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섀넌 주지사가 미치지 않고서야 군대가 웬 말입니까!”
“로렌스를 잿더미로 만들려 작정한 것 같은데, 그냥 당하고만 있을 순 없습니다!”
“그래도 일단 대화부터 시도해야죠. 승산 없는 싸움을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대화가 통할 놈들이라면 저렇게 쳐들어 왔겠습니까?”
막사 안에 고성이 오고 가고 생각이 많은 찰스와 레인은 좀처럼 입을 떼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둘의 시선이 약속이나 한 듯 막스를 향한다.
‘표정을 보면 뭔가 있어 보이는데.’
레인이 입을 떼려는 때, 시선이 마주친 막스는 옆에 있는 존 브라운에게 슬쩍 말을 건넸다.
그리고 잠시 후.
자리에서 일어난 존 브라운이 장내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좀 더 확실해지면 말하려 했는데, 아무래도 지금 해야겠군요.”
사람들의 시선이 존 브라운의 입에 쏠린다.
“얼마 전 포트 리븐워스의 에드슨 섬너 사령관을 만났습니다.”
순간 장내가 조용해졌다.
“지금의 사태를 대비해 미리 도움을 요청하고자 찾아갔는데.”
“오오!”
“구체적인 내용은 밝힐 수 없지만, 당시 섬너 대령의 긍정적인 대답을 들었습니다. 고로 지금 북쪽에서 다가오는 군인은 적이 아닌 아군일 가능성이 큽니다. 절대 그들을 적대시하면 안 됩니다.”
회의장의 분위기가 급변하며 얼굴은 절망에서 기쁨으로 변해갔다.
“역시, 존 브라운입니다! 어찌 이걸 예상하고 준비를 했단 말입니까!”
들뜬 분위기 속에 레인은 존 브라운보다 막스를 집중했다.
‘이번엔 존 브라운에게 선물을 준건가.’
자신은 뒤로 빠지고 남을 띄워주는 이유.
-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십시오.
이제는 존 브라운이 탐이나는 모양이다.
어린 나이에 정세를 판단하는 명석한 두뇌와 전략을 실행할 수 있는 전투력까지 보유한 남자. 하지만 동양인.
이 나라 이 땅에선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뒷배의 역할이 뭔지 알 것도 같고.’
레인이 실소를 머금을 때, 찰스 총사령관이 존 브라운에게 질문을 던졌다.
“사령관에게 긍정적인 답을 들었다면서, 왜 아군인 건 확신하지 못하는 겁니까?”
“언제든 상황은 변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를테면 우리가 먼저 총을 쏘면 피해자는 보더 러피안이 될 수 있는 거지요.”
“저런···.”
“대치국면이 지속 되면 사령관이 개입하여 결론을 내줄 것이고, 전쟁이 일어난다면 시작한 쪽에 책임을 물으려 할 겁니다.”
그때까지 아군임을 확신할 순 없다는 말이다.
“그럼 적이 총 쏠 때까지 기다린 다음에야 끝이 난다는 얘깁니까?”
“그러다 누가 죽으면요?”
존 브라운은 그들을 노려본다.
“다들 죽을 각오로 임한 거 아닙니까? 이제 와서 그걸 걱정하다니요.”
“......”
“공격하는 놈들과 맞서 싸우면 됩니다. 그나마 북쪽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이득 아닙니까.”
지금까지 존 브라운과는 다른 방식이다.
말하는 자신조차 뭔가 찜찜한 기분을 느낄 정도였으니까.
‘솔직히 나라면 선공을 택했겠지.’
어쨌든, 막스의 말은 일단 따르고 보는 존 브라운이었다. 결과가 궁금하고,
이를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으니 말이다.
회의가 끝나고 레인이 막스에게 물었다.
“군이 어떻게 움직일 것 같나?”
“사령관만이 알겠죠.”
“사실 난 좀 비관적이네. 구경만 할 뿐 군은 중재자의 역할에서 벗어나 자의적인 판단은 하지 않는단 말이네.”
전직 군인인 레인은 그들의 생리를 잘 알고 있다.
