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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 입법부 구성과 함께 자유주의 힘이 응축되고 있는 곳.
주지사 신변 보호의 끝은 직접 그를 로렌스로 데려오는 일이었다.
“오오! 주지사님이 이곳엘 오다니!”
“로렌스에 온 걸 환영합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사람들이 몰려들며 환호한다.
주지사는 당황하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반응들이 왜 이러지?’
누가 돌이라도 던질까 걱정했는데 이런 뜻밖의 대접을 받을 줄이야.
물론 일부의 싸늘한 시선도 있었다.
환호하는 사람만 도드라져 보일 뿐 이런 자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문득 막스가 한 말이 떠올랐다.
- 노선만 확실히 하세요. 역사가들이 기록할 내용은 앞으로 만들어 나가면 됩니다.
- 너무 늦진 않았을까? 다들 욕할 텐데.
- 그러니까 한쪽만 봐야죠. 분명 주지사님을 응원하는 자들이 생겨날 겁니다.
막스를 돌아본 주지사는 슬쩍 엄지를 추켜세웠다.
자신감이 생겨나고 흐렸던 신념이 또렷해진다. 그리고 탁했던 눈빛은 이내 반짝이며 사람들을 향했다.
“나 앤드류 호레시오 리더는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캔자스를 자유주로 만들기 위해 투쟁할 것입니다!”
의심의 눈초리를 바꾸기 위해선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할 터. 앤드류 리더는 자유주의 심장이 되어버린 로렌스에서 자신의 마지막을 불태우고자 했다.
“잘 다녀왔나요! 보안관님!”
“오셨어요!”
사무실 밖에서부터 피치와 조 짐 주니어가 막스를 반겼다.
“몸은 괜찮아?”
“멀쩡해요!”
“나는 안 보이는 거야?”
피치가 얼굴을 들이밀며 알짱거렸다.
그러다 뒤에 서 있는 칙칙하게 생긴 남자 다섯을 보며 흠칫 뒤로 물러났다.
“뭐, 뭐야. 임무 끝난 거 아녔어?”
막스가 고개를 돌려 뒤를 쳐다봤다.
“진짜 왜 거기 서 있는 거야?”
“가도 되는 거냐? 해산 지시를 내려야지”
“아.”
막스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임무 끝. 해산이다. 다들 고생 많았어.”
“흠흠. 그럼 또 보자고.”
긴장이 풀어진 사람들처럼 다들 고개를 이리저리 비틀며 몸을 푼다.
이들이 머무는 곳은 제이호커스들이 머무는 텐트촌. 발걸음을 옮기려던 다우니가 고개를 돌려 막스에게 물었다.
“앞으로 뭐 할 거야?”
제이호커스들도 궁금한지 막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로렌스 보안관이 뭘 하겠어.”
“그럼 항상 거기 있겠구나. 또 보자고.”
싱겁게 손을 흔든 다우니.
그는 제이호커스들과 함께 숙소로 몸을 틀었다. 그들이 멀어지자 눈을 가늘게 뜬 피치가 입을 열었다.
“보안관님, 거기서 또 뭐 했어? 방금 눈빛들이 요기 주니어랑 닮았던데.”
막스가 주니어를 쳐다봤다.
부담스러운 눈빛이 자신을 쏘아본다.
‘제이호커스들과 이 둘이면 얼추 그림은 나오겠네.’
역사의 수레바퀴는 알아서 굴러갈 터.
로렌스는 완전한 정치적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지금과는 다른 스케일로 병력이 집결될 것이다.
이는 막스 혼자 휘젓고 다닐 시기가 지났음을 의미했다.
본격적으로 자신의 세력을 구축할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
로렌스가 공표한 새로운 입법부 구성은 노예주들에게 커다란 분노를 일으켰다.
노예주와 자유주를 결정 지을 캔자스 헌법이 두 곳에서 만들어지는 사상 초유의 사태에서 노예주들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남부의 지지를 받는 민주당 대통령 프랭클린 피어스는 주지사 앤드류 호레이쇼 리더의 파면을 결정했다.
