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3화 (43/360)

“뭘 그렇게 고민해요. 어차피 흑인 참정권은 너무 나가긴 했잖아.”

“설마 너도 그렇게 생각해?”

“민심을 살펴야죠. 노예제 폐지론과 흑인을 동등하게 대할 지는 또 다른 문젭니다.”

왜 문제냐며 홀리데이가 눈으로 물었다.

“가장 큰 건 일자리 문제에요. 캔자스에 투표권 가진 흑인들이 산다고 생각해 봐요. 갈수록 지위가 상승할 거고 결국 백인들의 밥그릇을 빼앗겠죠.”

“그럼 노예제 옹호론자들이 하는 거랑 뭐가 달라?”

“다릅니다. 어쨌든 이 일은 어차피 투표로 정할 거잖아요?”

홀리데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노예주에서 추진하는 헌법은 자신들의 의지대로 하지만 토피카는 참여자들의 의견을 존중했다. 말이 존중이지 노예주랑은 다르다는 걸 보여주려는 의미가 컸다.

“아무튼, 곧 헌법 제정에 들어갈 거고 투표가 끝나면 내년 1월에나 공표할 거야.”

“대통령이 수락하고 상원에서 찬성을 받아야 하겠군요.”

안타깝게도 이 토피카 헌법은 노예주가 만든 헌법과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수 년을 지지부진하게 끌게 되고. 결국, 헌법은 여러 번 이름을 바뀌게 되면서 혼란의 원인이 된다.

“아 그리고 민병대 무기 말인데.”

홀리데이는 제이호커스라는 말을 싫어했다.

뜻도 별로지만 찰스 의장이 주지사가 되면서 그들을 캔자스 민병대로 지칭했기 때문이었다.

“조만간 배로 들어올 거야. 미주리주에서 걸릴까 봐 책으로 포장해서 보냈다고 하더라고.”

“수량은요?”

“리볼버 120정, 샤프 소총이 50정이래.”

로렌스와 한참 떨어진 동부의 대도시에선 연일 노예제 폐지론을 주장하는 연설과 신문 칼럼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모인 기금은 무기를 사는 데 쓰이고 있었다.

무력투쟁이 불가피하다는 걸 깨닫고 피를 흘려서라도 캔자스를 자유주로 만들겠다는 의지.

홀리데이가 무기 수량과 도착까지 알 수 있던 건 이 주체가 로렌스 마을을 설립한 NEEAC(뉴잉글랜드 이민원조 회사)였기 때문이었다.

“놀라운 게 뭔 줄 알아? 무기를 보낸 이들 중엔 ‘톰 아저씨의 오두막’ 저자 해리엇 비처 스토우 부인도 있다는 사실이야.”

“오오, 그래요?”

막스는 짐짓 놀란 척 눈을 크게 떴다.

비단 그녀뿐 아니라 많은 저명한 인물들이 사비를 털어 무기 마련에 힘을 쏟았다.

‘이중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

로렌스와는 남동쪽으로 60km 떨어진 오사와토미(Oasawatomie) 마을.

원주민 오세이지 족과 포토와토미 족의 이름을 섞어 만든 이곳에 한 남자가 찾아왔다.

노예제 폐지론자들의 지도자.

강한 종교적 신념을 ‘평화’가 아닌 ‘폭력’으로 규정하고 캔자스를 유혈사태로 몰아간 핵심 인물.

존 브라운.

동부와 북부를 오가며 열렬한 활동을 벌인 그가 마침내 캔자스로 들어온 것이다.

통나무로 지어진 집.

존 브라운이 말을 멈춰 세우자 안에서 다섯 남자가 밖으로 나왔다.

일찌감치 이곳에서 대기하던 그의 양아들들이었다.

“먼 길 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일단 들어가자꾸나.”

존 브라운과 양아들들은 탁자에 앉아 그간의 일들을 말했다.

“오는 와중에 자금과 무기들을 마련하느라 좀 늦었다. 아마 우리가 보낸 것들이 조만간 로렌스에 도착할 거야.”

“반응들은 괜찮았나요?”

“모인 자들이야 다 같은 뜻이겠지. 내 말에 귀를 막은 놈들은 눈에 띄지도 않은 법이니까. 다만.”

