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렙튼 바에서 도박을 즐기며 멤버 중엔 사무엘 존스 보안관도 있음.
“끝으로 관찰 당일 역시 사무엘 존스와 함께 있는 걸 확인했습니다. 이상입니다!”
예상보다 빨랐으며 정보는 알찼다.
막스는 특별 포상으로 20달러의 포상을 지급했다. 물론 현상금에서 충당할 생각이고.
“오늘, 내일 마음껏 마시고 쉴 수 있도록.”
“옛썰!”
신이 난 피치는 분대원들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버팔로 담요에서 얼굴을 내민 콜린은 그들이 사라진 문을 보며 말했다.
“원래 저런 거야, 아니면 훈련 효과야?”
“둘 답니다. 재능을 갈고닦으면 더욱 빛이 나는 거죠.”
“흠.”
콜린의 얼굴이 담요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 막스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얼른 일어나요.”
“왜. 아직 밥 먹을 시간 아니잖아.”
“도착하면 밥 먹을 시간일걸요.”
“!”
휘릭, 담요를 벗은 콜린이 눈을 부릅떴다.
“갑시다. 레콤프턴으로.”
레콤프턴
“근데 말야.”
콜린이 부산하게 준비물을 챙기는 막스에게 말을 건넸다.
“레콤프턴이 어떤 곳인 줄은 알지?”
캔자스 노예제 옹호론자들의 심장.
그곳을 로렌스 보안관이 간다는 건 위험천만한 행동이었다.
“너 얼굴 모르는 사람 있어? 아니지 캔자스에 동양인이 너밖에 더 있어?”
“내가 병신입니까? 이러고 가게.”
막스가 갑자기 정중앙에 가르마를 만들고 머리를 양쪽으로 늘어트렸다. 그리고는 사무실 어딘가에서 가져온 깃털이 꽂힌 헤어밴드를 뒤집어썼다.
“얼굴을 가려야지 가르마를 탈 생각하네. 설마 인디언 같냐고 물어볼 건 아니지?”
“...... 당연히 아니죠.”
사실 레콤프턴은 인디언들도 꺼리는 마을이다.
오로지 백인들만의 세상인 곳을 막스가 접근하기 위해선.
완벽한 위장이 필요했다.
“기다려봐요.”
막스는 제이호커스들의 훈련용으로 만든 위장크림을 사용할 생각이다.
불에 탄 재를 곱게 갈아 기름과 섞어 만든 것으로 위장 본연의 목적을 살리기엔 충분한 효과가 있었다.
막사에 들어간 막스는 옷을 벗고 온몸에 위장크림을 덕지덕지 처발랐다.
추위 때문인지 닭살이 올랐지만, 이리저리 몸을 문질러 완벽을 기했다.
다시 사무실로 복귀했을 때.
콜린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헉! 나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막스를 흑인 도망 노예로 생각한 콜린이 황급히 손을 잡아끌었다.
이때 막스가 씨익하며 이를 드러낸다.
“접니다.”
“왓더...!”
콜린은 막스 몸을 한 바퀴 돌며 손과 얼굴을 확인했다. 그는 탄성을 내지르며 말했다.
“보면 볼수록 탈출시켜주고 싶네. 완벽하다, 완벽해.”
“그럼 가볼까요.”
막스는 콜린의 흑인 노예가 되어 레콤프턴으로 향했다.
*
레콤프턴은 로렌스와 마찬가지로 1854년에 설립된 마을이다.
인디언이 살던 당시에는 ‘대머리독수리(Bald Eagle)’라 불리던 곳이지만 캔자스 영토 대법원장인 사무엘 레콩트의 이름을 따서 현재의 레콤프턴이 되었다.
앤드류 리더 전 주지사는 이곳에 정부 기관을 설립, 현재는 더글라스 카운티의 군청 소재지로 로렌스보다 발전 속도가 빨랐다.