이에 민간인이 된 리더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광장에서 연설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노예제 옹호론자들이 저를 협박하고 부정 투표를 저지른 건 세상이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더러운 노예주의 입김에 놀아난 대통령이 비록 나를 쫓아냈으나. 내 안에 가득 찬 신념까지 꺾진 못했습니다. 유럽까지 노예제를 폐지한 마당에 시류를 읽지 못한 멍청한 이들에게 우리가 할 일은 명백합니다! 저항하고 투쟁하는 것! 그렇게 얻어낸 캔자스를 자유주로 남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로렌스의 광장이 틀을 갖추게 된 건 앤드류 리더의 역할이 컸다.
투기꾼에서 강성 노예제 폐지론자로의 신분 세탁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역사가들이 들어주길 바라듯, 그는 연설을 하루도 쉬지 않았다.
이는 본인에게도 이점을 안겨 주었다.
뒤늦게 합류했음에도 로렌스 정치의 중심에 파고들 수 있었으니 말이다.
앤드류 리더가 자신의 입지를 다져갈 때, 제임스 헨리 레인이 막스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자네 사무실에 사람이 많다고 들었는데, 어째 한가하군.”
“아, 다들 운동하고 있을 겁니다.”
“운동?”
정확히는 훈련이다. 피치와 조 짐 주니어. 그리고 젊은 제이호커스 다섯이 평소 막스가 사용하던 훈련장소에서 땀을 흘리는 중이었다.
“그런데 여긴 어쩐 일입니까.”
레인은 소파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미주리주에서 보더 러피안들을 끌어모으고 있다더군.”
“숫자는요?”
“한 곳에 모인 자들만 대략 2천이 넘어간다고 들었네.”
“체계를 갖춘다 이 말이군요.”
“그래서 말인데.”
레인은 막스를 응시하며 천천히 말을 내뱉었다.
“제이호커스를 자네가 맡아 훈련 시키는 건 어떤가?”
훈련 교관
‘제이호커스의 훈련 교관이라.’
이걸 기회라고 생각해야 할까.
뜻밖의 제안에 막스의 생각이 많아졌다.
하지만 그 생각을 끊으며 레인이 물었다.
“제이호커스의 뜻을 아나?”
제이호커스(Jayhawkers)는 그리 좋은 뜻이 담긴 말은 아니다.
대충은 알지만 막스는 고개를 저었다.
“모릅니다.”
“제이호크라는 말(horse)이 있었네. 그런데 이놈이 새 둥지에서 알을 훔쳐 먹고 심지어는 어미 새를 죽이기까지 했다더군. 여기서 유래된 이름이라네”
“도둑질하는 깡패집단이라는 뜻이군요.”
“돌려서 말하는 법을 모르는군.”
“아, 돌려서 말해야 했군요.”
레인은 한쪽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아직은 어떤지 모르나 분명 제이호커스는 그 이름값을 하고도 남는다.
그들의 광기는 노예제 폐지론이라는 명분아래 마을을 불태우고 주민을 학살한다.
두개골을 쪼개고 시신을 토막내는 짓이 과연 노예제와 무슨 연관이 있을까.
피의 캔자스는 어느 한쪽이 아닌 보더 러피안들과 제이호커스의 합작품.
레인이 모집한 제이호커스는 폭력성이 내제된 조직에 불과했다.
물론 그는 인정하지 못하겠지만.
“아무튼, 각자 활동하던 자들이었네. 그래서 조직을 만드는 게 더더욱 어려운거고.”
“그런 걸 아시면서 동양인인 저한테 훈련 교관을 하라니요. 앞뒤가 안 맞습니다.”
“로렌스 보안관은 앞뒤가 맞아서 된 건가?”
“...... 안 맞죠.”
대답이 궁색해진 막스는 턱을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현재 인원은 어떻게 됩니까?”
