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화 (39/360)

주지사를 향한 욕설이 오고 가긴 했지만 의원 하나가 한 권의 책을 들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굳이 어렵게 헌법을 만들 필요 있습니까? 이미 노예주들이 심사숙고해서 만든 걸 토대로 작성하면 되지요.”

의원 책상마다 똑같은 책이 놓여있다.

캔자스 헌법의 토대가 될 노예주인 미주리주의 헌법.

입법 회의 첫날 의원들은 이를 참고로 헌법을 만들어 나갔다.

그리고 같은 시각.

로렌스는 대외적으로 새로운 입법부 선출을 공표했다.

발칵 뒤집힐 일이지만 소식이 포니까지 전해지는 데는 시간이 걸려야 했다.

그리고 이틀 후인 7월 4일.

마침내 포니에 문제가 터졌다.

“전염병이 이곳까지 퍼졌습니다!”

의회당 코앞에 살던 주민이 콜레라로 숨진 것이다. 발칵 뒤집힌 의원들은 불안에 떨며 또다시 주지사를 향한 비난을 성토했다.

그런 끝에 내린 결론은 제3의 장소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전염병에 언제 자유주 놈들이 쳐들어올지 모르니, 차라리 쇼니로 장소를 옮깁시다.”

“차라리 그게 낫겠습니다. 미주리주와도 가까우니 설마 방해야 받겠습니까.”

문제는 주지사의 동의를 얻어야 가능한 일.준주인 주지사는 총독이자 의회의 해산과 소집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스트링팰로우가 주지사의 집을 방문했다.

“며칠 전에 말한 것 까먹었나? 집에서 안 나갈 테니 들어오지도 말라고 했을텐데.”

스트링팰로우와 주지사의 대화는 창문을 두고 이루어졌다.

“콜레라로 사람이 죽어 나가는 판에 이딴 곳에서 무슨 회의를 한단 말인가!

당장 장소를 옮길 것이니 동의하시오!”

주지사는 옆에 있는 막스를 힐끔 쳐다봤다.

그리고는 비장한 표정으로 외쳤다.

“거절한다!”

“지금 상황을 보고도 모른단 말이냐!”

“너야말로 상황을 보고 말해!”

이어진 주지사의 말은 스트링팰로우를 경악으로 몰아넣었다.

“나 캔자스 준주의 주지사 앤드류 호레이쇼 리더는 이곳 포니 입법부를 해산하고, 로렌스의 입법부를 정식으로 인정하는 바다!”

“무, 무슨 개소리야!”

“이젠 귀도 먹은 거냐!? 내 서명이 들어간 서류가 이미 로렌스에 도착했을 터. 포니 입법부를 당장 해산시켜라!”

“이런 미친 인간을 봤나!”

화가 치민 스트링패로우가 총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창문을 노려보며 이내 몸을 돌렸다.

대낮에 그것도 주지사의 집에 총질 하기엔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일단 상황부터 파악해야겠다.’

스트링팰로우는 곧바로 의회에 돌아가 이 사실을 알렸다. 당연히 회의장은 발칵 뒤집혔다.

“이건 로렌스가 반란을 일으킨 것이오!”

“그런데 주지사 저 미친놈이 그쪽 편을 들었다는 거 아닙니까?”

“어차피 대통령이 주지사를 파면할 것은 분명한 사실이오!”

“그래도 아직은 주지사잖아요!”

“고작해야 며칠입니다! 우리가 쇼니로 옮길 때쯤이면 주지사 목도 날아갈 거요!”

갈팡질팡 고성이 오고 간 끝에 내린 결론은 쇼니로의 이동이었다.

“전염병에 뒈지느니 거기서 하는 게 백번 낫지 않겠소!”

“일단 가고 봅시다! 로렌스는 절대 인정받지 못할 테니까 신경 쓸 것도 없습니다!”

그렇게 의원들은 회의장을 박차고 쇼니로 갈 채비를 했다.

그 행동이 어찌나 꽤 신속하여 어느새 마차들이 포니를 떠나고 있었다.

그리고 스트링팰로우는 보더 러피안에게 이런 지시를 내렸다.

“너희는 오늘 밤 주지사를 처리한다.”

“알겠습니다.”

눈엣가시 같은 주지사의 암살.

어지러운 정국 속에 누가 지시했는지 밝히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스트링팰로우는 보더 러피안 20명을 포니에 놔둔 채 의원들 뒤를 쫓아 쇼니로 향했다.

주지사와 막스는 보더 러피안에게 포위되어 밖의 상황을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날 밤.

괴한 하나가 일층 창문을 슬쩍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때.

챙챙.

고요한 집안에 작은 소리가 퍼져나갔다.

창문 사이로 실과 연결한 포크와 스푼이 부딪히는 소리.

‘뭐, 뭐야 이건.’

괴한은 식겁했지만, 이내 벽을 기대고 자는 놈을 볼 수 있었다.

제이호커스의 다우니였다.

스슥.

‘일단 이놈부터.’