크리스마스이브의 이브.
나름 번화가라 할 수 있는 마을 중심부의 술집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다각, 다각, 다각.
히이이잉!
흑인이 된 막스와 왼쪽 뺨에 커다란 점을 만든 콜린이 마침내 랩튼 바에 도착했다.
“말이나 보고 있거라. 노예야.”
“몸 어디에 구멍 내 줄까요?”
“연기지, 연기.”
막스는 코웃음 치며 말을 이었다.
“작전은 알죠? 무조건 조지 클라크를 밖으로 유인하는 겁니다.”
노예제 폐지론자들이 자신을 노리는 것도 아는 놈이다. 잠도 매춘부와 자고 대부분 시간을 술집에서 지낸다고 하니 잠깐이라도 밖에 나오는 걸 노리는 수 밖에 없었다.
막스는 말 두 필을 끌고 헛간으로 향하고, 콜린은 술집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런데 바운서가 바운서를 제지한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댁이 이 땅에 사는 사람 얼굴을 다 알아?”
콜린과 바운서의 시선이 교차하고. 이내 음흉한 미소를 짓는 바운서는 들어가라며 고갯짓을 했다.
“소란피우면 각오하라고.”
추위를 뚫고 술집에 들어온 콜린은 두꺼운 코트를 벗고는 바 의자에 걸터앉았다.
‘술집이 그나마 따뜻하긴 하구먼.’
힐끔거리는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위스키 한잔을 주문했다.
살벌한 추위, 밖에서 말을 돌볼 막스를 생각하던 콜린.
시끌벅적한 소리 중 유독 목소리가 큰 자가 그의 고막을 두드린다.
“그 뭐냐, 토마스···. 시발 이름도 기억 안 나네. 아무튼 내가 잠복하는 곳에 그 노예주 폐지론자랑 형제들이 다가오는 거야. 그래서 딱 촉이 왔지. 아, 이새끼들 이거 로렌스 마을 도와주러 가는구나 하고.”
“그래서?”
“그래서는 뭔 그래서야. 여기 내 리볼버··· 참 내 노예 새끼가 수리 중이지. 하여튼 권총으로 놈 심장에 구멍을 만들어줬지.”
조지 클라크는 자신의 권총 콜트 드라군 M1848을 애지중지했다. 그날 일을 묻는 자들에게 어김없이 드라군을 보이며 자랑을 늘어놓았으니까.
그런데 권총이 고장 났는지 조지 클라크는 총을 들고 있지 않았다.
“하여간 노예제 폐지론자 새끼들은 총알을 맞아야 정신 차린다니까. 그날 로렌스가 쑥대밭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탁!
한쪽 탁자 위로 누군가 맥주잔을 강렬하게 내려놓았다. 잔뜩 얼굴을 일그러트린 사무엘 존스. 그는 날카로운 눈으로 방금 입을 연 사내를 쳐다봤다.
“나, 난 그냥 아쉬워서 한 말이었어.”
“그래, 보안관. 얘도 속이 상하니까 한 소리지.”
잡아먹을 듯 노려보던 존스는 말없이 술잔을 들어 맥주를 입에 퍼부었다.
머릿속엔 동양인, 로렌스 보안관뿐이었다.
“자자, 그럼 오늘은 좀 일찍 판을 벌여 볼까나. 느낌이 좋은 게 이 돈들이 잔뜩 새끼를 칠 것 같거든.”
조지 클라크는 분위기를 전환시키며 탁자 위에 2달러 동전 몇 개를 늘어놓았다.
시가를 문 채 카드를 섞는 클라크가 주변을 쓰윽 훑어본다. 이내 흥미 있는 자들이 탁자에 달라붙었다.
“어이구, 도티 괜찮겠어? 어제도 다 꼴은 것 같은데.”
“남 걱정하지 말고 카드나 제대로 섞어.”
‘포커라.’
