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2화 (42/360)

“음.”

대화가 얼추 끝난 것 같은데 레인은 갈 생각을 안 한다.

막스는 의자에 앉아 고심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특유의 정돈되지 않은 머리카락은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영화의 미치광이 과학자를 연상케 한다. 그러고 보면 얼굴 생김새도 비슷한 것 같다.

차이가 있다면 머리숱이 많지 않고 백발이 아닌 짙은 갈색 정도랄까.

잠시 후.

“이만 가보겠네.”

레인이 싱겁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고민을 얘기할 단계는 아닌가 보다.

막스는 사무실 밖으로 나가는 레인을 보며 이런저런 추측을 했다.

‘찰스 의장 때문에 생각이 많은가 보군.’

앞으로 라이벌이자 견원지간이 될 둘의 삐걱거림이 시작 된 걸까.

제임스 헨리 레인은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할 인물이다. 피의 캔자스 이후에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테니까.

*

일주일 후.

“훈련은 벌써 끝난 거야?”

훈련장소에 세워진 천막에 홀리데이가 찾아왔다.

현재 그는 토피카 타운 협회장, 캔자스 입법 위원, 로렌스 마을 협의체 위원, 그리고 신생 정당을 만드는 창당 준비 위원장이다.

“세상에서 제일 바쁜 사람이 이런 누추한 곳엔 어쩐 일입니까.”

“훈련하는 거 보려고 왔지. 근데 이렇게 빨리 끝날 줄은 몰랐네.”

“끝나긴요, 다들 오레드 산에 올라갔어요.”

로렌스 마을 중심과는 3.2km.

고도는 316m의 낮은 산이다.

“산에는 왜?”

“왜긴요. 그냥 달리는 거죠.”

홀리데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소파에 몸을 묻었다. 그런데 얼굴엔 근심 걱정 기쁨 등이 오락가락했다.

“약 먹었어요? 표정이 왜 그래요.”

“말도 마. 머리가 터질 것 같거든.”

“순서대로 말해 봐요. 해결해 줄 테니까.”

막스의 말에 홀리데이가 고개를 훽 돌린다.

“진짜지? 약속했다.”

소파에서 일어난 홀리데이는 의자를 끌어 막스 책상 앞에 두었다. 그리곤 물을 한잔 따라왔다.

“할 말이 많은가 보네요.”

“암. 많고말고. 일단 첫 번째는 다음 달 창당하게 될 캔자스 자유주 정당.”

내달 5일.

캔자스 자유주 정당(Free-state party)의 창당대회는 토피카와 로렌스 중간 지점인 빅 스프링스의 컨벤션에서 열리게 된다.

정당에는 관심 없는 막스지만 홀리데이는 열성적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마지막 말만 들으면 전부 알 수 있는 정당이었다.

“그러니까 캔자스를 자유주로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당이지.”

“정당이 얼마 못 가겠네.”

“왜! 어째서!?”

“자유주가 되면 그다음은 할 게 없잖아요.”

“...... 그렇긴 하지. 뭐, 그건 차후 문제고.”

다음은 캔자스 준주의 주지사 문제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게 정상이지만 로렌스는 자체적으로 주지사를 선출한다.

당장 군대가 안 쳐들어온 게 신기하지 않은가.

“지금 찰스 의장과 레인 의원이 각축을 벌이고 있거든.”

“정당 대표도 마찬가지고요?”

홀리데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막스는 레인의 고민이 무엇인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홀리데이의 고민도.

“누가 될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찰스 의장이 유력하지 않을까.”

“내 생각도 그래요. 인디애나 하원이었지만 캔자스에선 레인의 인지도가 낮죠.”

홀리데이는 물을 홀짝인 뒤 말했다.

“문제는 레인의 반응이지. 여차하면 제이호커스들 데리고 나가면 어떻게 해?”

찰스 의장이 주지사가 되면 민병대인 제이호커스의 총사령관이 된다.