막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켜 봐야죠. 움직일지 안 움직일지는.”
전쟁이 일어나면 결정은 섬너 사령관의 몫이다.
구경만 할지, 혹은 막스가 깔아준 판을 이용할지는 두고 볼 일이었다.
보더 러피안의 진격을 눈치챈 이후.
로렌스 마을 곳곳에 진지가 구축되었다.
폭 2m 높이 1m로 흙 제방을 쌓았다.
집집마다 지원병들이 가득 찼고 프리스테이트 호텔은 막사로 이용되었다.
이 기간에 모여든 지원병까지 합치면 대략 800여 명이 로렌스를 사수하고 있었다.
보더 러피안 진영.
캠프에 세워진 막사에 애치슨과 수뇌부들이 머리를 맞대었다.
그들 역시 북에서 접근한 군대에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하지만 애치슨은 동요하지 않았다.
“의도가 어떻든 군은 중재자일 뿐, 직접 나서지는 않을 게야.”
“그럼 신경 쓸 필요없겠군요.”
“아니지. 중재니 뭐니 헛소리하는 것 자체가 신경 쓰이는 일이지.”
애치슨의 입장에서 대치상황을 해결하려는 포트 리븐워스는 훼방꾼이다.
만약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미주리로 돌아간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 평화는 개뿔. 이럴 거면 왜 온 거야.
선동해서 모은 자들은 이런 허탈감을 느낄 테고, 이후론 애치슨의 말은 두 번 다시 먹혀들지 않을 것이다.
“존스, 너라면 어떻게 하겠나?”
“군이 개입하기 전에 공격할 겁니다.”
“흠. 그러려면 우리에게도 그럴듯한 명분은 있어야지.”
제이콥 브랜슨이 로렌스에 없으니 기존 명분은 유효기간이 끝나버렸다.
“새로운 게 필요한데. 그러려면 놈들에게 무리한 걸 요구해야겠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 말씀이시군요.”
존스의 말에 애치슨이 한쪽이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20m 폭의 좁은 와카루사 강.
이를 두고 양 진영 대표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시작은 제이콥 브랜슨을 빼앗아간 것이었으나 이내 첨예한 신경전이 펼쳐졌다.
대표들 뒤에 멀찌감치 있던 막스도 그냥 구경만하진 않았다.
강 너머의 사무엘 존스와 치열한 눈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저 빌어먹을 놈이 뭘 꼬나보고 지랄···.’
사무엘 존스가 속으로 욕을 할 때, 막스가 입을 벙끗거린다.
‘저 새끼가 뭐라는 거야.’
존스는 이를 부득 갈며 막스의 입 모양을 쳐다봤다.
‘뻑큐, 썬오브비···. 저 개새끼를 그냥.’
울화가 치민 존스가 똑같이 입 모양으로 응수하려 할 때, 이번엔 막스가 자신의 오른팔을 잡고는 아픈 표정을 지었다.
부러진 팔에 대한 조롱이었다.
이후에도 막스의 도발 행위는 계속되었다.
존스의 얼굴이 벌게지고 눈가는 분노로 푸들거렸다. 하지만 이내 가슴을 진정시키며 비웃음을 날린다.
‘회담이 끝난 뒤에도 그럴 수 있을지 두고 보자고.’
생각만 해도 즐거운지 존스의 입가에 미소마저 흐른다.
이를 본 막스는 입맛을 다셨다.
‘새끼. 각성했나 보네. 김빠지게.’
마음을 다잡은 존스는 놀려도 재미가 없었다. 막스는 구름처럼 모여있는 보더러피안들로 시선을 돌렸다.
노인, 여성, 아이들, 인디언까지.
‘존 브라운이 말하는 평등이 저 속에 있구나.’
막스는 혀를 차며 생각했다.
아프리카 반군들이 써먹었던 민간인을 앞세운 비열하고 사악한 전략.
다만 틀린 점이 있다면 애치슨은 민간인들을 뒤로 빼두었다.
작전은 성공해도 거센 후폭풍을 생각하면 감히 시도하기 어려운 작전이었으니.
