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인 건맨! 로렌스의 보안관! 만나서 반갑네!”
앤드류 호레시오 리더.
현 캔자스 준주의 주지사이자 변호사이며 정치가. 코앞까지 다가온 그는 말 위에서 막스에게 악수를 청했다.
“언제 총알 날아올지 모르니 빨리하세나.”
“......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영광은 무슨. 내가 영광이지!”
웃음을 터트린 주지사는 막스의 일행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새 부하들을 만들었구만.”
발끈하던 제이호커스들은 입에 맴돌던 말을 차마 내뱉지 못했다. 차마 주지사한테 욕할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가면서 천천히 이야기하지.”
막스와 일행은 말에 올라타 주지사와 보조를 맞추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 속도가 꽤 여유로웠다.
“막스 조라고 했지? 내가 자네에 관해 조사를 좀 해봤네. 버팔로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는데, 자네에게 죽은 놈들은 총알과 칼자국을 남겼더군.”
“......”
그러면서 손가락 여덟 개를 펼쳐 보인다.
“최근 살인범들까지 죽인 숫자까지 하면 열여덟을 죽였더군. 내 이 정도로 자네에게 관심이 많네. ”
“!”
뒤를 따르던 일행들이 멍한 표정을 짓고,
막스는 덩달아 수를 세어봤지만 전혀 맞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그 숫자가 나오지.’
기사에서 다루지 않은 걸 감안하면 일단 그렇다 치고. 막스는 주지사 옆에 있는 두 남자를 쳐다보며 말했다.
“함께 가는 겁니까?”
“내 비서관과 재무담당관일세. 믿을 수 있는 자들이지.”
“그렇군요. 그런데 누가 주지사님을 위협하고 있습니까?”
주지사는 고개를 돌려 막스를 쳐다봤다.
“사방이 적이라 한 놈만 지칭할 수 없는 걸 용서하게. 다들 나를 잡아먹으려고 안달이거든. 특히 노예주 놈들이 쪽수로는 가장 많네.”
“딱히 위험을 느끼는 것 같진 않은데요.”
“무슨 소리. 정신 쇠약 때문에 약까지 먹고 있는데.”
땅 투기가 걸려서 그런게 아닐까 생각하는 때, 주지사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캔자스를 자유주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건만, 허무하고 원통스럽구만.”
“노력하셨다면 그렇겠죠.”
막스를 힐끔 쳐다본 주지사는 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도 날 비난하는군. 뭐, 다들 날 그렇게 생각하겠지. 허나 나도 할 말은 있네.”
막스를 설득하고 싶은지 주지사는 주절주절 자신이 한 일들을 떠들어댔다.
그런데 듣고 보면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다.
현 대통령에게 강제로 캔자스 준주의 주지사가 되고, 투표를 공정하게 하려 인구 조사도 실시했다.
“그런데 노예주에서 무력행사까지 할 줄 누가 알았겠나. 망할 놈들이지. 사실 레인 의원이 부탁하지 않았어도, 난 자유주를 적극적으로 지지할 생각이었네.”
‘부탁이 아니라 협박하러 간 건데.’
막스가 고개를 절레 저을 때, 주지사는 비장한 눈빛으로 말했다.
“내 이 갈등을 끝내겠네. 자네가 내 소임을 완수 할 수 있도록 도와주게나.”
“알겠습니다.”
이후로도 주지사는 꽤 많은 말을 했다.
토피카와 로렌스 땅을 지금 사도 늦지 않겠냐는 둥 투기꾼으로서 면모도 보였다.
*
주지사와 함께 세 시간을 달린 끝에 도착한 포니는 초기 로렌스 보다 더 심각했다.
의사당 건물 하나를 제외하면 주변으로 지어진 천막들이 전부였다.
충격과 당혹감을 내비칠 때 주지사가 말했다.
“입법부 의원들이 지낼 곳이네.”
“따로 숙박시설은 없습니까?”
“지을 시간이 부족했네. 뭐, 회의하는 곳만 멀쩡하면 되지 않은가?”
땅을 산 시기를 고려하면 이해는 간다.
“대신 우리가 지낼 곳은 이미 완공했네.”