위스키를 입에 털며 콜린의 한쪽 입가가 올라갔다. 조지 클라크에게 접근할 가장 쉬운 방법이 떠오른 것이다.
본격적으로 판이 벌어지고, 랩튼 바의 매춘부 둘이 매캐한 담배 연기 속에 싸구려 화장품 냄새를 보태었다.
해가 진 개척마을의 남자들.
특히 가정이 없는 독신들은 할 일이 많지 않다. 그날 벌어 그날 써버리는, 여자와 노름으로 탕진하는 게 이들의 삶.
어제와 오늘이 똑같지만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좀 더 취할 뿐이었다.
랩튼 바 옆에 있는 마구간.
막스는 들어오자마자 곰 한 마리를 발견했다. 깜짝 놀라 총을 꺼내려는 순간 곰이 말을 걸었다.
“사람이야.”
네이선 로어 만한 덩치의 흑인이 검은색 담요를 뒤집어쓰고 웅크리고 있었다.
“너 노예야?”
“피차 노예끼리 뭘 그런 걸 물어.”
“...... 다른 사람들은 마구간 밖에 있던데 넌 여기서 뭐 해?”
“주인님 물건 고치고 있어.”
자세히 보니 손으로 작은 쇠들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총기 부품이네.’
흥미를 느낀 막스는 그 옆에 쪼그려 앉았다. 노예는 마구간 바닥에 나무판을 깔아놓고 그 위에 분해가 가능한 수준까지 부품을 늘어놓았다.
“콜트 드라군?”
“부품만 봐도 아네.”
“뭐, 나도 가끔 이 짓 하거든. 근데 너한테 총 맡기는 거 보니까 주인이 착한가 보다.”
노예는 말없이 샤프닝 스틸(야스리)로 부품을 문질러댔다.
“모양이 특이하네.”
“내가 만든 거야. 작은 구멍까지 문지를 수 있거든.”
“호오, 설마 이 총열에 새겨진 음각도 네가 한 거야? 그리고 해머 어셈블리랑 젖꼭지(실린더 고정핀)는 드라군이 아니네? ”
노예는 자신이 한 것들을 알아봐 준 막스를 보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부품으로 시선을 돌려 입을 열었다.
“주인님이 새겨달라 해서 한 거고, 부품은 다른 총기에서 가져온 거야. 이건 패터슨, 이건 워커. 탄도 납을 주조해서 미니에탄을 사용하고 있지.”
현시점에서 미니에탄은 주로 라이플에 사용된다. 리볼버의 경우 남북전쟁 이후로 44구경의 미니에탄이 보편적으로 사용되었으니, 노예는 탄의 장점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는 말이었다.
“너 손재주 장난 아니구나.”
“이런 게 내 일이니까.”
“총기 말고 다른 것도?”
“어릴 적부터 기계를 고치고 만들었거든. 주인이 목화솜 농장에서 나를 데려 온 것도 이것 때문이었고.”
목화솜 씨를 빼는 조면기도 여러 번 고쳤다고 했으니, 막스는 그 솜씨가 탐이 났다.
‘스코프 도면 던져주면 만들 수 있을까.’
“이름이 뭐야?”
“알프레도.”
막스가 이름을 되새길 때, 갑자기 마구간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랩톤 술집의 바운서였다.
“노예 새끼들 둘이 태평하게 노닥거리고 앉아있네.”
혀를 차던 바운서는 마구간 한쪽에다 오줌을 싸기 시작한다.
부르르 몸을 떤 뒤엔 다가와 알프레도의 몸에 손을 쓰윽 문질러 닦았다.
“어제 네 주인이 내 돈 딴 거 알아, 몰라.”
“죄, 죄송합니다.”
퍽!
뒤통수를 후려친 바운서는 이어 알프레도를 발로 차 밀었다. 곰 같은 체격으로 반격은커녕 주인의 총기 부품이 흩어질까 봐 몸을 웅크려 보호했다.