양날의 검이라는 걸 애치슨은 알고 있었다.
혹은 그 정도로 타락하진 않았거나.
막스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회담은 과격해지고 애치슨의 목소리가 막스의 고막을 두드렸다.
“긴말할 것 없이 협의 내용은 다음과 같소! 첫째, 와이언도트 마을을 습격하고 제이콥 브랜슨을 빼간 자들을 우리에게 넘길 것!”
막스의 눈이 가늘어지며 애치슨을 향한다.
“둘째, 로렌스에 모인 제이호커스들을 해산할 것. 셋째, 로렌스 보안관의 직위를 해제시키고 현 더글라스 카운티의 보안관을 인정할 것. 넷째.”
“그만!”
얼굴이 벌게진 찰스가 분노를 터트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하시오! 그런 억지는 결단코 받아들일 수 없소!”
“그럼 협상은 결렬인 거지.”
“나 또한 그딴 협상은 응할 생각이 없소!”
원래의 역사대로라면 와카루사 전쟁은 한 명의 희생자가 생기면서 끝나버린다.
로렌스를 돕기 위해 달려온 자가 보더 러피안에 의해 살해당한 사건.
이를 계기로 협상이 이루어지고 와카루사 전쟁은 싱겁게 끝이 나버린다.
‘과연 그렇게 흘러갈까.’
막스가 생각하는 때.
“회담은 결렬되었으니 각오들 하시오!”
애치슨이 엄포를 놓은 뒤 등을 돌렸다.
존스는 막스를 향해 침을 뱉곤 멀어져갔다.
이렇게 회담이 결렬된 때.
타아아앙!
타아아앙!
먼 곳에서 두 발의 총성이 들려왔다.
방향은 남서쪽, 거리는 약 2km 안팎.
양측 진영이 술렁거리고 곧이어 두 명이 말을 타고 강을 넘어오려 한다.
그 뒤를 쫓는 자들도 여럿이었다.
“로버트, 피어슨!”
누군가 말에 탄 자들을 알아보며 소리쳤다.
그리고 그중 로버트란 자의 말에는 시신이 묶여있었다.
‘와카루사 전쟁의 유일한 희생자.’
어디서 누구에게 죽었는지 모르지만, 역사의 흐름은 유지되고 있다.
막스는 재빨리 애치슨과 존스의 반응을 살폈다. 그들은 뭔가를 상의하고 있었다.
방향은 두 가지일 터.
재협상을 할 것인가, 아니면 이를 계기로 전쟁을 벌일 것인가.
그런데 이때 존스와 스트링팰로우 형제가 회의에서 이탈하고 보더 러피안들에게 다가간다.
재협상을 생각했다면 상황 먼저 파악했어야 한다. 살인을 저지른 자들과 이야기를 나눠야 했다.
하지만 존스와 스트링팰로우는 각 병력을 통솔하는 보더 러피안들을 불러들였다.
‘드디어 내 예상을 비켜 가는구나.’
막스는 급히 찰스와 레인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강을 건너려는 로버트와 피어슨을 쳐다보는 중이다.
“놈들이 전쟁을 결심한 것 같습니다. 지금 당장 병력을 뒤로 물려야 해요.”
깜짝 놀란 찰스와 레인, 그리고 존 브라운의 시선이 애치슨을 향한다.
“지금 중요한 건 사무엘 존스에요. 상황 볼 필요도 없습니다. 당장 병력 빼요!”
막스는 이 말만 남긴 채 홀리데이를 이끌고 뒤로 빠졌다. 그리고는 자신이 지휘하는 젊은 제이호커스들에게 소리쳤다.
“지금 당장 요새를 사수한다!”
“옛썰!”
의문을 표하지 않는다.
그저 대답하고 행동할 뿐.
일제히 오레드 산을 향해 말머리를 틀어 달려간다.
그리고 그들의 등 뒤로 사령관인 제임스 레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원 방어 태세에 임하라!”