레인 입장에선 죽 쒀서 개 준 꼴이었다.

하지만 막스는 고개를 크게 저었다.

“절대. 그럴 일은 없습니다.”

“오오. 확신하는 걸 보니 뭔가 있나 보네.”

막스는 홀리데이를 보며 자신의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콕콕 눌렀다.

“감이 왔습니다. 감이.”

“...... 장난해?”

“잘 생각해봐요. 인디애나주 하원은 고작해야 2년입니다. 그리고 상원에 도전했다가 떨어진 경험도 있죠. 거기다!”

“깜짝이야.”

홀리데이가 눈을 흘기고, 막스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노예주 옹호론자들이 득실거리는 민주당 출신이 이곳에 왔을 때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뭔 생각을 했는데?”

“캔자스에 자신의 정치적 명운을 걸겠다는 거죠. 자유주와 노예주의 대립 틈에서 가능성과 기회를 본 겁니다. 이런 사람이 아직은 찰스 의장에게 밀린다는 걸 모를까요? 고작 자리 때문에 포기할까요?”

홀리데이는 고개를 살짝 비틀며 말했다.

“뭔가 좀 부족한데?”

“결정적으로. 제이호커스가 지금까지 한 게 뭐 있습니까? 뭔가 보여준 게 있어야 아쉬워서 붙잡기라도 하죠. 그리고 레인은 아직 제이호커스를 장악하지 못했습니다.”

“이건 꽤 그럴듯하네.”

“대통령에게 승인받지도 못한 주지사, 이제 막 창당한 신생 정당 대표.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특히 레인 같은 정치인은 더 먼 곳을 보고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고민한 내가 병신이었네. 왜 난 그런 생각을 못 했을까.”

몇 개의 주를 넘나들며 제이호커스를 끌어모은 레인. 고작 자리 때문에 떠난다는 건 그를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이었다.

“그럼 별일 없다 이거지?”

“쓸데없는 걱정입니다.”

“오케이. 그럼 다음은.”

토피카 이야기였다.

문제가 아닌 뿌듯함과 기뻐할 만한 내용이었다.

“다음 달에 토피카에 있는 주 의회 의사당에서 입법 회의가 열릴 거야. 명실공히 주도로 선포하는 날이지.”

“레콤프턴 보다 좀 느리네요.”

쇼니에 있던 가짜 입법부는 다시금 레콤프턴으로 옮겨 그곳을 주도로 선포했다.

포니, 쇼니, 로렌스, 토피카, 레콤프턴.

양 진영에서 지역을 이리저리 옮기며 주도를 선정하는 데 과연 사람들이 기억이나 할지 의문이다.

“아 참. 며칠 전 더글라스 카운티 보안관 임명된 거 알지?”

“사무엘 제퍼슨 존스가 됐다면서요.”

“카운티 내에 있는 마을 돌아다니고 있다더라. 인사도 할 겸, 지리도 파악한다고.”

“그래요?”

“로렌스 마을에 오면 어쩌냐. 너랑 사이가 껄끄럽잖아.”

껄끄러운 정도일까.

보자마자 총질 안 하면 다행이지.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존스는 여기 못 와요.”

“왜? 너 때문에?”

“아뇨. 제이호커스들이 모여있는 데다 자체 입법부에 주도까지 정한 로렌스에 미쳤다고 오겠어요. 사방이 적인데.”

몇 개월 전 사무엘 존스가 왔을 때랑은 상황이 바뀌었다. 막스가 아니어도 그를 죽일 사람은 마을에 깔려 있었다.

하지만 당장 못 오는 것뿐, 그가 로렌스에 올 땐 군대를 이끌고서다.

그만큼 사무엘이 보안관으로 임명된 건 시사하는 바가 컸다.

구체적인 날짜와 장소는 모르나 피의 캔자스 사건이 촉발된 첫 살인 사건이 곧 벌어질 터.