“234명이네. 하지만 계속 늘고 있지. 이 추세라면 올해 안에 천 명은 충분히 넘을 걸세.”
캔자스를 자유주로 만들기 위해 자기 한 몸 불사를 사람들이 곳곳에서 짐을 싸고 있다. 그들의 목적지는 로렌스.
하루에 모여드는 자들을 생각하면 레인의 말이 허언은 아니었다.
“일개 보안관에게 일거리를 너무 많이 주시네요.”
“이 또한 마을을 위해서 하는 일이네.”
막스는 고민에 잠겼다. 갑작스러운 제안이긴 하나 생각한 방향은 있었다.
‘제이호커스 일부만 내 휘하에 두면 된다.’
전부를 가르치는 건 비효율적이었다.
생각을 끝낸 막스가 입을 열었다.
“멕시코 전쟁에 참여했던 자들은 죽어도 제 말을 안 따를 겁니다. 갑자기 튀어나온 19살 동양인이 가르치는 걸 따르는 자가 이상한 거죠.”
레인은 멕시코 전쟁 당시 대령이었다.
대위로 임관해 같은 해에 대령으로 임명되었는데 막스의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초특급 특진이었다.
어찌 됐든, 제이호커스가 레인을 따르는 건 그의 이력이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가.”
막스는 레인의 눈을 마주 보며 말했다.
“제가 선발한 자들만 훈련 시키겠습니다.”
“흠. 전쟁 경험이 없고 자네 또래만 모아서 하겠다 이거로군.”
“예리하십니다.”
막스가 감탄하자 레인은 코웃음을 쳤다.
“머리 굳은 자들은 제가 발로 총을 쏴도 박수는커녕 고깝게 생각할 겁니다.
경험을 최고로 치는 사람들이니까요.”
“틀린 말은 아니지. 허나 혈기왕성한 청년들도 다루긴 쉽진 않을 걸세.”
“뭐, 하다 보면 마음과 마음이 통하지 않겠습니까.”
레인은 잠시 생각한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막스와는 반대로 레인은 젊은 청년들이 부담스러웠으니 말이다.
게다가 주지사를 경호했던 제이호커스들이 막스를 추종하는 것도 한몫했다.
“인원은 자네가 결정하게. 다만 매월 추가되는 병력도 생각해야 할 걸세.”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레인이 다녀가고 얼마 후.
막스는 무장한 채 사무실을 나섰다.
로렌스의 북쪽으로는 캔자스 강이, 남쪽으로는 2마일(3km) 떨어진 곳에 비교적 폭이 좁은 와카루사 강이 흐른다.
그리고 남서쪽에는 언덕처럼 보이는 오레드(Oread) 산이 마을을 내려보고 있었다.
‘저기에 요새를 지으면 딱이겠군.’
여기저기 로렌스를 향한 위험신호가 감지된다. 2천 명의 보더 러피안들이라는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제이호커스보다 많은 건 분명하다.
만약 그들이 일제히 몰려들면 로렌스가 쑥대밭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마을이나 한 바퀴 돌아볼까.’
마을 중심을 다 도는 데는 10분이 채 안 걸린다.
허허벌판에 건물들은 듬성듬성 들어서고 그 수는 50개를 넘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원래의 역사보다 빠른 발전 속도였다.
“막스 보안관! 점심은 먹은 거야?”
“동부에서 싱싱한 생선 들어왔는데 이것 좀 가져가서 먹어.”
먹는 건 절대 사양 안 하는 막스.
마을 한 바퀴 돌면 제법 손이 무거워진다.
마을의 발전 속도가 빨라진 데는 분명 막스의 영향도 있었다.
그의 활약이 신문을 통해 퍼지고.
델라웨어 마을 의장 그린터의 페리가 로렌스에 풍부한 물자를 보급하는 건 정착민들에겐 큰 도움을 줬으니 말이다.
‘몇 년 후엔 또 어떤 모습으로 바뀔까.’