주지사가 일행을 이끌고 간 곳은 의회 건물 뒤쪽에 가려 보이지 않는 최신식 2층 벽돌집이었다.
주지사의 집에서 머문 지 이틀째 되는 날.
입법부 소집 하루 전날 포니 의회당을 점거하는 무리가 나타났다.
벤자민 프랭클린 스트링팰로우.
보더 러피안을 이끌고 온 그가 주지사의 집을 향해 외쳤다.
“입법 회의가 끝나기 전까지! 주지사는 이 집 밖으론 나오지 말라!”
거절한다
입법부 소집 하루 전날.
벤자민 프랭클린 스트링팰로우는 원활한 캔자스 헌법 작성을 위해 주지사 자택 감금이라는 초강수를 두었다.
그런데 황당한 건 주지사의 반응이었다.
창문에 빼꼼히 입을 대고 하는 말이.
“안 나갈 테니까 그쪽도 여기 들어올 생각 말아! 그럼 입법회의 끝나고 보자고!”
협박 한 마디에 주지사는 고민도 없이 오케이 해버렸다. 목소리를 들어보면 오히려 자택 감금을 환영하는 것처럼 들리기까지 했으니. 할 말이 없어진 스트링팰로우는 매섭게 집을 노려보는 거로 그쳐야 했다.
‘주지사가 제정신이 아니구나.’
하긴 미주리주에서 150마일(242km) 떨어진 포니를 주도로 만들겠다는 발상부터 정상은 아니었다.
스트링팰로우는 집을 향해 침을 뱉고는 보더 러피안 일부를 남겨두고 의사당으로 사라졌다.
집 안에 있던 제이호커스들은 창문을 통해 집 주위를 포위한 자들을 볼 수 있었다.
대충 수를 헤아려 보니 30명이 넘어간다.
“와, 저 인원을 어떻게 감당하냐.”
“의사당까지 점령한 놈들까지 생각하면 장난 아니지.”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로렌스에 있는 병력 전부를 데려왔어야 했어.”
“지금은 그쪽이 더 중요한 거 모르냐?”
“어휴. 그건 그렇다 치고, 저 둘은 대체 무슨 생각이지?”
제이호커스는 종잡을 수 없는 주지사와 동양인의 행동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둘은 2층 서재에서 태평하게 체스를 두고 있었으니 말이다.
“한 판 더 하지. 내가 이렇게 질 리 없네.”
“그 말만 벌써 세 번쨉니다.”
“불안해서 그렇지, 불안해서. 저러다 습격이라도 하면 막을 재간이 있나? 아무리 자네라도 상황이···.”
“말씀드렸잖아요. 이 집에서 버티는 게 승자라고.”
체스판에서 몸을 떼며 막스는 주지사를 쳐다봤다.
총 사흘간 진행되는 입법부 회의.
막스가 전생의 기억을 들춰 알아낸 정보는 포니에 있던 입법부가 갑자기 장소를 변경한다는 정도일 뿐. 언제 어디로 왜 이동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곳에 온 막스는 집에서 일하는 하인들을 통해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하인들의 눈빛에 담긴 불안과 두려움.
보더 러피안 따위의 문제가 아니었다.
- 포트 라일리에서 전염병이 돌고 있대요. 언제 여기까지 퍼질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것 때문에 포니가 아닌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겼나.’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발생한 전염병이라 막스는 기억하고 있었다.
전염병의 정체는 다름 아닌 아시아 콜레라.
보더 러피안이 아닌 전염병이 포니를 위협했다.
더러운 물과 음식으로 전염되는 전염병으로, 특히 이 시기에 전 세계를 휩쓴 아시아 콜레라는 1837년 인도 동북부의 서부 벵골이라는 지역에서 창궐해 붙여진 이름이다.
최초 발생 이후 점차 서쪽으로 옮겨져 38년에는 아프카니스탄 카불에 이르렀고, 동쪽으로는 필리핀, 스리랑카에 이어 중국까지 퍼져나갔다.
그리고 48년에 이르러서는 유럽 전역으로 퍼져 잉글랜드에선 하루 천 명씩 죽어 나가는 상황까지 발생. 미국의 동부로 몰려든 이민자들은 골드러시와 황무지를 개척하려 콜레라를 달고 서부로 이동한 것이다.