“좀 기분이 풀리는구먼.”
바운서는 침을 뱉고는 마구간을 벗어났다.
“후우우.”
알프레도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안 억울해?”
“억울하면 어쩌려고. 원래 이런 거야, 이게 우리가 노예인 이유고.”
“그니까, 왜 우린 노예냐고.”
“노예로 태어났으니까.”
“자유로운 흑인들도 있잖아.”
알프레도가 헛웃음을 터트린다. 그는 조금은 흐트러진 부품을 모으며 말을 이었다.
“자유? 춥고 배고픈데 자유가 무슨 소용이야. 너나, 나나 주인 없으면 굶어죽는 거야.”
“네 솜씨면 일할 곳 많을 텐데.”
“그전에 노예 사냥꾼들한테 죽겠지. 아니면 이유 없이 백인들한테 총 맞거나.”
“꿈은? 없냐?”
“있기야 있지. 이룰 수 없는 꿈.”
알프레도의 초점 없는 눈이 한 곳을 응시한다.
“내 대장간을 갖는 게 소원이거든.”
“대장간?”
문득 리븐워스의 제임스를 떠올리며 알프레도를 쳐다봤다.
“너 주인이 누구라 그랬지?”
*
술집 안.
포커판이 한창인 곳에 조지 클라크가 맞은편 상대를 노려본다.
“여기서 배팅을 한다 이거지?”
“뭘 물어봐. 배짱 있으면 따라오면 되지.”
입술을 씰룩거리는 조지 클라크는 슬슬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다섯 판을 내리진 게 원인이었다.
‘말투, 행동 전부 마음에 안 들어.’
이번엔 기필코 놈의 패를 확인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조지 클라크가 10달러를 판돈으로 얹으며 따라가자 상대편, 아니 콜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를 추켜세웠다.
“배짱 마음에 드는 친구 구만. 내가 여자였으면 네 옆에 앉고 싶을 정도야.”
“개소리 말고 패나 까.”
판돈이 커지면서 자연스레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시큰둥하게 한쪽에서 술만 마시던 존스도 그중 하나였다.
조지 클라크의 패는 J, 8 투 페어.
그리고 이어 손바닥으로 가리고 있던 콜린이 패를 뒤집었다.
A, J 투 페어.
콜린의 승리였다.
“하, 시발.”
조지 클라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리곤 판돈을 쓸어 담는 콜린의 손을 덥석 잡는다.
“너 이 새끼···.”
“왜 이래, 매력 떨어지게. 아까 한 말 취소다.”
“오늘 어디 갈 생각하지 마.”
“오줌 쌀 시간 정도는 줘야지. 어떻게, 사이좋게 같이 싸러 갈까?”
콜린의 이죽거림에 조지 클라크가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당장 패 돌려!”
‘도박에 미친 놈은 화장실도 안 간다더니.’
조지 클라크가 딱 그 짝이다.
이런 식으론 날 샐 때까지 끝나지 밖에 내보내긴 힘들 것 같았다.
‘시벌, 막스가 화내면 무서운데.’
벌써 두 시간이 지나갔다.
밖이 좀 추운가. 기다리던 막스가 참지 못하고 이곳에 들어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식겁한 생각에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봤다.
그러다 문득 조지 클라크의 빈 홀스터를 힐끔 쳐다봤다.
- 여기 내 리볼버··· 참 내 노예 새끼가 수리 중이지.
눈을 빛낸 콜린이 조지 클라크를 쳐다봤다.
어떻게 해서든 밖으로 내보내면 막스가 알아서 처리할 터.
“너 노예제 폐지론자를 죽였다며?”
뜬금없는 질문에 조지의 눈이 가늘어진다.
“갑자기 그 얘긴 왜?”
“그 영광스러운 총이 탐이나서 말야. 내기로 거는 건 어때?”
“미친놈.”