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날 마을 공터.
25세 이하의 제이호커스를 집합시킨 레인은 장내를 둘러보며 소리쳤다.
“미주리주 잭슨 카운티에 보더 러피안들이 모여들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당장 오늘이라도 쳐들어올 수 있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시간만 때울 건가!”
레인은 부리부리한 눈으로 주변을 훑으며 말을 이어갔다.
“캔자스를 자유주로 만드는 길은 험난할 것이다. 준비된 자만이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킬 수 있을 터. 오늘부터 제이호커스는 체계를 갖추고 캔자스의 조직으로서 태어날 것이다.”
젊은 제이호커스들은 레인의 연설에 가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노예주의 횡포에 총 칼을 들자.
캔자스를 자유주로 만들기 위해 내 피가 필요한가? 마음껏 가져가라, 난 기꺼이 흘릴 준비가 되어있으니.
‘선동이 이래서 무섭다니까.’
뒤에서 지켜보던 막스는 제이호커스들의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좋게 말해 열기지 언제든 광기로 변할 수 있는 위험한 눈빛들이었다.
막스는 이런 장면이 익숙했다.
용병 시절 내전에 휩싸인 아프리카 국가들.
특히 반란군들에게 선동당한 아이들의 눈빛들이 이랬으니까.
혈기 왕성한 젊음의 열기가 광기로 번지는 것만큼 위험한 건 없었다.
한편, 어제 막스와 시비가 붙은 네이선 로어도 가슴을 치며 광분하고 있었다.
레인의 말에 자극을 받은 게 분명했다.
그리고 이러한 흥분상태를 충격으로 몰아넣는 건 한 마디면 충분했다.
“해서 너희 중 일부를 여기 로렌스 보안관이 훈련하게 될 것이다.”
“!”
이곳에 모인 제이호커스만 80명.
동시에 눈동자가 출렁거리고 입을 벌리는 모습. 아마 머릿속엔 동양인이라는 생각도 똑같이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막스는 담담히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원래 일부를 선발하려 했으나,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여러분 전원을 대상으로 훈련할 생각입니다.”
“......”
“그리고 이에 앞서 정리부터 하겠습니다.”
“정리?”
장내가 술렁거리고, 막스는 시선을 뿌리며 말을 이었다.
“본 훈련 교관이 마음에 안 들면 지금이 기횝니다. 저를 이기면 교관 자리를 넘기겠습니다”
“!”
동양인에 나이 어린 막스가 단숨에 이들을 휘어잡으려면 희생물이 필요하다.
이는 레인과도 합의를 본 상황이었다.
더구나 자신을 이길 실력이면 그 사람이 교관이 되는 게 맞지 않는가.
오히려 막스는 순수한 마음으로 그 사람한테 배우고 싶었다.
“결투에 총과 칼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죽을 일 없으니까 도전하세요.”
막스의 도발에 장내에 웅성거림이 커졌다.
막스는 오롯이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몇 명이 손을 들었다.
막스는 웃음을 지우고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 손드신 분과 먼저 겨뤄보도록 하겠습니다.”
막스의 선택은 어제 시비가 붙었던 네이선 로어. 커다란 덩치에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바닷길 갈라지듯 동료들이 길을 터준다.
장소와는 조금 떨어진 곳.
조 짐 주니어와 피치가 기대 가득한 눈으로 막스를 바라본다.
그리고 무장을 해제하고 신발을 벗는 막스를 보며 환호했다.
“오, 또 벗나요.”
“오늘은 제대로 봐야지!”
손 안경을 한 피치. 그녀의 눈동자는 막스의 발만 따라다녔다.
한편 막스를 추종하는 제이호커스 다섯은 로어를 보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막스가 무리수를 뒀네. 상대를 골라도 하필 제일 강한 놈을 골랐냐.”
“로어가 주먹으로 오하이오를 평정했다던데. 총과 칼이 없으면 힘들겠는데.”
“다우니, 넌 맞아봐서 알잖아. 막스가 질 것 같지?”
“이 새낀, 잊을만 하면 얘기하네.”
“쉿. 시작한다.”
막스보다 머리 반통이 큰 네이선 로어.
우락부락한 가슴 근육을 꿈틀거리며 말을 내뱉었다.
“교관자리 넘겨준다는 거. 약속 지켜라.”
“물론이지.”
막스가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자세를 낮춘 로어가 달려들었다.
‘난 한 놈만 조진다.’
막스는 입꼬리를 올리며 로어를 마중나갔다.