주지사는 상황의 심각성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사실 며칠 전까지 포트 라일리에서 죽은 자만 175명이었네.”
포트 리븐워스처럼 인디언과 서부개척을 위해 지어진 요새. 군인과 고용된 많은 수의 노동자들이 콜레라로 인해 죽어 버렸다.
포트 라일리와 포니의 거리를 생각하면 언제 콜레라가 퍼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이곳을 고집한 이유가 뭘까.
주지사의 대답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 노예주 의원들이 전염병에 걸려 죽으면 그건 하나님의 뜻이 아니겠나. 나야 깨끗한 새집에 머무니까 별 탈 없겠지만.”
막스는 눈을 껌뻑이며 주지사를 바라봤다.
허술하게 봤는데 땅 투기 이면에 나름 잔인한 계획 역시 감추고 있던 것이다.
다만 다른 곳으로 회의 장소를 이동할 거라는 생각까진 못하고 있었다.
“이곳 포니는 내 마지막 자존심이네.”
주지사의 시선이 창문으로 향한다.
갑자기 자아 성찰이라도 한 건지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사실 난 겁쟁이에 투기꾼일세. 지금까지 한 짓만 보더라도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지는 빤하지.”
주지사는 허망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자네를 보면 판세를 읽는 눈이 남다른 것 같더군. 해서 묻겠네만 내가 곧 파면당할 거라는 것도 알고 있나?”
“...... 그럴 거라 예상은 했습니다.”
포니에서의 입법부 소집의 여파는 생각보다 컸다. 노예주는 뜬금없는 장소에 성토하며 군사위원회 의장에게 주지사의 권력 남용을 탄원했다.
현재 미연방은 노예주를 옹호하는 민주당이 집권하고 있기에 주지사 리더의 파면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로렌스를 돕겠다는 건 내 진심이었네만 막상 자리에서 내쳐질 내게 무슨 힘이 있겠나.”
“그럼 이대로 포니에서 말년을 보낼 생각이었군요.”
“뭐, 끝나는 마당에 돈이라도 남겨야 하지 않겠나. 보다시피 내가 이런 사람이네.”
주지사는 쓴웃음을 지으며 막스를 쳐다봤다.
“실망했다면 미안하네. 그래도 내 경호는 끝까지 해주길 바라네.”
“입법 회의가 끝나면 로렌스로 돌아갈 겁니다.”
“알고 있네.”
“포니는 파면당한 주지사가 살기엔 위험할 텐데요.”
“뭐 힘 빠진 나를 설마 공격이야 하겠나.”
막스는 고개를 절레 저었다. 한심한 모습이지만 한편으론 이해가 간다.
투철하진 않지만 나름의 신념은 부서지고 그 끝이 초라할 때 느끼는 감정.
패배감과 자괴감을 벗어나려 과한 웃음과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도 이 때문은 아닐까.
막스는 담담하게 주지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차라리, 이러시는 건 어떻습니까. 노예제 폐지를 위해 투쟁한 인물로 기록되는 건.”
“이 상황에 말인가?”
“사람은 포장하기 나름입니다. 똑같은 죽음이라도 마지막 던진 말에 따라서 평가가 달라지기도 하니까요. 하시겠습니까?”
주지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지만 이내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막스는 구체적으로 해야 할 일들을 말해주었다. 이는 주지사를 노예제 폐지론자의 선봉에 세우는 그림이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로렌스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반신반의했던 주지사도 그 끝에 이르러서는 얼굴의 그늘이 걷혀있었다.
“일방적인 파면이 아니라, 대통령도 비난받는 상황을 만들 수 있겠군.”
“노선만 확고히 지켜나가면 됩니다. 적어도 자유주에선 주지사님을 옹호할 테니까요.”
“알겠네. 자네 말대로 하지. 일단 우리는 여기서 기다리면 되겠군.”
“집으로 들어오는 놈만 잡으면 됩니다.”
차를 마시려던 주지사는 차가 식은 걸 알고는 하인을 불렀다.
“보안관의 충고대로 물은 끓여 먹어야 제맛이지. 펄펄 끓여다 주게.”
“알겠습니다.”