칼을 빼든 괴한이 다우니에게 살금살금 접근한다.

칼끝을 목에 쑤셔 넣으려던 순간.

어둠 속에 번쩍이는 무언가가 날아왔다.

휘리릭. 퍽.

이마 정중앙에 보위 나이프가 꽂히고 괴한의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

“뭐, 뭐야!”

쿵 소리에 놀란 다우니가 벌떡 일어났다.

이때 그는 자신을 차갑게 노려보는 막스를 볼 수 있었다.

“경계에 실패한 놈은 각오하라 했지.”

다우니의 시선이 죽은 괴한으로 향한다.

그리고 당황한 그에게 막스가 속삭이듯 말했다.

“네 놈이 소리친 덕분에 일이 빨리 끝나긴 하겠네. 넌 각오해야 할 거야.”

어느새 양손에 리볼버를 든 막스가 창밖을 겨누고. 밖에 대기하던 보더 러피안들이 집으로 쳐들어 왔다.

작가의말

콜레라 펜데믹.

지금 상황과 비슷해서 지문이 길어졌네요.

읽어주신 독자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내일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두 개의 주도

스트링팰로우의 실수는 주지사 밖에 신경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집 안에 로렌스 보안관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이렇듯 수하들을 사지로 내몰진 않았을 터. 하지만 이미 지시를 받은 충실한 보더 러피안들은 과감한 습격을 단행했다.

탕!

탕! 탕!

포니의 불안한 고요를 깨뜨리는 총성들.

주변의 드문드문 지어진 집에선 기름 등잔도 켜지 못한 채 소란이 끝나길 기다렸다.

“젠장!”

“대체 안에 몇 명이나 있는 거야!”

집 밖에서 들어갈 타이밍을 재던 보더 러피안들이 이를 갈았다.

들어가는 족족 죽어 나가는 게 주지사의 집이 오늘따라 무덤처럼 여겨진다.

구멍 뚫린 곳마다 대기하고 있을 놈들을 상대하기에 밤은 오히려 쥐약이었다.

“동이 트고 날이 밝으면 그때 공격한다.”

결국 무리의 리더는 침입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보더 러피안들은 집 주변에 진을 치고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집안에서 시체를 창밖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정적을 뚫고 털썩 소리가 들리자 보더 러피안들이 발작하듯 으르렁거렸다.

“빌어먹을 놈들.”

“이래서야 무기만 갖다 바친 꼴이구나.”

보더 러피안들이 분노를 터트릴 때,

밖에 쌓인 시체들 속에 한 인영이 꿈틀거린다. 그 동작이 워낙 느려 슬금슬금 시체들에서 벗어날 때까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암습이 뭔지 보여주마.’

동이 트기까지.

놈들을 처치하기에 밤은 꽤 길지 않은가.

어둠 속에 스며든 막스는 경계가 느슨해지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한편, 집 안에서 대기 중인 제이호커스들은 입술만 잘근잘근 씹을 뿐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다 한 명이 침묵을 깨며 입을 열었다.

“혼자 다 죽인 거 맞지? 여기서 자기도 한 명 죽인 것 같다 손들어 봐.”

“......”

“시발, 진짜 혼자 다 죽인 거 맞네. 소문이 사실이었어.”

다들 머릿속엔 막스의 총 쏘는 모습이 무한 반복하여 재생되고 있었다.

쌍권총을 들고 적들을 쏠 때의 손놀림은 신박하다 못해 기괴하기까지 했다.

보통 해머를 뒤로 젖혀 코킹 하려면 주로 엄지손가락을 사용한다. 그런데 이 미친 인간은 양손을 이리저리 교차하며 때로는 팔로 때로는 총끼리 부딪쳐 해머를 코킹하는 신기를 보여줬다.

그뿐만이 아니다.

“총알 떨어지니까 총 던지는 거 봤지?”

“그리고 어디서 총이 막 나오더라. 총을 몇 자루를 들고 있는지, 그새 새로운 거 꺼내서 쏘더라고.”

“대충 다섯 자루는 본 것 같아.”

다들 고개를 끄덕거렸다.

신들린 막스의 총 쏘는 모습은 제이호커스들의 입을 다물게 할 만큼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이것만으론 부족했는지.

시체를 집 밖으로 던질 때 막스가 한 말이 더 경악스러웠다.

- 밖에 다녀올 테니 잘 지키고 있어.

- !

그러면서 창문 밖으로 시체처럼 털썩하고 떨어졌다.

“제대로 미친거지 진짜···.”

강렬하게 사라진 막스. 그의 행동이 저마다의 머릿속을 떠돌고 있을 때 다우니가 입을 열었다.

“...... 돌아오면 난 어떻게 되는 걸까.”

“좆됐다고 봐야지.”

“그러게 왜 쳐 자고 있었어.”

다우니가 고개를 떨구며 한숨을 내쉬었다.

“시발, 동양인 새끼가 뭘 그리 잘 싸우냐.”

“워워. 아직도 동양인 타령하네.”

“정신 덜 차렸구만.”