훈련병
로어가 동양인을 잡으려 양손을 뻗는다.
체구에 걸맞은 힘을 이용해 붙잡아 쓰러트리려 했다.
‘일단 잡히면 네 놈은 뒤졌···.’
탁!
쭉 뻗은 팔은 동양인의 몸에 닿기도 전, 충격과 함께 방향이 아래로 꺾어버렸다.
통증이 느껴지는 순간엔 목이 휘감겨 몸이 뒤로 젖혀진다.
다리는 뭐에 걸렸는지 온몸이 허공에 뜬 기분이 전해졌다.
‘날고 있···.’
쿵!
뒤통수부터 시작해 척추를 타고 엉덩이까지 충격이 전해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 반쯤 벌어진 로어의 입에선 허허로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때 뜨거운 햇볕에 그림자를 드리운 동양인 놈이 자신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일어나. 이제 시작이니까.”
“......”
‘이렇게 쉽게 끝내면 운이라 생각하겠지.’
로어를 통해 나머지 79명을 손에 넣는다.
그러기 위해선 더 몰아칠 필요가 있었다.
막스가 로어의 멱살을 잡아 일으켰다.
다시 대치상태가 되고.
멍했던 로어의 눈은 이내 분노와 수치심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섣불리 붙잡기보단 가드를 올려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
눈빛은 동양인의 팔과 어깨를 집중했다.
‘내가 힘만 믿고 싸운다고 생각했다면 큰 착각이다.’
주먹을 뻗기 전, 상대 어깨를 주시하면 공격을 예측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동양인의 오른쪽 어깨가 올라간다.
‘훗. 오른손 훅이겠군.’
로어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머릿속 계획은 끝마친 상태. 팔 길이까지 가늠해서 내린 결론은 크로스 카운터.
상대의 주먹과 엇갈려 긴 린치를 이용해 먼저 얼굴을 가격하면 끝이다.
‘내겐 오로지 공격만 있을···!’
그런데 동양인이 오른손을 안 뻗는다.
대신 발이 로어의 시선을 가득 채웠다.
빠각!
뒤로 휘청거리는 사이 몇 차례 공격이 가해졌다.
동양인의 주먹이 복부, 얼굴을 가격하고 뒤로 물러나면 따라오며 발로 후려쳤다.
맞을 때마다 몸이 휘청이며 로어의 머릿속이 말끔히 비워졌다.
일방적 구타에 제이호커스들의 입이 벌어질 때였다.
땅을 박차고 날아오른 동양인이 오른손으로 로어의 머리를 잡고 로어의 얼굴을 무릎으로 찍었다.
빡!
얼굴에 친 가드가 자신의 얼굴을 가격.
정신을 차렸을 땐 동양인이 목줄기를 움켜잡으며 노려보고 있었다.
‘이 새낀··· 못 이긴다.’
몸을 부르르 떤 로어의 터진 입술이 슬쩍 벌어진다.
“내가 졌···.”
빡!
오른쪽 얼굴에 주먹이 꽂히고 또다시 구타가 시작되었다.
제이호커스들은 질린 얼굴로 한 마디씩 내뱉었다.
“저, 저러다 죽는 거 아냐?”
“가서 누가 좀 말려라!”
“네가 가 새끼야.”
맞아본 경험이 있는 다우니는 팔짱끼며 고개를 꺼덕거렸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그냥은 안 멈춰.”
“그럼?”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야지.”
“그게 뭔데?”
“로어도 이제 깨달았나 보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
쓰러진 로어가 막스의 바짓가랑이를 붙들었다. 확실히 적극적인 자세였다.
순간 둘의 움직임이 멈추고.
로어가 거친 숨을 내쉬며 말했다.
“내가··· 졌다고.”
“알았으니까 손 풀어.”
막스가 슬쩍 다리를 들자 로어가 손을 떼었다.
막스는 먼지 털듯 몸을 털어낸 뒤.
장내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다음 나오세요.”
제이호커스들이 수군거렸다.
- 지금이면 힘 빠지지 않았을까?
- 전혀 안 그래 보이는데.
- 가능할 것도 같지 않아?
- 그럼 니가 나가던지 새끼야.
이때 막스의 목소리가 다시금 울려 퍼졌다.
“아까 손든 사람들 어디 갔습니까.”
제이호커스들이 시선으로 손든 자들을 찾으려 바쁘게 움직였다.
- 쳐다보지마 새끼들아.
- 나 아니라고.
