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자들이 있으면 전부 증기선에 태워.”
“옛썰!”
막스는 다른 분대원들에게도 지시를 내린 뒤, 존 브라운에게 말을 건넸다.
“말은 버리고, 나룻배에 20, 나머지를 증기선에 태워야 합니다.”
“아, 알았네.”
존 브라운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성공한 작전을 뒤늦게 끼어들어 방해했으니. 민망하고 미안한 감정이 없으면 그게 어디 사람인가.
게다가 수하들에게 적재적소에 지시를 내리고,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막스의 지시에 따라 선착장에 있던 인원들은 나룻배와 증기선으로 분산되었다.
배가 출발하자 보더 러피안이 달려오지만, 배 위에서 총알을 쏘는 탓에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었다. 결국, 그들은 와이언도트 마을로 돌아가는 걸 택했다.
위기가 사라지자 존 브라운은 어깨에 맞은 총상으로 시름시름 앓고 있는 오웬을 찾아갔다. 형제들 역시 비통한 얼굴로 오웬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착잡한 마음이든 존 브라운이 막스에게 다가갔다.
“마을에 도착하려면 멀었나?”
“도중에 배에서 내려 말로 갈아탈 겁니다.”
“흠.”
존 브라운의 표정을 살피며 막스가 물었다.
“마음이 급해 보입니다.”
“자네와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할 만큼 마음이 편치 않네. 총상은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더 악화될 테니 말일세.”
막스는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더 많은 희생자가 생길 수도 있었습니다. 작전에 성공하고 죽었다면 꽤 억울한 일 아닙니까?”
존 브라운의 얼굴이 벌겋게 변하였다.
“내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고 있네. 자네와 부대원들에게 민폐를 끼쳐 미안하게 생각하네.”
역사적인 인물이라 그런가 사과에 실린 무게감이 남다르다. 존 브라운에게 흥미를 느낀 막스가 입을 열었다.
“마을에 도착하기 전에 응급처치는 할 수 있을 겁니다.”
“음?”
막스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듀들리. 언제까지 준비만 할 거야?”
“가, 갑니다!”
어디선가 회색 앞치마를 두른 듀들리가 튀어나왔다. 그는 가방을 끌어안은 채 오웬에게 달려갔다.
존 브라운은 놀라며 물었다.
“자네 부대엔 군의관도 있나?”
“그래야 제대로 된 조직 아니겠습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솔직히 듀들리의 실력이 걱정되긴 했다.
이는 당사자인 오웬과 형제들도 마찬가지. 비쩍 마른 데다 뭔가 어리숙해 보이는 듀들리를 믿기 힘들었다.
“그냥··· 로렌스에 도착하면 다른 의사한테 치료받는 게 낫겠어.”
“그, 그래도 응급처치는 해두는 편이 좋아요.”
막스와 존 브라운은 듀들리가 하는 걸 지켜봤다.
옷을 찢고 알코올로 총상 주변을 닦아내는 모습을 보며 막스가 넌지시 물었다.
“팔 잘라야 해?”
“!”
오웬이 기겁하며 몸을 부르르 떤다.
상처를 유심히 지켜본 듀들리가 다행히 고개를 저었다.
“팔은 안 잘라도 될 것 같아요. 사정거리를 생각하면 총알이 깊숙이 박히지도 않았고, 각도를 봐선 뼈보다 근육 조직에 손상을 줬을 겁니다. 더 파고들기 전에 빼야 하니까, 몰핀부터 주사할게요.”
듀들리의 말투가 갑자기 차가워진 기분이다. 어떻게 보면 침착해진 것도 같고.
‘설마 피보면 미치는 그런 건 아니겠지?’
응급처치만 한다던 듀들리는 그 이후까지 멈추지 않았다.
‘어쨌든, 결과만 좋으면 군의관 확정이다.’
막스는 웃으며 듀들리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런 뒤엔 뭐를 찾으려는지 눈동자가 바쁘게 움직였다.
그리고 마침내.
‘어이가 없구만.’
배 구석에 숨어있는 콜린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막스는 굳은 얼굴로 그에게 다가갔다.
