘을 모아야 했다.
막스는 큰 사탕을 문 것처럼 얼굴이 퉁퉁 부은 존스의 동료를 힐끔 쳐다봤다.
안색이 시퍼렇게 질린 놈은 막스와 시선이 마주치자 몸을 부들거렸다.
피치가 총을 겨누고 있는 탓에 놈은 총을 꺼낼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데려가.”
“......”
쓰러진 놈이 둘.
동료는 그 둘을 낑낑거리며 말에 태우고, 막스는 조 짐을 묶었던 밧줄을 놈에게 던져줬다.
“묶어.”
모든 작업이 끝났을 즈음.
막스는 엉거주춤 서 있는 놈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뺨을 후려쳤다.
부르튼 입술이 터져 입가에 얼굴은 피범벅이 되었다.
“또 마주치면, 이걸로 안 끝난다.”
꺼지라는 손짓에 놈은 말에 올라탔다.
두 마리의 말 고삐를 엮어 이내 로렌스 마을을 떠났다.
“뭐야 저것들은.”
“웬 병신이 왔나 했더니, 진짜 병신이 돼서 나가네.”
마을 사람들은 싱겁다는 표정으로 다시 뿔뿔이 흩어졌다. 그동안 겪은 게 있어서 그런지 어지간해선 놀라지도 않는다.
아니, 당연스럽게 생각했다.
조 짐 주니어는 욱신거리는 아픔도 잊은 채 멀어지는 놈들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고 옮겨진 시선은 이내 막스에게로 향한다.
훈련할 때 발차기를 그렇게 하더니 실전에서 저런 위력이 있을 줄이야.
‘앞으로 더 열심히 배워야겠어!’
조 짐 주니어가 이를 드러내며 웃자 막스는 신발을 신으며 말했다.
“눈은 밤탱이가 돼서 뭘 좋다고 웃냐.”
“그냥··· 좋아서요. 그리고 진짜··· 제가 한 놈은 이겼어요.”
“그걸로 자랑스러워하면 안 되지.”
막스는 주니어에게 다가와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래도 잘한 건 잘한 거다. 대신 다음에 저놈들 보이면 무조건 도망쳐.”
“제 말이 느린가 봐요···. 보자마자 도망쳤는데 잡혔거든요.”
“말부터 바꿔야겠네. 아무튼, 오늘은 나랑 같이 집으로 가자.”
“아니, 내가 같이 가도록 하지. 어차피 볼 일이 있었으니까.”
불쑥 제임스 헨리 레인이 튀어나왔다.
오늘 주지사의 땅 투기 증거를 잡으러 가려는 모양이다. 원래는 조 짐 부자와 함께 가기로 했으나, 주니어의 상태를 봐선 힘들 것 같다.
레인은 새삼 막스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봤다. 총 쏘는 것만 봤지 맨손으로 싸우는 걸 처음 봤기에 놀라움이 더했다.
이제는 막스의 출신까지도 궁금해졌다.
이야기 좀 하자며, 막스와 사무실로 자리를 옮겼다.
“보안관, 어느 나라에 왔다고 그랬지?”
“조선입니다.”
“아까 싸웠던 기술도 전부 그곳에서 배운 것들이고?”
“그렇다고 할 수 있죠.”
턱을 매만진 레인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각인시킨 뒤, 화제를 바꾸어 말했다.
“그런데 아까 그놈들은 누구였나?”
“더글라스 카운티의 보안관이 될 거라면서 찾아왔더군요.”
“아직 마을 의장들이 회의조차 나누지 않았을 텐데? 노예주 놈들이 캔자스를 잡은 물고기처럼 여기고 있군. 오늘 혼쭐을 내준 건 잘한 일이네.”
기분 좋은 미소를 지은 레인은 이어서 포니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 포니에 가볼 생각이네. 거리가 있으니 한 사흘 정도 걸리겠지. 만약 자네 말대로 투기와 관련되어 있으면 곧바로 주지사도 찾아갈 생각이네.”
증거를 획득했으니 다음 차례는 협박이다.
레인은 시간을 끌 것 없이 앤드류 리더 주지사를 자유주의 뜻대로 움직이게 할 생각이었다. 물론 이 역시 막스가 세운 계획 중 하나였다.
“얻는 게 있었으면 좋겠네요.”
“뭐라도 건지겠지.”
그날 제임스 헨리 레인은 수하 열 명과 조 짐을 대동한 채 포니로 향했다.
*
레콤프턴으로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