그 중심엔 더글라스 카운티의 보안관 사무엘 제퍼슨 존스가 있다.

‘팔은 나았으려나.’

- 와아아아!

막스가 생각하는 때, 멀리서 커다란 함성이 들려왔다.

“이, 이 소린 뭔데?”

“뭐긴요, 훈련병들 돌아오는 소리죠.”

천막 밖으로 나가는 막스를 홀리데이가 따라갔다.

“멋있는! 제이호커스! 많고 많지만!”

멍한 표정을 짓는 홀리데이를 놔둔 채 막스가 앞으로 나갔다. 어디서 났는지 시뻘건 각진 모자를 쓰며 소리쳤다.

“이 새끼들 목소리 봐라!”

‘!’

홀리데이가 갑자기 돌변한 막스를 보며 뒷걸음질 쳤다.

“고작 그거 뛰고 영감님 목소리 낼 거야! 어? 전부 바닥에 엎드린다.실시.”

“실시!”

“하나에 나는. 둘에 제이호커스.”

‘..... 쟤도 진짜 정상은 아니야.’

홀리데이는 막스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는 제이호커스들을 쳐다봤다.

그중 울먹이며 자신을 바라보는 두 쌍의 눈물 맺힌 눈을 볼 수 있었다.

‘피치, 조 짐 주니어?’

왜 사서 개고생을 하는걸까.

홀리데이는 당최 이해가 가질 않았다.

또다시 막스의 목소리가 장내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진다.

“그따위 체력으론 보더 러피안들이 뱉는 침도 못 막는다. 알겠나!”

“옙···!”

“목소리 봐라. PT체조 8번 온몸비틀기 실시.”

“으악. 그것만은!”

“방금 말한 놈 튀어나와!”

“18번 훈련병 네이선 로어!”

“18번 혼자만 온몸비틀기 20회 실시한다.”

‘시발 다시 붙어 볼까.’

땅바닥에 드러누운 로어는 온몸을 부들거리며 자신의 주둥이와 근육으로 쓸데없이 무거운 팔다리를 원망했다.

훈련병 총 82명.

8개 분대에 2개 소대로 이루어진 독립 중대. 아니 그렇게 될 예정이다.

‘슬슬 사무엘 존스와 2라운드를 준비해 볼까.’

막스의 눈이 반짝이며 더욱 가열차게 훈련병들을 몰아쳤다.

  캔자스 유혈 사태의 시작

최근 들어 보안관 사무실보다 훈련장 막사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막스가 중점을 둔 건 조직 체계를 잡는 것.

그리고 개인의 특성과 능력을 파악하는 일이었다.

때마침 피치와 존 듀들리라는 남자가 서류 뭉치를 한 아름 들고 막사를 찾아 왔다.

“이거 어디 놔둘까?”

“이리 가져와요. 다 같이 봐야 하니까.”

“셋이서?”

듀들리는 피치와 막스의 대화에 끼지않고 묵묵히 서류를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서류엔 훈련병들의 신상정보가 담겨있다.

여기에 더해 최근 끝낸 각종 테스트 결과와 개인의 특기 취미도 적혀 있었다.

“근데 시간이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문맹들이 많아서 일일이 설명해줬지. 대신 써주기도 하고.”

“역시 선생님은 다르군요.”

“애들 가르치는 게 백배 낫더라.”

피치가 고개를 절레 젓는 동안 듀들리는 앙상한 팔로 서류를 뒤적거렸다.

‘일 년 전 이막산을 보는 것 같네.’

피골이 상접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위태로운 몸. 훈련 도중 두 번이나 기절한 듀들리에게 막스가 물었었다.

- 못 먹어서 그래, 아니면 원래 그래?

- ...... 그냥 체질이야.

- 집으로 돌아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 아니야! 할 수 있어. 비겁하게 살긴 싫거든···.