존 브라운
다가오는 막스를 본 콜린은 흠칫하며 시선을 외면했다. 그리고는 등을 돌려 이유 없이 갑판의 벽을 긁어댔다.
“나한테 할 말이 있을 텐데.”
“응? 진짜 막스 보안관이었어? 난 또 누군가 했네.”
콜린은 세상에 이런 일이 있냐며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눈을 가늘게 뜬 막스는 코웃음 치며 손바닥을 펴 내밀었다.
“일전에 준거 내놔요.”
“그건 집에 놔두고···.”
“뒤져서 나오면 개당 총알 한 방입니다.”
막스가 총에 손을 가져다 대자 질겁한 콜린이 손사래를 쳤다.
“워워, 생각해보니 가져왔네.”
“같이 죽자고 적군 끌고 온 거. 다른 사람이었으면 벌써 이마에 총알 박혔어요.”
“난··· 특별한 거네?”
콜린은 자신의 이마를 문지르며 비굴한 웃음을 보였다. 그러면서 품속을 뒤져 MJ가 새겨진 탄두 하나를 내밀었다.
“두 개 전부 내놔요.”
“어째서!?”
“구해준 목숨이 몇 갠데.”
‘하, 이 사기꾼 새···.’
콜린은 자신이 한 짓을 떠올리곤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마음은 쓰리지만 탄두를 건네줄 수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둘이 가까운 모양이군.’
막스와 콜린을 지켜보던 존 브라운이 헛기침하며 끼어들었다.
“이 일은 모두 내 잘못이네. 너무 콜린을 탓하지는 말게.”
“탓하긴요. 서로 빚진 거 청산하고 있었습니다.”
“강제 청산 당한 거죠, 뭐.”
콜린이 입을 삐죽 내미는 사이, 존 브라운은 금처럼 반짝거리는 탄두를 쳐다봤다.
“특이한 총알이군.”
“포트 리븐워스에 납품하고 있는 구리로 도금된 탄두죠.”
막스는 이니셜이 새겨지지 않은 탄두를 존 브라운에게 내밀었다.
“자네가 만들었나?”
“정확히는 제가 주문을 의뢰했죠. 만든 건 리븐워스의 대장간입니다.”
존 브라운은 굳이 구리도금을 한 이유를 물었다. 막스에게서 장단점을 들은 뒤엔 흥미로운 얼굴로 물었다.
“캔자스 민병대들은 이 총알을 안 쓰는 것 같던데.”
“돈 주고 사면 쓸 수 있습니다.”
존 브라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자유주의 기금은 무기 사는 데 사용되고, 총알은 쉽게 구할 수 있기에 현지에서 조달한다. 구리 탄두의 이점이 확실하다면 안 쓸 이유가 없었다.
“어찌 됐든, 나 역시 자네에게 빚을 졌으니 기회가 되면 꼭 갚도록 하겠네.”
“워. 존, 방금 큰 실수한 겁니다.”
콜린은 얼른 취소하라며 존 브라운을 쳐다봤다. 하지만 이미 막스의 입꼬리가 올라가고 있다.
‘늦었다.’
콜린은 고개를 젓고 막스는 미소를 머금으며 존 브라운에게 말을 건넸다.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제가 이런 건 안 까먹는 성격이라서요.”
“나 역시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네.”
옅은 미소를 짓는 존 브라운은 갑자기 생각난 듯 막스에게 물었다.
“그건 그렇고. 사무엘 존스를 풀어줬다고 들었네.”
“맞습니다.”
“이유를 알 수 있나?”
“죽여봐야 이득은커녕 문제만 커질 테니까요.”
존 브라운이 팔짱을 낀다. 할 말이 많다는 표현이었다.
“노예주들의 꼭두각시는 곧 또 다른 일을 벌일 걸세. 아마 제2의 제이콥 브랜슨이 나타나겠지. 자넨 그자를 죽였어야 했네.”