콜레라 전염병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굳이 따지면 지금이 여섯 번째였다.
따라서 6차 콜레라 펜데믹 상황에서 막스가 택한 건.
자택 감금이 아니라 의원들과 거리 두기를 위한 자가격리.
주지사는 그 말이 마음에 드는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딱 우리 상황과 어울리는 말이로군.”
자유주냐 노예주냐를 가르는 캔자스 헌법.
이를 만드는 중대한 입법 회의에서 전염병이 중대한 변수로 떠오른 것이다.
*
일 층으로 내려온 막스를 제이호커스들이 탐탁지 못한 눈으로 쳐다본다.
그중 막스보다 두 살 많은 패트릭 다우니가 소리쳤다.
“시발, 지금 한가하게 체스 둘 상황이냐? 이 집에선 어떻게 벗어날 생각인데?”
막스는 다우니를 넌지시 보며 말했다.
“벗어날 시기가 오면 그때 벗어난다. 미리부터 걱정하고 힘 뺄 필요 없어.”
“말 참 쉽게 하네. 몇십 명이 밖에서 진을 치는 데 이렇게 손가락 빨고 있자고?”
막스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전염병 도는데 손가락 빨면 쓰나. 그건 그렇고,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모여 봐.”
“집이 시발 넓으면 얼마나 넓다고. 거기서 말해.”
다우니를 쳐다본 막스는 이내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시비 걸고 싶으면 주둥이 말고 몸으로 해. 총, 칼, 주먹 다 상관없으니까.”
“......”
막스는 이어 젊은 제이호커스들과 일일이 눈을 마주쳤다.
도전적인 눈빛과 달리 나서는 자가 없다.
레인과 주지사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며 그들의 발목을 붙잡았다.
어쨌든 돌아가는 상황은 알아야 하니 막스는 전염병과 앞으로 벌어질 일을 설명했다.
그리고 침입자를 위한 장치도 마련해 두었다. 문과 창문에 실을 연결하고 식기류들을 매달아 경보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잠은 돌아가면서 자고, 불침번은 소리에 신경을 집중하도록 해.”
막스는 말끝에 한 마디 덧붙였다.
“시비 거는 건 그럭저럭 넘어가도 경계에 실패하면 각오해야 할 거야.”
‘시발, 동양인 새끼한테 이런 말까지 들어야 하는 건가.’
제이호커스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들에게 막스란 조금은 위험해 보이는 시건방진 동양인에 지나지 않았다.
*
7월 2일. 입법부 의원들이 포니 의사당에 모여들었다.
전염병 소식이 퍼졌는지 일부 의원들의 얼굴에는 걱정 근심이 가득했다.
“포트 라일리에서 많은 사람이 콜레라로 죽었다는데. 이거 이러다 여기까지 번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망할 주지사. 자기 혼자 저런 벽돌집에서 잔다는 게 말이나 되는 거야?”
“정신이 나간 거죠. 이건 고의로 우리를 엿 먹이려는 겁니다.”
전날 텐트에서 잔 게 억울하고 분했는지 주지사의 욕으로 시끌벅적했다.
하지만 그들보다 더 억울한 사람들이 있었으니 보더 러피안에게 막혀 의사당으로 들어가지 못한 의원들이었다.
“이게 무슨 입법부야! 당장 안 비켜!”
“좋은 말로 할 때 돌아가쇼. 당신들이 있을 곳이 아니니까.”
“망할 놈들! 이런다고 캔자스가 노예주가 되는 일은 절대 없을···!”
탕!
하늘을 향해 총을 쏜 스트링팰로우가 서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 즉시 해산한다. 참고로 난 버러지 같은 네놈들의 목숨은 안중에도 없는 사람이야.”
지독한 노예제 옹호론자로 이름난 스트링팰로우 형제. 움찔한 의원들이 주지사를 찾아가려 하지만 그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 포니에서 꺼져.”
급기야 폭력까지 휘둘렀다.
강력하게 비난하던 의원 세 명이 보더 러피안에게 맞고 끌려가는 상황까지 벌어진 것이다. 결국 노예제 폐지론자인 의원들은 분을 삼키고 포니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한편 아수라장이 펼쳐진 밖의 상황과 달리 의사당 내부 회의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