사태가 심각함을 깨닫고, 와카루사 강 북쪽에 있던 로렌스 병력들이 신속하게 뒤로 빠지기 시작한다.
이 광경을 본 벤자민 스트링팰로우가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적들이 준비할 시간을 주지 말아야 한다! 당장 1, 2, 3 기병대는 마을로 진격하라!”
“포병들은 대포를 강 건너로 옮긴다!”
동생 로버트 스트링팰로우의 지시에 곧이어 포병들이 수레바퀴에 놓인 대포를 밀고 온다.
미주리주 리버티 아스널의 군 무기고에서 탈취한 올드 새크라멘토 캐넌(혹은 올드 키카푸 캐넌).
멕시코 전쟁에서도 사용된 6파운드(2.7kg) 포를 사용하는 대포였다.
혹시 모를 전쟁을 위해 로렌스는 각자의 역할과 포지션을 정해두었다. 막스는 새로 지어진 요새를 사수하며 로렌스 마을로 접근하는 보더 러피안을 사수했다.
“홀리데이 대령, 마을 사람들 피난처와 부상자 치료 물품 상태 확인해봐요.”
“아, 알았어. 막스 보안관!”
홀리데이가 마을 후미로 빠지고, 막스는 등에 멘 샤프 라이플을 앞으로 가져왔다.
요새는 3층 높이에 폭 30m.
크게 외치지 않아도 대원들은 막스의 목소리를 또렷이 들을 수 있다.
“서두르지 말고 사정거리 내에 들어오면 쏜다. 30m까지 다가오면?”
“라이플을 버리고 리볼버를 든다!”
“각자 총알은 여섯 발. 맞춘 놈한테 굳이 또 쏠 필요는 없다. 그럼 우린 몇 명을 죽일 수 있다?”
“많이요!”
“...... 최소 500명이다. 내 눈은 특별해서 제군들의 총알이 어디로 향하는지 모조리 볼 수 있다. 알겠나?”
“옛썰!”
말하는 사이 요란한 소리가 들려온다.
기병들이 요새를 향해 진격해오고 있었다.
막스는 천천히 라이플을 들어 자세를 취하고.
옆에는 듀들리가 장전된 라이플 여섯 자루를 가지고 대기중이다.
시끄러운 소리 탓에 막스가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요새를 괜히 지은 게 아니다. 우리를 맞출 수 있는 놈이 있다면 그놈은 그냥 신이다! 죽어도 천국으로 인도할 테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소리다.”
“옛썰!”
막스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선두를 달리는 놈의 조준했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이번일이 끝나면 스코프 하나 달아야겠다.
‘첫발이 안 맞으면 개망신인데.’
다들 숨죽여 지켜보고 있을 테니 말이다.
표적이 사정거리에 들어오고, 숨을 들이마신 뒤 살짝 내뱉어 정지. 살포시 닿은 방아쇠를 당긴다.
타아아아앙!
“오오! 쓰러졌다!”
“와, 저기면 대체 거리가 얼마야?”
“그니까 말뚝 갯수가···.”
‘400m다 새끼들아.’
막스가 라이플을 듀들리에게 건네주자, 새로운 라이플이 손에 들어온다.
새로운 목표를 조준할 즈음.
타아아아앙!
“대장 벌써 쏜 거야?”
“내가 쐈거든?”
피치의 말에 다들 입을 닫은 채 표적을 조준했다. 피치가 쐈으면 곧 자신들의 사정거리 내에 들어왔다는 소리.
곧이어 요새에서 쏟아진 총탄이 보더 러피안들을 향했다.
타아앙! 타아앙!
말과 함께 곤두박질치는 보더 러피안들이 부지기수다.
하지만 막스는 다가오는 적들을 보며 미간을 찡그렸다. 대포까지 밀고 들어오면 피해는 더 커질 터.
‘섬너 대령이 이렇게 우유부단할 줄이야.’
보험설계를 잘못한 걸까.
막스는 저 멀리 보이는 사무엘 존스를 조준했다. 잔뜩 흥분한 그는 뭐라 지껄이면서 요새를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기다려라, 동양인 쿨리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