“다섯 셀 동안 안 나오면 앞으로 내 지시를 무조건 따르는 거로 알겠습니다.
그게 싫으면 로렌스를 떠나세요. 롸잇 나우!”
“......”
조용.
막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훈련에 동참하는 거로 알겠습니다.”
막스는 눈을 가늘게 떠 말을 이었다.
“맨 왼쪽 다우니, 기준.”
“?”
“오른손 번쩍 들고 기준 외칩니다.”
“기, 기준!”
“8열 종대로 헤쳐 모입니다. 실시.”
“?”
막스는 고개를 절레 저으며 포지션을 설명했다.
그런 다음 이번엔 5열 종대를 외쳤다.
“여기엔 버티칼과 호리젠탈도 구분 못 하는 병신들만 모였습니까. 기준.”
“기준!”
“이번엔 4열 종대 헤쳐 모입니다. 실시!”
우왕좌왕하며 몇 번을 거듭하고서야 8열 종대가 대충 만들어졌다.
막스는 흡족한 얼굴로 말했다.
“오늘은 첫날이니 이쯤하고. 내일 다시 모이도록 하겠습니다.”
막스는 젊은 제이호커스들을 해산시켰다.
우두커니 서서 뿔뿔이 흩어지는 미래의 자산들을 지켜봤다.
‘남북전쟁에서 활약하려면 지금부터 잘 다져놔야지.’
막스가 나이 어린 자들을 선호하는 이유다.
수년 내에 전쟁이 벌어지고 이후까지 함께하려면 25세 이전이 적당했다.
그렇다고 시기를 멀리 볼 필요도 없다.
앞으로 크고 작은 사건들이 우후죽순 터질 테니까.
‘경험 쌓기엔 충분하지.’
생각을 마친 막스는 등을 돌려 로어에게 다가갔다. 그는 멍하니 앉아 얼굴에 묻은 피를 닦고 있었다.
막스는 움찔하는 로어에게 손을 내밀었다.
남자들만의 끈끈함이랄까.
코피를 훔치며 일어난 로어에게 말했다.
“아깐 내가 흥분했다.”
“......”
“다른 건 몰라도 훈련 교관으로서 제 지시를 안 따르면 위험한 일이 생기거든. 내 가족이 글쎄···.”
지나가던 패트릭 다우니가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젠장, 나한테 했던 말이랑 똑같네.’
문득 막스의 말이 진심일지 의문이 든다.
억울한 마음도 들지만 한편으론 웃음이 나왔다.
다우니는 로어의 미래를 예상할 수 있었다.
막스에게 배우고 그와 함께하고 싶은 열망이 생기리라는 걸.
“가자. 오늘도 훈련해야지.”
“테스트에서 내가 일등 하려면 가야지.”
“꿈도 크네. 내가 일등이다, 새끼야.”
다우니와 동료들은 옥신각신하며 막스의 개인 훈련장으로 향했다.
*
막스는 레인과 함께 사무실로 돌아왔다.
피치와 조 짐 주니어는 자극을 받았는지 훈련장으로 간다며 사라졌다.
“마음과 마음이 통할 거라더니, 주먹을 말하는 거였군.”
“주먹이 마음을 움직이는 거죠.”
레인의 말에 막스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일부만 선택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마음이 바뀐 이유가 뭔가?”
“사람마다 능력치가 다르니 테스트를 해볼 생각입니다. 굳이 말하자면 샤프 슈터, 기병, 보병 외에 정비나 보급 쪽에도 역할을 할 수 있을 인원도 필요하니까요.”
“지원병까지 고려할 줄은 몰랐군.”
샤프 슈터는 샤프 라이플을 든 저격수.
기병은 말을 탄 병사, 보병을 말 그대로 리볼버나 칼을 들며 싸우는 병사들을 뜻한다.
그리고 이런 전투병들을 위한 지원병들은 반드시 필요한 인력이었다.
전쟁에서 공병, 정비병, 의병, 보급병, 통신병은 필수였으니까.
“대체 조선에서 뭘 하다 온 건가.”
“거기도 전쟁은 있었거든요.”
“자넬 보면 미국보다 훨씬 발전한 나라 같은데.”
“어메이징한 나라죠. 역사도 오래됐고.”
아이러니한 건 짧은 미국의 역사보다 산업과 무기가 뒤처졌다는 거.
물론 미국이라는 나라를 영국의 연장선이라 보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레인은 막스의 훈련과 조직운영 방식을 다른 제이호커스들에게도 적용하고자 했다.
“그럼 그렇게 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