처음 보았던 천막들이 보이긴 하지만 제이호커스들이 거주하는 용도일 뿐.
정착민들은 제대로 된 집에서 살고 있었다.
그들은 중심가에서 벗어나 척박한 땅을 일구어 농장과 목장을 경영했다.
막스가 로렌스 마을을 보며 감회에 젖을 때, 어슬렁거리는 무리가 눈에 들어 왔다.
‘할 일 없는 제이호커스들이군.’
마을에서 빈둥거리는 놈들이면 틀림없다.
뭐를 찾는지 하이에나처럼 눈을 두리번거리는 모습.
‘도둑놈이 어딜 털지 고민하는 것 같네.’
레인이 훈련을 떠올린 것도 이런 모습 때문이 아니었을까. 정신없이 굴려야 다른 생각을 안 할 테니 말이다.
막스는 방향을 틀어 평소 훈련하던 장소로 향했다.
8월의 30도가 넘는 뜨거운 햇볕 아래.
피치와 조 짐 주니어, 다섯 제이호커스가 땀을 흘리며 훈련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들을 지켜보는 무리가 있었다.
‘저것들은 또 뭐야.’
뒤통수를 세어보니 열둘이다.
“저 여자는 뭔 발을 저렇게 차는 거야. 인디언 새끼는 칼 들고 지랄 발광을 하고.”
“시발, 저것도 훈련이라고 하고 앉아있네.”
막스는 우두커니 뒤에 서서 비아냥거리는 걸 듣고 있었다.
“와, 근데 총은 왜 저렇게 쏘는 거야?”
“보안관 새끼가 막 이래이래 손을 교차하면서 쐈대잖아.”
한 놈이 양손을 막 휘두르자 주변에 있던 놈들이 허리까지 꺾어가며 깔깔거렸다.
그러다 한 명이 막스와 눈이 마주쳤다.
“아우, 깜짝이야!”
소리에 놀란 나머지도 일제히 몸을 돌려 막스를 쳐다봤다.
당황한 건 찰나고 이내 호기로운 얼굴로 노려봤다.
막스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다들 여기서 뭐 하시나.”
“보면 몰라? 단체로 서커스 한다는 소리를 들어서 말야.”
막스는 방금 말한 놈의 얼굴을 응시했다.
큰 키에 우락부락한 근육.
막스보다 다섯 살 많은 네이선 로어라는 남자였다.
“한가하게 구경하는 것보다 저 모습이 좋아 보이는데? 땀 흘리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워.”
“지랄하네. 훈련이 훈련다워야지.”
“그럼 진짜 훈련이 뭔지 보여줘 봐. 나도 배워보게.”
막스의 말에 남자는 코웃음을 쳤다.
기가 막힌 표정만 지을 뿐 구체적인 행동은 하지 않았다. 소문은 둘째치고 어쨌든 로렌스 보안관이었으니 말이다.
막스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훈련해 본 적이 있어야 뭘 보여주던가 하지. 안 그래?”
“지금 나한테 시비 거는 거냐? 동양인 새끼가 건방지게.”
남자가 가슴을 내밀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키 차이는 대략 10cm. 내려다보는 시선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굳이 싸울 필요가 있나.
적당히 무대가 만들어지면 그때 해도 늦지 않았다.
“힘을 아무 때나 쓰면 되나. 내일 보자.”
“왜, 도망이라도 가려고?”
막스는 남자의 말을 무시하고 옆에 있는 동료들로 시선을 옮겼다.
“너희들도 기회가 갈 테니까 준비들 해.”
“뭔 개소리야.”
막스는 대꾸 없이 더 먼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훈련에 정신이 팔린 피치와 조 짐 주니어 그리고 제이호커스를 응시했다.
서커스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막스는 입맛을 다시며 말을 내뱉었다.
“아무튼. 내일 보자고.”
막스는 등을 돌려 마을로 돌아갔다.
뒤에서 들려오는 욕설과 비아냥은 무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