존 브라운은 아들들을 둘러보며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캔자스의 상황에 따라 커다란 변화가 올 것은 분명하다. 만약 우리가 실패하면 더 많은 시간과 피를 쏟아야 할 터.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캔자스를 사수해야 한다.”

아들들은 비장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피는 섞이지 않았으나, 어릴 적부터 존 브라운의 사상에 깊이 노출된 탓에 이견이 없었다. 오히려 양아버지인 존 브라운을 존경하고 있었다.

이어서 큰아들 오웬 브라운이 캔자스 상황을 설명했다.

찰스 로빈슨이 주지사가 된 일부터 토피카와 자유주 정당에 이르기까지 꽤 긴 이야기가 이어졌다.

하지만 존 브라운의 관심사는 단연 제이호커스였다.

“주지사가 총사령관이 되는 거야 당연한 일이지. 허나 그건 직위의 문제지 실제로 조직을 움직이는 건 제임스 레인 일거야.”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훈련이나 조직 구상도 전부 그가 처리한다고 하더군요.”

존 브라운이 고개를 끄덕이는 때, 둘째인 프레데릭이 끼어들었다.

“혹시 로렌스 보안관에 관해 들어보셨어요?”

“동양인라는 이야기는 들었다.”

“지금 젊은 제이호커스들을 그 동양인이 훈련 시키고 있거든요.”

존 브라운은 눈에 이채를 띄우며 턱을 매만졌다.

“제가 그동안 신문을 쭉 읽어봤는데, 장난 아니더라구요.”

“지금 신문은 믿을 게 못 돼. 자유주든 노예주든 거짓 정보들이 판을 치니 말이다. 다만 레인 의원이 동양인을 높이 평가하는 건 사실인 것 같구나.”

존 브라운은 직접 보고 듣는 것만 진실로 여긴다. 노예들의 피폐한 삶과 처참한 죽음을 실제로 보았기 때문에 그의 신념을 굳건하게 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보지도 못한 동양인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며칠 뒤, 레인 사령관이 이곳에 올 게다. 제이호커스 일부를 이곳 오사와토미에 주둔시키고 우리는 그들과 함께 일을 진행하면 된다.”

“알겠습니다. 앞으로 바빠지겠군요.”

잠시 생각에 잠긴 존 브라운은 오웬을 보며 한 가지를 지시했다.

“내 편지를 줄 테니, 미주리주의 캘리 여관에서 바운서에게 전해주거라.”

“아, 잭슨 카운티의 역 차장이군요.”

존 브라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노예제 폐지론자인 그는 지하철도에도 깊숙이 관여하고 있었다.

심지어 조직에 관련된 자들은 존 브라운을 실질적 지도자로 여기고 있었다.

며칠 뒤.

존 브라운과 레인이 만났다.

말하던 중 막스에 관한 이야기 나왔지만 레인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 가르치는 데는 조금 소질이 있더군요.

존 브라운의 명성이 전국구라면 제임스 헨리 레인은 지역구 차원에 불과하다.

나름의 차이가 있기에 레인은 막스가 존 브라운의 관심에 벗어나길 바랐다.

‘데려가면 곤란하지.’

그런다고 막스가 움직일 것 같지 않지만, 그건 그것대로의 문제였다.

노예제 폐지론자들의 구심점.

유명 재력가와 정치인들의 지원을 등에 업은 존 브라운과 껄끄러운 관계가 되는 건 상당한 부담이 따랐으니 말이다.

*

나날이 늘어가는 제이호커스들.

로렌스를 중심으로 모여들었으나 그들은 노예제 폐지론자들이 개척한 마을로 흩어졌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유일하게 막스가 훈련 시킨 젊은 제이호커스들은 여전히 로렌스에 머물고 있었다.

- 자네가 심혈을 기울여 키운 만큼 외부로 나가면 안 되지.

제임스 헨리 레인의 말이었다.

찰스 주지사와 갈등이 있지만 막스 만큼은 둘의 의견이 일치했다.

- 막스 보안관이 하라는 대로 놔둡시다.

- 그렇게 합시다.

그리고 얼마 후 11월 21일.

로렌스에서 남쪽으로 23km 떨어진 히코리 포인트 근처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시작은 두 사람의 토지 소유권 주장이었다.

문제는 노예제 폐지론자를 노예제 옹호론자인 프랭클린 콜먼이 뒤에서 9번이나 총을 쏴 죽였다는 것.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글라스 카운티의 사무엘 제퍼슨 존스가 나섰다.