“존스를 죽이면 그를 대신 할 보안관은 널렸습니다. 오히려 존스의 죽음을 노예주는 바랄지도 모릅니다. 이걸 빌미로 전쟁을 벌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존 브라운은 막스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전쟁을 피할 이유가 있나?”
담담하지만 투쟁으로 가득 찬 눈빛이다.
‘이런 사람이었지.’
문득 존 브라운과 관련된 일화가 떠오른다.
동부의 유명한 프레데릭 더글라스라는 자가 있다.
탈출 노예였던 그는 자유 흑인이 되어 탁월한 웅변가, 사회 개혁가, 작가 그리고 정치가로서 흑인들의 지도자로 우뚝 선 인물이었다.
연설가로서 비폭력주의였던 프레데릭은 어느 날 존 브라운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날 밤, 자신의 신념이 흔들리고 폭력의 필요성을 인지하게 된다.
로렌스로 들어오는 무기 역시 그가 기금을 마련해 보낸 물량이 적지 않다.
여기서 핵심은 폭력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존 브라운의 논리가 꽤 그럴듯하다는 점이었다.
더욱이 효율적으로 남을 죽이는 훈련만 거듭해 온 막스가 존 브라운의 논리를 깨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설득당하기 전에 허를 찌르자.’
존 브라운은 막스에게 필요한 존재다.
그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미래에 영향을 미치니 막스는 그를 날개 삼아 날아갈 생각이었다.
단, 그의 과격한 행동은 조절할 필요가 있다. 그 방법은.
'조언이 먹힐 만큼 사이가 좋아야겠지.'
“누가 피한다고 했습니까. 저는 전쟁이 터지길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만.”
“음?”
존 브라운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막스를 쳐다본다.
처음 본 사람들은 대부분 그의 행동에 비판적이다. 과격하고 난폭하며 피를 쫓는 하이에나라 욕하는 자들도 있었으니까.
더욱이 무혈로 제이콥을 구하고 존스까지 놔준 막스라면 더욱 자신의 입장과는 반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전쟁을 즐긴다?’
존 브라운은 좀 더 흥미로운 눈빛으로 막스를 쳐다봤다.
“존스를 풀어준 건 아직 로렌스의 병력이 미주리주에 미치지 못해서일 뿐. 전쟁이 의욕만으로 된다면 저는 지금 미주리에서 총질을 하고 있을 겁니다.”
존 브라운의 입가가 씰룩거렸다.
마음에 드는 말이다.
하지만 아직은 입장의 차이가 있었다.
병력이 모자란 건 자유주가 덜 깨어났기 때문이다. 이를 촉진 시키려면 그만한 충격이 필요하고, 방법은 폭력뿐이었다.
존 브라운이 입을 오물거리며 말하려 할 때, 막스가 선수를 쳤다.
“물론, 병력이 어떻든 변화는 거저 얻는 게 아니죠. 역사의 흐름은 강물처럼 저절로 흘러가지 않을뿐더러, 뚝방을 쌓고 물길을 돌리려는 방해자들로 넘쳐나지 않겠습니까.”
“...... 그렇지.”
존 브라운이 고개를 끄덕이고, 탄력받은 막스의 말이 이어졌다.
“한낱 땅을 얻으려 전쟁도 벌이는 판에, 피부가 검다는 이유만으로 고통받는 자들을 위해 싸우는 전쟁이 더 값지지 않겠습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네.”
“만약 인디언에 관해 묻는다면 그들 역시 피해자라고 말하겠습니다!”
“허, 인디언까지 생각하다니.”
존 브라운이 감탄하듯 묻는다.
“혹, 노예 해방만큼이나 인디언에게 관심을 쏟지 않냐고 비난한다면 궁색한 변명밖에 할 수 없겠지요. 저는 그렇게 순서를 정했고, 노예 해방 역시 인디언들의 인권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하니까요.”
“궁색한 변명이 아니라 그 말이 맞네. 나를 공격하려는 자들이 곧잘 써먹는 방법이지. 결국 노예 해방은 평등의 문제일세. 남자와 여자, 아이와 어른, 흑인과 백인, 그리고 인디언까지 우린 똑같은 인간 아닌가.”