- 집에 가면 비겁자인 거냐?

- 어. 나한테는 그래.

복잡한 사정이 있어 보이지만 훈련 때마다 기절하는 듀들리를 끌고 가기엔 무리가 있었다.

- 여기 오기 전에 뭐하다 왔어?

- 대학 다녔어. 일리노이에서···.

- 전공은?

- 의과대학···.

- 오오.

서부개척 시대의 의사가 되는 법은 어렵지 않다. 자기가 의사라고 말하면 그때부터 의사가 되는 거니까.

학위 없는 돌팔이들이 넘쳐났고, 심지어는 서양 최초의 제왕절개에 성공한 의사조차 의과대학에서 청소부로 일하던 자였다.

막스는 듀들리의 말을 한 번 걸러야 했다.

- 내 팔이 총에 맞았다. 어떻게 할 거야?

- 잘라야···.

- 됐고. 몇 년 배웠어?

- 2년.

- 의사는 체질에 맞아?

듀들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보면 결국 돈 문제였는데, 아버지가 죽고 8형제가 각자도생을 위해 제 살길을 찾았다고 한다.

듀들리 역시 학업은 포기하고 생계를 위해 일을 했다. 그러던 중 노예제 폐지론자들의 선동에 휘말려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다.

- 난 총 들고 싸우고 싶어. 다른 일은 절대 사양이라고.

- 대통령이 총 들고 싸워? 군의관은? 보급관은? 잔말 말고, 당분간 내 옆에서 돕도록 해.

서류 작업을 극도로 싫어하는 막스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

일을 편하게 하려면 글을 읽고 나름 머리가 굴러가는 인물이 필요했으니.

그렇게 해서 선생님이었던 피치와 의대생 듀들리를 임시 행정병으로 만들었다.

물론 낮에는 똑같이 훈련받는다.

막스는 여러 장의 종이를 나눠주며 입을 열었다.

“오늘 작업의 목적은 체력, 사격, 무기 정비, 그리고 머리에 든 지식도 고려해서 적합한 보직을 배치하는 거야.”

그렇게 몇 시간을 일하던 끝에 막스는 깜짝 놀라며 피치를 쳐다봤다.

“뭐야. 나이 이거 실화야?”

“나이가 뭐.”

“나랑 두 살 차이 밖에 안 나잖아. 난 무슨 20대 후반인 줄.”

“죽을래? 그게 말이 돼?”

솔직히 피치가 좀 삭아 보이긴 한다.

서양 여자들이 유독 성숙해 보이는 데다 젊다고 패션이 다른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충격이었다.

굳이 예의까지 차릴 필요는 없었는데···.

‘그나저나, 피치는 특기와 희망 보직에 탐정이라고 써놨네.’

지금 조직에서 탐정은 첩보 및 정보관리 쪽에 어울린다. 조만간 있을 사건을 위해 이쪽만큼은 미리 준비해둘 필요가 있었다.

막스는 서류를 뒤적거리며 제이호커스들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

젊은 제이호커스들이 마크를 중심으로 훈련을 하고 있을 때, 자유주 정당의 창단식과 더불어 토피카를 주도로 선포했다.

찰스 로렌스 로빈슨은 합법성이 결여된 주지사에 선출되고 정당 대표까지 맡았다.

제임스 헨리 레인은 이인자로 머물렀다.

하지만 이런 문제보다 둘의 갈등은 캔자스 헌법 제정으로 인해 발생했다.

논쟁의 요지는 흑인과 여성의 참정권 문제.

노예제 폐지는 동의하지만, 레인은 흑인의 투표권 부여에 반대를 주장했다.

카리스마 넘치고 단호한 레인은 상당한 지지를 얻어 자유주 정당의 창설부터 파벌이 생겨버린 것이다.

“미치겠네, 진짜. 시작부터 이러면 대체 어쩌자는 거냐고.”

천막을 찾아온 홀리데이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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