그리고 존스는 살인범인 프랭클린 콜먼의 정당방위를 인정했다.

- 등 뒤에서 9번이나 쏜 게 어떻게 정당방위가 될 수 있나! 보안관이 노예주 옹호론자 편을 들어준 게 분명하다!

- 이 새끼 체포해.

어이없게도 사무엘 존스는 살인범은 놔두고 강력하게 항의한 제이콥 브랜슨을 체포했다.

“미친 보안관 새끼! 당장 제이콥을 빼내야 합니다.”

“이건 명백한 도발이에요! 노예주에서 작심하고 벌인 짓입니다!”

의원들의 성토를 들으며 찰스 주지사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장내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민병대를 괜히 조직한 게 아닙니다. 평화는 이미 철 지난 이야기죠.”

찰스 주지사의 시선이 레인에게 향했다.

“민병대를 조직해 제이콥을 빼내도록 하죠. 레인 의원께서 이 일을 맡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곧 훈련의 성과를 보여줄 날이 온다더니 타이밍 한 번 기가 막히는군.’

주지사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레인은 막스를 찾아갔다.

“자네 말대로 때가 되었네. 준비하는 데 얼마나 필요한가?”

“1분이면 됩니다.”

마치 모든 걸 알고 있는 듯, 자리에서 일어난 막스는 천막 밖으로 나가 소리쳤다.

“집합이다, 새끼들아!”

“옛썰!”

8열 횡대로 집합하는 데 걸린 시간 10초.

“지금부터 훈련이 아닌 실전 상황이다! 본 교관을 실망시키는 분대는 없을 거라 믿고. 일명 제이콥 구출작전을 가동한다!”

“옛썰!”

눈을 껌뻑거리던 레인.

패기 가득한 젊은 제이호커스들을 보며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막스의 뒤통수를 보며 생각했다.

‘오늘따라 조선이라는 나라가 미치도록 궁금하군.’

한편, 막스와는 별개로 제이콥 구출 작전에 나서는 자들이 있었으니.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존 브라운이었다.

“신성한 의무를 이행할 때가 되었다. 폭력은 폭력으로. 피는 피로 응답한다.”

양아들들과 제이호커스.

그리고 그 뒤에는 뭔가 찝찝한 표정을 짓는 바운서 콜린이 서 있었다.

작가의말

존 브라운의 등장으로 

본격적인 피의 캔자스로 돌입했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관심 가져주시고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매번 댓글 남겨주시는 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구요.

즐겁고 행복한 밤 되시기 바랍니다.

  작전은 훌륭했다

“각 분대장은 지금 즉시 막사 안으로 모이도록!”

“옛썰!”

레인에게 지휘권을 부여받은 막스는 제이콥 브랜스 구출을 위한 회의를 열었다.

분대장은 총 8명.

아직 소대장까지 임명하진 않았다.

‘올라가는 맛이 있어야지.’

적당한 때에 계급도 부여할 예정이다.

무한 경쟁으로 몰아넣어 열정을 끌어 올린다. 물론 이에 대한 부작용은 있다.

과열 양상을 보이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테니 적절한 조절은 필요했다.

탁자 위에 지도를 펼친 막스는 그 위에 작은 돌들을 올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사무엘 존스가 제이콥 브랜슨을 잡은 위치가 바로 여기. 그리고 이쪽은 존스의 보안관 사무실이 있는 레콤프턴.”

붙잡힌 제이콥 브랜슨을 중심으로 11시는 레콤프턴, 12시는 막스가 있는 로렌스 방향이다.

“원래대로라면 11시로 갔어야 정상인데 이놈들의 경로가 2시 방향으로 향하고있다. 이유를 아는 사람?”

분대장들이 서로 의견을 내지만 가장 정확한 건 피치였다.

“레콤프턴으로 향하는 길목에 로렌스가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존스는 미주리주의 영향력이 미치는 와이언도트로 향하는 거고요.”

사실 존스가 로렌스를 피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막스가 있기 때문이었다.

방해가 들어올 게 빤하니 차라리 미주리주 경계 부근의 와이언도트를 택한 것

이다.

피치는 원인이 막스 때문이라는 알고 있지만 굳이 이 이야기를 언급하진 않았다.

“제대로 봤다, 피치.”

언제부턴가 말이 편해진 막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턱을 매만졌다.