다우니 말에 동료들은 고개를 절레 저었다. 그중 한 명은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냥 보자마자 사과해. 싸울 때 말곤 성질이 나쁜 편은 아닌 것 같더라.”

“...... 흠.”

“사과하면 받아줄 거야. 최대한 미안한 표정 지으면서 해보라고.”

다우니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문을 쳐다봤다. 그리고 결심했다.

오면 냉큼 사과부터 하기로.

주지사는 만약을 대비해 지하에 피신처를 만들어 두었다. 비서관과 재무담당관 그리고 하인들은 그곳에 모여 상황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총소리가 멈추고 집이 조용하자 잠이 쏟아졌다. 그렇게 하나둘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길 두 시간.

덜컥.

집 문이 열리는 소리에 주지사는 움찔하며 눈을 떴다. 잠이 깨고 긴장하며 위의 상황에 귀를 기울였다. 이때 제이호커스 중 한 명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기 아깐 미안···.”

퍽!

“경계에 실패하면 가만 안 둔다 했지.”

퍽! 퍽!

“......”

주지사와 지하에 있던 사람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막스가 수하를 패는 것 같은데 나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등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짧지만 한 가지는 추측할 수 있었다.

‘밖에 있던 적들을 혼자 다 처치한 거네.’

그게 아니면 막스의 성격상 이런 상황에 소란을 떨 리가 없으니 말이다.

- 어떻게 할까요 주지사님.

- ..... 지금 올라가긴 좀 그렇잖아? 부르면 그때 올라가자고.

퍽퍽.

그런데 금방 끝날 것 같던 소리가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끼익 소리와 함께 지하 문이 열리고 막스가 얼굴을 들이민다. 그리곤 씨익 웃으며 말했다.

“상황 끝났습니다. 올라오시죠.”

“...... 자네 부하가 마지막 적이었나 보군.”

*

해가 뜨기 전. 제이호커스는 막스가 처치한 시신들을 주지사 집 앞으로 끌어모았다.

“죄다 목에 구멍이 뚫렸네. 뒤에서 접근한 다음 이렇게 쑤신 건가.”

“이놈은 오줌 쌀 때 뒈진 것 같은데. 쭈그러든 것 봐.”

“원래 크기가 그런 거 아닐까.”

시체에 난 상흔을 보며 막스가 어떻게 처치했을지 토론이 이어졌다. 그러면 그럴수록 막스를 향한 경외심이 들었다.

한편, 제이호커스가 시체를 치우는 동안 막스는 얼굴이 울퉁불퉁해진 다우니 옆에 앉아 시가를 내밀었다.

“아깐 내가 좀 흥분했다.”

“......”

“다른 건 몰라도 경계근무는 내가 좀 민감하거든. 이 일로 가족이 쩝···.”

“그, 그런 이이 이써꾸나.”

‘뻥이지 임마.’

고아로 자란 막스에게 가족이 있을 리가.

시가 연기를 깊이 들이마시고 내쉬며 말을 이었다.

“뭐, 경계엔 실패했지만 금방 정신 차리고 대응 사격한 건 잘한 거야. 총 쏘는 실력도 괜찮던데, 누가 가르쳐 준 거야?”

“하아버이가 독리전재때 민병대셔써.”

다우니의 볼은 퉁퉁 부어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들었다.

막스는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일어났다.

“다음에 다시 얘기하자.”

“으응”

시체에서 획득한 전리품들은 리볼버가 23, 라이플 5자루였다.

제이호커스가 이를 궤짝에 쓸어 담는 동안 주지사는 포니를 떠날 준비를 했다.

“포니에 딱 사흘 머물다 가는구만.”

“다시 돌아올 날이 있겠죠.”

“과연 그런 날이 올까.”

주지사는 문득 비서관과 재무담당관을 바라봤다. 짐을 싸느라 분주하게 움직이는 게 언뜻 하인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나름 동부의 명문대학을 졸업한 엘리트들이었다.

“저 둘은 무슨 죄인지 모르겠네. 졸지에 나 때문에 직업도 잃게 됐으니 말야.”

“능력이 있으면 다시 자리를 찾겠죠.”

“새로운 주지사가 누가 될지 모르겠지만. 저 둘을 채용해줬으면 좋겠구만.”

‘새로운 주지사라.’

막스는 수염이 조금씩 자라기 시작한 꺼끌꺼끌한 턱을 매만졌다.

캔자스를 양분한 노예주와 자유주.

마찬가지로 생겨난 두 개의 입법부.

누가 진짜인지 결판내기 위해선 더 많은 피를 흘려야 한다.

이런 상황에 직업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물갈이 될 공직자들이 한 둘이 아닐 테니까.

떠날 채비가 끝나자 제이호커스 중 막내인 터커가 막스에게 물었다.

“그런데 우리 어디로 가는 거야?”

주지사 경호 임무가 끝나지 않았다면, 그의 선택에 따라 목적지가 바뀔 터.

막스는 제이호커스들을 보며 말했다.

“로렌스. 우리가 갈 곳은 거기 밖에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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