“동양인이 빠졌습니다.”
“이런.”
“괜찮습니다.”
존 브라운의 큰 입이 더욱 커진다.
동지를 만난 듯 막스의 어깨를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가슴이 끓어 오르는구만. 자네를 만나서 영광이네.”
“저야말로 영광이지요.”
존 브라운의 말처럼 그는 인디언들에게까지 존경받는 인물이었고. 인종, 성별과 나이를 불문하고 평등을 주장했다.
폭력주의자인 테러리스트, 혹은 평등주의적 가치를 꿈꾸는 이상주의자.
후대의 엇갈린 평가에도 존 브라운의 외투는 말콤X에게로 이어졌으니.
‘이 평가는 바꾸면 된다.’
아직은 폭력의 잔인함이 물들기 전.
광기의 집단 학살을 막는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한편, 존재감 없이 슬쩍 빠져있던 콜린은 갑판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늘 남을 설득하던 존 브라운이 막스의 말에 빠져드는 모습은 꽤 신선한 광경이었다.
‘참, 신기한 놈이야.’
콜린은 분대원들에게 지시하는 막스를 보며 그의 말을 곱씹어봤다. 그럴수록 자기 일에 회의가 들고 머리가 복잡해졌다.
*
제이콥 브랜슨이 로렌스 마을에 도착하자 마을 사람들의 환호가 이어지고 이내 막스와 분대원들인 제이호커스를 칭송했다.
“와, 살다 살다 이런 대접을 다 받네.”
“이게 꿈인가 싶다.”
젊은 제이호커스들의 가슴이 또 한 번 웅장해진다. 영웅이 되는 길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이런 일이 익숙한 듯 담담한 막스를 보며 열망한다.
앞으로도 함께 하기를.
“총을 쐈으면 다음은 뭐다? 총기 손질이다, 새끼들아! 훈련장으로 집합까지 5분 준다!”
‘헹, 시발···.’
함께하기는 개뿔. 제이호커스들이 똥씹은 표정으로 자신의 처소로 흩어졌다.
듀들리는 부상당한 오웬을 대상으로 응급처치를 빙자한 실습을 끝냈다.
그래서인지 이전처럼 맥아리없는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뭘 긴장하고 그래.”
“내, 내가 잘못했으면 어쩌나 해서.”
로렌스의 병원으로 향하는 듀들리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치료에 확신이 없던 것이다.
하지만 쓸데없는 걱정이다.
오웬의 상처를 살펴본 의사가 듀들리를 칭찬했다.
“배에서 하긴 어려웠을 텐데. 자네 치료 덕에 상처가 덧나고 번지는 건 막았네. 물론 경과는 지켜봐야겠지만 큰 문제는 없을 걸세.”
오웬과 형제들은 듀들리에게 감사를 전하고, 존 브라운은 막스에게 다시금 악수를 청했다.
“여러 번 말하지만. 도움이 필요하면 꼭 말해주게.”
“이런 건 여러 번 말씀하셔도 됩니다.”
‘그래야 잊지 않지.’
병원에서 나온 존 브라운은 찰스 주지사와 레인, 그리고 입법부 의원들과 만나 회의를 열었다.
막스는 훈련장으로 돌아가 총기 손질하는 대원들을 지켜봤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오레드 산을 보며 요새를 떠올렸다.
역사대로라면 존스는 대통령에게 정식으로 임명받은 캔자스 준주의 주지사 윌슨 섀년을 찾아갈 것이다.
그리고 이번 사건을 반란으로 몰고 가 민병대 지원을 요청할 터. 노예제 옹호론자인 섀넌은 흔쾌히 존스의 요청을 수락한다.
하지만 섀넌이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존스가 민병대를 캔자스가 아닌 미주리주 보더 러피안으로 채워버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존스는 그들을 이끌고 로렌스로 쳐들어온다.
일명 ‘와카루사 전쟁’이다.
토지 분쟁으로 인한 살인, 이어진 제이콥 브랜슨의 구금. 이는 ‘와카루사 전쟁’을 피날레로 막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