원래 역사대로라면 레콤프턴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제이콥을 구출해야 한다.

여기엔 존 브라운과 사무엘 뉴잇 우드라는 자가 이끄는 제이호커스들의 활약이 있었을 터. 이 일로 영웅이 된 사무엘 뉴잇 우드는 캔자스 상원의원까지 된다.

물론 막스의 개입으로 개털이 되지 않을까 싶지만.

어찌 됐든.

‘존스가 목적지를 바꿨다 이거지.’

이미 존스 일행이 절반 이상 이동했기 때문에 중간에서 제이콥을 탈취하기엔 불가능한 상황이다.

막스의 신경을 건드리는 건 미주리주에서 건너올 병력. 와이언도트에 도착한 존스는 미주리주 잭슨 카운티에서 병력을 조달할 게 분명했다.

막스가 터커를 쳐다봤다.

주지사 경호를 함께했던 막스보단 한 살 어린 제이호커스. 목장에서 자라 어릴 때부터 말을 탔다더니 40km를 30분 만에 주파한 능력을 보였었다.

다만 전투센스는 꽝이라 그에게 통신병이라는 보직을 주었다.

“터커 분대장은 와이언도트의 그린터 플레이스로 간다. 가서 모세 그린터를 만나 내가 준 편지를 전해.”

최근 늘어난 물류 때문에 그린터 플레이스와 로렌스를 오고 가는 짧은 배편이 증설되었다.

하지만 그 배편이 오늘도 아니고 굽이진 캔자스강을 생각하면 속도 측면에서 효율성이 떨어졌다.

그 때문에 막스는 그린터 플레이스까진 육로를 이용하고 와이언도트까진 배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80명이나 되는 병력이 이동하면 눈에 띄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문제는 델라웨어 마을 의장이자 강성 노예제 옹호론자였던 모세 그린터가 이 일을 도와줄까였다.

‘최근 행적을 보면 가능성은 있어.’

두 달 전 그린터는 델라웨어 마을을 떠나 자신의 사업체인 그린터 플레이스 페리 인근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2층 벽돌집.

이곳에서 그린터는 노예제라는 정치적 투쟁에서 한발 물러나 살고 있었다.

물론 그러기에 더욱 거절당할 수 있다.

자칫 배신자로 낙인찍힐 수 있으니 말이다.

‘구실을 만들어 줘야지.’

막스는 빠르게 편지를 쓴 뒤 터커에게 건네줬다.

“최대한 빠르게 통신이 이루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옛썰!”

그린터 플레이스까지 46km.

터커는 분대원을 이끌고 가장 먼저 목적지로 향했다.

이후 막스는 피치에게 모종의 지시를 내렸다. 그렇게 터커는 그린터 플레이스로 피치는 옷을 챙겨 분대원을 이끌고 와이언도트 마을로 향했다.

남은 건 6개의 분대.

“무장 갖추고 30분 뒤 집결하도록.”

분대장들이 막사 밖으로 나가고 곧이어 쩌렁쩌렁한 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드디어 실전이다, 새끼들아! 2분대 집합!”

“3분대 동작 봐라! 준비 시간 30분이다. 늦는 놈들은 각오해!”

‘이런 건 겁나 빨리 배운단 말야.’

혀를 차던 막스는 멀뚱멀뚱 서 있는 듀들리를 쳐다봤다. 소외된 기분인지 얼굴이 우울해 보인다.

“듀들리, 네가 잘하는 걸 준비해. 30분 후에 보자고.”

“내가 잘하는 거?”

“부상자도 생각해야지.”

“아! 옛썰!”

얼굴이 환해진 듀들리는 곧바로 자신의 천막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그곳엔 실습용으로 가지고 다니던 각종 의약품과 도구가 있었다.

듀들리 역시 자신의 미래 직업을 돌팔이로 생각하고 있었다. 서부개척 마을이라면 굳이 라이센스가 필요 없으니까.

‘확실히 혼자 하는 것보단 편하구나.’

제이호커스들은 정식 군인이 아닌 자발적으로 모인 민병대원들이다.

멕시코 전쟁이나 인디언들과의 전투에 참전한 자들 외에는 평범한 이들이었다.

25세 이하의 제이호커스들은 전쟁 경험 없이 신념만으로 모인 자들. 하지만 3개월의 훈련 끝에 군인으로서의 틀이 갖춰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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